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단서
그들은 함께 홍려시경의 서재로 갔는데, 안에는 붓과 먹, 종이, 벼루가 모두 갖춰져 있었다.
기삭이 정중히 물었다.
“구양 대인, 제가 이것들을 좀 써도 되겠습니까?”
“편히 쓰십시오.”
홍려시경은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종친 자제들 가운데 정왕세자처럼 겸손하고 예의 바른 이는 많지 않았다.
기삭은 종이를 펴고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집중한 표정으로 나는 듯이 재빠르게 붓을 놀리더니 곧 한 소녀의 윤곽을 그려 냈다.
그동안 서재에 있던 임유, 정무명 그리고 홍려시경 구양 대인 세 사람은 종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유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이건 사라진 옥류 시녀 아닌가요?”
“그렇습니까?”
정무명은 홍려시경을 옆으로 밀치고 좀 더 가까이서 자세히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