20화 배치



20화 배치

진강이 사방화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네가 이 화분을 죽인다고 해도 괜찮다. 내가 다시 구해올 수 있으니. 하지만 나는 우리 어머니에게 내가 화분조차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구나.”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만일 네가 화분을 죽게 만들면, 아마 우리 어머니가 마음 아파하시면서, 너를 불러 꽃을 가꾸는 법을 훈련시킬 테지.”

사방화는 흠칫 놀랐다. 영친 왕비의 화초 가꾸는 솜씨는 유명했다. 만약 그런 영친 왕비에게 직접 교육을 받게 되면, 사방화는 아마 초주검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면, 너는 이 화분을 잘 돌봐야 할 것이다.”

사방화는 앞에 있는 선객래를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 화분을 조상님 모시듯 잘 돌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지금 바로 화분을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부는 곳에 가져다 놔라.”

진강의 말에 사방화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두 개의 화분을 한꺼번에 들고 가 볕이 매우 잘 드는 창문가에 두었다.

“음식을 할 줄 아느냐?”

사방화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 낙매거에는 단독으로 쓰는 작은 부엌이 있다. 여태 이곳에 여인이 없어 계속 비어 있었지. 이제 네가 왔으니, 그 곳을 쓰도록 해라.”

진강이 천천히 말했다.

“네가 요리를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배우면 되니까. 청언에게 연부루의 주방장을 불러와 매일 너에게 요리를 가르치라고 하겠다.”

사방화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고개를 홱 돌려 진강을 바라봤다.

‘누가 요리하는 것을 배우겠대? 요리를 하지 못해도 굶어 죽지 않는다고! 한데 왜 요리를 배워야 해?’

“배우고 싶지 않은 것이냐? 아니면 연부루의 주방장에게 배우고 싶지 않은 것이냐?”

진강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사방화는 말을 할 수 없으니, 눈빛으로 그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둘 다 싫은데? 어쩔 거야?’

진강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화분을 가꾸는 것과, 음식을 배우는 것 중에서 무엇이 더 어려울 것 같더냐?”

그는 사방화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말을 이었다.

“연부루의 주방장이 와서 너를 가르치는 것과 황궁의 어전 주방장이 와서 가르치는 것 중, 무엇이 더 나을 것 같더냐?”

사방화는 머릿속이 불타는 것 같았다. 만일 황궁의 어전 주방장이 와서 그녀를 가르치게 된다면, 황궁 사람들뿐만 아니라, 경성, 아니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되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지는 것은 그녀에게 전혀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응? 잘 생각해 보거라. 음식 만드는 걸 배울 테냐?”

진강이 그녀를 조용히 보면서 말했다. 그는 전혀 일말의 악의도 없어보였으며, 사방화에게 강요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 상황이 충분한 악의로 느껴졌다.

사방화는 결국 그의 시선에 지고 말았다. 그녀는 영친 왕비가 직접 자신에게 화초 가꾸는 법을 가르쳐주길 바라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이 화분을 잘 돌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전 주방장이 와서 그녀에게 요리를 가르쳐주는 것도 싫었기 때문에, 연부루의 주방장에게 요리를 배울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 흘렀다.

“동의한 것이냐? 그럼 결정된 것이다.”

진강의 즐거운 목소리가 들려도 사방화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차갑게 그를 쳐다보는 것,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 모두 진강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자신의 목적을 꼭 이루고야 마는 사람이었다.

“공자님, 약을 받아 왔습니다.”

청언이 끈으로 묶은 약봉지를 들고 낙매거로 들어왔다.

“음, 조금 있다가 청음이 마실 수 있게 끓여 와라!”

진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분부를 내렸다.

“그리고 오후에 연부루로 가서 그 곳의 주방장더러 내일부터 점심 식사 후에 매일 두 시진 정도 영친왕부에 다녀가라 전해라.”

청언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를 왜 부르시는 건가요? 공자님이 그 곳의 음식을 드시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가실 수 있지 않습니까?”

“영친왕부가 연부루와 멀리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집에서 먹는 것이 더 편하다. 앞으로 청음이 요리를 배울 것이다. 너도 먹을 복이 있구나.”

진강의 말에 청언은 멍한 표정으로 사방화를 돌아봤다. 그녀가 난로에 장작을 거칠게 넣으며, 공격적인 소리를 내자 청언은 목을 움츠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공자님은 역시 영민하십니다. 지금 바로 약을 달인 후, 연부루에 다녀오겠습니다. 오늘 공자님이 외출을 안 하시니, 청음이 약을 마시는지는 공자님께서 지켜봐 주십시오.”

“응.”

진강이 동의했다. 곧이어 청언이 약을 달이기 위해 물러났다.

사방화는 난로에 장작을 집어넣은 후, 주전자를 들고 차를 탔다. 그리고 진강에게 차를 건넸다. 진강은 거절하지 않았고, 뜨겁지도 않은지 곧바로 차를 마셨다.

그 때, 영친왕부의 집사가 안에 있는 방에서 사람들을 데리고 나왔다. 집사는 이마의 땀을 닦고는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공자님, 청음의 방이 준비가 되었습니다. 마음에 드시는지 한 번 보시겠습니까?”

“그러지.”

진강은 찻잔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사방화는 집사와 그의 뒤에 있는 부인 두 명이 자신을 몰래 살펴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이내 그녀도 담담하게 그들을 쳐다봤다.

“청음, 너도 와서 보거라.”

사방화는 진강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갔다.

* * *

안으로 들어가자, 완전히 다른 방으로 탈바꿈한 방이 보였다. 방은 더 이상 어제의 그 텅 빈 방이 아니었다.

한쪽에는 그림이 그려진 병풍이 놓여있었고, 침상에는 비단으로 만든 휘장이 드리워져 있었다. 칠보로 칠해진 화장대에 거울과 난로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사방화는 멍한 표정으로 진강을 쳐다봤다.

‘여기가 시녀의 방이야? 귀족 아가씨의 규방이야?’

“희순 집사, 내 서재에 있는 빙옥 금(琴)과 백옥 바둑판, 자옥 벼루도 이곳으로 옮겨 주게. 그리고 어머니께서 작년에 받으신 청운람산의 그 그림도 이곳으로 가지고 오도록 하고. 그 일을 다 하면, 집사는 내 기준을 모두 통과한 것이네.”

진강이 방을 둘러보더니, 밖에 있는 집사에게 소리 높여 말했다. 집사 희순은 등에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끼며 즉각 대답했다.

‘금(琴), 바둑, 책, 그림까지. 진강은 나를 규방 아가씨로 만들려는 것인가?’

사방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진강은 그녀의 표정에 개의치 않고 방을 둘러보더니, 사방화에게 말했다.

“침상에 누워 보거라.”

사방화가 경계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진강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아무 의미도 없다는 뜻을 밝혔다.

“선객래를 네 방으로 가지고 올까?”

그녀는 할 수 없이 침상에 가서 누웠다. 진강이 그 옆으로 오더니, 침상의 휘장을 천천히 내렸다. 휘장이 쳐지자 사방화는 잠시 앞이 모호하게 보였다. 그는 잠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갑자기 몸을 돌리며 말했다.

“일어나거라. 앞으로 낮에 여기 누워서 게으름을 피우면 안 된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진강 때문에 화가 난 사방화는 주먹을 불끈 쥐고 벌떡 일어났다. 그 때, 청언이 더듬거리며 그를 불렀다.

“공…… 공자님…….”

“응?”

“집사님에게 공자님 서재에 있던 금(琴), 바둑판, 벼루 모두를 청음의 방으로 옮기라 하셨습니까?”

청언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래. 맞다. 빨리 가서 가져오너라.”

진강의 명령에 청언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곤 곧바로 기어서 일어나더니 당장 서재로 달려갔다. 진강은 몸을 돌려 긴 의자에 드러눕고는, 나른한 말투로 말했다.

“나는 매일 묘시(卯時)에 일어난다. 일어나면 정원에서 반 시진 정도 검술연습을 한다. 돌아오면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은 뒤 식사를 하지. 진시(辰時)에 서방에 가서 오전 내내 공부를 한 다음에, 오후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식사를 한다. 식사가 끝나면, 미시(未時)에 기마와 궁술을 배운다. 그리고 유시(酉時)가 되면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한 후, 서재에서 스승님이 내주신 과제를 하지.”

사방화는 그를 바라보면서, 귀족 집안 자제의 생활도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강은 여러 일들로 하루 일과가 꽉 차 있었다.

“앞으로 너는 묘시에 일어나서, 나와 함께 검술을 연습해라. 돌아오면 내 머리를 빗긴 다음, 내가 서방에 가고나면 청언을 따라가면 된다. 내가 진시에 집을 나가면 스승들이 와서 너에게 금(琴), 바둑, 서예, 그림을 가르쳐 줄 것이다. 오후에 내가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할 때, 그 날 배운 것들을 점검할 것이다.”

진강이 계속 말을 술술 내뱉었다.

“오후에 내가 기마와 궁술을 배우러 가면, 연부루의 주방장이 너에게 요리를 가르쳐주러 올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께 매일 저녁 자수를 놓는 법과 규방의 예절을 가르쳐 달라 청해놓을 테니, 잘 배우도록 하거라. 유시에 집에 돌아오면 나는 식사 후에 먼저 과제를 하고, 네가 오후에 배운 것을 점검할 것이다.”

그는 잠시 말을 쉬었다가, 다시 이어갔다.

“그렇게 6일 동안 배우고 나면 하루를 쉴 수 있다.”

지금까지 냉정을 유지하고 있던 사방화가 그 말에 눈을 크게 뜨고 진강을 쳐다봤다.

“내 옆에서 시중을 들려면 여러 가지 방면에서 뛰어나야 하고, 규방의 일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음식 솜씨도 좋아야 하지. 때가 되면 내가 너를 데리고 나갈 것이다. 잘 배울 자신 있겠느냐?”

‘자신은 무슨? 진강은 시녀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여인이 부족한 거야!’

사방화가 그의 시선을 피하며 생각했다.

“자신 없어도 조급해 말거라. 시간은 많다. 천천히 해도 된다.”

진강은 자신의 계획이 마음에 든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사방화는 창문 밖을 보면서 예전을 떠올렸다. 전에는 그녀도 진강이 이야기한 모든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매일 충용후부에서 금(琴), 바둑, 서예, 그림 등을 배우고, 규방의 일에 대해서 배웠었다. 다만 그중에 요리는 배우지 못했다. 충용후부는 오랫동안 부귀영화를 누리던 가문이고, 존귀한 지위의 사람들이었기에 당연히 여인들이 요리를 배울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모든 것들을 배운 후, 무명산이라는 황량한 곳으로 떠났다. 무명산에서 그녀는 무공과 병법, 계략을 배웠다. 어떻게 살인을 하고, 어떻게 살인을 하면 들키지 않는지에 대해 배우고 알아갔다. 그러면서 사방화는 8년이란 세월 내내 이 무명산을 없애버릴 방법을 연구했고, 결국 짜릿한 성공의 결실을 맺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진강이 갑자기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나 사방화는 지금 그와 마주보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만약 일찌감치 진강에게서 벗어났다면, 현재의 이런 일들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시종일관 어찌할 바를 몰랐다가, 이제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있었다. 곰곰이 따져보면 진강이 하는 모든 행동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닌데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생각해 보면 여기서 진강의 시녀 노릇을 하는 것뿐이잖아!’

충용후부에 돌아가도 이런 규방의 일을 할 뿐이었다. 단지 시녀와 아가씨라는 신분만 다를 뿐, 하는 일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어쨌든 경성에 돌아왔다. 다만 이곳이 충용후부가 아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