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당가의 염원

1화. 당가의 염원

상쾌한 바람이 불어옴과 동시에 동쪽 저편의 구름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곧 해가 떠오른다는 신호였다.

시녀들은 일찍이 일어나 안뜰로 나왔다. 상림당가(常林唐家)의 안뜰에는 이미 여러 시녀들이 끓여 온 물을 들고서 몸단장을 하는 자신의 주인을 방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안뜰에 있는 화초에 물도 주고, 널따란 대청마루를 쓸고 닦았다. 모든 것이 질서정연한 이 집안은 규율이 매우 엄격했다.

서쪽에 자리한 대들보들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거울 앞에 앉은 둘째 부인 유(劉) 씨는 자신의 시녀에게 머리 손질을 맡겼다. 가지런한 눈썹 밑에는 크고 맑은 눈망울이 반짝였고, 곱게 칠한 입술은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기분이 자못 좋아 보였다.

이 집안의 둘째 부인인 유 씨는 삼십 대의 나이에 걸맞지 않은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평상시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모두 즐기며 생활하는 유 씨는 이십 대라고 해도 믿을 만한 동안의 소유자였다. 심지어 여전히 뭇 사내들을 설레게 만들 정도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변함없이 부군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부인! 부인!”

유 씨의 시녀 춘설(春雪)이 놀란 기색으로 부리나케 달려오자, 기분 좋게 귀걸이를 차고 있던 유 씨가 가볍게 질책했다.

“대체 무슨 호들갑이냐!”

춘설이 죄송하다며 인사하는 것을 받아 준 유 씨가 침착한 태도로 물었다.

“말해 보거라. 무슨 일이냐?”

춘설이 유 씨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속삭였다.

“부인, 조금 전 북쪽 안채에 가 들은 것인데, 둘째 아가씨께서 셋째 아가씨를 대신해 자신이 설연산장(雪鳶山莊)에 시집가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러고 싶지 않다며 통곡하다가 강물에 몸을 내던졌다고 합니다!”

유 씨가 놀라 물었다.

“죽었느냐?”

그러자 춘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곧장 구해 내어 죽진 않았으나, 아직까지 의식이 없다고 합니다.”

유 씨가 다소 어두워진 얼굴로 화장대 위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그러곤 냉소와 함께 말을 뱉었다.

“정말 어리석구나. 만일 오늘 일이 사람들 귀에 들어가 우리 당가(唐家)에 관한 안 좋은 소문이 나기라도 한다면 설연산장과도 좋게 지내기 힘들 텐데.”

춘설이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둘째 아가씨께서 병약한 신체를 핑계 삼아 아직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시는 거지요. 부인께서 인자하시기에 망정이지, 설연산장 같은 뛰어난 가문에 시집가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할까요!”

춘설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유 씨는 머리를 손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일어나거라. 북쪽 안채에 한번 가 봐야겠다.”

그러자 춘설과 하매(夏梅)를 비롯해 여러 시녀들이 그 뒤를 따랐다.

북쪽 안채 쪽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맞은편에서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 달려왔다.

대략 열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이 여인은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내렸다. 붉은 머리끈이 새까만 머리카락과 함께 엮여 있었고, 유 씨와 닮은 아름다운 눈망울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활짝 핀 모란을 떠올리게 하는 미모였다.

유 씨가 인자한 미소를 띠며 물었다.

“급해 보이는구나. 무슨 일이라도 있니?”

유 씨의 앞에 선 당교지(唐巧芝)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운혜(雲慧)에게 들었어요. 당염원(唐念願)이 강물에 뛰어들었다고요.”

유 씨가 부드럽게 당교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답했다.

“마침 그 일로 북쪽 안채에 가는 길이란다.”

당교지가 재차 물었다.

“당염원은 어떤가요? 걔가 죽기라도 하면 누가 절 대신해서 시집을 가요?!”

당교지는 불안하고 초조해져서 발을 동동 굴렀다. 두렵기도, 걱정되기도 했다.

“설연산장이라니…… 설연산장이라니요! 사람을 죽여도 눈 하나 깜짝 안 한다는 그 호랑이 소굴에 시집가기 싫어요! 어머니! 전 안 가요!”

유 씨가 당교지를 안심시킨 후, 차가운 미소를 보였다.

“걱정 말거라. 널 억울하게 만들 일은 없을 테니.”

이런저런 말들이 오가는 사이, 그들은 이미 북쪽 안채에 당도했다.

같은 시각, 북쪽 안채.

침상 위에 누워 있는 여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잠시 후 두 눈을 뜨자, 녹색섬광과도 같은 잔상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윽…….”

여인은 낮은 신음과 함께 의식을 회복했다. 온몸에 피로가 몰려들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수놓인 비단과 유리구슬로 만들어진 머리맡의 침상발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여긴…….

여인은 눈을 더 크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하자 안도의 기쁨이 솟구쳐 올라왔다.

죽지 않았다……! 하늘이 날 버리지 않았어! 여인은 쾌재를 불렀다.

이때, 별안간 방 문이 열리더니 한 여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째는 어떤가? 깨어났느냐?”

침상 위에 누워 있던 여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여인은 눈알을 한 번 굴린 뒤 다시 눈을 감았다.

당염원의 몸종 수람(殊藍)이 공손하게 유 씨의 뒤를 따르며 답했다.

“아직 깨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엄(嚴) 의원님은 둘째 아가씨께서 원체 병약하신 데다 음력 섣달까지 겹치면서 한기가 몸에 들었으니, 집에서 요양하며 쉬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 씨가 수람의 뺨을 내리쳤다.

“내가 네 말뜻을 모를 거라 생각하느냐? 감히 천한 너 따위가 당가의 혼사에 관여해?”

수람은 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훔칠 새도 없이 유 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곧장 당교지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온 유 씨의 눈에 침상 위에 핏기 없이 누워 있는 당염원이 들어왔다. 당교지가 당염원의 앞에 앉아 맥을 짚고는, 경멸감과 원망이 섞인 어조로 유 씨에게 말했다.

“할 줄 아는 것 하나 없고,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어머니, 당장 내일이 시집가는 날인데 반쯤 죽은 몸으로 갔다가 도중에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어떡하죠? 그래서 설연산장이 노여워하면요? 시집은 또 누가 간답니까?”

유 씨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누워 있는 당염원을 차갑게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교지 네 말도 일리가 있다. 내일 날이 밝으면 속혼단(續魂丹)을 먹이도록 해라. 시집만 가게 하면 당가에는 아무 책임이 없을 터.”

“속혼단이요?!”

당교지가 멈칫하는가 싶더니 이내 웃어 보였다. 그녀는 기쁨이 가득 찬 얼굴로 말을 이었다.

“역시 어머니는 다르군요!”

해결책이 정해지자 당교지는 마음이 놓였다. 다시 고개를 돌려 침상 위의 당염원을 바라보는 당교지의 눈에는 질투의 빛이 어려 있었다. 당교지는 별안간 당염원의 두 뺨을 후려쳤다.

“교지야, 됐다. 내일이면 설연산장에서 죽음을 맞이할 아인데, 구태여 그럴 필요가 있겠니?”

유 씨가 미소 지었다.

“네! 어머니!”

당교지가 활기차게 대답했다. 그렇게 둘은 함께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당염원은 다시 눈을 떴다. 차가운 서리가 내린 듯 눈동자가 희뿌옜다. 뜨겁게 달아오른 양 볼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입속에서 배어 나오는 끈적한 액체가 조금 전 당교지가 얼마나 세게 뺨을 때렸는지를 알려 주었다.

이때 눈을 뜬 당염원은 더 이상 원래의 당염원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늙은 괴물의 밑에서 자라 오면서 차를 내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후에는 각종 약과 독을 다루기도 했었다. 온갖 고초를 겪고, 자유라곤 없었던 사람이었다.

늙은 괴물은 전설 속의 수진자(修眞者)이기도 했고 매우 드문 단수(丹修)이기도 했으나, 사람을 구하는 영약보다 몸에 해로운 독을 더 좋아했다. 그렇기에 그는 그녀를 유일한 약인(藥人) 제자로 받아 주었다. 그러나 실제로 가르쳐 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각종 약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몸은 망가지고 쇠약해졌다. 온몸에 독이 퍼져 악취를 풍겼고, 얼굴마저 흉측하게 썩어 갔다. 그녀는 딱 한 번 거울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모든 거울을 깨뜨려 없애 버린 그녀는 단 한 순간도 얼굴의 가면을 벗지 않았다.

그렇게 오십여 년 동안 인내의 삶을 살던 그녀는 마침내 늙은 괴물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기회를 틈타 그를 없애 버리고자 했다. 하지만 늙은 괴물이 소중히 간직하던 벽옥을 훔치려던 그녀는 그만 발각되고 말았다. 바로 그때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벽옥을 삼켜 버렸다. 설령 자신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어떻게든 늙은 괴물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해.

자신이 어떻게 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살아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비록 눈앞의 모든 것이 지금껏 살던 세상과는 딴판이었고 자신 역시 원래의 그녀가 아니었지만, 오히려 만족스러운 결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원래 살던 세상은 그녀를 포기해 버렸다. 그녀 또한 자신의 몸을 혐오했다. 그러나 지금 새로 얻게 된 몸은 허약하긴 하지만 적어도 정상이었다.

그녀는 그다지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늙은 괴물과 함께 지내면서 너그러워지는 것이 더 이상했다. 이전 삶에서의 경험들 때문인지 그녀는 새로 얻은 자신의 정상적인 몸이 너무 좋았다. 특히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조금 전 갑작스레 뺨을 얻어맞고 나니,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보통 사람들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고집과 비애를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 각종 약과 독으로 얼룩져진 그녀의 몸은 형태를 잃고 악취를 풍겼다. 모든 사람이 그녀를 기피하고 싫어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얼굴도 그녀에겐 없었다. 그랬던 그녀에게 새로운 몸과 얼굴과 함께 자유가 주어졌다. 그러니 이 모습을 싫어할 이유가 없었고,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수람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약수를 받쳐 들고 들어왔다. 침상 위에 누워 있는 당염원의 몸을 닦아 덥히기 위한 것이었다. 침상 가까이 다가간 수람은 눈을 뜨고 있는 그녀를 보고 놀라 하마터면 약수를 놓칠 뻔했다.

“아가씨! 일어나셨습니까?!”

당염원은 남색 치마에 스물한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여인을 쳐다보았다. 언뜻 보니 오른쪽 볼에 뺨을 맞은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한 후 답했다.

“응.”

* * *

한편, 당가의 둘째 아가씨가 강물에 뛰어들어 자결하려 했다는 소식은 유 씨에 의해 문밖을 나가지 못했다. 때문에 당가네 사람들 외에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집에 돌아와 이 소식을 접한 당가의 가주 당묘온(唐淼蘊)은 생각 끝에 입을 뗐다.

“그러한 일이 있었는데 혼사에 영향은 없겠소?”

유 씨는 딱히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당묘온의 어깨를 두드리며 여유롭게 말했다.

“원체 약한 데다 이번 일로 몸에 한기가 들어 아마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하더군요. 하여 내일 시집갈 때 속혼단을 먹여 설연산장까지만 온전히 갈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차를 마시려던 당묘온이 잠시 멈추고 뭔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다시 차를 마시면서 입을 열었다.

“부인 생각대로 하시오. 어차피 생명 연장 중이었던 것과도 다름없었으니, 이번 시집으로 그동안 길러 준 당가의 은혜에 보답하고 자신의 여동생에게도 베푸는 셈 치라고 하지.”

“걱정 마세요. 소첩이 모두 잘 해결하겠습니다.”

유 씨가 만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