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유 씨를 처단하다
어느 날 주묘랑이 감옥에 갇혀 있는 유 씨 얘기를 꺼냈을 때, 당염원은 그제야 자신의 독약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요즘 그녀는 푸른 영약에 몰두해 있는 데다 사릉고홍이라는 천마독체가 그녀의 곁에서 무한한 천마독을 흡수시켜 주었다. 또한 녹녹 역시 더 이상 그녀에게 독을 갈구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독약을 또 필요로 하는 것은 그야말로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요즘 유 씨가 죽기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목숨을 부지하고는 있지만, 정력이 점점 소실되고 있어요.”
주묘랑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차분하게 말했다.
“이런 식이라면 주모님의 독을 받기 전에 유 씨가 버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지가 잘렸더라도 주묘랑이 목숨 줄을 이어 줄 수는 있었다. 그러나 죽고 싶다 마음먹으려는 정신까지 마음대로 통제하기란 힘들었다.
당염원은 생각에 잠기더니 다소 얼떨떨한 상태로 말했다.
“오늘 약을 만들도록 할게.”
“원아.”
사릉고홍은 또 그녀 혼자 약을 조제하다가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
당염원이 그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고홍도 함께 가요.”
사릉고홍은 약간 좌절했으나, 당염원의 얼굴빛이 평소와 같은 것을 보고는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기대에 찬 주묘랑은 당염원의 비위를 맞추었다.
“저는 지금 지사(地師) 등급의 약사입니다. 비록 주모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는 못하지만 주모님의 조수가 되어 일을 돕는 것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가능하다면 옆에서 지켜보며 연구를 좀 하고 싶은데…….”
주묘랑은 그날 당염원이 주었던 벽화세수단을 며칠 동안 연구한 끝에 어떠한 약초가 들어갔는지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조제하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약효는 탁옥각(琢玉閣)의 한 아이에게 먹여 보는 것으로 당염원이 했던 말과 똑같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심지어 더욱 강력했다.
이 일로 주묘랑과 사방각주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동시에 걱정하기 시작했다.
힘들게 수련하여 지금의 지위에까지 오른 그들에게는 이러한 단약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세수단이 한 사람의 체질을 바꿀 수는 있어도 깨달음의 경지까지 이르게 해 주지는 못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체질은 외부 요소로 향상시킬 수 있지만, 깨달음은 선천적인 것이라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들처럼 자신의 능력으로 지금의 경지까지 오른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한 차례의 실험을 거치고 나자, 주묘랑은 당염원을 향해 탄복해 마지않았다. 열여섯의 나이에 지후, 지왕 등급의 약사가 되다니. 이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교 중의 천교임에 틀림없었다.
“난 조수가 필요 없어.”
당염원이 입을 뗐다. 그녀는 뒤이어 든 생각에 다시 한번 사릉고홍을 바라보았다. 이 역시 그가 계획한 것일까? 저번에는 주묘랑이 와서 약효를 묻더니, 이번엔 약 조제하는 것을 보겠단다. 또 남의 입을 빌려 묻는 걸까?
주묘랑은 얼굴 가득 실망한 기색을 떠올렸지만, 더 이상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저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물어본 것뿐이었다. 그녀 역시 약사였기에 약 조제에 관한 규율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이가 조제하는 것을 보는 것은 무예를 연습하는 사람이 다른 이의 무예를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동의를 구하지 않고 훔쳐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멸시를 받기에 충분한 행위였다.
그런데 곧 당염원의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원한다면 그냥 와서 보렴.”
주묘랑은 일순간 멍해졌다. 그러다 당염원의 말이 자신에게 한 것임을 뒤늦게 알아차리곤 밝아진 얼굴로 당염원이 후회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재빨리 답했다.
“감사합니다! 절대 방해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사릉고홍은 주묘랑에게 눈길을 던졌다. 사실 그는 약을 조제하는 당염원의 선녀 같은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하나 당염원이 허락한 일이기에 굳이 반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주묘랑에게 눈치껏 거절하라는 뜻을 눈빛에 담았다.
그러나 주묘랑은 그저 사릉고홍을 향해 웃어 보이더니, 이내 시선을 피해 버렸다. 난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요- 라고 말하듯.
당염원은 인간에게 유익한 영약보다 인간을 해하는 사독을 다루는 데 더 능했다. 그녀는 설연산장의 각종 진귀한 약초와 영수(靈水)를 가지고 어떤 사독을 만들면 좋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유 씨가 당염원에게 먹이려 한 것은 서혼단(噬魂丹)이었다. 그 약은 당염원의 목숨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해칠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이상의 파괴력을 가진 독으로 앙갚음하고 싶었다.
* * *
사릉고홍은 직접 그녀를 안아 들고 빙연곡으로 향했다. 주묘랑은 당염원에게 필요한 약초를 물은 뒤 가지러 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빙연곡으로 돌아왔다. 빙연곡 얼음 결정이 빚어낸 절경 가운데 서 있는 두 사람은 경탄을 자아냈다.
빙연곡은 설연산장의 금지 구역 중 한 곳이었다. 주묘랑 역시 딱 한 번 와 본 곳으로,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녀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한 빙연곡의 절경을 보고 감탄했다. 하물며 그 절경 속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자태는 그림보다 더 그림 같았다.
“주모님, 약을 빻아드릴까요?”
주묘랑은 약재들을 백옥으로 된 약대 위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당염원이 이곳을 약을 조제하는 곳으로 삼자, 그녀는 약 조제에 필요한 일체 도구를 모두 준비해 이곳에 가져다 두었다.
당염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사릉고홍 역시 안고 있던 그녀를 놓아준 뒤 한쪽에 가 섰다. 그러곤 온몸의 기운을 천지에 숨겨 다른 이로 하여금 그의 존재조차 느끼지 못하도록 했다.
비록 그처럼 하진 못하지만 주묘랑 역시 눈치껏 멀리 떨어져 숨을 가다듬었다.
당염원은 이번엔 녹녹을 소환하지 않았다. 오직 영식(靈識)만이 약초가 떠오르는 것을 통제한 뒤 약초를 가루로 만들어 한데 섞었다. 그러자 초록 빛줄기가 당염원의 양손을 휘감았고, 공중에서 연약장법(煉藥章法)이 펼쳐졌다. 한없이 가벼워 날아갈 듯한 그녀의 손짓에 보는 이의 마음이 덩달아 가벼워졌다.
약 조제는 정력을 소모하는 일이지만, 당염원에게선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묘랑은 약재가 절로 떠오르는 순간부터 놀라움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의 연약장법을 보고는 더욱 혼이 쏙 빠지는 기분이었다.
이는 약 조제 같기도 했지만, 마치 선녀가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의 발걸음은 보는 이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져 발걸음 소리에 맞춰 심장이 뛰는 듯했다. 눈을 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당염원이 적막 속에서 손을 휘젓자 한데 응집되어 뭉쳐진 약초 가루가 그녀의 손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당염원이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사릉고홍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물었다.
“다 됐소?”
“네. 다 됐습니다.”
당염원의 눈빛이 조금 빛났다.
사릉고홍은 곧장 그녀를 안고 빙연곡을 벗어났다. 그러자 주묘랑 역시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그녀는 충격과 놀라움에 휩싸인 채 여러 의문들에 둘러싸였다. 약초를 직접 통제하다니, 그러기 위해선 얼마나 정교하게 원력을 제어해야 할까? 게다가 솥도 없이 조제를 하다니……. 주묘랑은 살면서 이토록 뛰어난 조제 기술을 본 적이 없었다.
‘장주님, 궁금증에 괴로워지기 전에 제발 대신 좀 물어봐 주세요!’
주묘랑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사릉고홍을 바라보았지만, 그가 전혀 그런 것을 물어볼 생각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 *
유 씨가 감옥에서 끌려 나왔을 때, 그녀는 이미 깨어 있었다. 유 씨는 석양 아래 의자에 앉아 있는 당염원과 사릉고홍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감정 없는 공허한 눈에서 원한이 느껴졌다. 그녀는 낮은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 하하하……. 드디어 행차하셨군요. 기다리다 돌아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직 더 기다려야 한다.”
당염원이 가볍게 말했다.
유 씨는 고개를 들어 당염원의 감정 없는 고요한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마치 고인 물처럼 적막하고 차가워, 보는 이마저 오싹하게 만들었다.
당염원이 입을 뗐다.
“서혼단은 사람의 목숨을 해칠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갉아먹지.”
손바닥을 뒤집자 은색 가루가 그녀의 손에서 가물거렸다. 그러자 정교하고 고아한 그녀의 이목구비가 마치 꿈속에 있는 듯 몽롱하게 보였다.
“이건 내가 만든 서혼산(噬魂散)이다. 서혼단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지. 약효는 이레 동안 지속된다. 첫째 날 개미가 몸을 갉아먹는 느낌이 나고, 그 후 닷새 동안은 귀신에게 시달릴 테지. 귀로는 울부짖음이 들리고, 눈으로는 귀신이 보이며, 코로는 그들의 뼈 냄새를 맡고, 입에서는 썩은 고기 맛이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 오감을 잃고 혼과 몸이 모두 죽게 된다.”
그녀의 말투는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그에 반해 유 씨의 얼굴은 창백해진 채 일그러졌다. 주묘랑의 몸 또한 떨려 오기 시작했다.
“아, 또 한 가지.”
당염원이 문득 생각난 것이 있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옅은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이레 동안 너의 오감은 무척 민감해지고 온몸엔 힘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레가 지나기 전엔 무슨 방법으로도 죽을 수 없어.”
“이, 이 요괴 같은 계집…….”
유 씨의 눈에 짙은 공포와 절망이 묻어났다. 그녀는 창백한 입술을 오들오들 떨며 피로 물든 원한으로 당염원에 대한 저주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부질없는 저주의 시간이 지나고, 유 씨는 충혈된 눈을 부릅뜨며 크게 소리쳤다.
“내가 죽으면 귀신이 되어 널 찾아갈 것이다! 널 찾아가 네 살을 뜯어 먹고 네 피를 빨아 먹고……! 곱게 죽진 못하게 할 것이야!”
당염원이 눈을 깜빡이며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내가 방금 한 말을 듣지 못한 것이냐?”
유 씨는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이내 고통에 찬 신음 소리만 낼 뿐이었다.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울부짖음으로 바뀌었다.
당염원의 손에 있던 은색 가루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하얗고 가느다란 손을 살며시 거두고 개미가 온몸을 갉아먹는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는 유 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레 후면 너의 몸도 영혼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귀신조차 될 수 없어.”
“으아…… 으아악!”
유 씨는 손과 발이 모두 잘려 지금 느끼는 고통을 덜어낼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설사 손과 발이 있다 해도 서혼산의 약효로 온몸에 기운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저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네년이……!”
유 씨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당염원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물을 한 번도 마시지 않은 사람처럼 메마르게 갈라졌다. 유 씨가 소리쳤다.
“너 도대체 누구야!”
그야말로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유 씨는 자신이 살아날 희망은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지금처럼 손발이 잘려나간 모습으로 살고 싶지도 않았다. 오늘에서야 당염원의 또 다른 일면을 똑똑히 목격한 그녀의 의심은 더욱 커져갔다.
유 씨는 당염원을 어릴 적부터 봐 왔기에 그녀가 어떤 성정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여인은 시집가던 날부터 지금까지 딱 세 번 보았지만, 볼 때마다 더욱 다른 사람 같았다. 이자는 절대 당염원이 아니었다. 얼굴을 제외한 모든 것이 당염원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사의 고난을 겪었다 하더라도 이렇게 사람이 바뀔 수는 없었다. 공허한 눈빛, 극악무도한 행동, 냉정한 말투까지, 진짜 당염원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 여인은 당염원이 아니다!
유 씨는 별안간 당염원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와 귀신에 씐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너 대체 누구야?!”
유 씨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본래 무자비하고 냉혹했던 유 씨의 눈빛이 번뜩이자, 당염원은 짙은 기쁨이 밀려들었다.
“당염원. 난 당염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