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 *

"경북 원정에는 참가하지 않으시겠다고요?"

내가 그리 말했을 때.

전광일 상병과 서수혁 상병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경북에 뭔가 불안한 징조라도 느끼신...."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오히려 그 반대다.

경북의 원정은 내 예상대로라면 그리 어려울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 이런 류의 전쟁에서는 굳이 껴 봤자 쓸모도 없잖냐."

"큼... 아니 뭐. 그렇게 말할 정도는 아니지."

"맞아요. 쓸모가 없다, 까지야.... 조금 덜하다... 정도?"

"...."

이민재 병장과 이상아 조장이 그나마 포장해 주기는 했지만.

솔직히, 나는 저 원정에서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차라리 우리가 압도적으로 열세인 상황이라면 내 요리를 통해서 활로를 찾아보는 식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지."

하지만, 지금은 적의 정보도 경북 지역의 생존자들을 통해 확보된 상황이며.

세 지역의 각성자들이 협동해 작전을 펼치는 만큼 병력 규모도 크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일이라면... 흠.

"전투식량 보급 정도?"

심지어 이것도 비마나의 식당에서 하는 게 더 효율적이란 말이지.

사실.

저 강원도 점령 전쟁 때 이미 깨달았다.

'군단은 이미 어마어마하게 강해.'

내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군단이라면 순조롭게 작전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태준이 녀석도 힘을 재정비했다고 했으니, 그 정보들을 김 중위에게 건네줄 수 있을 거야.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게 문제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원정이다.'

나중에 뭔가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는 달려가겠지만.

내가 저 현장에 집중할 필요는 없다는 것.

"그럼 병장님은 비마나에 머무르시는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물론.

저 경북 원정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한 게, 말년 병장답게 어디 짱 박히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다.

"부대가 다른 일로 바쁠 때. 미리 해결하고 넘어가고 싶은 일이 있어서."

"해결하고 넘어가고 싶은 일이요?"

조장들의 질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품에 손을 집어넣어 한 종이를 꺼내 들었다.

"그건 뭡니까?"

"소문이 적힌 종이."

"소문...?"

* * *

비마나 내부에 마련된 내 방.

그 안에는 지금 하나의 커다란 새장이 마련된 상태였다.

그 새장 안에는 꽤 덩치가 큰 파란 새 한 마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장영웅의 말로는 자기가 죽으면 금방 사라질 거라 했지만 말이지.'

솔직히 나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스킬로 인해 탄생한 생명체.

그 스킬을 사용한 주체가 사망하면 사라지는 게 당연한 얘기니까.

하지만....

'그 녀석, 아마 마력으로 이루어진 생명체 같았단 말이지.'

그렇다면.

비록 술자가 사망했다고 한들....

'요리를 먹이면... 조금 더 버티지 않을까 싶었지.'

그런 생각에.

가급적 마력이 듬뿍 들어간 요리를 만들어 먹여 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것.

-꾹꾹!

"그래, 그래."

지금 새장 안에 누워 있는.

바로 저 새라는 거다.

'까망이도 그렇고... 어째 점점 동물이 늘어나는 느낌이.'

아무튼.

저 파란 새를 오래 살려 둘 수 있다는 것은 꽤나 의미가 컸다.

소문을 물어 오는 힘이 있는 소환수.

어디까지나 소문인 만큼 헛소문의 비중도 크다고는 하지만.

'특정 소문'을 요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용성은 상당했다.

'정보를 물어 오는 건 마력 소모가 꽤 컸어. 자주 물어 오게 시킬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유용한 존재임에는 분명하다.'

박태준 병장의 정보력이 조금 떨어진 지금.

그나마 쓸 만한 정보 수집 수단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그리고.

나는 그 새장 앞에 선 채.

사락....

저 새가 물어 온 종이를 펼쳤다.

'처음에는 무슨 소문을 물어 오게 할까 고민했었지.'

마력 소모가 큰 행동이다.

가급적이면 신중하게 명령을 해야만 했다.

이 세상을 덮치고 있는 악의의 근원을 알 수 있는 소문이라든가.

혹은, 그 근원에 다가가는 데 힘이 될 것이라는 시스템의 정체를 알 수 있는 소문이라든가.

그도 아니면, 당장 우리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존재에 대한 소문이라든가....

여러모로 선택지는 많았지만.

결국, 내가 건넨 명령은 이거였다.

-몸을 치료하는 데 특화된 존재에 대해 알고 싶다.

저 경기도에서 있었던 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내 몸은 엉망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병사들의 사기 문제도 있어서 숨기기는 했지만.

이미 조장급 병사 몇몇은 눈치챌 정도로 심각한 상황.

'지금 이 상태로는 뭘 하고 싶어도 못 해.'

나는 기본적으로 요리사이지만, 그보다 먼저 취사병이다.

요리사이자 동시에 병사라는 것.

병사로서의 내 능력이 사라진 지금은 여러모로 제약이 커져 버리고 말았다.

저 서울에서 그걸 똑똑히 느꼈지.

게다가.

{일단은, 그 몸 상태부터 어떻게 좀 해 보거라.}

미리내도 그리 말했으니.

답은 하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런 생각에 저 새를 보냈으며.

그 새가 물고 온 소문이 바로 이것.

그리고.

"하."

그 쪽지에 적힌 내용을 본 나는.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얼마 전.

저 서울에서 만났던 존재가 내게 한 말이 떠오른다.

-자네는 스스로 나를 찾아오게 될걸세.

당시에는.

대체 무슨 근거로 그딴 말을 하나 생각했었지만.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겨우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기어들어 가야 하게 생겼네."

그도 그럴 게.

[서울, 강남]

['죽음의 외과의사'라 불리는 기괴한 괴물이 시체나 다름없는 부상자조차 되살려 낼 수 있는 최고의 의술을 보유 중이라는 소문.]

이 소문에 적힌 대로라면.

그 녀석은.

"의사라."

확실히.

내가 찾아가야 할 만한 직업을 가진 놈이었으니까.

450화 의사를 찾아. (2)

군단은 한동안 서울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도 그럴 게, 서울에서는 얻을 게 없었으니까.

당장 군단의 목표는 가능한 많은 생존자 전력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서울에는 생존자가 없었다.

서울로 향하는 경계 근처에는 경기도의 각성자들이 방어선을 펼쳐 두었다.

영역 본능을 가진 괴물들이 대부분인 만큼 그 안에서 튀어나오는 괴물의 숫자는 적었다.

당장 저 괴물만 득실거리는 서울 내부에 진입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는 셈이다.

그렇기에.

일반적이라면 이 지옥도 같은 곳에 다시 올 이유는 없겠지만.

"저긴가."

나는 지금.

바로 그 서울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예."

"목표 지점까지 안전하게 진입할 수 있는 루트를 알아보겠습니다."

부대원들과 함께.

그 서울을 향해 발을 들이밀고 있었다.

* * *

"혼자서 가겠다고?"

사실.

서울에는 혼자서 향할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번 서울행은 순전히 내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 가는 거잖아."

부대원들이 할 일이 없으면 모를까.

군단은 군단대로 경북 지역 공략으로 바빴다.

당연히 나 혼자 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었다만....

"그걸 말이라고 하냐?"

이민재 병장은 무슨 개소리냐는 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가 문제야?"

"뭐가 문제긴. 영준이 네가 군단장이라는 게 문제지!"

"딱히 전쟁을 하고 오겠다는 것도 아니고. 내 목표만 달성하고 돌아올 거야. 혼자서도 충분...."

"안 돼!"

그 말에.

나는 조금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뭐지?'

그야.

그동안 내가 단독 행동을 한 적이 좀 많기는 하고.

민재 형이 그런 나를 말린 적도 많기는 했다.

하지만.

"절대 혼자서는 못 보낸다. 혼자서 이동하려는 낌새라도 느껴지면 바로 제압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제압이라니."

이번에는 그 강도가 조금 강했다.

그동안은 내가 억지로 밀어붙이면 한숨을 내쉬며 바라보는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무력행사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수준.

"내 마법. 전기인 거 알지?"

"...."

"안 죽이고 제압하는 데는 자신 있다."

이렇게까지 반대할 이유가 뭔가.

조금 의아했으나.

"안 그래도 몸도 안 좋다는 녀석이 무슨 자신감으로 혼자 돌아다니겠다고...."

"뭐?"

내 몸 상태를 언급하는 그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뜬 채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큼...."

"그 뭐냐. 이 병장님이 물으시는데, 저희가 숨길 수도 없지 않습니까."

"이 새끼들이...!"

두 상병.

전광일과 서수혁은 내 눈을 피하며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내 몸 상태에 대해 눈치챈 건 저 둘뿐이었다만.

지금은 아닌 모양이었다.

"...누구까지 알고 있는 거야?"

"조장급... 은 다 알고 있습니다."

"조장급이면, 길드 간부들?"

초창기에는 조장급 하면 길드의 간부들을 표현하는 말이었지만.

부대의 규모가 커지면서 세분화도 이루어졌다.

이제는 시스템상의 간부 외에도 조장이라 불리는 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아뇨. 정찰조장이나, 공병조장... 김 중위님 등도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

어쩌다 보니.

그 조장급 병사들에게는 내 몸 상태가 다 알려진 모양이었다.

"하아. 알려 봐야 좋을 일도 없으니까 숨긴 건데...!"

"너무 걱정하지 마라. 다들 입 무겁고,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뛰어난 사람들이야. 네 몸 상태가 안 좋다는 얘기를 듣고 사기가 흔들릴 정도면 조장급이라는 지위에도 못 올라왔어."

그 말대로.

군단의 모든 직책은 능력 위주로 정해진다.

어느 정도의 정보 공유를 해 준다 해도 문제없을 이들이긴 하니 다행이라면 다행.

"어쨌든. 네 몸 상태가 정상이었어도 말렸을 일이야. 그런데 지금은 몸 상태도 안 좋다며."

"...크흠."

"그런 상태에서 혼자서 서울로 가겠다고? 저 서울 풍경을 본 부대원들이 하는 소리를 다 들었는데? 그걸 허락하는 놈이 미친놈일 거다."

뭐 이해는 가는데.

내가 혼자 가려고 하는 데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알잖아. 지금 서울 꼴."

"...?"

"괴물들의 숫자가 장난이 아니었어. 좁은 지역인만큼 밀집도도 높았고. 아마도, 경북 원정보다 저 서울에 있는 괴물들을 처치하는 게 더 어렵겠지."

한때는 서울이 멀쩡할 거라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압도될 정도였지.'

당시에는 우리 부대의 정예들 100여 명이 모여 있는 상황이었다.

원한다면 대규모 부대와도 일전을 치를 수 있을 정도의 초인들이 100여 명.

그럼에도, 우리는 서울의 꼴을 보고 얌전히 물러나야만 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얘기일지도 몰라.'

저 괴물들은 중요한 시설물들을 먼저 점거한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우리나라는 서울공화국 소리 듣는 곳이니까.

'가장 많은 인구에, 가장 많은 시설들이 자리 잡은 곳.... 가장 강하고 많은 괴물들이 나타났다 해도 이상할 건 없겠지.'

저 경기도처럼 환경이 뒤집혀서 괴물들이 적어 비교적 안전한 구역이 생긴다거나 그런 것도 없었다.

괴물이 없는 곳이라고는 보이지도 않는 지옥도.

[비마나]의 재기동이 가능해질 때까지는 공략은 엄두도 못 낼 정도의 괴물들이 몰려 있는 곳이 서울이었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나는 [환경동화]를 통해 진입한 다음, 목표만 달성하고 나올 생각이었거든."

"...환경동화는 부대원들은 사용할 수 없으니."

[절대미각(강화)]의 효과로 특성 자체를 가져올 수 있는 건 나뿐이다.

나머지는 [파란의 물방울]의 요리를 먹여 봐야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좀 강해진다든가, 존재감이 살짝 옅어진다든가 하는 수준이 한계일 것이다.

내 요리 실력이 급상승한 지금이어도 이 한계는 여전했다.

"그럼 이런 건 어떨까요."

"응?"

그때.

"군단장님의 은신술이 엄청난 것은 알지만, 그 은신술조차 파악하는 괴물들도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군단장님이 혼자서 서울에 진입하는 것은 말릴 수밖에 없죠. 호위는 필요합니다."

"...그래서?"

"대신, 군단장님처럼 몸을 숨기고 은밀하게 행동하는 데 특화된 부대원들을 위주로 호위대를 꾸리는 겁니다."

그 말을 한 인물은.

우리 부대의 조장급 인물 중 하나.

"제가 이끄는 정찰조는 적들의 시선을 피해 적진을 살피는 데 특화된 이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정찰조의 조장을 맡고 있는 인물.

정수아 조장이었다.

* * *

나야 요리를 통해서 은신에 관련된 능력을 얻는다지만.

사실, 각성자들의 능력은 무척이나 다양하고....

개중에는 은신에 관련된 것이 본업에 해당하는 이들도 있었다.

도적이나, 레인저 등.

은신과 관련된 스킬을 보유한 이들.

그리고.

"저와 제 부하들이라면, 군단장님을 모시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그런 능력에 특화된 이들을 모아 둔 곳이 바로.

정찰조였다.

"흠. 정찰조가 영준이의 호위로 붙는다는 건가?"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수아 씨도 믿을 만한 실력자고 하니."

이민재 병장과 이상아 조장도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확실히.'

정찰조장, 정수아의 정령술은 본래도 정찰에 무척이나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특히 얼마 전에는 정령술에 특화된 이계의 주민, 보르진을 영입함으로써 그 정령술이 일취월장했다고 들었다.

경북 주민들의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경북 공략전과 달리.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는 것은 물론, 본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몰락해 버린 서울은 우리에게 있어서 완전한 미지의 영역이다.

'정수아의 능력이 있다면... 정찰이 유용하긴 하겠어.'

문제가 있다면.

'원래 호위는 뱀파이어들에게 맡기려고 했다는 점인데.'

낮에는 문제가 생기긴 하겠지만.

저 경기도에서 대규모 병력 보충을 해 온 덕분에, 밤에는 군단과 비교해도 크게 꿀리지 않는 전력.

하지만,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는 그 전력도 사용하기 힘들 것이다.

"은인께서 어떤 고민을 하시는지는 압니다."

"응?"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먼저 입을 연 것은 정수아였다.

"몸 상태를 숨기신 것도 그렇고... 은인께서는 다른 부대원들에게 알려져선 안 되는 정보들을 가지고 계신 거겠죠."

"그건... 꼭 그런 건."

"그 비밀을 말씀해 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 제게 맡겨만 주신다면 그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되도록 만들어 보겠습니다."

정수아는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은인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으면서도, 어떤 비밀을 알게 되더라도 그 비밀을 결코 누설하지 않을... 그런 믿을 만한 인물들로만 호위대를 구성하겠습니다."

"...."

그 말에.

나는 멍하니 정수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리 부대에 합류한 지는 꽤 됐지만.

내게 너무 깍듯하게 구는 덕분에 조금은 거리를 두고 있었다.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는 모습이 오히려 부담스러웠달까.

하지만.

'부대원들 중에서도 가장 성실하고, 충성도도 높은 사람이지.'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부대 내에서 인망도 두터워서, 뭔가 모임 같은 걸 주최한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혓바닥을 내밀었을 때 느껴지던 맛은... 좀, 지나치게 짙은 '믿음'의 맛.'

나를 어지간히 신뢰해 주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겠지.

부대에 합류했을 당시부터 꽤나 높은 레벨을 보유하고 있던 인물이기도 했다.

능력에서도, 신뢰 면에서도 모자람이 없는 인물.

안 그래도 정수아는 내게 몇 번씩 친위대에 관련된 안건을 올렸던 인물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민재 형을 포함한 간부들도 그녀와 뜻을 같이하고 있으니, 쉽게 물러나지 않겠지.

얼마 전.

저 미리내에게서 들은 얘기대로라면.

너무 부대원들에게 모든 것을 숨기고, 나 혼자 하려는 태도는 좋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

"...인선은 맡기마."

"...!"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가, 감사합니다!"

얼마나 감격한 것인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표정으로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믿고 맡겨 주시길!!!"

그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이 명령이 그리 틀린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 *

-건방진 아이들이로군요.

서울을 향하는 도중에.

그림자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나는 그 목소리에 조용히 답했다.

-건방지다니, 뭐가.

-저 여자와 그 여자를 따르는 인간들 말입니다.

그림자 속.

아리엘라는 불쾌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주인님께서도 알고 계시는 거 아닌가요? 저들이 이번 서울행에 굳이 아득바득 동행한 이유.

-...그야 뭐.

그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생각했다.

'그놈의 친위대 어쩌구... 그거 때문이겠지.'

지금까지 몇 번이고 친위대 안건을 올렸으나.

그게 지금까지 모두 거절당해 왔으니.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쓸모를 증명하겠다... 뭐 그런 거겠지.

-그게 건방지다는 거랍니다.

-응?

-주인님의 호위는 내가... 나와 내 아이들이 담당하고 있는데, 능력도 모자란 것들이 감히... 감히 이 자리를 노리다니.

그런 그녀 말에.

나는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하는 건데. 설마 너.

그야.

지금까지 내 호위를 담당해 온 것이 아리엘라고.

그런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게 정수아를 비롯한 저 부대원들이기는 하다.

하지만....

-저 부대원들을 견제하는 거냐?

-....

그렇다고 해서.

이 녀석이 다른 부대원들을 견제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호, 호호... 견제라니. 무슨 그리 서운한 말씀을...!

그런 내 말에.

그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허둥지둥거리며 말했다.

-아니, 그... 음. 그게. 뭐랄까? 주인님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주인님의 호위에 진심을 다하고 있답니다.

-...그래?

-능력도 안 되는 것들이 이 자리를 노리다가 괜히 주인님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지나 않을까. 그게 좀 걱정되는 것뿐이랍니다! 호, 호호… 견제? 견제라니. 그런 건 비교가 될 만한 이들한테나 하는 것 아니겠어요?

...조금 미심쩍기는 하지만.

저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자기 일을 빼앗길지 모른다... 라는 위기감이라도 느끼려면.

일단은 그 자리를 빼앗길 수 있을 정도의 상대여야 한다.

적어도 현 시점에서, 아리엘라와 비견될 만한 능력을 지닌 이는 우리 부대에 없었다.

'...아, 혹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가 자신의 입지가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될 법한 일... 이라고 해야 하나.

'저번에 추가된 그 녀석 때문인가?'

인물이 하나 추가되었다는 게 생각났다.

그 녀석까지 고려하면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내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저만한 능력을 가진 놈이 자기 밥그릇 뺏길까 봐 불안해하는 모습이라니.

-다, 당장은 자신들 능력을 입증해 보이겠다고 저리 설치지만! 안 봐도 뻔한 일이죠.

내가 어이없어하고 있거나 말거나.

그녀는 당황스러운 태도로 말을 이었다.

-아마 곧 저 수도의 괴물들에게 압도당해서, 임무고 뭐고 내팽개치고 집으로 보내 달라고 울고불고 난리 치지 않을까요?

-....

-그럼 그때, 저 녀석들은 집으로 가라고 한 뒤에 저희와 함께 저 수도를 파고들면 되는 것이니... 제가 견제할 이유 따위는 어디에도....

그런데.

그녀가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

그녀의 말을 끊는 존재가 있었다.

"그러면 계획대로."

정찰조의 조장이자.

이번 호위대의 대장을 맡은 인물.

"지금부터 군단장님을 서울 심부까지 안전하게 인도하기 위한 작전을 시행하겠습니다."

"예!"

정수아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녀가 선별해 온 인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서울로의 본격적인 진입이 시작된다.

-...아, 아니.

그리고....

잠시 뒤.

내게 듣게 된 것은 집으로 보내 달라고 울고불고 난리 치는 소리가 아니라.

-이게... 아닌데...?

그림자 속에서부터 들려오는.

당황스러워하는 목소리뿐이었다.

451화 호위대.

결국, 그렇게.

나는 정찰조에서도 선별된 인원들과 함께 서울로 향했다.

'...대단하군.'

그리고.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서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저기가 군단장님이 말씀하신 곳입니다. 하지만... 당장 접근하기엔 주변에 위험 요소가 많은 것 같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길."

정수아 조장.

'그동안 부대원들 능력이 올랐다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내가 혼자 서울행을 하고자 했던 이유는.

그편이 더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니었다.

요리사인 내가 어떤 짓을 해도 전투직보다 나을 수 없는 것처럼.

각성자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는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의 능력을 발휘한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정찰조와 함께한 서울 침투는.

내 상상 이상으로 안전하고, 빠르게 이루어졌다.

-잠깐 정지. 앞쪽에 위험 요소.

정수아 조장이 그리 말하면.

-최대한 소리 없이 제거하고 오도록.

-충성.

정찰조의 병사들이 스르륵 하고 몸을 숨기더니.

이내 그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돌아온다.

과거에는 정찰조라 해 봐야 꽤나 엉성하게 그냥 먼저 앞으로 가서 조심조심 위험 요소를 살펴보는 정도였으나.

지금 정찰조들이 이 위험한 서울에서 안전한 루트를 개척하는 모습을 보면 감탄만 나올 지경이었다.

생각해 보면, 괜히 군대에서도 수색대가 빡센 게 아니다.

누구보다 먼저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도 모르는 곳으로 침투하는 일.

그런 일을 도맡아 해 온 정찰조의 병사들이 약할 리가 있나.

"정수아 조장."

"예, 은인이시여."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두각을 보이는 것이 바로.

"능력이 상당히 강해진 것 같네."

"...! 감사합니다!"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하는 정수아 조장이었다.

'대체, 얼마나 넓은 범위를 감지하는 거지?'

그녀가 위험 요소를 감지하는 범위는 터무니없이 넓었다.

아니, 범위 자체야 이전에도 넓은 편이었으니.

레벨이 오르며 덩달아 넓어졌다고 하면 납득이 가는 수준이다.

하지만.

"전에는 정령의 시야에만 의존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도 감지하는 것 같은데."

"후후! 알아봐 주셨군요...!"

그런 내 말에.

정수아는 기쁨을 억누르는 표정으로 말했다.

"은인께서 소개해 주신 스승님 덕분입니다."

"스승님이라면, 보르진 얘기로군."

"예. 스승님을 통해... 정령과 소통하는 방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웠지요."

노쇠한 보르진은 신체 능력이 좋지는 않기에 이곳에 같이 오지는 못했지만.

그 정령술만큼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정령술이 정수아에게 전해진 결과.

"지금 저는 방울이가 느끼는 모든 감각을 같이 느낍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반투명하게 보이는 커다란 물방울.

[상급 물의 정령]

[방울이]

방울이는 사람과 비슷한 형태와 크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 저 귀여운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강력해 보이는 모습.

'[상급]이라면, [고급]의 바로 전 단계.'

방울이가 상급 정령이 되었다는 것은.

정수아의 정령술이 30레벨대에 진입하기 직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방울이는...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물과 감각을 공유합니다."

그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주변에 고여 있는 물, 지하에 흐르는 지하수... 그 모든 게 제 눈과 귀, 피부나 다름없습니다."

"...!"

"저 지하수가 흐르는 곳 근처의 진동. 고인 물을 밟고 이동하는 괴물의 모습... 모두가 보이고, 느껴져요."

예전에는 말 그대로 드론 정도의 정찰 능력이었다면.

지금은 물의 정령이 느끼는 감각.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물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정보가 그녀에게 흘러들어 온다는 얘기였으니까.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감각을 손에 넣은 여자.

정수아가 불길한 눈초리로 저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곳에서는...."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곳이야말로.

내가 향하고자 한 목적지.

"불길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저 반복되는 서울 속에서 만났던 괴물이 자리 잡고 있다는 땅.

강남이었다.

* * *

나는 강남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놀랍군.'

서울의 대부분 지역은 그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괴되어 있었다.

내가 마지막에 장영웅을 보러 갔던 여의도는 물가에 있는 섬이란 점만 빼면 여의도인 걸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였지.

하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건물들이 대부분 남아 있군요."

무척이나 낡고, 곳곳에는 기괴한 살점 같은 게 붙어 있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옛날에 몇 번 갔던 강남의 모습이 조금은 보이는 수준이었다.

"이곳을 점거한 괴물은... 파괴적인 성향이 조금은 덜한 편이란 거겠죠."

"아마도 그렇겠지."

그 말에 짐작 가는 부분도 있었다.

'저 대모가 만들어 낸 서울에서 만난 그 괴물.'

적어도 당시의 대화로 보았을 때.

녀석은 대화가 성립하는 존재였다.

심지어 그 대화를 돌이켜 보면, 놈은 꽤나 이성적인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적어도 무차별적인 파괴를 즐기는 괴물은 아니라는 얘기.

"...은인이시여"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괴물이 아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도 그럴 게.

"꼭 저기로 가야만 하겠습니까?"

"아쉽지만. 당장은 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괴물이.

-크뤄어어어어억....

그나마 온전해 보이는 건물들 사이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었으니까.

* * *

수없이 많은 괴물이 바글거리는 땅.

그 괴물들의 모습은 내게는 꽤나 익숙한 것이었다.

[식재료 감별(강화)]

[악몽의 융합체]

[다양한 생명체들을 분해, 재조립하여 만들어진 인조 생명체들입니다.]

저 반복되는 서울.

그 중간에 여의도를 습격했던 괴물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그 '균열'은 장영웅의 한계가 다가오면서 생겨난 현상이었을 것이다.

대모는 저 서울에 자신의 힘으로 만든 이계를 덮어씌웠다.

나를 습격할 때는 그곳에 구멍을 내 괴물들을 보냈으며.

장영웅이 시간을 반복하면서 그 육체의 한계에 가까워졌을 때.

그 이계에 구멍이 뚫린 것이겠지.

이 녀석들은 그때 그 균열을 타고 대모의 이계로 넘어왔었다.

그리고.

"...상당히 강한 괴물들로 보입니다."

"숫자도 엄청나군요."

당시에.

나는 우리 부대의 최정예 병사 100인과 내 요리를 통한 버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균열을 통해 들어온 괴물들을 모두 처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판단했었다.

질적으로도.

수적으로도 뛰어나다.

쉽게 건드려서 될 존재는 아니었다.

"...은인이시여. 목표로 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곳은 너무 위험한 게 아닐지."

정수아는 물론.

나를 호위하던 정찰조의 병사들 모두가 걱정이 섞인 안색으로 말했다.

"일단 물러나 있어라."

"하, 하지만...!"

아쉽게도.

당장 내 몸을 치료할 방법으로 떠오르는 건 이쪽밖에 없었다.

게다가.

'저번에 저 녀석이 했던 말 대로라면.'

안심은 금물이지만.

...당장 목숨을 위협받을 가능성은 낮을 테니까.

'...혹시라도 공격당하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나를 보호해라.'

-예.

만약에 대비해 그림자 속의 호위 병력들에게 주문을 한 뒤.

나는 조심스럽게 그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땅으로 향했다.

그러자.

{호, 이런 누추한 곳까지 방문해 주시다니.}

그 괴물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가 있었다.

이목구비가 꿰매진 해골 같은 머리통에 박쥐 같은 피막만이 달린 채 둥둥 날아다니는 기괴한 생명체.

{참으로 영광일세, 군단장 나으리.}

저 서울에서 내가 직접 밟아 터트렸었던.

...나와 대화를 나누던, 바로 그 괴물이었다.

* * *

괴물들 사이에서 나타난 박쥐 같은 날개가 달린 괴물.

지난번에 내가 밟아 터트린 그 괴물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그때도 저게 본체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아마도.

저 괴물들을 다스리는 주인쯤 되는 녀석이 자기 뜻을 전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말기 정도 되는 괴물인 거겠지.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리고.

지난번, 서울에서 저 녀석을 만났을 때.

놈은 내게 똑똑히 말했었다.

-자네는 스스로 나를 찾아오게 될 걸세.

당시에는 저게 무슨 뜻인지 몰랐었지만.

이제는 안다.

"의사 양반."

[파란 새]가 전해 준 정보대로라면.

저 괴물들의 주인....

지금 몸을 감추고 있는 그 녀석은 [죽음의 외과 의사]라 불리는 괴물.

"지난번에... 저 [대모]의 영역에서 만났을 때, 넌 내 몸 상태를 알아챈 거겠지?"

앞에 붙은 접두사가 신경 쓰이긴 하지만.

아무튼, 뛰어난 의술을 지닌 괴물이라는 얘기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상이 있다는 정도긴 하지만 말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던 거지?"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우리 군단이 보유한 각성자들의 수준은 꽤나 높아진 상태였다.

그리고, 군단에도 치료사 계열의 각성자들의 숫자가 꽤 많았다.

{당연한 것을 묻는군.}

하지만.

그런 녀석들조차 내 몸 상태를 제대로 진단하지는 못했다.

반면.

{평생을 의술 연구에 매진한 몸이네. 군단장 정도로 망가진 몸을 한눈에 알아보지 못해서야, 의사를 자칭할 자격도 없지.}

저 녀석은.

그 혼란스러운 전장 속에서도 한눈에 내 몸 상태를 알아챘다.

조만간 자신을 찾아오게 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남겼지.

자존심 상하는 얘기긴 하지만.

천산 무관의 무인들이 우리 부대의 전사들보다 강하고.

보르진의 정령술이 정수아의 것보다 뛰어났던 것처럼.

"그때 네가 말한 대로 이렇게 찾아왔다."

{그렇다면 용건은 하나겠군?}

"그래."

저 녀석의 의술은.

군단의 치료사들을 압도적으로 웃도는 수준이라는 얘기였다.

"내 몸을 치료할 방법을 알고 싶다."

{흐으음.}

나는 그리 말하면서도.

슬쩍 혓바닥을 내밀어, 녀석에게서 새어 나오는 '맛'을 느꼈다.

{나는 의술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긴 하네만....}

조금이라도 적대적인 기색이 느껴진다면.

곧바로 그림자 속의 뱀파이어들을 던지고 도주할 생각이었으나.

다행히도, 그렇게 적대적인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공짜로 치료를 해 달라는 건 조금 염치없는 얘기 아닌가 싶군.}

"뭐?"

뚜렷한 호의가 느껴지냐 하면.

그것도 아니기는 했다.

"저 이계에서 우리를 공격한 거. 나중에 갚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 빚은 이미 갚지 않았나. 내 도움이 없었으면 그대들은 저 이계를 탈출하기 힘들었을 텐데.}

"...그건. 너도 저 [대모]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서 한 일이었잖아?"

{가장 큰 동기 중 하나이기는 했지.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군단장을 도왔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

"...."

확실히 그 말대로.

지금.

나와 저 괴물 간에는 어떤 채무 관계도 존재하지 않았다.

저 녀석이 딱히 내게 엄청난 호의를 품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아쉽지만, 나는 그렇게 이타적인 몸은 아니라서 남을 위해 공짜로 일해 줄 생각은 없네. 그러니... 정말 그 몸을 치료하고 싶다면.}

내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지.}

저 녀석에게.

치료비를 내야 한다는 얘기였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그 몸을 치료하길 원한다면.}

녀석이 그리 말하자.

강남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던 괴물들의 행렬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안으로 들어오시게, 군단장.}

"...."

{치료비에 대한 협상을 진행하지.}

* * *

"으, 은인이시여."

"군단장님...!"

수없이 많은 괴물이 좌우로 갈라지더니.

그사이에 길이 만들어진다.

안쪽으로 들어오라는 저 괴물의 초대.

그 소리를 들은 부대원들은 경악하며 내 어깨를 붙잡았다.

"절대 들어가셔선 안 됩니다."

"바깥에서야 어떻게든 저희가 호위해 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 안에서 습격이라도 당한다면 저희로서도 대처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눈깔 괴물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떠나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리하게.}

"...."

{나야 치료를 한다면 그 대가를 받아야 할 테니, 대가에 대한 협상을 하고자 할 뿐이야. 치료받기를 원치 않는다고 한다면 붙잡을 생각은 없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나는....

"너희는 여기 머물러도 좋다."

"군단장님!"

그 괴물들의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돌아오십시오, 군단장님!"

"말했다시피, 너희는 여기서 대기해도 좋아. 어차피 볼 일이 있는 건 나뿐이니까."

병사들이 만류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오지만.

발걸음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일은 아니었다.

'저 녀석에게서 공격적인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안에서 협상이 어그러질 수는 있어도.

당장 저 녀석이 나를 초대한 것은 나를 해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 세상은 안전한 선택지만 골라서는 살아남을 수 없어.'

리스크를 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 몸을 치료하는 선택지를 골라야만 했다.

그러자.

"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매님."

"...."

멀리서.

병사들이 나를 바라보며 당황하고 있는 기척이 느껴졌다.

내 호위를 하겠다고 왔는데.

막상 서울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를 위험한 적진에 던져두게 생겼으니까.

저들로서는 꽤나 고민이 되는 상황이겠지.

"당연한 걸 물으시는군요."

...그리고.

"저는 은인께 어떤 일이 있어도 군단장님을 보필할 수 있는 이들을 꾸리겠노라 약속했습니다."

밖에서 대기해도 상관없다는.

내 분명한 허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 역시 은인께서 저희들에게 내리는 시험이겠지요...."

그들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저희의 임무대로 군단장님을 호위합니다. 따라오십시오."

빠른 발걸음으로 내 뒤를 따라오더니.

내 근처를 보호하듯 걷기 시작했다.

"정말 안 와도 되는데."

"...서운한 말씀을. 저희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호위 임무는 완수해 보이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부대원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예전부터 정수아는 내 친위대를 만들고 싶어 했지.'

그녀는 몇 번이고 내게 친위대 창설 안건을 올려 왔다.

그리고 지금 이 호위 병력은 정수아가 엄선한 이들.

비록 이번 임무에 한정된다고 하나.

정수아가 그토록 원했던 내 친위대 역할이나 다름없었다.

'떠나도 된다는 말은 진심이었지만.'

그리고....

'정말로 내 친위대의 자리를 차지하려면 나를 두고 떠난다는 것은 어불성설.'

만약 여기서 내 호위를 포기했다면.

이를 빌미로 앞으로 올라올 친위대 안건을 모조리 거절할 생각이었다만.

"그러든가, 그럼."

그들은 나를 지키기 위해,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도 모르는 곳에 따라 들어오기를 선택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친위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 최소한의 자격 정도는.

증명해 낸 것으로 봐도 될 것 같다고.

452화 진찰.

{이곳은 한때 이 땅의 토착종... 인간의 의료 시설이었던 것 같더군.}

괴물들의 사이를 지나 도착한 곳은.

한때 강남의 중심부에 있었던 거대한 병원이었다.

{인간들의 의술은 기묘한 면이 있더군. 특정 분야로는 무척이나 발달한 듯하면서도, 특정 분야에서는 말도 안 되게 뒤떨어져 있기도 한 게... 무척이나 재밌었어.}

"...."

{아무튼, 이곳은 내게도 그럭저럭 쓸 만한 물건들이 많더군. 지금은 이렇게 신세를 지고 있네.}

"신세라."

예전이었다면 어딜 맘대로 대한민국 땅을 점거하고 있냐느니 얘기를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면.

"원래 이곳의 주인들은 어떻게 됐지?"

{그건 나도 모르네. 내가 이 땅에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미 이곳은 빈 건물이었거든.}

나는 강남을 가득 채운 저 '융합체'들의 무리를 떠올렸다.

강함도, 숫자도 압도적.

'이만큼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놈이다. 아마도... 이 서울 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한 괴물 세력이라 봐야겠지.'

아리엘라도 나와 만났을 때 본신의 힘은 특출나게 강하지 않았으나.

그 군세를 다룰 수 있는 힘 때문에 저 벙커를 지키는 괴물로 선택되었다.

본체의 힘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눈을 떴을 때 이 근처에 생존자가 없었다는 말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이 정도의 군세를 다룰 정도의 괴물이라면.

본신의 힘이 아무리 약하더라도, 꽤나 오래 이 땅에 봉인되어 있었을 테니까.

{잔말이 길어져서 미안하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할까.}

"그 전에 확답을 받고 싶다."

나는 눈앞의 눈깔 괴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정말로 내 몸을 치료할 수 있는 거겠지?"

{흐음.}

이 녀석이 대단한 의술을 지니고 있다고 한들.

내 몸 상태도 만만치 않게 심각했다.

일단은 이 부분에 대한 확답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 질문에 답하려면, 군단장의 자세한 몸 상태를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

"아까 보기만 해도 대충은 안다고 하지 않았나?"

{어디까지나 대충이지. 제대로 된 검진과는 달라. 군단장이 허락한다면 검진을 좀 하고 싶은데... 군단장 몸에 접촉해도 괜찮겠나?}

...저 흉측하게 생긴 괴물이 내 몸에 닿는다 라.

좀 꺼림칙하긴 하지만.

이 녀석에게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든가."

{그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그 순간.

쩌저저적....

"!?"

병실의 바닥 타일이 뒤집히더니.

바닥에서부터 무언가가 올라온다.

{검진을 시작하겠네.}

기괴한 기름으로 번들거리며 흉측하고 징그러운 촉수들이.

내 몸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갑작스러운 촉수들의 습격.

나는 그 습격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미친!'

부대원들은 이 방 바깥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 내 몸 상태로는 이 공격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그리 생각했으나.

콰앙!

"군단장님!"

그 순간.

문을 열고 들어오는 부대원들.

'...어떻게?'

방 안의 상황은 바깥에서는 알 수 없었을 터.

그럼에도 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이 조금 의아했지만.

그런 내 의아함과는 별개로 부대원들의 행동은 신속한 것이었다.

"군단장님을 보호하라!"

정수아의 명령에.

부대원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빼 들고 촉수를 향해 공격을 내지른다.

그리고, 그런 부대원들을 막은 것은.

"멈... 춰."

"!?"

이 기묘한 촉수가 아닌.

나였다.

"공격... 하지 마라."

"구, 군단장님? 그게 무슨."

나는 끈적거리는 촉수 사이에 끼인 채.

그런 병사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기분 뭣 같긴 한데...."

그럼에도.

녀석에게서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공격은 아니야."

이 녀석이 말한 대로.

이건 아마도.

{검진 끝났네.}

내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진짜 검진에 불과할 테니까.

{환자의 보호자 분들. 왜 갑자기 들어오신 거지?}

잠시 뒤.

촉수가 다시금 땅속으로 들어가자.

[의사]는 고개를 돌려 부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환자와의 상담은 개인적인 내용이 오갈 수 있는 시간이야. 어지간하면 자리를 비워 줬으면 좋겠네만.}

"그, 그래도."

{아까까지는 잘만 대기하고 있었으면서, 왜 갑자기 그러는 건가?}

병사들이 무기를 쥔 채로 망설이고 있자.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와주려 한 건 고맙다."

"군단장님...."

"하지만, 일단은 저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난 정말 괜찮으니까."

"...알겠습니다."

그제서야.

쭈뼛거리며 조심스럽게 방에서 물러나는 부대원들.

{보호자들이 좀 극성이로군.}

[의사]는 그런 부대원들을 보며 인상을 찡그린 채 말했다.

극성이라.

내 입장에서는 나를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는 거니, 오히려 좋은 얘기기는 하다만.

끈적....

"...."

나는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온몸에 끈적한 점액이 묻어 있는 상태.

"이런 건 미리 좀 말해 주면 안 되나?"

{음? 말하다니? 무얼 말인가.}

"저 이상한 촉수로 검진한다는 거."

그 말에.

저 괴물...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평범한 검진이었네만. 뭔가 문제가 있었나?}

"이게... 평범하다고?"

{음... 그럼 아니란 건가?}

"무슨 당연한 소리를...!"

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의사]는 조금 놀란 눈치로 답했다.

{...과연. 아무래도 나와 그대들 사이에는 문화의 차이가 존재하는 모양이군.}

"문화의 차이라니."

[아리엘라]의 경우.

그녀는 인간의 피를 마시고 그 피 안에 담겨 있던 정보를 읽어 냈다.

그 정보를 본인의 잣대로 평가하거나, 부르는 경향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아리엘라는 인류의 문명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보르진]도 비슷했다.

그는 인간 노예들을 붙잡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공부했으니까.

반면.

{나름대로 조사는 해 보았네만, 이 땅의 역사는 꽤나 길고 복잡한 것 같더군.}

저 녀석의 말은 우리의 머릿속에 울리는 방식....

저 다스무르의 [교황]과 유사한 것이었다.

{살아 있는 토착종들과 오래 교류할 수 있었다면 모를까. 나는 살아 있는 토착종 자체를 몇 번 만나 본 적이 없네.}

"...."

{나름 그들에게서 토착종에 대한 정보를 얻기는 했으나. 그 짧은 만남으로 모든 걸 파악할 수는 없지.}

한국어도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아리엘라와 달리.

저 녀석은 분명 강력한 존재임에는 분명하지만.

한국어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솔직히 말하겠네. 나는 그대들... 토착종의 문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상태일세.}

인간의 문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할 수도 있다는 것.

'이런 경우도 있는 건가.'

보통 저만한 지성과 힘을 가진 괴물은 어느 정도 인간에 대한 이해도 갖추고 있었으나.

생각해 보면, 모든 괴물이 그러리란 게 더 이상한 얘기.

이렇게 강한 힘을 가지면서도 인간에 대해서는 무지한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거다.

맘 같아선 화라도 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게.

{그래서 혹시 실례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검진을 해 봐도 되냐고 물어본 것이네만....}

"...."

저 녀석은.

내게 검진을 해도 되냐고 물어봤었다.

{당연히 검진이라고 하면 내가 생각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줄 알았네.}

그 검진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달랐을 뿐.

어찌 됐든, 저건 내게 허락을 구하고 이루어진 행위라는 거다.

{이 부분은 사과하지.}

"...뭐, 사과할 일은 아니고."

뭐라 하기도 뭐한 상황이다 보니.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끈적한 점액을 최대한 닦아 낸 뒤 다시금 의자에 앉았다.

{그나저나 검진의 결과 말이네만.}

"아."

{군단장의 몸 상태를 회복시킬 수 있냐고 물었지?}

애초에.

저 촉수 공격... 이 아니라, 검진은 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내 몸을 치료시킬 자신이 있느냐 하는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조금 애매하군.}

"뭐?"

그 말대로.

참 애매한 것이었다.

* * *

"애매하다니. 그게 무슨 의미지?"

{의사로서 거짓말은 하지 않겠네. 만약 군단장께서 원하는 것이 지금 같은 몸 상태가 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라면....}

녀석은 잠깐 인상을 찡그리며 생각이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나로서도 힘들어.}

"그게 무슨...!"

그 말에.

나는 짜증을 낼 수밖에 없었다.

"너를 찾아오게 될 거라느니 뭐니 했을 텐데. 당연히 내 몸 정도는 치료할 수 있으니까 그런 말을 한 거 아니었나?"

{....}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굴더니, 고작 이 정도 몸도 치료하지 못한다고?"

그런 내 말에.

녀석은 조금 자존심이 상한 것일까.

{아무래도 군단장께서는 본인의 몸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신 듯하군.}

내 몸을 유심히 바라본 뒤.

묘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전신의 혈도는 갈가리 찢겨 나가서 걸레짝이나 다름없는 상태고, 마나홀은 형체만 겨우 남아 있는 수준. 이질적인 마력이 자주 뒤섞여서 정제되지 못한 채 날뛰고 있는 상황에다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몰라도 영혼과 육체의 유착도 조금 벌어져 있군.}

"...."

{그 정도라면 다행이네만. 혈관에는 기묘한 마력의 노폐물이 잔뜩 껴있고. 관절에도 이상이 있네. 그 외에도... 음. 다 읊기에는 너무 많으니 여기까지 하지.}

그 말에.

나는 뭐라 대답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몸에서 멀쩡한 부분을 찾기가 힘들 정도야.} 

"...어."

{대체 몸을 얼마나 막 다룬 건가? 나로서는 이 정도의 몸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게 더 신기할 지경이네만.}

몸을 조금 험하게 다룬 편인 건 사실이었으니까.

"내 상태가 정확히 어떻다는 거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이미 시체가 되었을 정도... 라고 하면 되겠군.}

그 말에.

나는 흠칫 놀라며 말했다.

이미 시체가 되었을 정도라는 건 즉.

"이대로 가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거냐?"

{아니, 그 정도는 아니야.}

조금 공포에 떨며 말했지만.

다행히도 당장 목숨의 위협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 같았다.

그 이유는.

{군단장께서는 기묘한 생명력을 가지고 계시지 않나.}

"...!"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녀석은.

{반쯤은 평범한 인간이 아닌 상태. 그 '인간이 아닌 쪽'의 힘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거야.}

내 몸에 섞여 있는 괴물....

밤의 귀족의 피마저 파악한 상태였으니까.

{자세한 진찰은 해 봐야 알겠지만, 그쪽이 생물로서의 격은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것 같군.}

"...."

{이 정도로 강한 생명력을 지닌 생물은 전 우주를 뒤져 봐도 얼마 없네.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반쪽의 힘에 감사해야겠지.}

그 말에.

발밑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

-그렇다는데요, 주인님?

"...."

-의사의 조언은 잘 듣는 게 좋답니다. 감사... 하셔야겠죠?

...이 자식이.

부대원들을 견제하는 거냐고 물었던 게 속에 남아 있는 건지.

묘하게 깐족거리는 녀석.

아무튼.

밤의 귀족의 피가 지닌 압도적인 재생력이 내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

{그 힘 덕분에 당장 죽을 일은 없을걸세. 평범한 일상생활 정도라면 큰 문제는 없겠지. 다만... 이 힘에 의존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인간이 아닌 쪽에 잡아먹힐지도 몰라.}

"언젠가 라...."

다만.

이 피에 너무 의존하는 것도 좋지 않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남은 거지?"

{...거기에 답변해 주기는 조금 힘들 것 같군.}

답을 줄 수 없다니.

"얼마 남지 않은 상태라는 건가."

{그런 건 아니야. 이건 군단장이 얼마나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느냐에 따라 달린 일이거든.}

아, 과연.

이 힘을 과용하면 할수록, 저 힘에 먹히는 날도 빨라질 것이라는 얘기.

{미안하게 됐네만. 이 부분에 확답을 줄 수는 없을 것 같군.}

"아니. 나는 그 정도면 충분해. 그 이상을 바란 적도 없다."

{그런가. 그럼 나도 한 가지 묻고 싶네만.}

그러자.

다음으로는 의사 쪽이 내게 질문을 건넸다.

{한두 번 몸을 혹사하는 정도로는 이렇게 되지 않아. 이 정도라면 아마 몸이 망가져 가는 전조도 몇 번이고 있었을 텐데. 이상한 점을 느낀 적은 없나?}

"그건...."

내가 대답을 망설이자.

의사는 알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네. 전조를 느꼈지만, 전부 무시한 거겠지.}

"...."

지금 이렇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저 경기도에서 [광폭화]의 요리를 과용한 탓이지만.

그전에도 몸 상태를 깎아 먹는 일은 몇 번이고 있었다.

'대표적인 게... 요리의 버프를 3개 이상 중첩하는 거였지.'

모르고 한 일도 아니다.

내가 버프를 일정 이상 중첩할 때마다.

[시스템]은 이딴 짓을 하면 몸이 망가진다고 일일이 경고해 주었다.

생각해 보면 참 친절한 경고였다만.

'그냥 무시했지, 뭐.'

그 뭐냐.

한두 번 정도는 괜찮을 줄 알았지.

그리고 그 한두 번씩이 쌓인 결과가.

{몸이 망가질 것이라는 신호를 받았는데도, 이렇게까지 몸을 혹사하다니.}

지금.

내 몸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거다.

{하아... 남의 몸도 아니고 자신의 몸인데 조금은 귀하게 다루는 게 좋지 않겠나.}

묘하게 탓하는 듯한 말투.

뭐랄까, 건강 검진 하는 날 의사 선생에게 혼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군단장께서도 일찍 죽고 싶은 건 아닐 텐데. 오래 살려면 안정적인 몸 관리는 필수일세.}

문화가 다르다 뭐다 하더니.

저쪽도 의사는 의사인 모양.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나도 할 말이 있었다.

"그때는 그러지 않으면 안 됐거든."

{몸이 이 꼴이 되어 가면서까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그래."

이유는 간단했다.

"나와 내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해야만 했다."

그런 버프를 사용할 때는.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그 선택으로 내 몸이 이렇게 됐다고 해도 후회는 안 해."

저 [대모]와의 싸움 끝에.

나는 내가 한 일들이 최선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가기로 결정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난 같은 선택을 할 거다."

내가 가장 큰 후회를 품고 있던 대상인 김 중위가.

내가 한 일이 최선이었다고 확답을 주었으니까.

{...무슨 사정이 있었던 건지는 묻지 않겠네.}

그런 내 말을 들은 의사는 내 얼굴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무튼, 중요한 건 본론이네만.}

"그래. 결국은 내 몸을 치료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거 아닌가?"

{군단장의 주문이 몸을 과거의 상태로 치료하는 것이라면, 그렇네. 다만....}

쩌억 하고.

[의사]의 뜻을 전달하고 있던 눈깔 괴물 녀석의 입이 벌어진다.

{하하. 군단장께서는 운이 좋아.}

너무나도 흉측한 모습이었지만.

머릿속에 들려오는 이 소리대로라면....

'저게 웃는 표정인가?'

아마 저 기괴하게 찢어진 입은.

웃음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차선책이 없지는 않거든.}

"차선책?"

그리고 그때.

펄럭....

{본격적인 치료에 들어가기 전에 치료비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해 보지.}

어디선가 날아오는.

또 다른 눈깔 괴물이 한 마리 있었다.

그 눈깔 괴물의 입에는 종이가 하나 들어가 있었다.

눈깔 괴물은 날갯짓하며 내 앞에 다가오더니 그 종이를 테이블에 펼쳤다.

촤락.

그리고.

[의사]는 그 종이의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지역에 대해 알고 있나?}

"여긴...."

그리고.

나는 그 종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3포대가 있던 곳이군."

괴물이 가져온 종이는 서울의 지도였다.

그리고.

의사가 가리킨 곳은... 3포대.

{치료의 대가로 내가 원하는 것은 간단하네.}

저 대모의 이계에서 서울의 군인들과 대립했을 때.

우리를 향해 포격을 갈기던, 바로 그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던 장소였다.

{이곳에 둥지를 튼 존재를 포획하고 내게 가져다주게.}

저곳에 있을 것은 군부대.

즉.

'군부대에 자리 잡은 괴물을 포획해 달라....'

임무의 난이도는 둘째치더라도.

나는 고개를 들어 녀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면, 내 몸 상태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가?"

{아니. 말했다시피 그건 불가능해.}

내 몸을 원상 복구시키는 게 불가능하다면.

나는 이 임무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대신.}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쩌억 하고.

다시금 기괴하게 벌려지는 괴물의 입.

{과거보다 더 나은 몸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어떻겠나.}

녀석은.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그리 말했다.

453화 거래.

"위험 요소 제거했습니다. 이쪽으로."

저 강남을 떠난 뒤.

나와 병사들은 3포대가 자리 잡았던 장소를 향해 이동을 개시했다.

전보다 압도적인 정찰력을 지니게 된 정수아가 미리 위험 요소를 파악하고.

정찰조에서도 암행에 특화된 이들로만 구성된 호위대원들이 괴물들의 시선을 피해 그 위험 요소를 제거한다.

덕분에 이 위험한 서울에서도 최소한의 교전만을 치르며 이동할 수 있었다.

"...군단장님."

그리고, 그렇게 3포대를 향해 이동하던 중.

"정말 그 괴물을 믿어도 되는 걸까요?"

"흠."

나를 호위하고 있던 몇몇 병사들이 용기를 내며 내게 말을 건넸다.

"저기서 본 괴물들의 모습...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걸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뭐, 그렇긴 하지."

오히려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괴물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흉측했다.

녹색갈기 부족 같은 괴물들은 저놈들과 비교하면 잘생겼다는 생각도 들 정도.

"그런 녀석들을 믿어도 되는 걸지...."

"흠."

그 말에.

나는 저 '의사'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 * *

"여기 있는 괴물을 잡아 달라고?"

녀석이 내게 제안한 '치료의 대가'는 괴물을 생포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제안을 받은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답했다.

"그런 건 네가 직접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 강남을 가득 메운 괴물들.

그 괴물들은 숫자도 숫자지만, 그 수준도 무척이나 뛰어났다.

우리 부대원들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어지간한 각성자들이라면 저 괴물 한 마리를 상대하는 데에도 꽤나 애를 먹겠지.

'저 숫자까지 생각하면 그야말로 압도적인 폭력.'

애초에.

이 서울에서도 넓은 땅인 강남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녀석.

눈앞의 이 '의사'는 서울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힘을 지닌 괴물이겠지.

하지만.

{군단장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나는 의사일세.}

"그래서?"

{의사는 병을 치료하는 직업이지, 싸우는 직업이 아니거든.}

하지만.

그런 내 질문에 녀석은....

{전투는 내 전공이 아니란 거지.}

"...."

뭐랄까.

내게는 꽤나 익숙한 말을 뱉어 주었다.

'이 녀석은 나하고 비슷한 입장인가 보군.'

어느 정도 전투력을 갖춰 놓기는 했지만.

본업이 전투는 아니다 보니.

본격적인 전투에 자신이 있지는 않다는 것.

"저 밖에 있는 괴물들은 꽤나 세 보이던데."

{그 아이들은 내 목표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던 도중에 나온 결과물들일세. 정확히는... 실패작들이지.}

"...실패작?"

{어디에 버리기도 뭐해서 일단은 심부름꾼 겸 보조 정도로 쓰고는 있지만 내 목표를 달성하려다가 실패한 작품들인 만큼 본래는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아이들이 아니야.}

"그래도 저 정도 숫자라면 어지간한 적은 쉽게 쓰러트릴 수 있을 텐데."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했다시피 나는 의사라서 말이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는 녀석.

{전투에는 솔직히 자신이 없어. 전략이니 전술이니 하는 부분에는 완전한 문외한이지.}

"...."

{내 몸을 지키는 정도라면, 이곳에 이렇게 많은 병력을 구비해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하지만 공격에는 전술이 필요하지. 나도, 저 아이들도 그 부분에는 장점이 없거든. 어떻게든 숫자로 때려 박아서 강적을 쓰러트린다고 해도... 효율이 극도로 떨어지겠지. 해서.}

"내 도움을 받겠다?"

{효율은 중요하다네. 이왕이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낫지 않겠어? 게다가.}

그리고.

거기까지 말한 녀석은.

쩌어어억.

검진 때도 보였던.

기괴하게 찢어진 얼굴을 보여 주며 말했다.

{이번 거래를 통해 토착종 출신의 대규모 집단과 우호적인 교류를 만들어 두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네.}

"...."

전에도 느꼈지만.

저 끔찍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얼굴은....

아마 웃는 표정일 거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아. 군단 정도의 집단과 거래를 틀 수 있다면, 내 목적도 좀 더 쉽게 달성할 수 있겠지.}

즉.

저 녀석은....

{앞으로 잘 좀 부탁드리겠네, 군단장.}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나와 사이좋게 지내자고 제안하고 있는 것이었다.

* * *

그런 대화를 거친 끝에.

나는 그 제안을 수락하고 3포대의 공략에 나서기로 했다.

그리고, 그 대화에서 느낀 감상을 말하자면.

"딱히 무조건 신뢰하고 있는 건 아니야."

"예?"

[미뢰강화]에는 걸리는 점이 없었다.

아마 녀석이 말하는 건 대부분 사실이겠지.

다만.

상대가 당장은 어느 정도 우호적이라도, 나중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저 녀석을 믿어도 될지 아닐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녀석과의 대화에서.

한 가지 알게 된 점이 있었다.

"저 녀석은 꽤나 이성적이야."

"...?"

"지금까지 만나 본 괴물 중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지금까지 만난 괴물들은 꽤 많았다.

개중에는 의사소통이 되는 애들도 있었지.

하지만.

아리엘라는 인간을 열등한 종으로 보고 자신의 병력으로 삼고자 하던 괴물이었으며.

교황은 그나마 이성적이긴 했지만, 결국엔 이 땅 전체를 수몰시키려던 존재였다.

보르진도 종을 살리기 위해 우리와 거래했을 뿐 본래는 인간을 노예로 삼던 주술사였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해서, 말이 통한다는 뜻은 아니란 거지.'

반면.

저 녀석은 조금 달랐다.

'문화의 차이가 있을 뿐.... 녀석과 나눈 대화는 합리적이었다.'

저 녀석은 진심으로.

효율을 따진 결과 우리에게 일을 맡기는 게 좋다고 생각했으며.

이왕이면 우리....

이 땅의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인간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고 싶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만났던 어지간한 인간 세력들보다도 훨씬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

그리고.

저쪽이 그렇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면.

"어느 정도는 행동을 예측할 수 있겠지."

"아...!"

저렇게 효율을 따지는 괴물이다.

녀석도 우리와 적대하는 건 손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는 갑자기 돌발 행동을 할 가능성은 적을 거다.'

뭐....

솔직히 많이 징그럽고 흉측한 괴물인 건 맞지만.

'우리 부대는 저 녀석보다 더 악질인 괴물들조차 부대원으로 들였으니까.'

이계의 존재와 처음 만난 것이었다면.

저런 흉측한 괴물과 거래를 틀 일 따위는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생긴 거야... 종족의 차이, 문화의 차이 같은 거 아니겠냐."

다른 종족과 인간들 간에 약간의 괴리감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괴리감을 안고서도 협력할 수 있다는 경험이 있었기에.

일단은 이 거래에 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관계자 외 출입금지.]

"여기인가."

우리는 그 거래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서울에 있는 군부대에 도착했다.

"...군단장님."

그리고.

병사들은 그 군부대를 바라보며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부대는... 어떻게 공략하실 생각이십니까?"

"흠."

뭐.

일단 호기롭게 거래를 받아들이고 온 건 좋았는데.

문제는.

그 거래의 대가가... 솔직히 쉬운 건 아니었다.

'군부대에 자리 잡은 괴물이라.'

지금까지는 운이 좋게 대부분의 군부대를 토벌해 왔지만.

사실.

군부대에 자리 잡고 있는 괴물들은 현시점에서 보았을 때도 만만한 존재는 단 하나도 없었다.

'우리 부대에 들어온 리자드들을 이겨 낼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방어 측이었으며, 적의 약점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지.'

리자드들의 가죽은 지금도 우리 부대 간부들의 장비에 핵심 재료로 들어갈 만큼 두껍고 강인하다.

다시 생각해 봐도, 그 시점에서 우리가 리자드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탄약대대의 거미 여왕을 쓰러트릴 수 있었던 것 역시 마찬가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 탄약대대를 지키고 있던 군인들이 목숨을 불살라 가면서까지 그들에게 저항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성체 괴물이 몇 마리만 더 있었어도, 우리는 결코 탄약대대를 탈환할 수 없었겠지.

'전차대대의 '게이저'를 쓰러트릴 수 있었던 것도... 아리엘라도.'

녀석들이 부대를 떠나지 못한다는 페널티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길 수 있었다.

놈들이 부대를 떠나 마음대로 그 지배의 능력을 펼쳤다면 끔찍한 일이 펼쳐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점거한 부대를 떠날 수 없었기에 우리를 선공할 수도 없었다.

덕분에 우리가 먼저 그들의 약점을 먼저 파악하고 찌를 수 있었지.

'강원도의 군부대들을 토벌한 것도... 결국 태준이 녀석의 예언과도 같은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었지.'

이런 여러 가지 조건들이 운 좋게 따라 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우리는 지금쯤 저 강원도 어디선가에서 그어어 하고 걸어 다니는 좀비 무리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저희는 이 서울에 대해 어떤 정보도 모릅니다."

우리는.

적에 대한 정보도 없고.

"저 괴물이 토벌을 포기했던 걸 보면... 힘이 약한 괴물일 가능성은 없겠죠."

저쪽이 운 좋게 약해졌을 가능성도 낮다.

차라리 처음 서울행을 할 때처럼 최고의 정예병들로만 끌고 온 상황이라면 모를까.

이 서울에서 전면전은 말이 안 되고 지금 데려온 부대원들은 암행에만 특화된 이들.

설상가상으로 내 몸 상태도 의사 양반이 '걸레짝'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그래.

이 상황만 놓고 본다면.

저 군부대를 토벌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일로 여겨지겠지만.

"뭐."

나는.

그런 부대원들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어 주었다.

"나한테 다 방법이 있으니까. 맡겨 둬라."

"예?"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저 거래를 받아들인 건 아니거든."

조건이 안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나도 나름대로 생각해 둔 방법이 있었다.

"그러면!"

그리고.

나는 그 생각해 둔 방법을 실행하기 위해 부대원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 순간.

"또... 이렇게 되는군요."

나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니, 뭐랄까.

그렇게 대단히 이상한 점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긴 한데.

"정수아 조장?"

정찰조의 조장이자.

지금 나와 함께 이곳에 온 호위부대의 책임자.

"표정이... 왜 그래?"

"아...."

정수아의 얼굴이.

무척이나 어두웠다는 것.

* * *

사실.

정수아의 표정이 조금 어두운 것 같다는 생각은 이미 했었다.

이 3포대로 오기까지 그녀의 표정을 볼 일이야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 서울에서 정찰을 한다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막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힘들고도 어려운 일.

그 일에 최대한 집중하느라 그런 거겠지, 하고 넘어갔었다만.

'지금은 그럭저럭 안전한 장소에 도착한 상황.'

저렇게 얼굴이 어두울 만한 이유는 없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몸이 안 좋은 건가? 혹시 이상이 있다면 일단 안전한 곳으로 후퇴해도...."

"아, 아닙니다! 그런 건...."

그녀의 표정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왜 이러지?'

뭐랄까.

나로서는 이런 표정의 정수아가 조금 낯설었다.

처음 만남이 조금 이상했던 탓에.

정수아는 뭐랄까... 내게 엄청난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덕분에 내게 꽤나 호의를 지니고 있었고.

그래서일까.

그 극도로 공손한 태도와는 별개로.

나와 대화할 때의 그녀는 대체로 상당히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으나.

"그런 건... 아닙니다."

지금은 아니었다.

내 시선을 피하면서, 묘하게 불안한 얼굴을 하는 그녀.

"그런 게 아닌 표정이 아닌데."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이곳은 그나마 안전하다지만.

오랫동안 머무를 정도로 안전하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정수아 조장."

평소였다면 일단은 이 작전을 성공시킨 뒤.

안전이 확보된 장소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거냐고 물었겠지만....

"이유를 말해라."

나는 지금.

저 표정의 원인을 알고 싶었다.

"은인이시여. 정말 별일 아니...."

"착각하지 말도록.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니까."

"...."

그런 내 말에.

정수아는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온 이유는.

"이번 일도... 은인께서 해결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뭐?"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454화 핵심은 너다.

"이번 일도... 은인께서 해결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뭐?"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이번 일도... 라는 건 무슨 뜻이지?"

"부대에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대부분 문제는 은인께서 해결해 주실 뿐... 저희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도움이 안 된다니. 그게 무슨."

"아까 있었던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아까 일이라면.

"저 괴물과 둘이서 대화를 나누실 때, 촉수 같이 생긴 괴물의 공격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거?

일단 그 정체는 공격이 아니라 검진이었다만.

겉으로만 보면 누가 봐도 갑작스러운 기습으로 보이기는 했다.

그리고.

"그때도 저희 대응은 너무 늦고 말았죠."

나로서는 저들이 대응을 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지만.

결과만 놓고 보았을 때는 내가 공격을 당한 후에야 반응을 한 셈이다.

그 부분이 정수아에게 있어서는 꽤나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던 모양.

"어차피 내가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는데."

나는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던 일이었으나.

그건 아무래도 내 생각뿐인 듯.

"...은인께서는 이 서울에 혼자 오려고 하셨었죠."

"음?"

"혼자서 서울로 향하겠다는 은인의 결정을 번복시켜 가면서까지, 이렇게 호위부대로 동참했는데...."

그녀는 음울한 한숨을 내쉬었다.

"정작 그 호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거니까요."

"...."

"은인께서 서울에 혼자 향하겠다고 하신 것도... 평소에 올리는 친위대 안건을 거절하시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사실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인정하기 싫었을 뿐."

그뿐만 아니라.

이 사실이 어지간히 분한 것일까.

"저희는 군단장님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군요."

"뭐?"

"아니. 도움이 되지 못하기만 한다면 그나마 낫겠죠. 오히려."

주먹을 꽉 쥔 채 몸을 떨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 정수아.

"군단장님에게... 민폐만 끼치는 존재가 아닙니까."

그 말에.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그녀와 부대원들을 바라보았다.

"...."

"...."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그녀와 같은 표정을 짓는 부대원들.

아무래도.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정수아 혼자만은 아닌 모양.

'이 녀석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심지어는.

그 말을 꺼낸 장본인인 정수아의 눈가에는 약간의 물기마저 맺혀 있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맛은... 짙은 슬픔과 무력감.

...솔직히 말하면.

나에겐 조금 당황스러운 일이기는 했다.

'이렇게까지 슬퍼할 일인가?'

그야, 자신들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상황이니까.

어느 정도 분한 감정을 느낄 수는 있겠지.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저 뒤에서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부대원들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정수아의 저 격한 반응은 조금 과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면.

'평소에도 저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기에, 그 감정이 쌓이고 쌓여서 저렇게 폭발한 걸지도 모르지.'

...그, 뭐냐.

나도 바보는 아니다.

'정수아는... 내게 가장 큰 충성을 보이는 이들 중 한 명이었으니.'

그녀를 비롯한 몇몇 병사들은.

내게 조금 과도한 충성심을 보이고 있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걸 알고 있었기에 병사들이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자 노력했던 것이기도 하니까.

'내 몸 상태에 대한 것을 이 악물고 숨겼던 것 역시 그래서였으니까.'

내 입장에서 보자면 나는 그저 별거 없는 취사병 한 명에 불과하지만.

[군단]에게 있어서는 아니었다.

생각보다 많은 부대원이 나라는 군단장이 보여 준 위업에 기대고 있었다.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어 버린 내 능력이지만.

그렇게 과대평가되어 버린 덕분에, '저런 군단장을 따른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믿음이 퍼지고 있었지.

'그렇다면 나는 그들이 보고 있는 환상을 절대로 깨트려서는 안 돼.'

안 그래도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세계다.

그런 세계에서, 그나마 그들의 정신을 붙잡아 주고 있던 저 믿음이 깨지는 순간.

저들은 이 세계를 살아남기 힘들어질 테니까.

그래, 저런 이들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개중에서 특히나 높은 충성심을 지닌 이들은 그 충성심을 내게 보여 주고 싶은 듯.

내게 꾸준히 친위대 창설에 대한 안건을 올려 왔었다.

하지만.

'거절했다.'

나는 저들의 충성심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제안을 꾸준히 거절해 왔다.

민재 형의 말대로라면.

내가 거절할 때마다 꾸준히 그 내용이 보충된 결과, 그 민재 형조차 반박하기 힘들 정도의 설득력을 지녔다는 제안서.

하지만, 나는 애초에 그 서류를 읽어 보지도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분수도 모르는 자가 건방지게....

하나는.

이미 뱀파이어라는 쓸 만한 전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하! 능력도 안 되는 것이 과분한 자리를 탐내다니.

"...."

-주인님을 지키는 역할은 권속인 우리의 역할일진데....

[아리엘라]와 그녀가 이끄는 권속들은 조건만 갖춰진다면 군단의 정예병들조차 압도한다.

저 경기도에서 운 좋게 얻어 낸 전력들까지 포함하면, 내 친위대로써는 오히려 과하다 싶을 정도의 전력이기는 하다.

하지만.

-조용히 해라.

-...네!

-애초에 너도 그리 잘난 척할 처지는 아니잖아.

그 이유뿐이었다면, 친위대 창설을 거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뱀파이어들은 분명 강하지만, 이건 조건이 갖춰졌을 때의 얘기.

-태양 아래에서는 어지간한 각성자들보다도 약한 주제에.

-...큼, 서운한 말씀을.

그들에게는 명백한 약점이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주인님은 저 여자가 올리는 안건을 꾸준히 거절하지 않으셨나요?

-그렇긴 했지.

-저는 당연히 저희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러시는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저 친위대에 관련된 안건을 꾸준히 거절한 것은....

두 번째 이유가 핵심이었다.

-나와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몰라도 될 일들을 알게 될 테니까.

-....

이 세계의 어두운 부분은 생각보다도 짙다.

아직 그 일부밖에 보지 못한 나조차 질릴 정도.

맘 같아선 나 혼자만 알고 가고 싶을 정도였으나.

나와 가까운 조장들 몇 명에게는 어쩔 수 없이 그 일부를 공유해야만 했다.

'조장들만 해도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보였다. 그런데 아예 나와 함께 활동하는 친위대가 생겨 버린다면.'

그들은 저 조장들 이상으로.

내가 앞으로 알게 될 정보들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라는 녀석이 생각보다 믿음직한 놈이 아니란 것.

알고 보면 하자도 많은 놈이란 것도 알게 되겠지.

그토록 믿고 신뢰했는데, 알고 보면 별거 없는 군단장.

그리고... 그런 군단장을 믿고 버티기에는 너무나도 절망적인 세계.

'그렇다면 모르는 게 낫다.'

그런 생각에.

지금까지 친위대 안건도 거절해 왔다.

나로서는 나름대로 저들을 배려한 선택이었다만.

"도움도 안 되고, 오히려 도움을 받기만 해야 하는 입장인 저희가 친위대니 뭐니 얘기를 했으니... 은인께서 보았을 때는 짐이 늘어나는 거로밖에 느껴지지 않으셨겠죠."

그게.

저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저희를 불쌍히 여겨서 호위대를 받아들여 주셨지만...."

하지만.

나는 이번에는 그녀가 제안한 호위대 역할을 수락했다.

그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자신이 그토록 어필해 왔던 친위대의 역할을 수행하고.

그 필요성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졌겠지만.

"저희는 여기서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꼴이니."

그 결과는 처참한 실패.

자신들이 나에게 쓸모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셈이다.

'저렇게 울 정도 일인가는... 아직도 좀 애매하긴 한데.'

그래도.

저들이 느끼고 있을 분한 감정과 안타까움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은인께서 부담스러워하신 것도 이해가 갑니다. 그동안 제가 올린 안건이 얼마나 분에 넘치는 짓이었는지 알게 되니... 너무 죄송스러워서...."

"...."

그래.

이해는 간다.

"죄, 죄송합니다. 추한 모습을 보였군요. 이 얘기는 그만하시고, 작전을...."

"아니, 잠깐만."

이해는 가는데....

"그게 무슨."

그래도.

저 말에는 조금.

"개소리야?"

반박을 해 줘야겠다.

"...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야.

친위대 안건을 아득바득 거부한 건 나니까.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기는 한데.

"너희를 불쌍히 여겨서 호위대 안건을 받아들였다고 했나? 솔직히 말하지."

"...은인이시여?"

"상당히 실망스러운 발언이었다. 정수아 조장."

"...!"

그런 내 말에.

안 그래도 음울하던 정수아와 부대원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는 것이 보인다.

"자매님!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빨리, 빨리 사과를...!"

눈에 띄게 당황하며.

내게 고개를 숙이는 부대원들.

"죄, 죄송합니다! 제가 한 말은 잊으시고, 제발. 제발 용서를...."

저 정도의 반응을 보이니... 솔직히 조금 미안하긴 한데.

"불쌍히 여겨서라느니 뭐니...."

"어, 어떤 점이 문제였는지 말씀해 주신다면 어떻게든 고치겠...."

그래도 말이지.

이 정도로 심하게 착각하고 있던 건 솔직히 너희들 잘못도 좀 있는 것 같거든.

그러니.

"내가 그딴 비효율적인 선택을 할 놈으로 보였나 봐?"

"그게 대체... 무슨?"

할 말은 확실히 해야겠다.

저놈들이 불쌍해서.

내 뜻을 꺾어 가면서까지 이곳에 동행해 줬다고?

"뭘 착각하고 있는 것 같으니 확실히 알려 주지."

"...?"

"애초에, 나는 그리 착한 놈이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정수아와 부대원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안 그래도 위험한 세상이다.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든 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가 동행을 허락했다면.

"도움도 안 되는 짐을 끌고 다닐 정도로 멍청한 놈은 더더욱 아니지."

그건.

다 쓸 데가 있어서 그런 거거든.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는데, 터무니없는 헛소리였군."

"...죄, 죄송합."

나는 정수아를 한 번 질책한 뒤.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그딴 헛소리에 어울려 준 게 아까울 정도야. 시간은 없으니까. 바로 작전으로 들어간다."

병사들을 바라보며.

작전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작전 설명하기에 앞서서 일단 우리 상황을 설명하지."

나는 부대원들을 앉혀 놓고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지금 우리 부대의 전력은 그리 강하지 못하다."

"그게 무슨...."

"나는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어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생각이거든."

"...!"

정수아를 제외한 이들은 아직 내 몸 상태에 대해 모르는 듯.

눈에 띄게 당황스러워하는 모습.

"나도 나지만, 너희들도 대부분이 암행에 특화된 각성자들이잖냐. 도시에서의 은밀 활동이라면 모를까 저 안에 있을 괴물을 토벌하는 전면전에서는 미숙할 수밖에 없겠지."

"...저희도 전사조들만큼 싸울 수 있습니다!"

"너희들이 못났다는 게 아니라 특화된 분야가 다른 만큼 어쩔 수 없는 거다."

암살자는 전사에 비해 전면전에 약하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

"두 번째는 적에 대한 정보도 없단 점이다. 다들 알다시피 이 서울은 우리에게 미지의 영역이거든."

"하지만... 저 강원도 정벌 때 군단장님이 보여 주신 전술 능력을 생각하면... 모르는 적이라고 해도 쉽게 쳐부술 수 있지 않을까요?"

"...."

그건 내가 아니라 태준이 녀석의 능력이다....

라고 곧이곧대로 밝힐 수도 없는 일.

"그 뭐냐. 그것도 조금은 적에 대해 알 때나 가능한 일이야."

"그런 겁니까?"

"당연하지. 적을 모르는데 제대로 된 작전이 나올 수 있을 리가. 너희는 내가 짠 전술의 결과만 봤지만. 사실 그 내면에는 적의 정보를 미리 파악하는 복잡한 과정이 있었다.... 뭐 그런 거지."

"오오...!"

뭐.

다 개소리지만.

"아무튼, 정리하자면 우리는 전력은 없고, 적에 대한 정보는 없는 상황이다. 즉."

"즉...?"

"최악이라는 거지 뭐."

가볍게 꺼낸 내 말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부대원들.

그리고.

"이 상태에서 목적을 달성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서는 일단 앞서 설명한 두 가지 상황을 해결해야 해."

"그, 그렇군요."

"아쉽게도 전자... 전력 문제는 당장 해결하기는 조금 힘들지. 그러니."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부대원들.

정확히는 마주 보며 말했다.

정확히는.

아직도 눈가가 붉어져 있는 한 여자를 가리키며 생각했다.

'쓸모가 없다고?'

어이가 없는 소리.

애초에.

이곳은 위험한 장소다.

솔직히 말하면.

아까처럼 느긋하게 부대원의 고민 상담을 들어 줄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 내용이 생각보다 진지한 것이었다, 뭐인지를 떠나서.

일단 위험한 곳에서 오래 있을 이유는 없으니까.

본래라면 안전한 곳에 복귀한 뒤에 개인 면담을 했을 일이다.

"이번 작전의 첫 번째 단계는 적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위험한 장소에서.

굳이 정수아의 고민을 들어야 한다고 판단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그녀가 내게 충성심이 높은 인물이라든가.

부대원이 고민이 있어 보이니 들어 주고 싶다든가....

"정수아 조장."

"...예! 정찰조장 정수아!"

그딴 이유는 당연히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너다."

"...예?"

작전의 핵심 인물이 컨디션이 안 좋은 것으로 판단된다면.

임시 후퇴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455화 궁합이 좋아.

본격적인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앞서.

나는 작전에 필요한 준비물....

뭐.

당연하지만.

치이익....

"고기는 이 정도만 굽고 레스팅하면 될 거고...."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 제가 뭔가 도울 거라도."

정수아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응? 됐어. 요리는 내가 할 일인데 뭐."

"그래도... 은인께서 요리를 하는 동안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음.

그러고 보니 이 녀석에게만 따로 요리를 만들어 주는 건 꽤나 오랜만인 듯했다.

눈을 낫게 해 주었던 그 일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피식.

처음 요리를 만들어 줬을 때를 떠올리니 헛웃음이 나온다.

그때 정수아는 이렇게 과도한 충성심을 보이기는커녕.

나를 미친 싸이코 쯤으로 생각하고 경계하고 있었으니까.

어쩌다가 이렇게 변해 버렸는지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을 따름.

"됐어. 여러 명 요리를 할 거라면 모를까. 1인분 만드는데 도와줄 일이 뭐가 있다고."

"...."

그런 내 말에.

다시금 울적한 얼굴을 하는 정수아.

그 얼굴을 본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말했다.

"설마 또 도움이 안 된다느니 하는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 설마, 남의 마음을 읽는 힘도 각성하신 겁니까?"

"맙소사. 진짜였나 보네."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헛웃음을 참지 못한 채 물었다.

"너 같은 생각을 한 병사가 네가 처음은 아니긴 한데."

생각해 보면.

광일이 녀석도 예전에 비슷한 일로 난리를 피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광일이 녀석의 경우와는 조금 다른 게.

녀석은 전투직이면서도 큼지막한 적은 모두 내가 해결한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낀 경우였다.

반면 정수아의 업무... 정찰조는 나와 겹치는 부분이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그녀와 접점이 자주 없었던 것 역시 업무상 겹치는 부분이 없었던 점이 컸다.

"솔직히 말하면 난 널 유능한 부대원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네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군."

"...."

그런 내 말에.

그녀는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은인께서 저를 유능하게 평가해 주신 건, 제가 가진 능력 때문이었겠죠."

"응?"

"[정령안]말입니다."

그녀가 가진 힘은 분명 유용한 것이었다.

실제로, 부대가 이만큼 성장하기 전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정령이 주변을 정찰해 준 덕분이 컸다.

하지만.

"이 힘은... 군단이 성장해 나갈수록 쓸모를 잃어 가고 있습니다."

"...."

그건 부대가 이만큼 성장하기 전의 이야기.

저 강원도의 점령전만 봐도 그렇다.

굳이 적진을 정찰할 필요도 없이, 태준이 녀석의 점괘에 맞춰 작전을 짜는 거로도 충분했으니.

'경북 점령전도....'

지금 군단이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경상북도의 탈환이다.

정찰에 특화된 그녀가 경상북도의 탈환에 투입되지 않은 이유는....

"이곳에 호위대로써 데려온 이들은 암행에 특화된 이들입니다. 그 외에 정찰에 특화된 이들은 모두 경북에 투입되었죠."

그녀의 역할을 대체할 만한 이들이 많아졌으니까.

[정령안]은 분명 훌륭한 능력이었으나.

과거만큼의 영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게 콤플렉스였다는 건가?"

"그 정도는 아닙니다. 은인께서 소개해 주신 스승님 덕분에 정령을 다루는 능력 자체를 성장시킬 수 있었으니까요. 저와 비슷한 정찰 능력을 지닌 이들이 많아졌다고 해도, 제가 꿀린다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다만?"

"다른 이들에 비해서 저는 은인께 받은 게 많죠."

그녀는 자신의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말했다.

"제가 지금 이렇게 앞을 보고 걸어 다닐 수 있는 것은, 은인의 은혜가 있었던 덕분입니다."

"...."

"정찰에 있어서 다른 이들에 비해 꿀리지 않는다고 한 것 역시... 사실은 은인께서 스승님을 소개해 주신 덕분이죠."

그 가려 준 손바닥 뒤의 얼굴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내게 보이지 않았다.

"은인께서 가장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은 아마도 저겠죠. 그런데도... 저는 그 은혜를 제대로 갚지 못하고 있더군요."

보르진의 가르침이 있었다고 하나.

그녀의 정찰력은 대체가 가능한 것이었다.

전투력도 군단의 진짜 강자들에 비하면 모자랄 수밖에 없다.

"차라리 은혜를 갚지 못하는 정도라면 다행이지. 민폐만 끼치는 꼴이라니."

"그 부분 말인데. 대체 무슨 민폐를 끼쳤다는 거야?"

본인의 능력이 모자란 것이야.

충분히 할 수 있는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쓸모없는 부대원을 데리고 다닐 만큼 착한 놈은 아니야.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몰라도, 내게 민폐를 끼친 적은 없다."

아무리 능력이 모자란다고 해도, 그 능력이 마이너스인 부대원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이너스가 될 만한 이들은 애초에 받아들이지도 않은 곳이 군단이니까.

하지만, 그런 내 말에.

"민폐가 아니라고요...?"

그녀에게서 느껴지던 맛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어떻게 그리 가볍게 말씀하실 수가...!"

"...?"

그 목소리.

그리고 내 혀에 느껴지는 이 맛은.

극단적인 분노와 슬픔.

"그게 무슨 소리지?"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감정 변화에 의구심이 들었으나.

그녀는 더 말을 잇지 않은 채 고개를 숙였다.

'대체 뭐지...?'

아까부터 느꼈던 거지만.

다른 부대원들과 달리, 그녀만큼은 묘하게 감정의 변화가 격했다.

평소에는 저 정도로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더 당황스러웠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는 건가?'

하지만.

[미뢰강화]는 그리 편리한 힘은 아니다.

그녀의 감정과 그녀가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 것 같지만.

그 감정의 원인까지 알 수는 없었다.

"...아까 작전 설명할 때 적의 정보가 없느니 뭐니 했는데 말이지."

결국.

나는 그 의문을 속에 담아 두고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원래라면 내가 여기서 취할 전략은 따로 있었을 거다."

"예?"

"뭐, 매번 했던 거 있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환경동화]를 사용한 채 나 혼자 적진에 쳐들어간 다음, 적에 대한 정보를 캐고 왔겠지."

"...은인이시여! 그건!"

"위험하다고? 나도 알아. 하지만 실제로 지금까지는 그렇게 해 왔잖아?"

내 말에 눈에 띄게 당황하는 정수아.

하지만, 실제로 나는 지금까지 저 방법을 애용해 왔었다.

"나도 좋아서 한 일은 아닌데."

그래야만 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까지는 그딴 방법 말고는 답이 없었으니까."

"...."

"위험하단 건 알고 내게 부담스러운 선택지라는 것도 알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와 부대원들이 살아남을 방법은 없었으니까."

그런 내 말에.

더더욱 표정이 어두워지는 정수아.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은 그 방법을 쓰기는 좀 힘들 것 같거든."

"예?"

"너도 알다시피... 지금 나는 몸 상태가 영 좋지가 않아서."

나는 다른 부대원들이 듣지 못하도록.

최대한 목소리를 줄인 채로 말했다.

"그동안 저런 짓을 한 것도 안에 들어갔다가 괴물에게 들키더라도 어떻게든 도망치는 시도는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거거든."

그 전까지의 나는 [환경동화]를 사용한 상태라고 한들.

적에게 발각되면 곧바로 요리를 통해 [슬레이파의 준족] 등의 특성을 얻어 탈출을 시도할 수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

지금의 나는 요리의 효과 하나만 해도 부담이 크다.

두 개 이상의 요리를 중첩하면 안 그래도 최악이 되어 버린 몸 상태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

"만약 내가 지금 괴물들에게 발각당해 버린다면... 제대로 저항도 못 하고 죽어 버릴걸."

"그,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뭐 어때, 그게 사실인데."

그리고.

나는 완성된 요리를 그릇에 담은 뒤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 그래서 본론이다만."

"...."

"말했다시피 이제는 저렇게 내가 직접 부딪혀서 내 눈으로 적을 확인하는 건 힘들어. 그러니."

한쪽 손으로는 요리를 들고.

나머지 한쪽 손으로는 눈을 가리고 있던 그녀의 손을 치운다.

"그러니."

대체 뭐가 그렇게 서운한 것인지.

물기로 가득 찬 두 눈.

지금은 눈물로 가득 차 있지만.

"네가 내 눈이 되어 줘야겠다."

조금 더 아름다운 물색으로 빛날 수 있는....

그 두 눈을.

* * *

'자신들은 그냥 민폐만 끼치는 존재가 아니냐, 라.'

사실.

정수아가 한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내가 친위대를 만들지 않은 이유는.

부대원들이 알지 않아도 되는 일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배려한 것도 있기는 했다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지.'

부대원들에게는 기밀로 하고 있는 뱀파이어 전력의 사용이 힘들어진다는 면에서 보았을 때.

내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는데 족쇄로써 작용하는 부분도 있었으니까.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저 생각이 친위대 안건을 거부하는 데에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후우...."

바닥에 앉은 채.

허공을 바라보는 정수아.

그리고, 잠시 뒤.

스르륵 하고.

그녀의 눈이 떠진다.

"준비됐습니다."

눈가 주변이 조금 붉어진 그녀였으나.

그 눈빛은 아름다운 물색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확실히 정찰 능력으로써의 정령안은 그 의미를 많이 잃었지.'

하지만.

얼마 전.

나는 저 능력이 생각보다도 더 빛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럼... 실례지만 명령하신 대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저 [대모]의 이능이 뒤덮여 일그러진 땅.

서울을 방문했을 때.

"은인의 몸에... 손을 좀 대겠습니다."

"실례는 무슨. 얼마든지."

거기서 있었던 한 전투가.

그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다.

툭.

그녀의 손이.

조심스럽게 내 몸에 닿는다.

그러자.

파아아아아아악!!!

내 시야가.

순식간에 뒤바뀌기 시작했다.

'이게 정령의 시야....'

저 서울에서 있었던 전투.

그 막바지에서.

정수아는 내게 이 시야를 공유해 주었다.

'그때도 느꼈지만... 대단하군.'

정령의 눈으로 본 시야는 생각보다도 특이한 것이었다.

단순한 인간의 시야와는 달리.

주변에 돌아다니는 마력이나.

물, 불, 전기와 같은 원소.

그 흐름이 마치 그림처럼 시야에 가득 펼쳐진다.

'압도적인 정보량....'

정수아의 정령술이 일취월장하게 된 것 역시.

이 시야로 얻게 되는 정보를 좀 더 잘 해석할 수 있게 된 덕분이 크겠지.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어차피 이해도 못 할 정보들이다.'

나는 그 시야의 한구석.

저 멀리 보이는 산....

그 안에 위치한 군부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파란색.'

짙은 파란색의 기운이.

흉흉하게 넘실거리고 있었다.

기운의 양만 본다면.

많은 힘을 키운 아리엘라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

저 마경에서 보았던 대마수들보다도 몇 줄은 위겠지.

하지만.

그런 강대한 존재가 도사리고 있는 걸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피식.

그 짙은 파란색을 확인한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이 눈."

그도 그럴 게.

저 파란색 기운은... 내가 가진 특성.

[전투력 측정기]의 효과.

그리고.

[정령안]으로 본 시야에서 저 기운이 보인다는 건.

한 가지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으니까.

"내 눈과... 궁합이 좋아."

저 멀리.

나로서는 감지도 되지 않을 정도로 먼 곳에서 여유롭게 군림하고 있는 강대한 괴물.

놈은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조차 눈치채고 있지 못하겠지만.

[특성 - '식재료 감별(강화)'가 발동합니다.]

[스킬 - '요리사의 눈'이 발동합니다.

[끈질긴 아바로스]

내 눈에는.

녀석에 대한 모든 정보가.

"아, 그런 괴물이시겠다?"

똑똑히 보이고 있었으니까.

* * *

-감히, 감히!!!

서울 외곽의 산.

그 심처에 자리 잡은 군부대에서 괴성을 내지르는 거대한 짐승이 있었다.

[끈질긴 아바로스]

콰앙!

그 거대한 주먹이 땅에 꽂히자.

두꺼운 콘크리트 바닥에 부서지고, 그 충격만으로 주변의 건물에 금이 간다.

-감히, 네깟 벌레 놈들이!

[강대한 마수들이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는 땅, 바르탄이라는 세계가 있습니다.]

[어떤 규칙도 없으며, 모든 주민이 호전적인 마수들로만 이루어진 땅.]

[모든 마수는 서로를 잡아먹으면서 그 힘을 길렀으며, 아무리 강대한 마수라도 오래 살아남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아바로스는 그 땅에서도 한 구역의 패자로써 오랜 기간 군림하던 위대한 대마수입니다.]

[그 어떤 강력한 힘을 가진 마수들도 그를 쓰러트릴 수 없었기에, 지혜로운 마수들은 그를 '불멸의 아바로스'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경이로운 것은.

그 말도 안 되는 유연성과 근력이었다.

'저 덩치에 저런 움직임이라니...!'

몸이 고무나 스프링으로 되어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

안 그래도 엄청난 덩치다.

그 압도적인 질량에 저런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이 탑재되자.

쩌저적!

전투가 시작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넓은 군부대의 건물 대부분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어째서 저 '의사'가 우리에게 이 녀석의 토벌을 맡긴 건지도 이해가 간다.

아무리 녀석이 이끄는 병력이 많고, 평균적인 질이 높다고 한들.

결국은 무난히 강한 수준의 병력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것에 불과하다.

-고작, 그딴 숫자로!

저 정도의 힘을 가진 괴물이 날뛴다면.

그 엄청난 숫자의 병력은 순식간에 갈려 나가겠지.

괴물들의 위에서 몇 번 굴러 주기만 해도 수백 마리의 괴물이 찢겨 나갈 것이다.

-나를...! 나를....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저 '의사'가 토벌을 하러 갈 경우의 얘기고.

-나를, 쓰러트리다니....

서걱-

'도적' 각성자의 단검이.

그가 마지막까지 휘두르던 오른팔의 힘줄을 잘라 낸다.

쿠웅....

전신의 힘줄이 모조리 잘려 나간 괴물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목표 완료!"

그 모습을 본 부대원들이.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소리쳤다.

"아바로스 생포... 성공했습니다!"

제3 포병대대에 자리 잡고 있던 강대한 괴물이.

우리 손에 쓰러지는 순간이었다.

456화 치료.

{하하! 역시 군단에게는 쉬운 일이었나 보군!}

"쉬운 일은 개뿔이."

우리는, 저 '의사'가 의뢰한 대로.

'끈질긴 아바로스'를 토벌한 뒤, 녀석을 생포한 채 강남으로 복귀했다.

-놔, 놔라.... 이 불쾌한 잡종들이...!

어느새 저 안쪽에서 나타난 괴물들이.

쓰러진 채 발버둥 치는 아바로스를 제압한 채 어디론가로 끌고 가는 모습.

{부탁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일을 마쳐 놓고서 쉽지 않았다고 하는 건가? 군단장께서는 겸손도 하시군.}

이 일을 부탁한 저 '의사'조차 고작 반나절 만에 임무를 끝내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한 듯.

유독 상기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겸손 아니야, 인마."

그 말대로.

저 녀석을 토벌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뭐 저리 강하냐, 제기랄.'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군부대를 토벌하면서 만났던 그 어떤 괴물보다도 저 녀석이 훨씬 힘들었다.

요리를 통해 최대한으로 강화한 부대원들의 공격도 제대로 먹히지 않는 것은 물론.

[환경동화]를 통해 은밀히 공격하려던 내 접근 역시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차단했었다.

'환경에 몸을 숨기는 마수 따위는 수천 마리도 잡아 봤다느니 하면서 주먹을 휘두를 때는... 진짜 죽는 줄 알았지.'

이곳은 서울.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중요한 땅이니.

비교적 중요도가 낮은 다른 지역의 군부대에 비해.

서울의 군부대를 점거한 괴물들은 더 강한 편일지도 모르지.

새삼 이딴 장소에서 1년을 넘게 생존한 장영웅이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새삼 궁금하군. 그놈을 대체 어떻게 잡은 건가?}

그럼에도.

녀석을 토벌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

'정수아의 정령안은 내 눈과 궁합이 좋다.'

정수아가 정령을 통해 보여 준 시야.

그 시야에 내가 가진 특성들이 적용되었기 때문이었다.

"...저 녀석의 힘은 저 특유의 힘줄에서 나오는 것 같더군."

{호?}

"저 힘줄은 말도 안 되는 탄력을 지니고 있었어. 아마 특유의 마력으로 강화된 거겠지. 덕분에 저런 덩치에도 저런 놀라운 운동 능력을 보여 줄 수 있는 거였고."

덕분에 녀석의 약점을 미리 파악한 뒤.

그 약점만을 집요하게 파고듦으로써 토벌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

"대신에, 그 힘줄이 지나가는 몇몇 부위는 탄력 있는 움직임을 위해서 가죽이 얇은 것 같더군. 그 부분을 위주로 자르면 손질이... 아니, 베기가 쉬운 편이다."

{호오오! 그래서?}

"암행에 특화된 부대원들을 이용해, 발목의 힘줄부터 자르고 시작했다."

내 [환경동화]는 금세 파악했던 녀석이지만.

그건 내가 암살자가 아닌 요리사였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암행에 특화된 부대원들에게, 암습에 특화된 요리를 먹였다.'

저 야생의 감으로 단련된 괴물조차.

자신의 발목에 칼날이 날아오는 그 순간에서야 적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거기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녀석이 손으로 땅을 박차며 날뛰기 시작한 덕분에, 생각보다 토벌이 더 어려워졌다.

그래도 약점의 위치를 알고는 있었다 보니, 손의 힘줄마저 잘라 냄으로써 이겨 낼 수 있었던 것.

{맙소사. 군단의 전략이 대단하다는 소문 정도는 들었지만... 그런 정보를 순식간에 파악하고 파고들다니.}

"아무튼. 우리한테도 쉬운 적은 아니었다. 그러니."

우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의사'의 얼굴이.

예의 쭉 찢어진 얼굴로 바뀐다.

{하하, 물론. 이제는 내가 대가를 치러야겠지!}

"...."

{안쪽으로 들어오시게, 군단장.}

조금 흉측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느껴지는 감정은 순수한 기쁨.

{치료... 아니.}

'의사'는 기쁜 웃음을 지으며.

{진화를 시작하지.}

나를 수술실로 안내했다.

* * *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는 특별할 것은 없었다.

아니, 없다고 해야 하나.

'너무 안 특별해서 오히려 놀라울 정도....'

저 '의사'가 자리 잡은 곳은 강남에서도 병원이 밀집되어 있던 지역.

녀석이 안내한 수술실 역시 그 병원 중 한 곳에 준비되어 있었다.

{토착종의 의료 설비도 그럭저럭 쓸 만하더군. 토착종을 치료하는 데에는 이쪽이 맞겠지.}

"...쓰는 법은 아는 거냐?"

{대충은? 나 정도 되면 처음 보는 장비라도 용도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네.}

아무튼, 그렇게.

나는 수술실에 들어갔다.

크뤅....

"저 녀석들은?"

{수술을 집도할 아이들일세.}

"...저 녀석들이 내 치료를 담당한다고?"

{뭐 이상한 거라도 있나?}

"...."

내 몸을 전혀 모르는 남....

아니, 남도 아니고 괴물에게 맡기는 일.

긴장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니, 됐다."

만약의 사태에 대한 대비는 해 두었으니.

나는 얌전히 수술대에 누웠다.

수술실에 들어온 괴물들이 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잠깐 눈을 감고 뜨면, 모든 게 끝나 있을 걸세.}

...흠.

저리 말하긴 했지만.

나는 꽤나 고레벨의 각성자다.

각성자의 능력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약물이나 능력에 대한 면역도 증가한다.

'어지간한 수면제는 통하지도 않을 테지.'

녀석은 잠깐 눈을 감고 뜨면 끝나 있을 것이라고 가볍게 말했지만.

아마, 나를 잠재우는 건 아무리 강력한 괴물이라도 쉽지 않을 것....

{끝났네.}

"...어?"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잠깐 눈을 감았다 떴더니.

나는 직전까지 있던 수술실이 아닌, 웬 병실에 누워 있었다.

* * *

"뭐, 뭐야. 벌써 끝... 윽."

{아직은 조금 뻐근할 걸세.}

뭐가 일어났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녀석이 내게 하려던 치료는 대충 마무리가 된 모양.

{당분간은 누워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시게나, 군단장.}

나는 시선을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내 침대맡에 서 있는....

-크뤅....

끔찍하게 생긴.

마치 어린아이가 여러 종류의 장난감을 억지로 이어 붙여서 만든 듯한 모습의 괴물이었다.

{누워 있는 시간이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은 참으시게.}

"...."

{뭐, 군단장의 몸 안에는 기묘한 회복력을 지닌 피가 돌고 있지 않으신가. 아마 금방 회복될 것이야. 원래는 그 피의 힘도 많이 떨어져 있었지만, 지금 수술로 그 힘도 꽤나 많이 돌아왔을 테니까.}

아무래도.

머릿속에서 울리는 이 목소리도 저 괴물을 통해 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그 박쥐 괴물 말고도 이렇게 단말로 사용할 수 있는 괴물들이 있는 건가?'

저 흉측한 모습만 보면 상상이 가질 않지만.

아무래도 저놈이 내 간호를 맡고 있었던 모양.

아무튼.

나는 슬쩍 내 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걸로 치료는 끝난 건가?"

조금 뻐근하긴 하지만.

전과 다른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 몸.

{정확히는 말하자면 이번 수술은 끝났네. 어떤 문제도 없이 아주 잘 마무리되었어.}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은 끝났다니. 그럼 아직 남은 게 있다는 거냐?"

{...군단장께서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자주 하는 경향이 있으신 것 같군.}

그런 내 말에.

'의사'는 오히려 어이없다는 듯한 태도로 답했다.

{설마하니. 군단장께서는 그런 몸 상태를 해 놓고서 수술 한 번으로 치료가 끝날 거로 생각하셨던 건가}

"어... 아니란 거냐?"

{맙소사.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나.}

조금 화난 듯.

한탄하는 듯한 목소리로 답하는 '의사'.

{가끔 이런 환자가 있지. 그렇게 엉망으로 살면서 몸 상태를 망쳐 놓고서, 대충 치료 한 번으로 완치되길 바라는 환자 말이야.}

"...큼."

{저번에도 말했지만 군단장의 몸 상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엉망일세. 이렇게 몸을 망치는 것도 쉽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말이지. 이런 몸이 한두 번의 치료로 완치되기를 바라다니... 욕심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저번에도 느꼈지만.

의사 선생님한테 혼나는 듯한 느낌.

나는 묘하게 주눅이 들어 반박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니 푹 쉬고 빠르게 회복을 끝내도록 하게. 그래야 다음 치료에 대한 얘기도 할 수 있을 테니.}

"그럼, 지금 몸 상태가 치료되면 바로 다음 시술로 들어가는 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하지만.

그다음에 이어진 말에는, 반박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다음 치료를 진행하려면, 다음 치료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셔야지.}

"뭐?"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설마, 네가 말한 그 여러 번의 치료를 할 때마다 다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거냐?"

{당연한 소리 아닌가. 나도 공짜로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 새끼가...!"

나는 분노를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네가 무슨 의도로 그 괴물을 잡아 달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바로스라는 놈은 말도 안 되게 강력한 놈이었다! 네가 직접 잡으려 한다면, 저 바깥에 있는 네 부하들 수백, 수천이 넘게 갈려 나갔을 정도로!"

{그렇겠지. 그래서 내가 직접 포획하기를 포기한 것이기도 하고.}

"제 놈의 고향에서는 불멸의 아바로스니 하는 이름으로 불렸던 괴물이다! 그딴 놈을 잡아서 건네줬는데... 고작 치료 한 번으로 끝이라고?"

그런 내 말에.

의사는 전에 없이 불쾌한 듯한 말투로 답했다.

{불멸... 이라고 했나?}

"뭐?"

{저놈이 그딴 과분한 이름으로 불렸을 줄은... 몰랐군.}

나에게 화났다기보다는.

그 아바로스라는 괴물에게 화가 난 듯한 말투.

{아무튼. 그 녀석은 군단장께서 쓰러트렸지. 그 말도 안 되는 이름과 달리, 실제로는 불멸의 괴물이 아니었던 셈이야.}

그런 내 생각이 착각이 아니었던 걸까.

녀석은 이내 화를 누그러트리며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

{나로서는 대가에 합당한 치료를 해 주었다고 생각하네만. 치료를 이어 가기 싫다면 거절해도 좋네. 떠난다 해도 말리지는 않도록 하지.}

"이 새끼가...!"

너무나도 뻔뻔한 태도.

그 태도에 화가 난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권장하지는 않겠네.}

그리고.

그렇게 몸을 일으킨... 바로 그 순간.

{내 치료를 계속 받았을 때의 효과만큼은 내 장담할 수 있으니.}

"...."

나는 방금 전까지 치밀어 오르던 분노는 온데간데없이.

멍하니 내 손을 바라보았다.

"이건... 대체."

{하하, 벌써 체감이 되나 보군.}

저 경기도에서 복귀한 후....

나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묘한 삐걱거림을 느껴야만 했다.

저 경기도에서 [광폭화]를 몇 번이고 사용하며.

내 몸에 쌓이고 만 대미지들.

그 부담이 축적되면서,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듯한 이질감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얼마 전까지의 이야기.

"말도 안 돼."

그 모든 이질감이.

귀신같이 사라져 있었다.

{치료를 받으면 좋을 거라고 했잖나.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아니, 오히려.

살면서 느껴 본 그 어느 때보다도, 내 몸의 성능이 올라간 것 같은 느낌.

"이 정도로 나아진다는 게... 가능한 건가?"

저 경기도를 떠나기 전 수준으로 복구되는 것이라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지만.

이건, 그 정도가 아니었다.

{흠. 치료 과정이 궁금하신 건가. 못 알려드릴 건 없지.}

그리고, 그런 내 의문에.

저 '의사'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군단장께서 잡아다 주신 괴물 말이네만.}

"아바로스 말인가?"

{군단장께서 말씀하신 대로, 꽤나 대단한 거물이었네. 군단장께서 그놈의 강점을 파악하신 건 나로서는 꽤나 놀라웠어. 사실... 그 강점이야말로, 내가 그 녀석을 가져다주길 부탁한 이유였거든.}

나는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어.

의아한 표정으로 놈을 바라보았다.

{말했다시피 군단장의 온몸은 이미 엉망진창이라네. 그건 치료를 한다고 해서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지. 이건 내가 아니라 그 어떤 뛰어난 의사가 온다고 한들... 의술의 신 정도 되는 존재가 아니고서야 절대로 불가능할 거야.}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나아졌냐고 묻고 싶은 것이겠지?}

확실히.

녀석은 애초에 내 몸을 원래 상태대로 돌려 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했지.'

처음에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으나.

{답은 간단하다네.}

이제는.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치료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더 뛰어난 것으로 갈아 끼우면 되는 것이야.}

"...뭐?"

{체감이 클 수밖에. 그야....}

그 말에.

나는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지금 군단장의 힘줄은 군단장께서 그토록 극찬한....}

"...."

{그 [아바로스]의 것이니까.}

457화 테세우스의 배.

{녀석은 덩치가 커서 수율이 좋았네. 군단장 전신의 걸레짝이 되어 버린 힘줄을 모조리 갈아 끼우는데에도 아바로스의 오른팔 정도면 충분하더군.}

"...."

{아, 오른팔을 쓴 건 그게 녀석의 몸에서도 가장 질이 좋은 부위였기 때문이라네. 그야, 군단장께서 직접 잡아다 준 재료가 아닌가? 나도 양심이 없지는 않거든. 당연히 가장 좋은 부위는 군단장의 치료에....}

녀석은 무언가 자랑스럽게 설명을 이어 나가고 있었으나.

나는 그 설명을 듣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상태창!'

최대한 다급하게.

고개를 돌려, 내 눈앞에 나타난 투명한 창을 읽어 내린다.

그리고, 그곳에 적혀져 있는 문구는.

[신영준]

[전쟁 요리사 Lv.41]

[종족]

[영장류 - 인간종(?)]

다행히도.

아직은 인간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너...!"

하지만.

그럼에도,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음? 무슨 짓이라니... 치료네만.}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차라리 녀석이 아무것도 모르고 한 짓이라면.

이렇게 화가 나지도 않았을 테지만.

"지금의 내가 인간을 벗어나기 직전의 상태라고 한 건 너다."

{아, 그 얘기셨군.}

저 녀석은 내 몸을 검진한 뒤에 직접 그 사실을 언급했다.

잘못하면 나는 인간을 벗어나....

괴물이 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네.}

하지만.

그런 내 분노에도 불구하고.

{아무렴,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내가 여전히 이를 갈며 노려보자.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설명을 이어 갔다.

{예를 들면, 지금 군단장께서 누워 있는 침대 말일세.}

"그래."

{그 침대가 오래되어서 낡았다고 생각해 보게나. 그러면, 여기.}

크뤅 하고.

괴물의 손가락이 침대 프레임의 한 부분을 건드렸다.

{이런 부분 정도는 다른 부품으로 갈아서 끼울 수도 있겠지.}

"그야... 그렇지."

{그럼, 그 침대는 본래의 이 침대라고 볼 수 있겠는가?}

그 말에.

나는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그 질문에 답했다.

"그렇지."

{어째서? 침대의 일부는 바뀌었네만.}

"그건 그래도. 원래부터 이 침대였던 부분이 더 많이 남아 있으니까."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그러면 이 침대가 더 오래되어서, 다음으로는.}

크뤅.

다음으로 찌른 것은 그 반대쪽의 프레임.

{이 부분도 갈린다고 하면?}

"그래도 마찬가지다."

{그럼 다음, 다음으로.}

다리.

매트리스.

이동식 침대의 바퀴.

녀석은 침대의 한 부위 부위를 가리키며, 그럼에도 그것이 본래의 침대냐 물었고.

나는 그때마다.

"그래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그것은 본래의 침대라고 볼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군단장께서는 알고 계시는가?}

"...?"

{방금 질문으로 이 침대에서 원래 이 침대를 이루고 있던 부품은 하나도 없어졌음을.}

쩌어억 하고.

징그럽게 벌어지는 괴물의 입.

{그럼, 다시 한번 묻겠네. 이래도... 이 침대는 본래의 침대라고 볼 수 있겠나?}

그 질문에.

나는 깊은 생각 없이.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사고방식 그대로의 답을 내놓았다.

"그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 바로 그거야!}

그러자.

녀석은 전에 보여 주었던 징그러운 미소를 활짝 만개하며 외쳤다.

{군단장이 그런 대답을 할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이 수술을 진행했네.}

"그게 무슨... 그래서? 그 질문의 답이 뭔데. 내가 한 말이 정답이라는 거냐?"

{이딴 질문에 정답이 어디 있겠나. 굳이 정답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스윽 하고.

그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는 녀석.

{각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지.}

"...?"

{세상에는 간단히 확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들이 많아. 그리고, 그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그 문제에 처한 당사자가 결정하는 일이거든.}

분명 본체는 아닐 테지만.

거대한 괴물은 눈을 크게 뜨며.

그 광기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군단장께서는 그 질문에... 침대의 모든 부품이 대체되어도, 그 침대는 본래의 침대와 같은 침대라고 정의를 내리신 거야. 그렇다면, 군단장께는 그게 정답이 되는 것일세.}

"...."

{군단장과 같은 답을 내는 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아. 그럼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런 답을 내셨지. 아마도... 내가 질문을 하기 전에도, 군단장께서는 무의식적으로 고민을 하고 계셨던 거겠지.}

그 말에.

나는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본인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그 고민 끝에.}

"...."

{이미, 답을 얻어 두신 거야.}

얼마 전.

저 경기도를 떠날 때.

-이건 내 추측이지만, 선배님. 우리가 지금까지 먹었던 괴물들의 고기들은 요리를 거쳤어도 우리의 피와 살이 되었을 거야.

줄곧 가르침만 받던 후배 녀석이 내게 건네주었던.

한 가지 깨달음.

-요리사의 가능성은....

멸망의 날 이후.

아니, 그전에도.

나는 인간이 아닌 것들을 먹어 왔으며, 그것들로 내 몸을 이루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지금 내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인간보다는 괴물의 것이 더 많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인간으로서 남아 있다고 하는.

-우리가 알던 것보다 좀 더 넓게 열려 있는 것일지도 몰라.

아직 나조차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바로 그 깨달음.

[독고구식]

나는 침대 옆에 놓여 있던 식칼에 손을 뻗은 뒤.

그 식칼을 휘둘렀다.

촤악!

내가 식칼을 휘두른 대상은.

내 손목의 가죽과 살.

[식재료 감별(강화)]

나는 그 안에 있는....

내 힘줄을 노려보았다.

{그 침대가 원래의 침대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건 침대의 주인, 혹은 침대가 스스로 해야 할 일.}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것은.

{그리고 군단장께서는 이미 그 답을 가지고 계시는군.}

[아바로스]라는 괴물의 것이 아닌.

{아아, 흥미롭도다.}

[영장류 - 인간종의 힘줄]

[여타 인간종의 것에 비해 유독 특이한 마력을 지닌 핏줄입니다.]

{어떤 깨달음이 있었기에, 이와 같은 답을 도출해 낸 것인지....}

인간의 것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