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시집가다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었고, 유 씨마저도 이 갑작스러운 미소에 넋을 잃고 말았다. 유 씨는 속으로 온갖 욕을 해 댔지만,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손을 내저으며 답했다.
“그러고 싶으면 그러려무나. 그래도 입술은 조금 칠해야 혈색도 있어 보이고 좋지 않겠니?”
유 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춘설이 손가락으로 당염원의 입술에 조심스레 주홍색 연지를 발랐다. 그러자 얼굴이 한층 더 밝아지면서 그 누구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두웠던 당염원의 얼굴이 일순간 놀라움과 기쁨으로 환하게 변했다.
연지에 들어 있던 독기가 그녀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체내에 흡수되면서 힘없던 몸에 원력이 생기는 듯했다.
매우 소량의 독이었지만, 이 같은 변화를 알아채기에 충분했다.
원래의 당염원이었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기 때문에 생겨난 변화였다. 그녀는 독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약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즉, 독으로 이 병약한 신체를 씻은 듯이 낫게 해 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당염원은 머리 손질을 끝내고 화려한 봉관(*鳳冠: 여자가 혼례 때 사용하던 봉황 모양의 장식을 단 예모)을 썼다. 거울 속에는 혼례를 기다리는 열여섯의 꽃다운 나이의 아리따운 여인이 있었다.
유 씨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소맷자락 안에서 작은 호리병 하나를 꺼내 그 안에 든 단약 한 알을 당염원의 입가로 가져갔다.
“원아, 이걸 먹어 보렴. 아버지께서 널 위해 특별히 만드신 단약이야. 몸에도 좋아서 가는 길이 더 편할 거다.”
당염원은 이제 유 씨의 말을 믿지 않았다. 단약을 유심히 바라보자 짙은 검은색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손으로 약을 받으려 하며 말했다.
“네.”
그러나 유 씨가 손을 뒤로 빼며 당염원이 가져가려 하는 것을 피했다. 그러고는 당염원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유 씨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다소 강제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네가 먹는 모습을 봐야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구나. 얼른 먹으렴.”
‘먹어. 어서 먹으란 말이야!’
당염원은 순간 어떠한 간절함을 느꼈다. 악의보다는 가족 간의 정 비슷한 것이었다. 당염원은 생각 끝에 결국 유 씨 손에 들려 있던 단약을 받아먹고는, 눈을 들어 잠시 유 씨를 바라보았다.
당염원이 찰나 동안 망설인 것을 알아챈 유 씨가 미간을 찌푸리며 무어라 말을 하려는 때였다. 바깥에서 우렁찬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연산장에서 신부를 마중하러 오셨습니다! 준비 다 되셨나요?”
“어서 얼굴을 덮고 나가거라!”
* * *
당가네 안뜰.
소리를 들은 당묘온이 직접 나가 보니 저 먼 곳에서 신부를 마중하러 온 무리가 보였다. 마치 붉은색 비단길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했다.
붉은 옷을 입고 붉은 비단을 든 채 두 줄로 늘어선 사내들로 인해 기다란 붉은색 비단길이 그려진 것이다. 가장 앞줄에 선 두 사람이 당가네 안뜰에 도착해 반쯤 무릎을 꿇으며 붉은 비단을 땅에 내려놓았다. 뒤쪽에서 사내들이 들고 있는 부분은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다.
붉은 비단 위로 네 사람이 이고 있는 붉은 가마가 내려졌다. 전체가 붉은색과 금색으로 꾸며진 가마는 보옥이 주렴으로 달려있어 햇빛을 받으니 더없이 반짝였다. 식견이 넓은 당묘온은 가마가 박달나무가 아닌 값비싼 홍련금(紅蓮金)으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이 가마는 절대 일반인은 들 수 없는 무게임이 분명했다.
얼마나 무거운지는 고사하고, 당묘온은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홍련금은 구하기도 무척 어려운 귀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설연산장에서는 수많은 홍련금으로 꽃가마를 만들었으니, 크나큰 자원 낭비였다. 이전에 설연산장에 시집을 보냈던 열몇 곳의 집들이 설연산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 주지 않고 그저 직접 보면 알 거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바로 지금 당묘온은 그들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깨달았다.
“당 노독(老毒), 신부는 어디 있습니까?”
꽃가마가 쿵 하고 땅에 내려앉으니 당가네 안뜰 전체가 진동했다. 바위에 균열이 가진 않았나 걱정될 정도의 진동이었으나, 꽃가마는 평안하기 짝이 없었다. 주렴 한 줄도 흔들리지 않았다.
조금 전 당묘온에게 물었던 사내는 덩치가 산만 하고 용맹해 보였다. 그 역시 경사를 뜻하는 붉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가 한쪽에 차고 있는 칼은 그의 위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더군다나 이를 드러내며 헤벌쭉 웃는 그의 모습은 마치 도깨비를 연상케 했다.
당묘온은 그가 자신을 부른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불만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아직 준비 중이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유 씨가 당염원의 손을 잡고 안뜰로 왔다. 눈앞에 벌어진 상황과 분위기에 살짝 놀라긴 했으나 이내 웃으며 말했다.
“여기 신부가 왔으니 되었지요?”
꽃가마 왼편에는 얼굴이 희고 미모가 수려하며 몸매는 대나무처럼 길고 늘씬하여 고상한 서생의 느낌이 나는 사내가 서 있었다. 제멋대로일 것 같은 그의 눈빛이 담담히 당염원을 한 차례 훑고 지나갔다. 뒤이어 그가 잠에서 덜 깬 듯한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설연산장에서 맞으려는 아내는 당가의 셋째 딸 당교지입니다.”
유 씨와 당묘온은 잠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 씨는 순간의 부자연스러움을 애써 숨기고자 입을 가리고 웃으며 답했다.
“공자도 참, 제가 데리고 온 아이가 당가의 셋째 딸 아니겠습니까.”
서수죽(舒修竹)이 느긋하게 받아쳤다.
“당가의 셋째 딸 당교지는 키가 오 척(*약 150cm)인데, 이 여인은 그보다 작소. 혼례복으로 가리긴 했으나 자태가 당교지보다 부드럽고 유약해 보이는 데다가, 힘이 있어 무술을 익히는 데 소질이 있는 당교지에 반해 이 여인의 걸음걸이는 힘이 부족한 것이 무술을 익힐 수 있는 사람이 아니오.”
눈앞의 두 사람이 아연실색하는 것을 본 그는 말을 이었다.
“만약 내 예측이 맞는다면, 이 여인은 당가의 둘째 딸 당염원이오.”
유 씨와 당묘온은 상황이 이렇게 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이자는 뛰어난 관찰력으로 그들이 짜 놓은 판을 한순간에 뒤엎어 버렸다. 곤경에 처한 두 사람은 자신들이 소인배로 전락해 버린 기분을 느꼈다.
“이것들이! 감히 설연산장을 기만하려 들어!? 어서 가서 당교지를 데려오지 못할까!”
조금 전의 건장한 사내 조철(趙鐵)이 소리치자 온 귀가 울리는 듯했다. 당가네 사람들 모두가 또렷이 들었을 소리였다.
유 씨의 안색이 일순간에 창백해졌다. 당묘온이 어두운 표정으로 한참을 침묵하다 말했다.
“가서 교지를 데려오너라.”
“노야! 안 됩니다!”
유 씨가 당묘온을 붙잡으며 다급히 소리쳤다.
“놓으시오!”
당묘온이 유 씨의 손을 뿌리쳤다.
유 씨가 이를 부드득 갈며 잡고 있던 당염원의 손을 몰래 꼬집으며 압박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미 이 일의 결말은 정해지고 있었다.
개두(*蓋頭: 옛날, 혼례 때 신부의 얼굴을 가리던 붉은 천)로 얼굴을 덮은 당염원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꼬집은 것이 아파서가 아니라 유 씨가 자신의 피부를 막 대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오래 지나지 않아 춘설이 헐레벌떡 달려오며 소리쳤다.
“큰일입니다! 셋째 아가씨께서 사라지셨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당묘온이 차갑게 말했다.
춘설이 놀라 창백해진 안색으로 무릎을 꿇고 덜덜 떨며 답했다.
“셋째 아가씨께서 방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사라지신 지 오래되진 않은 것 같습니다만…….”
당묘온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반면 유 씨는 당교지에게 이런 선견지명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당묘온의 손을 잡고 낮게 속삭였다.
“노야, 교지는 아마 못 찾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무 교지를 탓하지만 마시고, 오히려…….”
당묘온이 유 씨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자식 교육을 대체 어떻게……!”
유 씨는 순간 화가 치밀었으나 그에게 화를 낼 순 없었기에 또다시 당염원의 가냘픈 손목을 꼬집으며 화풀이를 했다. 그러나 얼굴은 웃고 있었다.
“여러분, 우리 원이도 교지 못지않게 아주 좋은 상대랍니다. 이 아름다운 미모를 보고도 설연산장에서 마다하진 않겠지요?”
유 씨는 말을 하면서 당염원의 개두를 걷어 냈다.
개두 아래로 화장 하나 하지 않은 투명한 얼굴과 발간 입술이 드러났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것이 마치 유리구슬 같아서 똑바로 쳐다보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다. 감히 입에 가볍게 올릴 수 있는 미모가 아니었다.
꽃가마를 들었던 사내 네 명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탄을 가득 담은 눈빛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때 조철이 감탄했다.
“아름답군요! 무척 아름답습니다! 들려오던 소문이 거짓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었군요! 아깝기도 하지.”
조철은 말을 하면서도 대체 뭐가 아깝다는 건지 싶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의 말에는 조롱의 뜻은 조금도 없었다.
서수죽의 뒤편에는 긴 머리를 옥비녀로 틀어 올리고 이마 밑으로 까만 머리칼을 내려뜨린 사내가 서 있었다. 화려한 외모는 아니었으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아함이 깃들어 있었고, 냉소적인 분위기도 느껴졌다. 한 손으로 부채를 가볍게 흔들유 씨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거렸다.던 그가 잠시 하던 것을 멈추고 입꼬리를 씰룩이며 유 씨를 훑어보더니 비웃음과 함께 말했다.
“어미가 딸의 개두를 젖히는 건 처음 보았소. 만일 내가 술을 마셨더라면 기루의 여주인인 줄 알았겠소?”
유 씨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거렸다.
조철의 뒤에는 열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희고 둥근 얼굴에 입술은 빨갛고 이는 하얀 어여쁜 소년이었다. 다만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그때 소년이 무뚝뚝하게 내뱉었다.
“그래서 가는 겁니까, 안 가는 겁니까?”
이 물음에 주변이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조철은 옆에 있던 서수죽을 힐끔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괜찮을 것 같은데. 꽃가마도 이미 가져왔고, 장주님께 누구라도 데려가야 하지 않겠소?”
눈을 질끈 감았다 뜬 서수죽이 차갑게 되받아쳤다.
“우리가 장주님의 신부를 고른다는 게 무슨 뜻인진 아시오?”
조철은 무어라 말하려다 입을 다시 다물고는, 손을 내저으며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뒤에서 부채를 살랑이던 송군경(宋君卿)이 말을 내뱉었다.
“아이고, 당가네도 참 대단하네. 파혼이라니, 우리 산장이 눈에 차지 않았나 보군.”
당묘온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 그는 한 가문의 가주로서 체면을 잃을 수는 없었다.
서로 검을 빼 들고 활을 쏘려는 듯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이때, 담담하고도 낭랑한 한 여인의 목소리가 팽팽한 긴장감을 깨뜨렸다.
“제가 가겠습니다.”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혼례복을 입고 있는 당염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당염원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다시금 되풀이해 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제야 모두가 그 말뜻을 이해했다. 송군경이 가장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네가 가겠다고? 간도 크지. 설연산장이 네가 가겠다면 갈 수 있는 그런 쉬운 곳으로 보이느냐?”
당염원은 그를 한 번 바라보고는 앞쪽에 있는 서수죽에게로 눈을 돌렸다.
“지금 신부라고는 저 한 명이고, 저 역시 원합니다. 협박도 아니고요. 그럼 되는 것 아닙니까?”
시집을 가고 말고는 당염원에게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목숨을 유지하고 싶었다. 만약 이번 혼인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유 씨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되면 목숨 부지에 희망이라곤 없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 이 사람들과 함께 간다면 적어도 더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