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시운의 질투 (2)

13화. 시운의 질투 (2)

“소저, 몇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소?”

그러나 능의는 능희처럼 흥분하지 않고 되레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요.”

“첫째, 그 공법을 익히면 어떤 후유증이 남소? 둘째, 어째서 우리를 통해 고약운을 상대하려 하는 것이오? 연기종의 뜻은 대체 무엇이오? 마지막으로, 왜 연기종을 통해 고약운을 상대하지 않고, 우리를 이용하는 게요?”

그 말에 시운이 웃었다. 능의가 대놓고 그녀의 의도를 물었으나, 그녀는 화를 내지 않았다.

“제가 드리는 공법은 절대로 후유증이 없습니다. 제가 장담하지요. 왜 고약운을 상대하려 하느냐에 대해선……. 가주, 오늘 궁에 계시지 않았어도 잘 아시지요? 고약운은 저를 난처하게 했습니다. 단지 고약운에게 교훈을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질문은…….”

시운은 잠시 멈추더니 입을 열었다.

“대륙의 강대한 세력만이 이에 대해 알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 물어보시니, 분명히 대답해 드리지요. 능가 가주께서는 3대제재지(三大制裁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능의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시운을 바라봤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소.”

“3대제재지란 3대 세력으로 구성된 것입니다. 그중 선지(仙地)와 구유부(九幽府)는 2대 대립 세력이고, 영종(灵宗)은 중립을 지키고 있지요. 이 3대 세력이 대륙 제일의 강자로서 정한 규칙이 있습니다. 그들은 대륙 문파들의 순위를 매겼는데, 그 순위에 오른 문파가 곧 세력 문파입니다. 세력 문파는 평범한 사람을 함부로 상대해선 안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3대 세력의 추격을 받게 되고, 심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연기종이 능 씨 가문을 이용해 고약운에게 손을 쓰려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이는 그 중 하나일 뿐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청룡국의 천재 고생소가 연기종을 거절하고 영종 고수에게 갔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은 오직 세력 문파만 알고 있는지라, 고 씨 가문의 고일봉도 이를 모르고 있었다. 만약 고일봉도 알고 있다면, 그에게 지금보다 더욱 큰 용기가 주어진다 한들 고약운을 그렇게 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연기종은 고약운에게 암암리에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 능 씨 가문은 연기종의 위장수단에 불과했다. 이렇게 하면 고생소가 돌아와도 능 씨 가문에게 죄를 물을 뿐, 연기종은 결코 연루되지 않을 것이다.

“제가 가주께 드릴 말씀은 이게 전부입니다. 가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명심하세요. 고약운을 죽이지는 말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연기종에게 다시 넘기십시오. 그리고 이 일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시운은 순간 고약운과 떠난 그 은발 남자가 머릿속에 떠올라 주먹을 꽉 쥐었다.

“좋소.”

침묵하던 능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운 소저의 분부를 내가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지.”

시운은 마음속의 질투와 분노를 억누르고 미소로 화답했다.

“이 일이 끝나면 능희 공자에게 연기종에 들어올 기회를 드릴 테니, 부디 저를 실망시키지 마세요.”

말을 마치고 그녀는 몸을 돌려 문밖으로 사라졌다. 몸을 돌리자마자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은 사라지고, 그저 차가운 기운만이 맴돌 뿐이었다.

‘고약운. 너 같은 건 그 남자에게 어울리지 않아. 널 그 앞에서 무너뜨리겠어. 네 존엄이 무너지고 네가 괴로워하는 걸 그 남자가 보게 될 거다.

너를 연기종으로 데려간 다음, 네 모든 정신력을 내가 가져가겠어. 그 남자와 너의 격차는 너무 커. 절대로 함께 할 수 없어. 평생 그와 함께할 사람은 네가 아니라 바로 나야. 연기종의 천재 시운, 나라고! 고약운 넌 아무것도 아니야!’

시운이 떠난 후 능의의 마음은 빠르게 평온해졌다.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여봐라. 고약운의 행방을 알아봐라.”

* * *

백신당은 한산하여 손님 몇몇뿐이었다. 고약운은 백신당에 들어서자마자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는 여로를 바로 알아보았다. 그는 이미 고약운이 온 것을 알아챈 듯, 살짝 눈을 뜨곤 가볍게 웃었다.

“왔구나?”

“네.”

고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인사만 할 뿐, 별다른 말을 주고받지는 않았다.

“방으로 가서 얘기하자. 그리고 널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이 있다.”

“좋습니다.”

지난번 백신당을 떠난 후, 고약운에겐 다시 이곳에 올 시간이 없었다. 또한 그녀는 몸을 의탁하는 것 외에도 중요한 일을 해야 했다.

이제 그녀가 첫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 * *

우아한 방 안에는 가벼운 바람이 하얀 창틀을 부드럽게 쓸며 들어오고 있었다.

고약운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등지고 선 사내 한 명을 보았다. 금색 옷을 입은 사내는 존귀하면서도 화려해 보였으며, 늠름한 기세가 느껴졌다. 뒷모습만으로도 이렇게 압박감을 줄 수 있다니, 고약운은 남자의 실력이 예상되었다.

“소주. 보길 원하시던 사람을 제가 데려왔습니다.”

‘소주?’

고약운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 남자가 백신당 뒤에 있는 세력인가?’

청룡국 사람들은 백신당 뒤의 세력이 강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백신당에게 미움을 산 세력은 그 다음날 바로 사라졌다.

지금껏 백신당 뒤에 있는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백신당은 모두에게 비밀스러운 세력이었다.

이내 남자가 몸을 돌리는 순간, 고약운의 눈빛이 밝아졌다.

눈앞의 남자는 풍채가 좋고, 온화하며, 우아했다. 이 단어들이 이 남자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했다. 또한 웃는 그의 얼굴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매우 상쾌하게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이 남자와 친해지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네가 고천의 딸, 고약운이냐? 하늘이 널 돌보고 있구나. 네게서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 너를 폐물이라 하는 것들은 눈이 멀었던 게 아니냐?”

눈앞의 소녀에게서 고천의 그림자가 언뜻 보이자, 남자도 그녀에게 호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고약운은 잠시 멍해졌다.

“아버지를 아세요?”

“네 아버지의 오랜 친우라 할 수 있지. 안타깝게도 천재를 질투하는 건 대륙의 영원한 손해임을 모르는 사람이 있더구나. 그래도 고천 그 녀석은 대단해. 영종에 제자로 받아들여진 아들과 이렇게 걸출한 딸이라니. 고천이 너희를 지금 봤다면 얼마나 기뻐할까?”

남자는 탄식했다.

고약운은 그의 말을 듣곤 마음이 움직였다. 고 장군은 한 번도 고생소의 행방에 대해 말해준 적이 없었다. 영종? 영종은 어떤 세력인가?

“당신이 백신당의 주인입니까?”

그녀는 눈을 들어 앞에 있는 남자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남자는 가볍게 웃었다.

“나는 백신당의 주인 동방소택(东方少泽)이다. 네 부모님과 오랜 친구니, 괜찮다면 나를 숙부라고 불러라. 네 부모님에 대해서는…… 지금은 말해주지 않겠다.”

고약운은 이제야 자신이 어떻게 백신당의 주인이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아무런 희망도 품지 않고 있었는데, 이렇게 순조롭게 백신당을 얻게 될 줄은 몰랐다. 알고 보니 그게 다 이 남자 덕분인 것 같았다.

그러나 우습게도 고약운 자신은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고약운은 자조하듯 웃었다.

“소주, 저는 제가 실력으로 백신당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네요.”

“네 능력도 출중하단다.”

동방소택은 웃으면서 고약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눈빛에는 고약운을 향한 애정이 가득했다.

“네가 고가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모르겠구나. 열다섯 살 아이가 이렇게 성숙하다니, 숙부인 내 마음이 아프구나. 어쨌든 나를 네 부모의 친우로 생각해주렴.”

동방소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면서도, 계속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여로는 옆에서 모든 대화를 들으며 속에서 차오르는 슬픔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그는 소주가 일찍부터 고약운을 만나고 싶어 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러나 동방소택은 동양세가의 일에 고약운을 연루시키고 싶지 않아서 아무리 보고파도 참고, 또 참았다.

그래서 그는 고약운이 누구인지 알면서도 섣불러 만날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은……?”

동방소택은 문득 고약운 뒤에서 포악한 기운을 느꼈다. 고개를 돌려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천북야를 보니, 천북야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심장이 떨릴 정도였다. 도대체 몇 명을 죽여야만 저렇게 무정한 데다 살인을 즐기는 듯한 기색이 서린 눈빛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특히 천북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는 동방소택의 몸을 옥죄고 있었다.

“아, 얘요?”

고약운이 천북야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밖에서 주웠습니다.”

“주웠다고?”

동방소택이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사람이 고양이도 아니고, 길에서 아무나 줍는다니? 이내 동방소택은 남자의 표정이 빠르게 변하는 것을 알아챘다.

천북야는 동방소택을 불만스럽게 바라보다가, 순간 고약운이 자신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억울한 고양이처럼 변했다. 누군가에게 괴롭힘이라도 받은 듯 보였다.

“소주. 방을 두 개 주실 수 있으십니까?”

고약운의 물음에, 동방소택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백신당의 주인은 이제 너이니, 이곳은 너의 구역이다. 방을 마련해주마. 네가 청영진에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소식은 다 들었다. 다시 네가 그 파렴치한 고가에 가게 둘 순 없어. 여로를 이곳에 두고 널 돕겠다.”

“감사합니다. 북야, 가자.”

천북야는 몸을 돌리기 전에 동방소택을 한 번 더 응시하곤 고약운을 따라나갔다.

그들이 사라진 순간, 동방소택의 낯빛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여로. 저 남자의 정체를 알아봐.”

“소주?”

여로는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그 남자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까? 저는 영력의 파동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동방소택이 차갑게 웃었다.

“실력이 매우 강해. 아버지라 할지도 저자의 상대가 못될 것 같구나.”

“네?”

그 말에 여로가 눈을 부릅떴다. 가주도 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니? 가주는 무왕의 등급이었다. 가주도 저 남자를 이길 수 없다면. 도대체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저 남자가 약운이 곁에 왜 나타난 건지 알아야겠어. 누구든 내 혈육을 해치는 자는 용서할 수 없다. 저 남자든, 고가든.”

동방소택은 고약운이 고일봉에게 맞아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는 너무 늦게 소식을 접했고, 하마터면 누님의 여식을 잃을뻔했다.

“난 약운이가 성장하도록 곁에서 돕고 싶은 게 아니라, 그 아이의 진정한 실력을 보고 싶은 거야.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일 해치는 자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순 없어.”

특히 오늘 궁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고 씨 가문.

어쩌면 그들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다.

이윽고 동방소택이 여로를 보며 말했다.

“여로. 네가 나를 좀 도와주거라. 나는 동방세가에 다녀올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