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화. 단 한 사람을 위해 천하를 등지다 (5)
첫 번째 천겁이 떨어진 후 천지는 소멸했다. 대지는 소리 하나 없이 고요해졌다.
백몽과 흑몽 역시 사릉고홍의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놀란 건 상대가 무수히 많은 생령들을 일거에 죽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도대체 왜 사릉고홍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 때문에 그들의 본체 역시 손상을 입었다.
하지만 사릉고홍의 수가 너무 많았기에 어떤 것이 그의 진짜 본체인지 분간해 낼 수 없었다.
진상은 이랬다. 밖에서 도겁을 겪고 있는 ‘사릉고홍’들 중 어느 하나도 그의 본체가 아니었다. 그의 본체는 이미 천마궁으로 돌아와 있었다.
지존의 옥좌에 앉은 그의 모습은 마치 천지의 생사를 관장하는 신처럼 보였다. 무정한 눈동자는 만물의 생사에 무관심했다. 곧 그의 얇은 입술이 가볍게 열리며 흘러나온 목소리가 백몽과 흑몽, 그리고 천지에까지 널리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