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의 마법사

필드의 마법사

제1화

1화. 로니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엄청난 소음이 이혁의 머릿속을 헤집었고 고막이 터질 것 같았다. 황당한 현상은 귀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한 줄기 빛이 눈앞을 가리더니 관자놀이가 바늘로 찌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파왔다.

이혁으로써는 실눈을 뜨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조금씩 벌려지는 두 눈으로 따가울 정도로 환한 빛이 들어왔다. 빛에 적응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이혁의 두 귀로 들어오는 소음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난 술집에 있었는데…….’

이혁은 겨우 빛에 적응한 두 눈으로 주변을 살폈고, 처음 보는 낯선 환경에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도대체 자신이 서있는 곳은 어디란 말인가! 그가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무언가가 그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땀에 흠뻑 젖은 검은 얼굴이 콧구멍에서 내뿜는 뜨거운 콧김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벌어진 입 사이로 하얀 치아가 보였다.

이어 한 차례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다. 이혁은 알 수 없는 사람과 부딪쳤고 흡사 교통사고라도 당한 것처럼 공중에 몸이 떠서 날아갔다. 그만큼이나 알 수 없는 사람의 스피드는 빨랐고 체격도 좋았던 것이다.

우당탕!

두 사람은 옆에 놓여 있던 물 상자를 쓰러뜨리며 같이 넘어졌다. 플라스틱 병들이 우르르 나뒹굴었다. 사방으로 물이 뿜어져 나와 근처에 서 있던 사람들의 얼굴로 쏟아져 내렸다. 사람들은 놀라 흩어졌다.

“이런!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닥터! 팀닥터 어디 갔어!”

“어떻게 이런 일이!”

이혁은 누운 채로,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낯선 얼굴들을 보았다. 어떤 사람은 매우 초조해 보였고 어떤 사람은 은근히 즐거워하는 듯 보였으며 또 어떤 사람은 무표정했다.

아까의 소음은 조금 줄어들고 작은 속삭임만 들렸지만, 어쩐지 여기에는 조소와 빈정거림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여긴 어디지? 저들은 누구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사이드 라인을 비춰 주세요! 지금 큰일이 벌어졌습니다!”

해설위원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몸을 움직여 경기장 아래쪽을 쳐다보았다.

“노팅엄 포레스트의 데이비드 존스 선수가 볼 경합 과정에서 속도를 못 이겨 사이드라인을 넘었고 감독을 들이받았군요! 로니 감독은 불운하게도……. 휴! 참담하네요! 주변은 난리가 났군요! 마치 행성끼리 충돌하기라도 한 것 같습니다!”

이혁은 쓰러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왜 입고 있는지 모를 연회색 양복은 흠뻑 젖었고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콧수염이 까맣게 난, 코가 크고 얼굴이 둥그레서 ‘슈퍼 마리오’의 마리오를 연상시키는 남자가 이혁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흰색 장갑을 꺼내 끼더니 이혁의 몸 상태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통증이 느껴지나요?”

그는 이혁의 옆구리를 세게 눌렀다.

“턱은……. 음, 멍이 좀 들었네요. 혹시 이가 흔들리는 게 있나요?”

이혁의 입을 벌려 살펴보기도 했다. 그는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지만, 이혁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리라고는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냥 습관적으로 혼잣말하듯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눈…….”

그는 이혁의 눈을 쳐다보았다. 이혁의 눈동자는 전혀 움직이지 않으며 눈꺼풀 또한 깜빡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아니!”

그는 다급히 소리쳤다.

“로니? 로니! 내 목소리가 들려요?”

자기 손을 이혁의 눈앞에서 흔들며 다급한 목소리로 로니라는 이름을 불러댔다.

“아!”

이혁의 눈동자가 마침내 움직였다. 눈동자가 자기 손가락을 따라오는 것을 확인한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심판이 경기 중지를 외쳤습니다. 제가 해설 경력이 31년인데 선수가 감독과 부딪히는 건 처음 봅니다! 로니 감독은 이 일로 유명 인사가 되겠군요! 그로서는 썩 달갑진 않겠지만 말이죠!”

BBC의 해설위원인 존 모트슨은 쉴새 없이 떠들었다.

“노팅엄 포레스트는 정말 재수가 없습니다. 안 그래도 두 골 차로 지고 있는데 감독이 부상을 당하다니! 그것도 홈구장에서 말입니다!”

전광판에는 조금 전 그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거구의 데이비드 존스가 자기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사이드라인 옆에 서 있던 감독을 박는 바로 그 장면! 그런데 약간 이상했다. 로니 감독은 충분히 피할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멍하니 서서 선수가 돌진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충돌 이후의 참담한 로니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몇몇 관중은 차마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노팅엄 포레스트의 선수들이 황급히 다가와 이혁을 둘러쌌다. 그를 다치게 한 장본인인 데이비드 존스는 잔디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역사상 처음으로 경기 중 자기 감독을 살해한 선수가 될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반면, 관중석에 있는 노팅엄 포레스트의 팬들은 감독의 생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들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 참패를 당하고 있는 자기 팀에게 야유를 보냈다. 여기저기에서 가운뎃손가락을 펼쳐 든 채 욕을 하고 있었다.

노팅엄 포레스트의 팀닥터인 게리 플레밍은 여전히 로니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방금 로니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하지만 그 뒤, 그는 다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플레밍은 그의 얼굴을 찰싹찰싹 때려보았지만,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다. 감독은 여전히 밀랍 인형처럼 입을 벌린 채 쓰러져 있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혁은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반응 없이 그저 하늘만 바라봤다. 파란 하늘 위로 솜사탕 같은 구름이 떠다녔고 주변으로는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서로 다른 악센트로 시끄럽게 떠드는 중이었다. 마치 수천 킬로미터는 멀리 떨어진 어떤 이국적인 장소에 뚝 떨어진 것 같았다. 이러한 장면은 그에게는 매우 낯선 것이었다. 아니, 낯설기도 하면서 익숙하기도 했다.

‘이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 * *

선수가 감독을 부상시키는 역대미문의 사건으로 잠시 중단된 월솔과 노팅엄 포레스트의 경기.

주심은 뒷일을 팀닥터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더 이상 경기를 지체할 수 없는 상황. 주심은 과감하게 경기를 재개하기로 했다. 그는 휘슬을 불어 모든 선수들을 경기장 안으로 불렀다. 이 일로 인해 노팅엄 포레스트의 선수들은 전의가 사라져 더 이상 뛸 마음이 없는 것 같았으나 그래도 경기는 계속되어야 했다. 팀닥터를 비롯한 코칭스태프들은 주심의 섣부른 결정이 못 마땅했다.

“감독이 너무 크게 다쳐서 지금 당장은 경기는 계속 할 수 없어 보입니다.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어요!”

플레밍은 심판이 섣불리 경기를 재개하는 것에 분노하여 그에게 따졌다. 그러나 주심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면 구급차를 부르세요! 저흰 경기를 진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로니 감독님이 그렇게 위험한 상태인 것 같지는 않군요.”

주심은 플레밍의 뒤를 흘끗 보았다. 이혁은 여전히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지만 외관상으로는 그렇게 커다란 문제가 보이지 않았다. 주심은 팀 닥터에게 경고하듯이 노려보고는 경기장으로 돌아갔다.

심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플레밍은 무언가 뒤척이는 소리를 듣고 몸을 돌렸다. 다행히도 로니는 뒷머리를 만지며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플레밍은 황급히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괜찮아요?”

“여기가 대체 어디죠?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예요?”

이혁은 멍한 얼굴로 반문할 뿐이었다.

플레밍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몸을 돌려 코치석에 있는 금발의 남자를 손짓하여 불렀다.

“데비, 데비! 잠깐 이리로!”

데비라고 불린 남자는 즉시 달려왔다.

“어때요?”

그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큰일인데요. 방금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봤어요. 이게 좀…….”

데비의 반응도 방금 플레밍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플레밍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방금 넘어지면서 머리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많이 안 좋은가요?”

데비는 입술을 깨물었다.

“글쎄, 잘 모르겠어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고…….”

“그건 무슨 뜻이죠?”

“단순한 단기 기억상실일지도 몰라요. 그럼 잠깐 휴식만 취한다면 바로 기억이 돌아올 거예요.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플레밍은 말끝을 흐렸지만, 데비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이해했다.

“그럼 어쩌죠? 병원으로 보내야 하나요? 하지만 아직 경기 중인데…….”

그는 말하던 중, 이혁에게로 잠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제야 이혁이 천천히 외부로 나가는 통로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잠깐!”

데비는 얼른 달려가 이혁을 붙잡았다.

“로니, 어딜 가려고요!”

경기장은 시끄러워 데비가 크게 외쳐도 작은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로니? 내가 로니라고?’

이혁, 아니 로니는 고개를 들어 망연한 눈빛으로 데비를 쳐다봤다. 그것을 본 데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로니, 어디 가는 거예요?”

데비는 다시 한번 물었다.

“잘……모르겠어요. 아마……. 집에 가야겠죠.”

로니는 데비의 손을 떼어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플레밍 또한 그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집에 가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은 경기 중이고 당신은 감독이니 팀을 지휘해야 합니다.”

세 사람이 통로에서 실랑이하는 모습은 코치진들과 관중석의 이목을 끌었으며 심지어 경기 중인 선수들까지도 한 번씩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로니는 갑자기 이 모든 상황이 우스워 웃기 시작했다.

“제가 감독이라고요?”

정말 황당한 소리였다. 그는 축구를 열렬히 사랑했다. 취미로 축구를 하는 것도 좋아했고 보는 것도 역시 즐겼다. 하지만 감독이라니? 이건 꿈이 분명했다. 무척 리얼리티가 살아있긴 하지만 여전히 현실감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꿈. 그런데 꿈에 나온 이 사람들은 진지했다. 어지간해선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

“당신은…….”

그는 데비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플레밍은 침착하게 처음 만나는 사람을 소개시켜 주듯이 데비에 대해 말해주었다.

“이 사람은 데비, 데비 워커에요. 전 잉글랜드 국가대표였고 저번 시즌에 은퇴했죠. 당신의 동료이며 조수이기도 해요.”

이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데비에게 말했다.

“좋아요. 그럼 당신이 절 대신해서 이번 경기를 맡아주세요. 전 좀 쉬어야겠어요.”

그는 데비와 플레밍을 내버려 두고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통로로 걸어갔다.

플레밍은 로니의 뒷모습과 데비를 번갈아 보았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대체 이게 무슨… 경기는 완전히 망했고 감독이 이런 상태라니…….”

데비 또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로 돌아갔다.

* * *

이혁은 벽에 기대앉아 혼란스러운 눈으로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맞은편에 위치한 흰색 벽에는 커다란 빨간색 버섯과 세 가닥 파도 모양의 곡선이 새겨져 있었으며 그 밑에는 영어로 ‘Forest’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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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계약에 의해 KOCM에 있으므로 무단복제, 수정 및 배포행위를 금지합니다. 본 소설은 중국 원작소설(冠军教父)을 한국작가가 번역, 편집한 작품으로 한국과 중국치덴사이트에서 동시에 서비스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