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모든 게 허상이고 꿈인데
“아직도 스스로를 인간이라 여기는 거야?”
성건우가 물었다.
그는 주명희를 등지고 있었기에, 현재 장목화 쪽에선 그의 옆모습만 보였다. 거기다 무심자에게서 드리워진 그늘로 그의 표정도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목화도, 주명희도 성건우의 낮은 목소리만은 똑똑하게 들었다.
고등 무심자의 몸은 살짝 굽고, 혼탁한 눈동자를 담은 눈도 잔뜩 충혈돼 있었다. 그는 그대로 성건우에게 대응하지도, 곧장 떠나지도 않고 제자리를 지켰다. 어느새 전에 만들어낸 환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주명희는 떨리는 마음으로 몇 발짝 뗀 뒤 성건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한동안 무심자를 응시하던 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반 보호자님이십니까?”
회백색 머리를 길게 기른 남자가 야수의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고, 입도 굳게 다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