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부인을 얻도록 돕다



31화 부인을 얻도록 돕다

진강은 사방화를 데리고 유란원(幽蘭苑)으로 들어갔다.

“아, 공자님, 사냥을 가신 게 아니었나요? 왜 이리 빨리 돌아오셨는지요? 세상에, 하얀 여우를 잡아 오셨군요.”

발소리를 들은 춘란이 그들을 맞이하러 나왔다. 곧이어 춘란은 진강을 위해 발을 걷어주었다. 진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영친 왕비와 다른 부인들이 깜짝 놀라 그를 바라봤다. 이내 영친 왕비는 놀란 가슴을 금세 가라앉히고 미소를 지으며 그를 혼냈다.

“이리 경박하다니. 여기 있는 부인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냐?”

“어머니!”

바닥에 여우를 내려놓은 진강이 소매를 털고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진강 공자님이시군요. 저희 모두 안녕하답니다.”

부인들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게 네가 잡아온 여우더냐? 며칠간 눈이 내리지 않아 여우가 보이지 않았는데, 정말 예쁘구나!”

눈처럼 하얀 여우를 보며 감탄하던 영친 왕비는 사방화의 존재도 잊지 않고 물었다.

“청음은? 같이 사냥 간 것이 아니냐? 무엇을 잡았더냐?”

“이 여우는 청음이 검으로 잡은 것입니다. 청음이 안고 있는 자색 담비가 바로 제가 잡은 것입니다.”

진강이 의자에 앉으면서 밖을 향해 외쳤다.

“청음, 빨리 들어오지 않고 뭘 꾸물대느냐?”

사방화는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날 생각은 없었다. 원래는 밖에서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영친 왕비와 진강 모두 자신을 찾으니, 하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자색 담비가 아주 예쁩니다.”

춘란이 발을 걷으면서 칭찬했다. 춘란이 친절한 태도를 보이자, 사방화는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자색 담비로구나!”

영친 왕비가 사방화를 손짓하며 불렀다.

“진강이 네가 검으로 여우를 잡았다고 했다. 손을 다친 것은 아니더냐?”

사방화는 담비를 내려놓고,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보여줬다.

“다행히 손은 다치지 않았구나. 하마터면 내일 자수 수업을 할 때 불편할 뻔했다.”

영친 왕비가 안도의 한숨을 쉬다가 진강의 소매를 보더니,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너는 소매가 왜 그렇게 된 것이냐?”

“이 두 동물을 지혈하기 위해서 찢었습니다.”

진강은 손가락으로 바닥에 엎드려 있는 두 동물을 가리켰다. 영친 왕비는 바닥에 있는 동물들을 보고 더 이상 진강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사방화를 보고 있는 부인들에게 말했다.

“이 아이가 바로 청음입니다.”

사씨 장방의 민 부인은 처세가 빠른 사람답게 얼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 무척 자태가 곱습니다. 자신의 본분과 규범을 지키시는 것이 역시 왕비마마와 진강 공자님이 좋아하실 만합니다.”

그녀의 말에 다른 부인들도 서둘러 사방화를 칭찬했다.

“이 아이는 매우 성실하고 자신의 본분을 잘 아는 아이입니다. 며칠 동안 하안 주방장에게 요리를 배우느라 매일 손을 데었는데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질 않았습니다.”

영친 왕비가 사방화를 칭찬하고 있을 그 때, 마침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영친 왕비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아이들은 누구를 쫓아온 것이냐?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것이냐?”

진강은 밖을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석, 이목청, 사묵함, 정명, 송방은 유람원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들어가는 것을 망설이며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이내 연석이 먼저 첫 발을 뗐다. 그러자 곁에 있던 춘란이 그들을 위해 발을 걷어주었다.

먼저 들어 간 연석이 자신의 어머니를 발견하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왕비마마와 부인들께 인사를 올립니다!”

연석은 인사를 한 후, 자신의 어머니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어머니도 여기 계셨군요!”

“이리 급하게 들어오다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영강후부의 부인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연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옆으로 물러나, 뒤에 들어오는 공자들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머지 공자들도 들어와 영친 왕비와 부인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우상부 부인은 이목청이 이마에 땀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고, 그를 짧게 나무랐다.

“외출할 때 내가 한 말을 잊은 것이냐? 지금 이리 땀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니,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것 같구나?”

이목청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땀을 한바탕 흘리고 나니, 몸이 더 상쾌해진 것 같습니다. 어머니, 저는 괜찮으니 아무 걱정 하지 하세요.”

“나중에 감기에 걸려 귀찮게나 하지 말거라!”

우상부 부인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더 이상 아들을 꾸짖고 싶지 않아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묵함의 몸이 좋아진 것이냐? 어쩐 일로 너희들과 함께 사냥을 간 것이지?”

영친 왕비는 사묵함에게 많은 관심을 쏟고 있었다. 그녀와 사묵함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친우 사이였다. 일찍이 부모를 잃은 사묵함과 사방화에게 그녀는 항상 더 마음을 쓰고 있었다.

“외숙부님께서 보내오신 약과 처방이 잘 들었습니다. 며칠 약을 먹었더니, 많이 좋아졌습니다.”

사묵함이 웃으며 대답했다.

“몸이 좋아졌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 네 어머니도 하늘에서 매우 기뻐하실 것이다.”

영친 왕비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묵함은 고개를 숙였다. 매번 어머니에 대한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오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방화는 영친 왕비의 안색을 살폈다. 영친 왕비가 돌아가신지 이미 오래인 자신의 어머니를 아직도 그리워하고 있는 걸 보면, 예전에 두 사람의 관계가 아주 좋았을 것 같았다.

사씨의 방계 가족들은 충용후부의 작위와 지위를 뺏기 위해 항상 사묵함이 빨리 죽기를 바랐다. 하지만 자신들이 감히 직접 나서서 충용후부를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사씨 가문의 장방 부인, 민 부인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육방의 명 부인도 살짝 실망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진강이 갑자기 사방화를 쳐다보더니, 영친 왕비에게 말했다.

“어머니, 제가 갑자기 찾아온 것은 드릴 말씀이 있어서입니다.”

“응? 무슨 일이냐?”

인군 왕비와 우상부 부인 등 다른 부인들은 자리를 비켜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말라 몰라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자리를 피해주는 것이 맞다고 판단한 듯, 차츰차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인들께서는 그대로 앉아 계셔도 됩니다. 제가 말하는 일은 그렇게 큰일이 아닙니다. 좋은 생각이 있으시면 부인들께서 의견을 주실 수도 있으실 겁니다.”

진강은 말 한마디로 부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막았다. 그녀들은 어쩔 수 없이 계속 자리에 앉아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진강 공자가 이리 심각하게 말하는 것인지 궁금하였다. 이윽고, 진강이 재미있다는 미소를 만면에 띠웠다.

“오늘 사냥을 할 때, 좌상부의 노 아가씨를 만났습니다.”

영친 왕비와 다른 부인들은 이미 노설영이 진강을 사모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강의 다음 말이 무엇일지 기다렸다. 진강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알고 봤더니, 노 아가씨가 오랫동안 제 형님을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모르시겠지만, 오늘 그녀가 사냥터에서 저에게 훈계를 하는 것이 마치 제 형수님이라도 된 것 같았습니다.”

사방화는 흥미진진한 기분으로 진강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제 생각에 지금 그녀의 신분으로 저에게 훈계를 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형님 또한 노 아가씨를 마음에 둔 듯한데, 둘은 아마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어머니께서 오늘 두 사람을 맺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영친 왕비와 다른 부인들은 모두 멍한 표정으로 진강을 바라봤고, 사방화 또한 진강의 폭탄선언과도 같은 말에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잠자코 지켜보던 사묵함과 공자들은 진강의 악랄한 수법을 보면서, 이런 일은 천하에 그를 따라올 자가 없으리란 생각에 혀를 내둘렀다.

잠시 후, 영친 왕비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 그 아인 너…….”

그녀는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 생각해 보십시오. 형님은 올해가 지나면 스무 살이 됩니다. 매파들이 이미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드는데, 왜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겠습니까?”

진강이 반문했다.

“그건 너희 아버지께서 네 형님이 먼저 성과를 이룬 후에 부인을 맞이하길 바라셔서 그런 것이다.”

영친 왕비는 이 말을 하면서 순간, 속으로 화가 났다. 영친왕은 서출 장자의 장래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그를 지원한다. 그러나 영친왕의 그러한 행동이 오히려 진강에게는 위협이 될 수도 있었다.

“말은 그리 하시지만, 실상 아버지께선 그동안 들어온 혼처들의 가문이 모두 지위가 낮기에 싫어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진강이 의자에 앉아서 느긋하게 분석을 했다.

“성과를 이룬다는 말은 바로 조정에 입문해 관리가 되어, 관운(官運)이 형통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형님의 관운이 형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작은 가문은 도움이 안 되겠지요. 아버지께선 형님을 좋은 가문과 맺어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영친 왕비가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말도 일리가 있다.”

“좌상부가 어떤 가문입니까? 이미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가문입니다. 범양 노씨가 뒤에서 그들을 탄탄하게 지지해주고 있는데, 이보다 형님에게 더 잘 어울리는 혼처가 어디 있겠습니까.”

영친 왕비가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네 형님은 영친왕부의 장자이기는 하나, 서출이다. 좌상부의 영애와 맺어주기에는 그래도 신분의 차이가 있다. 좌상께서 허락하시겠느냐?”

솔직하게 말하면 좌상은 서출인 진호가 아닌 적통인 진강 정도는 되어야 흔쾌히 허락할 터였다.

“좌상께서 왜 반대하시겠습니까? 저희 형님은 인재 중의 인재시고, 인물도 출중합니다. 게다가 호부에서 관직도 맡아 이미 정치적 입지도 잘 다져 두었습니다. 폐하께서도 그리 칭찬하시고, 영전(榮轉)도 빠른데다, 뒤에는 아버지의 든든한 지지까지 있습니다. 형님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 승승장구 하실 겁니다.”

진강은 계속해서 진호를 칭찬했다.

“좌상 가문의 아들들은 전부 폐물이나 다름없습니다. 좌상께선 미래에 여식과 사위에게 기대어 살아야 할 것입니다.”

* * *

영친 왕비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이 진호를 칭찬하는 것은 그렇다 하여도, 자신의 아들인 진강이 진호를 칭찬하는 걸 보니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그래봤자, 진호는 영친왕부의 서출일 뿐이다. 황자보다 더 잘났다고 할 수 없다.”

다른 부인들은 영친 왕비가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말에 맞장구치거나 끼어들지 못하였다. 어찌 되었든 영친왕부의 가정사이기 때문이다.

“어머니, 왜 화를 내십니까? 큰 형님이 능력이 있다는 것은 우리 영친왕부에도 영예로운 일입니다. 형님은 당연히 황자마마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황실의 자손입니다. 그러니 황숙이신 폐하와 아버님께도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진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님께서 직접 나서서 좌상부 아가씨에게 혼담을 넣어 주십시오. 아가씨를 형님의 부인으로 맞이하게 되면, 분명 형님도 어머니께 매우 감사드릴 것이며, 노 아가씨도 분명 어머니를 극진히 모실 것입니다. 혼담이 이리 잘 성사된다면, 다시는 경성에서 저와 형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말도 나오지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