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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속병은 바깥에서부터 치료해야 하지요

13화. 속병은 바깥에서부터 치료해야 하지요

잠시 후, 은행은 제완의 머리 장신구를 떼어내 주고 있었다. 제완은 아직 급계(*及筓: 만 15세 여인을 이르는 말로, 시집을 보낼 나이라는 뜻)가 되기 전이라 복잡하지 않게 그냥 간단히 양 갈래로 땋아 틀어 올린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고낭은 머릿결이 정말로 좋으시네요.”

머리를 모두 푼 뒤 나무 빗으로 제완의 머리카락을 곧게 빗겨 주던 은행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뱉어냈다. 검고 빛나는 제완의 머리카락은 손에 쥐면 물결을 잡은 듯 매끄러워 너무나도 예뻐 보였다.

제완은 구리거울을 통해 은행을 넌지시 쳐다보며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제완이 웃는 모습을 본 은행은 칭찬 몇 마디를 더 하고는 그제야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을 슬쩍 꺼내 놓았다.

“고낭, 오늘은 어째서 저를 데리고 가지 않으셨던 것입니까? 제가 고낭을 오래 모셨으니,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고낭께 필요하신 부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겠어요?”

“내 곁에 그리 오래 있었던 너만이 내 거처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잖아. 이틀 전에 온 성문을 다 폐쇄했던 그 일로 집에 있는 시녀들이 불안해하고 있을 텐데, 네가 남아서 사람들을 살펴봐 주는 게 더 마음이 놓여.”

제완은 가만히 옅은 미소를 지으면 찬찬히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건, 고낭께서 가장 신임하시는 게 아직 나라는 얘긴 거지?’

은행은 반색을 표하며 말했다.

“제가 고낭을 대신해서, 어린 시녀들이 혹시라도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잘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제완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에서 깨어난 이후, 그녀는 전생에 자신을 배반했던 이 시녀를 어떻게 곁에서 떼어낼지 매 순간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전생에서 일어난 그 모든 일들이 발생하기 이전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의 본성을 뒤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마음에 복수심을 품지 않는다는 게, 모든 걸 용서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 * *

다음 날, 조 부인은 약속대로 제가의 별장을 찾았고, 제완이 직접 대문까지 나가 그녀를 맞이했다. 조가(趙家)의 저택은 바로 맞은편으로, 몇 걸음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어 마차를 탈 필요조차 없었다.

조 부인이 이렇듯 흔쾌히 그녀들을 돕겠다 한 이유가 무엇인지 제완도 의심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 됐든 육 씨의 병을 치료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무엇이든 내어 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설령 다른 의도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건 분명 제가 자체를 노린 것일 테니, 그녀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을 터였다. 그녀의 소원은 오로지 육 씨가 건강히 계속 살아가는 것일 뿐, 다른 일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조 부인은 제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 턱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 먼저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그녀는 줄곧 아무도 살지 않던 건너편 별장이 경도의 제가 소유라는 것을 꿈에도 알지 못했을 것이었다.

원래 그녀는 이곳의 주인이 콧대만 높아서 시종 고상한 척해대는 한 공신 가문일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막 금주(锦州)에 돌아왔던 그날, 평안사에서 마주쳤던 제가 모녀에 대한 인상이 나름 나쁘지 않았던 데다가, 어제 일도 있고 해서 제완을 돕기로 한 것이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를 봤다면 기회를 노려 공신 가문에 잘 보이고자 하는 께름칙한 행동이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관소란(關筱蘭)이라는 이 여인은 언제나 자유분방하기 그지없었고, 타인의 시선은 전혀 개의치 않았기에 남들이 뭐라 한들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몸이 허약한 육 씨는 그 앞까지 마중을 나갈 수 없어, 그저 건물 사이 복도에 있는 대청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제완이 조 부인을 안내하며 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그녀는 저도 모르게 상대를 자세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보기에 조 부인은 용모도 아름답고, 미소도 매우 단정하여 곧장 호감이 생길 만한 인물이었다.

조 부인이 더 가까이 다가오자, 그 모습이 매우 눈에 익은 듯했다. 육 씨가 잠시 기억을 되새겨 보니, 지난번 평안사에서 서로가 서두르듯 한 차례 마주쳤던 장면이 곧 떠올랐다.

육 씨가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조 부인, 제 병을 살펴 주시고자 청하며, 귀한 걸음을 하시게 해 참으로 송구스럽습니다.”

“제 부인께서는 그런 말씀 마십시오. 여기까지 오는 데에 몇 걸음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조 부인은 육 씨가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것을 말리며 곧장 육 씨의 손을 잡아 부축하고는 웃어 보였다.

“만일 저희 딸아이가 포기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면……, 저는 제 몸에 대해 일찍이 희망을 버렸을 것입니다. 부인의 의술이 고명하다는 소문을 완이가 어떻게 들었는지, 이렇듯 실례를 무릅쓰고 부인께 와 달라 청을 올렸습니다.”

육 씨가 제완을 흘끗 쳐다보며 조 부인에게 말했다.

“제가 정식 의원이라 할 순 없지요. 이전에 스승님께 침뜸술을 약간 배운 게 전부일 뿐입니다.”

조 부인도 제완에게 시선을 주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저 역시 부인께 도움이 되길 희망하며 한번 시도해 볼 수밖엔 없을 듯하네요.”

육 씨가 이에 답했다.

“알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부인께는 폐를 끼치게 되었군요. 사실 전 이미 제 운명을 하늘에 맡긴 상태입니다.”

“어머니, 저는 사람이 하늘의 뜻을 이길 수 있다, 그리 믿고 있습니다.”

제완은 ‘하늘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라는 말은 전혀 듣고 싶지 않았다. 시종 하늘에만 희망을 걸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불행한 일들을 맞닥트리게 됐었다.

육 씨는 웃어 보이고는 조 부인과 나란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조 부인은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기 위해 방문한 것이 아니었기에, 자리에 앉자마자 별다른 이야기 없이 자신의 시녀에게 작은 베개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라 분부하였다. 그리고는 바로 육 씨의 맥을 짚기 시작하였다.

제완은 그 어떤 때보다도 더욱 긴장하고 있었다. 이는 어쩌면 그녀와 육 씨의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제완은 조 부인이 지금까지 그녀들이 마주해온 것과는 다른 결과를 이끌어 내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하고 있었다.

맨 처음 육 씨를 만났을 때, 조 부인은 그녀의 얼굴에 혈색이 부족하고 발걸음이 너무 가벼운 것을 보고는 속의 기가 허해 나타나는 증상이란 걸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지금 맥의 상태를 직접 확인해 보니, 역시나 경맥이 약해졌고 구급(拘急)을 앓는 상태인 탓에, 이미…….

“제 부인께선 원래 신체가 쇠약한 편이시군요. 혹 출산 이후 더욱 허약해지신 게 아닙니까?”

조 부인이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고, 이에 육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이를 낳은 뒤, 몸이 하루하루 달라졌었습니다.”

지금 시대의 의술은 설비가 너무 낙후되어 있어, 여인의 출산은 곧 죽음에 발을 들이는 것과 진배없었다. 수많은 여인이 출산 이후 지병을 앓았고, 육 씨도 마찬가지였다.

“월경이 줄곧 일정하진 않으셨는지요?”

조 부인은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양이 대중없고, 아예 건너뛸 때도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여인들밖에 없으니, 육 씨도 삼가지 않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내 조 부인이 손을 거두며 답했다.

“부인의 병은 치료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부인께서도 아시다시피, 병이 회복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삼 년에서 오 년 정도 잘 요양하신다면, 부인의 몸은 자연히 아무 문제 없어질 것입니다.”

제완은 이 말을 들은 그 순간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고, 얼굴에는 놀람과 기쁨이 교차하고 있었다.

“조 부인, 그…… 그게 정말입니까?”

“약은 어느 정도 독으로 작용할 수밖엔 없습니다. 약이 몸에 득 될 건 그다지 많지 않으니, 제 부인께서는 더 이상 약으로 몸을 보하실 필요가 없으실 듯합니다. 이러한 속병은 바깥에서부터 치료해야 하지요. 제가 능한 것은 침구술(針灸術)로, 예로부터 이 학문에서는 사람의 종기(*宗氣: 중의학에서, 가슴속에 축적되어 호흡의 기와 함께 작용하는 기를 이름)를 보호함으로써 항시 생기를 유지할 수 있다 했습니다.

침구 외에 탕약으로도 함께 조절할 수 있는데, 장기간 경맥을 막힘없이 통하게 해 기혈을 조절해야 합니다. 음양이 상대적으로 균형을 이루어야만 장기들의 기능도 조화를 이루게 되고, 비로소 신체가 천천히 회복되어 갈 수 있을 겁니다.”

조 부인은 제완을 넌지시 바라봤다. 육 씨의 병은 하루아침에 나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아주 기나긴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에는 침구술을 할 줄 아는 의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매일 한 차례씩 침과 뜸을 놓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육 씨가 말했다.

“제 병이 완치될 수만 있다면, 기간은 얼마가 되든 상관없습니다. 조 부인, 이제 제가 어찌하면 될까요?”

육 씨의 질문에 조 부인이 잠시 고민하더니 답했다.

“그렇다면 내일부터 제가 매일 이곳에 와 부인께 침구 치료를 해드리겠습니다. 보름 뒤, 다시 한번 차도가 있는지 보죠. 어떠십니까?”

“조 부인, 그것은…… 부인께 너무 큰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닙니까. 제가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완은 크게 감동했다. 정말이지 제완 모녀와 아직은 친하다고 할 수 없는 조 부인에게 어떻게 사의를 표해야 할지를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의술을 배우는 자는 본디 의술로써 세인(世人)을 구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제가 결혼…… 아니, 혼례를 올리기 이전에도 스승님을 따라 각지를 다니며 사람들의 병을 돌보았었지요. 그러니 두 분께서 이렇듯 고마워하시는 건 저에게는 오히려 더 부끄러운 일이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조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육 씨와 제완은 조 부인의 내력을 알지는 못했지만, 시원시원한 그녀의 대답을 듣고는 더는 체면치레의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를 바깥으로 안내하며 차를 대접하려고 했다.

“차는 괜찮습니다. 오늘 제가 침통을 가져왔으니 우선은 제 부인께 침을 한 차례 놓아드려 보겠습니다. 느낌이 어떤지 한 번 보시지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조 부인의 말에 육 씨는 일말의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건 조 부인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조 부인은 자신의 시녀에게 뜸쑥을 준비하라 일렀고, 하죽과 영하에게는 금침을 소독할 주정(*酒精: 알코올)을 가져다 달라 분부했다.

제완은 바로 옆에서 이 과정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조 부인은 머리카락 굵기의 금침을 꺼낸 뒤, 흰 면포에 주정을 묻히고는 세심히 닦았다.

‘저게 조 부인께서 말씀하신 소독이라는 건가?’

제완은 처음으로 침 치료를 보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이러한 치료법을 쓰는 의원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조 부인이 육 씨에게 옷을 전부 벗으라 청하고 나서야 제완은 왜 지금껏 이 방법을 사용한 의원이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주국의 의원은 대부분 남자였고, 여자인 경우는 극히 적었다. 어떤 사내가 여인에게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을 보여 달라 감히 물어볼 수가 있단 말인가.

‘정말 독특하네…….’

제완은 돌연 흥미가 돋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모든 걸 머릿속에 깊이 새기고 싶은 듯 눈을 말똥말똥 뜬 채로 조 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