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독 같은 사내
잠시 후.
사릉고홍이 움직여 당염원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곤 자신의 볼을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문질렀다. 그 후 당염원의 목덜미 쪽으로 몸을 기울여 냄새를 맡는 듯 코를 댔다. 콧방울이 가볍게 그녀의 목에 닿았다. 친밀한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애매한 행동이었다.
이에 잠시 경직되어 있던 당염원의 몸이 이내 다시 풀어졌다.
그녀는 상대가 조금 화가 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지금 그에게는 자신을 죽일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일단 목숨을 부지했으니 더 이상 걱정할 일은 없었다.
당염원은 남녀 간의 감정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비록 그녀는 일반인들의 생애의 절반인 오십 년을 살았지만, 평생 도구로 사용되기만 했을 뿐이었다. 굳어진 몸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랫동안 늙은 괴물의 동굴 안에서 지내며 거의 밖으로 나간 적도 없었다.
늙은 괴물은 약의 노예였던 그녀에게 이런 방면의 책을 보여 준 적이 없었고, 관련 지식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당염원은 남녀가 성행위를 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저 듣기만 했을 뿐 제대로 아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것마저도 여인의 원음(元陰)을 무자비하게 빨아먹는다는 사공(邪功)으로 인해 알게 된 것이었다.
따라서 그녀는 사릉고홍이 이처럼 친밀하게 대하는 게 낯설었다. 어딘가 간지럽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지만, 몸을 다치게 하거나 목숨을 위협하는 게 아니어서 완전히 내버려 두었다.
“따뜻하군. 너무 좋아…….”
사릉고홍의 목소리가 당염원의 목덜미 쪽에서 들려왔다. 촉촉하고 따뜻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상한 기분이었다. 당염원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사릉고홍이 당염원의 쇄골 즈음에서 고개를 들어 그녀의 입에 넣었던 손가락을 빼 입술 위에 가볍게 얹었다.
“아프오?”
당염원은 잠시 혼란스러워 말을 잇지 못했다. 손가락을 무는 게 아프냐는 건가……?
“괜찮아요.”
사릉고홍이 눈동자를 한 번 굴리더니 소리 없이 환하게 웃었다. 얼굴엔 기쁜 기색이 만연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수려하여 당염원마저도 그의 외모에 집중하게 되었다. 당염원이 그렇게 멍하니 있자 별안간 그의 두 팔이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사릉고홍은 마치 당염원의 손과 발을 포박이라도 하듯 세게 껴안았다. 그녀의 몸이 옴짝달싹하지도 못한 채 사릉고홍과 밀착됐다.
“윽…….”
당염원의 머리에 씌워진 봉관이 그녀의 머리를 짓눌러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자 사릉고홍이 멈칫하고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낮게 물었다.
“불편하오?”
당염원이 보기에 이 사람은 절대 자신을 죽이지 않을 것 같았다. 낯선 사내와 함께 있는 것보다 봉관에 머리가 아픈 것이 더욱 싫었던 그녀는 사릉고홍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저와 함께 있으시려는 거라면 봉관을 좀 벗겨 주시겠어요? 이게 머리를 짓눌러서…….”
뜻밖에도 사릉고홍의 눈썹과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는 이내 말없이 당염원의 봉관을 벗겨 주었다. 동시에 거추장스럽던 혼례복마저 벗기자 붉은색의 속옷만이 남았다. 두 손은 여전히 그녀의 가는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이러면 좀 낫소?”
부드럽고 섬세한 그의 손길에 혼이 쏙 빠진 당염원이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리며 답했다.
“으음, 네…….”
그렇게 사릉고홍은 당염원을 껴안은 채로 침상 위에 누웠다. 둘 사이에는 어떠한 틈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당염원의 쇄골 언저리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에, 당염원은 도무지 그의 표정을 알 수가 없었다. 오로지 가는 숨소리만 느껴질 뿐이었다.
잠깐 정적이 이어지고, 마침내 그녀가 입을 뗐다.
“저와 하룻밤을 보내지 않으시나요?”
사릉고홍이 아무런 움직임 없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잘 거요.”
당염원의 눈이 빠르게 깜빡였다.
“……네.”
사릉고홍은 당염원이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방금 그가 한 말의 뜻도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판단에 당염원은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았다.
“절 죽일 건가요?”
사릉고홍이 더욱 세게 그녀를 끌어안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리가 어린 것처럼 차갑고 투명한 눈동자가 당염원을 응시했다. 눈동자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자, 당염원은 그가 자신의 얼굴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잘 대해 줄 수 있소.”
당염원의 눈동자가 또르륵 굴러갔다. 뭔가를 말하려다 만 듯한 느낌이었다.
“그럼 전 어떻게 할까요?”
당염원의 물음에 사릉고홍이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그저 내 곁에 있으시오.”
“네, 그럴게요.”
당염원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속내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온전한 신체와 자유로운 삶은 그녀가 지금껏 그토록 갈망하던 것이었다. 어렵게 손에 쥔 만큼 쉽게 잃을 순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사릉고홍에게 진심으로 약조할 수 없었다.
하나, 우선 목숨을 부지해야 자유를 누릴 수도 있기에 일단은 사릉고홍의 제안에 응했다.
그는 당염원을 자신의 머리 아래 품속에 꼭 끌어안고 가볍게 등을 토닥이며 그녀를 달랬다. 목소리에는 기쁨이 묻어나 있었다.
“잘해드리겠소. 원하는 게 무엇이든 모두 주겠다고 약속하지.”
당염원은 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그가 자신을 죽이진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찌 됐건 살아남았으니 그녀는 마음이 가벼웠다.
사내의 품 안에서 잠드는 것 역시 그녀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체 더미 속에서도 자 보았던 그녀인데, 따뜻한 사내의 품속이 나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그에게서 풍기는 청량하고 시원한 향기로 인해 머릿속이 상쾌해지는 듯했다. 당가네 침소보다도 편안한 이곳을 마다하고 싶지는 않았다.
굳이 문제를 하나 꼽자면, 이 사람의 몸 전체에서 강력하게 뿜어 나오는 독의 기운이었다. 이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당염원은 눈을 감고 있는 척하며 녹녹을 잘 달랠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눈을 뜬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좌절과 갈망이 묻어나 있었다.
간절히 먹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토록 강한 독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녹녹조차도 그의 독을 흡수했다간 발각될 수도 있다고 했으니, 당염원은 더욱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자신을 죽이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그 말을 완전히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원체 허약한 탓에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에도 눈이 감겼다. 당염원은 곧 잠에 들었다.
그렇게 당염원이 잠에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를 품에 안고 있던 사릉고홍이 눈을 떴다. 그러나 방금 잠에서 깬 듯한 기색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릉고홍은 고개를 숙이고 새근새근 잠든 당염원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자신의 이마를 그녀의 이마에 갖다 대고 나직이 말했다.
“진심이오. 잘해드리겠소.”
그는 아무 말 없이 이불을 끌어다 덮고 당염원을 완전히 품 안에 안았다. 당염원이 자신에게 눌려 답답해하지 않도록 한 후, 만족스러움에 그제야 눈을 감았다. 그의 다소 창백한 입술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 * *
“뭐라?! 장주님께서 신방에서 주무셨다고?!”
설연산장의 사방각주(四方閣主) 중 남쪽의 각주인 조철이 소리쳤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벌떡 일어난 조철의 얼굴엔 기쁜 기색도 섞여 있었다. 그는 다급히 주묘랑에게 물었다.
“제대로 본 거 맞소? 함께 주무셨다고? 장주님이라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방에서 나오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일 텐데?”
“오늘 아침 설진(雪津)이 주모님께 필요한 모든 용품을 준비해 매림(梅林)의 경홍각(驚鴻閣)에 보내고, 주모님께서 드실 식사를 준비하라는 장주님의 명령을 전해 왔습니다. 주모님과 관련된 여러 정보들과 함께요.”
그녀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목을 가다듬은 후 옅은 탄식을 내뱉었다.
“모든 옷가지와 장신구까지 주모님의 취향에 맞춰 만들라는 명에 지금 급히 제작 중이에요.”
설진은 설연산장에서 사릉고홍의 명을 직접 받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가 명을 전했다는 말에 조철은 모든 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의자에 앉아 부채를 펄럭이던 송군경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당염원 그자가 대체 어떻기에 그러지?”
아무도 이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사릉고홍을 위해 백방으로 신부를 찾아다녔던 그들은 별안간 그의 마음에 자리한 누군가가 정말 나타났다는 사실에 모두 의아했다.
조철이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호탕하게 웃었다.
“미모 덕분이지, 하하하! 그보다 아름다운 사람을 어디 본 적 있소?”
서수죽은 담담하게 차를 마셨다. 그에 반해 주묘랑은 조철에게 일갈했다.
“장주님께서 그렇게 여색을 탐하시는 분 같습니까?!”
확실히 조철의 주장은 터무니없었다. 그가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며 말했다.
“쳇! 그럼 대체 뭐 때문이란 말이오? 난 도무지 모르겠는데!”
정보에 의하면 경국지색의 외모 외에 당염원에게 별다른 장점은 없었다. 날 때부터 허약하여 무술을 배우지도 못했거니와, 당가 특유의 약과 독을 다루는 재능도 그녀에겐 없었다. 악기 다루기나 서예는 곧잘 했으나 유약하기 그지없는 전형적인 규방 처녀였다.
서수죽이 차분하게 말했다.
“듣자 하니 혼인을 거부하다가 강물에 뛰어들기까지 했다던데, 지켜본 바로는 내가 들은 성정과 너무 다르오.”
서수죽의 관찰력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네 사람이 그의 말을 듣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때 주묘랑이 몸을 일으켰다.
“어찌 됐든 일단 장주님의 눈에 드셨으니 그게 당염원이든 거지든 모두 우리가 모셔야 할 주모님입니다. 설연산장은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흐려 놓을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니.”
그녀가 자신의 옷매무새를 정리하더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 이만 주모님께서 일어나셨는지 확인하러 가 봐야겠어요. 제가 총사무관이니만큼 필요하신 것은 없는지 여쭤보도록 하지요.”
호기심이 더욱 증폭된 조철이 따라 몸을 일으켰다.
“이제 우리의 주모가 되셨는데 문안 인사라도 드려야 하지 않겠소!?”
주묘랑은 나머지 세 사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웃으며 지켜보다가 이내 그럴 줄 알았다는 투로 입을 뗐다.
“예를 갖춰야 합니다! 우리의 주모(主母)이니까.”
그녀는 ‘주모’ 두 글자에 특히 힘주어 말했다.
나머지 네 사람의 눈에서 긍정의 대답이 느껴졌다.
그간 이들이 신부를 데려와도 사릉고홍은 본체만체했기 때문에 주모로 모셔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사릉고홍은 이번 신부를 마음에 들어 했기에, 그들이 신부를 대하는 태도도 바뀌어야 하는 것이 마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