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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여인 학당

9화. 여인 학당

며칠이 지나자 육 씨의 낯빛이 차츰 발그스름하게 활기를 찾았다. 예전처럼 쉽게 피곤해하거나 무력감을 느끼지 않게 된 그녀는 이제 온 정신을 제완의 스승을 찾는 데 쏟기 시작했다.

육 씨는 제완이 오로지 여인이 삼갈 것들에 대해서만 배우길 원치 않았다. 주국은 여인에 대한 요구 조건이 비교적 느슨한 편이니, 자연히 딸이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기를 희망했다.

“어머니, 저 여인 학당에 한번 가보고 싶어요.”

하지만 제완은 굳이 스승 두 분을 집으로 초청하고 싶진 않았다. 지난 생에는 그렇게 했다손 치더라도 이번에는 더는 집 안에만 머물고 싶지 않았다. 바깥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시녀들이 전해주는 소문들만 알음알음 알고 지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수많은 일을 겪은 이후, 그녀는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더 자유롭게 더 대범하게, 그리고 더 홀가분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여인 학당? 완아, 여인 학당에서 배우는 것들은 네가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것들이 아니란다.”

육 씨는 금주성에 있는 여인 학당에 대해 소문을 들은 바가 있었고, 명성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보다는 큰돈을 들여 집에 선생을 부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주국 각지에는 나라에서 세운 여인 학당들이 있긴 하나, 그곳에서 진정으로 무언가를 배우는 여인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곳에서 수학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관료의 여식들이었으나, 제가(齊家)같은 특권층 가문은 여식을 절대 학당에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금주성의 여인 학당은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 학당에 있는 여선생은 그야말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녀는 성씨만 들어도 고귀한 출신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는데, 아주 몹쓸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고 했다.

그녀의 지아비는 정실은 내팽개치고 첩만을 아끼는 사람이었으나, 여선생은 첩을 해코지하기는커녕 남편에게 이혼을 요청하는 글을 적어 이 세상의 많은 여인에게 갈채를 받았었다.

그래서 수많은 사내가 이 여인을 사내에게 절대 지지 않는 굳센 사람이자, 엄청난 재능을 지닌, 심지어는 탄복해 마지않는 인물이라 여겼다.

이후, 그녀는 금주성 운록서원(雲麓書院) 훈장의 후처로 시집가 한(韓) 부인이 되었고, 그 이후엔 한(韓) 훈장의 도움으로 관아의 힘을 빌려 여인 학당을 차렸다.

한(韓) 부인은 평소 행실이 단정하고 사람들에게 친밀하게 대해, 그녀를 따르는 문하의 학도가 적지 않았다.

이 모든 건 제완이 전생에 들은 내용이었다. 당시 그녀는 한(韓) 부인과 가까이 사귈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문득 그녀와 친목을 다질 기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여인 학당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집에서 선생들께 배우는 것보다 반드시 더 못한 것은 아니에요. 게다가 학당에 가면 다른 사람들과 친해질 수도 있고, ‘삼인행필유아사언(*三人行必有我師焉: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거기에는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이라는 말처럼 저도 다른 낭자들에게서 뭔가를 배울 수 있을 거예요.”

제완은 열심히 육 씨를 설득했고, 육 씨가 그 모습을 보고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주 명석한 이유를 찾아냈구나. 뭐, 그것도 나름 나쁘지 않겠지. 그럼 내일 내 여인 학당에 한 번 가보마. 정말 괜찮은 곳이라면, 입교하도록 하거라.”

육 씨의 대답을 들은 제완은 속으로 뛸 듯이 기뻤다. 육 씨의 허락만 있다면 이 일은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네, 어머니.”

* * *

다음 날, 육 씨는 영하를 데리고 여인 학당에 방문했다. 그리고 한(韓) 부인과 반나절 동안 이야기를 나눠 본 후, 금주성 사람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여선생이 은근히 마음에 들었다.

집에 돌아온 육 씨는 제완이 여인 학당에 입교하는 것을 승낙했다. 하지만 마침 학당은 겨울로 넘어가기 전의 방학 기간이었기에 한 달 뒤나 되어야 학당에 가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할 때 일정한 휴식 기간을 갖는 것은 조정에서 정한 규정으로, 학당은 이 시기에 반드시 쉬어야만 했다.

* * *

며칠 뒤, 육 씨가 한(韓) 부인에게 배첩을 보내 별장으로 초대했다. 한 부인도 제완이라는 학생이 어떤 사람인지 한번 만나보고 싶어 육 씨의 초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금 제완은 직접 문밖에 나가 한(韓) 부인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박달나무로 만든 마차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제가의 문 앞에 멈춰 섰다. 그러자 열다섯 살에서 열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시녀가 먼저 마차에서 내려 발 받침대를 세웠고, 곧이어 연한 남색 상의를 입은 부인이 시녀의 도움을 받아 마차에서 천천히 내렸다.

몸가짐이 참으로 단정하고, 고상한 품격이 느껴지는 부인으로, 인상이 매우 차분하고 인자했다.

마차에서 내려 제완을 발견한 그녀는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소녀, 한(韓) 부인께 인사 올립니다. 존함을 들은 지 아주 오래나, 오늘에야 이렇게 만나 뵐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제완이 한 부인에게 정식으로 인사하고는 활짝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길 청했다.

이에 한 부인은 가볍게 답례하고는 제완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제 낭자께서는 이렇듯 예를 차리실 필요가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한참 전부터 부인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한 부인, 저를 따라오시지요.”

제완이 아직 정식으로 한(韓) 부인의 학생이 아니기에, 상대도 반드시 그녀에게 예를 갖춰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한 부인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며칠 전 육 씨를 처음 알게 되었지만, 육 씨가 깊이 사귈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늘 초청에 응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육 씨의 여식인 제 낭자 역시 경박하거나 오만한 사람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더욱 마음에 들었다.

한 사람의 행동이나 태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교양 정도를 알 수 있는 법이었다. 더군다나 육 씨는 서향세가(*书香世家: 학자풍의 세가) 출신이니, 여식을 교육하는 데도 모자람이 없었을 터였다.

육 씨에게 향하는 길에 한 부인은 제완에게 몇 가지를 질문했다. 그에 대한 제완의 대답은 하나같이 너무 지식을 드러내려 하지도, 또 우둔해 보이지도 않는 답변들이었다. 이에 한 부인은 제완을 더욱 흡족하게 여기게 되었다.

막 안채에 도착하려던 그때, 영하가 너무나도 급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영하는 제완과 함께 있던 한 부인을 발견하고는 재빠르게 예를 갖춰 인사했다.

“무슨 일이냐?”

제완이 묻자, 영하는 드물게도 굉장히 당황스러운 얼굴을 한 채로 신중히 입을 열었다.

“고낭, 부인께서 갑자기 혼절하셨습니다.”

영하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육 씨가 쓰러졌다는 얘기를 들은 제완은 대번에 낯빛이 변하더니, 황망히 곁에 있던 한 부인을 쳐다봤다.

“제 낭자께서는 서둘러 제 부인께 가보시지요. 저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혹여라도 푸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제완이 염려하고 있다는 걸 한 부인이 모를 리 없었다.

“침향아, 한 부인을 응접실로 모시고 가서 차를 대접해 드리거라.”

제완이 몸을 완전히 회복한 침향에게 분부하고는 한 부인에게 가볍게 인사한 뒤, 영하를 데리고 총망히 안채의 내실로 향했다.

하죽이 이미 정원에 있던 사동에게 서둘러 장 의원을 모셔 오라 분부해 놓았고, 지금은 경도에서 가져온 응급용 환약을 육 씨에게 먹이려던 참이었다. 제완이 방에 들어섰을 때, 하죽은 그 환약을 물에 녹이고 있었다.

“내가 할게. 넌 어머니를 부축해서 앉혀드려.”

제완은 방 안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침착했다. 그녀는 육 씨가 이렇게 빨리 자신을 떠나지는 않을 것이란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 역시 육 씨가 왜 쓰러졌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기에 시종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물에 녹은 약 한 사발을 육 씨의 입에 억지로 넣어 보았지만, 겨우 절반도 안 되는 양밖에 먹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 마침 장 의원이 도착했다. 사실은 그도 이러한 상황이 생길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육 씨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 아주 자신만만했는데, 이렇듯 갑작스레 혼절한 것이다. 그가 살짝 숨이 찬 채로 하죽을 따라 방 안에 들어왔을 때, 이마에는 마른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제완이 앉아 있던 의자를 재빠르게 장 의원에게 내어주며 육 씨의 진맥을 하도록 했다.

육 씨의 얼굴은 비정상적으로 붉어졌고, 호흡이 가빴으며, 맥 역시도 이전보다 풍사 증상이 더 뚜렷했다. 턱수염을 매만지던 장 의원은 병세가 매우 심각한 것을 확인하고는 매우 놀랐다.

“장 의원님, 어머니께서는 어떤 상태입니까?”

그가 맥을 짚는 것을 지켜보던 제완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말이 없으니, 점점 더 불안해져 결국 참다못해 질문을 던졌다.

장 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따로 바깥방으로 불러냈다.

“제 낭자, 제 부인의 내상이 이미 폐부에까지 가 닿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반적으로 풍사를 없애는 약제도 크게 소용이 없지요. 저의 재능이 얕아 더는 치료가 어려울 듯하니, 귀가(貴家)에서 아무래도 다른 고명한 의원을 청하시는 것이 좋으실 듯합니다.”

장 의원은 고개를 숙이고는 연신 탄식만을 내뱉었고, 진맥 비용도 받지 않은 채 인사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제완의 낯빛이 굉장히 어두워졌다. 육 씨의 몸이 벌써 약제로도 속수무책일 정도로 나빠지다니. 그건 이년 후에나 벌어질 일이었다.

‘설마 전생과 이생이 다른 건가? 아니야, 이건 다 장 의원의 약 때문이야!’

이전 생에서 그녀는 육 씨를 치료하기 위해 장 의원을 부르지 않았다.

‘내가 이번에 너무 경솔해서 이렇게나 빨리 어머니의 몸이…….’

“고낭, 부인께서 깨어나셨습니다.”

영하가 방에서 나오며 기쁜 목소리로 제완에게 소식을 전했다.

제완은 곧바로 방향을 틀어 방으로 들어갔고, 침상에 기대어 앉아 있던 육 씨가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제완은 속으로는 소스라치게 놀란 상태였지만, 얼굴에는 전혀 티를 내지 않고 바로 육 씨의 옆으로 가 앉은 뒤 물었다.

“몸은 좀 어떠세요?”

“그저 오랜 병이 도진 것뿐이니, 큰 문제 될 것 없다.”

제완의 손등을 토닥이며 말하는 육 씨의 목소리는 기력 하나 없이 허약하기만 했다.

“한 부인께서는 오셨느냐?”

“도착하신 뒤에 응접실로 모셔 차를 대접해드렸어요. 어머니, 장 의원의 약은 차도가 없으니 그 처방약은 그만 드시고, 다시 경도에서 가져온 약을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완이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

육 씨의 몸은 그녀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다. 오늘은 다른 때보다도 특히나 더 위태로워 온몸에 힘이 다 빠져버릴 정도였다. 또 제완의 눈빛에서 크게 걱정하는 게 훤히 다 느껴지는데도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것을 보니, 장 의원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했을 게 틀림없을 터였다.

“그렇게 하마. 지금 한 부인께서 손님으로 와 계시니, 더 오래 기다리게 할 수가 없구나. 난 이제 괜찮으니 어서 가서 한 부인을 대접하거라. 난 정말 괜찮다.”

육 씨가 말했다.

제완은 지금 단 한순간도 육 씨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집에 손님이 와 계시기에 어쩔 수 없이 영하와 하죽에게 육 씨를 잘 보살펴드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는 내실을 나서 응접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