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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2주 차 공략전 (2)

이번 공략전에서 내 목표는 두 가지.

하나는 수업 중에 도착한 퀘스트다.

[서브 퀘스트:2주 차 공략전]

▷목표:공략전 던전 클리어

▷기한:~일요일 자정

▷보상:남은 시간에 따라 차등 지급 (?/5분)

시간을 많이 남기고 클리어할수록 좋은 보상이 지급된다.

덧붙여 퀘스트 내용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1인 던전과 2인 던전 모두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면 보상이 더욱 강화된다.

내 목표는 당연히 최고 보상.

'둘 다 1분 이내에 끝낸다.'

성공한다면 강력한 직업 특성 하나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진 스킬과 특성의 개수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복사]로 돌려 막고는 있지만, 계속 남의 스킬을 빌리기만 해서는 언젠가 한계에 부딪히게 마련.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려면 나 자신만의 스킬/특성 세트가 필요하다.

서로 간에 유기적으로 연계되며 시너지를 일으키는 세트가.

이번에 얻을 특성이 그 첫 번째 조각이다.

두 번째 목표는 서예인의 성장.

[고블린 늪지대]는 닳고 닳도록 해 봤기에 내 입장에서는 새로울 게 없다.

반면 서예인은 이번 던전을 처음 접해 볼 터.

2인 던전이랍시고 지름길과 꼼수들만 덜컥 알려 줘 버리면 끝나기야 빨리 끝나겠지만, 그래서는 서예인 본인이 충분한 경험을 쌓지 못한다.

진정한 고인물은 혼자 앞서가는 게 아니라 뉴비가 알아서 가도록 기다려 주고 끌어 주는 법.

진득하게 서포트해서 함께 고득점을 달성할 생각이다.

간단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서예인과 던전동 지상층으로 향하니 이미 1학년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대인전은 졌을 때 바로 점수를 잃지만, 공략전은 나만 잘하면 되니까 남 눈치 볼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시간 여유가 날 때 연습 모드 한 번이라도 더 하는 게 이득이라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 2인 던전 같이 갈 사람!

- 저기.... 나랑 한 판만 같이 해 주면 안 돼?

- 그럼 마법사만 둘인데?

- 저랑 [강적] 잡아 보실 분 계신가요!

사전에 파트너를 구하지 못한 학생들이 애타게 짝을 찾는다.

이 외침 저 외침이 뒤섞이고 합쳐져 시장통이 따로 없다.

한쪽에서는 벌써 연습 모드로 들어갔다 나온 팀들도 눈에 띈다.

- 아니이.... 그걸 왜 달려드냐고....

- 몇 번을 말해! 안 잡으면 반대쪽으로 한참 돌아가야 된다니까?

- 그럼 돌아가면 되지! 싸우면 잡을 수나 있어?

티격태격거리는 걸 보니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것 같다.

사람 두 명이 협동하다 보면 흔히 벌어지는 일이지.

"우리도 들어갈까?"

"그래."

번갈아서 단말기에 학생증을 스캔하자 근처에 순간이동 포탈 하나가 입을 열었다.

내가 먼저 입장하고 서예인이 따라 들어온다.

등 뒤에서 포탈이 닫힘과 동시에 시끌시끌하던 소음이 일시에 잦아들고 적막이 찾아왔다.

고블린 늪지대.

휘어진 나무들이 하늘을 가로막아 빛이 잘 들지 않으며, 크고 작은 늪들이 시야 끝까지 이어진다.

[↑]

발밑에 새겨진 화살표가 옅은 빛을 발하고 있다.

초보들을 위한 최소한의 이정표인 셈이다.

어떻게든 이 방향으로만 가면 공략전 목표인 토템이 나온다고.

뒤이어 알림 메시지가 떠올랐다.

[곧 타임 어택이 시작됩니다.]

[남은 시간 5:00]

"남은 시간은 무시해. 첫 시도니까 급하게 가지 말고 천천히."

"응."

서예인은 내 말대로 알림 메시지를 치워 버렸다.

익숙하지도 않은 곳에서 시간에 쫓기다 보면 시야가 더 좁아진다.

타임 어택은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한 뒤에나 생각해 볼 일이다.

해서 남들이 죽어라 달릴 시간에 우리는 걸었다.

느긋한 산책 분위기까지는 아니고, 조금 빠른 걸음으로.

늪 웅덩이를 헤엄쳐 다닐 수는 없으니 주변을 빙 둘러 걷고, 또 다음 늪을 피해 방향을 틀어 걷는다.

자연스레 동선이 S자처럼 구불구불해졌다.

"...."

서예인은 말없이 이동하면서도 주변 환경을 꼼꼼히 살피는 기색이었다.

일단 여기까지는 잘 하는 중이군.

"케르륵."

"케켁,"

인기척을 느끼고 고블린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늪에 머리만 내놓고 잠겨 있다가 어기적어기적 기어 나온다.

몸에 끈적하고 질척한 것들을 잔뜩 묻힌 채로, 손에는 날카롭게 갈아 놓은 뼈칼을 들었다.

숫자는 총 다섯.

"어쩔래?"

전투를 벌일 것인가, 피할 것인가.

상황 판단은 전적으로 서예인에게 맡긴다.

서예인은 홀스터에 끼워 둔 권총들을 양손에 쥐었다.

"잡고 갈래."

"그러자. 내가 앞라인 선다."

나도 [대지의 스태프]를 꺼내 어깨에 턱 걸쳤다.

이번에 내 역할은 원거리 딜러가 안전하게 화력을 쏟아부을 수 있도록 지키는 것이다.

"케에엑!"

고블린 한 놈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것을 시작으로, 서예인의 권총들이 번갈아 푸른빛을 뿜어 댔다.

- 투투투투투!

마력탄을 연사하며 차례차례 한 마리, 두 마리... 네 마리까지 처치하고,

마지막 다섯 마리째가 서예인을 뼈칼로 찌르려 했으나,

"어딜."

내가 옆구리를 뻥 걷어차서 늪에 빠뜨렸다.

몸이 반쯤 잠겨서 허우적대는 놈에게 마력탄이 꽂히며 마무리.

"케륵케륵."

"키륵."

소란을 듣고 더 많은 고블린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숫자는 어림잡아 수십.

슬슬 고블린 늪지대다워지는 것이다.

또 서예인에게 판단을 넘긴다.

"갈까? 잡을까?"

"가면서 잡을래."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면서, 가까이 접근하는 고블린들만 요격한다.

- 투투투투투!

"케레엑!"

어떤 놈들은 손에 든 날카로운 뼛조각을 단검처럼 집어 던지기도 했다.

서예인이 피할 수 있는 건 알아서 피하게 두고, 어려워 보이는 것들만 쳐 냈다.

이렇게 지켜 주면서 보조만 하면, 원거리 딜러는 막강한 화력으로 적들을 모조리 갈아 마신다.

물론 갈아 마신다고 표현하기에는 아직까지 상대가 고블린들뿐, 특별할 것은 없는 전투다.

'이제 슬슬 특별해지겠지.'

- 쿵!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우리 앞길에 커다란 덩어리가 내려앉았다.

그 고블린은 다른 놈들보다 확연히 덩치가 컸으며, 팔다리가 두껍고 근육질이었다.

한 손에는 크고 넓은 식칼을 쥐었는데, 녹슨 칼날에 푸른 마나가 맺혀 넘실거린다.

"그르르륵...."

참수자 고블린.

이 고블린 늪지대의 보스 몬스터이자 이번 공략전의 [강적]이다.

- 투투투투!

서예인은 놈을 보는 즉시 쌍권총을 난사했다.

참수자는 식칼을 방패처럼 눕혀 날아오는 마력탄들을 튕겨 내고, 일부는 몸으로 맞았다.

그럼에도 별 피해는 없는 듯하다.

"잡아?"

"피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럽시다, 그럼."

우리는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자리를 바꿨다.

서예인이 전열에서 고블린들을 뚫고 나가고, 내가 후열에서 참수자 고블린을 견제하는 쪽으로.

서예인이 등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막 우리를 추격하려는 참수자 고블린에게 뇌전의 벌새가 날아들었다.

"그륵?"

놈은 달려오던 그대로 식칼을 휘둘러 허밍버드를 갈라 버리려 했다.

그 움직임이 일개 몬스터의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쾌속하며 절제되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가 양지홍보다 낫다.'

걔는 뭐에 어떻게 당하는지도 모르던데.

물론 그렇다고 참수자 고블린이 허밍버드를 베어 내는 데 성공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벌새가 식칼에 닿기 직전 가볍게 휘어지면서 놈의 팔뚝에 적중했다.

- 파지직!

"그르륵...!"

나름대로 저항력을 갖춰서인지 몸이 완전히 마비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전보다 움직임이 둔해진 것은 분명하다.

지금 거리를 벌려 두는 게 좋겠지.

속도를 높여 서예인과 합류했다.

나란히 발을 맞춰 달리며 물었다.

"왜 피하자고 했어?"

"잡는 데 오래 걸릴 것 같아."

단순히 강해 보여서, 잡기 어려워 보여서 피한 게 아니라, 상황을 저울질해 보고 더 유리한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대로 합격점은 줄 만한 대답이었다.

잡는 것보다는 잡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냐가 중요하기는 하지.

'거의 다 왔군.'

시야 저편에 어설프게 깎은 고블린 조각상이 보였다.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처럼 그 주변에만 밝은 햇빛이 내리쬐는 중이다.

저 토템만 파괴하면 끝이다.

"케르륵!"

그것만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고블린들이 토템을 지키기 위해 바글바글 몰려든다.

수십 마리를 뚫고 나가야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

서예인이 돌연 발걸음을 멈추었다.

권총 두 자루가 순식간에 라이플로 재조립된다.

"지켜 줘."

"알았다."

제자리에 자세를 잡고 토템을 조준하는 서예인.

나는 덮쳐 오는 고블린들을 대지의 스태프로 후려치고, 걷어차고, 허밍버드로 마비시키며 시간을 끌었다.

한편 등 뒤에서는 강한 존재감이 시시각각 가까워져 오는 중이다.

아마 참수자 고블린이 우리를 따라잡은 것일 테지.

그러나 놈이 이곳까지 도달하기 전에,

- 퉁—!

라이플이 푸른빛을 뿜고, 탄환이 고블린 토템에 꽂혔다.

조각상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며 산산 조각난다.

그러자 몰려들던 모든 고블린들이 한순간에 증발해 버렸다.

던전 클리어.

"잘했어. 이제 시간 확인해 봐."

"응."

첫 시도 중에는 일부러 남은 시간을 의식하지 않도록 했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남은 시간 0:17초]

+ [처치한 고블린 수:22]

—————

[남은 시간 0:39초 = 39점]

+[클리어 보너스:500점]

—————

[총 점수:539점]

제한시간 5분을 거의 다 소모했다.

거기에 처치한 고블린 한 마리당 1초를 추가해 주고,

남은 시간 1초당 1점으로 환산한다.

전부 더해서 39점.

희소식은 클리어만 해도 무려 500점이나 준다는 것.

공략전 첫 주인 만큼 배점이 후한 편이다.

물론 연습 모드라 이 점수는 저장되지 않는다.

"나가자."

순간이동 포탈을 타고 밖으로 나오자 즉시 시끄러운 소음이 고막을 덮쳤다.

서예인은 말없이 두 귀를 손으로 덮었다.

- 참수자 저거 잡으라고 만든 거 맞냐? 너무 센데?

- 잡으라고 만들었겠냐, 알아서 잘 튀라는 소리지.

- 아씨, 동선 꼬이는 거 너무 짜증 나는데.

-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해 보자.

참수자 고블린에게 당한 피해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한다.

놈의 실력은 대인전으로 따지면 900점대 이상.

기본적인 개체 값부터 일반 고블린보다 월등히 높은 데다, 마나를 통해 강화된 육체, 그리고 늪지대에서 모든 능력이 상승하는 특성까지 들고 있다.

그러니 멋모르고 맞붙었다간 된통 깨질 수밖에.

괜히 [강적] 꼬리표가 붙은 게 아니다.

"좀 쉬었다 들어갈까, 아니면 바로?"

"바로 가도 괜찮아."

아직까지는 서예인에게서 졸린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수업 중에 푹 자 둬서 그런 거겠지.

두 번째로 던전에 입장했다.

방금 전과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똑같은 고블린 늪지대가 우리를 맞이했다.

[곧 타임 어택이 시작됩니다.]

[남은 시간 5:00]

"자, 지금부터는 조금씩 속도를 내 볼 거예요."

"알았어요."

[3]

[2]

[1]

[Start!]

[남은 시간 4:59]

서예인과 내가 동시에 달려 나갔다.

늪 웅덩이들을 피해 가며 굽이굽이 꺾인 길을 질주한다.

두 번째이기에 훨씬 망설임이 적다.

"케르륵."

"크륵."

- 투투투투!

막 인기척을 느끼고 늪에서 기어 나오려는 고블린들에게 마력탄 세례가 쏟아진다.

한 번 겪어 봤으니 두 번째부터는 굳이 놈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려 줄 이유가 없다.

마력총의 격발음을 듣고 곳곳에서 나타나는 고블린들.

그리고,

- 쿵!

"그르륵...."

유일하게 다른 위치에서 내려앉는 참수자 고블린.

다른 건 몇 번을 시도하든 동일한 반면, 이놈의 등장 시기와 위치만 무작위로 결정된다.

"이번에도 피해서 갈까?"

"...."

서예인은 약 3초 정도 나와 참수자를 번갈아 보다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되물었다.

"...쟤도 잡으면 점수 줘?"

나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아주 기꺼운 질문이었으니까.

'눈치가 빨라.'

보통은 상대가 강하다는 사실에만 정신이 쏠려 깨닫는 게 늦는데, 서예인은 두 번째 시도 만에 의문을 갖는다.

일반 늪지대 고블린을 잡으면 한 마리당 1초 추가.

그렇다면 [강적] 꼬리표까지 붙은 참수자 고블린을 쓰러뜨렸을 때는 몇 초가 추가될까?

"120초."

"...!"

"어쩔래?"

무려 2분이나 되는 보너스를 받는다.

서예인이 권총을 라이플로 바꿔 들었다.

"...잡아 볼래."

서포터가 다 해먹음

36화 2주 차 공략전 (3)

서예인이 투명 길리를 뒤집어쓰고, 나와 참수자 고블린이 대치하는 구도.

"그르륵...."

참수자가 낮은 울음을 위협적으로 흘리자, 일반 고블린들은 끼어들지 못하고 멀찍이서 눈치만 봤다.

놈이 막 땅을 박차며 녹슨 식칼을 휘두르려는 찰나,

- 퉁—!

어디선가 날아든 마력탄이 미간에 정통으로 꽂혔다.

안면이 찌그러지며 고개가 뒤로 홱 젖혀진다.

그러나 참수자는 그 상태 그대로 고개를 원위치시켰다. 터프한 놈이군.

놈의 눈알이 데굴 구르더니 탄환이 날아온 곳을 응시한다.

"아저씨, 한눈팔지 말고 이쪽 봐요."

서예인이 안전하게 약점을 노릴 수 있도록 계속 이목을 끌어 주어야 한다.

참수자에게 돌진하며 대지의 스태프(물리)를 휘두르고, 동시에 허밍버드를 시전했다.

스태프와 허밍버드가 양쪽에서 놈을 노린다.

"그르륵!"

참수자의 몸이 제자리에서 흐릿해지며 분신술을 쓰듯 둘로 나뉘었다.

식칼 역시 둘로 나뉘어 스태프와 허밍버드를 동시에 갈라 버리려 한다.

나름 보스 몬스터라 스킬도 쓸 줄 안다.

'오히려 좋아.'

어차피 둘 중 하나만 적중시킬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전력을 분산시켜 주면 나로서는 땡큐다.

직전에 스태프를 회수하며 슬쩍 물러나고 허밍버드를 조작한다.

- 파지직!

참수자는 이 정도 마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기색으로 나에게 식칼을 휘둘렀다.

몸을 뒤로 젖히자 녹슨 칼날이 스쳐 지나간다.

도로 파고들어 옆구리를 스태프로 후려쳤지만 별 피해는 없는 듯하다.

육체 능력 위주의 스킬과 특성을 둘둘 말고 있는 놈인데, 나는 마나만 담아서 후려쳤으니 대미지가 안 들어가는 것도 당연하다.

- 퉁—!

두 번째로 꽂히는 서예인의 마력탄.

또다시 안면에 명중이다.

고개가 젖혀지면서도, 놈의 부릅떠진 눈은 마력탄이 날아온 방향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한눈팔지 말라니까."

"그아아아—!"

스태프를 뻗어 방금 마력탄을 맞은 부분을 톡 건드리자, 참수자가 제대로 열이 받아서 나에게 돌진해 왔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식칼에서 도기(刀氣)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온다.

나는 [도둑걸음]을 쓰고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하며 놈의 공세 사이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 퉁—!

또다시 참수자 고블린의 머리를 강타하는 마력탄.

놈은 나를 상대할지, 서예인을 잡을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열 받는 건 내 쪽이지만,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는 건 서예인 쪽.

후자를 먼저 잡기로 정했는지 제자리에서 두 다리를 굽히고 몸을 웅크렸다.

크게 도약할 생각인 듯했다.

"못 가지."

['증폭'을 사용합니다.]

['허밍버드'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E->C)]

- 파츠츠츠츠!

C급 허밍버드에 정통으로 얻어맞자 참수자의 움직임이 완전히 정지했다.

— 퉁—!

네 번째 마력탄이 얼굴에 꽂히고,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기 시작하는 참수자.

놈이 마나를 있는 대로 끌어모아 식칼에 담더니, 서예인이 숨은 곳으로 힘껏 집어 던졌다.

날아간 식칼이 일대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 카가가가각!

늪과 축축한 토지가 마구 뒤엎어진다.

허공이 꾸물거리며 서예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난리 속에서도 서예인은 제자리에 미동도 없이 서서 라이플을 조준한 채였다.

- 퉁—!

다섯 번째 저격이 적중했다.

참수자 고블린이 한쪽 다리를 굽히고, 이어서 완전히 두 무릎을 꿇었다.

"그... 륵...."

그리고 끝내 털썩 쓰러져 버렸다.

육신이 잿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잡았다. 가자."

"응."

우리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라이플이 즉시 쌍권총으로 재조립되고 푸른 불을 뿜어낸다.

- 투투투투!

"케르륵? 케륵!"

"켁켁??"

보스 몬스터가 처치된 탓에 우왕좌왕하는 고블린들.

어떤 놈은 앞길을 막아서지만 어떤 놈은 도망치거나 늪 웅덩이 안으로 뛰어든다.

서예인이 지나가면서 처치할 수 있는 놈들은 처치하게 두고, 다가오는 놈들만 쳐 내면서, 곧장 토템을 목표로 달렸다.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서예인이 마력총을 난사해 토템을 박살 냈다.

[남은 시간 0:18초]

+ [처치한 고블린 수:11]

+ ['강적' 처치:120]

—————

[남은 시간 2:29초 = 149점]

+[클리어 보너스:500점]

—————

[총 점수:649점]

첫 시도보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였지만, 참수자 고블린을 잡는 데 시간을 제법 잡아먹었기에 소요 시간은 비슷했다.

고블린 역시 지나가면서 걸리는 것만 처치해서 숫자가 적고.

그래도 이번에는 [강적]을 해치운 덕에 120초나 추가됐다.

첫 시도에 비해 100점 이상 올랐다.

"꽤 단축했네. 더 줄일 수 있겠다."

"...."

서예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무표정한 얼굴에 알게 모르게 불만족스러운 기색이 떠올라 있다.

이유는 금세 눈치챘으나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는 노릇.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왜?"

"...."

서예인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려다 말았다.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었더니 마침내 말문을 연다.

"...있잖아."

"어."

"...마력탄 특강 또 해 주면 안 돼?"

자신의 마력탄에 부족함을 느낀단다.

참수자 고블린의 맷집이 엄청나게 좋기는 했다.

근거리 계열 보스 몬스터라 단단한 게 정상이다.

그럼에도 놈을 처치하는 데 라이플을 다섯 발이나 쏴야 했다는 사실이 서예인의 마음에는 안 들었나 보다.

하기야 단순한 다섯 발이 아니라 정확히 급소에, 정로 다섯 발이다.

특별히 방어가 견고하지도 않았다.

내가 완벽하게 마킹하며 허점을 노출시킨 상태였으니까.

사실상 과녁에 대놓고 쏜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도 한참 걸렸으니,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리라.

'은근히 승부욕이 있다니까.'

저 [강적]이라는 장치는 본래 신입생들을 엿 먹이기 위해, 조금 더 점잖은 표현을 쓰면 벽을 체감시키기 위해 설치된 것이다.

한 번쯤은 좌절을 느끼도록.

서예인도 [강적]을 상대로 벽을 느끼기는 했지만, 좌절하기는커녕 곧바로 이 벽을 넘어서고 싶다는, 성장하고 싶다는 의욕을 불태운다.

나로서는 달가운 일이다.

배우는 사람이 의욕이 있으면 가르칠 맛도 나거든.

"그럼 오늘 공략전은 여기서 끊고, 트레이닝 센터 갈까?"

"응, 그럴래."

* * *

트레이닝 센터.

오늘은 마나연공실이 아니라 개인 사격장에 자리를 잡았다.

사격에 필요한 어떤 장애물이든 소환할 수 있다.

"지금부터 3차 마력탄 특강을 시작하겠습니다."

"와—"

서예인이 소리 없는 박수로 반겼다.

"우선 어디까지 진도가 나갔나 볼게. 지금 [마력탄] 랭크가 E급이지?"

"응."

"D급까지 얼마나 더 걸릴 것 같아?"

지난 마력탄 특강부터 지금 사이에 혼자서도 수련을 했을 터.

서예인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오늘 밤? 거의 다 했어."

"빠르네. 좋아, 그건 그것대로 진행하고. 오늘은 새로운 스킬을 배워 볼 거예요."

"알았어요."

조금 떨어진 곳에 큼지막한 나무토막 하나를 장애물로 세웠다.

한 손에는 마력탄을 만들어서 들고, 반대쪽 손에는 엄지와 검지를 말아 쥐어 딱밤을 날리는 모양을 만들었다.

"이게 마력총이라고 칩시다."

딱밤에 마력탄을 끼워 넣은 뒤, 나무토막에 대고 손가락을 튕겼다.

힘없이 날아가서 나무토막을 툭 건드리고 바닥을 구르는 마력탄.

"지금 네가 이 상태야. 마력탄은 흠잡을 데 없고, 마력총도 좋은 걸 쓰지만, 아직까지는 도구로만 사용하는 상태."

검사로 치면 잘 드는 명검과 초식 등을 익혀서 '휘두르기만' 하는 상태다.

더 강해지고자 한다면 거기에서 한 단계 발전해야 한다.

왜, 검사는 검을 몸의 일부처럼 여긴다는 말도 있고, 검이란 팔의 연장선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총사와 마력총의 관계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봐."

다시 딱밤을 만들고 마력탄을 끼웠다.

이번에는 나무토막을 조준하면서, 검지에 마나를 집중시켜 마력탄과 같이 쏘아 보냈다.

- 딱!

날아가는 속도, 울리는 소리부터가 다르다.

나무토막이 충격의 여파로 흔들흔들거린다.

"[사출]이라는 스킬이야. 이걸 익혀 보자."

마나를 손에 그러모으고, 그 마나를 날려 보낼 부위, 즉 검지에 집중시킨다.

그리고 검지를 튕기는 타이밍에 맞춰 마나도 함께 날린다.

무인들이 지풍(指風)을 날릴 때의 원리와 비슷하다.

"...."

서예인이 어색하게 딱밤 모양을 만들었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마력탄을 끼워 넣고, 마나를 집중시킨 후 튕긴다.

- 팅

마력탄이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조준이 서툴다기보다 딱밤이라는 행동 자체가 익숙지 않은 듯하다.

나는 곧바로 수련 내용을 수정해야 했다.

이래서는 연습할 필요도 없는 딱밤에서 막히게 생겼다.

"...마력탄 없이 해 보자. 마나만 날려 보낼 줄 알아도 성공이거든."

서예인이 열심히 허공에 손가락 딱밤을 날려 댔다.

마나를 검지에 모으는 것까지는 얼마 시도하지 않고 성공했지만, 날려 보내는 부분에서 약간의 어려움을 겪는다.

손가락을 튕기고도 검지에 마나가 맺혀 있거나, 그보다 한 박자 일찍 마나를 날려 보내곤 했다.

날려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이밍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궁극적으로는 마력총을 격발하면서 쓰는 스킬이니까.

- 툭

시행착오 끝에 서예인의 손가락 끝에서 미약한 마나 덩어리가 튕겨 나가 나무토막을 건드렸다.

날려 보낸 양보다 검지에 남은 마나가 더 많지만, 그 점을 감안해도 상당히 진도가 빠른 편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고 있다. 그대로 계속해."

"알았어."

* * *

저녁 시간 즈음에는 수련이 더욱 진척되었다.

이제 딱밤으로는 어렵지 않게 마나를 날려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는 본인의 마력총을 써서 수련하도록 했다.

여기까지 끝낸다면 [사출] 스킬이 주어질 테고, 그다음 D랭크 마력탄으로 넘어가면 되겠지.

"그런데 우리 저녁은 어떡할까."

"...?"

서예인은 다소 애매한 태도가 되었다.

한창 수련하던 도중이라 계속 집중을 이어 가고 싶은데, 아예 끼니를 걸러 버리기에는 배가 고프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심부름을 해 주기로 했다.

"그냥, 학생식당 가서 먹을 거 몇 개 집어 올게."

"고마워."

서예인이 계산은 이걸로 하라며 자기 카드를 건넸다.

검은 광택을 뿌리는 묵직하고 두툼한 블랙 카드를.

* * *

학생식당에서 빵 여러 개를 종류별로 집었다.

초코, 소시지, 슈크림, 머핀, 고로케....

이만하면 요깃거리로는 충분하겠지.

음료까지 몇 개 챙기고 발걸음을 돌리다가,

"안뇽!"

한쪽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던 한소미와 눈이 마주쳤다.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걸 보면 열차에서의 일은 더 이상 마음에 담아 두지 않나 보다.

나 역시 한소미에게 이렇다 할 악감정은 없다.

따지고 보면 쟤는 선도부로서 자기 할 일을 하는 거고, 교칙을 어기는 건 내 쪽이니까.

게다가 같은 3반으로서 인사 정도는 하고 다니면 좋지 않나 싶어서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

한소미가 손을 흔들자, 맞은편의 송천혜가 누구한테 인사를 하는지 확인하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케이크를 한입 머금고 만면에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였는데, 나를 보자마자 대번에 표정 관리를 했다.

그렇게까지 정색할 필요는 없지 않니?

어쨌든 인사하는 김에 송천혜에게도 건성으로 손을 흔들어 준 다음 갈 길을 가는데,

"저! 저기요!"

송천혜가 나에게 다가왔다.

"왜?"

"그게.... 손 좀 보여 주세요."

서포터가 다 해먹음

37화 2주 차 공략전 (4)

뜬금없이 손은 왜 보자고 하느냐.

보나 마나 곽승재한테 뭔가 전해 들었겠지.

- 이 학교에 인페르노 피스트를 익힌 학생이 있다.

- 그리고 그 학생은 십중팔구 사라진 금지 아이템들과도 관련이 있다.

선도부 입장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범인을 색출해 내고 싶을 것이다.

단서는 도둑걸음, 허밍버드, 투명 길리슈트, 그리고 인페르노 피스트를 썼다면 반드시 손에 남았을 화상.

우선 도둑걸음은 유효한 단서라 보기 어렵다.

로그 계열 클래스 외에도 상당수의 원거리 딜러들이 즐겨 쓰는 범용 스킬이라, 그걸로 누군가를 특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허밍버드와 투명 길리는 비교적 범위를 좁히기 쉬운 편이다.

허밍버드를 배운 사람은 꽤 있을지 몰라도, 곽승재의 가드를 뚫을 만큼 컨트롤하는 사람은 아마 이 학교 내에서도 열 명 안팎일 테니까.

투명 길리슈트 역시 값비싼 아이템이라 구비한 사람이 많지는 않을 터.

이 두 가지를 송천혜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허밍버드를 꽤 잘 쓰는 편이고, 마침 친하게 지내는 서예인이 투명 길리를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혹시 투명 길리를 빌린 건 아닐까?

어쩐지 아귀가 들어맞는 느낌이 들 것이다.

의심이 갈 수밖에 없지.

그래서 유력한 용의자인 내 손에 화상이 남아 있나 확인하려는 모양인데....

과연 그게 뜻대로 될까?

나는 순진한 표정을 가장하고 물었다.

"손? 내 손은 왜?"

"그냥 보여 주시면 안 되나요?"

막무가내로 가까이 다가서면서 시선을 내리길래 뒷짐을 져서 손을 감췄다.

송천혜의 눈에 깃든 의구심이 더욱 강해졌다.

재빠르게 내 뒤로 돌아들자 나는 거기에 맞춰 제자리에서 빙글 회전했다.

송천혜가 다시 내 뒤로 이동하고 나는 회전하고.

그렇게 두어 바퀴쯤 돌다가 주머니 속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아!"

"왜 이리 남의 손에 집착하시는지 모르겠네. 이유를 알아야 보여 주든지 말든지 하지."

"그건...."

변명거리가 궁색한지 쉽게 답하지 못한다.

솔직하게 '의심 가는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해도 되지만, 그건 곧 '네가 범인 같다!'라고 털어놓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학식 때도, 밴 웨이브 때도 나를 추궁했다가 허탕을 쳤는데, 이번에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은근히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날 것이다.

'보여 주기는 해야지.'

계속 이런 식으로 선도부의 이목이 집중된다면 내 운신에도 적게나마 제약이 생길 터.

지금 멀쩡한 손을 확인시켜 줄 필요는 있다.

그래서 슬쩍 구실을 만들어 주었다.

"왜, 손금이라도 봐 주게?"

송천혜의 얼굴이 환해졌다.

"맞아요. 손금입니다!"

이걸 덥석 무네....

생각해 보면 대뜸 손금을 봐 준다는 것도 이상함 레벨로는 동급 아닐까?

하지만 이것까지 태클을 걸면 다시 원점이라 그냥 모른 척하기로 했다.

송천혜가 깨달음을 얻고 이불을 걷어차는 건 제법 나중 일이 될 듯하다.

"...."

부드러운 손 두 개가 내 손을 붙잡았다.

송천혜는 내 손을 열심히 주물거리며 살피기 시작했다.

혹시 마법이나 아이템을 덧씌워 위장하는 건 아닌가, 은근슬쩍 마력까지 불어 넣어 가면서 확인한다.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깨끗하고 건강한 맨손 그 자체.

"...반대쪽 손도 볼게요."

"예, 그러십쇼."

손금은 두 손을 다 보는 거니까.

하지만 반대쪽 손이라고 상처투성이일 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대미지 자체를 안 받았거든.

송천혜의 얼굴에서 의구심이 빠르게 줄어들어 간다.

내 손을 놓으며 질문을 던진다.

"지난 주말에 뭘 하셨죠?"

"너한테 그런 것까지 말해 줘야 되나?"

"...아닙니다. 제가 실언을 했어요."

내가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자 송천혜는 뜨끔해선 곧바로 잘못을 인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취조하듯 질문하는 건 본인이 보기에도 도를 넘었다고 생각했겠지.

결국 꾸벅 고개를 숙이고 물러난다.

"실례했습니다."

"잠깐만."

"...네?"

자리로 돌아가려는 송천혜에게 장난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손금 결과는 말해 주고 가야지. 나 연애 운은 좀 있냐?"

"...앞으로 고생하시겠네요. 엄청."

건성으로 답하고 걸음을 옮기는 송천혜였다.

이걸로 일단 용의 선상에서는 제외되었다.

그러나 송천혜가 자리로 돌아가서도 나를 몰래 힐끔거리는 걸 보면, 완전히 의심을 거두지는 않은 것 같았다.

* * *

- 통-! 통-!

서예인은 한 손으로만 권총을 발사하는 중이었다.

반대쪽 손은 빵 봉투와 입을 오가며 조그마한 미니 도넛을 집어 먹는다.

평소에 입이 짧다는 점을 감안해서 많이 사 오지는 않았는데, 오늘은 웬일로 빵이 계속 들어간다.

수련에 마나를 잔뜩 소모하는 만큼 몸이 에너지를 요구하는 듯하다.

- 통-! 통-!

마력탄을 쓰지 않도록 지시해 두었기에 총구에서 마력줄기만 뿜어져 나오며 표적을 때린다.

어떻게 보면 물총을 쏘는 모습과 비슷하다.

얼마나 반복했을까, 서예인의 눈썹이 슬쩍 치켜 올라갔다.

"...!"

나에게 고개를 돌리지만 아직 입 안에 든 게 있다는 걸 깨닫고 한동안 우물거리기만 한다.

내가 건넨 음료수까지 천천히 들이켜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연다.

"...익혔어."

"벌써? 빠르네."

시작한 지 반나절도 안 돼서 [사출]을 익혀 버린 것이다.

이번에도 내 예상을 웃도는 속도였다.

재능이 그냥 말이 안 된다.

D랭크 [마력탄] 작업은 굳이 내가 옆에 붙어 있지 않아도 괜찮을 듯하다.

본인 입으로 거의 끝났다고도 했고.

"난 먼저 들어갈게. 나머지는 알아서 할 수 있지?"

"응. 내일 봐."

서예인이 손을 살살 흔들었다.

트레이닝 센터를 나서는 내 등 뒤로 마력총 격발 음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 * *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서예인은 평소보다 두 배는 졸려 보이는 모습으로 등교했다.

입을 작게 벌려 천천히 하품을 하고,

늘어지는 말투로 한다는 말이,

"한 단계 더 올렸어...."

"[사출]을?"

"응...."

[마력탄] D랭크, 거기에 어제 막 배운 [사출]까지 제힘으로 E랭크를 달성했단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간밤에 내가 안 보는 곳에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을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이러면 하루 벌었지.'

원래 [사출]에 하루를 더 들일 예정이었지만, 서예인이 자력으로 그 과정을 뛰어넘은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다.

"수업 끝나고 바로 가자."

점수 갱신하러.

* * *

방과 후.

수업 내내 엎어져서 잠만 자던 서예인을 흔들어 깨웠다.

비몽사몽 한 서예인을 이끌고 던전동으로 향했다.

다행히 도착할 즈음에는 잠이 거의 다 달아난 듯했다.

던전에 입장하기 전에 대략적인 작전을 세우고, 순간이동 포탈에 발을 집어넣는다.

[곧 타임 어택이 시작됩니다.]

[남은 시간 5:00]

"해 봅시다."

"네."

[3]

[2]

[1]

[Start!]

[남은 시간 4:59]

- 투투투!

시작과 동시에 서예인이 허공에 마력총을 몇 발 발사했다.

고요한 늪지대에 격발 음이 울려 퍼지고,

"케륵?"

"크르륵. 켁!"

곧 일대가 벌집을 들쑤신 듯이 시끄러워졌다.

고블린들이 초장부터 이곳저곳에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풀을 때려서 뱀을 놀라게 한다.

놀란 뱀은 몸을 더욱 웅크리거나, 상대를 물어뜯기 위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대장 뱀이 나타났다.

- 쿵,

"그르륵...."

소란을 듣고 내려앉기는 했지만, 고블린 참수자는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두리번거렸다.

반면 서예인은 허공에 마력총을 발사한 순간부터 이미 준비를 시작했다.

길쭉한 총구가 놈에게 겨누어진다.

놈이 우리를 발견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 퉁—!

마력탄이 막대한 힘을 싣고 쏘아져 나갔다.

라이플과 참수자의 머리 사이에 한 줄기 푸른 선이 그려지고,

- 쾅!!

놈의 고개는 물론 허리까지 뒤로 꺾이며 나자빠졌다.

위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뒤로 자빠진 뒤에도 몇 번이나 데굴데굴 구른다.

"그으어억...."

참수자 고블린은 한 방 만에 그로기 상태에 빠져 정신을 못 차렸다.

머리 위에 체력바가 나타났다면 거의 0%에 가까웠겠지.

연달아 네다섯 발을 얻어맞고서야 겨우 쓰러졌던 이전과 대조적이다.

바닥을 짚고 허우적거리며 기어 다니는 놈에게 인정사정없는 막타가 꽂혔다.

- 쾅!!

'어지간한 900점대는 그냥 바르겠는데.'

고등급 마력총, 완벽하게 조형한 D랭크 [마력탄], E랭크 [사출]이 더해져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뿜어낸다.

다른 부분은 아직 많이 보완해야 하지만, 한 방의 화력만 놓고 보면 유망주들과도 견줄 만하다.

기습의 묘리만 잘 살리면 900점대까지는 파죽지세로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잘했어. 가자."

- 투투투투투!

쌍권총의 위력 또한 급상승했다.

이전에는 고블린 한 마리를 잡을 때도 급소에 여러 발을 박아 넣어야 했는데, 이제는 한두 발이면 나가떨어진다.

서예인이 사방으로 흩뿌리듯 권총을 난사하니 고블린들이 픽픽 쓰러진다.

곧 시야에 토템이 들어왔다.

서예인이 달리는 속도를 유지한 채 권총만 겨누어 빠르게 연사했고.

- 투투투!

토템이 산산이 부서지며 흩어졌다.

던전 클리어.

[남은 시간 1:20초]

+ [처치한 고블린 수:28]

+ ['강적' 처치:120]

—————

[남은 시간 3:48초 = 228점]

+[클리어 보너스:500점]

—————

[총 점수:728점] * 0.8배율

= 582 pt

참수자 고블린을 단숨에 처치하며 시간을 많이 절약했다.

지나가면서 잡은 고블린들도 많아서 이전 시도들보다 훨씬 앞당겨진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다.

내 공략전 퀘스트 역시 가뿐히 달성했다.

"완벽했어. 하이파이브."

내가 손바닥을 펴서 들어 올리자 서예인도 자기 손을 들어 가볍게 맞댔다.

소리 없는 하이파이브. 짝.

"어? 웃었다."

"...?"

서예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본인은 깨닫지 못한 것 같지만, 입가에 알아차리기 힘들 만큼 살짝 미소가 걸렸었다.

말없이 손가락으로 제 입매를 매만지는 서예인이었다.

* * *

다음은 1인 던전.

2인 던전과 비교하면 지형 구조와 몬스터의 배치 등에 약간씩 차이가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각자 해결해야 한다.

"1인 던전도 크게 어려운 부분은 없을 거야. 너라면 충분히 혼자서도 고득점을 낼 거다."

"응."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연습 모드 몇 번 해 보고 들어가."

"알았어. 고마워."

서예인이 순간이동 포탈을 타고 연습 모드에 입장했다.

나 역시 단말기에 학생증을 스캔했다.

다만 나는 연습 모드가 아니라 초장부터 실전이다.

이미 머릿속에 다 들어 있으니까.

[곧 타임 어택이 시작됩니다.]

[남은 시간 5:00]

'뉴비 애호는 성공적이고.'

지금부터는 고인물의 시간이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

38화 2주 차 공략전 (5)

2인 던전에서 서예인이 해 주었던 역할을 오롯이 나 혼자서 해야 한다.

고블린들을 뚫고 나가고, 참수자를 견제하고, 토템을 파괴하는 것까지 전부.

그 과정에서 모자라는 부분은,

'아이템으로 때워야지.'

학생 상점은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것이다.

먼저 포인트가 얼마나 모였는지부터 확인했다.

(2,249pt)

지난주에 양지홍과 대인전을 치렀었고, 저장된 리플레이를 다른 사람들이 열람하며 포인트가 꽤 쌓였다.

바닥을 치는 내 평판 때문에 거의 챙겨 보는 사람이 없으리라 예상했는데, 첫날 기록한 리플레이라서인지 조금은 수요가 있었나 보다.

그래 봤자 허밍버드 갈기고 두들겨 패는 게 끝이라 영양가는 없었을 텐데.

아무튼 아이템 목록을 쭉 훑어 내려가며 필요한 것들을 고른다.

(2,249pt) -60pt

['폭죽'x3을 획득합니다.]

(2,189pt) -50pt

['휴대용 부표(무한리필)'을 획득합니다.]

줄을 잡아당겨서 발사하는 폭죽 세 개,

물 위에 던지면 둥둥 뜨는 조그마한 부표를 구매했다.

'준비 끝.'

폭죽 줄을 붙잡고 전방으로 겨누었다.

곧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3]

[2]

[1]

[Start!]

[남은 시간 4:59]

- 슈우우우—

- 팡!!

폭죽을 쏘아 보냄과 동시에 앞으로 뛰쳐나갔다.

내 앞에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는 늪 웅덩이로 직진한다.

늪 웅덩이에 발을 내딛기 직전, 휴대용 부표를 집어 던졌다.

둥둥 뜨는 부표를 사뿐히 밟고 뛰며 손으로는 다음 부표를 던지고, 또 그것을 밟으며 다음 부표를 던진다.

던지기와 밟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니 늪 위를 달리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시간 단축의 비결은 직진이거든.'

늪 웅덩이를 피해 구불구불하게 꺾다 보면 좀처럼 속도가 나질 않는다.

그 불편한 동선을 간결하게 만들고자 한다면?

늪을 그대로 횡단하면 되는 것이다.

휴대용 부표를 징검다리로 써 가면서.

"케르륵!"

"케에엑!"

폭죽은 서예인의 마력총이 격발되는 소리보다 훨씬 더 요란했다.

온 동네 고블린들을 다 불러 모은 것은 당연지사.

폭죽 하나를 더 터뜨려서 내 존재감을 모두에게 알렸다.

- 팡!

나를 노리고 몰려드는 수십 마리의 고블린 떼.

가까이 붙은 놈이 휘두른 뼈칼을 [도둑걸음]을 쓰며 가뿐히 흘려보낸다.

스쳐 지나가면서 이마에 딱밤 한 대.

놈이 약이 바짝 올라서 추격하지만, 나처럼 부표를 밟으려다 실패해서 늪 속을 허우적거린다.

- 쐐애액!

"오."

등 뒤에서 섬뜩한 파공음이 들리길래 부표를 앞이 아니라 옆으로 던지며 뛰었다.

마나가 듬뿍 담긴 녹슨 식칼이 나를 앞질러 날아갔다.

"그르륵!"

낮게 으르렁대는 참수자 고블린.

나는 놈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로 앞만 보며 달렸다.

그게 놈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는지, 한층 더 격분한 기세로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도둑걸음을 최대한 활용하며 달리는 내 속도에는 못 미쳐서 거리가 계속 벌어졌다.

늪 웅덩이를 넘으며 질주하자 보통 1학년들은 절반도 못 갔을 시간에 고블린 토템에 도달했다.

'마지막 하나.'

- 팡!

폭죽을 터뜨리며 토템을 한 손에 쥐었다.

바로 부수지 않고 위로 던졌다, 받았다 하며 기다린다.

빨리 안 오면 이거 부숴 버린다고 시위하는 것처럼.

"케륵륵!"

"그륵!!"

효과는 매우 훌륭했다.

선두의 참수자를 비롯해 고블린 수십 마리가 바글거리며 몰려든다.

놈들이 쏘아 대는 살기가 나에게 집중되었다.

죽일 듯한 살기를 태연하게 넘기며 생각했다.

'사냥은 역시 몰이사냥이지.'

토템을 들지 않은 빈손을 꽉 움켜쥐었다.

주먹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검붉은 불꽃이 타오른다.

"그아아—!"

거리가 어느 정도 좁혀지자, 참수자가 땅을 강하게 박차며 나에게 짓쳐들었다.

나는 산책하는 것처럼 느긋하게 마주 걸었다.

놈이 내지르는 식칼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며 깊숙이 파고들었고, 이글거리는 불주먹이 놈의 안면에 꽂혔다.

- 콰콰콰쾅!!

전방의 모든 것이 깨끗하게 삭제되었다.

참수자, 고블린들, 그리고 늪 웅덩이까지.

곽승재를 상대할 때처럼 힘을 조절한 게 아니라서, 인페르노 피스트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나는 내가 만들어 낸 참상을 눈에 담으며, 엄지손가락에 힘을 주어 고블린 토템의 모가지를 뚝 부러뜨렸다.

"리플레이 저장은 안 하는 걸로."

[남은 시간 2:44초]

+ [처치한 고블린 수:71]

+ ['강적' 처치:120]

—————

[남은 시간 5:55초 = 355점]

+[클리어 보너스:500점]

—————

[총 점수:855점] * 0.8배율

= 684 pt

보너스를 극한까지 받는 바람에 남은 시간이 오히려 제한 시간 5분을 넘어 버렸다.

퀘스트 역시 한참 초과 달성했고.

[서브 퀘스트:2주 차 공략전](완료)

▷목표:공략전 던전 클리어.

1인 던전(남은 시간 5분 55초/5분)

2인 던전(남은 시간 3분 48초/5분)

▷보상이 강화됩니다.

[보상을 선택해 주십시오.]

▷풍요의 씨앗

▷환상의 눈

▷서풍의 가호

세 가지 특성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습득할 수 있다.

풍요의 씨앗은 회복이나 버프 계열 스킬에 보너스,

환상의 눈은 디버프 스킬, 특히 환상계 디버프에 보너스,

그리고 서풍의 가호는 바람 계열 스킬에 보너스를 주는 특성이다.

'고민할 필요도 없지.'

['서풍의 가호'를 습득합니다.]

처음부터 이 특성을 노리고 퀘스트를 진행한 거니까.

앞으로 나아갈 노선 역시 확정 지은 상태다.

나 자신의 무력도 어느 정도 챙기는 동시에, 고현우와 서예인을 보조하는 역할도 충실히 해내는 올라운더형 서포터.

바로 바람 계열 서포터다.

물론 특성이 있어 봤자 정작 바람 마법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지만,

'마법은 뜯어내면 돼.'

[생명의 큐브]에 프리미엄을 잔뜩 붙여서 바꿔 먹는다.

당규영에게 언급했다시피, 시즌 패스 4개 이상의 값어치는 받아 내야 셈이 맞다.

최소한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슬슬 저쪽도 움직일 때가 됐지.'

자신 있게 실력 행사에 나선 곽지철을 한 대 쥐어박고 돌려보냈으니, 에메랄드 쪽은 십중팔구 뒤집어졌을 터.

같은 방식을 또다시 시도할 가능성은 작고, 한번 얼굴이나 보러 오지 않을까?

* * *

"크...윽!"

곽지철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을 벽에 밀어붙이고 있는 커다란 나무손을 떼어 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손 하나의 크기가 사람 몸뚱어리만 한 육중한 나무골렘.

그리고 그 골렘을 부리는 에메랄드 부장 목종화는,

"이게 무슨 개애—망신이야—!!"

엄청난 분노에 빠져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중이었다.

나무골렘이 잠시 손을 느슨하게 하자 곽지철이 그 자리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 퍼억!

"억!"

그러나 다음 순간 골렘이 휘두른 손에 얻어맞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목종화가 곽지철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아주 형제가 쌍으로 내 얼굴에 먹칠을 하는구나? 형이라는 놈은 선도부 달고 도둑놈한테 깨지질 않나."

곽지철의 형인 곽승재는 2학년 중에서도 출중한 실력으로 차기 선도부장 자리까지 거론되던 마당이었다.

하지만 지난주 임시 보관소 침입 사건에서 정체불명의 복면인에게 패하며 그 자리가 크게 흔들렸다.

아무리 상대가 인페르노 피스트를 사용했다 한들, 무패의 상징인 선도부가 한낱 도둑놈에게 지고 다닌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 사건으로 에메랄드 마탑의 위신이 바닥으로 추락했는데, 이번에는 곽지철마저 지고 들어왔다.

심지어 정수지의 서포트를 받으며 이 대 일로 붙어 놓고 사이좋게 기절까지 했단다.

"그놈 실력 물어보니까 네가 자신 있게, 뭐라고? 유명한 겁쟁이? 그딴 놈은 한 트럭이 와도 상대가 안 돼?"

- 퍼억!

나무골렘이 또다시 곽지철을 후려쳤다.

"그런데 그 유명한 겁쟁이한테 박살이 나? 내가 마탑회에서 얼굴을 어떻게 들고 다녀 이 새끼야!!"

- 퍽! 퍼억!

대자연 동아리 부장 하수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곽지철을 보낸 일이 어떻게 처리됐나 확인 차 찾아와 봤더니 이 꼴이다.

'어쩐지 시작부터 예감이 안 좋더라니.'

목종화가 실력 행사를 택한 순간부터 크든 작든 충돌은 정해진 셈이었다.

하지만 그 김호라는 1학년이 곽지철과 정수지를 동시에 상대해서 깨부술 줄은 몰랐다.

두 사람 모두 600점대임을 감안하면 나름 실력이 있다는 뜻.

최소한 '겁쟁이'라는 별명이 상당히 저평가된 것임은 분명하다.

게다가 김호의 태도.

두 사람을 제압한 뒤 당당하게 이렇게 말했단다.

- 용건 있으면 사람 오라 가라 하지 말고 직접 와라.

신입생들은 대개 3학년 선배가 부르면 어지간해서는 얌전히 따라오는데.

도발하듯 이런 말을 했다는 건 자기도 한 성깔 한다는 시위임과 동시에, 의문의 상자를 거래함에 있어 조금의 저자세도 보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템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상대하기 쉬운 자는 아닌 것 같다.

'방식을 바꾸는 게 낫겠어.'

지금도 길길이 날뛰는 에메랄드 부장이 몸소 증명한바.

이런 자는 꺾기도 어려울뿐더러, 설령 꺾는 데 성공한다고 쳐도 피해가 크다.

게다가 그녀의 목표는 박나리에게 좋은 아이템을 구해다 주는 것이지, 1학년과 불필요한 신경전을 벌이는 게 아니다.

'어떻게 달래 볼까....'

선물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

잘못 낀 첫 단추를 바로잡을 만큼 괜찮은 아이템으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의문의 아이템에 대한 하수연의 호기심이 컸고, 박나리를 아끼는 마음도 컸다.

"어쨌든 한번 만나 봐야 하지 않겠어요?"

- 퍽!

마지막으로 곽지철을 한 대 후려친 목종화가 골렘을 회수했다.

크게 심호흡을 하며 화를 삭인다.

상자에 관심이 있는 건 여전하지만 목종화의 목표는 하나 더 늘어났다.

"후... 그렇지. 만나 봐야지. 에메랄드의 위신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이제 아이템만으로는 못 끝내."

곽지철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제가 만회... 쿨럭! 만회하겠습니다."

"넌 뭘 잘했다고 입을 열어?"

골렘한테 한 대 더 맞을세라 곽지철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때는 방심하다가 속임수에 걸려들어서 진 거예요. 그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진지하게 임했다면 제가 졌을 리가 없어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정수지, 네가 보기에는 어땠나."

목종화는 한구석에서 두 손을 들고 벌을 서던 정수지를 불렀다.

정수지는 사적인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고, 자신이 본 대로만 답했다.

"전투가 길지 않아서 많이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움직임은 좋았어요."

"움직임은 좋았다라...."

속임수에 걸렸다. 움직임은 좋았다.

말로만 들어서는 제대로 판단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리플레이."

목종화의 말에 곽지철이 즉시 김호의 리플레이를 모조리 구매했다.

대인전 2회, 그리고 오늘 막 클리어한 공략전 2인 던전까지.

이런 데다 300포인트나 쓰는 게 뼈아프기는 했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모두 리플레이 수정구 앞으로 모여들어 대인전부터 확인했다.

김호와 양지홍의 대결.

- 파지직!

허밍버드로 마비 걸고, 스태프로 두들겨 패고 끝.

곽지철은 뒷골이 당겨 오는 것을 느꼈다.

가뜩이나 아까운 포인트인데 겨우 이걸로 끝이라고...?

공략전은 더욱 가관이었다.

파트너인 서예인의 활약이 눈부시기는 했다.

- 쾅!

저격 한 발로 참수자 고블린을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모습.

목종화와 하수연이 감탄할 정도였다.

"강하군."

"저런 실력자가 숨어 있었네요."

곽지철도 얼마 전에 저 마력탄에 당한 적이 있었다.

뒤로 고꾸라지는 참수자 고블린의 모습에 자신이 겹쳐 보여서 괜스레 오한이 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압도하는 서예인이었다.

한편 그 와중에 김호가 한 것이라곤 간간이 허밍버드를 날리거나 가까이 다가오는 고블린들을 걷어차는 등의 가벼운 견제뿐.

버스를 탔다는 것 외에 표현할 길이 없다.

물론 두 부장은 3학년답게 리플레이를 보는 시각이 더 넓었다.

"움직임이 좋다는 말은 사실이군."

"허밍버드 컨트롤이 수준급이네요."

"허나 그것들 외에는 뛰어난 구석을 못 찾겠어."

"실력을 숨긴 게 아닐까요?"

하수연이 조심스레 의견을 냈지만 목종화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꽁꽁 감추고 다닐 이유가 없어. 허밍버드 외에 별다른 스킬이 없다는 가설이 더 유력하다."

문제는 그것만으로도 제법 까다로운 상대라는 점이다.

목종화가 판단하기에는 이대로 곽지철을 내세워서 설욕전에 나섰을 경우 질 가능성이 제법 컸다.

잠시 생각하던 목종화가 정수지에게 지시했다.

"정수지."

"네."

"토파즈 쪽에 가서 전해라. 내가 마비 저항 장신구를 대여해 달란다고."

"...!"

그렇다면 아예 마비에 걸리지 않도록 해서 허밍버드를 원천 차단한다.

다음으로 곽지철의 부족한 근접전을 보완해 줘야 할 터.

"내 골렘을 빌려주겠다. 이길 수 있겠지?"

"...필승입니다. 이건 지고 싶어도 못 져요."

곽지철이 반색을 하며 수긍했다.

진지하게 임하기만 해도 자신이 질 리가 없다고 자신하던 터였다.

거기에 마비 저항 장신구와 목종화의 골렘까지 빌린다면 자신은 무적이다.

"김호에게 결투를 신청해라."

"알겠습니다."

"네가 한번 패한 이상 이건 이겨 봤자 본전이다. 압도적으로 쓰러뜨려야 할 것이다."

"당연하죠.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와.... 치사해.'

상황을 지켜보던 하수연은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에메랄드 마탑의 체면이 걸려 있어도 그렇지, 1학년한테 3학년 골렘을 빌려주면서까지 이기려 들다니.

에메랄드와 대자연이 협력 관계라지만 이것만큼은 좋게 봐 줄 수가 없다.

하수연의 마음속에서 목종화의 비호감지수가 쭉쭉 상승했다.

김호와 따로 이야기를 나눠 봐야 될 듯했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

39화 결투 (1)

수업이 끝나니 교실 밖에 나를 찾아온 손님들이 있었다.

우선 한 쪽에는 곽지철.

같이 다니던 정수지는 오늘 안 보인다.

나에게 적의가 가득한 눈빛을 쏘아 보내는데, 마치 무언가를 벼르는 듯한 기색이다.

나는 잠시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바로 골목 벽에 머리를 박아 버리는 게 아니었다고.

'조금만 더 패고 기절시킬걸.'

조만간 다시 기회가 생길 것 같기는 하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박나리가 자기 고양이를 한 팔로 안은 채 슬슬 쓰다듬고 있었다.

근처에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불안한 표정으로 몸을 움츠린다.

두 사람은 각각 보호자를 한 명씩 두고 있었다.

곽지철의 곁에는 만사에 짜증이 가득할 것 같은 신경질적인 표정의 남학생,

박나리의 곁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여학생.

둘 다 넥타이에 3학년 핀을 꼽았다.

에메랄드 마탑과 대자연 동아리겠지.

네 사람이 나에게 다가왔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에메랄드 마탑 선배였다.

"네가 김호냐."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에메랄드 부장 목종화다."

"대자연 동아리 부장 하수연이에요."

대놓고 사람을 낮추어 보는 태도의 목종화와는 달리 하수연은 예의 바른 태도와 존대를 유지했다.

물론 예의'만' 바른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목종화가 대화를 이었다.

"용건 있으면 직접 오래서 왔다."

"고마운 일입니다. 메신저랑 얘기하려니까 급이 안 맞더군요."

곽지철과 목종화의 얼굴이 동시에 딱딱하게 굳어졌다.

곽지철은 급 안 맞는 메신저 취급에, 목종화는 1학년 따위가 자신과 동급이라는 말에.

발끈해서 한마디 하려는 곽지철을 목종화가 손을 들어 다물게 했다.

"신입생이라 눈에 뵈는 게 없나 보군. 선배로서 충고 하나 해 주마. 항상 겸손해라. 우물 밖 세상은 네 생각보다 넓다."

"충고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선배님께서 우물 밖에 계신 것 같지는 않군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네 안목이 부족한 것이다. 상대의 실력을 제대로 가늠하는 것 또한 실력이다."

"그래서 떨거지 두 명을 보내신 겁니까?"

"...!"

순간 목종화의 말문이 막혔다.

본인 말대로 안목이 출중해서 내 실력을 제대로 가늠했다면, 곽지철과 정수지가 나를 제압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멀쩡히 서서 건방을 떨고 있지 않은가.

제 얼굴에 침을 뱉은 격이었다.

보다 못한 하수연이 중재에 나섰다.

"두 분 다 이만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말다툼하려고 온 건 아니잖아요."

목종화가 한마디 더 쏘아붙이려다 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부장급이 두 명이나 나타난 탓에 지나가는 1학년들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다.

다들 무슨 구경거리라도 생겼나 기웃거리는 중이니, 여기서 더 화를 내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이 섰으리라.

"대화하기 좋은 장소는 아니군. 자리를 옮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