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경매장 (3)
푸른먼지초.
잎이 푸른 색상을 띠고 있는 작은 풀로, 잔디와 비슷한 외관을 가지고 있으며 건조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그 특유의 외관과 특성을 이용해서 주로 잔디밭이나 정원의 경계선 같은 미관 용도로 사용하거나, 저지대나 구릉지처럼 토지 조건이 까다로운 곳에 수분 보존을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 드러난 용도일 뿐.
푸른먼지초의 진정한 용도는 바로 어둠의 세계에서 유통되는 특정 마약의 부가 재료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푸른먼지초를 가루 낸 것을 정밀하게 조정해서 배합한다면 그 효과가 배가된다나 뭐라나.
그 탓에 푸른먼지초 자체가 뛰어난 자생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보기 드문 이유였다.
만약 푸른먼지초가 눈에 띈다면 약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약쟁이들과 온갖 마약상들이 그걸 내버려 둘 리가 만무했으니까.
'이게 적당하겠어.'
굿럭이 어떤 목적으로 푸른먼지초를 찾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건 내 알 바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 정보에 굿럭이 보상을 내걸었다는 점이었다.
-용잡이 : 헤스본 구릉지 쪽 잘 찾아보세요. 그리고 확인되면 지금 시간에 올린 경매장에 있는 나무 숟가락 바로 입찰해 주세요.
제법 절실하게 푸른먼지초를 찾고 있었던 건지, 답장은 생각보다 빠르게 달렸다.
└굿럭 : 캬! 고마워! 진짜 중요한 거였는데. 바로 입찰할게!
푸른먼지초를 애타게 찾고 있었던 건지, 굿럭은 거리낌 없이 바로 입찰을 해 주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정보라는 건 모두에게 상대적이다.
어떤 정보는 누군가에게 천금 같을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그 어떤 가치도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정보의 절대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당연히 아키로의 미궁 2층 공략이 마약에나 쓰는 푸른먼지초 위치 따위보다는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그럴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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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중인 경매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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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품목]
◆나무 숟가락
[입찰 목록]
◆15골드(제국 금화 15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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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찰된 금액을 본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1골드의 가치는 얼마인가?
이에 대해 물었을 때, 설정을 떠들기 좋아하는 유저들은 한국으로 치면 약 백만 원 정도의 가치가 있을 거라 말했다.
즉, 1실버는 만 원이고, 1쿠퍼는 백 원인 셈.
뭐... 엄밀히 따지면 라크나 대륙에 현실을 완전히 대입할 수는 없으니 그냥 설정 떠들기 좋아하는 이들의 대략적인 수치일 뿐,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어쨌거나 굿럭은 고작 푸른먼지초 위치에 무려 15골드라는 거금을 순순히 내주었다.
굿럭이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건지 아니면 그만큼 푸른먼지초를 애타게 찾고 있었던 건지는 몰라도, 놀라운 일인 건 확실했다.
'내 생각보다 헤스본 구릉지에 푸른먼지초가 많았나?'
내가 굿럭에게 알려 준 장소는 푸른먼지초가 자생하기는 해도,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은 곳이다.
나로서도 굳이 푸른먼지초가 많이 서식하는 장소를 알려 줄 필요성이 없었기에 그곳을 알려 준 것이다.
그게 언젠가 될지는 몰라도, 푸른먼지초가 많이 자생하는 장소의 정보는 요긴하게 쓸 곳이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푸른먼지초가 월등히 많았다면?
푸른먼지초가 자생에 성공해서 그곳에 대량으로 번식했다면?
푸른먼지초의 주 용도 중 하나가 바로 마약의 재료라는 걸 생각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보상은 아니었다.
'뭐가 됐든 좋은 일이겠지.'
25골드.
정보가 돈이 된다는 사실은 진작 인지하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쉽게 큰돈을 벌어 버렸다.
이제 남은 건 고작 5골드.
이대로면 30골드를 마련하는 건 식은 죽 먹기처럼 보였다.
분명히 그랬는데....
"...."
어느덧 날이 완전히 저물었다.
막사로 돌아갈 시간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푸른먼지초 정보 이후 그럴듯한 성과를 전혀 거두지 못했다.
행운은 여기까지였던 걸까.
짧은 시간 동안 큰 수익을 올렸지만, 애석하게도 그 이상의 수익은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사실, 대부분의 정보는 익명 게시판 내에서 그리 특별할 것 없다.
귀중한 정보라면 애초에 답을 해 주지 않을 테고, 어중간한 정보에 대한 질문이라면 다수의 유저들이 푼돈을 받느니 그냥 쿨하게 댓글을 작성해 주는 걸 선택했기 때문이다.
-회사짤린듯 : 코쿤다라 약점이 어디임?
└익명651 : 목 아래쪽 노려 보셈 ㅇㅇ
└회사짤린듯 : ㅇㅎ ㄱㅅ
-헤슨 : 쿠루루 이 새끼들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 숲 쪽에서 며칠째 헤매는 중.
└기사단장임 : 그거 북동쪽으로 가 봐.
└헤슨 : 와 X발 드디어 찾았네 ㄱㅅㄱㅅ 역시 형님이십니다.
-돈좀주세요 : 돈 대체 어디서 범...?
└익명55 : 하던 대로 구걸이나 해, 새기야 ㅋ
└돈좀주세요 : 돈좀.
└익명55 : ㅈㅅ ㅋ
물론 모든 질문에 답변이 작성된 건 아니었다.
다만, 그런 게시 글 같은 경우는 애초에 보상 언급 자체가 없거나, 혹은 게시 글 자체가 뻘글로 변화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익명3 : 세톤의 미궁 1층 어케 깸?
└개꿀딱 : 안알랴줌. 너 저번에 보니까 답변해 주니까 글삭하고 튀더만.
└익명3 : 내가 언제?
└개꿀딱 : 아 딴놈이랑 헤깔렸네 ㅋ ㅈㅅ ㅋ!
새삼스레 느껴진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사람들은 보상을 내걸 정도로 절실히 필요한 정보가 있다는 것을 외부에 드러내는 걸 원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불특정 다수에게 원치 않는 정보를 노출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예를 들어서, 아키로의 미궁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부터가 스스로 아키로의 미궁에 있다는 걸 밝히는 것과도 같지 않은가.
'으음....'
이런 사태는 나로서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나는 익명 게시판을 뒤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질문 글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서 몇몇 게시 글에 보상을 주면 답변해 준다고 작성하기는 했으나, 답변이 없거나 욕을 할 뿐이었다.
-익명975 : 라듄 가죽 장비랑 그르르 가죽 장비랑 머가 더 나음?
└용잡이 : 보상해 주시면 비댓으로 알려드릴게요.
└익명975 : ㅋ ㅈㄹㄴ
-헤슨 : 제국 서쪽 지역에서 5레벨 정도가 파밍할 만한 곳 있나?
└용잡이 : 보상해 주시면 비댓으로 알려드릴게요.
└헤슨 : 뭐 이딴 걸 돈을 받아 처먹을라 하네. 알려 주기 싫으면 마셈 ㅇㅇ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싸늘했다.
하긴, 애초에 보상을 내걸고서 질문을 하는 게시 글과 순수 게시 글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헤슨 : 용잡이 저거 머임? 왜 질문 글마다 가서 돈 요구함?
└익명975 : ㄹㅇ 돈독 제대로 오른 듯.
└익명55 : 사기꾼 아냐?
거기에 더해서 활동이 너무 적나라했던 탓인지 저격 글도 올라왔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이 있다면, 나에게 아군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DoDo : ? 용잡이 그분 사기꾼 아님. 제 질문에도 제대로 답변해 주셨음.
-굿럭 : 저도 답변받음. 사기꾼은 아닌 듯.
이래서 상인들이 거래를 하면서 신용을 쌓는 건가 싶었다.
-헤슨 : 흠... 그래? ㅇㅋ
-익명55 : 그렇다면 뭐...
-익명975 : 확인해 보니까 맞네. 비댓으로 뭐 답변해 줬네.
어쨌거나 그 덕분에 최악에 가까웠던 게시판 여론도 잠시 진화됐다.
만약 도도와 굿럭이 나서 주지 않았더라면 용잡이는 그대로 사기꾼으로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참으로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대로는 안 돼.'
질문 글을 찾아다니면서 대가를 요구하는 방식은 내가 봐도 영 그림이 좋지 않았다.
실제로도 반발이 엄청나기도 했고.
그렇다면 이제 나에게 남은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용잡이 : (내용 必) 무엇이든지 궁금한 거 있으신 분 답변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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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궁금한 게 있으신 분 제가 아는 한에서 답변해 드립니다.
다만, 제가 아는 정보일 시에 정보에 따라서 소정의 정보료를 받고 있으니 그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정보료 지급 방식은 비밀 댓글로 따로 작성해 드리겠습니다.
댓글 달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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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였다면 이 방법까지는 쓸 생각이 없었지만, 이제 더는 남은 방법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예상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익명 게시판 내에서 내 인지도나 신용이 그리 높지 못하다 보니 달리는 댓글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그나마 달리는 댓글들은 모두 이 모양뿐.
-익명55 : 오늘 팬티 무슨 색?
-구사다 : 무플 방지 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
"...."
물론 폭발적인 반응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나는 익명 게시판을 껐다.
부디 그사이에 내 옛 펜던트가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 * *
오랜만에 잠을 설쳤다.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명경지수의 마음을 지닌 덕분에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적은 거의 없었으나, 애석하게도 익명 게시판을 살피느라 절대적인 수면 시간이 부족했던 탓이다.
"다들 잘 잤나?"
"예."
"오늘따라 목소리에 힘이 없군. 역시 체력이 부족해서인가?"
"아닙니다!"
아침 점호와 함께 본격적으로 오늘 하루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신경은 온통 익명 게시판과 경매장으로 향해 있었다.
혹시 내 게시 글에 새로운 댓글이 달리지는 않았을까.
혹시 경매장에 있는 내 펜던트가 팔리지는 않았을까.
아, 그러면 나가리인데.
이제라도 에드릭한테 돈을 빌릴까? 이제 빌려야 할 액수도 그리 안 큰데.
...뭐, 그런 생각들 말이다.
'음.'
그래서일까.
나는 스스로 금기처럼 여겨 왔던 일과 시간 중의 익명 게시판 열람을 시도했다.
[익명 게시판에 접속합니다.]
그렇게 틈틈이 확인을 해 보았으나, 애석하게도 새롭게 달린 댓글은 없었다.
'이따가 다시 올려야 하나?'
아무래도 익명 게시판에 쏟아지는 게시 글 속에 묻혔을 가능성이 컸기에, 나는 시간이 날 때 새롭게 게시 글을 올릴 생각이었다.
다만, 도배 수준으로 하는 건 곤란하다.
익명 게시판 내에 별도의 관리자는 존재하지 않지만, 혹시 다른 유저들이 나를 차단한다면 자연스레 나는 익명 게시판 내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오늘 훈련은 기초 체력 훈련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대규모 습격 이후로 겨울성은 제법 평화로웠다.
물론 늘 있는 수준의 침입은 있었지만, 굳이 훈련 중인 제4 특무대까지 불러들일 정도의 상황은 아닌 터라 우리는 훈련에 매진하게 되었다.
"선착순 한 명."
체력 훈련은 언제나처럼 고됐다.
그러나 요령이 생긴 건지 아니면 체력이 조금 붙은 건지는 몰라도, 나는 체력 훈련 도중 쉬는 시간 틈틈이 익명 게시판을 살폈다.
만약 평소에도 나를 주시하는 알비노가 있었다면 이런 내 모습을 굉장히 이상하게 봤겠지만, 다행히 지금 제4 특무대원 중에서 딱히 나를 주목하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틈틈이 새로 게시 글을 작성한 보람이 있었던 걸까.
새로운 댓글들이 달렸다.
-헤슨 : 레벨 몇임? 그래야 질문 답변해 줄 수 있는지 없는지 알지.
└DoDo : 아키로의 미궁 2층 공략 상세히 아시는 거 보니까 쪼렙은 아님. 확실함 ㄹㅇ
-기사단장임 : 흠...
그렇게 작성된 댓글들을 보고 있을 때, 유독 한 가지 댓글이 내 눈에 띄었다.
아니, 띌 수밖에 없었다.
그 닉네임은 나에게 있어서 경계할 수밖에 없는 닉네임이었으니까.
-루나 : 혹시 사람도 찾아 주나요?
25화 경매장 (4)
"...."
루나가 찾는 이가 누구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비단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다른 유저들의 반응 역시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마법사114 : 아 ㅋㅋ 누구 찾는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ㅋㅋ
└익명64 : 익게 공식 카인빠가 드디어 흥신소에 의뢰를 ㄷㄷ
└뉴들박77 : 그분 진짜 위험한 사람임;; 그만두셈.
└기사단장임 : 흠... 이거 맞나?
게시 글을 반복해서 올린 보람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루나가 댓글을 달았다는 소문이 퍼진 건지는 몰라도, 내 게시 글에는 적지 않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정작 내 게시 글의 본래 목적인 정보를 찾는 이가 그리 없는 건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러면 충분히들 쉰 것 같으니, 다시 시작하지."
그러나 애석하게도 익명 게시판을 더 볼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지금은 훈련 도중이었으니까.
"선착순 한 명."
언제나처럼 들려온 에드릭의 말과 함께 다시금 지옥과도 같은 뜀박질이 시작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이 한 가지 있다면, 이제껏 훈련을 거듭하며 체력이 조금 붙었는지 확실히 예전보다는 조금 할 만했단 것이다.
"후욱, 후욱...!"
물론, 그럼에도 지옥 같았지만.
뜀박질을 이어 나가는 와중에도 내 생각은 다른 곳으로 가 있었다.
'루나라....'
루나에 대해서 알게 된 이후, 루나가 누구인지 떠올리기 위해서 많은 생각을 해 봤다.
그러나 늘 결론은 같았다.
나는 루나라는 인물 혹은 그와 비슷한 인물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루나가 어떤 목적으로 나를 찾는 건지 또한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률적으로 좋은 목적보다는 그렇지 않은 목적일 가능성이 훨씬 클 뿐이지.
'역시 답은 정해져 있는 거겠지.'
사실 엄밀히 따지면 이는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
루나가 찾고 있는 게 카인이든 아니든, 어차피 내가 파는 건 정보지 사람 찾기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거기에 더해서 내 입장에서 루나랑 엮여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루나의 댓글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는 처음부터 정해진 답이었다.
"훅! 훅!"
콘란이나 알리시아나 여전히 내가 체력적으로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그 차이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훈련이 끝날 때마다 화톳불에 가서 물의 보옥으로 몸의 회복 속도를 가속한 게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비록 능력치 자체가 상승하지는 않았지만, 공정의 세계에는 보이지 않는 소수점의 능력치 상승 역시도 존재했으니 말이다.
제4 특무대 내에서 육체 능력으로는 두 번째라고 볼 수 있는 콘란의 육체 능력을 따라잡는 것도 이제 머지않았다는 소리다.
"잠깐 쉬었다 다시 하지."
에드릭의 말과 함께 다시금 짧은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러면....'
생각을 마친 나는 잠깐의 여유를 틈타서 익명 게시판에 접속했다.
내가 작성할 댓글은 정해져 있었다.
└용잡이 : 죄송하지만 사람 찾는 건 못 해 드립니다. 다른 질문 해 주세요.
이 게시 글을 지켜보고 있기라도 했던 걸까.
답변은 꽤 빠르게 달렸다.
└루나 : ㅜㅜ 아쉽네요.
생각보다 쉬운 포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굳이 파고들 생각은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루나와는 여러모로 엮이지 않는 게 오래 살아남는 비법일 테니.
나는 그 이후에 다른 댓글에도 비밀 댓글로 답변을 작성했다.
-헤슨 : 레벨 몇임? 그래야 질문 답변해 줄 수 있는지 없는지 알지.
└DoDo : 아키로의 미궁 2층 공략 상세히 아시는 거 보니까 쪼렙은 아님. 확실함 ㄹㅇ
└용잡이 : 레벨은 말씀 못 드립니다. 그래도 웬만한 건 알려 드릴 수 있어요.
답장은 바로 달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익명 게시판에 있는 유저들이 모두 게시판만 보고 있는 건 아닐 테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나도 지금은 할 일이 많았으니까.
"기상!"
에드릭의 외침과 함께 다시금 훈련이 재개되었다.
* * *
다리가 후들거린다.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혹독한 기후에 맞지 않게 온몸이 땀으로 절었다.
"후우...."
어찌 보면 평소와 같은 훈련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에드릭은 만만한 상관이 아니었다.
에드릭은 우리가 훈련을 더욱더 잘 따라가면 잘 따라갈수록 자연스럽게 훈련 강도를 조금씩 올렸다.
조금의 적응할 틈도 없이 이루어진 그 훈련 강도 조절에는 정말인지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으으...."
"...죽겠군."
콘란이 나자빠졌다.
"...."
알리시아 역시도 언제나처럼 고고히 서 있기는 했어도, 후들거리는 다리까지는 감추지 못했는지 검술 연습용 목검을 지팡이처럼 짚은 채였다.
"쟤는 왜 맨날 저래? 그냥 앉지."
"흙 묻히기는 싫은가 보지."
콘란과 떠들고 있으니 알리시아가 이쪽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으나, 나와 콘란은 곧장 딴청을 부렸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다. 다들 고생했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훈련 종료가 선언되자,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부여잡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봐, 어디 가나? 오늘따라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이던데."
"볼일이 있어서."
"무슨 볼일?"
"그런 게 있어."
"흠. 뭐, 마법사라는 놈들이 그렇지. 알았다."
마법사라는 족속들이 괴상하게 구는 게 하루이틀이 아닌 건 라크나 대륙에서 상식과도 같다.
그렇기에 내가 조금 별난 짓을 해도 주위에서는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다.
마법사란 으레 그런 족속이니까.
'마법사는 아니지만.'
물론 언젠가 필요한 마법이 생긴다면 악마와 계약을 맺을 수도 있겠지만,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은 일이다.
강력한 마법에는 그에 맞는 대가가 따른다.
이는 공정의 세계에서 절대적으로 지켜지는 황금율의 법칙이었고, 따라서 마법을 손에 넣게 된다면 언제고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에 대한 대가는 차곡차곡 나에게 쌓일 테고.
당장 알비노 역시도 마법의 대가를 이겨 내지 못해서 아직도 의무대에 누워 있지 않은가.
에드릭의 말에 따르면 곧 복귀할 거라고 하던데....
'뭐, 그건 그렇고.'
나는 익명 게시판에 다시 접속했다.
확인해 보니, 헤슨에게서 비밀 댓글로 답변이 달려 있었다.
-헤슨 : 레벨 몇임? 그래야 질문 답변해 줄 수 있는지 없는지 알지.
└DoDo : 아키로의 미궁 2층 공략 상세히 아시는 거 보니까 쪼렙은 아님. 확실함 ㄹㅇ
└용잡이 : 레벨은 말씀 못 드립니다. 그래도 웬만한 건 알려 드릴 수 있어요.
└헤슨 : 흠... 그럼 하나 물어봄. 지금 제 세팅 상담 좀 하고 싶은데 가능?
장비 세팅 문의.
공정의 세계에는 무수히 많은 장비가 있었고, 그에 따라서 같은 장비라도 어떤 장비와 섞어서 착용하느냐에 따라서 효율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고, 그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세팅 문의였다.
나는 바로 답변을 작성했다.
└용잡이 : 5골드에 답해 드림 ㄱㅊ?
답장은 빠르게 달렸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댓글을 지켜보고 있었던 듯했다.
└헤슨 : ;; 개에바. 너무 비쌈. 1골이면 생각해 봄.
...어쩔 수 없나.
어차피 저 정도의 정보라면 그리 진귀한 정보도 아니었으니, 나는 헤슨의 제안을 수락했다.
└용잡이 : 착용하고 있는 장비 불러 주시면 바로 답장해 드림. 정보료는 경매장에 나무 숟가락 올려 놓을 테니 입찰해 주시면 됩니다.
곧이어서 헤슨이 자신이 착용한 장비 목록을 비밀 댓글로 작성했다.
'음, 좋은 걸 끼고 다니네.'
척 봐도 지금 내가 지닌 아이추웡의 장비들보다 월등히 좋은 장비들이었으나, 나는 질투심을 감추고서 세세히 헤슨의 세팅을 말해 주었다.
└헤슨 : 오... 확실히... 용잡이 님 말대로 끼니까 훨씬 나은 듯? 바로 입찰해 드림!
곧이어서 내 경매에 새로운 알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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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중인 경매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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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품목]
◆나무 숟가락
[입찰 목록]
◆1골드(제국 금화 1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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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장 1골드를 입찰했다.
[경매가 완료되었습니다.]
['나무 숟가락'을 판매하였습니다.]
[입찰된 금액, '1골드(제국 금화 1개)'가 전송됩니다.]
겉으로 보면 나무 숟가락 하나를 무려 1골드에 팔아 치운 폭리를 취한 셈이었지만, 이미 여러 차례 해 왔던 일이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이제 남은 건 4골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볼 수도 있었으나, 늘 모든 일은 첫걸음이 어려운 법이다.
첫 번째 정보 상담을 무사히 마치고 나자, 자연스레 장난 삼아 나를 이용하려는 이가 한두 명씩 생겼다.
-기사단장임 : 흠... 재밌어 보이네. 나도 한 개 해 볼까.
-김박사 : 이 세계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해 보고 싶은데... 괜찮다면 시간 좀 내줄 수 있는가?
뭔가 내 의도와는 다른 인물들이 더러 섞인 기분이 조금 있었으나, 나쁠 건 없었다.
그 누군가에게 1골드, 2골드 정도는 잠깐의 유희로 기꺼이 지출할 수 있는 돈이었으니.
-용잡이 :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용잡이의 익명 게시판 흥신소가 계속됐다.
* * *
꽤 많은 댓글에 답변을 작성하고 나서야 마침내 30골드를 모았다.
그 과정이 마냥 쉽지 않았지만, 그 과실은 더없이 달콤했다.
짤랑-
30골드.
제국 금화 30개.
누군가의 뇌피셜에 따르면 현실에서 삼천만 원에 버금간다는 그 거금이 무려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면....'
시드 머니는 손에 들어왔다.
남은 건, 행동으로 움직이는 것뿐.
[경매장에 접속합니다.]
경매장을 켜니, 다행히 펜던트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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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중인 경매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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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번호]
◆No.515
[경매 품목]
◆녹슬고 깨진 펜던트
[최저 입찰 가능 금액]
◆30골드
[현재 입찰 목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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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펜던트의 상태를 보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만약의 만약을 생각하고 있던 나로서는 정말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좋아.'
나는 곧장 펜던트를 입찰했다.
[입찰을 완료하였습니다.]
[입찰 금액 - 30골드(제국 금화 30개)]
이제 남은 건, 판매자가 내 입찰을 낙찰해 주거나, 경매 시간이 종료되어서 자동 낙찰을 받는 것뿐.
이제껏 나를 제외한 펜던트의 입찰자가 없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사실상 내가 낙찰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조차도 저 펜던트가 내 것이 아니었다면, 그냥 쓰레기겠거니 하고 넘겼을 정도였으니까.
"후아...."
이제 한고비를 넘긴 건가.
아니, 엄밀히 따지면 고비라고 부를 것도 없었으나, 왠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뭔가 찝찝한데.'
그러나 나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원래 좋은 일이 있을 때 으레 그런 기분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 *
오래전부터 그녀에게는 찾고자 하는 이가 있었다.
너무나도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어서 애타게 찾고, 또 찾았다.
그러나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이 세계 어디에서도 그의 모습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이 세계에 없는 것처럼.
믿고 싶지 않았다.
이 세계 어딘가에 그가 살아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렇기에 그의 흔적을 쫓았다.
하나씩, 하나씩.
그러다가 우연히 펜던트 하나를 줍게 되었다.
다른 이라면 모를까, 그녀는 단번에 그 펜던트를 알아보았다.
"이건...."
낡고 망가진 탓에 이제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펜던트.
그러나 그 가치를 아는 자에게만큼은 천금보다도 더욱더 가치가 있는 펜던트.
"이거라면...."
그녀는 마침내 찾아낸 단서를 이용할 방법을 떠올렸다.
바로, 경매장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 펜던트는 현재 낡고 녹슨 탓에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녀 역시도 이 펜던트가 정확히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려 그가 사용하던 장비였으니 그 가치는 엄청날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이용한다.
현재로서는 그 어떤 가치도 없는 펜던트지만, 그 가치를 알아볼 자를 찾아내기 위해서.
그렇게 정한 금액이 바로 30골드였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장난이나 취미로 사기에는 부담되는 가격이지만, 그 가치를 아는 자에게 있어서는 푼돈과도 같은 금액이었으니까.
스스로 훌륭한 계획이라 여겼지만, 애석하게도 입찰자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낡고 녹슨 펜던트.
그것에 무려 30골드나 입찰할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그녀는 익명 게시판에서 공허한 외침만을 외치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언젠가 그가 나타나기를.
쫓아도 쫓아도 도저히 닿지 않는 그의 그림자가 자신의 발에 밟히기를.
기다림은 길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이 세계에 그는 없다.
그러니, 포기하고서 이 세계에서 그냥 살아가자.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
그녀가 모든 걸 체념할 때쯤.
"...어?"
기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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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중인 경매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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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품목]
◆녹슬고 깨진 펜던트
[입찰 목록]
◆30골드(제국 금화 30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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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그 어떤 입찰자도 등장하지 않았던 무가치한 펜던트에 갑작스레 입찰자가 나타났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펜던트의 가치를 아는 자가 나타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료했다.
아니, 한 가지뿐이었다.
"드디어, 드디어...."
그녀의 어깨가 작게 떨렸다.
감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환희가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역시... 이곳에 계셨군요."
그가 이 세계에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루나의 얼굴에 환희와 함께 작은 홍조가 피어올랐다.
"카인 님."
26화 하이마의 펜던트
할 일을 모두 마친 나는 막사로 돌아왔다.
"왔나?"
"그래."
콘란과 짤막한 인사를 마친 뒤 나는 자리에 앉은 채로 하염없이 기다렸다.
'음.'
어느덧 어둠이 찾아오고, 잘 시간이 될 때까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경매 시간이 종료될 때까지 다른 입찰자는 나타나지는 않았다.
곧, 나는 본래의 목적이었던 녹슬고 깨진 펜던트를 낙찰 받을 수 있었다.
[경매가 종료되었습니다.]
['녹슬고 깨진 펜던트'를 낙찰 받으셨습니다.]
[입찰된 물품, '녹슬고 깨진 펜던트'가 전송됩니다.]
푸른 빛무리와 함께 내 손에 쥐이는 부서지고 녹슨 펜던트.
내 기억 속에 있는 펜던트와 일치하는 생김새를 지녔으나, 그 생김새를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녹슬고 부서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살며시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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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슬고 깨진 펜던트]
분류 : 액세사리
등급 : 하급
녹슬고 깨진 탓에 본래의 힘을 잃어버린 펜던트.
녹슬고 부서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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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했던 대로 펜던트의 상태는 영 좋지 않았다.
과연 이것을 본래대로 되돌리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 들 정도로.
'일단은 해 봐야겠지.'
펜던트를 되돌리는 게 가능할지 불가능할지는 직접 해 봐야 아는 것.
나는 손가락 끝에 살짝 상처를 낸 뒤, 펜던트 위에 피를 흘렸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이것으로 펜던트가 잃어버린 힘을 조금이나마 되찾을 수 있을 터.
뚝, 뚝....
한 방울, 한 방울.
마치 메마른 모래 위를 적시듯이 녹슬고 부서져 있던 펜던트가 피를 머금기 무섭게 묘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스스스...!
그와 함께 펜던트에 껴 있던 녹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툭, 투툭─
[멸망 유예자의 피가 '녹슬고 깨진 펜던트'에 깃든 마기를 일부 정화합니다!]
['녹슬고 깨진 펜던트'에 깃든 마(魔)가 너무 강대하여, 마기의 일부만을 정화합니다.]
['녹슬고 깨진 펜던트'가 본래의 모습을 일부 되찾습니다!]
['녹슬고 깨진 펜던트'의 이름이 '하이마의 깨진 펜던트'로 변경됩니다.]
나는 곧장 하이마의 펜던트의 정보를 확인했다.
────────────
[하이마의 깨진 펜던트]
분류 : 액세사리
등급 : 고급
하이마의 펜던트.
마기에 의해 부식된 탓에 본래의 힘을 잃어버린 상태다.
현재 멸망 유예자의 피로 옛 모습을 일부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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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기라.... 과연, 그렇게 된 건가.'
하이마의 펜던트가 이렇게 녹슬고 부식된 이유가 무엇인지야 뻔했다.
단순히 망가지고, 오래됐기 때문만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하이마의 펜던트의 원형이 어느 정도라도 남아 있었어야 할 테니.
'멸망룡의 피를 먹은 거군.'
본래 하이마의 펜던트는 피를 흡수하며 강해지는 액세사리다.
그것이 인간의 피든 마수의 피든 가리지 않고서 말이다.
그러한 능력을 지닌 펜던트가 지금 마기를 품게 되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깊게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나와 멸망룡과의 전투는 치열했고, 그 와중에 멸망룡의 피 일부가 바닥에 널브러진 하이마의 펜던트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은 충분했으니까.
멸망룡의 피에는 필시 막대한 수준의 마기가 깃들어 있을 테고, 내가 지닌 장비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장비였던 하이마의 펜던트가 이 모양이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나 지금에서는 그게 꼭 나쁜 일이라고 볼 수만은 없었다.
멸망룡의 피에 깃든 마기는 하이마의 펜던트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서 하이마의 펜던트 자체를 부식시켜 버렸으나, 반대로 생각하면 지금 하이마의 펜던트에는 멸망룡의 힘이 일부 깃들었다고 봐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지금 나에게는 멸망룡의 피에 깃든 마기를 없앨 수 있는 멸망 유예자의 힘이 있었으니까.
'당장은 이 정도가 한계겠지만... 아마 내 레벨이 오르면서 강해지면 멸망 유예자의 피 역시도 함께 강해지겠지.'
그렇게 되면 하이마의 펜던트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이마의 펜던트에 깃든 멸망룡의 힘마저도 어느 정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이마의 펜던트의 본질 자체가 온갖 피를 흡수하면서 점차 강해지는 액세사리였으니 말이다.
'그러면....'
비록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긴 했어도, 어쨌거나 하이마의 펜던트를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 성능은 예전에 비해서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빈약하겠지만, 그거야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다.
'망설일 이유는 없겠지.'
나는 하이마의 깨진 펜던트를 착용했다.
그와 함께 하이마의 깨진 펜던트 안쪽에 있는 미세한 바늘들이 내 가슴을 찌르며 파고들었다.
['하이마의 깨진 펜던트'를 착용하였습니다.]
['하이마의 저주'로 인하여 착용자의 피가 폭주합니다.]
['하이마의 저주' 효과로 신체 능력이 20% 향상됩니다.]
['하이마의 저주' 효과로 '출혈'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이 감소합니다.]
하이마의 저주는 하이마의 펜던트를 착용할 시 기본적으로 걸리는 버프이자 디버프로, 착용자의 혈류속도를 상승시킨다.
그로 인해서 전체적인 신체 능력이 상당히 상승하지만, 만약 출혈 같은 상태 이상이 발생한다면 출혈 속도가 빨라질 뿐만 아니라 피가 잘 멎지 않게 된다.
일종의 양날의 검인 셈.
'아직은 그 효과가 약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본디 하이마의 저주는 크게 신체 능력을 몇 배까지도 늘려 주는 효과가 있건만, 지금 나에게 적용된 효과는 고작 20%에 불과했다.
하이마의 펜던트에 찌든 마기로 인해서 본래의 성능을 십분지 일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힘 역시도 발휘하지 못하겠지.'
그 외에도 하이마의 펜던트에는 피와 관련된 여러 능력이 있었으나, 가장 기본적인 능력인 혈류속도 상승이 저렇다면 다른 능력은 볼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지금의 나에게는 이 정도 수준이 딱 좋다.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은 되레 나를 집어삼킬 뿐이었으니.
특히 그 힘이 멸망룡처럼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의 힘이라면 더욱더 그러했다.
비록 내가 멸망룡 사냥에 성공하기는 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수없이 많은 우연이 겹쳐서 만들어 낸 기적에 가까웠으니까.
'그래도 일단 한 걸음 내디뎠다.'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런 필사적인 한 걸음을.
* * *
다시금 훈련의 나날이 이어졌다.
"선착순 한 명."
이제는 훈련 중 빠질 수 없게 된 에드릭의 선착순은 제4 특무대의 주요 일과 중 하나였다.
당연히 지금껏 꼴찌는 내 차지였다.
그나마 물의 보옥을 손에 넣고서 알비노를 제칠 수 있게 되어서 조금 나아지나 했건만, 알비노가 의무대 신세를 지게 된 탓에 다시 꼴찌는 내 차지가 되었다.
나로서는 억울할 따름이었으나, 그것도 오늘까지였다.
['하이마의 저주'가 발동 중입니다.]
['하이마의 저주'로 인하여 착용자의 피가 폭주합니다.]
['하이마의 저주' 효과로 신체 능력이 20% 향상됩니다.]
['하이마의 저주' 효과로 '출혈'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이 감소합니다.]
체내의 피가 폭주하면서 전반적인 신체 능력은 물론이고 모든 신진대사 속도가 빨라졌다.
마치 피가 끓는 것 같은 기분.
단순히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하이마의 펜던트가 지닌 능력은 그러한 능력이었으니.
"하하! 오늘은 좀 나아졌는데?"
콘란이 껄껄 웃으면서 언제나처럼 나를 앞서갔다.
정확히는, 그러려고 했다.
"음?"
이전에는 순식간에 벌어졌던 콘란과의 차이가 줄어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씩 거리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나와 콘란이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제법... 하는데!"
콘란이 사납게 웃으면서 발돋움을 더욱더 강하게 박찼다.
아직 여유를 잃지 않은 듯했으나, 그것도 여기까지였다.
꾸득, 꾸드득...!
점차 강해지는 혈류속도와 함께 혈관이 팽창하며 전신에 핏줄들이 일어났다.
그럴수록 내 발돋움 속도는 점차 빨라졌고, 콘란 역시도 이제 여유를 버리고서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어딜...!"
콘란이 이를 악물고서 어떻게든 나를 떨어뜨려 놓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제 더 이상 콘란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 또한 여유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웠으나, 그렇다고 해서 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이마의 펜던트가 가져다준 혈류속도 상승은 단순히 신체 능력 상승에서 그치지 않아.'
지금 우리가 달리고 있는 연무장에는 훈련을 위한 이런저런 장애물들이 놓여 있었고, 당연히 속도를 줄이지 않고 이를 적절히 피해 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반응속도가 필요했다.
바로 그때 하이마의 펜던트의 숨겨진 효과 중 하나가 아주 유용하다.
바로 착용자의 반응속도를 올려 주는 효과였다.
"저걸 어떻게 저렇게...!"
본격적으로 장애물들이 나오는 구간에서 내가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고서 장애물들을 피해 가자, 콘란이 경악했다.
멸망 유예자의 냉정함과 하이마의 펜던트가 가져다준 반응속도가 합쳐졌기에 가능한 묘기였다.
그때부터였다.
나란히 달리고 있던 나와 콘란의 거리가 점차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
여전히 순수 육체 능력으로만 본다면 내가 콘란을 따라잡을 수는 없을 테지만, 하이마의 펜던트가 가져다준 온갖 효과가 순간적으로 콘란까지도 제치게 해 준 것이다.
"먼저 가지."
나는 그대로 콘란을 지나쳐서 내달렸다.
"이익!"
콘란이 분하다는 듯이 악을 쓰면서 필사적으로 다리를 움직였으나, 이미 나와의 거리는 좁힐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 뒤였다.
* * *
에드릭의 시선이 연무장을 내달리는 제4 특무대원들을 향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이가 있다면, 역시나 벨 블랙우드였다.
'확실히, 예전과는 달라졌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콘란은커녕 알비노조차도 따라잡지 못했던 벨 블랙우드가 어느덧 콘란을 앞질렀다.
아무리 그동안 훈련에 매진했다고는 해도, 그건 다른 대원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는 걸 생각한다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성장세였다.
에드릭은 곧 그 이해되지 않는 성장세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 목걸이로군.'
에드릭의 시선이 벨 블랙우드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로 향했다.
이전에는 본 적 없는 목걸이.
그러나 저것이 범상치 않은 목걸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마 벨 블랙우드의 갑작스러운 신체 능력 향상은 저 목걸이 덕분일 가능성이 컸다.
그만큼 눈에 띄고 강력한 저주를 내뿜고 있는 목걸이였으니.
'흐음....'
도대체 벨 블랙우드가 겨울성 같은 장소에서 저런 물건을 어떻게 구했는지....
실제로 벨 블랙우드의 행적이나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마법은 신묘한 구석이 많은 마법사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명백히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벨 블랙우드.'
에드릭의 깊은 시선이 벨 블랙우드를 담았다.
지금까지 생각으로만 해 왔던 것을 이제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번 제대로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벨 블랙우드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겨울성에 찾아온 건지.
27화 습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