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강한 세력이 일어서다 (1)

18화. 강한 세력이 일어서다 (1)

여로와 고약운은 지체 않고 백신당으로 들어섰다. 여로는 멋쩍은 듯 그녀 뒤에서 우물쭈물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죠?”

그녀는 여로를 향해 웃으며 물었다.

이 모든 것이 동방소택과 관련된 일임은 분명했다.

“그게…… 아가씨를 업신여기던 고가 사람들을 소주께서 일부러 괴롭히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문 앞에서 아가씨를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모두 조 씨가 자리를 비워서 일어난 일입니다! 소주께선 절대로 고가 사람들과 아가씨를 만나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는데, 하필이면 이때 조 씨가 진찰을 나가다니……. 조 씨, 오기만 해 봐라.”

“그럴 필요 없습니다.”

고약운은 옆에 있던 찬물을 마셨다.

“다만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제가 놀라지 않도록 미리 말해주세요.”

여로는 허허, 하고 크게 웃다가 갑자기 표정이 진지해졌다.

“참, 아가씨, 원하셨던 사람들을 찾아봤습니다. 모두 고아라 부모가 없지만, 조금만 수련하면 분명 천재가 될 것입니다.”

“정말요? 어디 있나요? 한 번 만나봐야겠습니다!”

고약운은 눈썹을 살짝 꿈틀거리며 말했다.

“따라오십시오.”

여로는 말을 마치고 길을 안내하며 앞장섰다. 두 사람은 그렇게 백신당을 나섰다.

* * *

황도의 교외에 자리 잡은 정원,

무성하게 우거진 숲이 해를 가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름다운 자연 광경이 여로의 안내에 따라 고약운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내 고약운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백신당에 이런 곳이 있을 줄 몰랐습니다. 이곳은 확실히 비밀 수련에 적합하네요. 날개를 펼칠 수 있을 때까지, 전 아무에게도 제 실력을 들키고 싶지 않습니다.”

여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이곳은 확실히 비밀 수련을 하기에 적합하지요. 밖에 오형팔괘진(五行八卦阵)을 쳐두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이끌지 않으면 이곳에 올 수 없습니다. 아가씨깨서 세력을 훈련 시키고자 한다기에, 소주께서 이곳에 데려가라고 하셨습니다.”

‘동방소택이?’

고약운은 멍하니 듣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소주와 제 부모님은 서로 무슨 관계입니까? 어떻게 저를 이렇게까지 도와줄 수 있는 거죠?”

“이건 제가 알려드릴 수 없는 부분입니다. 아가씨가 아셔야 할 때, 반드시 소주께서 알려주실 테니 일단은 기다리십시오. 가끔은 너무 많은 것을 알아도 좋을 것이 없기에, 소주께서도 고민하고 계실 겁니다.”

지금의 동방세가는 이전과는 다르다. 소주마저도 이를 알릴지 말지 망설이고 계시는데, 여로가 어떻게 고약운에게 이를 알려주려 하겠는가?

고약운은 여로가 더 이상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알아채고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 입을 열었다.

“이제 데려온 사람을 보여주세요.”

안으로 좀 더 들어서자, 마당이 나왔다. 수많은 경계의 시선들이 고약운에게로 향하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담담하게 한 명 한 명을 훑어보았다.

의심할 여지 없이, 여로가 선택한 이들은 훌륭했다. 다들 분명 천재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으나, 딱 보니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보통 사람과는 달리 맑지 않은 눈빛 속에 독기를 품고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게 바로 저런 독기였다.

“아마 여로가 너희에게 이곳에 데려온 목적을 알려주었겠지. 그러나 너희들은 나 같은 어린 계집이 너희를 필요로 할 거란 생각은 못 했을 거야.”

고약운은 담담하게 웃었다. 상대가 전혀 무시할 수 없는 웃음이었다.

“나 같은 사람이 너희를 통솔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 다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너희의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너희를 괴롭히는 이를 발밑에 두고 아무도 너희를 업신여기지 못할 높은 위치를 얻으려면, 반드시 내 명령을 따라야 한다.”

처음부터 이들의 눈빛에선 불복종하려는 기색이 보였다. 그들은 여기까지 오는 데는 동의했으나, 고약운 같은 어린 소녀에게 복종하고자 온 게 아니었다.

“흥, 그럼 우리에게 납득할 만한 실력을 보여주지 그러나?”

그때 고약운을 조롱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약운이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낡은 옷을 입은 청년 한 명이 미소를 짓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름이 무엇이냐?”

“심풍(寻风)이다.”

청년은 도도하게 고개를 들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고약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격이 마음에 드는구나. 난 절대로 너희의 성격을 억누르지 않을 거다. 너희도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나에게 너희의 능력을 말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만약 너희들이 내가 주는 시련을 통과한다면, 나도 너희에게 내 실력을 증명해 보이도록 하겠다. 다들 도전할 용기는 있으려나?”

눈앞의 이들이 완전히 제 사람이 되어야만 고약운 역시 안심하고 제 실력을 드러낼 수 있었다.

“좋다.”

심풍이 차갑게 웃었다.

“내 목숨은 여로 선생께서 구해준 것이니, 이분을 봐서라도 한번 해보지. 당신이 날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의 말에 고약운이 웃었다.

“이곳에 백 명이 모여 있는데, 모든 사람을 다 받진 않을 것이다. 너희를 영수 산맥에 두고 서로 싸우게 할 거야. 영력을 사용하는 것은 허락지 않아. 오직 몸으로만 싸우도록 해라. 또한 너희는 도망칠 수 있지만, 도망치면 나와 함께 하지 못한다. 남아있는 자들은 나와 함께 절대 강자가 될 것이고. 기간은 한 달이다. 다들 이의 있나?”

고약운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 수려한 얼굴에서 은은한 광택이 돌았다. 그녀의 말을 들은 모두가 그녀의 패기에 놀랐다. 앞에 있는 이 아이가 열다섯 살 소녀가 맞단 말인가? 그녀의 기운으로 봤을 때, 열다섯 살 소녀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그녀가 내보이는 기세는 마치 짐승의 것과도 같았다.

심풍이 고약운을 흘겨보았다. 여로는 그녀에게 충성을 다하라고 했지만, 심풍이 보기에 그녀는 아직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심풍이 콧방귀를 뀌고는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다들 영수 산맥으로 갑시다.”

고약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다들 한 달 후에 보자. 날 실망시키지 않길 바란다.”

* * *

고 장군부.

“뭐라고?”

낯빛이 새파래진 고일봉이 탁자를 쿵,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약운이 고가로 돌아오는 걸 거절했단 말이냐?”

고명은 제 곁에 있던 둘째 부인을 노려보았다.

“다 이 사람 때문입니다. 그딴 말만 하지 않았어도, 조카가 그리 무정하게 굴진 않았을 겁니다. 분명 고약운도 고가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고, 돌아오고 싶어 했다고요. 그렇지만 면전에서 부모 욕을 들으니, 고가로 다시 돌아오고 싶었던 마음도 사라진 겁니다!”

탁!

고일봉은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이를 부득 갈았다.

“네가 어리석은 여인을 처로 들인 걸 누굴 탓하겠느냐? 동방소택이 네 부인을 찾을 게 분명하다. 어서 내쫓아라.”

“네. 아버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둘째 부인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다 갑자기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요! 향림, 향림이가 돌아오면 어쩌려고 이러십니까?”

고향림은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자, 고 씨 가문의 자손이기도 했다.

고일봉은 둘째 부인의 말을 듣고 침묵했다. 한참 후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

“향림이를 봐서 집에 있게 해줘라. 그렇지만 오늘부로 밖으로 단 한 발짝도 나가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쫓아낼 줄 알아라, 알겠느냐?”

둘째 부인은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땀에 젖은 그녀의 모습은 꽤 추했다.

그러나 아직도 마음속의 한이 풀리지 않았다. 고약운을 죽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한스러웠다.

‘다 그 계집 때문이야. 그 계집 때문에 고가에서 내쫓길 뻔했다고!’

과연 그 어미에 그 자식이었다. 아니, 고약운은 명백히 류옥보다 더 대역무도한 계집이었다. 고 씨 가문을 안중에 두지도 않고, 안하무인의 태도로 집안 어른을 대하다니!

“고약운! 목을 졸라 죽일 년. 기다려라. 내 아들이 돌아오면 기필코 널 죽일 테니까!”

부인의 험상궂은 표정을 보며 고명은 눈살을 찌푸리곤 고개를 돌려 고일봉을 보았다.

“아버지, 그럼 이제 저흰 어찌합니까?”

고일봉은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갑게 웃었다.

“이번엔 내가 직접 나서야겠다. 내가 그래도 그 계집의 할아버지니, 직접 돌아오라고 부탁하면 거절하기도 어려울 게다. 거절한다면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을 테니까.”

청룡국에선 효를 매우 중히 여겼다. 그러니 고일봉이 아무리 뻔뻔스럽게 부탁을 한다 해도, 고약운은 이를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일 거절한다면 반드시 구설수에 오를 테니 말이다.

* * *

예상과 달리, 안타깝게도 고일봉마저 고약운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만남을 거절당했다.

고약운은 수련에 들어갔기 때문에, 동방소택마저 그녀를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고일봉은 실망한 채로 장군부로 돌아가야만 했다.

고일봉은 우선 급한 대로 성문에 감시자를 배치했고, 그들을 통해서 동방소택이 급히 청룡국을 떠났음을 보고받았다.

마침내 그는 긴장이 풀렸다.

* * *

침상에서 고약운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바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북야?”

도대체 그가 언제 자신 앞에 나타난 것인지 눈치채지도 못했다.

천북야는 억울하다는 듯 입을 삐죽거리며, 애원하는 눈빛으로 고약운을 바라보았다.

“운아, 너 수련한 지 너무 오래됐어.”

이 말은 곧 고약운을 못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뜻이었다.

“오래되었다고? 지금 취기 6급을 돌파했으니까…… 수련에만 집중한 지 아마 한 달 정도 됐겠지. 라 장군이 내가 부탁한 무기를 잘 만들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쏴아.

바로 이때, 고약운의 영혼 속에서 파동이 쳤다. 순간 그녀는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자사, 너 깼어?”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보랏빛 구름이 고약운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곧이어 자사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랜만이네. 왜, 내가 보고 싶었어? 이렇게 간절하게 나를 부르다니!”

자사가 입고 있는 짙은 자줏빛 도포 소매엔 봉황 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는 아름다운 얼굴로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행동 하나하나에서 늠름한 기세가 느껴졌다.

고약운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자사, 네가 도와줘야 할 일이 있어.”

고약운은 말을 하자마자 제 옆에 있던 천북야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알게 된 친우인데, 기억이 어떻게 된 건지 네가 좀 봐줘. 왜 기억을 다 잃은 건지 모르겠어.”

자사는 미간에 사악한 기운을 띄운 채, 고약운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천북야를 보자마자, 자사의 아름다운 얼굴이 어둡게 굳어졌다. 몸의 기세가 한순간 극에 달하더니, 눈빛도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했다.

“네가 왜 여기 있지?”

자사는 몹시 서늘한 눈빛을 드러냈다. 고약운이 그간 그에게서 볼 수 없었던 눈빛이었다.

자사를 알게 된 후부터 지금까지, 그가 이런 표정을 지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지금 자사의 미간에 있는 불꽃이 크게 타오르고 있었다.

당황한 고약운이 자사를 보며 물었다.

“자사, 왜 그래?”

“내가 왜 이러냐고?”

자사가 낮은 목소리로 차갑게 대꾸했다.

“그건 저자에게 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