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0화. 세상의 적

940화. 세상의 적

페이한이 죽였던 가고일 같은 생김새의 악에 물든 자의 몸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의 몸에서 붉은 회오리가 붕 떠올라 델타의 손에 쥐어지고, 굳어져 있던 그 회오리가 다시 회전하며 한 덩어리의 붉은 안개로 변해 델타의 체내로 흘러들었다.

“적에게 겁을 먹은 녀석들 따위에게 신이 부여한 힘은 과하지. 너희들의 사명은 여기에서 끝날 것이다.”

델타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기복도 없었다. 마치 손에 들고 있던 쓰레기를 내던져 버린 듯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뒤이어 그가 페이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얼마나 웃긴 일인지⋯⋯. 이 세상을 만든 사람을 대적해야 할 목표로 삼은 이들이 겉모습에 속아 일개 격투사 하나에 겁을 먹다니. 저들이 일찍이 너와 같은 존재 중 하나였기 때문인가, 아니면 허구의 피조물이 가지고 있는 근시안적인 사고로 인한 결과인가? 마치 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