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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인벤토리에서 은화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고현우가 말릴 새도 없이 슬롯머신에 집어넣었다.

"...."

"...."

그러나 기기는 여전히 깜깜하기만 했다.

한참이나 둘이서 아무 말 없이 스크린만 바라보다가,

참다못한 고현우가 입을 열어 뭐라 말하려던 순간,

"아무래도 고장—"

- 띠롱띠롱!

갑자기 오락기 같은 소리가 울리며 슬롯머신의 모든 전구에서 불빛이 요란하게 번쩍거렸다.

"오...."

감탄사를 흘리는 고현우와 달리, 나에게는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광경이었다.

히든 이벤트, <고장 난 것 같은 슬롯머신>.

무수한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아는 사람만 아는, 그리고 하는 사람만 하는 이벤트다.

열차에 처음 탑승하는 건 튜토리얼도 다 끝나지 않은 극초반부.

초보들 눈에 10번 차량 끄트머리에 처박혀 있는 낡은 슬롯머신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리고 설령 이곳에 슬롯머신이 있다는 걸 눈치채더라도, 떡하니 '고장'이라고 붙어 있는데 귀중한 은화를 넣어 볼 엄두가 나겠는가.

나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파악한 게 아니고서야.

레버를 잡아당기자 화면 세 개가 어지럽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휘리리릭—

다양한 그림들이 지나간다.

얼음, 거미, 사과, 다이아몬드, 화염, 코끼리, 마나....

[얼음] [마나] [물]

덜컹, 소리가 나며 슬롯머신 상품 출구에서 아이템이 나왔다.

500mL 생수. 당연히 꽝이다.

'기대도 안 했다.'

태연하게 다음 동전을 넣고 레버를 당긴다.

또다시 휙휙 바뀌는 화면 셋.

흥미롭게 지켜보던 고현우가 물었다.

"그래서 김 형, 본인이 동행한 이유는 무엇이오?"

"지금 이거, 엄밀히 따지면 교칙 위반이거든."

"이해하기 어렵군. 도박에 쓰이던 기계라고는 하나 교칙 위반까지 갈 일이오?"

"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야. 여기에서 나오는 아이템이 문제지."

슬롯머신의 최고 보상인 [암흑빙정], [귀여운 극독], [연옥용암].

모두 학생이 소지해서는 안 되는 '금지 아이템'에 속한다.

얻는 순간부터 학생선도부의 이목을 피해 다녀야 한다는 뜻이다.

"과연, 하면 본인은 망을 봐주면 되겠소?"

"어. 만에 하나 걸렸을 때 시간까지 끌어 주면 더 좋고."

"으음.... 아까 봤던 자들을 상대하게 될지도 모르겠구려."

"그럴 가능성이 크지. 어려울 것 같냐?"

지나가는 듯 가볍게 물었지만 나는 내심 고현우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사실 일방적으로 그에게 리스크가 큰 일이다.

이득 보는 건 딱히 없는 반면, 교칙 위반에 학생선도부와 마찰을 빚을 가능성까지.

그러나 고현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해 보리다. 승리를 점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잠시 시간을 끄는 건 가능할 거요."

"의외네. 그래도 조금은 고민할 줄 알았는데."

"하하.... 한번 발을 들였으면 끝까지 함께하는 게 강호인의 도리라 했소. 이 또한 송 소저와 신 형의 다툼에 끼어든 것처럼 무언가 뒷사정이 있어서겠지. 나중에 전부 설명해 주기요."

"그래, 고맙다."

호기롭게 말하지만 약간은 긴장이 되는지 철검을 슬며시 쓰다듬는 고현우였다.

나는 다음 동전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근데 별일 없을 거야. 선도부도 여긴 그렇게 자주 안 오거든. 시기상 지금은 1번 차량 쪽으로 가는 중일 테니 걱정 안 해도,"

"안뇽안뇽! 거기서 뭐 해?"

"?"

"?"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홱 돌렸다.

2학년 구역인 11번 차량 쪽에서 여학생 한 명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2학년은 아니고, 이미 한번 봤던 얼굴이다.

방긋거리며 웃는 귀염상 얼굴과 팔에 찬 선도부 완장.

한소미였다.

"걱정을.... 해야겠구만."

"...검후의 제자라 했소?"

"그렇다더라."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서포터가 다 해먹음

6화 히든 피스 뽑기 (2)

열차에서 선도부는 일반적인 파티 단위인 4인 1조를 짜서 다니지만, 아주 특수한 경우 개별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하필 지금이 그 아주 특수한 경우인가 본데, 나로서는 운이 없는 셈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고.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고현우에게 말했다.

"나 1실버만 빌려주라."

"은화 한 개로 되겠소?"

"한 개면 충분해."

더 있어 봤자 무의미하다.

나는 고현우가 튕긴 1실버를 허공에서 잡아챘다.

"믿는다."

"맡겨 두시오."

내가 동전을 투입하고 레버를 당기는 걸 보고, 한소미가 어린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얘들아, 그건 쓰면 안 돼. 학생들이 만지지 못하게 하랬어."

하지만 한소미가 한 걸음 다가오자 고현우도 한 걸음 나서며 앞길을 가로막았다.

"...?"

"부득이하게 실례를 범하게 된 점, 미리 사과드리겠소. 허나 더 이상은 지나갈 수 없소이다."

"계속 쓰겠다는 말이야?"

"그렇게 되었소."

한소미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고현우가 상황 파악을 못 했다고 생각했는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교칙을 위반하면 벌점을 받을 수도 있어. 그리고 교칙 위반 학생을 도와주는 것도 벌점 대상이라구."

"상관없소."

"학기 초부터 벌점을 받는 건데 왜 상관없어?"

"본인이 선택한 일이오. 그러니 마땅히 결과 또한 본인이 감내해야겠지."

"허."

한소미가 작게 헛바람을 터트렸다.

그제야 말이 안 통하는 상대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같은 편인 내 입장에서는 든든하지만 쟤 입장에서는 심히 답답하겠지.

한소미가 다시 뭐라 말하려던 찰나, 고현우가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보였다.

"한 소저는 검후께 검술을 사사(師事)했다 들었소. 한 수 견식 할 기회를 주시겠소?"

태도는 정중했지만 조금 삐딱하게 돌려 말하면 이런 뜻이다.

'아~ 꼬우면 검후한테 배운 검술로 뚫고 지나가 보든가~'

한소미 역시 그 속뜻을 알아들었는지 입술을 몇 번 삐죽거리곤 물었다.

"...너, 이름이 뭐야?"

"고현우라 하오."

"난 싸우는 거 별로 안 좋아해. 그치만 승부를 걸어오는 사람이 있을 땐 무시해서도, 피해서도 안 된다고 우리 스승님이 그랬어."

"좋은 가르침이오. 본인의 사부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지."

고개를 끄덕이는 고현우였다.

한소미는 그대로 검을 뽑아 들려다가 멈칫했다.

"맞다. 지금은 검 쓰면 안 된댔는데."

용살학원 교복은 D급 방어 마법이 여러겹 둘러져 갑옷 이상의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지금 고현우는 아직 하산한 지 얼마 안 돼서 무복 차림이니, 이 상태에서 칼부림을 했다간 크게 다칠 수도 있다.

"부득이하게 학생을 제압해야 할 때에는...."

주섬주섬 다른 것을 꺼내 든다.

강철로 이루어진 짧은 봉이었는데, 붙어 있는 버튼을 꾹 누르자,

- 철컥!

봉이 세 배로 길어졌다.

진압용 삼단봉이었다.

"이걸 쓰랬어!"

검보다 다소 살상력이 떨어진다 뿐이지, 상대를 제압하기에는 차고 넘친다.

더군다나 쓰는 사람이 검후의 제자라면 아무리 무쇠 막대기라도 나름의 검술이 묻어 나오는 법이다.

고현우가 싱긋 웃었다.

"손속에 사정을 두는구려. 그렇다면 본인만 전력을 다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소?"

허리에서 철검을 풀어내더니 검집째로 들어 올려 보였다.

"본인은 이걸 쓰지. 한 수 부탁드리겠소."

"좋아, 그럼!"

한소미가 앙증맞게 발을 굴렀다.

제자리에서 가볍게 통 튀어 오르나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고현우의 바로 앞까지 쇄도했다.

삼단봉이 곧장 목젖을 찔러 들어왔다.

고현우가 슬쩍 몸을 비틀어 피했으나, 그마저도 예상했는지 찌르던 그대로 궤적을 바꿔 후려친다.

이번에도 고현우는 가볍게 한 발짝 물러나 삼단봉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한소미는 즉시 자세를 고쳐잡곤 첫 공격과 같은 찌르기로 간격을 좁혀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삼단봉의 끄트머리가 알아차리기 힘들 만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흔들리는 폭이 커지더니, 마치 분신술을 쓴 것처럼 셋으로 나뉘며 각기 다른 세 방향에서 고현우를 후려친다.

엄청난 속도 탓에 셋으로 나뉜 것처럼 보인 것이다.

"...."

고현우는 그것을 유심히 살피다가, 손에 든 검집을 공격 범위 안에 쑥 밀어 넣은 뒤 한 차례 가볍게 흔들었다.

- 따다당!

들리는 소리로 판단하기에 방어에는 성공한 것 같지만, 그럼에도 손해를 봤는지 반걸음 물러난다.

한소미는 그 우세를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고현우를 몰아쳤다.

고현우는 조금씩 물러나면서도 빈틈없이 공격을 막아 냈다.

- 덜컹,

관전하던 도중 슬롯머신이 또 500mL 생수를 뱉었다.

생수를 옆에 세워 두고 또 한 번 슬롯머신을 작동시킨다. 3실버째.

당장 나오는 아이템들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꽝일 테고, 꽝이 아니라도 시원찮은 것들뿐이니까.

화면에서 아예 시선을 돌려 두 사람의 전투에만 집중한다.

'기교는 안 밀려.'

철검을 검집째로 휘두르느라 운신에 약간의 제약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동수를 이루는 셈이다.

검후의 제자와 거의 동수.

1학년에서는 최상급이라는 의미다.

첫 만남 때 예상했던 대로 훌륭한 재질이었다.

- 땅! 따당!

고현우는 비슷한 방식으로 삼단봉의 궤적에 검집을 찔러 넣어 공격을 차단했다.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한소미는 한층 더 깊이 파고들며 손잡이로 고현우의 관자놀이를 찍으려 했다.

그러나 고현우는 검집을 쥐지 않은 손으로 한소미의 손목을 가볍게 쳐올리고, 팔꿈치를 휘둘러 역공했다.

"!!"

얼굴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주먹, 손, 삼단봉, 검집, 무릎, 팔꿈치가 어지러이 얽힌다.

이번에 물러난 것은 한소미였다.

초근접 거리에서 일어나는 박투는 고현우가 한 수 위인 것 같다.

[레몬] [사과] [오렌지]

-덜컹,

슬롯머신이 네 번째 상품을 뱉었다.

이것도 꽝이지만 그나마 500mL 생수는 피했다.

[비타민 드링크(E)]

▷각종 비타민이 풍부하게 함유된 음료수.

▷피부 미용에 매우 효과가 좋습니다.

'두 번 남았군.'

슬롯머신은 카지노의 대표적인 게임 중 하나.

그런 인식 탓에 이 히든 이벤트를 접하는 플레이어들은 모든 게 운빨이라 생각하곤 한다.

확실하지 않은 도박에 은화를 낭비하느니 나중을 위해 아껴 두는 게 이득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사실 하나.

이 슬롯머신에는 최고 보상을 확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일명 '천장'이 존재한다.

6회, 30회, 100회째.

30회 이상은 상인 계열 스킬을 보유하지 않은 한 거의 불가능하고, 내 목표는 6회째의 천장이었다.

이 6회 천장도 교묘한 것이,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전 재산이 5실버다.

그냥 들이받으면 올인을 해도 천장을 못 치는 것이다.

단 1실버만 더 넣으면 된다는 점을 모르고.

그래서 미리 고현우에게 1실버를 빌린 것이다.

다섯 번째로 슬롯머신의 레버를 당겼다.

치열하게 삼단봉과 검집을 맞대는 두 사람을 잠시 구경하자니,

[마나] [마나] [7]

- 덜컹,

[마나 2%(D)]

▷응축된 마나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복용 시 최대 마나량이 소폭 증가합니다.

'2매치는 잘 안 나오는데.'

마나량을 소폭 늘려 주는 음료.

대박까지는 아니지만, 뜻밖의 수확이었다.

나름 운이 좋은 편이라 하겠다.

이제 대망의 천장이다.

앞선 다섯 번과 달리 아주 조금은 긴장하며 동전을 넣고 레버를 당겼다.

빠르게 회전하는 화면, 휙휙 바뀌는 그림들.

'[귀여운 극독]만 안 걸리면 돼.'

최고 보상은 세 종류인데, [귀여운 극독]만큼은 당장 내가 못 써먹는다.

포기하고 선도부에 넘겨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상 1/3 확률로 투자금 6실버를 날리는 셈이니 가급적이면 피해 갔으면 한다.

하지만 나머지 2/3 확률로 원하는 보상이 나오고, 거기에서 얻는 이득을 생각하면 충분히 걸어 볼 만했다.

- 휘리리릭—

휙휙 넘어가던 세 화면의 속도가 점차 줄어들더니, 한 화면씩 결과물을 띄워 냈다.

[얼음] [얼음] [얼음]

'됐어.'

- 덜컹,

그렇게 드랍 된 아이템은 별사탕쯤 되는 크기의 결정들이 담긴 유리병.

원래는 얼음이었을 결정들이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군청색으로 물들어 다소 불길한 느낌을 준다.

[암흑빙정(C)]

▷까맣도록 차가운 맛.

▷복용에 각별히 주의하십시오.

▷주의:당신은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가져가면 안 돼."

그렇게 말하는 한소미의 분위기는 여태까지와 사뭇 달랐다.

여태까지는 그래도 사람 좋게 방긋방긋 웃으며 우리를 대하고, 고현우와도 나름 친선 대련을 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생사 대적을 만난 것처럼 진지하다.

왜 저런 반응인가 하면, 이 [암흑빙정]이 '금지 아이템'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걸 보유한 지금부터 나는 실시간으로 교칙을 어기고 있는 셈이다.

"넘겨줘."

"싫은데."

한소미가 다가오며 한 손을 내밀어 보였으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순순히 넘겨줄 생각이었다면 아예 시작조차 안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동조한다는 듯 고현우가 다시 앞을 가로막았다.

"...."

한소미는 역시 말로는 안 되겠다고 여겼는지 삼단봉을 중단으로 들어 올렸다.

고현우와 대련하며 몇 번이고 취했던 자세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변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은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기세를 끌어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소미가 발을 구르자, 신형이 흐릿하게 변하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

고현우가 황급히 검집을 들어 올리고,

한 줄기 섬광이 번쩍인다 싶은 순간.

- 쩌엉!!

"크으윽...!"

차원이 다른 일격에 고현우의 신형이 옆으로 주르륵 밀려났다.

어떻게 공격을 막아 내긴 했지만, 그 대가로 검집에 살짝 금이 갔다.

고현우는 자세를 다잡고 기세를 끌어올렸고,

- 쩌엉!!

다시 한번 한소미의 일격을 가까스로 방어했다.

'[코어]가 살짝 아쉽네.'

한소미의 삼단봉에서는 여전히 마나가 줄기줄기 피어오르는 반면, 고현우의 검집에서 흘러나오는 마나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 미약하다.

고현우가 가진 [코어]의 등급이 한소미의 것보다 낮고, 그로 인해 가용하는 마나의 양도 적기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더 못 버티겠냐?"

"솔직히 어려울 것 같소."

고현우 역시 자신의 약점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이대로는 승산이 매우 낮다는 사실도.

하지만 아직은 포기하게 두지 않는다.

아직 더 볼 게 남았으니까.

"1분만 더 해 봐."

이럴 때 동료의 부족함을 메꾸는 것이 바로 서포터의 역할이다.

['증폭'을 사용합니다.]

[대상의 특성 '코어'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E->C)]

[지속시간 00:00:58]

[재사용 대기시간 00:59:58]

곧바로 자신의 코어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힘을 감지한 고현우가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고,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1분만 더 날뛰어 봐라.

서포터가 다 해먹음

7화 히든 피스 뽑기 (3)

환생 퀘스트 특전으로 가져온 세 스킬 중 하나, [증폭].

지속 시간 동안 지정한 스킬의 랭크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졌다.

가령 지금 내가 보유한 F급 [증폭]은 1분 동안 스킬 랭크를 두 단계 끌어올린다.

E급이라면 C급으로, C급이라면 A급으로.

겨우 1분 증폭에 쿨타임이 1시간이나 되지만, 그 제약을 감수할 만큼 막강한 효과다.

- 쩌엉!!

고현우는 무기를 맞댈 때마다 속절없이 밀리던 바로 전과 달리 철탑처럼 그 자리를 지켰다.

움켜쥔 검집에 넘실거리는 푸른 기운.

[코어]의 랭크가 E에서 C로 올라갔기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막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공세에 나선다.

한소미는 급격히 치솟은 고현우의 기세에 순간 당황한 듯 보였으나,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들어오는 공격들을 하나하나 피하고 되받아쳤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공방이 훨씬 더 빠르고 격렬해졌다.

집중하지 않으면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훌륭하군.'

갑자기 늘어난 마나를 다루기 버거워할 법도 한데, 고현우는 원래부터 제 것인 양 능숙하게 분배하고 있었다.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가능하면 검술까지 보고 싶은데.'

[지속시간 00:00:16]

그건 욕심이겠지.

뭘 보고 싶어도 고작 1분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아마 지속시간이 다 끝나기도 전에 승부가 날 것 같다.

- 쩌저적,

"이런!"

고현우가 싸우다 말고 시선을 내렸다.

검집에 거미줄처럼 금이 쩍쩍 갔다.

한소미의 일격을 막으며 생겼던 아주 작은 균열이 계속해서 커지다가 결국 이렇게 된 것이다.

이내 철검은 퍼석하는 단말마와 함께 검집째로 두 동강이 나 버렸다.

재질이 조금만 더 좋았으면 버텼을지도 모르지.

싸구려 철검의 한계였다.

'이만하면 볼 건 다 봤다.'

꽤 유익한 시간이었어.

나는 [암흑빙정]의 마개를 따고 내용물을 단숨에 입에 털어 넣었다.

"헉!!"

한소미가 그런 나를 보고 기겁을 했다.

한달음에 거리를 좁혀서 내 손을 붙잡았지만, 검푸른 결정들은 이미 내 배 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한소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너, 너 그거.... 먹으면...."

이걸 먹으면 어떻게 되냐고?

처음에는 얼음 한 컵을 들이켠 것처럼 시원하다.

그러다 점점 시원함이 싸늘한 한기로 변한다.

온몸이 내장부터 얼어붙는 감각.

['빙결' 상태이상이 적용됩니다.]

<용살학원>을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에게 이 암흑빙정은 극독 중의 극독이다.

손톱만 한 빙정 한 개만 입에 넣어도 삽시간에 얼음 조각상이 되고 만다.

물론 나는 예외다.

S랭크 [원소 저항]을 갖고 있으니까.

['빙결' 상태이상이 해제됩니다.]

['빙결' 상태이상이 적용됩니다.]

['빙결' 상태이상이 해제됩니다.]

....

암흑빙정이 계속해서 한기를 내뿜지만 어림도 없다는 듯 곧바로 해소해 버린다.

플레이어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한기가 사라지는 반면, 빙정에 담긴 막대한 기운은 그대로다.

그 기운이 체내에 차곡차곡 쌓인다.

'독약과 영약은 종이 한 장 차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