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능력
“네가 동물을 구했다면 왜 마녀가 사악하다고 생각했지? 그건 나쁜 일이 아니지 않나?”
“선생님이 마녀는 보통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낸다고 했어요. 보기에는 나빠 보이지 않아도, 그것은 악마가 더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 파 놓은 함정이라고…”
소녀는 또 다시 비에 젖은 강아지마냥 처량한 표정으로 두 눈을 꿈뻑거렸다. 정말 표정이 다양한 여자였다.
“저, 저는 정말 마귀를 본 적이 없어요. 맹세해요.”
“물론 본 적이 없겠지. 그건 교회의 거짓말이니까. 너희 선생님도 속은 거야.”
“교회가 속였다고요?”
로렌의 한마디에 나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크게 벌렸다.
“왜죠?”
하지만 로렌은 고개를 저을 뿐,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말하더라도 그녀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역병과 자연재해 등 자신들의 지혜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마주하게 되면, 그것을 모두 ‘악마’의 짓으로 치부했다. 인간은 이해를 원한다. 그것이 진실이 아닐지라도, 인간은 그것을 설명하길 원한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은 그 자체로 공포였다.
물론, 다른 설명을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안나의 불꽃은 악의 사도를 벌하기 위한 신의 불꽃으로, 나나의 힘은 신의 은총으로 말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마녀들이 자신의 그것이 신의 은총이 아니라고 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교회의 위신이 무엇이 되겠는가? 혹여 이교도 중에 마녀가 있다면, 그것을 뭐라고 설명하겠는가?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모든 마녀를 악마의 수하로 몰아, 죽여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로렌과 나나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호위병이 닭을 가지고 왔다.
로렌은 허리춤에서 즉시 은색 단검을 꺼내, 호위병에게 건넨 뒤 그것으로 닭의 몸을 찌르게 했다.
나나는 거짓말처럼 즉시 닭을 치료해냈다.
그러자 로렌은 또 다시 닭에게 상처를 입혔다.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이후에도 로렌은 온갖 방식으로 닭을 상처 입혔고, 닭은 반나절 동안 온갖 곤욕을 치른 뒤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닭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덕분에 로렌은 나나의 능력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자상, 골절, 타박상이었다. 절단은 애매했다. 예를 들어, 잘린 다리를 자라게 해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잘린 다리를 즉시 상처 부위에 가져다 붙이고 치료를 하면, 다시 붙게 하는 것은 가능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숨이 다한 것을 살려낼 수는 없다는 점 이었다.
또 하나, 치료 과정에서 로렌은 그녀가 말한 ‘끈적이는 물’을 볼 수 없었다. 그의 눈에는 나나가 그저 닭의 상처 부위에 손을 올리면, 그 후에 닭이 회복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나나의 능력은 안나의 그것보다 훨씬 체력이 덜 드는 것처럼 보였다. 반나절에 걸친 실험에도 나나는 안나처럼 지쳐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로렌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실험이 모두 끝나고 닭이 목숨을 거두자, 나나는 매서운 눈빛으로 4왕자를 노려봤다. 정말이지 상대가 왕자라는 것을 까맣게 잊은 듯한 눈빛이었다.
그녀는 연신 왜 이렇게까지 닭을 못살게 구는 것이냐고 화를 냈고, 로렌이 상처를 입힐 때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리릴 것 같은 표정으로 닭을 치료했다. 결국 불쌍한 닭이 끝내 싸늘한 시체가 되자,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눈물을 떨궜다.
결국 로렌은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티타임」을 통해 그녀를 위로하기로 했다. 그녀가 비협조적이 된다면, 곤란해지는 것은 자신이다.
로렌은 그 나이대의 소녀들이 맛있는 디저트의 유혹을 이겨내기는 힘들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나나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디저트를 앞에 두자, 조금 표정이 밝아졌다.
다만, 여전히 죽은 닭이 불쌍하게 여겨졌는지, 맛있게 케이크를 먹다가도 갑자기 우울한 표정을 짓고는 했다.
디저트를 다 먹은 후 로렌은 나나를 돌려보냈다.
“왜 그녀를 남겨두지 않았어요? 나나도 저와 같은 마녀잖아요!”
안나는 나나를 돌려보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따지듯이 로렌을 다그쳤다.
“나나에게는 가족이 있어. 하지만 그녀의 가족은 아직 그녀가 마녀인 것을 몰라. 그러니 가족과 있게 해주어야지.”
“시간문제일 뿐이에요.”
“맞아, 시간문제지. 하지만 가끔은, 결말을 뻔히 알면서도 하루라도 늦추고 싶은 일이라는게 있으니까.”
로렌의 설명에 안나는 조용히 눈을 내리 깔았다.
“괜찮아. 나나는 앞으로 자주 올 거야. 가족들이 그녀가 마녀라는 것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집과 이곳을 오가긴 하겠지만…그래도 이틀에 한번은 올거야.”
이 말을 들은 안나가 눈을 깜박거리며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나나랑 같이 칼 선생님의 학원으로 돌아가,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하고 싶지?”
그것은 안나에게 너무나 아픈 질문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그리 오래가진 않을 거고, 너희들은 결국 보통 사람들처럼 생활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시간이 더 많이 지나면, 너희를 붙잡아서 죽이려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올 거야. 약속할게.”
* * *
칼 버트가 공사를 맡은 후부터, 4왕자 로렌의 일상은 눈에 띄게 한가해졌고, 덕분에 그는 매일 오후 성루의 화원에서 안나와 나나를 데리고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안나는 그간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더 이상 옷을 태워먹지 않을 정도로 불을 잘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손가락에서 불꽃을 피워도, 더 이상 그것이 옷에 튀는 일은 없었다.
로렌은 훈련 시간에는 나나에게도 메이드 복을 입혔다. 그녀는 로렌이 자꾸만 불쌍한 동물들을 다치게 하는 통에 연습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지만, 티타임과 안나 때문에 매번 연습에 나오기는 했다. 로렌은 그 날 이후 나나의 기분을 고려해, 동물을 죽이기까지 연습은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였다.
로렌은 가끔씩 북쪽 언덕의 산기슭에 있는 공사 진척 상황을 파악했다. 2주 사이에 이미 성벽은 100미터나 만들어져 있었다. 거리를 측정할 경위기가 없었지만, 칼은 장인들에게 매일 동일한 시간에 막대기를 들고 서있게 했고, 이 때 태양에 의해 생긴 그림자의 길이를 통해 거리와 평행도를 측정했다.
이처럼 대규모 공사는 자연히 마을 귀족의 주의를 끌었지만, 그들은 파라부에게 상황을 물어볼 뿐,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마치 이 일이 그들과 무관하다는 듯이.
물론 로렌 역시 이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 사람들의 가업은 모두 포트 요새에 있으니 당연히 이 곳에 남아, 변방 마을을 무리하게 지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귀족뿐만 아니라 상인도 마찬가지였다. 해마다 변방 마을에서 동물 모피를 사들이던 행상인들은 이번에는 살만한 물건이 없다며 서둘러 요새로 돌아갔다. 그리고 빈손으로 돌아온 불만은 결국 위정자인 로렌에게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크렘왕국 4왕자 로렌 윔블던은 악마의 달이 오기 전에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는 정말 어리석고, 또 무식한 놈이라는 소문이 루비콘 강를 따라 퍼져 나갔다.
그가 이 작은 마을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사람들의 논란과 조롱속에 정석은 ‘로렌’으로서 첫 번째 겨울을 맞이했다.
* * *
벽난로 안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이 밖에서 스며드는 한기를 날려버렸다. 벽난로 천장에는 거대한 사슴뿔이 매달려 있었고, 불빛을 받은 사슴뿔은 벽면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맞은편에는 어두운 붉은 색의 긴 나무탁자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양피지와 서적이 잔뜩 쌓여 있었다. 대개는 사인을 기다리는 행정령이었다.
로렌은 평소 여기에서 공무를 처리했다. 성루 3층 방을 공무실로 개조한 뒤, 하루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내고 있었다.
등 뒤 창문 너머로 마을이 내다보였고, 그 뒤로 겹겹이 자리 잡은 산들이 보였다. 번트산맥은 크렘 왕국과 황량한 땅을 동서로 양분하는 경계선이었고, 북쪽 언덕 산은 번트산맥의 지류 중 하나였다.
산기슭에는 울타리로 둘러싸인 화원이 보였다. 안나에게 훈련용으로 지어줬던 막사는 이미 부셔버렸고, 벽돌 연못은 이미 긴 탁자로 변해 티타임을 위한 장소로 변해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로렌은 그곳으로 내려가 햇빛을 쬐거나, 특별 주문 제작한 흔들의자에 누워 낮잠을 자기도 했다.
비록 성루가 크지 않았지만, 어쨌든 독립적인 화원을 가진 중형 별장으로 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마마, 최근 장인과 잡공을 모집하는데, 너무 많은 돈을 썼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내년 봄까지도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파라부가 한 묶음의 양피지를 손에 쥐고, 로렌에게 최근 재무 상황을 보고했다.
본래 변방 마을의 수입과 지출은 매우 간단했다. 하나는 광석. 이 쪽은 이미 포트 요새가 독점하고 있었다. 북쪽 언덕 광산에서 나오는 광물을 포트요새에서 밀 또는 빵과 바꾼다. 이를 위해 포트 요새의 대귀족들은 변방 마을에 비교적 세가 약한 귀족들을 보내 자신들의 소중한 재산을 관리하도록 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자신들의 소중한 광물을 빼돌려서는 안 되니까.
반면 대귀족들의 영지는 대개 요새 동쪽에 치우쳐 있었고, 변방으로 오는 귀족들은 잠시 머물다 갈 뿐, 매년 오는 사람도 항상 바뀌었다.
사실, 변방 마을의 역사는 3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약 200년의 역사를 가진 포트 요새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갓 태어난 신생아 수준이었다.
본디 라이언 공작은 이 작은 마을에 전방 초소만 세워 괴수의 침입을 경계하려 했지만, 개간자들이 북쪽 언덕 산맥에서 광산을 발견한 덕에, 그곳에 마을을 세우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북쪽 언덕 광산이 이 작은 마을을 세운 이유라고 볼 수도 있었다.
공작은 혹여라도 누군가가 광석을 빼돌릴까봐, 귀족들이 직접 광산을 채굴하지 못 하도록 조치한 뒤, 현지의 주민과 유랑민을 고용해 광물을 채굴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범죄자를 끌어다 쓰기도 했고, 생산되는 광석은 귀족들의 투자금에 따라 차등적으로 배분했다. 요새에서 고용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식량과 소액의 인건비 정도였다. 게다가 이 비용은 모두 고정비용이라, 생산량이 늘어난다고 해서 돈을 더 주거나 식량을 더 주는 일은 없었다.
다른 쪽은 바로 마을의 기타 산업으로, 예를 들면 대장간, 술집, 방직 등 이었다. 변방 마을의 약간의 세수는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하지만 양이 워낙 적다보니 남는 것이 거의 없었고, 덕분에 전임 영주도 이 척박한 땅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로렌이 크렘왕국에서 이 곳으로 파견된 후에도 포트 요새에서만 지내고, 변방 마을에는 얼굴조차 비추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결국 로렌이 사람을 고용해 성벽을 지으려면,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야 했다.
하지만 과거의 로렌이라면 모를까, 현재의 로렌, 그러니까, 정석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다. 변방 마을을 키울 수만 있다면, 전 재산을 다 투자해도 아깝지 않았다.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어 광석을 곡식과 바꾸지 않아도 된다면, 돈은 언제든지 회수할 수 있었다.
문제는 포트 요새가 독점을 포기하고 변방 마을과 정상적인 교역을 할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파라부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채굴 효율이 떨어지고 운송이 불편해서 사실 광산 지대에서 매년 생산되는 광석의 가치는 금화 천닙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는 요새의 전체 수입에서 보자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으니,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사실상 귀족들 뿐 이었다.
결론적으로, 귀족들을 회유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로렌은 이미 그들을 회수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