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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의심

8화. 의심

제완은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이 소년은 정말이지…… 강호를 떠돌아다니며 도적질을 하는 대도(大盜)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부분이 없었다. 나쁜 사람이 얼굴에 ‘나 나쁜 놈’이라고 쓰고 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소년이 그녀의 정원에 불쑥 나타났으니, 이 소문이 밖으로 새어 나가기라도 한다면, 그녀의 명성은 적잖이 타격을 받게 될 것이었다.

“그럼, 네가 정말 나쁜 사람이 아니라면, 관아에 가서 해명하면 될 일이지, 이곳에 숨어서 대체 무엇을 하는 것이냐? 그리고 네 말대로 네가 좋은 사람이라면, 왜 여기서 관계도 없는 다른 사람을 네 일에 끌어들이고 있는 거지?”

제완은 상대에게 정말로 자신을 해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걸 확신하자 점차 낯빛이 차분해졌고, 냉정하게 눈앞에 있는 소년을 직시했다.

소년은 무언가를 고민하는 눈치였다. 자유롭게 하고픈 대로 살아온 떠돌이인 그가 이러한 대부호의 집에 셀 수 없이 많은 규율이 존재한다는 걸, 어디 생각이나 해본 적 있겠는가. 그는 그저 제완이 관아에서 찾아와 당혹스럽게 하진 않을까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고만 생각하고는 헤벌쭉 웃어 보였다.

“낭자께서 연루되실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관군들이 이곳을 떠날 때까지만 잠시 여기 숨어있겠습니다. 낭자, 절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어요. 정말요.”

제완은 상대의 말에 기가 차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금 바로 떠나거라. 그러다가 내 시녀가 되돌아오기라도 하면, 넌 여기서 단 한 발짝도 도망치지 못할 테니까.”

그 말에 소년이 감격하며 말했다.

“낭자는 정말 좋은 분이시군요. 사실 전 집을 헷갈려서 잘못 들어온 것뿐입니다. 원래는 맞은편에 있는 저희 고모님께 찾아가려 했던 건데, 제가 잘못 봤을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지 뭡니까…….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무사히 이곳에서 빠져나갈 거니까요.”

‘내가 왜 당신이 무사한지 아닌지를 걱정해!’

제완은 기가 막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등불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자 곧 정색하며 말했다.

“내 시녀가 돌아온 듯하…….”

그녀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소년은 처마 위로 쌩하니 튀어 올라서는 담장을 넘어 순식간에 밤의 장막 속으로 사라졌다. 제완은 대경실색하며 소년이 눈 깜짝할 새에 코앞에서 사라지는 걸 보고 있었다.

‘저 사람을…… 순수하다고 해야 해, 아니면 서툴다고 해야 해? 각지를 돌아다니며 별의별 일들을 다 겪었을 사람이 저렇게까지 단순하고도 솔직하다니. 저런 사람이 용케 살아남아 강호의 대도가 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닌데.’

“고낭, 얼른 오시지 않고 여기서 뭐하십니까?”

제완이 발걸음을 멈춘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거처로 향하던 은행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제완을 쳐다보는 동시에 사방을 탐색했다. 어쩐지 방금 제완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냥 오늘 밤 하늘색이 예쁜 것 같아서 조금 더 보고 싶었어.”

제완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 보이고는 발걸음을 옮겨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이 있다고는 절대 믿지 않았다. 단지 저 소년이 그녀에게 별다른 해를 가하지 않았으니, 그녀도 괜한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원래는 재빨리 시녀들을 불러 그 도적을 잡으려 했으나, 진작에 어디로 갔는지를 알 수가 없게 되었으니 그녀가 잘못한 일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 도적은 정말로 진솔한 사람 같았으며 남을 속이는 데에 능한 떠돌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돌연 제완이 발걸음을 우뚝 멈췄고, 그녀의 맑고 투명한 눈동자가 순간 반짝였다.

‘방금 그 사람 분명, 집을 잘못 들어왔다고 했어. 맞은편에 사는 고모를 찾아가려 했다고 했지…….’

맞은편은 바로 금주성 태수(太守) 대인의 저택이 아니던가.

금주성의 태수인 조씨(趙氏)는 제가와 전혀 왕래가 없는 사이였다. 그러나 제완은 조 태수의 아들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는데, 전생에 그녀가 제정광을 무너뜨리는 일이 조가(趙家)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 태수는 알지 못하나, 조 태수의 아들인 조언옥(趙言鈺)은 알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뛰어난 기백으로 온 경도를 휘어잡던 그 사내가 불쑥 떠올랐으나, 더는 전생의 갖가지 일들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듯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가(趙家)의 누군가가 저 도적과 친척 관계인지 아닌지는 그녀와는 조금도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 * *

제완이 침실에 들어와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 있던 관군들이 곧바로 들어와 조사하기 시작했다. 다만 제가의 별장 안에는 모두 여인들뿐이었기에, 그들은 감히 오래 머무르지 못했고, 정원 밖에서 한 차례 수색을 완료하고는 곧장 떠났다.

“은행아, 문지기 어멈에게 오늘 밤엔 인원을 두 사람 더 추가해서 돌아가며 문을 지키라 일러줘.”

제완이 잠시 고민한 끝에 은행에게 분부했다.

“예, 고낭.”

은행은 작은 탁자 앞에 앉는 제완을 보고는 오늘 밤 제완이 또 책을 보려 한다는 걸 눈치채고,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물러났다. 그리고 제완이 명한 것을 처리한 뒤, 뜨거운 찻물 한 주전자를 끓여 탁자 옆에 놓아두고는 방문 밖을 지키기 위해 방을 나섰다.

제완이 고개를 들어 은행이 나가는 뒷모습을 쳐다본 다음, 다시 책에 눈을 고정했다. 그녀의 앞에 놓인 두 개의 유등 불빛이 이리저리 춤을 추며 방 안에 드리워진 천을 어렴풋이 비추었다.

잡록(雜錄)을 반 권 정도 읽고 나서 제완은 피곤이 밀려오는 것을 느껴 읽던 것을 정리하고 곤히 잠에 빠져들었다.

* * *

날이 밝자마자 제완은 안채로 가, 육 씨에게 아침 문안 인사를 올렸다. 육 씨의 낯빛이 어제보다 더 나아진 것을 보니, 제완은 금세 기분이 너무나도 좋아졌다. 어쩌면 장 의원이 지어준 약이 정말로 효과를 발휘해 육 씨의 오랜 지병이 완치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육 씨와 한바탕 수다를 떨고 나서 제완은 자신의 거처 앞뜰로 돌아왔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기 직전에 침향이 인사를 올리러 찾아왔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이틀 동안 몸조리를 한 침향의 몸 상태는 아주 좋아졌고, 얼굴도 종잇장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지 않았다.

“곤혹스러운 상황에 있던 저를 구해주신 이 은혜를 소인, 가슴 깊이 새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고낭.”

침향은 제완을 향해 머리를 땅에 대며 세 차례 절한 뒤, 고개를 숙인 채로 비굴하지도 또 거만하지도 않은 어투로 말했다.

제완이 그런 침향을 쭉 한 번 살펴보고는 말했다.

“일어나거라. 내가 널 구한 건, 널 시녀로 부리려던 게 아니야. 그저 좋은 마음으로 그리 한 거였어. 만약 남고 싶지 않다면, 네 노비 매매 계약서를 돌려주마.”

황급히 고개를 들어 제완의 눈을 흔들림 없이 쳐다보는 침향의 눈동자에는 별의별 감정들이 솟구쳐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눈에 활활 타오르던 빛이 다소 어두워졌고, 목소리도 살짝 떨렸다.

“소인은 고낭의 곁에 남아 고낭을 모시고 싶습니다. 고낭, 절 이곳에 있게 해주십시오.”

‘하려고 하는 일이 아직 때가 좀 덜 됐나 보네!’

제완이 담담히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남고 싶다고 말하지만, 나중에 혹시라도 더 나은 앞날의 계획이 생기면, 언제든 나에게 말해주면 된다.”

그녀의 말에 감격한 침향은 무릎을 굽히며 감사한 마음에 보답했다.

제완이 이렇게 침향을 받아들인 것은 전생을 차마 놓지 못해서라 아니라, 태자를 지지하는 제가에 확고한 살길 하나를 마련해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은행은 삼 년 전부터 제완을 모시는 시녀로, 지금껏 자기가 제완의 곁에 있는 시녀 중 가장 유능하다고 여겼다.

비록 지금은 이등(二等) 시녀의 봉급을 받고 있었지만, 그녀의 위력은 일등 시녀와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제완의 거처에 속한 시녀들과 어멈 중에서는 그녀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제완이 별안간 나타난 침향을 밀어주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자신의 위치가 흔들리는 게 아닐까 너무나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은행은 제완이 침향을 데려와 상처를 치료해주는 모습을 보며 말할 수 없는 씁쓸함을 느꼈다.

“고낭, 침향이라는 사람은 출신이나 배경이 명확하지 못하니, 반드시 경계하셔야만 합니다.”

제완의 찻물을 따뜻한 것으로 바꿔주던 은행이 결국 참지 못하고 한 마디를 권했다.

이에 제완은 찻잔 뚜껑에 붙어 있던 차 가루를 닦으며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는 가뿐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사람의 본바탕은 어쩔 수 없이 그 눈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거야. 그런데 침향의 눈빛은 흔들림이 전혀 없는 게, 사 낭자가 품행이 올바르지 않다고 얘기했던 것과는 달라.”

“사 낭자는 침향과 오랜 시간 함께 지내셨지만, 고낭께서는 침향을 만난 지 얼마 안 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대번에 아실 수 있겠어요?”

은행은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았는데, 혹여라도 제완이 침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속고 있는 건 아닐까 염려가 되었다.

“너도 침향이랑 만난 지 얼마 안 됐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침향이 아첨이나 하는 못된 사람일 거라 확신하는 거야? 혹시 지금 사람을 보는 내 안목을 의심하는 거야?”

제완이 굳은 얼굴로 담담히 은행을 쳐다보았고, 은행은 다급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소인이 감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소인은 그저 고낭이 걱정되어서 그랬습니다. 고낭께서 혹시라도 속는 것은 아니실까 하고요.”

‘그냥 내 착각일 뿐일까? 어쩐지 고낭께서 금주성에 오신 뒤로 좀 많이 변하신 것 같아. 예전에도 성격이 차분하시긴 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냉담하진 않으셨는데. 게다가 마치 모든 걸 이미 다 알고 계신다는 듯, 은근히 강요하는 것 같은 느낌까지 있어.’

제완이 은행을 한 차례 힐끗 쳐다보고는 다른 일을 시키며 방에서 내보냈다.

그녀는 줄곧 은행을 자신의 시중을 드는 일 말고 다른 곳으로 보내 버릴 이유를 찾고 있었지만, 지금은 별장에 있기에 그녀의 곁에 있을 만한 시녀가 은행 말고는 없었다. 다른 시녀를 뽑고자 해도 괜찮은 후보가 없었다…….

고개를 저으며 이에 관한 생각을 털어버린 제완은 동측에 있는 서재에 가서 책을 읽었고, 그렇게 하루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