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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방문하다

15화. 방문하다

“아버지가 금주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도 어찌 그리 조금도 기뻐하는 기색이 없는 것이야?”

제완은 요즘 자주 조 부인과 함께 외출했다. 육 씨는 딸아이가 어쩐 일인지 아버지가 온다는 편지를 받고도 멍한 표정으로 전혀 기뻐하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이에 정신이 돌아온 제완은 보름 전보다 얼굴이 더욱 볼그스름하니 혈색이 도는 육 씨를 보며 짐짓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안 기뻐하다니요. 그저 아버지께서 그리 바쁘신데도 여기 오실 시간이 있나 싶어 놀랐을 뿐이에요. 제가 바깥뜰에 있는 서재를 좀 정리해 놓으라 시키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오셔서 바로 사용하실 수 있게요.”

육 씨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러려무나. 너도 막 외출을 하고 돌아온 참이니 피곤하겠지. 어서 가서 쉬도록 하렴. 아버지가 오려면 아직 한 달이나 남았으니, 내일 청소하라 일러도 늦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 그럼 전 처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내일 조 부인댁에 한 차례 다녀오면 모레가 바로 행선일이에요. 그렇게 이틀만 지나면, 제가 매일매일 어머니 곁에 있을 수 있어요.”

제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일은 나도 함께 가자꾸나. 몸도 많이 좋아졌고, 조 부인께서 진행하시는 행선일이라는 것이 어떤 일인지 나도 퍽 궁금하구나. 이후 우리가 경도에 돌아간 다음 참고로 삼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으냐?”

육 씨가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제완은 육 씨의 몸이 혹여라도 받쳐주지 못할까 걱정되어 쉽게 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 부인도 시종 집 안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 많이 걸으라 하셨지 않느냐? 내일 부인께서 오시면 내가 한 번 여쭤보마. 만약 괜찮다 하신다면, 그때 두 사람과 함께 가면 될 듯하구나.”

육 씨가 웃으며 말했다.

제완도 그녀를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육 씨가 계속 집에만 있는 것도 결코 올바른 치료법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주 나가서 새로운 것들을 더 많이 접한다면, 육 씨의 생각도 더 낙관적으로 변하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내일 만약 조 부인께서 문제없다고 말씀하신다면, 어머니도 함께 가셔요.”

* * *

이튿날, 조 부인은 육 씨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제가 부인께 밖에 나가 자주 걸으시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부인께서 스스로 이러한 생각이 드셨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는 것이죠.”

“요 며칠간 제 두 시녀가 밤이고 낮이고 저를 붙잡고 얘기를 하지 뭡니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조 부인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해 마지않는다고요. 여인임에도 사내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 그런 인물이시라는 얘기를 듣고는 문득 호기심이 일어 사람을 시켜 물어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조 부인께서 당시 금주의 백성들을 이끌고 도적에 대항하셨던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 부인, 정말 진심으로 감복했습니다.”

조 부인과 함께 차청(茶厅)에서 차를 마시던 육 씨가 앞선 며칠간 밖에서부터 들었던 이전의 일들을 저도 모르게 불쑥 꺼내 놓았다.

이에 조 부인은 방긋 웃어 보였다. 이는 6년 전에 있었던 일로, 당시는 그녀의 남편이 막 태수가 되었을 때였다. 어느 날, 그가 성안의 병사들을 데리고 성 밖 변경 지역을 순찰하던 도중, 도적이 파 놓은 함정에 빠졌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측에서 산적들이 성을 공격해 재물을 약탈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성에 있던 모든 백성을 이끌고 산적들에게 저항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함정에서 빠져나온 그녀의 남편이 늦지 않게 도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년간 산에 터를 잡고 있던 도적들의 소굴을 송두리째 박살 내버릴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금주성 백성들은 지난 몇 해 간 품었던 근심 걱정을 단박에 속 시원히 해결했었다.

“그때 그 산적들은 원래가 그저 산 위에서 불량한 짓이나 일삼는 잔챙이에 불과한 자들이었습니다. 당시 몇몇 누군가가 그들을 부추기는 바람에 급작스레 성을 공격했던 것이었습니다…….”

조 부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다 지난 일이죠. 이제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걸 옆에서 듣고 있던 제완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조 부인께서는 무공에도 일가견이 있으신 것입니까?”

“그저 어설프게 아는 정도예요. 어디 가서 언급할 거리도 되지 못하죠.”

조 부인이 웃으며 답했다.

제완의 눈동자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무언가에 생각이 미쳤는지 조 부인에게서 내내 눈을 떼지 못했다.

“집 안에서만 살아갈 줄 아는 저희와 같은 아녀자들에 비해 부인께서는 그야말로 여중호걸이신 듯합니다.”

육 씨가 감탄하며 말했다.

그러자 조 부인은 다급히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아이고, 동생, 절 띄워주는 건 이제 그만 하세요. 계속했다간 저 스스로가 다 오만방자해질 것 같습니다…….”

말을 하던 조 부인은 잠시 멈칫하더니 당황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이것 보세요. 평소에 털털하게 말하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려, 그만 제 부인을 동생이라 부르지 않았습니까. 제 부인, 부디 기분 상하지 마십시오.”

“언니께서 그리 말씀하시면, 이 동생이 더욱이 민망해지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요 며칠간 저를 위해 침구 치료를 해주느라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언니와는 이미 아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렇듯 죽이 잘 맞는 짝꿍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참에 서로 언니 동생 하며 부르는 것은 어떠신지요?”

육 씨가 다급히 말했다. 그녀는 절대 신분이나 지위를 자랑으로 삼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조 부인 같은 사람과는 온 마음을 다해 친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조 부인은 싱글벙글하며 몹시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정말 좋죠. 그렇다면 내가 동생보다 몇 살 위이니, 앞으로는 조금 거만하게 저를 언니라 한 번 칭해보도록 하지요.”

육 씨는 조 부인을 언니라 부르는 것이 응당 옳다는 듯 곧장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한바탕 수다를 떨던 중, 조 부인이 이제 다른 부인들을 만나러 갈 시간이 되었다 전했다. 때마침 점심시간이 다 되었던 터라 조 부인은 한사코 육 씨 모녀에게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 함께 밥을 먹자고 권했다.

그런 그녀를 도저히 이길 수 없어 육 씨는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 * *

그렇게 제완은 육 씨와 함께 처음으로 조 태수의 후원에 갔다. 오늘은 손님으로서 방문했기에 아무리 호기심이 인다 해도 대놓고 집안을 살펴볼 순 없었다. 제완은 그저 곁눈질로 은근슬쩍 이곳저곳을 쳐다보았다.

조 태수의 후원은 매우 간결했지만, 한가롭고도 여유로운 운치가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또 걸어가는 동안 태도가 매우 정중한 시녀들과 어멈들을 만났을 뿐, 관원들이 집에서 기르기 좋아하는 애완 꾀꼬리나 제비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소문으로는 조 태수가 여색에는 관심이 없어 지금껏 조 부인 외에는 첩을 들이지도 않았거니와 그를 모시는 시녀조차도 곁에 두지 않는다고 했다. 그에 비해 첩실을 벌써 몇 명이나 들인 자신의 남편이 떠오른 육 씨는 마음이 참으로 씁쓸해질 수밖에 없었다.

“영 변변치 않은 음식들뿐이라. 모쪼록 동생이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조 부인은 시녀에게 일러 주방에 음식을 준비하라 시킨 뒤, 육 씨와 제완을 데리고 안채의 차청(茶厅)으로 향했다.

“언니, 그런 말씀 마세요. 오늘은 저희 모녀가 갑자기 얻어먹으러 온 것이니, 언니가 부디 불쾌히 여기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육 씨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조 부인이 시원스레 웃어 보였다.

“그리 겸손해할 필요 없어. 우리 집에 다른 건 많이 없어도 먹을 건 적지 않으니까.”

그렇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간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른 부인들이 여식들을 데리고 잇따라 도착하고 있었다.

이에 조 부인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곧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부인들을 안으로 모시거라.”

* * *

사실 이 부인들의 본심은 다들 다른 데에 있었다. 사실은 굳이 이렇게 많은 여식을 데리고 올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이 조가(趙家)에 누가 있느냐 하면, 바로 금주성 사람이라면 모르는 자가 없는, 조가의 공자 조언옥이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신통한 재능을 가진 아이였다.

조언옥은 올해 15세로, 아직 정해진 혼처가 없었다. 그는 2세 때 글자를 떼고 5세 때 책을 읽었으며, 10세 때는 이미 사서오경에 통달했다. 또 12세 땐 일찍이 수재(*秀才: 중국 과거시험 응시 자격 취득을 위한 시험인 동시(童試)의 합격자를 이르는 말로, 옛 시대엔 13, 14세에 수재가 되는 것만으로도 드문 일이었음)라는 칭호를 얻었다…….

만약 아무런 이변이 없다면, 그는 이제 곧 삼원급제(*三元及第: 과거시험의 마지막 세 단계인 향시(鄕試), 회시(會試), 전시(殿試)에서 모두 장원급제하는 일)해 내년이면 주 왕조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젊은 장원이 되어 육황자가 제위에 오르도록 옆에서 보좌할 것이었다.

하지만 조언옥이 앞으로 어떤 인물이 될지는 그녀와 아무 관계도 없었다. 그녀는 이번 생에서는 그와 다시 얽히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조언옥과 가까이 지내면 사실 엄청나게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아주 잠깐만 방심해도 그에게 그대로 끌려가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때 당시 자신이 이용을 당했던 건지, 아니면 자신이 그를 이용했던 건지를 당최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제 낭자, 함께 정원을 좀 걷는 건 어떠신가요? 어차피 저흰 여기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테니까요.”

이번에는 현령의 부인까지도 여식을 데리고 왔는데, 바로 침향의 이전 주인인 사 낭자였다.

사실 제완은 이곳에 남아 조 부인과 다른 부인들이 각종 사무를 어떻게 안배하는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많은 고낭이 왔기에 그녀만 너무 튀게 행동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제완은 육 씨에게 말한 뒤, 사 낭자와 함께 부인들이 회의를 진행할 곁채에서 나왔다. 그리고 정원으로 가, 다른 고낭들과 담소를 나누기로 했다.

사 낭자의 이름은 사숙정(謝淑靜)으로, 그녀의 집안은 지금 이 고낭들 사이에선 별 볼 일 없는 수준이었다. 하인들에게는 포악하고 매정하기 그지없게 굴던 그녀는 자신보다 신분이 더 존귀한 사람에게는 꽤나 비위를 잘 맞추었기에, 이 숙녀들 틈바구니에서 사람들과 관계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듯했다.

“제 낭자, 낭자도 오늘 꼭 여기에 오실 거로 생각했어요. 아직 다른 분들은 모르시지요? 제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사숙정은 제완을 보자마자 아주 익숙한 태도로 다가왔다. 제완은 오늘 처음 온 데다 다른 사람들과는 서로 모르는 사이에 가까웠다. 이전에 만난 적은 있지만, 그저 고개만 까딱이며 잠시 지나쳐 갔을 뿐, 어울려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제완의 뒤에 있던 침향을 보고 사숙정은 살짝이 입을 삐쭉이고는 짐짓 못 본 척을 했다.

“이분들은 각각 강(江) 수비(*守備: 무관 관직명 중 하나) 댁의 이고낭이시고, 임(林) 동지(*同知: 부태수(副太守)로, 정5품에 해당함) 댁의 삼고낭, 허(許) 통판(*通判: 부태수로, 정6품에 해당함) 댁 대고낭이십니다…….”

사숙정은 제완에게 낭자들을 한 명 한 명 소개했고, 제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일찍이 제완과 서로 안면이 있던 낭자들도 웃으며 그녀의 인사에 화답했다.

“흥, 사숙정, 여기가 지금 네가 그렇게 주인 행세할 수 있는 데인 것 같니?”

사숙정이 아직 말을 하고 있는데 돌연 째질 듯 낭랑한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렸다.

상대를 본 사숙정의 낯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그녀의 눈동자에는 원망과 더불어 괴로운 감정이 녹아 있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