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투정이 울리자마자 스킬 하나가 생겼다.
그래도 눈치는 있는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스킬 창을 켜 보았다.
"이걸 준단 말이지."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괜찮나.
[무신의 분노 (A+)]
항상 분노하는 당신, 사실 이건 다 신의 뜻이었습니다.
―체력의 1%를 신력 10%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체력이 깎이긴 하나, 신력이 회복된다는 건 유용한 능력이었다.
어떻게든 나에게 전투 스킬은 안 주겠다는 집념이 느껴졌지만, 신력을 빠르게 회복할 수단을 얻은 나는 곧바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잠깐 어수선했던 유저들이 다시금 따라붙으며 나에게 스킬을 퍼부었다.
'어떻게든 유도하고 싶다. 이거지.'
내가 다른 방향으로 가려 하자 불덩어리가 이를 제지하듯 날아들었다.
'나머지는 함정이 있는 곳에 모여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아무리 나라도 함정의 위치까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기에, 내 등 뒤에 있는 녀석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얼마 동안 이리저리 달렸을까, 나는 쫓던 녀석들의 공격이 점차 약해지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들이 공격을 퍼붓느라 지친 것도 있었지만, 내가 점점 함정에 가까워지니 안도감에 스킬을 사용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기 시작한 것이다.
'다 왔구만.'
그걸 놓칠 리 없는 나는 마침 보이는 커다란 나무를 끼고 몸을 틀었다.
한순간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운 속성 신력을 끌어 올렸다.
곧 안개 형태가 되며 내 몸이 그림자 사이로 희미해져 갔고, 완전한 은신 상태가 되자마자 소리 없이 나무 위로 올라섰다.
갑자기 자신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탓에 내 뒤를 다급하게 쫓아온 이들은 방금 내가 했던 대로 나무를 낀 채 한 바퀴 돌아보았고, 곧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방금까지 보이던 내 모습이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스킬이다."
"젠장, 또 무슨 스킬을 쓴 거야?"
당황한 그들이 소리치는 동안 나는 나무 위에서 검집 안에 있는 검 위로 전 속성의 신력을 끌어 올렸다.
그러면서 나뭇가지를 박차며 뛰어내린 나는 곧바로 맨 뒤에 있던 녀석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삼식(三式)
뇌격발도(雷擊拔刀)
번개와 같은 발도에 순간 반응조차 못 한 유저의 머리가 떨어지며, 그대로 데이터화해서 사라졌다.
그러자 다른 녀석이 내 등장에 놀라면서 재빨리 사슬을 던졌고, 나는 일부러 사슬을 검에 휘감고는 다시금 전 속성을 끌어 올려 감전시켜 버렸다.
"아아악!"
감전에 몸이 마비된 듯 부들거리는 녀석을 두곤 쇠사슬이 묶인 검을 바닥에 쿠웅 박아 넣은 채로 나는 그대로 도약하였다.
그리고 감전된 녀석의 턱을 손바닥으로 올려쳐 공중으로 띄운 뒤, 그대로 돌려차기를 복부에 꽂아 바닥에 내동댕이쳐 줬다.
휙!
그렇게 내가 순식간에 두 명을 제압하자, 나머지 한 명이 빠르게 검을 휘둘러 왔다.
그러면서 녀석은 자신의 다른 손에 생겨난 불꽃을 내게 마구잡이로 내던졌고, 나는 그에 대응하듯 물 속성 신력을 끌어 올린 손으로 불꽃을 쳐 냈다.
그러곤 제일 처음 내 공격에 당해 바닥에 쓰러진 유저의 창을 발등으로 튕겨 올려 잡고는, 한 바퀴 빙글 돌려 녀석을 위협해 거리를 벌렸다.
"창까지 쓴다고?"
내가 검뿐만 아니라 다른 무기 또한 쉽게 사용하자, 당혹스러워 한 유저는 나와 정면으로 맞붙어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건지 화염 마법을 바닥 위에 크게 일으켰다.
그러곤 곧바로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비릿한 웃음을 지은 나는 녀석에게 창을 던져 한 번 더 위협해 주곤 사슬에 묶였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래, 이제 너희가 안내할 차례지.'
도망치는 녀석이 어디로 갈지는 뻔할 뻔 자.
검을 검집으로 되돌린 나는 곧바로 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PK라서일까, 서로의 귓속말이 막혀 있던 건 진작 확인했다.
그렇담 이 사실을 알리려면 합류를 해서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그와 비슷한 통신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소리.
보아하니 저 녀석은 마검사인 것 같지만, 공격 마법은 있어도 그 종류의 보조 마법 같은 건 없는 듯하였다.
이내 줄행랑치는 마검사의 뒤를 빠르게 뒤쫓자 그는 내가 쫓아옴을 깨닫곤 추격을 뿌리치려 불 마법을 계속해서 퍼부었다.
그러나 그런 불 마법으로는 내 속도를 늦출 수 있을 리 없었고, 그는 더욱 애가 타는 듯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러던 순간이었다.
달리던 도중 내 발밑이 갑자기 허전해졌고,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아래로 돌린 순간 나는 이미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추락하고 있는 장소는 적어도 10m 이상에 넓이를 가진 구덩이였고, 나는 아무리 손을 뻗으려고 해도 벽에 닿지 않는 중간 지점에 있었다.
"허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눈을 동그랗게 뜬 나는 방금 유저 녀석이 자신들의 무리가 있는 곳으로 안내한 것이 아닌, 함정으로 유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보다 영악하게 나왔잖아.'
그 상황을 오히려 역이용할 줄이야.
당했다고 생각한 순간 머리 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자 거기에는 구덩이 크기와 딱 맞는 거대한 운석 하나가 떨어지고 있었고, 그걸 보며 나는 자조하듯 웃었다.
"꽤 크게 나오네."
105화
콰가가가가가가각!
내 웃음소리가 파묻힐 정도로 거대한 울림과 함께 운석이 구덩이에 정확히 들어왔다.
그 운석은 나보다 빠른 속도로 구덩이를 메우려고 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 있는 나는 그대로 구덩이의 바닥과 운석 사이에 끼여 쥐포가 될 운명이었다.
하나 이대로 당해 줄 수는 없었기에 나는 곧바로 검을 뽑았다.
그와 함께 전 속성의 신력을 최대치로 끌어모아 검을 벽에다가 내던졌다.
콰가가가가가가각!
그로 인해 벽 일부가 부서져 나간 순간, 나는 곧바로 체력을 신력으로 바꾸곤 양손을 모아 바람 속성의 신력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마치 둔기를 휘두르듯 신력을 허공에 쏘아 내자, 바람 속성의 오러가 폭발하여 터져 나오고 나는 그 반발력에 맹렬히 튕겨 날아갔다.
그렇게 부서진 벽 사이로 내 몸이 쏙 들어간 순간 아슬아슬하게 운석이 남은 구덩이를 메꿔 버렸고, 나는 깜깜해진 벽 속에서 빛 속성 신력을 사용했다.
"죽을 뻔했네."
벽에 박힌 검을 뽑은 나는 휘파람을 가볍게 불었다.
역시 여러 속성을 다 다룰 수 있으면 이런 건 편했다.
'대신 체력은 조금 깎였나.'
체력을 신력으로 변환한 만큼 깎인 체력을 확인한 나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이 정도 함정을 준비했으니, 저쪽도 내가 무조건 당했으리라 생각할 터.
그렇담 그 방심을 찔러야 했다
'남은 건 9.'
본격적으로 사냥할 시간이다.
* * *
"됐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구덩이를 꽉 메운 운석을 보며 주위 유저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뒤쫓기던 마검사 사혼수가 묘수를 잘 부려 그를 완전히 함정에 빠트렸기 때문이다.
"사혼수! 사혼수! 사혼수!"
유저 무리에게 돌아온 그는 극진한 환호를 받았고, 사혼수는 그것이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천성을 눈앞에서 보니까 어때?"
"진짜 괴물 같더라고요. 기습당했을 때 순식간에 두 명이 당하니까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게. 와."
사혼수에게 하천성의 대한 걸 묻자 그는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는 양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그를 보며 자신이 안 쫓겨서 다행이라며 안도하던 그들은 곧 승리를 자축하듯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나 그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구덩이 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섭섭이 님이 우리를 왜 다시 소환하지 않지?'
요단강, 참가자 중 가장 랭킹이 높은 그는 상황을 주시하며 의문을 품었다.
하천성이 구덩이에 빠지는 것은 자신도 유저들과 함께 본 일이다.
그렇담 그가 말도 안 되는 스킬을 가진 게 아니라면 분명 함정에 당했다는 소리인데, 섭섭이는 아직도 자신들을 경기장으로 데려갈 포탈을 준비해 주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그의 시선이 다시금 운석이 박힌 구덩이로 향했다.
그건 바로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뜻.
하천성은 아직 살아 있다는 소리다.
"여러분."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그는 곧바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하천성을 유인해 함정을 빠트리는 데까지의 작전을 전부 지휘한 요단강이었기에 사람들은 그의 부름에 나누던 이야기를 멈춘 뒤 경청하였고, 그는 곧바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하천성이 아직도 살아 있다고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체력이 많아도 저 정도의 공격을 받고도 살아 있을 수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살아도 별 방법 없지 않나요? 저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방법도 없을 텐데."
확실히 그건 그러했다.
그렇기에 요단강은 생각한 방법을 말하기로 했다.
"그래서 확실히 처리하고자 합니다. 운석을 없앨 테니, 그때 아래에다가 범위 스킬을 퍼부어 확실히 마무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유난스러운 거에 비해 간단한 작전이지만,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요단강의 말을 듣고 사람들이 동의하자, 그는 그들과 함께 곧바로 구덩이 근처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더 장관인 광경에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자 요단강이 손을 내뻗었다.
"그럼 지우겠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그가 운석을 지우고자 사람들 곁을 떠난 순간 유저들의 발밑에 땅이 조각나듯 갈라진 것이.
"우와아아아아아악!?"
갈라진 땅에 대처 못 한 유저들이 순식간에 아래로 추락한 순간, 그들을 덮친 것은 대량의 물이었다.
무너지는 땅과 함께 물속에 빠져버린 그들은 첨벙첨벙 소리를 내며 허우적거렸고, 이내 그들은 벽에 뚫린 작은 공간에 서서 씨익 하니 웃고 있는 하천성을 발견했다.
"하천성이다!"
"공격, 공격해!"
물속에 빠진 채로 어떻게든 하천성에게 공격을 하고자 그들이 스킬을 난사하려는 순간, 그는 이미 검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고 있었다.
이미 늦었음을 직감한 유저들이 망연자실하게 자신을 바라보자,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하천성이 검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구식(九式)
낙뢰(落雷)
내려친 번개가 물속에 있는 유저들 모두에게로 퍼져 나갔다.
물에 젖은 그들에게 낙뢰는 엄청난 데미지를 주었고, 순식간에 모두가 새까맣게 타 한 줌의 데이터가 되어 버렸다.
아무런 반항도 못 하고 8명이 동시 리타이어.
그걸 확인한 하천성은 나머지 한 명을 처리하고자 천장을 가르곤 땅 위로 올라왔다.
"여."
가볍게 소리 내어 인사를 해 보이자 그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요단강이 정신을 되잡았다.
죽지 않았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함정을 역이용해 순식간에 8명의 유저들을 몰살시킬 거라곤 예상 못 한 요단강은 살짝 넋이 나가 있었다.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기에.'
이런 걸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도 오랫동안 게임을 즐겨 온 만큼 게임 속에서의 상황 대처 능력은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했는데, 하천성 앞에서는 그것들이 모두 장난인 것 같았다.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수적 우세를 자신들이 쥐고 있었고, 거기에 자리 선점까지 먼저 했음에도 전혀 의미가 없었다.
"운석 때는 좀 놀랐어. 재밌었다."
"재밌으셨다니... 다행이네요."
기껏 준비한 함정이 고작 여흥 정도로 치부 당했지만, 그것만으로 어디냐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자, 끝내 보자고."
하천성이 검을 겨누자 요단강은 쓰게 웃었다.
아직 요단강은 하천성과 직접 맞부딪쳐 보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전부 당했더라도 아직 자신이 죽지 않았으니, 패배하지 않은 것이다.
싸워보지도 않은 싸움에 벌써 움츠러들 순 없었다.
디스 헌터 내 PK 7위.
그 자존심을 지키고자 가슴을 펴고, 그는 자신의 무기인 완드를 들었다.
"해보죠."
그리고 요단강과 하천성이 붙었다.
* * *
다음 날.
인터넷 게시판은 물론 인터넷 뉴스까지 발칵 뒤집혔다.
디스 헌터 PK 7위 요단강 패배!
사실 이건 별로 이슈화가 안 되었다.
이 건은 어디까지나 다음으로 이어질 내용의 밑거름일 뿐이었으니까.
바로 요단강과 고레벨 유저 14명을 쓰러트린 하천성이 정말로 랭커급 헌터일거라는 사실이었다.
그가 경기에서 보여 준 압도적 격차.
디스 헌터라는 게임에서 파일럿의 실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드러낸 대회를 본 사람들은 하천성에게 열광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정황상 정말 랭커급 헌터라지 않는가.
그리고 그 사실은 사람들에게 하천성의 대한 궁금증을 더욱 크게 키웠다.
한 국내 랭커급 헌터들 중에 과연 누가 하천성인가 하고.
[9위 무사 백당수 아니냐? 걔 검 쓰잖아.]
[검 쓰는 애가 한둘인가. 독 각도 단도긴 해도 검 써.]
[8위 백노현 할아범도 검 씀. ㅋㅋ]
[하천성, 한국 헌터 아님. 나 랭커 영상 많이 보는데 저렇게 싸우는 랭커급 헌터 본 적 없음.]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 가운데 한 사람이 문뜩 말했다.
[강철도 검 쓰잖아. 강철 아니냐?]
[ㅇㅇ아님.]
[강철은 아니지.]
[강철이 이딴 게임 하겠냐. 정신 좀 차려라.]
[강철 아버지 회사에서 만든 건데 이딴 게임 취급. ㅋㅋ]
그리고 전면 부정당했다.
참고로 강철이 아니냐는 말을 썼던 사람은 운영자 한민선으로 그녀는 슬쩍 흘려 본 진실이 모조리 부정당하자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왜 진짜인데 아무도 안 믿어줘!"
엉엉 울며 하소연을 해 봐도 아무도 안 믿어 주는 상황.
한민선의 속은 애석하게도 스트레스로 날이 갈수록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 * *
세간이 소란스러운 와중 나는 오늘도 디스 헌터를 하고 있었다.
섭섭이가 대회 덕에 1차 직업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벌써 3차를 진행 중이었다.
"저기 와요!"
"그래."
하원의 외침과 함께 사막 바닥에서 불쑥 튀어나온 사하라 웜이 수천 개의 이빨을 부딪치며 내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신력을 끌어 올린 나는 몸을 뒤틀며 회전하는 사하라 웜을 정면에서 맞부딪쳐 쓰러트렸다.
그리고 검을 휘둘러 묻은 사하라 웜의 핏물을 털어낸 나는 이번 회차 때 2층에서 기차의 뒤를 쫓던 사하라 웜을 떠올렸다.
그때만 해도 선인장 한 마리조차 버거웠는데, 이제는 게임이긴 하지만 사하라 웜에게 조금도 겁먹을 이유가 없었다.
"앞으로 몇 마리나 남으셨어요?"
"한 마리, 거의 끝났다."
하원에게 대답한 나는 그녀가 쉬고 있던 암석의 그림자 밑에 털썩 앉았다.
게임이기에 더위가 그리 심하지는 않았지만, 하원은 괜스레 손부채질하고 있었다.
그런 녀석을 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내 추측상 이 녀석이나 그녀의 언니가 용과 관련이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담 하원을 통해 용과 연이 생길 텐데.
'그럴 기미가 전혀 없단 말이지.'
게임에서 더 이상의 연은 찾기 힘들 거라 생각도 들고, 그렇담 이제는 현실 쪽인가.
하지만 하원을 현실에서 만나자고 제안하는 건.
'이 녀석이 괜히 오해해서 거들먹거릴 것 같고.'
솔직히 그건 좀 짜증 나서 싫다.
하지만 크라운 로드를 클리어하려면 해야 하는 일이었다.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아니, 그냥 짜증 나서."
"너무해요."
울상을 짓는 하원을 두고 나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슬슬 사하라 웜의 리젠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마저 사냥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순간 나는 눈앞에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현실에서 온 메시지인데.'
VR게임은 휴대폰이 호환되기에 현실 쪽 메시지도 볼 수 있었다.
[서강선 : 철민아 아이디 뭐냐. 나 오늘부터 시간 나서 접속하거든.]
그러고 보니 강철민이 게임을 하게 된 계기는 친구인 서강선 때문이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로 생각하긴 했지만, 그의 문자에 머리를 한 차례 긁적인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 녀석에게 답장하는 게 좋을까, 안 하는 게 나을까.
'게임을 그냥 안 한다고 둘러댈 방법도 있긴 한데.'
하지만 이걸로 중요한 이벤트를 놓치게 될 확률도 있다.
'서강선은 이 세계에서 주요 인물이야.'
헌터 총회장의 아들에 한국 헌터 중 3위.
이것만 놓고 보아도 서강선은 곁에 두어야 하는 인물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닉네임 꽤 유명해졌잖아. 서강선이 만약 내가 나온 영상들을 봤다면.'
서강선과 강철민은 줄곧 친구였다.
혹여나 내 게임 속 모습을 보고 그가 괴리감을 느낀다면 동화율이 떨어질 확률도 있었다.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는 거예요?"
내가 가만히 선 채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기 때문일까, 옆에 있던 하원이 질문을 던졌다.
그 모습에 나는 무어라 말하려다가 곧 손으로 턱을 감쌌다.
106화
"하원."
"네네."
"넌 내 부탁을 들어줘야만 하는 처지지."
"...일단은요?"
영상은 아직 업로드 안 하고 있지만, 하원은 나를 이용해 영상 채널을 성장시킬 계획을 잡고 있다.
그렇담 그녀와 나는 나름의 공생관계.
"설마 저한테 원하시는 게... 저 하천성 님한테 그런 마음은 아직 없으니까, 그렇게 진심으로 나오시면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나는 하원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아 그대로 힘을 주어 마구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꺄앙 하는 비명과 함께 버둥거리더니, 내 손에서 겨우 빠져나와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
"그래서 무슨 부탁을 하고 싶은데요?"
"지금까지 내 모습은 전부 네 유튜브를 돕기 위해 연기한 거라고 말 좀 맞추자."
"누구한테요?"
"지금부터 내가 만날 지인."
내 말을 듣고 하원은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렸다.
"지인이라면 현실 지인이요?"
내가 고개를 까닥거리자마자 하원의 눈동자 속에서 예리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허튼 생각 하지 말고."
"제가 언제 허튼 생각한 적 있나요?"
"늘 하고 있잖아."
"에잉, 그래도 하천성 님 지인이라면 랭커급 헌터이거나 그에 준하는 사람일 거 아니에요. 아무리 그래도 그런 분께 제가 뭘 할까 봐요?"
하여튼 눈치 빠르기는.
"그런데 왜요? 지금까지 모습이 어때서 지인분한테 숨기시려는 건데요?"
"사정이 있어."
"혹시 현실에서는 지금과 다른 타입?"
부정은 하지 않았다.
그러자 하원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왔다.
"하천성 님은 사실 넷 상에서만 여포였군요. 간혹 있죠. 그런 타입."
"멋대로 생각해. 그것보다 도울 거야, 말 거야?"
"도와야죠. 여부가 있겠어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콘셉트도 확실하게 하죠. 사실 저는 하천성 님이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동생인데. 얼마 전 게이트 사건에 아버지 회사가 휘말리는 바람에 크게 휘청거렸고, 그 탓에 집안 사정이 좀 힘들어진 상황! 저는 부모님의 지원이 끊어진 상황에서 매일같이 알바를 하지만, 그러면서도 줄곧 유튜버의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때마침 하천성 님이 저를 게임에서 극적으로 우연히 만나게 되고, 제 사정을 들은 뒤 또 다른 의미에서 게이트 피해자인 저가 안타까워 도와주고자 했던 거예요."
꾸며낸 이야기를 즐겁다는 양 늘어놓는 하원을 보고 나는 강철민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래 봬도 이 녀석도 재벌 집 아들 포지션.
그의 아버지 회사가 강철민이 태어나기 전에도 나름 괜찮게 버는 게임 회사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근처에 있던 무리들도 꽤 돈 있는 집안 자제들이었다.
'아니, 이건 내 기억이랑 섞였군.'
동화율을 꽤 올렸던 탓일까, 나는 이러한 역할극의 단점을 느끼곤 고개를 저어 기억을 분리했다.
'강철민의 성격이 이래서인지 돈 있는 녀석들이랑은 잘 못 어울렸어.'
정확히는 지인 폭이 매우 좁았다.
학창 시절에 친하게 지낸 사람이라 해봤자 서강선 한 명뿐.
나머지는 정말 서로 이름만 아는 반 친구 정도였다.
'서강선과 친해진 건 중학생부터인가.'
그렇담 하원은 서강선이 잘 모르는 초등학생 시절의 아는 동생으로 해둬야 할 듯싶었다.
"지금 모습도 제가 유튜브가 뜨려면 이래야 한다! 라는 걸로 부탁한 거죠. 어때요. 괜찮은 설정이죠?"
"그래, 그걸로 한다. 넌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때까지 친하게 지낸 동생으로 해 두...."
말을 이어가던 나는 멈칫하며 하원을 돌아보았다.
"너 몇 살이냐?"
"저요? 저 올해로 스물세 살인데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이마를 탁하고 쳤다.
본래 회귀를 겪었긴 하나 지금의 내 나이인 스물네 살로 생각하는 바람에 나는 강철민의 나이를 잊고 있던 것이다.
강철민은 올해로 서른한 살.
하원과는 여덟 살 차이다.
강철민이 초등학교 5학년일 때, 하원은 네 살밖에 안 된 너무 어린아이인 것이다.
친한 동생이라는 설정은 처음부터 막혀 있었다.
"하천성 님은 몇 살인데요."
"서른 하나."
"으아, 그렇게 많아요? 전 분명 기껏해야 저보다 한두 살 많을 줄 알았는데. 그나저나 서른한 살이나 되는 사람이 왜 그렇게 성격이...."
"서른한 살이 뭐, 얼마나 많다고. 아직 어려."
나는 그동안 크라운 로드 회귀를 벌써 5회차나 겪었다.
그 기간은 자그마치 20년.
현재 내 나이와 합치면, 지금의 나는 정신 연령은 거의 44세인 것이다.
물론 난 한 번도 내가 44세라고 생각해 본 적 없으며, 여전히 스물네 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확 늙어 보여요."
그렇기에 하원을 매몰차게 걷어찬 나는 쓰러진 그녀 옆에서 지금까지 말해 준 설정을 뜯어고치기로 하였다.
"네 언니는 몇 살이냐?"
"올해로 스물아홉 살이요."
"적당하네. 설정은 네 언니랑 내가 아는 사이인 걸로 바꾼다. 그리고 네 언니와 내가 우연한 계기로 연락이 닿았는데, 네 언니가 매일같이 게임만 하며 노는 동생이 걱정된 거지. 동생은 하루가 멀다고 스트리머, 스트리머 노래하고 있는데. 정작 그 영상 채널은 잘 되고 있지 않으니, 걱정이 태산인 네 언니가 나한테 말한 거야. 자기 동생을 조금만 도와줄 수 없겠냐고. 그래서 그 부탁을 마지못해 내가 들어주고, 네가 말한 대로 유튜브를 위해 연기해 온 거로 하자."
"저 졸지에 매일같이 게임에, 이루지 못할 꿈을 좇는 집안에서 가장 나쁜 뇬이 되었는데요?"
"싫으면 난 떠난다."
"전 오늘부터 집안에서 가장 나쁜 뇬입니다."
손으로 충성 자세를 취하며 받들어 모시겠다는 듯한 하원을 보고 나는 마음에 든다는 양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런데 하천성 님."
"어."
"그렇게 하면... 음, 아니에요. 괜찮아요."
"뭐야.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딱히 안 해도 될 말인 것 같아서요."
어깨를 으쓱거리며 하려던 말을 얼버무리는 하원을 보고 나는 눈살을 찌푸리다 말았다.
"잘 연기하기나 해."
"네네, 저 연기는 배우 뺨쳐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데 제가 그 설정대로라면 저희 언니와 하천성 님이 아는 사이인데 계속 '님'이라고 부르는 건 어색하지 않을까요?"
"바꿔 부르면 되겠지."
"그럼 천성이 오빠라고 불러야겠네요."
그리 말한 하원은 히죽 웃었다.
"천성이 오빠. 천성이 오빠? 천성이 오빠!"
"넌 적당히라는 걸 모르는구나."
그러자 하원은 더 이상 장난 안 치겠다는 양 자신의 입가를 가렸다.
촐싹거리는 하원을 두고 나는 서강선에게 닉네임과 함께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저쪽에서 서강선의 닉네임 '푸른 강'에게 친추가 걸려 왔고 나는 수락을 눌렀다.
―요, 철민아. 몰랐네. 네가 하천성일 줄이야.
내가 친추를 받자마자 서강선 쪽에서 귓속말이 걸려 왔다.
역시 게임을 하고 있던 서강선도 내 소식을 벌써 전해 들은 듯싶었다.
―사정이 좀 있어.
―하하, 뭔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게임 즐기는 것 같으니 나야 좋지 뭐. 아, 내 옆에 다른 사람 한 명 있는데 만나도 괜찮아?
―딱히 상관없어. 나도 옆에 한 명 있으니까.
―그래? 그럼 스크롤 두 장 보내 놓을게. 여기로 와.
강철민의 말투로 대답하자 선물함에 서강선이 보내 준 스크롤이 들어왔다.
그 스크롤을 확인한 나는 하원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잘하라고 눈짓하자 그녀는 걱정하지 말라는 양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심히 걱정됐지만, 이번 만큼은 믿어 보자고 생각한 나는 스크롤을 사용했고 이내 어느 한 마을에 도착하였다.
그런 날 뒤따라 하원이 도착하자,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던 순간 내 허리를 누군가가 끌어안았다.
"오빠!"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처음 보는 여자가 있었다.
내가 뭐냐 이건 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그녀는 새하얀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며 외쳤다.
"오빠, 저 몰라보시겠어요? 저 뱁!"
그녀가 말을 외치려던 순간 나는 손으로 그녀의 입을 턱 하니 막았다.
그러자 그녀는 커다란 눈망울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올려다보았고, 나는 하원을 힐끔 보았다.
뱁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연상한 것이 있는 듯 하원의 눈동자 또한 내 앞에 있는 그녀 못지않게 커져 있었다.
아니, 애초에 이 녀석 머리 위에 그 이름이 떡하니 박혀 있었으니 숨길 것도 없었다.
그렇다.
이 녀석은 헌터 랭커 5위의 한국 사람은 모를 리가 없는 뱁새였다.
한국 내 여성 헌터의 미모를 꼽는 설문에서 1위로 뽑힌 인물.
주특기인 얼음 마법으로 얼음 공주라는 이명까지 가지고 있는 그녀는 언제나 한국의 게이트 최전선을 달리는 명실공히 랭커급 헌터로 초대형급 유명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나를 랭커급 헌터로 추측하고 있던 하원이 절대 놓칠 리가 없었다.
귓속말로 내 정체를 숨기기 위해 뱁새를 호출하려던 순간, 나는 하원과 내가 짰던 설정을 떠올렸다.
하원의 언니는 내 지인, 그리고 하원도 언니를 통해 내가 아는 지인이다.
아무리 게임에서만 만나고 있는 사이라고 한들 내가 그녀의 유튜브까지 돕고 있는 이상, 하원이 내 정체를 모르는 것도 어딘가 이상했다.
'썩을.'
내가 내 함정에 빠진 것을 자각하자마자 나는 다시 하원을 돌아보았다.
눈앞에 그 뱁새가 있다는 사실에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긴 했지만. 눈치 빠른 하원이 내가 누군지 알아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아니, 강철민의 정체가 어느 정도 드러날 건 지인을 소개하는 시점에서 각오하고 있었던 일이잖아.'
전부 내가 자초한 일이니 누굴 탓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하원과 연관될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안 나는 언제까지고 숨길 수 없음을 깨달았다.
―하원.
그렇기에 나는 얼빠져 있던 하원을 불렀다.
그녀의 고개가 내게로 향하자, 똑바로 마주 보며 내 정체를 밝혔다.
―난 강철민이다.
그리고 하원의 눈이 뒤집어졌다.
―어, 엣?
―내가 랭커급 헌터란 건 예상 하고 있었을 텐데.
―예상했죠! 예상해서 독각이나 아니면 선룡, 무사 백당수까지는 예상했었어요! 그런데 강철민이라뇨! 강철민만은 아닐 거로 생각했다고요!
충격이 큰지 정신을 못 차리는 하원을 보고 나는 말했다.
―받아들여.
―저도 강철민 좋아했거든요? 아니, 사실 나이 들었을 때부터 설마 혹시나 했는데. 제 머릿속에서 제가 알던 강철민의 이미지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있어요. 아, 으으, 뭔가 닮았다면 좀 닮은 것 같기도 한데.
내가 이런 미련퉁이랑 닮았을 리가 있나.
"강철 오빠, 이분은?"
대놓고 나를 강철이라 부르는 뱁새를 보고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정체까지 밝혔겠다, 이렇게 된 거 설정은 확실히 밀고 나가기로 했다.
"아는 동생."
"아는 동생...."
그 순간 뱁새의 눈동자가 표독스럽게 변하더니,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원은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본 뱁새에게까지 나에게 취하던 태도로 대하기는 그런 듯 긴장한 양 쭈뼛거렸다.
"흐응."
조그맣게 콧소리를 내뱉은 뱁새는 눈가를 반달 형태로 만들었다.
그것이 상당히 인위적인 느낌이 들어 불안한 감이 없잖아 있었으나, 그런 걱정과 다르게 그녀는 하원에게 다가가 악수를 해 보였다.
"반가워요. 강철 오빠의 지인분이면 저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어, 아아, 네, 반, 반가워요."
하원이 다급히 뱁새의 손을 맞잡자 뱁새는 그런 하원을 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강철 오빠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107화
"아, 저, 제 언니가 아는 사이라서... 그게 언니가 철민 오, 오빠한테 부탁해서 절 잠깐 도와주기로 했달까요."
횡설수설하면서도 어떻게든 설정은 지키려는 하원의 필사적인 노력이 있었지만, 그것은 불난 집에 부채질은 하는 격이었다.
"언니가 부탁을 했다고요?"
"네, 언니가 철민 오빠한테 제 영상 채널을 좀 도와주는 걸 부탁을."
"그걸 강철 오빠가 들어주었고요?"
"제가 좀 집안에서 모난 돌이라서 언니가 절 걱정해 가지고."
뱁새의 눈빛이 더더욱 무서워지고 있었다.
질투의 불길이 그녀의 주위에 타오르기 시작하자 나는 그제야 하원이 말하려다가 말았던 말이 무엇인지 떠올랐다.
'내가 하원의 언니를 도울만한 이유를 생각 안 해 뒀었다.'
남이 보면 강철민이 하원의 언니를 좋아하여 그녀를 위하여 동생의 뒤치다꺼리까지 해 주는 그런 상황으로 오해하기 딱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변명을 하기에도 이미 타이밍이 어긋나 버린 듯하였고, 뱁새는 조용히 내게로 다가왔다.
"강철 오빠."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가만히 뱁새를 내려다보았다.
하원의 앞에서 질투에 눈이 먼듯한 뱁새였지만, 내 앞에서는 생글생글 미소 짓고 있었다.
"하원 씨의 언니는 어떤 사람이에요?"
아니, 이 미소가 더 무서웠다.
5회차나 크라운 로드를 반복한 나라도 여자의 질투는 무서운 것이었으니까.
"아는 사람이야."
"얼마나 알았는데요?"
"초등학교 시절에 알았던 사이."
"와, 오래됐네요!"
그리고 나는 질투에 눈이 먼 여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말이 무엇인지 안다.
"뱁새, 너보다 오래되지는 않았겠지. 하원의 언니랑은 졸업 이후로 연락이 없었으니까."
그녀가 질투하는 사람 보다 지금의 그녀와 더 깊은 관계라는 걸 내 입으로 인식시켜 주면 된다.
"어, 우웅. 그렇긴 하죠. 저도 강철 오빠랑은 오래 알고 지냈으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뱁새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열심히 내 말에 긍정해 보였다.
위기를 한 턴 넘긴 나는 그 틈에 하원을 보며 빨리 상황을 파악하라고 눈짓했다.
뱁새와 내 충격 고백에 당황했던 하원은 앗 하고 고개를 열심히 흔들어 정신을 되잡았다.
"사정이 좀 있어서 돕고 있을 뿐이야. 헌터 일에는 지장 안 가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전 걱정 안 해요. 강철 오빠가 하는 일인걸요."
내가 강철민 모드로 돌아와 뱁새에게 말하자, 그녀는 언제 질투했냐는 양 예쁘장한 미소를 지었다.
"철민아, 고생 많구나."
누군가 수라장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을까, 이 상황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 다가왔다.
닉네임을 푸른 강이라고 해 놓은 녀석은 서강선이었고, 나는 그를 보며 기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뱁새가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누굴 데려온다고 말은 해 뒀었잖아? 하루 종일 졸라 대서 어쩔 수 없었어. 조를 거면 널 조르지, 왜 날 조르나 몰라."
"강철 오빠한테 폐 끼칠 수는 없잖아요."
"나한테는 폐 끼쳐도 된다는 거냐. 나 이래 봬도 꽤 바쁜데."
뱁새의 앙칼진 말에 힘없이 웃음 지은 서강선은 하원 쪽을 힐끔 보았다.
"그래서 저쪽은?"
"지인이야. 아는 사람 동생."
"네가 아는 사람도 다 있어?"
"초등학생 때 지인, 일이 있어서 좀 돕고 있어."
"흐음, 그래?"
다행히 서강선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 증거로 동화율은 조금도 내려가지 않았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자, 서강선이 하원과 인사를 나눴다.
하원은 그의 정체를 눈치채곤 어버버 거렸다.
나를 대할 때와는 달리 볼까지 붉히는 것이 조금 눈꼴사나웠지만 신경 끄기로 했다.
"그래서 뭐 하러 모았어?"
하원과 인사를 마친 서강선에게 물음을 던지자 그는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돌아보았다.
"그야 같이 게임 하러 모인 거지. 뭐 있겠어?"
"게임 안에서도 할 수 있는 게 많잖아."
"아, 그렇긴 하네. 나도 디스 헌터 시작한 건 최근이라 사냥이랑 장비 제작 정도밖에 안 해 봤거든."
하긴, 친구 창에 뜬 서강선의 레벨은 나보다도 낮았다.
나를 따라 이제 막 시작한 뱁새는 말할 것도 없었고.
"저기 그렇담 레이드나 해 보시지 않을래요?"
그런 순간 하원이 슬쩍 제안을 해 왔다.
눈을 반짝이는 것이 잘 팔릴 것 같은 소재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레이드라면 분명 보스 몬스터를 함께 잡는 거였던가?"
"항상 하던 거네요."
서강선의 말에 뱁새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 게임이 애초에 실제 있는 헌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니 그들에겐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현실이랑은 여러모로 달라요! 여러분들도 분명 재밌을 거예요!"
이미 우리가 랭커급 헌터란 걸 알고 있는 하원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열심히 이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하원에게 슬쩍 다가가 말했다.
"야, 나야 상관없지만. 저 둘이 네 영상에 출연해 줄지는 모르는 일인데 괜찮나."
"괜찮아요. 제가 설득할 거니까요!"
나도 제대로 설득 못 했던 놈이 무슨.
어디에서 자신감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나는 알아서 하라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하원이 설득을 실패하든 말든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고.
"그래, 기왕 놀려고 모인 거니까 다 같이 하는 게 좋지. 레이드 해 보자. 철민이 너도 괜찮지?"
시큰둥한 뱁새의 반응에 서강선은 분위기를 바꿀 겸 하원의 말을 받아주었다.
"상관없어."
"강철 오빠가 한다면야."
어차피 나도 레이드에는 줄곧 관심 있었고 말이다.
* * *
하천성이 한참 게임을 할 무렵.
길거리를 거닐던 중학생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은 자그마한 체구의 아이, 다른 한 명은 또래의 평균 정도 되는 키를 가진 여자아이였다.
각자 콘 아이스크림을 한 손에 든 두 사람은 수업을 마친 뒤 하교하는 길이었고, 적당히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네 언니 이번 손성 건물 게이트 때 거기 있다고 하지 않았어?"
"응, 그런데?"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작은 소녀가 답하자 그녀의 친구는 흥분된 기색으로 물었다.
"그렇담 이번에 강철도 출동했다고 하던데 봤대?"
사상자도 있었던 만큼 기뻐할 일이 아니었지만, 철없는 중학생인 그녀는 헌터에만 정신이 팔려 잔뜩 들뜬 얼굴로 물음을 이어갔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작은 소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구해줬대."
"와, 대박이다. 좋겠다. 나도 강철민에게 구해지고 싶어."
그 말을 듣고 작은 소녀는 아이스크림의 콘 부분을 와작 깨물었다.
'딱히 별거 없던데.'
그래도 이 말을 하면 친구가 화낼 걸 알기에 그녀는 속으로만 삼키기로 했다.
그런 순간이었다.
작은 소녀는 누군가 자신을 향해 맹렬히 달려오는 기척을 느꼈다.
그의 목표는 자신인 듯하였고 그녀는 피하려다가 옆에 있는 친구를 떠올리곤 움직임을 멈췄다.
'뭔가 휘말린 모양이지만.'
자신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그녀는 그냥 있어 주기로 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해결되겠지.'
그 생각을 끝으로 작은 소녀의 몸이 부웅 떴다.
"미리야!"
순식간에 납치되는 소녀를 보고 친구가 비명을 지르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소녀는 태평하게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 * *
우리가 레이드를 시작한 뒤로 1시간.
결과는 뻔했다.
"괴물들."
예상은 했을 테지만, 결과를 보고 하원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원래 30인을 모집하여 잡는 레이드 몬스터를 고작 3명이 잡아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나보다도 레벨이 낮은 서강선과 뱁새의 딜은 한참 모자랐지만, 둘은 내가 수월하게 대미지를 넣을 수 있도록 미끼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
"이 게임, 레벨이 의미가 있냐?"
"있거든요. 그래도 뱁새 님이랑 푸른강 님이 몇 번 죽을 뻔하신 거 제가 도와줬으니까요."
자신도 공로가 있다는 양 엣헴 하고 소리 내는 하원을 보고 나는 그러려니 했다.
"철민이, 너 전투 스타일 바꿨구나."
"게임이니까."
그새 강철민과 다르게 싸운다는 걸 눈치챈 서강선이 말을 걸자 나는 대강 넘겼다.
"하긴, 도각이 싸움 거는 영상에서 이미 봤긴 했었어."
"도각 녀석, 또 강철 오빠를 귀찮게 했어요?"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뱁새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그 녀석은 강철 오빠한테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어서 그래요.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괜찮아. 신경 안 써."
왠지 모르게 도각이 조금 불쌍해 보이는 건 왜일까.
"다음 레이드 몹은...."
"또 잡게요? 헌터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딜이 충분하지 않아서 이거 잡는 데만 1시간 걸렸는데."
내 물음에 하원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원래 뭐든지 쉽게 잡히면 재미없는 법이야."
이건 내가 직접 겪어 봐서 할 수 있는 말이다.
"아, 강철 오빠, 여기 성직자라는 것도 있데요. 내가 성직자 해서 오빠 힐 잔뜩 해 줄게요."
"아니, 나도 직접은 성직자 쪽이야. 넌 다른 직업 해."
옆에서 교태를 부리는 뱁새에게 나는 선 긋 듯 말해 주었다.
뱁새의 말 한번 잘못 받아주면 동화율이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오만의 아틀리에'가 확실히 여자는 조심하는 것이 맞는다고 조언합니다.]
['오만의 아틀리에'가 당신에게 '순결의 월계관'을 내리고자 합니다.]
'이게 미쳤나. 누굴 고자로 만들려고.'
이성을 향한 색욕을 모조리 잃어버리게 하는 월계관을 멋대로 내게 채우려 하자 나는 성을 내며 내쳤다.
['오만의 아틀리에'가 조그마한 고개를 옆으로 기울입니다.]
['오만의 아틀리에'가 당신은 불순한 이성 관계를 싫어하여 여자를 거부하는 게 아니었냐고 살짝 침울해합니다.]
내가 여성과 엮이지 않는 것은 크라운 로드 탓이다.
이곳에서는 어떤 관계를 맺더라도 모조리 박살 나니까.
그걸 나는 1회차 때 여자를 사귀며 깨달았다.
층에서의 인연은 의미를 두지 않아야 한다.
그렇기에 이성에게든 누구든 나는 깊은 마음을 주지 않고 떨쳐 내는 것이다.
'멋대로 남을 판단하지 마. 썩을 성좌들아.'
저 녀석들은 늘 그렇다.
우리가 자신의 애완견이 싫든 좋든 옷을 입히거나 예뻐해 주듯 성좌 녀석들도 똑같은 짓을 참가자에게 하는 것이다.
설령 우리가 자신들의 목을 물 수 있게 되더라도 녀석들의 행동은 늘 자기 주관이다.
['서릿발의 고양이'가 눈웃음 지으며 새하얀 꼬리를 살랑거립니다.]
['돌원숭이'가 꼬우면 너도 성좌 되라며 귀를 후벼 팝니다.]
['이매망량의 속앓이'가 '돌원숭이'의 말에 동감하며 깔깔거립니다.]
['오만의 아틀리에'가 침울하게 검지를 맞부딪칩니다.]
시끄러운 성좌의 알림을 한 번 털어 낸 나는 다음 레이드를 알아보고 있던 하원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하원의 표정이 뒤바뀌었다.
"잠깐, 잠깐만요. 죄송해요. 잠시만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하원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갑자기 하원이 접속을 종료해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고, 곧 서강선과 뱁새가 이쪽으로 왔다.
"무슨 일 있나요?"
"뭐야, 무슨 일이야?"
"몰라. 갑자기 나가 버렸는데."
사라진 하원을 멀뚱히 보고 있던 나는 돌아오면 알아서 연락하겠지 하며 생각하고 레이드 몹을 찾아 떠났다.
'안 오네.'
그리고 그 뒤로 세 시간 정도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나간 뒤로 하원은 쭉 접속이 없었고, 나는 슬슬 어딘가 묘한 느낌을 받았다.
성좌가 준비한 이벤트가 터지기 직전에 나오는 불온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친구 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을까, 갑자기 그중 하나가 번쩍하며 빛이 들어왔다.
108화
그 불빛의 주인은 하원이었고 나는 곧장 녀석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야, 너 무슨 일 있냐.
―....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한 번 물으려던 순간 하원이 먼저 귓속말을 해 왔다.
―하천성 오빠, 저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돼요?
하원의 떨리는 목소리가 귓속말을 타고 들려온 순간 나는 되물었다.
―뭔데?
―그런데 이게 게임 관련한 부탁이 아니라....
―그러니까 뭐냐고?
어서 말하라는 양 재촉하자 하원이 태연한 척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여동생이 누군가한테 끌려갔데요. 옆에 있던 동생 친구가 경찰에 신고했는데 아직도 찾지를 못했어요. 그 애 말로는 순식간이었다고 해요. 너무 빨라서 사람 같은 움직임이 아니었다고. 여동생을 납치한 사람이 아마 헌터인 거 같다고 말해 줬어요. 하천성 오빠는 헌터잖아요. 그래서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
하원은 일부러 뻔뻔하게 말을 내뱉고 있었다.
억지로라도 내가 부탁을 들어주게 하기 위해 그런 식으로 굴고 있었다.
자신은 미워해도 되니까, 이건 큰일이 아니니까, 좀 한 번만 도와달라고.
나는 지금까지 일부러 하원과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있었다.
뱁새 탓에 내가 강철민이라고 들통나긴 했지만, 이전까지의 나를 봐 온 하원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내게 이런 부탁을 해 왔다는 건.
―하원.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거겠지.
―경찰도 나서 주고 있긴 한데. 역시 헌터 관련 일은 좀 힘든 모양이라. 언니도 막 울고 엄마도 여기저기 다니고 있어서 집안 분위기 어수선하거든요. 어떻게 안 될까요? 에이, 랭커급 헌터인데 이런 것 하나 정도는 도와줘도 큰일 아니잖아요.
―그만해라.
짓궂게 말을 내뱉던 하원이 내 말에 하던 말을 멈췄다.
그러곤 곧 흐느끼는 목소리가 귓속말을 타고 천천히 흘러들어 왔다.
어떻게든 자신은 괜찮다고 연기하고 있는 하원이었지만, 녀석은 여동생이 혹시나 잘못될까 봐 불안한 감정을 억지로 숨기고 있었다.
―...죄송해요. 그런데 이런 걸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제발 부탁이에요. 저희 여동생 좀 찾아주세요. 제발 구해 주세요.
결국 하원은 터져 나온 감정을 참지 못하고 내게 호소했다.
―울지 마. 도와줄 테니 네 여동생이 언제 어디서 납치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이랑 다 보내. 전화번호 가르쳐 줄 테니까.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자 하원은 연이어 사과했다.
그런 하원을 두고 나를 멀뚱히 보고 있던 뱁새와 서강선을 돌아보았다.
"둘 다 일 좀 해 줘야겠다."
랭커급 헌터 지인을 건드린 놈 개 박살 내 줄 시간이다.
* * *
[6] 선룡 : 도각, 최근에 어디 갔냐. 이 등신 또 뭔 일 생겼나?
[9] 무사 백당수 : 올, 그래도 친구 걱정 해주심?
[6] 선룡 : 아니, 하루에 한 번은 욕먹어야 정신 차리는 놈이니까. 마침 쿨타임이 되어서.
[10] 보리밥 : 선룡아 너 그냥 도각이 없으니까 심심한 거잖아.
오늘도 시끌벅적한 랭커 채팅방.
게이트 경보가 뜰 때 말고는 쓸데없는 이야기가 오고 가는 이 채팅방에 한 채팅이 불쑥 솟아올랐다.
[2] 강철 : 다들 부탁 하나만 하자.
2위 강철의 부탁.
그의 채팅이 떠오르자마자 채팅창 모두가 물음표를 띄웠다.
강철민, 랭커급 헌터들 모두가 인정하는 최정상급 헌터.
설령 자신이 다치더라도 언제나 사람을 최우선적으로 구하고, 티끌만 한 비리조차 없으며 홀로 묵묵하게 일을 수행하는 헌터가 그다.
그의 모습을 보고 반해 헌터가 된 자들이 랭커급 헌터에서도 더러 있을 정도이며 강철민 하면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자 작은 부탁 한 번 하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한 것도 알고 있다.
그런 그가 지금 생전 하지 않던 부탁이라는 말을 내뱉은 것이다.
[4] 맑은가람 : 누구 부탁인데 들어줘야죠.
[9] 무사 백당수 : 출발 준비 온.
[8] 백노현 : 이거 별일이구만. 말만 하게.
[7] 도각 : 강철 형님, 저 왔습니다. 준비되어 있으니 말만 하십쇼.
[6] 선룡 : 강철 형님, 도각 저 머저리 무시하시고 말하세요. 전력으로 돕겠습니다.
[10] 보리밥 : 뭐하면 될까요?
그 뒤로도 모든 한국의 랭커급 헌터들이 강철민의 부탁을 들어주겠다며 발 벗고 나섰다.
나라 하나쯤은 가볍게 뒤엎을 수 있을 전력이 강철민의 부탁 하나로 전부 나서 준 것이다.
[2] 강철 : 아는 사람의 동생이 납치당했어. 납치한 사람은 헌터인 거 같다. 그래서 좀 찾아줬으면 해.
그리고 강철민이 부탁의 이유를 설명한 순간 채팅창이 미친 듯이 불타올랐다.
감히 대한민국에 있는 헌터가 강철민의 지인을 건드리다니, 이건 대한민국 모든 헌터의 얼굴을 먹칠하는 꼴이었다.
[7] 도각 : 쳐 죽일 새끼, 누구냐! 썅! 당장 애들 풀겠습니다!
[8] 백노현 : 허허, 우리 도장도 움직이겠네.
[6] 선룡 : 저희 쪽 애들 전부 부르겠습니다.
[4] 맑은가람 : 이거 참, 제자들 다 불러야겠네요.
[3] 서쪽강 : [사진] 우선 납치당한 아이 사진과 납치됐던 시간 전부 적어 놓겠습니다. 헌터 총회국도 같이 움직입니다. 애 이름은 한미리, 올해 중3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헌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미리를 찾기 위해 모든 최정상급 감지계 헌터들이 총출동을 하여 탐색을 시작하고, 추적이 특기인 헌터들이 현장으로 향해 경찰들과 협조하였다.
사람 한 명을 찾기 위해 대한민국 모든 헌터가 움직이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헌터가 총동원된 순간, 해결하지 못할 범죄란 없었다.
[18] 용접사냥꾼 : 찾았습니다. 서산 타운 물류 센터 지하 2층입니다. 한미리 양은 그곳에 있습니다.
추적계 헌터 중 최고인 용접사냥꾼의 말이 랭커 채팅방 위로 올라온 순간, 서산 타운 물류 센터 앞으로 수십 대의 차가 도착했다.
그 차에서는 TV에서나 볼법한 헌터들이 하나둘 내리고 있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것은 최상위 랭커급 헌터들.
메인 게이트 혹은 A급 서브 게이트에서나 볼 수 있는 그들이 전원 그곳에 서 있었다.
"자, 시작하자."
서강선이 운을 띄운 순간 헌터들이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그러면서 그 뒤를 따라 걷는 강철민과 랭커급 헌터들이 대화를 나눴다.
"아이러니하네요. 이런 식으로 한국에 들어온 노스트라 녀석들을 알아내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옆에선 뱁새가 실소를 내뱉으며 말하자 서강선도 동의했다.
강철민의 부탁의 여파는 분명 대한민국 헌터 전원을 움직이게 하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이 일은 생각 이상으로 큰 것이 연류되어 있었다.
그것은 이제는 미국에 그치지 않고 세계적인 범죄 헌터 조직이 된 노스트라가 한국에 잠입해 작당을 벌이고 있는 것을 이번 일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닌지 어쨌든 운이 없는 녀석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