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30화. 파티를 시작해 볼까

어둠 숲 절망곡 39번 영역구.

“끄아악!”

마승철의 스킬이 마침내 B급 마인의 숨통을 끊었을 때 마기헌이 다가왔다.

둘은 이미 여러 차례 피를 봤는지, 옷이 피로 얼룩진 모습이었다.

“마승철 끝났냐?”

“후, 그래.”

숨을 고르는 마승철에 마기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으로 자신들이 토벌한 마인만 무려 열이 넘는다.

거칠게 반항하는 마인들에 자신들도 적잖은 피해를 입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활약해야 마광익 원로님께서 더욱 만족하실 테니까!’

마기헌과 마승철이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시험에서 자신들의 과업이 무엇이던가!

그건 바로 암익파의 후예로서 방파의 위세를 드높이는 것.

훗날 암익파가 마가의 권세를 장악하는 데에 필요한 역군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이미 연속으로 실망을 끼쳐 드렸다.

여기서 더 안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릴 순 없다.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

그리고 그 성과의 지표는 다름 아닌 성좌의 관심!

자신들은 지금까지 미친 듯이 마인들을 토벌해 왔다.

‘무려 열의 마인을 죽였지.’

저번 기수의 최우수 성적은 고작 다섯이다.

이미 충분하고도 넘치는 성과를 만든 셈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성좌들이 많을 게 당연하겠지!’

씨익.

찬란한 별들로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둘은 기대 어린 눈빛을 빛내며 하늘을 보았다.

하지만.

둘의 눈가는 금세 촉촉해졌다.

[관심을 보이는 성좌 수: 3]

[관심을 보이는 성좌 수: 16]

“으흐흑…….”

“큿, 제길.”

생각 이상으로 형편없는 수치!

분명, 마인 토벌 시험의 평균 성적을 아득히 상회하는 성과를 내고 있지만.

그 결과는 보는 것처럼 최악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이 시험에 내게 걸린 게 얼마나 많은데!

자신은 암익파의 자랑이어야 한다.

훗날, 암익파가 마가의 권세를 장악할 때 자신은 그 선두에 서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마기헌의 머릿속에서 최악의 상황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기대에 못 미친 자신을 냉엄하게 보는 암익파의 일족들.

마광익 원로님과 마재헌 형님의 실망 어린 눈초리.

어머니의 절망에 빠진 표정.

그리고.

씨익.

개같은 마현의 입꼬리까지!

‘크윽, 젠장! 이럴 수는 없어!’

마기헌은 이를 갈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는 이유는 뻔했다.

“마현…… 그놈이 여전히 활약하고 있는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성좌의 증가 추세가 이렇게 지지부진할 리가 없으니까!

글썽거리던 마승철의 눈빛이 진해진 것은 그때였다.

빠드득.

‘마현!’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리는 그 이름.

괜히 부러졌던 코가 욱신거렸고.

억누르고 있던 마현을 향한 살의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네놈만 아니었어도.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겠지.’

빌어먹을 놈이 주제도 모르고 계속 기어오르니 상황이 이상하게 흘렀다!

도대체 그 약해 빠졌던 놈이 어떻게 성좌의 관심을 싹 끌어모을 수 있는 거지?

무슨 편법을 쓰길래 이렇게 꾸역꾸역 자신들의 위에 설 수 있냔 말이다!

마광익 원로의 전음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 마현을 죽여라.

당시, 차갑게 가라앉았던 원로님의 말은 자신에게 비수처럼 박혔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비수를 뽑아 마현을 겨눌 때였다.

마광익 원로가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게 된 데에는.

마현.

‘네 새끼 탓이니까!’

피어오르는 진득한 살의가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마현을 향했다.

반드시 죽이겠다.

네놈의 무덤은 여기가 될 거다!

이미 양승규에게 정보를 받았다.

그건 마현이 있는 44번 영역구로 가는 방법.

시험 시작과 동시에 마인을 토벌하며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부터 44번 영역구다.”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마현이 있는 이곳에!

“후…….”

마승철은 속으로 되뇌었다.

이제 마현을 찾아 죽이면 된다.

그러면 이 모든 문제가 끝나겠지.

모든 일이 바로 잡히게 될 거고.

다시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거다.

‘…….’

마음 한편이 초조했다.

왠지 마현을 죽여도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처럼.

자신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크윽.

암담한 미래가 머릿속에 먹구름처럼 드리웠다.

“마승철.”

마기헌이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건 그때였다.

“지금은 깊게 생각할 필요 없다.”

“마, 마기헌.”

“그저 마현을 죽인다. 그거면 돼.”

말을 건네는 마기헌의 눈에도 살의로 가득했다.

‘어머니께 약속했지.’

반드시 복수를 이루어 주겠노라고.

그러니 자신도 마현과의 싸움에 결코 빠질 수 없었다.

“그리고 마현이 우리가 알던 그 허접한 놈이 아니란 것쯤은 눈치챘을 거다.”

“큭. 뭔가 이상해! 그 새끼가 무슨 수로 그렇게 활약할 수 있는 거지?”

“심상찮지만, 아쉽게도 알 수 없지. 하지만, 놈이 무슨 편법을 쓰든 중요치 않아.”

씨익.

마기헌의 얼굴에 자신감이 담겼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그깟 천한 놈 하나쯤은 쉬운 일이니까.”

그리고

“이후의 일은 생각하지 마라. 우리는 계속 친구다.”

“마, 마기헌!”

마승철의 눈동자가 붉어졌다.

크윽…… 빌어먹을!

그동안 내가 이런 녀석을 추잡한 마음으로 대했다니……!

부끄럽다.

친구를 질투했던 자신이!

마승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끓기 시작한 마음을 담아 말했다.

“크하하! 그래, 마기헌, 가 보자! 그 창녀 새끼를 죽이러 가 보자고!”

“훗, 그래. 제 어미 곁으로 보내 주는 거다.”

둘의 입가에 밝은 미소가 지어졌다.

* * *

씨익.

밝게 웃고 있는 것은 마현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수많은 마인들에 마치 궁지에 몰린 꼴이지만, 여전히 웃음이 가실 줄을 몰랐다.

‘크큭, 그야, 그럴 수밖에 없잖아!’

지금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하수인은 또 다른 무인이다.

이러한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구천마제 신공이 성장할수록.

‘적령 소환 역시 계속 달라질 거란 얘기니까!’

성장이 성장을 부르는 것이다!

아아, 진무극.

이런 식으로 나를 자극하다니.

자꾸 이러면…….

‘더 빨리 강해지고 싶잖아!’

도저히 입꼬리가 내려앉을 생각을 안 한다!

과연, 다음 적령 소환은 누가 나오게 될까?

스켈레톤에서 망자로 바뀌었으니. 설마 더 상위 언데드의 형태로도 나오려나?

그렇게 되면…….

스컬 드래곤의 육신이나 거인의 육신을 지닌 무인이 나올 수도 있는 건가?!

“……흐흐흐.”

물론, 평범하게 인간 형상의 언데드일 가능성이 크지만.

지금은 상상만 해도 웃음이 새어 나온다.

전생에 네크로맨서였던 나로서는 꿈만 같은 변화였으니까!

도저히 참을 수 없던 그런 모습이 마인들에게는 다르게 보였던 모양일까?

마인들도 껄껄 웃었다.

“크크, 저 새끼 실성했는데?”

“하하하! 용케 오줌은 안 지리는구나!”

“자자, 지리게 만들어 주자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놈들.

그즈음 마현도 진정할 수 있었다.

자, 그럼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눈앞의 것에 집중해 볼까.

마현은 새롭게 나타난 하수인 ‘가휘’를 보았다.

흑랑은 내게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녀석이었다.

힘이 강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재치 있는 움직임에 적을 농락하는 면모가 유독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면 2성에 이르러서 나타난 너는 어떨까.

‘가휘, 나는 네가 궁금하다. 과연 나를 만족시켜 줄 수 있겠어?’

내 생각을 읽었던 것일까?

시종일관 눈을 감고 있던 가휘는 가만히 마인들을 바라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힘없이 기울어진 고개는 얼핏 거만해 보였다.

마치, 너무 쉽다는 듯이!

좀 당돌하군.

그래서 그런가?

씨익.

‘마음에 드는데!’

그런 마현과 가휘의 태도가 아니꼬웠는지 B급 마인 장조분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클클클,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하찮은 하수인 하나면 충분하다는 거냐?”

“그래.”

“뭐?”

“머리가 나쁜가? 너희 따위는 이걸로 충분하다고.”

장조분은 말을 잘 못 들었나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런 말이 나올 수 없었을 테니까.

갸우뚱하는 장조분에 마현이 쐐기를 박았다.

“너희는 절대 나 못 이겨.”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

마인들은 마현이 미치지 않았음을.

그리고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예사롭지 않은 자신감이 장조분의 눈에는 심히 거슬렸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왜 이렇게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짜증 나지?’

비단, 마현만이 아니다.

녀석의 한 발 앞에 서 있는 망자.

그놈도 만만찮게 아니꼬웠다.

“제 주인 닮아서 그런가?”

빠드득!

그냥 보기만 해도 화가 나는데!

자신이 이곳에 수감되기 전에는 저딴 놈들은 감히 고개도 못 들고 다녔다.

그 빳빳하게 치켜든 목들을 자신이 분질렀으니까!

장조분의 발걸음이 다른 마인들보다 빨라지기 시작한 건 그때.

한걸음에 실리는 무게가 점차 커지더니 발을 내딛는 족족 땅을 파고들었다.

쿵.쿵.쿵.

“어어? 야, 장조분. 새치기냐?”

“아, 저 새끼 또 빡돌았는데?”

“저 성격으로 용케 오늘까지 살았네.”

“저러다 죽으면 무슨 망신이려나.”

마인 하나가 가당치도 않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에이, 이런 거론 안 죽지.”

장조분은 어느새 미친 소처럼 돌진하고 있었다.

눈앞의 모든 것을 박살 낼 것처럼 맹진하는 것이다!

쾅, 쾅, 쾅!

“크크, 애송이! 네놈이 자신만만한 이유가 고작 이 망자 때문이라면!”

가휘에게 쇄도하는 장조분.

짙푸른 마력이 서린 그의 주먹이 등 뒤로 팽팽하게 당겨졌다.

마치, 세상을 깨부술 것처럼 일대의 기운이 주먹으로 모여들었다.

근거 있는 자신감은 나약하기 짝이 없다.

자고로 근거란.

쉽게 부서지는 것이니까!

“이 내가 처 부셔주지!”

현실을 깨달아라.

애송이!

[스킬 ‘낙석권’을 사용합니다.]

운석처럼 떨어지는 주먹!

그것이 가휘를 향해 작렬한 순간이었다.

콰앙―

폭탄이 터진 것처럼 뿌연 흙먼지가 날렸다.

시야를 가득 채운 흙먼지에 마인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콜록, 콜록!”

“아, 무슨 돌멩이가 여기까지 튀어?”

“이 새끼 설마 마현까지 죽인 건 아니겠지?”

죽이는 건 오직 마군악의 몫이다.

그 외에는 사이좋게 마현을 찢기로 약속했다.

스스스―

다음 순간 흙먼지가 천천히 가라앉았고.

장조분의 거대한 실루엣이 드러났다.

놈의 주먹이 땅을 뚫고 처박혔음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낙석권은 강력한 스킬이다.

대상을 죽임과 동시에 무덤까지 만들어 주는 스킬이니까.

그런데…….

“멀쩡한데?”

장조분의 앞에 두 사람의 형체가 서 있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마현과 놈의 하수인일 게 뻔했으니까.

그런데.

“야…….”

“미친.”

흙먼지가 마침내 완벽히 가라앉았을 때 찰나 간 적막이 찾아왔다.

왜냐하면.

데구루루…….

장조분의 목이 굴러떨어졌으니까!

“주, 죽었어?!”

“시, 시발 뭐여……!”

“자, 장조분. 이 새끼!”

그 충격적인 장면에 마인들은 미친 듯이 웃었다.

“크하하! 내가 언젠가 저놈 저럴 줄 알았다!”

“갈 때도 예술로 가는구먼!”

“하여간, 저 멍청한 놈은 웃기는 면이 있어.”

“하하하!”

동료의식 따위는 없다.

그런 게 있다면 인간으로 살았을 테니까.

그저 눈앞의 어이없는 상황에 마인들이 껄껄 웃었다.

B급 마인 ‘나다섭’이 나선 건 그때였다.

“크크, 장조분. 하여간 그 무식하게 힘만 센 놈.”

그가 길게 늘어뜨린 검을 질질 끌며 가휘를 향해 뛰었다.

“똑똑하게 기술을 갈고닦았으면 죽을 일도 없었잖아!”

수많은 마인들에게 기술의 중요성을 보여 주겠다는 듯이.

나다섭의 현란한 보법이 펼쳐졌다.

“야, 나다섭, 살살 해라!”

“점마, 장조분 뒤따라가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죽겠어?”

가휘의 시선을 혼란스럽게 하는 나다섭의 보법.

마침내 둘의 거리가 가까워진 순간!

사샥―

방금까지 보여 준 적 없는 속도로 나다섭이 급가속했다.

찰나간 빛살처럼 움직여 가휘의 측면에서 다시 나타난 것이다.

후후, 보여 주마!

회전한 몸을 따라 반짝이는 검의 궤적이 초승달을 그렸다.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걸!”

쐐액―

지켜보는 마인들은 그 깔끔한 움직임에 가휘의 운명을 예측했다.

틀림없이 저 목이 장조분처럼 굴러떨어질 거라는 걸.

하지만.

푸욱―

나다섭의 두 눈이 크게 떠진 것은 그때였다.

굳어 버린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숨이 막혔다.

놀라서 발버둥을 치지만.

발이 땅에 닿질 않았다.

“커, 커흑……!”

뒤늦게 인지할 수 있었다.

나다섭은 가휘의 도에 목이 꿰뚫렸고.

그 상태로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라는 것을!

‘이, 이게 어떻게 된……!’

그 순간에도 가휘의 시선은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움직임은 순전히 예측에서 일어난 것이다!

천천히 돌아가는 가휘의 고개.

마침내 나다섭과 제대로 마주쳤을 때.

가휘가 씨익 웃으며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스르륵.

“커, 커헉!”

‘누, 눈이 없어……?!’

가휘는 처음부터 보고 있지 않았다!

‘이, 이 무슨……!’

마, 망자 따위가…….

어…….

떻게…….

스륵…….

발버둥 치던 나다섭의 팔이 힘없이 떨어졌다.

이에 가휘는 도를 휘둘러 그 시체를 날려 버렸다.

쓰레기를 던지듯이.

털썩.

그 일련의 과정에 일대는 고요했다.

싸늘한 바람 소리만이 적막을 채웠다.

“…….”

“…….”

“…….”

방금까지 웃고 있던 마인들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누군가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턱을 괸 채 지켜보던 마군악의 고개가 바로 선 것도 그때였다.

“……뭐냐?”

나다섭의 움직임은 자신이 잘 안다.

늘 최선을 다해 수험자를 죽이던 놈이다.

그것이 하찮은 수험자라 하더라도.

제 몸에 상처 하나 생기는 걸 싫어해 최선을 다하는 놈이었다.

‘그런 녀석이…… 손도 못 쓰고 죽었다고?’

어떻게 적령 소환으로 나온 하수인 따위가 그럴 수 있는 거지?

상식 밖의 상황에 모두가 얼어붙어 공기마저 가라앉은 이곳에.

누군가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 것은 그때였다.

“흐흐흐.”

마현!

하얀 이를 드러낸 채 미소 짓는 마현이었다!

크큭, 가휘, 이거 참.

‘아주 만족스러운걸!’

찰나 간 보여 줬던 그 움직임은 내게 귀감이 되었을 정도였다.

과연, 진무극이 처음으로 어려워했던 존재라 이건가?

화화도괴 가휘!

주색을 즐기던 그는 도박에서 두 눈을 빼앗겼다.

이후 나머지 감각을 날카롭게 키워 낸 그는 훗날 도괴라 불리게 되었다.

남들과 다른 세상에 사는 그는 진무극이 처음으로 고전했던 무인이었다.

즉,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나저나.

마현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마인들이 여전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분위기가 왜 이렇게 싸해? 너희가 그러니까…….”

마현이 씨익 웃었다.

“내가 흥이 안 살잖아!”

그 여유 가득 짜릿한 미소에 마인들이 일제히 눈에 불을 켰다.

새파란 놈이 기고만장하게 뻗대는 모습에 얼어붙었던 살기가 뜨겁게 타오르는 것이다!

“시발, 저 새끼가!”

“그 미친 정신머리를 박살 내 주마!”

“놈의 왼팔은 내가 가진다!”

앞다투어 몰려오는 마인들!

그 모습에 마현은 가휘와 등을 맞댔다.

“가휘, 뒤를 부탁한다!”

끄덕.

가휘의 간결한 반응.

그 모습은 뭐랄까.

피식.

‘아주 든든하군!’

“자, 그럼…….”

마현의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뒤져라. 미친 새끼야!”

“그 입꼬리도 찢어 주마!”

무기를 겨눈 채 달려드는 마인들을 향해 마현이 자세를 취했다.

“파티를 시작해 볼까.”

【구천마검 이 초식 변천】

쩡―

투명한 파장이 일대를 뒤흔들었다.

31화. 벌써부터 밀리면 좀 멋없잖아

“그 기고만장한 눈깔을 뽑아 주마!”

“버르장머리를 박살 내 주지!”

“크크크! 살아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든 채 땅을 박차는 마인들의 모습이 두 마리의 토끼를 사이에 둔 굶주린 들개들과 같다.

그들에게 하수인이 생각 외로 잘 싸우든 말든 중요치 않다.

하물며 마현이 특출나게 강하다 해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수험자의 수준에서 강해 봤자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선 안.

제아무리 뛰어나도 한계가 명확히 존재했다.

거기에.

“크흐흐! 이렇게 개떼처럼 몰려오면, 네깟놈이 뭘 할 수 있는데!”

수십의 마인들이 함께한다.

혼자라면 이기지 못할 것도 둘이면 다르고 열이면 다른 법!

그게 수십이 되면 전황이 어떻게 변할지는 바보라도 알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촤아악!

“크아악!”

서걱―

“커헉…….”

푹!

“끅……!”

마인들의 저렴한 욕지거리와 비아냥 속에서 피어나는 파육음과 마인들의 절규.

유려한 춤사위처럼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마현의 검의 궤적이 마인들 속에서 펼쳐진다.

뒤따르는 가휘의 움직임이 그런 마현의 검무의 공백을 채웠다.

하나로도 강한 둘이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움직이니 그 힘은 걷잡을 수 없이 강했다.

서서성―

들끓는 살의로 범벅된 이곳에서 눈치챌 수 있는 이들은 없었다.

지금 상황은 들개와 토끼가 아닌.

양떼를 덮치는 두 마리의 늑대와 같음을.

촤악!

“흠, 고작 둘이서 제법이군.”

B급 마인 ‘박지왕’은 그런 마현의 움직임을 관망하고 있었다.

살면서 수없이 난전을 치른 것 같은 대담함과 패기가 압도적인 수세에도 전혀 꺾일 줄 몰랐다.

제법이다.

수험자 중에 이런 모습을 보인 녀석은 처음이군.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씨익.

“나 박지왕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박지왕이 대태도를 치켜세운 채 마현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고.

돌진하는 박지왕을 인지한 마현이 곧바로 자세를 취한 순간이었다.

철컥―

마현의 눈이 크게 떠진 것은 그때였다.

[스킬 ‘땅거죽 덫’이 사용되었습니다.]

덫처럼 변한 땅거죽에 발이 붙잡힌 것이다!

크큭!

이것이 이 몸이 계속해서 마현의 움직임을 봐 온 이유!

움직임을 예측해 함정에 빠뜨리기 위함이었다!

“애송이! 움직임이 다 예상이 된다고!”

타이밍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거지!

하늘을 찌를 듯이 치켜세워진 대태도.

순간적인 제약에 자세가 무너진 마현.

틈을 노린 박지왕의 그것이 단두대의 칼날처럼 마현에 떨어졌다.

콰앙―!

일대에 터져 나온 충격파에 땅거죽이 뒤틀리고 흙먼지가 치솟았다.

시야가 온통 뿌옇게 변한 와중에 박지왕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제대로 들어갔다.

거기에 진심으로 내려쳤으니, 어쩌면 갈라져 죽었을지도 모를 정도다.

이미 대태도의 높이는 마현의 키보다 더 깊숙하게 내리박힌 상태였으니까!

‘크크, 마군악 녀석이 죽이지 말라 했지만 어쩌겠어. 이 새끼가 여간 반항이 심했어야지.’

물론, 지금껏 봐 온 놈의 수준이 높았으니.

몸을 틀어 피했을지도 모른다.

즉, 갈라진 건 머리가 아닌 어깨가 될 수도 있었다.

뭐가 됐든.

마현.

‘이것으로 끝이다. 크흐흐!’

즉, 마현 죽이기에서 내가 일등 공신이 된 거지!

자욱해진 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박지왕의 눈이 크게 뜨였다.

“버, 버텨 냈다고?”

마현이 검을 높이 드는 상단세로 자신의 일격을 막아 낸 것이다!

깊숙이 내리박힌 것은 대태도가 아니었고.

그저 짓눌린 마현의 두 발이 땅에 박힌 거였다!

뭐, 뭐지?

성좌와 계약조차 하지 않은, 레벨도 낮을 수험자 따위가 어떻게?

단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던 연계다.

수감되기 전부터, 그리고 수감된 후로도 이 연계는 언제나 통했다.

자신의 거구로부터 끌어올린 힘에 가속이 실렸으니.

연약한 수험자 따위는 갈라져 죽는 게 당연한 상식이었다!

몸도 나보다 가는 녀석이 어떻게 한 거지?

이 새끼 정말…….

‘수험자가 맞는 거냐?!’

충격이 가시기도 전.

박지왕의 두 눈이 또다시 커졌다.

파들파들.

온 힘으로 지그시 누르고 있던 대태도가.

점점 위로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끄으윽. 무슨 힘이!”

씨익.

마현의 눈빛이 투명하게 빛났다.

“이건 예상 못 했나 보군.”

그러면 안 되지.

이런 급박한 전투 속에서.

확실하지 않은 거로 승부수를 던지면…….

“내 차례가 될 테니까!”

카앙―

대태도를 밀어내자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금속성의 뒤로.

파앙―

마현의 발을 묶은 땅이 뒤집히는 소리가 들렸다.

“무……!”

위로 튕겨 올라간 박지왕의 팔.

그의 몸이 마현에게 무방비하게 드러났다.

떨리는 두 눈은 세상이 느리게 보였다.

자신을 향해 몸을 던지는 마현의 움직임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일 정도로.

그런 반응 속도였지만.

박지왕은 피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얼어붙은 듯이 움직일 수 없었으니까!

“……슨!”

“잘 가라.”

【구천마검 일 초식 균천】

푸욱―

배를 뚫고 등 밖으로 나왔다.

원래라면 그런 상태에서도 수험자와 동귀어진 할 수 있었겠으나.

촤악―

다음 순간, 박지왕은 실 끊어진 인형처럼 늘어졌다.

“…….”

그 모습에 일대의 마인들의 움직임이 굳었다.

누구도 박지왕의 급습이 통하지 않을 거란 상상을 못 했다.

하물며.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

그런 마인들을 보며 마현이 중얼거렸다.

“하, 여전히 많군.”

전투의 흥분 때문인지.

몸에 고통은 없지만 분명 성한 구석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놈들이 조금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덤벼들어 왔다.

얼마나 죽인 건지 기억 못 할 정도로.

확실히 망자 성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힘들다.

망자들은 스치면 죽었지만, 마인들은 확실히 죽여야 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어.”

마현이 검을 굳게 쥐었다.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난다.

절대 포기 못 하지.

왜냐하면.

이제 얼마 남지 않았거든.

씨익.

‘내가 강해질 시간이!’

조금 힘들면 어떤 데.

이 모든 게 다 나를 위한 거라 생각하면.

오히려.

‘즐겨 줘야겠지!’

안색이 어두워진 마인들을 향해서 마현이 발을 내디뎠다.

“배부를 때까지 죽여 주마!”

쩡―

터져 나오는 투명한 파장.

마현의 검이 고고하게 피어났다.

【구천마검 이 초식 변천】

* * *

쐐액―

내질러진 창이 마현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

빗맞힌 죄는.

촤악―

죽음.

마인들의 얼굴에 전과 같은 여유는 찾아볼 수 없다.

하나둘 사라져 가는 마인들과 부쩍 줄어든 수세로 이 싸움이 만만찮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그렇기에 더 이상 마군악과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일단 살아야 하기에.

죽기 살기로 무기를 내지르고, 스킬을 날리며 마현을 죽이려 했다.

그걸로도 부족하자, 마인들은 익숙하지 않은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지금이다! 제약 스킬을 걸어라!”

스킬을 준비하는 마인들이 퇴로를 막기 위해 암기를 날렸다.

마현과 가휘는 가만히 당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암기들이 쏟아지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움직임이 봉인되는 것보다 화살 비를 뚫는 편이 나으니까.

물론 모든 세례를 피할 수 없다.

비가 내리는데 젖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파바박―

가휘는 언데드다.

불가피한 것은 녀석이 대신 몸을 앞세워 막아 내곤 했다.

“고맙다.”

끄덕.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아니.

서걱!

사냥이 계속된다.

“후…….”

멀찍이 앉아 지켜보던 마군악이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한숨을 내쉬었다.

걸터앉았던 바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 병신들이…… 쯧.”

지들이 마현이랑 싸우게 해 달라고 그렇게 빌어 대길래 기껏 허락해 줬건만.

보여 주는 건 오히려 마현에게 썰려 나가는 모습이 아닌가.

거기에.

“흐, 흐아악!”

“제, 젠장!”

마군악의 눈에는 보였다.

고작, 둘에게 기가 꺾여 가는 마인들의 모습이.

빠드득.

하여간, 천한 놈들은 이게 문제다.

꼭 일을 제대로 못 하지.

‘결국엔 내가 손을 쓰게 만든다니까.’

머리를 쓸어 넘긴 마군악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다음 순간.

슈웅―

마인 하나를 베어 넘긴 마현이 반사적으로 허리를 뒤로 젖혔다.

그 순간 무언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고.

마현의 뒤를 노리던 마인 하나가 맞고 쓰러졌다.

“끄아악!”

이미 한 번 봤던 마법.

마군악의 스킬. ‘칼바람’이었다.

마현은 알 수 있었다.

드디어 마군악이 움직인다는 걸.

과연, 놈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 꺼져라, 이 쓸모없는 새끼들. 마현은 내가 맡을 테니까. 너희들은 저 하수인이나 상대해.”

마현을 노리던 마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에는 약간의 안도가 있었다.

상황이 바뀌자, 가휘도 마현으로부터 멀어졌다.

마현과 마군악의 전투에 방해되지 않기 위해 자리를 옮겨 싸우는 것이다.

“자, 그럼 드디어 우리 둘만 남았네? 오래 기다렸지? 하도 저놈들이 너랑 싸워야 한다고 칭얼거렸거든.”

“그렇군.”

“그나저나 마하윤의 아들이라 흑마법을 잘 쓸 줄 알았는데. 의외네? 검술은 어쩌다 하게 된 거야? 아는 흑마법은 없어?”

마군악은 마치 제가 삼촌이라도 되는 양 호기심 가득한 투로 물었다.

마현이 피식 웃었다.

나는 마군악이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그야, 놈은 어차피 죽어야 할 쓰레기.

놈의 과거 따위가 중요할 리가 없다.

아, 물론 궁금한 게 있긴 하지.

내가 마군악에게 궁금한 것은 오직 하나.

‘네 영혼이 얼마나 가치 있을지니까!’

“저기.”

“응?

“나는 쓰레기 따위랑 말 섞는 취미는 없거든.”

그러니.

그 썩어 빠진 누런 이를 입 밖으로 보이지 마라.

씨익.

“다 부숴 버리고 싶어지니까.”

마현의 기세가 바늘처럼 사납다.

그런 모습이 마군악의 무언가를 자극했을까.

눈살을 찌푸리던 녀석이 갑자기 배를 잡고 웃었다.

“푸하하하하!”

“웃음이 많군.”

“끄흐흐. 마현! 넌 정말이지…… 날 미치게 하는구나.”

천천히 고개를 드는 마군악의 눈가에 눈물이 촉촉했다.

하지만 입가는 찢어질 것처럼 웃고 있었다.

“너를 보면 볼수록. 마하윤. 그 쌍년을 통째로 닮은 것 같거든!”

마군악의 마력이 들끓어 올랐다.

감정이 실린 것처럼 그 기운이 사납게 일렁거렸다.

“크크크! 좋다, 좋아! 그래야 나도 통쾌할 테니까!”

마력이 마군악의 손으로 모여들었다.

다음 순간 그것은 바람이 되어 손날을 타고 휘몰아쳤다.

[스킬 ‘폭룡인’을 사용합니다.]

손을 휘두르기만 해도 칼바람을 난사할 수 있는 살상 마법. 폭룡인.

한때, 마가의 미래가 될 거라 여겨지던 마군악의 주특기였다.

“마현! 나는 너를 불구로 만들어 죽지 않는 인형으로 만들 거다!”

그렇게.

“함께 지하 감옥에서 썩자고!”

짜릿하게 웃는 마군악의 손날이 지휘자의 그것처럼 유려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길고 짧은 칼바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콰과과―

아름드리나무에 긴 상처를 남겼고.

허리까지 자란 풀이 싹둑 썰렸다.

땅에 처박히자, 땅거죽이 패였다.

칼바람이 어둠 숲을 찢어발겼다.

“흡!”

마현은 힘을 끌어올리며 계속해서 몸을 날렸다.

땅을 박차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오가며 칼바람으로부터 몸을 지켰다.

그때.

스핏―

스쳐 지나간 칼바람에 마현의 어깻죽지에서 피가 났다.

마치 진짜 칼에 베인 것처럼 날카롭고도 서늘했다.

“죽이지 않으려는 거 맞아? 까딱 잘못하면 죽겠는데?”

“크큭, 그 쌍년의 자식인데. 이걸로 죽으면 섭하지!”

거칠게 휘둘러지는 마군악의 손날.

칼바람이 가을바람 낙엽처럼 흩날렸다.

십수 개의 칼날이 날아온다.

그런 와중에도 마현은 낭패 어린 기색 하나 없었다.

그야.

천살동과 망자성채를 거쳐 지금 이 순간에 이른 나는.

[종합 능력치: +9]

[민첩: 47]

‘사신관 역사상 가장 빠른 수험자니까!’

무수한 칼바람이 마현을 향해 날아든다.

마현도 전력으로 달렸다.

칼바람을 향해.

지켜보는 이가 있다면 반드시 죽을 거라 의심치 않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마침내 칼바람이 처박힌 순간.

콰앙―

뒤집힌 땅거죽과 흙먼지를 뚫고 마현이 나타났다.

“호오!”

찰나의 순간 마현이 땅 위를 미끄러지듯 몸을 날려 피해 낸 것!

조금만 늦었어도 목이 달아나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마치, 그딴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마현이 마군악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 모습에 마군악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제법인데! 정면으로 피해 내는 놈은 처음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마군악의 손이 더 사납고 거칠게 휘둘러진다.

하이라이트에 이른 지휘자의 손짓처럼 빠르고 변칙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변주조차 마현에겐.

콰과광―

전혀 통하지 않았다.

“…….”

계속해서 칼바람은 쇄도한다.

그러나 어째선지 마현은 전혀 두렵지도 않다는 듯이 쉽게 피해 냈다.

“……조, 좀 날래구나!”

굴러서 피해야 할 궤적들이었다.

그러나 마현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몸을 틀어 피하곤 했다.

마치, 다 알고 있는 궤적이라는 듯이.

마현이 속으로 쓰게 웃었다.

폭룡인은 암천마가에서 중상급으로 치부되는 흑마법.

마가 일족이라도 재능에 따라 익힐 수 있는 마법이 다르니.

폭룡인은 더욱 보기 힘든 흑마법이었다.’

가문이 멸망하고 탈옥한 마군악 네 녀석이…….

‘뒷 세계에 흑마법을 유통하기 전까지는.’

강하고 위협적인 마가의 흑마법들이 뒷 세계에 범람하자.

마가의 위신은 그야말로 곤두박질쳤다.

너도나도 흑마법을 쉽게 접했고.

결국.

틈만 나면 마주치던 쓰레기들이 마가의 흑마법을 다루는 꼴을 보고야 말았지.

하지만.

이번 생은 아니다.

‘내가 없던 일로 만들 테니까!’

이미 거리는 지척.

마현의 검극이 마군악을 향해 쇄도한 순간이었다.

카앙―

마군악의 손날을 타고 흐르는 바람의 칼이 마현의 검을 막아섰다.

“크흐……! 제법인데!”

대치한 마현과 마군악의 검이 찰나에 십수 번 맞부딪혔다.

연신 칼바람을 쏟아 내는 폭룡인에 주변은 쑥대밭이 되었다.

하지만 마현이 상처 입는 일은 없었다.

칼바람의 궤적이 마현을 향하기도 전에 검을 맞부딪혀 그 궤적을 비틀어 냈으니까.

“검술에도 제법 일가견이 있군. 마군악.”

하지만.

“이건 어떨까.”

쩡―

순간 마현의 몸에서 터져 나온 파장에 흠칫 얼어붙은 마군악.

마현의 검이 일 점 쇄도했다.

【균천】

무섭게 찔러 오는 검!

이를 악문 마군악이 바람의 칼로 제때 그 궤적을 틀어 냈다.

하지만.

주륵.

‘바, 방금 내가 죽을 뻔했어?’

원래는 마현의 검을 튕겨 내려 했었다.

하지만 마현의 괴력에 오히려 자신의 팔꿈치가 접혔고.

순간 스스로 목을 잘라 버릴 뻔했다!

‘무, 무슨 힘이!’

뭔가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되었다.

어째서 저 마인들이 그토록 고전했는지!

당혹 어린 마군악의 눈동자를 본 마현이 조소했다.

“웃음기가 사라졌군.”

“크윽……!”

“이제 좀 현실이 파악되려나?”

자신을 바라보는 마현의 눈빛이 마치 내려다보는 것처럼 보였다.

“너는…….”

지그시 눌러 오는 마현의 검.

마군악은 그 힘에 맞서려 했지만.

“나를 이길 수 없다.”

“끄으으……!”

오히려 제 무릎이 점점 굽혀져만 갔다.

마군악의 두 눈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이, 이거 진짜냐? 이대로 싸우면 내가…… 진다고?!’

이를 악물어도 도저히 저 힘을 떨쳐 낼 수 없었다.

거기에 자신은 억제기까지 차고 있으니.

이대로는 천천히 죽을 뿐이었다!

크윽!

인정하기 싫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놈은 비정상적으로 강하다.

도저히.

죽이지 않고서는 쓰러뜨릴 수 없을 정도다!

마현의 검에 짓눌린 바람의 칼.

또다시 그것이 자신의 목전에 다다랐을 때.

마군악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크아악!”

순간 거세진 마력과 폭주하는 폭룡인.

마군악을 중심으로 거센 바람이 폭발했다.

콰아아―

찰나 간 몸이 붕 뜰 정도의 풍압.

마현의 움직임이 주춤하게 된 사이 마군악은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너, 제법 하는구나 까딱하면 죽을 뻔했잖아. 응? 혈족에 대한 예우는 없는 거냐?”

애써 태연한 척 너스레를 떠는 마군악이었지만.

직전의 상황에 당황한 기색은 숨기지 못했다.

뻔히 보이는 그런 모습에 마현이 코웃음 쳤다.

“별거 아니야.”

회귀까지 했는데.

고작 여기서 빌빌거리면.

차라리 나가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벌써부터.

“너 같은 놈한테 밀리면 좀 멋없잖아.”

“……너.”

그 순간 마군악은 마현의 눈빛에서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마하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가소롭게 여기는 듯한 눈빛을!

빠드득!

“하…… 적당히 닮아야지. X같은 것도 똑 닮아서!”

살기등등한 마군악의 안광.

완전히 결심을 내렸다.

마현을.

무조건 죽이겠다.

“네놈은 내게 죽는다.”

그러니.

씨익.

더 이상 힘을 숨길 필요는 없겠지.

마군악의 마법이 전개되었다.

수십 년간 지하 감옥에서 놀고만 살진 않았다.

언젠가 벗어날 그날을 위해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지!

다음 순간. 그의 억제기가 푸르게 물들었다.

[억제력 하향]

[억제력 하향]

막혔던 혈맥에 마력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줄 알았던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

갑갑함을 부숴 버리는 그 속 시원함에 마군악이 부르르 떨었다.

“크크크! 아아! 이거 완전 미치는데!”

족쇄를 벗어던진 것 같다.

물론, 아직 미완성이지만.

저 새끼를 상대하는 데에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하지만 여기에.

[스킬 ‘폭풍 집결’을 사용합니다.]

휘이잉!

‘억제된 마력으로 사용할 수 없던 버프 스킬까지 사용하면 어떨까!’

마군악을 중심으로 바람이 몰려든다.

[스킬 ‘폭풍 집결’이 스킬 ‘폭룡인’을 강화합니다.]

손날을 타고 오르던 폭룡인이 맹렬히 회전한다.

그것이 점차 크기를 키우더니 마침내 마군악의 몸을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크하하하!”

마치 바람의 제왕이라도 된 기분이다.

온몸을 타오르는 이 기운에 몸이 살짝 떠올랐고.

풍압에 짓눌린 어둠 숲의 나무와 풀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어떠냐! 마현! 과연, 네놈이 버틸 수나 있겠냐?!”

마군악이 이미 승기를 잡은 듯이 광소했다.

강한 바람에 마현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확실히 지금 수준에선 마군악의 기세는 자연재해를 마주한 것 같다.

이대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게 분명하지.

하지만…….

‘내가 이대로 있어 줄 리가 없지.’

조금 더 모으고 싶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변한 이상 어쩔 수 없겠군.

슬슬 진행하는 수밖에!

마군악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비웃었다.

“하하! 지금이라도 살려 달라고 빌어 봐라! 그러면 사지를 자르는 선에서 살려 주…….”

“아니, 괜찮아. 왜냐하면…….”

마현이 씨익 웃었다.

“나도 비슷한 능력이 있거든.”

다음 순간 구천의 문이 열렸고.

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수많은 영혼이 일제히 빨려 들어갔다.

사아아―

강해지는 영압!

더욱 투명하게 빛나는 마현의 눈동자!

그리고.

[근력이 1 상승합니다.]

[민첩이 1 상승합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마력이 1 상승합니다.]

[근력이 1 상승합니다.]

.

.

.

증가하는 능력치!

“뭣……! 뭐, 뭐냐!”

마현이 발을 딛고 있는 땅의 풀들이 고개를 들었다.

마현이 내뿜는 기운이 마군악의 풍압에 저항하는 것이다!

그 모습에 마군악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려왔다.

서, 설마…… 강해진 거라고?!

어떠한 마법도 스킬도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 강해진 것이다!

무, 물론 아주 없는 경우는 아니다.

흔히 깨달음이라고 했다.

깨달음이 찾아온 이는 한순간에 경지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등 대폭적인 상승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건 하늘이 점지해 줘야 하는 일생일대의 운이 아닌가?’

근데.

저놈은 어떻게 의도한 것처럼 깨달음을 얻은 거지?!

그 불가해한 상황에 마군악은 뭔가…….

소름이 돋았다.

얼이 나가버린 마군악에 마현이 말했다.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살려 달라고 빌어라.”

그러면.

씨익.

“깔끔하게 죽여 주지!”

32화. 고얀 놈, 고얀 놈, 고얀 놈

“크크크…….”

영력이 강해지자.

검을 쥔 손의 악력이 드세지고.

심장에서부터 뿜어진 피가 온몸을 질주했다.

육체가 더욱 강해졌음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요컨대.

‘아아! 역시 이 맛은 전혀 질리질 않는구나!’

강해지는 느낌이란 늘 짜릿하고 새로운 것이다!

머리끝까지 맑아지는 기분은 덤!

피로까지 말끔히 해소되었다!

그래서일까.

마현의 눈에 얼빠진 마군악이 보였을 때.

무척이나 가소로워 보였다.

방금 나한테 뭐라 그랬지?

살려 달라고 빌면, 팔다리만 자르겠다고 했나?

피식.

마군악.

너에겐 아쉽겠지만.

그딴 미래는 존재하지 않아.

‘아니, 존재할 수가 없지.’

세상은 강자의 뜻대로 흘러가는 법이거든.

마현의 검극이 마군악을 향했다.

그 눈빛은 포식자의 그것처럼 형형했다.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살려 달라고 빌어라.”

그러면.

씨익.

“깔끔하게 죽여 주지!”

그 오만방자한 말에 마군악이 이를 갈았다.

“이 새끼가!”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지?

살려 달라고 빌면 죽인다니!

평범한 머리에서 나올 만한 말이 아니잖아!

하지만 사소한 것에 놀랄 시간은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을 향해 마현이 다가온다.

그때마다 드러누운 풀들이 고개를 들었다.

마치, 더 이상 자신의 힘은 통하지 않는다는 듯이!

그리고.

마군악은 뭔가 답답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무언가 목을 조이는 듯한.

어쩌면 차디찬 사슬낫이 자신의 목을 겨누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 지금 설마 내가…….

쫄았다고?

“그아아아!”

마군악이 포효했다.

그 순간 일대에 강한 바람이 터져나갔다.

시이발! 이 내가 고작 저딴 새파란 놈에게 쫄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인정할 수 없다.

이런 상황도, 나약한 자신의 무의식도.

그리고.

‘마현 네 녀석도!’

“호오, 마군악. 눈빛이 그럴싸하군.”

“크흐흐! 언제까지 그렇게 기고만장할 수 있을 것 같냐!”

네놈에겐 애석하게도 말이지.

이 강화된 폭룡인을 상대로 버텨 낸 녀석은 없었다!

그러니.

“마현, 갈가리 찢어 죽여 주지!”

온몸의 힘을 짜낸 마군악의 폭룡인이 극한으로 발휘된다.

소용돌이를 방불케 하는 그 장엄한 모습에 또다시 일대에 풍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파과과과―

무수한 칼바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전보다 빠르고 맹렬해진 그것들에 갈가리 찢어지는 어둠 숲.

거기에 더해 부메랑처럼 휘어지게 된 칼바람이 사방에서 마현을 향해 쇄도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마현은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거, 바람이 좀 시원하네.”

씨익.

“선풍기로 딱인걸.”

다음 순간, 칼바람들이 마현의 위로 무차별적으로 폭격했다.

콰과광―

땅거죽이 박살 나고 돌가루가 휘날린다.

뿌연 흙먼지에 시야가 가려졌으나.

비처럼 내리는 칼바람은 도무지 멈출 줄을 몰랐다.

“하하하! 죽어! 죽어라!”

마군악은 제 분이 풀릴 때까지 칼바람을 계속해서 뿌렸다.

콰과과광―!

그렇게 얼마간 지났을까.

“하아, 하아…….”

마군악이 거친 숨을 내뱉었다.

폭룡인은 마력 소모가 굉장히 큰 마법.

몸에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씨익.

상쾌한 미소가 자연스럽게 지어졌다.

“크큭, 드디어 수십 년 묵은 앙금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됐네.”

오래도 걸렸다.

그 원수에게 언제고 복수하고 싶었는데.

오늘로 비로소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후, 뿌듯한걸?

철천지원수의 아들을 난도질해서 죽였다.

생각보다 고전하긴 했지만.

고생한 만큼 보답을 받은 기분이다.

그렇게 보람찬 기분을 누리고 있을 때였다.

마군악의 두 눈이 순간 크게 떠졌다.

‘……잘못 들었나?’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는데?

인기척.

그것을 느낀 방향은 방금 초토화된 일대.

앞으로는 마현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저벅저벅.

마군악의 감각은 틀리지 않았다.

다음 순간.

희뿌연 먼지를 뚫고 마현이 나타났으니까!

“후…… 시원하네!”

놈은 분명 엉망진창이었다.

온몸이 흙먼지로 잔뜩 더럽혀진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분명 있어야 할 피나 상처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뭐, 뭐지…….

제 놈이 어떻게…….

‘멀쩡할 수가 있는 거지?!’

마현의 눈에 경악한 마군악이 들어왔을 때였다.

“마군악, 다 괜찮았는데.”

마현의 입꼬리가 비웃듯이 올라갔다.

“역시, 에어컨이 더 나은 듯해.”

“이, 이 새끼가 어떻게 살아 돌아온 거냐!”

다시 한번 마군악의 손끝에 짙푸른 마력이 응집했다.

피융―

마군악이 날린 극강의 칼바람.

그것이 마현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퍼엉―

후려친 마현의 검에 칼바람은 해체되었다.

“이렇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마현이 지닌 능력치가.

마군악의 마법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 내가…….

저딴 녀석에게 밀린다고?!

이 내가?!

“말도 안 된다고!”

파과과과―

수많은 칼바람이 마현을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퍼버버벙―

칼바람은 마현이 휘두르는 검에 상냥한 바람이 되어 사라졌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마현과 마군악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이, 이럴 리가 없어! 이럴 수는 없다고!”

폭룡인을 난사하는 마군악.

하지만 그 흉포한 기세도 점차 잦아지기 시작했다.

폭룡인은 마력을 물처럼 쓰는 마법.

무한히 쓸 수 없다.

반면.

“음? 약풍인가? 이젠 선풍기만도 못한데?”

마현은 식은땀조차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바람에 먼지까지 씻겨 나가 상쾌한 얼굴이었다.

그제야 마군악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괴…… 괴물…….”

마현은 괴물이다.

자신조차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미친 괴물인 것이다!

이대로는 안 돼.

나 혼자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마군악이 목청껏 소리쳤다.

일대의 마인들을 향해 울부짖는 것이다.

“다 모여! 이 새끼를 같이 죽여야겠다!”

“다 같이 마현을 죽이라고!”

“이 십새끼를 같이 죽이자니까!”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들리는 건.

사아아―

어둠 숲 절망곡의 으스스한 바람 소리.

적막인 것이다.

“뭐, 뭐야…….”

그때 바람에 실린 혈향을 맡을 수 있었다.

그제야 마군악의 시야에도 보였다.

핏빛으로 물든 일대.

피가 강을 이루고 시체로 산처럼 쌓였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 앉아 있는 녀석이 있었다.

“하, 하수인?!”

마현이 소환했던 하수인 가휘였다.

“다, 다 죽었다고? 저 하수인 따위에?”

뭐, 뭐가 어떻게 된 거냐.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잖아.

한낱 하수인 따위에 지는 게 말이 되냐고……!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은 마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음을 마군악은 알아차렸다.

자신에게도 마찬가지.

그리고 두 일의 공통점은 모두.

마현과 연관되어 있음이었다.

“허억…… 허억……!”

마군악은 갑자기 숨이 막혀 왔다.

떨려오는 손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시선을 어디로 두어야 하는 거지?

적어도 마현을 향해 둬서는 안 될 터였다.

다가온 마현이 방긋 웃으며 물었다.

“마군악. 갑자기 왜 그렇게 당황하고 그래? 지금 이 상황, 너한테 익숙한 순간 아니냐?”

익숙한 상황?

……맞다. 무척이나 익숙한 상황이었다.

자신은 그간 수많은 마가 일족과 가신 일족들을 죽였으니까.

그건 지하 감옥에 수감된 후로도 마찬가지.

마인 토벌 시험에서의 마인으로서 일족들을 무참히 압살했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은 마현의 위치였지, 지금처럼 발발 기는 상황은 아니었다!

“아…….”

그때 마군악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 있었다.

그건 수십 년 전 ‘그날’이었다.

― 흐음. 정말 이게 최선이야?

잔혹하리만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 이름은 마하윤.

마가에서 장차 가문을 이끌 것으로 유력했던 기재 중의 기재였다.

― 크윽, 힘을 숨기고 있던 거냐?

― 딱히? 그냥 너희가 너무 약했던 게 아닐까?

― 이, 이 개자식이! 그아악!

폭룡인을 전개하는 마군악.

당시의 자신은 손에 바람을 휘감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정도로도 가문에서 인정을 받아왔었다.

하지만.

― 풉, 발악하는 거야? 그 정도는 나도 하겠다.

다음 순간.

마하윤은 마군악이 펼쳤던 폭룡인을 전개했다.

자신과는 달리.

온몸으로 폭룡인을 전개했다.

― 기습한 이유가. 실력이 형편없어서였구나?

씨익.

― 멍청하네. 힘은 키우면 그만인데.

그렇게 일방적으로 압살당했다.

마군악은 마하윤에게 완벽하게 패배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히죽.

“그래, 기억났구나?”

마현에게 똑같은 순간이 일어난 것이다!

“아아, 아아아아아아!”

뒷걸음치기 시작한 마군악.

그가 마현에 등진 채 도망치기 시작했다.

폭룡인을 쥐어짜며 가속했다.

누구도 쫓을 수 없는 속도였다.

하지만.

“야, 같이 가!”

“그아악!”

바로 뒤.

마현이 쫓아오고 있었다!

심지어 그 격차가 점차 줄어들었다!

하지만 술래잡기도 잠시.

사아아―

마군악은 대뜸 심장이 쥐어 짜이는 기분이 들었다.

“허억, 허억……!”

안 그래도 마력이 고갈되던 차.

갑작스러운 두통과 심통에 폭룡인이 점차 흩어졌다.

“으, 으어어……!”

돌아본 마군악은 보았다.

자신을 향해 주먹을 쥔 채 다가오는 마현을!

“넌 어디에도 못 가.”

“크아악! 살려, 살려 줘!”

“내 곁을 떠나지도 못하지.”

씨익.

마현의 미소가 사슬낫처럼 휘었다.

“너는 내 영력이 되어야 하거든!”

마군악의 위로 마현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으아아아아아!”

비명은 오래가지 않았다.

* * *

“허허, 어찌!”

“마, 마군악이 졌다?”

“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진짜요?”

“크흐흑! 내 아들의 복수가 드디어 이루어졌도다!”

사신관의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그저 모두가.

마현을 믿고 있었으니까!

“크크큭! 마현…… 장차 가문의 미래가 되겠군.”

“아아! 이렇게 훌륭할 수가 있다니. 내 살면서 처음 보는 인재로다!”

“역시 마하윤의 아들이라는 건가! 흐흐흐.”

마현이 처음 사신관에 입장했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멸시에 가까웠던 그 시선이.

이제는 제 자식인 것처럼 흐뭇해졌으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아무리 사생아라 하여도.

그것이 가문의 오랜 전통과 율법을 어긴 존재라 하여도.

그 어떤 마가 일족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마현의 모습에 기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무르익었던 열기는 점차 사그라들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점차 조용해졌고 지금에서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적막 속에서 오직 하나의 소리만 반복해서 들렸다.

그것은 바로…….

드르륵 탁!

― 으, 으아악! 어, 어떻게?!

― 선풍기로 딱이군. 에어컨만 못하지만!

― 으아아악! 이럴 수는 없어! 이럴 리가 없다고!

반복 재생되고 있는 마현의 하이라이트였다!

누군가의 모니터에서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클클클…….”

원로들의 떨리는 시선이 마휼의 들썩이는 어깨로 향했다.

그런 상황임을 마휼이 모를 리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행동은 멈출 줄 몰랐다.

드르륵 탁!

― 으, 으아악! 어, 어떻게?!

― 선풍기로 딱이군. 에어컨만 못 하지만!

― 으아아악! 이럴 수는 없어! 이럴 리가 없다고!

“끌끌끌끌끌!”

사신관에 울려 퍼지는 마휼의 웃음소리.

그 소름 끼칠 정도로 날카로운 목소리였지만.

그 누구도 감히 격양된 마휼에 간섭할 수는 없었다.

드르륵 탁!

드르륵 탁!

드르륵 탁!

분명한 건.

“크하하하하!”

마휼이 무척이나 짜릿하게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게 마휼의 눈은 모니터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고얀 놈, 고얀 놈, 고얀 놈!’

아아, 마현…… 너란 녀석은 도대체!

마휼은 무언가 북받치는 듯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살면서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감정이었기에, 처음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은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야, 기분이 좋으니까!

드르륵 탁!

클클, 계속 보고 있지만. 정말 믿기지 않는군.

어떻게 이렇게 멋지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거지?!

사신관에서 마현을 보았을 때만 해도 이 정도의 기대는 아니었다.

그저 살아 돌아오기만을 바라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시험을 거칠수록.

마현은 스스로를 빛냈다.

무척이나 찬란하고 뜨겁게 빛났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 아아! 이럴 수는 없어! 이럴 리가 없다고!

모두가 내심 마현의 패배를 예견했던 마군악까지 압살해 버렸다!

“크하하!”

사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시험의 순간마다 그랬다.

‘어쩌면 마현이 이번에는 힘들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

천살동을 버티지 못할 것이고.

망자 성채에서 죽도 못 쓸 거라 생각했다.

마군악의 등장에는 믿기는 했지만.

‘내심 불안을 떨쳐 낼 수는 없었지.’

마현을 온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마현을 제대로 마주한 것은 오직 오늘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녀석은 그 모든 걱정을 보란 듯이 산산조각이 냈다!

처음이다. 모든 예상이 빗나가게 된 것은!

‘클클클, 이 나를 바보로 만들어 내다니.’

마현, 네놈은 정말로 고얀 놈이구나!

좀처럼 진정되질 않는 감정의 고조.

그것은 메마른 땅에 내린 빗물과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마휼의 눈빛이 수십 년을 되돌아간 것처럼 더없이 생생해졌다.

어딘가 피폐하기도 했던 그의 안광이 말끔히 돌아온 것이다!

동시에 마휼이 무언가를 결정한 듯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는 사실 마현 네놈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

제 어미의 죽음과 자신을 방관해 온 나를 좋게 생각할 리가 만무하니까.

물론, 녀석이 내게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이곤 했지만.

오랜 시간을 살면서 알 수 있었지.

앞에서 미소를 짓더라도 등 뒤에 칼을 숨겨 놓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그건 특히 앙금이 깊은 관계일수록 자주 볼 수 있었다.

어쩌면 나와 마현처럼…….

하지만.

씨익.

‘이젠 상관없다!’

마현, 네 녀석이 속으로 나를 저주하고 있더라도!

날 미친 듯이 증오하더라도!

훗날, 내게 그 칼을 찌르더라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이젠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몸.

‘난, 내 맘대로 하면 그만이거든! 클클클!’

마휼의 눈에 야망이 번뜩였다.

어떻게든 반드시 마현을 소가주로 키워 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마휼이 그림자에 숨어 있는 비서장을 향해 전음을 날렸다.

― 마현과 조금이라도 연이 있는 자는 모조리 조사하라!

― 알겠습니다!

원래부터 조금씩 조사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마치 곁에서 지켜봐 온 것처럼 모조리 파헤쳐 주지!

수십 년간 잠들어 있던 마휼의 탐욕이 기지개를 켠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휼은 잊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 그 머저리 같은 존재를.

“마광익.”

어딘가 기쁘고 섬뜩한 목소리에 마광익이 흠칫 놀랐다.

천천히 마휼을 바라보는 마광익의 눈동자는 무척이나 피폐했다.

“마군악은 힘들지 않겠냐고 했던가?”

마휼의 가소롭다는 듯한 말투와 멸시하는 눈빛이 마광익을 파고들었다.

“그, 그건……!”

“뭐,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갑작스런 마휼의 이해.

무언가 포용력이 넓어진 듯한 느낌이었지만.

마광익은 도저히 안심할 수 없었다.

‘이, 이 새끼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불길한 예감!

과연 마광익은 마휼을 오래도록 봐 온 값을 했다.

“마광익. 너는 단 한 번도 나를 이겨 본 적이 없지.”

너 자신만이 아니라 후예들도 마찬가지다.

즉, 무엇이 우수한 것인지 본 적이 없으니.

알아볼 수 없는 게 당연한 거야.

그러니까.

씨익.

비틀린 마휼의 입술에서 차디찬 비수가 날아왔다.

“애초에 넌, 날 때부터 썩어빠진 거였다.”

쓰레기처럼 말이지!

“어, 어억……!”

그 무자비한 난도질에 마광익은 차마 할 말이 없었다.

분노는 쌓여 가는데 분출할 수가 없자 마침내 마광익의 귀에서 이명이 터졌다.

삐―

혼란스럽다.

상황이 왜 이렇게 변한 거지?

분명, 이 시험에서 모든 활약은 암익파의 것이어야 했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암익파의 무대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죽을 것이라 의심치 않던 그 녀석이 도저히 죽지를 않았다!

오히려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숴 버리는 것이다!

‘어째서냐! 혼자 자란 놈이 어떻게 마군악을 이길 수 있냐고!’

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마광익은 원래라면 화가 치솟았을 거였다.

하지만 지금은 왠지 그럴 기력도 없었다.

왜냐하면 더 이상…….

판도를 뒤바꿀 수 없을 테니까.

‘제길…….’

여기까지 왔으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현은 강하다. 이번 기수에서 그 누구도 마현보다 뛰어난 녀석은 없다.

그건 마승철과 마기헌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

그 참담함에 순간 시야가 어두워지는 듯했지만.

마광익은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여기서 끝날 순 없다!’

이번 시험은 암익파의 권세에 쐐기를 박기 위한 그림이었다.

비록 먹칠이 되고 말았지만, 여전히 재기할 수 있다.

원래는 마재헌과 마기헌 두 아이를 필두로 소가주 경쟁에 우위를 점할 생각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오직 마재헌만을 집중적으로 투자할 셈이다.

그러기 위해선 마승철과 마기헌.

‘그 두 아이를 마재헌의 뛰어난 그림자로 키워 내면 되겠지!’

썩어도 준치다.

그 둘이라면 훗날 마재헌에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다.

다시 마음을 다잡은 그때였다.

‘음……?’

마광익의 모니터에 심상찮은 정황이 포착되었다.

그건 바로…….

“마승철…… 마기헌?”

암익파의 두 후예가 44번 영역구에 있는 것이다!

기억 하나가 마광익의 뇌리를 번뜩였다.

자신이 마승철에게 전음을 날리던 순간이었다.

― 마현을 죽여라.

그 말에 마승철이 비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지금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다.

자, 잠깐……!

지금에서는 알 수 있다.

마승철과 마기헌으로는 가망이 없다는 걸!

“아, 아아……!”

안 된다!

“가면 안 된다!”

가면, 다 죽는다!

새파랗게 질린 마광익.

이에 마휼이 말했다.

“된다.”

“그아악!”

마광익의 절규가 사신관에 울려 퍼졌다.

33화. 최선을 다해야 여한이 없는 법

어둠 숲 절망곡 44번 영역구.

마승철과 마기헌이 노련한 사냥꾼처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폈고 미세한 소리라도 들을 수 있도록 귀를 기울였다.

마지막 기회다.

자신들의 명예와 가치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 마현에 복수할 유일한 기회!

그러니 반드시 놈을 찾아야 했고, 어떻게든 죽여야 했다.

“도대체 어디에 숨은 거지?”

“크읏, 마현, 이 새끼. 설마 우리가 찾아오는 걸 알고 쥐새끼처럼 숨은 거 아니야?”

“뭐, 보기보다 약아빠진 놈이니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

“제길, 하여간 쓰레기 같은 새끼!”

여태껏 마현은커녕 그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설마, 시험이 끝날 때까지 피해 다니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불쑥 솟아오른 조바심에 마승철이 이를 악물었다.

젠장, 그것만큼은 절대 안 되는데……!

시험이 언제 끝날지는 몰라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분명한 건, 이 시험이 끝나기 전에 승부를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꿀꺽.

마승철은 순간, 온갖 미사여구가 떠올랐지만, 이만한 말이 없었다.

‘X된다.’

마기헌은 몰라도 자신은 진짜로 확실하게 그렇게 될 게 분명했다.

제아무리 마기헌이 자신을 감싸 준다 하더라도 말이다.

마승철의 핏발 가득한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그래, 어디 한번 숨어 봐라.

네놈이 쥐새끼처럼 몸을 숨기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반드시 찾아낼 테니까!’

숲의 어둠 속에서도 마승철의 복수심만큼은 밝게 타올랐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승철, 이걸 봐라.”

마기헌이 자신에게 보인 것은 흔적이었다.

그건 마현의 흔적은 아니었다.

“이건…….”

수많은 발자국.

적어도 수십의 인원이 거쳐 간 듯 짓밟힌 수풀들 사이로 길이 생겨 있었다.

중요한 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흔적이라는 것이다.

“……왠지.”

“그래, 마현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승철과 마기헌이 서로씩 웃었다.

“왠지 마현과 관련 있을 것 같다.”

“그 새끼가 근처에 있겠군!”

곧바로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기감을 끌어올렸다.

근처에 움직이는 존재를 알아채기 위해서 감각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렇게 주변을 살피던 때.

‘!’

마승철과 마기헌의 눈이 동시에 떠졌다.

그 입가엔 미소가 지어졌다.

“찾았다!”

무언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어둠 숲에서 이 정도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

인간.

즉, 어쩌면 마현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뭐가 됐든, 가자!”

마인이면 죽이고.

마현이면…….

찢어 죽이면 되니까!

방향이 정해지자, 둘의 움직임에 거침이 없었다.

마치 숲의 짐승처럼 나무와 수풀을 박차며 빠르게 쇄도했다.

사아아―

절망곡에 불어오는 으스스한 바람.

둘은 바람에 실린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혈향?’

피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온 것.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짙었지만.

둘은 개의치 않았다.

어찌 됐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여기가 좋겠군.”

다음 순간, 마승철과 마기헌은 어둠에 몸을 숨겼다.

어쩌면 마현일지도 모를 놈이 이쪽으로 오고 있으니, 기습으로 맞이해 줄 생각이다.

꿀꺽.

꿀렁이는 마승철의 목젖.

손은 어느새 땀으로 가득 젖었다.

왠지 모르게 잔뜩 예민해진 상태.

하지만 마승철은 제 상태가 어떤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승철, 잊지 않았겠지?”

“물론이지.”

계획은 간단하다.

마현임이 확인되는 순간, 전력을 다해 찍어 누르는 것이니까.

마음 같아선 온갖 고문과 농락을 안겨 주고 싶지만.

어쩔 수 없겠지.

시험에서 보여 준 놈의 모습은 자신들이 알던 것과 이상한 점이 많았으니,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때.

“온다.”

마기헌의 재빠른 반응.

누군가 수풀을 거칠게 헤치며 다가오고 있다.

점점 가까워지는 인기척.

이에 둘은 심호흡을 했다.

마현…….

제발 네놈이어라!

거칠게 박동하는 심장.

스멀스멀 끓어오르는 마력.

마현임이 확실시되는 순간, 바로 전력으로 후려칠 생각으로 가득 찼다.

다음 순간,

그토록 바라왔던 미상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억, 허억! 제, 제기랄!”

마인!

녀석이 가쁜 숨을 내쉬며 달려오는 것이다!

빠드득!

‘에라이 진짜!’

왜 나오라는 녀석은 안 나오는 거냐!

시험이 언제 끝날지 몰라 초조한 마당에 이러기냐고!

칫,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마인과 조우한 이상 전투를 피하면, 기껏 자신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성좌들이 실망할 테니까.

하물며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도 없는 노릇.

마승철과 마기헌은 차라리 먼저 마인의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멈춰라. 천한 것.”

“가려거든 그 목은 두고 가시지!”

“히, 히익!”

어딘가 분노에 찬 두 후예의 등장에 마인의 표정이 순간 당혹으로 물들었으나.

“야이, 썅! 놀랬잖아! 뭣도 아닌 새끼들이!”

“음?!”

“뭐, 뭐라고?!”

마인은 오히려 방해된다는 투로 역정을 내었다.

뭐지?

생각했던 반응이 아닌데?

보통은 겁에 질리거나 미친 듯이 덤벼야 할 마인이었다.

하지만 지금 녀석은 자신들과 싸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보다.

“꺼, 꺼져라. 죽여 버리기 전에! 너희 따위에 낭비할 시간 없다고!”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듯이 다급한 모습이었다!

“천박한 놈.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우리는 놓아줄 생각 없다.”

“멍청한 말 지껄이지 말고 덤벼라. 놈!”

“에, 에라이 진짜! 이 새끼들이! 나 좀 보내 달라고오!”

A급 마인 ‘강성화’는 답답함에 미칠 것 같았다.

아악! 이 미친 애송이 새끼들이 진짜!

난 네들 따위랑 어울릴 시간이 없다고!

‘뒤에 괴물이 다가오고 있단 말이다!’

한발 늦게 현장에 도착했던 강성화는 보았다.

제대로 된 반항조차 못 한 채.

그 막강했던 마군악이 무력하게 패배하는 순간을!

강성화는 마군악이 그렇게 겁에 질려 울부짖는 것은 수십 년 동안 처음 보았다.

양승규 이 미친 새끼!

그런 녀석을 억제기까지 차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죽이라는 거냐!

하지만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마군악을 사냥한 그 괴물은 대뜸 입술을 움직였다.

분명 근처에 아무도 없었음에도.

어느 한 곳을 응시한 채 말하는 것이었다.

― 너 거기 가만히 있어라.

그렇다.

멀리서 지켜보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 이런 젠장!’

강성화가 개같이 도망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분명 처음부터 거리가 멀었으니 이대로라면 시험이 끝날 때까지 도망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비, 빌어먹을 진짜!’

두 멍청한 놈들에 막힌 것이다!

어차피 눈앞의 수험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줄 리 만무하다.

따라서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두 멍청한 후예를 빠르게 꺾고 튀는 것을!

“네, 네들은 눈치가 없어서 죽는 거다!”

[스킬 ‘다중 여우불’을 사용합니다.]

화르륵―

다음 순간, 어둠숲이 일순간 밝아졌다.

강성화의 스킬에 의해 태어난 무수한 여우불들이 일대를 가득 빛내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마치 살아 숨 쉬는 듯이 근방을 맴돌더니 마승철과 마기헌을 향해 내달렸다.

마기헌은 그제서야 상대가 A급 마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쳇, 쉽지 않겠군.’

다중 여우불은 그 개수만큼이나 상대의 강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많은 여우불이니 놈은 마인들 중에서도 상위일 게 분명했다.

‘그래도 상관없다.’

조금 어려울지 몰라도.

마승철과 함께하는 이상 자신들이 질 리는 없으니까!

그렇게 각오를 다진 순간이었다.

“갑자기 밝아졌다 했더니. 여기 있었나?”

“히, 히이이익!”

어딘가 싹수없는 말투와 동시에 점점 새벽녘처럼 밝아지기 시작하는 어둠 숲.

여우불의 불빛보다 더 밝게 빛나는 무언가들이 다가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관심을 보이는 성좌 수: 1,543]

찬란하게 반짝이는 성좌들!

즉.

푸욱―!

“커억”

“이럴 거면 처음부터 가만히 있지 그랬어.”

마현이 도착했다는 의미였다.

“괴, 괴물…….”

“전과 27범의 쓰레기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촤악―

검이 뽑히자 강성화가 힘없이 고꾸라졌다.

일대를 수놓던 여우불이 사그라들었다.

뜨거워지던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마승철과 마기헌은 순간 당혹에 물들었다.

분명 처음 마현의 목소리는 멀리서 들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강성화의 등을 찔렀다.

‘뭐…… 지?’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데.

더이상 생각을 이어 갈 수는 없었다.

“아, 너희…….”

씨익.

“이번엔 진짜로 왔구나.”

반갑다는 듯이 지어지는 미소의 뒤로.

“기다렸잖아.”

상냥한 말투가 마승철과 마기헌의 귀를 파고들었다.

* * *

마군악의 영혼을 막 흡수했을 때.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사신관 시험의 최종 보스라 불리던 녀석.

여태껏 본 적 없는 순도 높은 영혼이었다!

“분명 흡수하면 더 강해질 수 있겠지?”

크크! 생각만 해도 설레는데!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

영혼을 보기만 해도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나 자신을 더 새롭고 강하게 만든다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으니까!

‘제길, 고작 하나 정도로는 안 돼.’

직전에 한차례 새로워진 나.

그 짜릿한 상쾌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더 강하고 더 많은 영혼이 필요했다.

‘더 강하고, 더 많아야 한다라.’

어쩌면 앞으로는 힘든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씨익.

“그딴 건 상관없다.”

언제나 그렇듯 하다 보면 알아서 될 테니까!

즉, 늘 그렇듯 중요한 건.

‘성실함이지!’

나는 곧바로 새로운 영혼을 물색했고.

그것이 강성화와 마현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그렇게 지금에 이르러.

마현은 두 놈과 조우하게 된 것이다.

“마, 마현……!”

“용케 도망치지 않았구나.”

순간 당황했던 마승철과 마기헌이 짙은 살의를 드러냈다.

마력을 한가득 끌어올리는 모습이 언제라도 스킬을 퍼부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말로 죽이니 뭐니 하더니. 진짜로 하는군.’

과연, 미래에 가문을 멸망시키는 데에 크게 활약한 둘이라 이건지.

겉으로 드러난 기세가 여태 만나온 마인들과 비교해도 크게 꿀리지 않았다.

놈들이 전력을 다하면 마군악도 고전을 면치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두 녀석이 내게 살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근데 어쩌지?’

시험 직후였다면 네놈들에게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을지도 몰랐겠지만.

지금의 나는…….

씨익.

[종합 능력치: +9]

[체력: 53], [근력: 51], [민첩: 57], [마력: 71]

‘너무 많은 것이 달라져 버렸거든!’

나 자신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변화!

직전 시험 때 보다 능력치의 앞자리가 두 번이나 바뀌었다!

신선한 영혼으로 듬뿍 강해져 버린 것이다!

“크크큭!”

“?”

“……?”

대뜸 웃는 마현에 마승철과 마기헌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고개를 들려고 했다.

애써 그 감정을 짓밟았지만 마현으로부터 알 수 없는 섬뜩함을 지울 순 없었다.

‘이, 이 기분은 뭐지?’

속이 답답하다.

무언가 자신의 목덜미를 잡아끄는 것 같았다.

마치, 여기서 벗어나라는 듯이!

으득!

‘정신 차려!’

저 녀석은 마현이다.

십 년이 넘도록 샌드백처럼 패 왔던 그 쓰레기라고!

그딴 녀석한테 이제 와서 주눅 드는 게 말이 돼?

‘당연히 말도 안 되지!’

보여 주마.

네놈의 기행은 우리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주춤했던 둘의 기세가 다시금 불처럼 타올랐다.

“더 이상 봐주기도 귀찮구만!”

“천한 놈! 기나긴 악연도 오늘로 종지부를 지어 주지!”

마승철과 마기헌의 마력이 펼쳐졌다.

[스킬 ‘적령 소환’을 사용합니다.]

[스킬 ‘적령 소환’을 사용합니다.]

파스스―

붉은 농무가 어둠숲 일대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악연…….”

피식.

마현은 헛웃음을 지었다.

악연이라…….

옛 생각이 나네.

일방적으로 남의 어머니를 창녀라 모욕하고, 나를 괴롭혀 오던 두 놈과 암익파의 어른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잘 뒤졌다며 비웃던 개자식들.

생각만으로도 열이 뻗치는 기억.

그래, 악연이었지.

참 오래도록 길게 이어진 악연이야.

내겐 무려 전생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졌으니까.

마현은 그제야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제 와 영력으로도 쓸모없을 둘에게,

어떤 절망을 안겨 줘야 할지를 말이다.

전과 달리 차갑게 가라앉은 마현의 눈빛.

그 서늘한 시선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두 적령을 향했다.

쿠아아!

키아아!

울부짖는 리틀 오우거와.

드넓은 날개를 펼치는 데스 와이번.

마승철과 마기헌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스킬 ‘암흑 축복’을 사용합니다.]

[스킬 ‘그림자 갑옷’을 사용합니다.]

[스킬 ‘짐승화’를 사용합니다.]

버프 스킬로 강화되는 마승철.

뿔 달린 흑표범이 된 놈의 몸에 흑마법 특유의 검은 아우라가 넘실거렸다.

거기에.

[스킬 ‘암흑 방패’를 사용합니다.]

보호막에 몸을 맡긴 마기헌이 마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크큭, 바보 같은 놈. 얼타고 있는 거냐?”

마승철의 입꼬리가 자신 있게 비틀렸다.

놈에게 유일하게 기회가 있다면 자신들이 준비를 마치기 전뿐.

이미 모든 준비를 다 마친 지금에서 마현에게 승산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어진 마현의 대답은 둘을 갸우뚱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얼타긴. 기다려 준 거야.”

일부러……. 전력을 다할 수 있게 기다렸다고?

“……뭐라? 미쳐 버린 거냐?”

“멍청한 놈, 시험에서 잘 나가더니 우리가 우습게 보이나 보군.”

“크크, 시끄럽고. 할 수 있는 거 다 해 봐라.”

그래야…….

“여한이 없을 거 아니야?”

마현이 가소롭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때로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줄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특히, 한걸음에 목을 비틀 수 있는 녀석일지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전력을 다하는 녀석을 꺾을 때가

‘가장 짜릿한 법이니까!’

다음 순간.

“멍청한 놈! 이제 와 도망칠 생각은 버려라!”

“크큭, 어미 곁으로 보내 주지!”

쿠아아!

키아아!

모든 준비를 끝낸 놈들이 마현을 향해 쇄도했다.

육중한 몸을 앞세워 맹진하는 리틀 오우거와.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으려는 데스 와이번.

흉포한 야성을 터트리는 마승철까지.

마현은 빠르게 다가오는 놈들을 마주 보며.

천천히 검을 잡았다.

“너희 말대로 지긋지긋한 악연이었다.”

그러니.

키잉―

“이번엔 확실히 끊어 주지!”

검이 뽑힘과 동시에 터져 나오는 투명한 파장.

팔을 휘두르려던 리틀 오우거와 이를 들이밀던 데스 와이번이 멈칫했다.

그사이 마현의 검무가 매끄럽게 펼쳐졌다.

【구천마검 이 초식 변천】

힘이 전혀 실리지 않은 듯이 가볍게 휘둘러지는 마현의 검.

언뜻 보기엔 대충 휘두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크큭, 그딴 게 통할 것 같냐!”

비웃는 마승철.

누가 봐도 그 검격은 무의미했다.

땅이 울릴 정도로 육중한 덩치의 두 적령이다.

전력으로 찔러도 모자랄 판에 가볍게 베어 내는 공격?

‘멍청한 녀석. 그게 될 리가 없잖아!’

하지만. 마승철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죽었어?”

바람처럼 흩어지기 시작하는 적령들의 모습!

이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적령이…… 죽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고작 한 번의 휘두름에 죽일 수 있다니!

‘이, 이건…… 사기잖아!’

그 당혹스러운 상황에 순간 몸이 멈칫했지만.

바로 생각을 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마현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으드득!

“이 저열한 쓰레기 새끼가!”

마승철의 육중한 허벅지가 순간 터질 듯이 부풀었고.

다음 순간, 땅을 부수며 도약했다.

콰앙―

푸른 눈빛이 긴 잔상을 남길 정도의 속도!

그의 손에 검붉은 마력이 감돌았다.

네깟 놈이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나에겐 통하지 않는다!”

[스킬 ‘폭혈참’을 사용합니다.]

짐승화 스킬에 마기헌의 뛰어난 버프 스킬.

찰나 간 힘이 증폭되는 폭혈참까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감히 말할 수 있다.

이 시험에서.

‘내가 제일 강하다!’

마현을 찢어발기기 위한 폭혈참이 번개처럼 내리쳐졌다.

섬뜩한 파육음을 예상하는 마승철.

하지만.

카앙―

‘!’

들려온 것은 차가운 검의 울림이었다.

마승철의 두 눈이 가늘게 떨려왔다.

마현이 폭혈참을 막았다.

그래, 막을 순 있다.

“너, 너어……! 어, 어떻게!”

하지만 짐승화한 자신의 묵직한 손날을.

고작 한 손으로 검을 잡고서 막아 낸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이 녀석의 능력치가 나…….

아니.

‘우리의 전력을 상회한다고?!’

믿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지금 상황은 설명할 수 없었다.

파스스―

스킬이 끝나자 폭혈참의 마력이 흩어졌다.

지그시 마현을 찍어 누르던 힘도 약해졌다.

그러자 놈의 고개가 치켜 올라갔다.

내려다보는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

그 찰나에 정적이 있었고.

뒤에 선 마기헌이 자신을 불렀다.

“마, 마승철……?”

무언가 불길함을 감지한 말투.

그것이 자신이 느낀 불안이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마승철은 순간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무언가 한참 잘못되었다.

무겁게 다물어진 마현의 입이 열린 건 그때였다.

“그게, 최선이야?”

최, 최선……?

마승철은 그 물음의 의미를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마치, 이제 자신의 차례로 넘어가도 되겠냐는 말투였으니까!

그리고 왠지 절대로 그 차례를 넘기면 안 될 것만 같았다.

“하하하!”

마승철은 괄괄하게 웃었다.

길게 자란 주둥이가 찢어질 듯이 벌어졌다.

“크하하! 고작이게 최선일 거라 생각했냐!”

“크크, 그렇지?”

비록 그 눈은 당혹에 물들어 있었으나 마승철은 자신의 상태를 알지 못했다.

그렇게.

“보여 주마, 이것이 나의 최선이니까!”

마승철은 자신의 전력을 다했다.

[스킬 ‘광기의 외침’을 사용합니다.]

[스킬 ‘야수의 발걸음’을 사용합니다.]

[스킬 ‘폭렬난마’를 사용합니다.]

[스킬 ‘핏빛 갈퀴 손’을 사용합니다.]

‘죽어, 죽어, 죽어어!’

콰과과광―

검붉은 마력이 깃든 마승철의 스킬들이 마현을 난도질할 것처럼 쇄도한다.

한 방 한 방이 모두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카가가강―

마현이 정성껏 그 일격들에 맞서 싸우자, 그 화려한 일격들이 허무하게 막혀나갔다.

그때마다 더 이를 악물고 온몸의 힘을 쥐어짜 냈다.

“그아아아!”

[스킬 ‘폭혈참’을 사용합니다.]

[스킬 ‘폭렬난마’를 사용합니다.]

[스킬 ‘핏빛 갈퀴 손’을 사용합니다.]

‘죽어, 죽어엇!’

콰과과광!

“죽으라고!”

쉴 새 없이 필살의 스킬들이 내리꽂히고 있었지만.

마승철의 얼굴은 점차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어째서냐!

어째서, 마현 따위가 이럴 수 있는 거냐고!

마음 깊숙이 짓밟아 놓았던 무언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형용할 수 없는 그 감정이 자신의 머리를 지배했을 때.

마승철은 비로소 볼 수 있었다.

“…….”

마현의 미소가 점차 싸늘하게 식어 가고 있음을.

그리고 마침내.

그 입꼬리가 완전히 내려갔음을.

“마승철.”

“아, 아아, 아직, 아직이야!”

마현의 두 눈이 투명하게 빛났다.

“미안, 유치해서 못 봐 주겠다.”

서걱―

그건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검격이었다.

34화. 깨달음을 얻다

서걱―

찰나에 초승달의 궤적이 번뜩이자.

거대한 야수의 오른팔이 치솟았다.

‘크아악!’

마승철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제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직접 보고서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

그만큼 번개 같은 일격이었고.

‘이, 이 정도로 격차가 컸다고……?’

비로소 그 격차를 느낄 수 있었다.

자신과 마현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을!

그 중요한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대가는 칼이 되어 돌아왔다.

푸욱―

“꺼으윽…… 네, 네 새끼…….”

회수된 마현의 검에 이번엔 몸이 꿰뚫렸고.

통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어, 어째서…….’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십수 년을 봐 온 놈이었기에 더욱 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째서 이렇게나 강한 거지…….

이 녀석 정말로…….

‘마현이 맞는 거냐!’

자신이 아는 마현이라면 절대 보여 줄 수 없는 활약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구음절맥이었던 녀석이 천살동을 버티고, 망자 성채에서는 도리어 엄청난 활약을 펼쳤단다.

그리고 지금에서는 이렇게 되었다.

생각할수록 더 이상하다.

그 활약상들은 그 어떤 수험자도 보여 줄 수 없을 움직임이었으니까!

“네, 네 새끼 정체가 뭐야…… 뭔데…….”

“정체……? 아, 크큭, 예리한데 마승철. 근데 이 순간에 그딴 게 궁금해?”

뭐냐……!

진짜로 내가 아는 마현이 아니었단 말인가!

하긴 그럴 것이다.

결코, 이놈이 자신이 알던 그 허접한 마한일 리가 없었으니까!

“크크. 말해 줄까?”

“그아악! 말해…… 말하라고!”

흐릿해져 가는 시야 속에서 마승철은 마현을 올려다보았다.

놈은…….

“알려 주마. 내 정체는…….”

웃고 있었다!

“정체는 바로…….”

“……? 뭐냐! 왜! 말을 하다 마……!”

그 순간.

촤악―

몸에 박힌 검이 거칠게 뽑혀 나갔다.

“커헉…….”

마승철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고통스럽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들어야 할 답을 듣지 못했으니까!

‘씹새…….’

짐승화한 마승철의 무릎이 힘없이 굽혀졌다.

다음 순간 그 거구의 몸체가 완전히 고꾸라졌다.

쿠웅―

무너져 버린 마승철.

그 충격적인 모습에 마기헌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마, 마승철……!”

거대한 덩치에 가려져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전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알 수 있었다.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거칠었으니까!

분명, 겉보기에는 전력으로 마현을 찢어발기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

하지만 그 모습은 왠지.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처럼 보였다.

결국,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마승철이 쓰러지고 말았다.

너무도 무력하게.

‘이 무슨…….’

분명, 방금의 마승철은 이렇게 허무하게 쓰러질 만한 녀석이 아니었다!

버프와 스킬로 강해진 마승철의 힘은, 사신관 역대 후예들과 견주어도 크게 밀리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 녀석인데……! 나조차도 쉽게 꺾을 수 없는 놈인데……!

어떻게…….

‘네놈이 한순간에 쓰러뜨릴 수 있는 거냐?!’

마기헌이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놈을 보았다.

쓰러진 마승철을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는 그 역겨운 쓰레기.

마현을!

‘마군악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야.’

쓰러진 마승철을 보며 마현은 생각했다.

마군악 역시 가문의 악이었지만 그때와 지금은 그 감회가 많이 다르다.

아무래도 마군악을 직접 마주한 건 살면서 손에 꼽았지만.

마승철은 내게 있어, 수십 년간 핍박과 모멸의 주체였기 때문일 터였다.

마침내 시간을 되돌려 마승철을 짓밟은 지금.

그래 이게…….

‘복수를 한 기분인 거구나.’

처음으로 제대로 된 복수를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

누군가 그랬지.

이해와 사랑으로 세상을 대하라고.

복수의 끝은 허무와 공허뿐이라고.

그것만큼 부질없는 게 없다고.

‘과연…….’

절로 고개가 주억거린다.

그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말을 남긴 이들은 분명, 둘 중 하나일 터였다.

자신이 복수를 당할 주체이거나.

혹은.

이 기분을 혼자서만 알고 싶어 하는 욕심쟁일 것이다.

왜냐하면.

씨익!

‘이 미치도록 통쾌한 기분을 맛보고도 그딴 말을 지껄일 수는 없을 테니까!’

“크하하!”

크큭! 뭐냐, 이 감정은 도대체!

‘뻐엉 뚫리는 느낌이잖아!’

오랫동안 열리지 않던 병뚜껑이 갑자기 돌아가는 순간?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우회로를 발견하고 빠져나가는 때?

막힌 수도관이 뚫리면서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때?

아니다.

고작 그 정도의 시원함이 아니다.

그보다는.

성장의 짜릿함과 비견될 정도다!

‘마승철만 해도 이 정도인데…….’

마재헌, 나아가 세인트 길드의 그 녀석들이라면…….

“크크크…….”

상상만 해도 혀끝이 저린다.

벅차오르는 가슴에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한 맛을 알아 버렸으니까!

‘!’

마현의 뇌리가 번뜩인 것은 그때였다.

중요한 무언가를 깨달은 것이다.

‘아, 그런 거였군!’

어쩌면 복수가 부질없다고 말 한 옛 성현들이 틀리지 않았을 터였다.

마냥 터무니없는 소리였다면 이미 애초에 잊혔을 테니까.

그런데도 이런 차이가 있다는 것은……!

‘그저 그들이 부질없는 복수를 했을 뿐이었던 거군!’

머리를 싸매고 온갖 고비 끝에 암살로 복수를 마무리하면.

자신 같아도 허무하고 지쳤을 것이다.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웠으니 복수가 보상이 아닌 일종의 과업이 된 것이니까.

하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지.

머리를 싸매고 온갖 고비를 감내해야 하는 게 상대가 되었다.

자신은 그저 그걸 부러뜨렸다.

그랬더니.

통쾌했다!

통쾌한 복수가 된 것이다!

‘크큭, 어떻게 복수를 하느냐가 관건인 거였군!’

다 같은 복수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마현의 눈빛이 차분하게 깊어졌다.

내겐 복수해야 할 놈들이 남아 있지.

그리고 이 통쾌한 기분을 한 번 맛본 이상 더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됐다.

‘놈들을 만날 때마다 이 만족감을 느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라질 터였다.

그 방법을 생각하는데.

고민은 찰나에 끝났다.

그야.

그저 강해지면 되는 문제였으니까!

‘결국, 모든 것은 하나로 이어지는 건가!’

분명, 이는 원래 알고 있던 사실일 터였다.

하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니 감회가 다르다.

세상이 넓어지고 삶의 목표가 더 뚜렷해진 느낌!

역시, 사람은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안 그러냐. 마기헌?”

총명해진 마현의 시선이 혼란스러운 표정의 마기헌을 향했다.

놈은 이 순간에도 마법진을 연성하고 있었다.

“이, 이 새끼!”

“마기헌. 친구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도 마법진이나 붙들고 있다니, 아주 대단한 우정이야.”

이를 악무는 마기헌의 모습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 친구도 아닌가?”

미래를 아는 자신은 안다.

‘너의 모든 행동은 결국, 저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것으로 귀결됐지.’

마기헌과 마승철은 결국 친구가 되지 못했다.

둘의 관계는 마기헌과 놈의 오른팔로 정리됐으니까.

그사이에 한 때의 우정은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하긴, 그러니 지금도 그 마법을 붙들고 있는 거겠지.”

어려운 마법을 쓰는 모습이 성좌들에게 보이면 자신의 뛰어남을 보여 줄 수 있을 테니까.

“이런 생각인 거지?”

“닥쳐라, 쓰레기가! 감히 나와 마승철을 이간질하지 마라!”

“맞잖아.”

까드득!

저 빌어먹을 천한 놈이!

마기헌의 눈매가 매섭게 일그러졌다.

짜증 나지만, 제깟 놈이 뭐라 지껄이든 신경 쓸 수 없었다.

준비하고 있는 이 마법은 녀석의 말처럼 다루기 어려운 상급 마법.

그만큼 강렬하고 뛰어나기에 오직 마법 전개에만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주제넘지 마라, 천한 놈! 이 마법이 완성되는 순간 네놈 따위는……!”

“그 마법. 흑염섬인가?”

그 말에 마기헌의 눈이 커졌다.

암천마가에서 볼 수 있는 마법만 해도 수천 가지에 육박한다.

특히, 흑염섬처럼 타고난 재능을 따지는 마법은 같은 일족도 알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어떻게 저딴 놈이 알아볼 수 있는 거지?!’

마기헌은 마현이 점차 낯설어졌다.

십 년을 넘게 봐온 익숙함이 사라지는 것.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기분에 마치, 마현이 껍데기만 같고 속은 다른 놈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현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좋은 마법이지. 강력하고 거칠어.”

흑염섬은 마기헌이 애용하게 되는 스킬.

가문에선 상급 마법으로 여겨지는 그 마법은 확실한 재능이 받쳐 주지 않으면 다룰 수조차 없는 마법이다.

‘하지만, 지금의 마기헌이 다루기엔 너무 거친 마법이지.’

어린아이가 묵직한 대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엉성하고 본래의 파괴력보다 약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래도 대검이기에 그 공격을 절대적으로 무시할 수 없긴 하다.

흑염섬을 지금 수준에서 펼친다니. 역시 대단한 재능이긴 하군.

거기에 나중에는 기어코 스킬로 만들 정도로 숙달까지 해낸 녀석이다.

그 집착에 가까운 힘에 대한 열망은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현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 힘이 가문을 망치는 데에 쓰면 안 됐지.’

제아무리 훌륭한 검일지라도, 그것이 향하는 방향이 가장 중요한 법!

하물며 그것이 가문을 향한다면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그 무엇도 해칠 수 없도록 부러뜨리는 것!

그것이.

미래를 아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마기헌이 씨익 웃었다.

“그래서, 뭐 어쩌란 거지?”

이미 마법진의 완성이 거의 끝에 이르렀다.

하물며 여전히 보호막 스킬이 건재하는 이상, 놈이 자신을 방해할 수도 없다!

‘그 쓰레기가 어떻게 이렇게 변화할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늘 그렇듯, 결국 승기는 자신에게 기울어진 것이다!

“크크, 오만한 척은 다 하더니. 그게 네놈이 죽는 이유가 됐구나!”

차라리 나불거릴 시간에 도망이라도 쳤으면 살았을 텐데 말이야!

하지만 이젠 도망도 늦었다.

모든 주도권은 이미 자신에게 넘어왔으니까.

하지만.

“해 봐.”

마현이 또 한 번 예상 밖의 말을 꺼냈다.

아니, 이제는 여느 때와 같은 답이었다.

다가올 죽음 앞에서 태연하게 웃음 짓는 것마저도 변함없었다.

“뭐……?”

“궁금하거든, 말로만 듣던 그 마법이.”

마현의 눈이 투명하게 빛났다.

전신의 마력이 끓어올랐고 검에서 푸른 빛이 났다.

“정말로 강력한지 말이야.”

“이 새끼가 아직도 여유를 부려?!”

까드득!

“오냐! 보여 주지, 네놈을 죽일 마법이다!”

마기헌의 몸이 푸른 마력으로 끓어올랐다.

그 예사롭지 않은 기세에 일대의 공기가 고요하게 변했다.

마침내 놈의 마법진이 최종에 이른 것이다.

‘진심을 다하려는 거군. 마기헌.’

그런 모습에 마현은 내심 기대가 되었다.

나는 마승철 덕분에 깨달았거든.

최선을 다하는 자를 꺾는 것만큼.

짜릿한 것도 없다는 걸 말이야!

“보여 주마 쓰레기!”

다음 순간, 마기헌의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그 핏빛의 마법진이 허공에서 떠올라 불길한 빛을 발할 때.

마기헌은 두 손을 그 마법진에 담갔다.

결인(結印).

힘을 구현하는 방식 중 하나.

그것은 마법진이나 술식, 제사장의 검무처럼 어떠한 힘을 불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지만 가장 보편적인 것은 손으로 펼치는 수인(手印)이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연마된 비밀스러운 의식을 행하듯.

마기헌의 양손이 부드럽고 유연하게 다양한 인을 맺고 풀고 다시 맺었다.

그리고 마침내.

짝.

합장한 손의 양 손가락 끝마디가 맞닿은 채, 손바닥의 틈이 벌어졌다.

으레 있어야 할 그 빈 공간에는 무언가 있었다.

데굴―

그건 무척이나 혼탁한 빛을 담은 ‘눈’.

동공이 세로로 찢어진 그것이 마현을 인식했고.

사특한 안광이 더욱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훗, 마현.

흑염섬은 빛처럼 쇄도해 대상에게 꺼지지 않는 화마의 고통을 주며, 살아남더라도 저주가 남아 죽는 날까지 괴롭히지.

이 필살의 마법이 펼쳐진 이상!

‘네놈은 끝이다!’

지이잉―

혼탁한 눈에서 뻗어 나온 흑빛의 광선.

그 강렬한 어둠과 불과 빛의 줄기가 마현을 향해 쏘아졌다.

그 찰나의 순간.

마기헌은 보고야 말았다.

이 새끼가…….

지금.

‘웃음이 나와?’

짓궂은 얼굴로 서 있는 마현이었다.

진중하지 못하다.

그 기대에 찬 표정은 절대 지금 상황에서 보일 수 없는 태도다.

두, 근.

한데, 왜일까.

왜, 저 개같은 얼굴을 볼수록 속이 답답해지는 거지?

마치 내면의 무언가가 고개를 드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불길함이었다.

으으아!

아니야! 이미 승기는 내게 기울었어!

제 딴 놈이 더 이상 발악할 수 없다고!

마기헌은 마현에 사형 선고를 내렸다.

“타오르는 고통에 죽어라! 쓰레기!”

흑염섬의 어둠 광선이 마현에 꽂혔다.

필살의 마법이 마현에 적중한 것이다!

하지만.

치이이익!

마기헌은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두 줄의 긴 발자취를 남기며 밀려나던 마현이 땅속에 발을 깊게 받으며 멈춰 섰다.

그런데도 검을 치켜세운 자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그렇게.

키이잉―

강철에 저지되는 어둠과 불과 빛.

푸르게 빛나는 마현의 검이 흑염섬에 맞서는 것이다.

그 모습이 마치 사악한 힘에 대항하는 검사와 같았다.

일대의 공기가 뜨겁게 가열되고 여전히 흑염섬의 줄기는 끊어질 줄을 몰랐다.

그 강력한 힘에 검이 타오르며 울부짖지만.

여전히 마현에게서 일말의 불안을 찾아볼 수 없었다.

“크크, 제법 강하군.”

과연 상급 마법.

고작 수험자 수준에 지나지 않는 마기헌이 펼쳤음에도 이 정도 위력이라니.

‘재밌군.’

하지만 진짜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내가 흑염섬을 기다려 준 이유는 고작 막아낼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었으니까.

“네놈 발버둥 치는 거냐!”

“마기헌, 내가 흑염섬을 알게 된 게 누구 덕인 줄 아냐?”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지금 그딴 말이 나올 때인가?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맥락.

하지만 이어진 마현의 말은 마기헌의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너 때문이다. 그리고 덕분에 알 수 있었지.”

가문 멸망의 날.

마기헌은 흑염섬으로 가신 일족들을 태워죽이며 다녔다.

쓸데없는 천한 놈들이라며 말이지.

그때 알 수 있었다.

마기헌의 파괴적인 흑염섬에 강력한 특징이 있다는 걸.

꽈악.

마현이 검을 강하게 쥐었다.

“흑염섬은 어둡지만 분명한 건…….”

검의 각도를 조금씩 비틀었다.

“빛의 성질을 지녔지.”

“!”

지이잉―

굴절된 채 뻗어 나가는 어둠의 광선.

그것이 스쳐 지나간 나무가 검게 그을리고.

수풀에 불이 번졌다.

어둠 숲이 흑염섬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순간 당황했던 마기헌이 코웃음 쳤다.

그래 봤자 흑염섬으로 자신을 공격한다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여전히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다.

그리고.

“네놈의 검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냐!”

마현의 검이 용광로의 쇳물처럼 달아오르고 있었다.

저 검이 부러지는 순간이 오면 마현은 죽는다!

“하긴, 이대로 간다면 너 말대로 네가 이긴다. 하지만.”

이대로 흘러갈 것 같아?

지이잉―

천천히 어둠 광선의 각도가 변화한다.

뻗어 나간 흑염섬에 일대는 계속해서 황폐화되었다.

“마기헌 네가 모르는 것 같아서 말해 주지.”

지금 이 순간에도 흑염섬의 각도는 수정되었다.

분명한 건 왠지 어떠한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느 한 곳은…….

“마승철은 살아 있다.”

“뭐라……? 잠깐, 네놈 설마!”

그때였다.

“으으으…… 쿨럭!”

마승철이 정신을 차린 것.

고통에 정신이 혼미한 듯이 그저 꿈틀거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분명한 건.

마승철이 살아 있다.

그리고.

지이잉―

흑염섬은 쓰러진 마승철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다!

“이, 이런 미친 새끼가!”

“마기헌, 너는 분명 마승철과 친구로 지내 왔겠지.”

정말 그 우정이 진짜라면.

선택할 수 있겠지!

“나냐 아니면 마승철이냐!”

참고로 시간은 많이 못 준다.

내 검이 녹아 버리기 전에.

결판을 내야 하니까!

지이잉―

“크아아! 이 X발 새끼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마기헌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35화. 우정과 미래

흑염섬이 마승철을 향해가고 있는 이때.

마기헌은 일생일대의 선택을 해야 했다.

<1. 마승철을 선택한다.>

‘마, 마승철을 선택한다……?’

이는 곧 흑염섬을 취소하는 것.

당연하게도 저 쓰레기 같은 마현이 두 번 다시 펼칠 틈을 주지 않을 터다.

하지만…….

자신은 마승철과 거의 한 평생을 같이 지내 왔다.

못난 녀석이고 조금 덜 떨어지긴 해도 나름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함께 쌓아 온 시간이 긴 만큼 그 추억도 많았고.

그만큼 앞으로도 함께할 시간이 많을 터였다.

그렇지만…….

흑염섬을 취소하게 되면, 당연하게도 마현을 죽일 유일한 기회도 사라진다.

이는 곧 사신관 시험에서의 패망으로 이어진다.

마광익 원로님의 실망과 마재헌 형님의 분노를 살 것이고.

어머니의 복수를 이뤄 드리지 못하게 된다!

거기에…….

씨익.

한평생 마현의 쓰레기 같은 비웃음을 견뎌야 한다!

즉,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마승철과 함께 버텨 나가야 하는 것이다!

‘크윽! 정말 이것이 최선인 건가?!’

지이잉―

“마기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이런 개새끼가!”

“아하하!”

크으윽!

마기헌은 서둘러 생각을 이어 나갔다.

<2. 마현을 선택한다.>

흑염섬을 거두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죽마고우 마승철을 잃게 되지만.

대신에 확실하게 마현을 죽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마광익 원로님의 인정과 마재헌 형님의 기쁨을 살 것이고.

어머니의 복수를 이뤄 드리게 된다.

거기에…….

― 끄아악! 마기헌!

마현의 처절한 죽음을 목도할 수 있게 된다!

‘그, 그뿐이 아니야.’

마현이 모아온 성좌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이며.

이는 곧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성좌의 수가 급증하게 된다는 의미다.

즉, 찬란한 금빛 미래가 펼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미래에.

마승철은 없게 된다.

꿀꺽.

골라야 한다.

진실된 우정.

금빛의 미래.

그 사이에서 무엇이 옳은지를!

마기헌의 시선에 꿈틀거리는 마승철이 담긴 것은 그때였다.

어느새 근처에 도달한 흑염섬도 함께 보였다.

즉, 선택의 시간이 도래한 것!

이제 마기헌은 선택해야만 한다!

‘마기헌.’

‘기헌.’

‘아들.’

찰나의 순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

할아버지. 마재헌 형님. 어머니.

마지막으로.

‘마기헌!’

밝게 웃는 마승철의 얼굴이 떠올랐다.

빠드득!

다음 순간.

마기헌이 내뿜는 기세가 더욱 강렬해졌다.

결정을 내린 것이다.

“마승철!”

지이이잉―!

흑염섬의 힘이 증폭되었다.

“미안하다!”

나를 위해.

“네가 희생해라!”

고통스럽지 않게 빠르게 끝내는 것이 친구를 위한 유일한 예우!

마기헌의 흑염섬이 모든 것을 불태울 것처럼 강렬하게 타올랐고.

다음 순간.

“그, 그아악! 마기헌!”

거대한 흑표범이 바싹 타버렸다.

“와, 정말 눈물겨운 우정이군.”

마현의 비아냥에 마기헌이 이를 갈았다.

“마승철은……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마기헌의 안광이 푸르게 빛났다.

“마현! 네놈은 죽는다!”

지이이잉―!

더없이 강렬해진 흑염섬!

그 파괴적인 힘에 마현의 검이 한계에 가까워졌다.

“크아아! 죽어라! 쓰레기야!”

죽어, 죽어서! 내 미래의 양분이 되어라!

필살의 각오를 담았다.

하지만.

씨익.

‘서, 설마…… 또 뭐가 있는 거냐?!’

마현이 쓰레기 같은 미소를 지은 것이다!

“미안한데.”

사아아―

마현이 천천히 마기헌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눈빛이 더없이 투명하게 빛났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서.”

꽈아악!

주먹을 부릅 쥐는 마현.

그 순간.

‘!’

마기헌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좌뇌와 우뇌의 사이를 잡아 뜯으려는 것처럼.

심장이 옥죄인다.

무언가 심장을 꽈악 쥐는 것처럼.

“우, 우욱! 뭐, 뭐지?!”

급박한 상황이지만 마기헌은 데자뷰를 느꼈다.

숨통을 쥐락펴락하는 느낌.

강약중강약의 리듬.

분명 느낀 적이 있어.

천살동과 망자 성채에서 그랬다.

근데 이게 어째서 지금 또다시…….

그때 마기헌의 두 눈이 떨렸다.

서, 설마……!

깨달은 것이다.

“이, 이 개새끼가 설마!”

그 모든 사건의 중심에 마현이 있음을!

“알아차렸나?”

하지만.

“이제 와서 네가 뭘 할 수 있지!”

“크아악! 이 씨바알!”

마기헌이 마력을 끌어올려 심신을 보호했다.

그러자 자신을 괴롭히는 마현의 기운으로부터 한결 편안해졌다.

하지만.

“제, 젠장!”

지, 지잉―

흑염섬이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다.

어둠 광선이 흐릿해지고 끊어지는 것이다.

다시 흑염섬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심신을 지키면서 흑염섬을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머리가 핑 도는 기분과 심장이 빠개지는 기분이 들었다.

악순환이다.

무엇도 제대로 되지 않게 되었다!

꺼질 듯 말 듯 요동치는 어둠 광선.

그 발악에 가까운 모습에 마현이 실실 웃었다.

“마기헌. 너는 결국 포기하게 될 거다.”

지, 지잉―

“그리고 나에 의해 모든 것을 잃게 되겠지.”

지, 잉―

“아! 이미 하나 잃어버렸나?”

지, 지이잉―

그것이 뭔지는 마기헌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분노를 양분 삼는 것인지.

흑염섬이 점점 힘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아악! 마혀언!”

하지만.

“정확히는 네놈이 망가뜨린 거지만!”

그 말과 동시에.

파칭!

마법이 분쇄되었다.

흑염섬이 해체된 것이다.

“크크크!”

“끄아아아아!”

마기헌이 다리에 힘이 풀린 듯이 주저앉았다.

창백한 몰골에는 동공이 풀려 있었다.

“동태눈이군.”

그 말이 웃겼던 것일까.

“크큭, 끄흐흐.”

마기헌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크하하! 마현! 흐흐흐! 하하하! 마혀언!”

그 모습은 얼핏 악에 받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역시, 웃는 모습이 보기 좋군.”

“흐하하! 너, 너는 죽는다. 너느은! 나한테 무조건 죽어어!”

마기헌의 몸이 푸른 불길에 휩싸인 것처럼 마력의 아지랑이를 뿜어냈다.

[스킬 ‘철의 가시’를 사용합니다.]

[스킬 ‘악의 손아귀’를 사용합니다.]

[스킬 ‘겨울의 냉소’를 사용합니다.]

[스킬 ‘악의 참격’를 사용합니다.]

.

.

.

마기헌이 평생을 갈고닦아 온 스킬들이 연달아 펼쳐지는 것.

파바박!

땅거죽을 뚫고 올라온 지옥의 손아귀들이 마현에 뻗어졌다.

사방에서 마법들이 암기처럼 쏟아졌고, 겨울바람 같은 마력이 일대에 저주를 퍼부었다.

섬뜩한 칼날 같은 것이 마현의 목을 노려왔다.

그 외에도 수많은 스킬이 펼쳐졌다.

“그딴 게.”

물론 그런 것들로는.

“통할 리가 없잖아.”

흑염섬으로도 어찌하지 못한 마현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콰과광!

자욱한 흙먼지가 일대를 뒤덮었고.

다음 순간.

타앗!

마현이 뛰쳐나왔다.

“개새끼가!”

“말이 저급해졌어.”

“X발!”

[스킬 ‘악몽의 유람’을 사용합니다.]

[스킬 ‘환영 족쇄’를 사용합니다.]

[스킬 ‘암쇄파’를 사용합니다.]

.

.

.

도대체 얼마나 많은 스킬을 익혀 온 것인가.

과연 마기헌의 재능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눈으로 좇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마현을 맞출 수는 없었다.

마침내 그 거리가 좁혀졌을 때.

“크아아!”

[스킬 ‘암흑 방패’를 사용합니다.]

터엉!

마기헌을 감싼 방어막에 마현이 마침내 저지되었다.

마현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음.”

콩콩!

마기헌이 전력으로 펼친 방어막은 척 보기에도 수준이 높았는데.

손으로 두드려보니 확실히 더없이 정교하고 두꺼웠다.

“마기헌 이럴 거야? 이런다고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순 없어.”

“마현! 인정한다. 너는 강하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이것 좀 치워 봐! 우린 깊게 할 말이 있잖아!”

“하지만 오늘만이 날이 아니다. 나는 반드시 살아서. 마승철의 복수를 할 테니까!”

마기헌은 마현의 힘을 인정했다.

그렇기에 보호막에 몸을 숨기고 시험이 종료될 때까지 버티기로 작정했다.

콩콩!

콩콩콩!

“야, 이러기야?”

“크크큭! 소용없다 포기해라!”

스킬 ‘암흑 방패’는 마기헌이 처음으로 익힌 스킬.

타고난 재능과 오랜 숙련을 통해 꾸준히 강화를 거듭해 왔다.

마기헌이 펼칠 수 있는 스킬 중 가장 수준이 높은 것이다.

“절대로! 네깟 쓰레기가 뚫을 수 있는 방패가 아니라고! 크하하!”

“호오…… 그래?”

“……음?”

마기헌이 불길한 예감을 느낀 것은 그때였다.

그리고 마기헌은.

감이 좋은 편이었다.

“하, 그런 말을 들으면.”

씨익.

“부숴 버리고 싶어지잖아!”

마현의 눈빛이 더없이 투명하게 빛났다.

일대의 기운이 마현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거, 거기서 더 전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마현이 검을 높이 치켜세웠다.

놈의 광배근이 무섭게 부풀어 올랐다.

“그, 그래도! 나의 암흑 방패는……!”

카앙!

“나, 나의 암흑…… 방!”

카앙―!

“아, 암흑!”

카앙―!

마기헌의 두 눈이 떨렸다.

‘흐, 흔들린다!’

암흑 방패가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크크, 마기헌.”

“무, 무슨……!”

“누가 그러더라고.”

누군지는 잘 모른다.

영력으로서 나와 하나가 된 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는데.

그 말이 지금 떠올랐다.

“근거 있는 자신감은 나약하다고 해.”

왜냐하면. 근거란.

“쉽게 부서지기 때문이래.”

“끄아아아!”

“기다려.”

마현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 눈이 여느 때와 달리 한없이 진지해졌다.

“부숴 줄 테니까.”

다음 순간.

쩡―

투명한 파장이 터져 나왔고.

【구천마검 이 초식 변천】

마현의 검무가 펼쳐졌다.

쾅. 쾅. 쾅!

검이 방어막을 난도질한다.

불꽃이 튈 정도로 계속해서 방어막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 그만둬라!”

쾅. 쾅. 쾅!

크게 흔들리는 암흑 방패.

그것에 변화가 생긴 것은 그때였다.

쾅. 쾅. 쾅. 콰직―

쩌적―

“으아아!”

쩌저적!

거미줄처럼 번지기 시작하는 균열!

암흑 방패의 내구성이 그 끝에 다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파칭―

[스킬 ‘암흑 방패’가 해제됩니다.]

살면서 본 적 없던 암흑 방패가 해체되는 순간.

암흑 방패를 구성했던 마력의 파편들이 눈처럼 흩날렸다.

“아, 아아…….”

풀썩 주저앉아 버린 마기헌.

실금한 줄도 모른 채 바들바들 떨었다.

그런 마기헌에 마현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씨익.

웃으며 반겨 주었다.

“지긋지긋한 악연이었다.”

“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

안간힘을 쓰며 뒤로 물러나려는 마기헌.

힘들게 거리를 벌렸지만.

마현의 한 걸음이면 다시 거리가 좁혀졌다.

“마기헌.”

엄숙한 사형 선고와도 같은 말투였다.

마현은 마기헌의 죄명을 읊조리듯 말했다.

“나를 욕하는 건 괜찮았다.”

“나를 괴롭히는 것도 상관없었지.”

하지만.

“가족을 건드리는 건 지금도 참을 수 없다.”

창녀라니.

잘 뒤졌다느니.

“크크.”

“으, 으아아아!”

마현의 검이 하늘을 찌를 듯이 세워졌다.

그 검극이 반짝였다.

“적당히 했어야지. 쓰레기가.”

“끄아아아!”

다음 순간 마현의 검이 처형대의 칼날처럼 마기헌을 향해 떨어졌다.

하지만.

카앙―

눈살을 찌푸리는 마현.

게거품을 물고 기절하는 마기헌.

그리고.

“더 이상 선을 넘지 마라. 마현.”

강압적인 투로 말하는 양승규.

양승규가 거칠게 검을 휘둘러 마현의 검을 밀쳐 냈고.

이에 둘 사이의 거리가 벌어졌다.

“뭡니까?”

“분명, 더 이상 선을 넘지 말라고 말했다.”

마치 사나운 짐승을 제압하려는 듯이 양승규는 위압적으로 기를 방출했다.

하지만 마현의 기운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더 거칠게 타올라 양승규의 기운에 맞서는 것이다.

“설마, 교관인 내게 덤비려는 거냐?”

사신관 시험에서만큼은 교관과 수험자 사이의 서열은 절대적.

제아무리 마가 일족이며, 뛰어난 인재로 촉망받는다고 하여도 마찬가지.

이 순간만큼은 양승규의 명령이 절대적이었다.

그런데도 마현은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양승규.”

그 무례한 하대에 양승규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러나 마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사신관 시험에서 교관의 역할은 시험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하는 것과 수험자의 안전이지.”

원래는 더 많은 역할이 있었지만.

사신관 ‘시험’이 사실상 별자리 연회를 위한 ‘경기’로 바뀐 후로부터는 오직 그뿐이다.

교관은 이 경기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수험자의 안전을 위해 힘쓰는 것이 핵심 임무였다.

중요한 건, 시험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에 처한 수험자의 안전을 위할 때다.

천살동의 음기를 버틸 수 없거나.

던전 공략의 마물을 사냥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거나.

마인 토벌에서 마인과 싸울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다.

다만,

수험자 간의 경쟁은 예외지.

그건 시험이 아닌, 경기의 일부로서.

이 별자리 연회에서 성좌들이 가장 바라고 열광하는 재미니까.

그러니.

“양승규, 너는 지금 시험을 망치고 있다.”

그것도 마가가 몇 세기에 걸쳐 일궈 온 이 시험을!

하늘이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 망치는 것이다!

그러니.

마현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천벌을 받아라.”

“뭐라? 진짜 내게 덤비겠다는 거……!”

다음 순간.

한달음에 양승규의 앞에 당도한 마현이 검을 휘둘렀다!

“이……!”

갑작스런 그 움직임.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

그럼에도 양승규는 반응해 그 일격에 맞섰지만.

서걱―

“!”

왼팔이 날아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36화. 구라다

때는 시험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계속해서 교관으로서의 업무에 치이던 양승규는 지금에서야 시험 현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

“크큭, 분명 지금쯤, 마현 그 녀석은 갈기갈기 찢겼겠지?”

당연히 그럴 것이다.

마인들이 마현을 죽이고 싶도록 유도했고.

심지어 사신관 최종 보스라 불리는 마군악을 기용하기까지 했으니까!

이 정도 정성을 마현이 알아준다면 눈치껏 죽어 줘야 할 터였다.

그만큼 철저하고 확실한 준비였다.

다음 순간 스마트워치로 현황을 분석하던 양승규의 고개가 기울었다.

“뭐야, 다 어디 갔어.”

마인 토벌 시험에는 백이 넘는 마인들이 투입됐다.

한데 지금은.

[식별 가능한 마인 수: 18]

꿀꺽.

서늘하다.

오랜만에 목돈을 넣어 둔 주식의 수익률을 확인한 기분이었다.

“이, 이상하다.”

스마트워치가 오류가 난 건가?

하, 진짜 기계 따위가 짜증 나게 간담 서늘하게 하네.

고작 18명만 남았을 리가 없잖아.

평균적으로 마인은 70% 이상 생존해 왔다.

즉, 시험 막바지에 이른 지금 마인의 수가 적어도 70은 돼야 했었다.

그렇게 세부 기록을 확인했는데.

[생명 반응 없음: 91]

“다 뒤졌다고?!”

역대급 참살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죽어도 되는 놈들이고 그럴 만한 녀석들이지만.

누가 이렇게 많이 죽였는가가 관건이었다.

그리고 그 녀석은…… 마현일지도 몰랐다.

“그, 그럴 리가 없잖아!”

뭔가 잘못되었다.

왜 죽어야 할 새끼가 안 죽고 너희만 죽은 거냐고!

“그, 그래! 마군악!”

마군악, 이 새끼는 뭐 하고 있는 거냐!

마인들이 이렇게 죽어 나가는 동안 어디서 뭐 하고 있냐고!

서둘러 마군악의 위치를 파악했는데.

“아…….”

마군악은 먼저 지옥에 가 있었다.

주르륵―

식은땀이 볼을 타고 미끄러졌다.

그리고 토옥 떨어졌다.

― 양승규. 책임질 각오는 되어 있겠지?

―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네놈을 찢어 죽이고 싶지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 마현을 죽여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머릿속에 맴도는 마광익의 전음.

“시, 시발…….”

마지막 기회였다.

자신이 살아 돌아갈 유일한 기회였는데!

“X됐다.”

망했다.

분명, 이대로 시험이 끝나면 마광익이 자신을 찢어 죽일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 이렇게 끝난다고?’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양승규의 머릿속에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이 떠올랐다.

제 앞에 있는 녀석은 과감하게 제치고, 가로막는 녀석은 끌어내리고, 뒤쫓아 오는 녀석은 걷어찼다.

그럼에도 꿋꿋이 버티는 놈은 이간질해서라도 떨어져 나가게 했다.

늘 더 높은 곳, 더 나은 삶을 위해 악착같이 살았다.

그렇게 드디어 이 자리까지 왔는데……!

“……살아야 한다.”

이렇게 죽을 순 없다.

고작, 마현 그 빌어먹을 쓰레기 때문에 이렇게 인생이 박살 날 수는 없단 말이다!

양승규가 마승철과 마기헌의 위치를 파악한 것은 그때였다.

둘은 자신이 알려준 대로 마현의 영역구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마현을 죽이겠다고 했지.’

시험 직전, 마승철과 마기헌이 보여 준 그 살기등등한 눈빛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났다.

“두 녀석이면 마현을 이길 수 있나?”

그렇게 생각을 한 순간.

꿀꺽.

주르르륵!

식은땀이 비 오듯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길한 미래만이 떠올랐으니까!

막아야 한다.

아니.

“살려야 한다!”

적어도 암익파의 두 녀석이 무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만이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

마광익에게 최소한 자비를 부탁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일 테니까!

그렇게 개처럼 뛰어 가까스로 마승철과 마기헌을 따라잡았다.

하지만.

양승규의 눈동자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시, 시발.”

지이이잉―!

“그, 그아악! 마기헌!”

흑표범이 바싹 구워지고 있었으니까!

양승규는 순간 휘청거렸다.

최후의 보루라 여겼던 암익파의 생환에서 마승철이 죽어 버렸다.

자비를 구하려던 계획이 불투명해졌다.

‘크윽, 정신이 나갈 것 같아.’

생각이라는 게 불가능한 상황.

눈앞이 캄캄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양승규는 정신을 차려야 했다.

파칭―

보호막이 깨지며 울리는 청아한 소리.

그 끝에 마기헌이 실금한 채 주저앉았고.

그 위로 마현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으니까!

이대로 모든 게 끝나는 건가?

마기헌은 죽고, 자신도 그 뒤를 따라서 죽는 건가?

숨통을 조이는 듯한 이 순간.

양승규의 뇌리가 번뜩인 것은 그때였다.

‘잠깐, 어쩌면 이 상황…….’

사신관 시험이 시작될 때와는 역전된 듯한 마현과 마기헌의 관계 속에서 양승규는 실마리를 잡았다.

‘마광익에게 자비를 구할 기회가 아닌가?’

……맞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마광익도 마현이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을 거 아니야.

지금 상황도 따지고 보면, 마광익이 마현을 과소평가해서 이렇게 된 거니까.

즉, 이 상황은 처음부터 견적이 잘못 짜여 발생한 사고다.

사신관에서 지켜보는 마광익도 지금쯤 그 이유를 알아차렸을 터다.

그로 인해 오히려 마기헌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도 함께.

양승규의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알고 보니 암익파는 마기헌이 살아 돌아오기만 해도 감지덕지인 상황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내가 끼어드는 거군.’

이렇게 되면 그동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든 상관없다.

내가 마기헌을 지켜내면.

그 순간부터 나는 암익파의 영웅이 되는 거니까!

하물며 자신은 교관이다.

사신관 시험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교관과 수험자 사이의 서열이 전부!

즉, 권력을 행사하면…….

‘마현은 나의 말을 따라야 하지!’

그리고 자신은 마광익에게 자비를 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처억―

치켜 올라가는 마현의 검!

바들바들 떠는 마기헌!

그리고 나.

영웅 양승규.

‘훗, 내가 지켜 주마 마기헌!’

이것이 양승규가 마현에 맞서기까지의 여정이었다.

그렇게 지금.

서걱―

‘시이바알!’

왼팔이 날아갔다.

카가강― 카강!

마현의 검이 거침없이 밀고 들어온다.

“양승규. 사신관 시험을 망치려는 죄는 가볍지 않을 거다!”

“크으윽! 이 빌어먹을 새끼가!”

양승규는 도저히 평정을 되찾을 수 없었다.

저 쓰레기가 자신의 말을 무시할 줄은 몰랐지만,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당연히 마현의 공격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놈의 첫수를 제대로 막아 내지 못하다니!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마현의 실력이.

카앙!

순간 자신을 넘어섰다는 거니까!

‘제기랄! 무슨 힘이……!’

힘만이 아니다.

놈을 상대하고 있으면 마치 어디서 구르다온 검객과 싸우는 것 같았다.

카가가각!

교차하는 두 검이 파르르 떨려왔다.

순간 팽팽하게 겨루는 듯했던 그 균형은 양승규 쪽으로 빠르게 무너졌다.

“크읏!”

땅을 박차며 거리를 벌리는 양승규.

예상했다는 듯이 동시다발적으로 몸을 던지며 검을 베어오는 마현.

카가강!

허공에서 연달아 맞부딪히는 칼날에 불꽃이 번쩍였다.

“양승규. 선임 교관은 운으로 딴 게 아닌가 보군.”

빠드득.

양승규는 이를 악물었다.

마현이 쉴 새 없이 급소를 노려왔다.

제 복수를 방해한 것에 대한 앙갚음인지, 정말 시험에 끼어든 것에 대한 처벌인지 몰라도.

놈은 어떻게든 끝을 보려는 움직임이었다.

‘크윽, 이렇게 될 일이 아니었는데!’

사실, 후예 간의 다툼에 간섭해선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명색이 선임 교관인데 그런 것도 모를까.

다만, 이후의 일은 그때 가서 감당할 셈이었다.

애초에 이 시험을 마지막으로 그만둘 생각이었으니까.

‘왜, 저놈과 엮이면 상황이 다 개판이 되는 거지?!’

어찌 됐든 팔이 멀쩡했더라도 쉽게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다.

하물며 팔이 없는 지금에서는 계속해서 놈의 힘에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마력으로 왼팔의 출혈을 막자니 스킬도 제대로 펼칠 수 없다.

즉, 이대로 가면…….

죽는다!

“마, 마현! 진정해라!”

우선, 흥분한 것 같은 마현을 진정시켜야 했다.

“싫다.”

“내가 실수했다. 시험을 망치려 했다니 고의가 아니다. 잘 몰랐어!”

“모르면…… 죄가 아니다?”

마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심상찮은 눈빛으로 보아 상황이 더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 그게 아니다. 그리고 애초에 네놈이 그렇게 열 낼 정도는 아니잖아!”

양승규는 애초에 이게 의문이었다.

‘이렇게까지 화를 낼 정도의 일인가?’

표면상으로 자신은 그저 마기헌을 구했을 뿐이다.

그런 자신을 죽이려드는 마현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보군.”

“그, 그렇잖아. 누구나 실수할 수도 있다고!”

또한 그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해도 마현에게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애초에 그것까지 자신의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마현의 말은 정말 뜻밖이었다.

“마군악이 그러더군. 네놈이 나를 죽이라고 시켰다고.”

“!”

순간 양승규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마군악 이 새끼가 다 불었다고?

그럼 마현은 자신이 죽이려던 것을 이미 알고 있던 거였어?

양승규가 바짝 얼어붙었다.

피식.

“구라다. 하지만 진실이었군.”

“뭐……? 아, 아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랬을 뿐. 나는 그런 적 없어!”

“크크, 양승규.”

스릉―

마현의 검이 은은하게 빛났다.

“혀가 길어.”

마현은 암익파가 양승규를 매수했음을 예상했다.

시험 때마다 유난히 자신에게 몰려드는 마물과 마인이 그 심증이 되었고.

암익파를 위해 이 자리에까지 나타난 건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어주었다.

더이상 따져볼 필요가 있을까?

‘없지.’

이 이상 따져본다는 건.

그저 양승규를 죽이지 않을 셈이나 마찬가지니까.

물론, 자신이 양승규를 죽이고픈 이유는 또 있었다.

‘최소 마군악.’

양승규라면 그 정도의 영혼을 지니고 있을 테니까!

하물며 모든 명분이 다 준비된 지금이라면.

아주 놓치기 아까운 영혼인 것이다!

씨익.

그러니. 양승규.

“남자답게 싸우다 죽어라.”

“크윽.”

양승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자신이 마현을 죽이려던 것을 알아차리다니.

이대로면 살아서 시험이 끝나도, 자신은 조사를 받게 될 터.

그렇게 되면 결국 앞날은 불투명해진다.

아니. 불투명한 수준이 아니야.

이건…….

‘죽을지도 모른다.’

암익파는 당연히 꼬리를 자를 터였고.

혈족 살인 미수죄가 되면 최소 불구가 될 것이다.

하물며 저렇게 많은 성좌의 관심을 받는 마현이니.

답은 멍청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백했다.

자신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

양승규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왼팔의 출혈이 심해져 시야도 흐릿해졌다.

그저 성공하고 싶었을 뿐인데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지난날 내가 해 온 노력은 다 어떻게 된 거냐.

허무함이 사무치는 때였다.

“양승규. 나와 싸운다면.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주겠다.”

마치 좋은 선택이라는 듯 꼬득이는 마현의 모습.

빠드득.

이에 양승규의 속이 뒤집혔고 억울함이 끓어올랐다.

“그래…… 그랬군.”

마현.

그래, 이 개같은 새끼 때문이었어.

이 새끼 때문에 모든 게 다 망가진 거였어!

양승규의 몸에서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이 시험만 제대로 끝났어도 나는 편하게 살 수 있었는데……!

성공까지 고작 한 걸음 남았었는데!

마현이 나대기 시작하면서 모든 계획이 박살 났다!

“네놈이 망쳤다. 마현. 네놈이. 내 인생을 망친 거다!”

죽어야 한다면 그건 내가 아니었다.

하찮은 창녀의 자식 주제에 마가 혈족인 양 주제넘는 놈.

나아가 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박살 내는 마현이다!

하지만 세상이 불합리해서 내가 죽게 되다니.

“정했다.”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네놈을 길동무로 데려가 주마!”

37화. 그저 네놈이 못났을 뿐이지

양승규의 모든 마력이 목걸이로 향했다.

마력을 흡수한 목걸이의 보석이 노랗게 빛나며 두둥실 떠올랐다.

다음 순간.

피잉!

강력한 파장과 함께 보석에서 빛이 쏘아졌다.

그것이 향한 것은 마현이 아닌 하늘.

목걸이에서 비롯된 금빛 줄기가 어두운 밤하늘을 꿰뚫듯 날아간 것이다.

쿠르릉─

성난 하늘이 매섭게 울부짖기 시작한다.

일대의 공기를 뒤바꾸는 그 장엄한 광경에 마현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이건…….”

지금 이 현상은 마현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양승규의 목걸이는 평범한 장식이 아닌 아티팩트.

그것은 강력한 힘이나 스킬을 담고 있다.

“……뇌격우(牢擊雨).”

“크큭, 마현, 제법 명석하구나!”

비릿한 미소를 짓는 양승규는 어느새 전격의 보호막에 둘러싸여 있었다.

마현의 말마따나, 이 목걸이는 뇌격우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아티팩트다.

뇌격우는 아티팩트 없이 직접 펼치기 위해서는 최소 50레벨이 요구될 정도로 강력한 마법.

폭우처럼 뇌전을 쏟아부어 일대를 쓸어 버린다.

양승규의 미소가 짙어졌다.

“마현, 각오는 되었겠지!”

내 인생을 망가뜨린 죄는.

죽음뿐이다!

쿠르르릉―!

구름이 금빛의 전격을 잔뜩 머금었고.

불온한 바람이 일대에 휘몰아쳤다.

마현도 이번 순간만큼은 신중하게 생각했다.

걱정할 건 없어.

‘한 차례만 버티면 되니까.’

아티팩트의 스킬은 재사용까지 시간이 걸린다.

한 차례만 버틸 수 있으면 다음 차례는 자신의 것이다.

그렇다면 양승규를 처단할 수 있는 틈이 생긴다.

아티팩트에 담기는 마법은 그 위력이 줄어들지.

물론, 맨몸으로 버티기엔 그 수준이 높다.

그러니.

마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엔.

“으으…….”

타닥타닥.

기절한 채 신음하는 마기헌과 꺼지지 않는 불꽃에 타들어 가는 흑표범이 있었다.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군.’

힘을 합칠 수밖에!

저 둘을 방패 삼아 뇌격우를 버텨 낸다.

썩어도 준치다.

암익파라는 거대한 온실 아래에서 자란 둘이라면 기본적으로 내구성이 뛰어날 터.

즉, 제아무리 강력한 마법이라 해도.

저 두 놈과 자신의 능력치라면 충분할 것이다!

씨익.

‘버틸 만하겠어!’

할 만하다고 생각한 그때였다.

“마현! 무슨 쓰레기 같은 생각을 하는 건지 몰라도!”

양승규가 음흉한 얼굴의 마현에 일갈했다.

“이제 네놈은 끝이다!”

쿠르르릉!

진노한 하늘이 천둥을 터트리자, 깨진 유리창처럼 부서져 내리기 시작하는 하늘.

수백의 푸른 우레가 거미줄처럼 퍼져나가며 대지를 향해 질주한다.

그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우레들에 일순간 어둠 숲이 하얗게 밝아졌다.

뇌격우.

하늘의 분노가 대지를 향해 펼쳐진다.

마현은 서둘러 생각해 둔 수를 펼치려 했다.

하지만.

“!”

마현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양승규도 마찬가지였다.

사아아―

휘몰아치던 공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대지로 낙하하는 뇌격우의 속도가 급감했다.

마치 일대의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뭐……지?”

당황한 양승규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고.

‘이건…….’

마현은 뒤쪽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저벅저벅.

누군가 다가온다.

그가 내뿜는 힘에 일대의 흐름이 그를 중심으로 변화했다.

모든 것이 그의 통제하에 진행되어야 하는 듯이 무척이나 강압적인 기운이었다.

고개조차 돌리기 어렵지만, 마현은 다가오는 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성좌가 지켜보는 이 시험에 간섭할 자격이 있는 존재이자.

쏟아지는 뇌격우를 저지할 정도로 강력한 자는 사신관에 단 한 명뿐.

그 존재가 마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양승규.”

사신관주.

양승규는 솜털이 곤두섰다.

“뭐 하는 거냐.”

“사, 사신관주!”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벼린 듯이 차갑고 날카롭게 던져졌다.

사신관주의 눈빛이 차갑게 타올랐다.

사신관의 일원이자 교관이라는 녀석이 마가의 신세대를 이끌 후예에게 해선 안 될 짓을 하고 있었으니.

그는 몹시 진노하고 있었다.

“크윽!”

피부가 뒤틀리는 듯한 압력.

양승규는 살면서 이런 사신관주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늘 어딘가 괴짜 같았기에 조금은 별 볼 일 없을 줄 알았다.

오히려 남몰래 뒷줄을 대어 관주가 되었을 거란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힘은 과연 의심할 여지 없이 관주급의 무력이었다.

“양승규, 아티팩트를 중지해라.”

“…….”

“명령이다. 양승규.”

빠득.

‘칫, 사신관주가 끼어들다니…….’

양승규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뇌격우는 거두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신관주의 억제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쿠르릉!

저지되던 우레들이 밀려오는 뇌기에 힘입어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어차피 자신은 건너선 안 될 강을 건넌 몸.

그것도 곧 가라앉을 배에 타 있다.

멈추는 것이야말로 무의미한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니.

“사신관주. 네 탓도 있다.”

“양승규.”

“아니, 마현보다 네놈이 더 악질이다! 이 개자식아! 네놈이 내 인생을 망쳤어!”

“어째서지?”

교관으로서 거의 십 년을 일했다.

목표했던 사신관 부관주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몇 년째 사신관주의 뒤치다꺼리를 해왔다.

하지만 언제고 사신관주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놈이 절대 자신에게 부관주 자리를 줄 생각이 없다는 걸!

“진즉에 부관주로 끌어올려 줬으면 좋았잖아! 그렇게 내가 치고 올라오는 게 무서웠냐!”

콰르릉!

뇌기가 가득 실린 번개가 사신관주의 억제력을 뚫고 쏟아지기 시작했다.

수백의 뇌기가 푸른 뇌광을 머금은 채 질주한다.

“그래서 죽는 거다! 마현도, 나도! 그리고 네놈도!”

네놈의 멍청하고 속 좁은 판단에 모두 다 죽는 거다! 사신관주!

양승규의 분노가 실린 뇌격우가 마침내 대지를 할퀴었다.

콰과과광!

부서지고 불타는 나무들의 잔재가 폭발하듯이 터져 나간다.

뇌격에 직격당하자 폭격에 맞은 것처럼 박살 나는 것이다.

초토화되는 일대.

하지만.

‘사신관주.’

마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신관주가 손가락을 치켜세워 만들어 낸 마력의 방패.

그것이 우산이 되어 떨어지는 뇌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작렬하는 뇌격우 속에서 이곳만큼은 너무도 안전했다.

이것이 관주급의 힘.

전생에 탑의 정상까지 올랐기에 당연히 그 이상의 힘을 봐 왔지만.

지금 자신의 수준에서 사신관주의 저력을 보니 새삼 마음이 들끓었다.

전생에는 지금처럼 후열에서 보호받는 입장이었지.

네크로맨서이기에 앞에서 직접 싸우는 일은 없었다.

하물며 강력한 공격을 직접 막아 내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그렇기에 생각한 적도 없었다.

‘강한 힘으로 남을 지켜 낸 다라.’

누군가를 위해 힘을 사용하는 사신관주의 모습에.

씨익.

마현은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좀 멋있잖아!’

내가 이렇게 느낀다는 건.

남도 그렇게 느낄 수 있다는 것.

강한 힘이 있으면 이처럼 쉽게 마음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을 다시 사니 느껴지는 게 다르군.’

힘으로 남을 미소 짓게 할 수 있다니.

왠지 사신관주처럼 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검귀의 힘이 있으니, 앞으로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남은 건 성장뿐!

마현은 하루빨리 사신관주만큼 강해지고 싶어졌다.

아니.

그 이상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지키고 싶은 게 있을 때.

‘무력하게 있고 싶지 않으니까!’

마현의 눈빛이 차갑게 끓어올랐다.

콰르릉!

사신관주는 뇌격우를 막아 내며 한 걸음 나아갔다.

아무렇지 않게 버텨 내는 그 저력에 양승규의 안색이 새파랗게 물들었다.

“양승규. 내가 너를 부관주로 올리지 않은 이유는 고작, 너를 견제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 그러면 뭔데!”

“지극히 당연한 논리다. 너는 그걸 모르는가?”

사신관주가 손날을 휘둘렀다.

그 순간.

강력한 기운이 하늘로 뻗어 나갔고.

쏟아지는 뇌격우가

촤악―

홍해처럼 갈라졌다.

압도적인 마력의 방출로 하늘에 펼쳐진 뇌운을 찢어발긴 것.

더 이상 사신관주를 막아 세울 것은 남지 않았다.

“양승규. 정말 안타깝게도 말이지.”

“어, 어억!”

“부관주는 개나 소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저벅저벅.

사신관주는 양승규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네 인생이 별 볼 일 없는 것은 나의 탓도 마현의 탓도 누구의 탓도 아니다.”

성공하지 못한 것도.

지금 이 상황에 부닥친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네놈이 못났을 뿐이지.”

“어, 어…….”

양승규는 다가오는 사신관주를 보면서도 그 어떠한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감히 말 한마디를 꺼낼 수 없을 정도로 숨이 가빠왔다.

양승규는 사신관주에 압도되었다.

“하물며, 귀중한 인재를 해치려는 그 모습은.”

남은 건 아티팩트의 힘으로 펼쳐진 전격의 보호막.

그것만이 양승규를 지켜 줄 유일한 마법이었다.

“추악하군.”

휘둘러진 손날로부터 뻗어 나간 강기의 줄기에 전격의 보호막이 허무하게 찢어졌고.

서걱―

양승규의 오른팔이 떨어져 나갔다.

“으, 으아악!”

“양승규. 아티팩트를 중지하지 그랬나.”

그랬다면.

“오래 봐온 정을 베풀어 줄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기회를 놓친 양승규에게 사신관주의 눈빛은 차갑고 무정했다.

“네놈에게 필요한 목걸이는 그 아티팩트가 아니었구나.”

철컥―

아티팩트를 거두어 간 사신관주는 양승규의 목에 다른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이, 이건……!”

억제기.

마인들의 목에 채인 것과 같은 것이었다.

“앞으로 너는 마인으로서 살아라.”

팔이 없는 채로 얼마나 살 수 있을지는 모른다.

물론, 그전에 다른 마인들에게 어떤 수모를 당할지도 알 수 없었다.

뭐가 됐든.

그의 발악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끝났다.

“으, 으아아악!! 사신관주 이 개……! 컥!”

양승규는 울부짖을 수도 없었다.

마인이 된 그에게 그 정도의 자유도 허락이 필요했고.

사신관주는 허락하지 않았다.

곧바로 사신관주의 손길에 기절하고 말았다.

이로써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다.

“후…….”

사신관주는 양승규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녀석일 줄이야.’

십 년을 알아 온 부하의 진면모를 본 소감은 충격이었다.

조금은 비열한 낌새가 없잖아 있긴 했지만.

눈치 빠르고 감이 좋은 녀석의 특징이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그저 썩어빠진 속을 잘 감추고 있었을 뿐인 놈이었다니.

‘쯧. 나도 아직 멀었군.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 없어서야.’

고개를 젓던 사신관주는 일대를 살펴보았다.

그 시선은 완전히 구워진 흑표범을 지나.

“으으…….”

기절한 채 신음하고 있는 마기헌에 이르렀다.

다행히 자신이 막아 낸 덕에 뇌격우로부터 피해는 없었다.

안타까운 아이들이다.

재능이 있었으나 어깨에 걸린 그 기대가 무거워 무너지고 말았으니까.

물론, 사신관 시험이 모든 것을 결정짓지는 않는다.

마기헌도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재기할 수 있겠지.

사신관주의 시선이 마기헌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그 아이가 남았다.

마현.

‘살펴보는 것조차 겁이 날 정도군.’

사신관주는 차마 마현의 몸 상태를 확인하기가 두려웠다.

양승규를 쫓아오는 길에 보았다.

시산혈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마인들이 죽어있었지.

그곳에 마군악 역시 있었다.

거기에 마기헌과 마승철과 싸웠을 테고. 양승규까지 맞섰으니.

‘살아 있는 것도 기적이지만, 어디 한 군데 불구가 되어 있어도 이상할 리가 없다.’

미래를 이끌 인재가 불구가 되다니.

절대 있어선 안 되는 일.

사신관주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부디…… 괜찮아 다오!’

그렇게 사신관주의 시선이 마침내 마현에 이르렀고.

마현은…….

‘건강해?’

너무 건강했다.

오히려 힘이 넘쳐 보였다!

“어디, 아픈 곳은 없느냐? 불구가 되었다던가.”

“없습니다.”

“숨기지 않아도 된다.”

“사신관주님…….”

마현이 세상 밝게 웃으며 말했다.

“사내가 고작 이 정도로 엄살 피울 순 없잖습니까.”

허……!

이 녀석…….

사신관주는 순간 심장이 크게 흔들리는 듯했다.

‘어떻게 이런 후예가 태어날 수 있었던 거지?’

거기에 믿기지 않지만, 마현의 말은 사실인 모양이다.

원래라면 구태여 마현의 몸을 살펴볼 생각이었지만.

마현의 눈빛이 총명했다.

마치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생기 넘치는 것이다!

사신관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쩌면 마현은 마하윤 이상일지도 모르겠군.’

특히, 종잡을 수 없는 그 면이 말이다.

그렇게.

[현 시간부로 시험을 종료합니다.]

[현 시간부로 시험을 종료합니다.]

[현 시간부로 시험을 종료합니다.]

어둠 숲에 시험 종료 알림이 울렸다.

마지막 시험이 끝났다.

38화. 별자리 연회

쿠구궁―

사신관의 세 번째 대문이 열리자, 사신관주를 필두로 수험자들이 복귀한다.

대열을 맞춰 돌아오는 후예들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연속해서 치른 시험으로 하나같이 피와 상처로 가득했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후예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후…… 이 빌어먹을 시험도 이제 끝인가.”

“돌이켜 보니 별거 없잖아.”

“크큭, 울고불고 난리 피던 녀석이.”

“훗,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고.”

후예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사신관에 막 입장했을 때와는 180도 다른 태도.

어리숙하고 여렸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껍데기를 깨고 나온 듯이, 지금에서는 한 명의 어엿한 후예가 된 것이다.

그런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씨익.

“클클클, 애송이! 웃고 자빠졌군. 이제부터 시작이거늘.”

“냅두시게. 지금은 즐겨야 하지 않겠나. 껄껄껄”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구나, 하하.”

가문의 원로들!

박수를 치는 그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맺혔다.

이제 막 출발선을 지났을 뿐인데.

마치 결승선을 지난 것처럼 기뻐하는 후예들의 모습이 웃긴 것이다.

“훗, 멍청한 놈.”

그들도 과거 사신관 시험을 치렀던 만큼 후예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시험이 얼마나 위험하고 고통스러운지, 그 끝에 어떤 변화를 맞이하는지도 말이다.

이처럼 후예들의 모습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 알고 있었으나.

“살아 줘서 고맙군.”

그들은 웃거나 글썽이며 후예들을 축하했다.

그래도 자신들의 혈육이다.

제 후예의 생환에 누구보다도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고생 많았다. 아이야!”

“껄껄, 자랑스럽구나!”

“할아…… 원로님! 감사합니다!”

“클클클!”

훈훈하게 달아오르는 사신관의 열기.

그 속에서.

‘제, 제길…….’

유독 마기헌만은 어울리지 못했다.

‘어, 어쩌면 좋지?!’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마치, 머리 위에 커다란 돌덩이가 얹힌 것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떨리기까지 했다.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기절 직전의 순간이 도저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으니까!

― 그, 그아악, 마기헌!

― 정확히는 네놈이 망가뜨린 거지만!

파칭!

― 지긋지긋한 악연이었다.

‘아아아―!’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고 있는 기분!

하지만 마기헌이 고개를 들 수 없던 것은 그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마광익.

자신의 모든 활약을 지켜보며 기대하고 계셨을 할아버지가 이 자리에 있으니까.

꿀꺽.

‘시, 실망하셨겠지?’

당연하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상상 속으로는 도저히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할아버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평생 자신에겐 인자하셨던 분이었으니까.

그러니 보고 싶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지을 표정을.

그 모습을 보면 왠지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암익파의 후예로서 고개 숙일 수는 없는 법.

마기헌은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하, 할아버지라면 괜찮을 거야.’

그, 그래! 분명 괜찮다고 말씀해 주실 거야.

늘 내게 재능이 넘친다고, 장차 암익파의 기둥이 될 게 분명하다며.

오히려 의심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으니까.

그러니 분명…….

‘괜찮다고 해 주실 거야!’

애써 떨리는 가슴을 부둥켜안은 채.

마기헌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단상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하, 할아버지?!’

동태 눈깔의 마광익이 있었다.

마광익은 도저히 마기헌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광익, 왜 대답이 없지?”

마휼이 비웃고 있었으니까!

“어째서 암익파의 수준이 너처럼 쓰레기 같은 거냐.”

“…….”

“설명하란 말이 안 들리나?”

마광익은 어떻게든 무시하려 했으나.

“멍청한 놈……. 쓰레기 같은…… 하긴, 네깟 놈이 무슨…….”

암기처럼 흩뿌려지는 마휼의 입놀림이 도저히 멈출 줄을 몰랐다!

빠드득!

마광익의 얼굴이 점점 새빨갛게 달아오르다 못해 거멓게 변했고.

한계에 이른 분노로 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를 악문 채 이 상황이 지나기를 버티려 했는데.

그러나.

“쯧, 귀가 있어도 듣지를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을 못 하니.”

마광익도 사람이었다.

“그냥, 죽는 편이 낫겠군.”

“갈! 닥쳐라!”

콰앙!

내지른 주먹에 폭발하는 모니터.

불꽃과 연기로 뒤덮인 마광익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모습으로 치를 떨었다.

“고작 실패작 따위를 이겼다고 생색내는 꼴이 역겹구나! 마휼!”

의자를 박차며 일어난 마광익이 냅다 사신관 밖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흉흉한 기운이 소용돌이치는 그 뒷모습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마침내 사신관 문에 다다랐을 때, 마광익이 짓씹듯 말을 뱉었다.

“흥! 처음부터 저딴 녀석에 기대한 적 없었거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불거리는 꼴이 꽤 우습구나!

아득바득 이를 가는 마광익의 안광이 살기 등등했다.

그 부들부들 떠는 모습에 마휼이 피식 웃었다.

“클클, 그 실패작이 네놈보단 낫다만.”

분명 그 말이 마광익의 귀에 닿았을 터였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콰앙―!

사신관 입구가 부서질 듯이 닫힐 뿐이었다.

“…….”

마휼과 마광익의 거침없는 신경전에 훈훈했던 사신관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감히 가문의 두 정점 사이의 일에 왈가왈부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풀썩.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마기헌은 있었다.

“하, 하하…….”

실패작이라니…….

저딴 녀석이라니…….

기대한 적 없다니……!

주르륵―

“으흑, 끄흐흑…….”

마기헌의 두 볼을 타고 닭똥 같은 눈물이 흘렀다.

끝났다.

마치, 눈앞에 떨어진 모니터의 잔해처럼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박살 난 것 같았다.

“끅, 끄윽…….”

심장이 뜯겨 나간 것 같은 기분.

익사할 것 같은 느낌에 마기헌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누군가 그런 마기헌을 부른 것은 그때였다.

“마기헌…….”

어딘가 무척이나 다정한 말투.

왠지 밤바다의 유일한 등불 같은 그 온정 가득한 부름에.

마기헌은 자신을 부른 이를 향해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울지 마라.”

“너…….”

마기헌의 두 눈이 거칠게 떨렸다.

다정한 목소리의 주인이 다름 아닌…….

씨익.

“분위기 조지지 말라고.”

마현이었으니까!

“네, 네놈……! 크악!”

삐─

뒷목을 부여잡는 마기헌의 귓가에 날카로운 이명이 터짐과 동시에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정신 줄이 끊어지고 만 것이다!

‘훗, 방심했군. 마기헌.’

겉보기엔 무척이나 불쌍한 마기헌이지만.

마현은 그런 녀석에 일말의 동정심도 일지 않았다.

왜냐하면.

‘상대가 약해졌을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하물며 그 대상이 마기헌이다?

크크, 아주 짓밟아 달라는 것이나 다름없지!

쓰레기에 동정을 품는 것만큼 멍청한 것도 없는 법.

그리고 자신은 그런 멍청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얄팍한 동정심 따위로 더이상 그 개같은 미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마기헌 기대해라, 운 좋게 살아남은 김에 더 오래 잘근잘근 씹어 줄게.’

마현의 흉흉한 기세에 마기헌의 몸이 더욱 거칠게 떨렸다.

‘그나저나.’

사실 마기헌은 아무래도 좋았다.

오히려 쓰레기 따위에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보단 신경 쓰이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누구랄 것도 없지.

그는 바로 마휼.

할아버지니까.

‘과연, 어떻게 보셨으려나?’

마지막 시험에서의 활약.

자신의 활약이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보였을지 궁금했다.

나의 바람은 할아버지가 기뻐해 주는 것이니까.

물론, 좋아하리라 의심치 않았다.

다만.

‘아주 미치도록 좋아하면 좋겠군.’

살면서 마휼의 저 못난 얼굴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오해를 해 왔던가.

속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마주치기만 해도 사람을 해칠 것만 같은 마휼의 그 표정은.

지난 삶 자신이 마휼과 가까워지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게 한 원흉이었다.

물론, 사람의 얼굴이 저리된 데에는 인생이 그러했기 때문이지.

삶이 온통 피와 죽음으로 가득하고.

웃음과 행복이 거리가 멀었기에 일어난 일.

그러니 가능하면, 나의 활약으로 저 빌어먹게 살벌한 얼굴이 흐물흐물해질 정도로 좋아해 주길 바랐다.

스윽―

마현의 고개가 가장 높은 단상의 중앙에 있을 마휼을 향했다.

그렇게 마휼과 눈이 마주쳤을 때.

마현은 볼 수 있었다.

살풍경한 마휼의 얼굴 위로.

“클클클!”

‘고얀 놈!’

웃음꽃이 만개하고 있단 걸!

이에.

씨익―

마현의 입꼬리도 절로 올라갔다.

사신관에 막 입장했을 때와는 천지 차이!

마휼의 표정이 상상 이상으로 달라졌으니까!

여전히 살풍경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웃음꽃이지만.

‘역시 웃으니까 제법 볼 만하잖아.’

저 나이에 맞지 않게 짓궂은 미소를 보니 확실히 알 수 있다.

이번 생의 마휼은 확실하게 달라질 것이란 걸.

그것도 자신으로 인해서 말이다!

헌데. 이 순간 마현은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뭐냐 이 느낌은…….’

이상하다.

왠지 심장이 저릿저릿했다.

솔직히 별것 아닌 행동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반쯤은 저 지긋지긋한 얼굴 좀 뜯어고치고 싶었을 뿐이었고.

은혜를 갚는다는 건, 그저 일종의 도리일 뿐이라 여기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두근.

나로 인해 누군가 행복해하고, 웃음을 되찾는다라…….

이거 완전…….

‘최고잖아!’

미치도록 뿌듯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충만감에 온몸이 벅차오르는 기분이다!

복수의 짜릿함과 성장의 희열과는 다르게 고양되었다.

‘괜히 은혜를 갚는 게 아니었단 말인가!’

그저 갚았을 뿐인데, 왠지 내가 더 기분이 좋은 이유가 뭐지?!

물론, 마현은 답을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에게 있어 소중한 존재.

소중한 이가 행복하면 자신도 그렇게 되는 것이니까.

‘이 또한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거였어!’

세상 두 번 사니, 제대로 알아가는 게 많아지는군!

복수와 성장과 마찬가지다.

한 번이라도 이 미친 충만감을 맛보면 더 이상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아.’

그러기 위해선 역시 해야 할 것은 정해져 있다.

강해지는 것!

그리고.

사신관 시험이 모두 끝난 지금 남은 건, 성좌와의 계약뿐이다.

곧 나는 또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스윽―

마현은 마휼에게 눈빛으로 말했다.

‘할아범, 지금도 충분히 기쁠 거야.’

표정에 대놓고 보일 정도니까.

하지만.

‘난 그 정도로 만족 못 하지.’

이제부터 시작이다.

성좌와 계약하고 나면 많은 것이 변할 테고.

그 끝에 가문과 세상 모두 달라질 것이다.

그 중엔 할아버지도 있다.

‘아주 웃는 상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하회탈처럼 말이지!

마현의 그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마휼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지금부터 성좌님의 선택을 받은 후예들은 모두 앞으로 나와라!”

사신관주가 마지막 일정을 진행했다.

마지막 시험이 종료되고 다음 식순으로 넘어가는 것.

그 식은 다름 아닌 ‘성좌 계약식’이었다.

사신관주의 말에 마가 일족과 가신 일족 몇몇이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 수는 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으나.

그럼에도 여타 한미한 가문이나 문파, 협회에 비하면 결코 적지 않다.

명가란 으레 ‘성운’이라 불리는 ‘성좌들의 집단’의 비호를 받기 때문이다.

특히, 암천마가는 흑마법과 궁합이 잘 맞는 성좌들의 집단인 ‘암흑성운’의 성좌들의 비호를 받았고.

마가 혈통을 지닌 일족들은 그 수혜를 톡톡히 누릴 수 있었다.

참고로 숭달여 역시 암흑성운 소속이다.

앞으로 나서는 후예들이 하나둘 자신의 하늘을 다른 이들도 볼 수 있게 공개했다.

[관심을 보이는 성좌 수: 1]

[관심을 보이는 성좌 수: 1]

[관심을 보이는 성좌 수: 1]

선택을 받았다는 증거인 성좌의 별이 모습을 드러내자, 일대가 환하게 빛났다.

그 찬란한 빛에 일부는 선망 어린 눈빛을 띠었고.

간혹 두 성좌의 선택을 받은 후예가 등장할 때면 주변에서 감탄이 일기도 했다.

[관심을 보이는 성좌 수: 3]

이는 마기헌이 나설 때도 마찬가지.

“오, 별이 세 개다!”

“오오…….”

“대단, 한 거지…….?”

하지만 수험자들의 반응은 어딘가 미적지근했다.

이제 와서 마기헌이 최고가 아님을 모르는 이는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지금 그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야, 야! 저기 좀 봐!”

저벅저벅.

한 후예의 외침에 일대의 시선이 수험자 사이를 뚫고 나오는 이로 향했다.

“아아…….”

“꿀꺽.”

“저분은…….”

“……마현 님이시다.”

마현!

성좌의 수를 공개하기도 전이었으나.

가신 일족들의 눈은 벌써부터 기대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미 그가 이번 기수를 넘어, 사신관 역사상 최고의 기록에 도전하는 걸 모르는 이가 없었으니까!

“과연, 몇 분의 선택을 받았을까?”

모두가 그 의문에 동감했다.

역대 최고라 일컬어지던 마하윤은 가까스로 천을 넘겼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마현은 얼마나 될 것인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마현, 별을 공개하라.”

어딘가 호기심 가득한 사신관주의 말.

이에 마현이 답했다.

“조금…… 아니.”

자신 있게 미소 지으면서.

“매우 눈부실 겁니다.”

그 오만한 말은 절로, 원로들이 ‘많아 봤자 얼마나 많겠어’라고 생각하게 했다.

그러나 마현이 모두에게 자신의 하늘을 드러냈을 때.

원로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파아앗!

“무, 무슨……!”

“허, 허어어!”

“이곳은 우주인가?”

“누, 눈이 부시구나!”

눈부시게 찬란한 별들이 사신관을 빼곡히 수놓았다.

마치 사신관 전체가 광활한 우주로 변모한 듯했다.

누구도 이처럼 많은 성좌의 관심을 받은 적이 없었다.

마휼도 마하윤도.

하지만.

[관심을 보이는 성좌 수: 2,173]

마현이 해냈다.

“허허, 미친…….”

사신관주는 입이 벌어졌다.

이천이 넘는 성좌의 관심을 독차지하다니.

바보가 아니라도 알 수 있다.

지금 일어난 일은 마가 역사상 두 번은 없을 초유의 사태라는 걸.

원로들이 경악할 때.

수험자들은 자연스럽게 마현을 우상으로 삼았다.

“아아, 마현 님!”

“여기 봐 주세요!”

“으하하! 내가 마현 님과 같은 기수라니!”

평소 마현과 알고 지낸 적 없더라도 지금만큼은 상관없었다.

마현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듣고 자라 왔더라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그저 마현과 같은 기수라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것이 무의미해졌다.

역사의 한편에 기록될 순간이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마현에 가까워지고 싶을 뿐이다!

그런 후예들에 마현이 작게 손을 흔들자.

“내게 인사를 건넸어!”

“아니야, 나야!”

“아아, 마현 님!”

사신관이 더 뜨겁게 달궈졌다.

‘무, 뭐냐…….’

난생처음 겪는 열렬한 환대에 마현은 일순 당황했다.

한평생 핍박과 멸시를 당해 왔던 전생에서는 겪어 볼 일 없었으니까.

‘이, 이렇게나……?’

자신 있게 공개한 것과 이런 반응을 감당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

“마현! 마현! 마현!”

“오늘부로 마현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

“저를 거둬 주세요! 마현 님!”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어지는 분위기와 열기는 마현의 얼굴도 조금 붉게 만들었다.

‘크흠, 괜히 사람이 쑥스러워지네.’

어딘가 오그라드는 이 느낌은 도통 적응될 기미가 없었다.

숨을 장소가 있다면 숨고 싶을 정도.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이상.

씨익―

어쩔 수 없군.

‘즐길 수밖에!’

방법은 즐기는 것뿐이다!

“와아아!”

마현이 가볍게 손을 흔들 때마다 일대의 열기가 치솟았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이름이 사신관에 울려 퍼졌다.

“마현! 마현! 마현!

크흠.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제법 기분이 좋긴 하다.

부끄러움만 참으면 말이지.

그렇게 얼마나 타올랐을까.

축제의 현장과도 같았던 사신관에 이변이 찾아온 것은 그때였다.

후우웅―

우주의 색채가 소용돌이치며 공간을 뒤틀었다.

바로 ‘게이트’라 불리는 이계의 관문이 사신관에 나타난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게이트가 어디로 연결되는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별자리 연회.

성좌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게이트였으니까.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은 사신관의 열기.

그 속에서 마현은 조용히 눈을 빛냈다.

‘드디어 각성할 수 있게 되었군.’

무엇을 각성할지는 이미 알고 있다.

죽은 자를 다스리는 힘.

네크로맨서니까.

전생에는 몇 년이나 늦게 각성했음에도 그 세인트 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힘이다.

한데, 그 힘을 이번에는 고작 한 달 만에 각성하게 되다니.

크크크, 이대로만 가면.

‘아무도 나를 못 말리겠군.’

마현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피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어서.

중요한 건 어떤 성좌와 계약하느냐다.

성좌와의 계약으로 많은 것이 달라진다.

성장 속도는 물론이고, 익힐 수 있는 스킬도 마찬가지다.

즉, 강력한 성좌와 계약할 때, 화신 역시 쉽게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내가 계약할 성좌는 이미 정해져 있지.

‘숭고한 달의 여인.’

그녀가 없었다면 네크로맨서로 각성할 거란 사실도 모른 채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녀 이전에는 어떤 성좌도 내게 관심을 보인 적 없었으니까.

또 나에게만큼은 헌신적이었던 그 모습은 어떠한가.

오만한 성좌가 화신을 망친다는 것은 오래된 정설이다.

전생의 내가 탑의 최정상에 오를 수 있던 것은 순전히 그녀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선택지는 숭달여뿐이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아닌 누구에게도 줄 수 없지.’

지난 삶을 함께해 온 숭달여와 나는 하나다.

이제 와서 떨어지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무수한 별들이 각양각색으로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기다려.

‘곧 만나러 갈 테니까’

마현의 눈빛이 결의에 찬 채 깊게 빛났다.”

“으으…….”

마기헌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것은 마현이 수험자들의 우상이 되었을 때였다.

그 시끄러운 열기와 천한 것들의 반짝이는 시선은 자신에게 향해야 했던 것들.

하지만 모조리 빼앗기고 나아가 할아버지와 친구를 잃게 만든 마현에 분노가 치밀었다.

‘이, 이대로는 안 된다!’

마승철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으니.

적어도 할아버지의 마음만큼은 되돌리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로서는 한 가지 방법뿐이었다.

성좌 계약.

사신관 시험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인 만큼.

강하고 훌륭한 성좌와 계약하면 분명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돌릴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관심을 보이는 성좌 수: 3]

자신에게는 초라한 별 세 개뿐이다.

크읏…… 마현만 아니었어도.

하다못해 마지막에 놈과 만나지만 않았어도.

더 강하고 뛰어난 성좌와 계약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미 늦은 일.

돌이킬 수 없다.

다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일단, 별자리 연회에 가면 마음이 바뀌는 성좌들이 존재할 거다.

흔치 않지만, 분명 그런 일들이 있었지.

별자리 연회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성좌들보다 뛰어난 성좌와 계약할 수 있었다던 기록이 있었으니까.

결국, 답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저 똥별들이 아니었다.

‘마현, 저 쓰레기와 이어지지 못한 성좌를 노린다.’

그것만이 답이다.

비록, 실패한다면 그 무엇도 얻지 못하게 될 테지만.

‘더 떨어질 곳도 없어.’

이미 자신은 지옥에 있다.

여기서 더 떨어진다고 뭐가 달라질까.

어차피 모든 게 끝났으니.

남은 건 목숨을 건 도박뿐.

마침내 결심한 마기헌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조금은 소름 끼칠 정도로 짙고 음습하게.

그때.

“크크, 아직 포기하지 않은 건가?”

그런 마기헌에 말을 걸어온 이가 있었다.

눈물점이 유독 눈에 띄는 그는 다름 아닌 마현이었다.

“이 새끼……!”

“대단한데? 여전히 눈빛이 살아 있다니. 확실히 근성이 있어.”

마현이 피식 웃었고.

“근데…….”

거침없는 보폭으로 다가왔다.

“크윽…….”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쳤지만, 놈은 결국 코앞까지 다가왔고 불쑥 손을 뻗었다.

마기헌은 순간 몸이 경직되었는데.

마현은 그저 자신의 어깨 위 먼지를 털어 낼 뿐이었다.

“마기헌.”

“뭐, 뭐냐……!”

“이제 그만 포기해.”

그 말과 동시에 마현의 눈매가 돌변했다.

마치, 자신이 천한 것을 볼 때 짓는 그것처럼.

“적당히 추해야지.”

“…….”

“끈질긴 건 멍청한 벌레들이나 하는 짓이잖아.”

마기헌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방금 마현이 자신에게 한 말은.

과거 자신이 놈에게 해 오던 말이었으니까.

“…….”

마현은 얼빠진 마기헌의 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마기헌의 어깨를 밀치며 게이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세상이 아득해져 가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멀어지고, 오직 마현의 뒷모습만이 선명했다.

자존심이 산산조각 나는 고통.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절망감.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근원인 마현에 대한 극도의 증오와 수치심이 뒤섞였다.

……까드드득!

폭발 직전의 화산처럼 그의 내면이 들끓었다.

마기헌의 턱이 경련하듯 떨려 왔다.

마현…… 마현…… 마혀언……!

마기헌의 눈이 충혈로 붉게 물들었다. 실핏줄이 터지며 핏빛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날카로운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떨리는 주먹에 핏줄기가 떨어졌다.

마현이 게이트 앞에 모인 일족들과 합류하기 직전.

마기헌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갑자기 폭발하듯 울부짖었다.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찬 목소리가 사신관을 뒤흔들었다.

“마혀어언! 반드시 너를! 너의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 테다!”

마현이 우뚝 멈춰 섰다.

마기헌을 바라보며 천천히 그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 말했다.

“너는 안 돼.”

약하잖아.

39화. 내가 갈아치울 거니까

별자리 연회로 향하는 게이트를 타기 전.

게이트 주변에 모여든 후예들은 하나같이 상기된 모습이었다.

목숨을 건 사신관 시험을 성공적으로 치른 것뿐만이 아니라.

성좌들의 선택까지 받아 낸 이들이었으니.

“흐아! 두근거림이 진정되질 않아!”

“이거 꿈 아니지?! 꿈 아닌 거지!”

“크으으! 이제부터 시작인 거야!”

지금이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고양된 것이다.

‘풋풋하군.’

다 큰 놈들이 말이야.

마현은 그런 후예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물론, 자신도 전생과 달라진 이 순간이 기쁘긴 하지만.

지금은 그저 한시 빨리 숭달여와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그때.

“음?”

마현은 획 고개를 돌렸다.

‘왠지 시선이 느껴진 것 같았는데.’

마현의 눈이 향한 곳은 선택받은 마가 일족들이 모인 곳.

개중엔 자신을 힐끗힐끗 보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자신이 느낀 시선은 그런 게 아니었다.

어딘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느낌이었는데…….

‘됐어.’

마현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방금까지 관심 좀 받았다고, 이제 와 그깟 눈길 따위를 의식하는 자신이 애송이 같았으니까.

후예들의 대화 주제가 바뀐 것은 그때였다.

“성좌님들은 어떤 분이실까?”

한 후예의 기대 어린 중얼거림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은 없었다.

인간과 사는 세상이 다른 그 지고한 존재에 대해 수없이 들어왔음에도 제대로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예들은 제각각 성좌에 대해 들어온 말을 꺼냈지만.

마현이 듣기에 환상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성좌라…….’

곰곰이 그 존재에 대해 떠올려 본다.

성좌.

밤하늘을 밝히는 별처럼 어두운 미래로부터 세상을 지키고 있다는 그 지고한 존재들.

인류가 마물에 침략을 받기 시작함과 동시에 나타난 그들은 인간이 마물에 맞설 힘을 주었다.

성좌의 힘을 받아 화신이 된 이들은 강력한 힘을 얻음과 동시에, 한순간에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막대한 힘, 그로 인해 파생되는 부와 명예.

이것이 성좌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었고.

자연스레 성좌라는 존재는 인간에게 있어 동경과 숭배의 대상이 되어 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도 감은 아니야.’

내가 아는 성좌는 숭달여뿐이지만.

전생에 수많은 화신을 만나 왔다.

확실한 건, 성좌라고 해서 결백하거나 정의롭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숭달여가 알려 줬지.

성좌들의 세계도 인간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서로 경쟁하고 다투는 꼴은 특히 그렇더랬다.

즉, 성좌들의 세계 역시, 이해관계와 은원의 실타래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

‘그런 곳이 마냥 순수할 리가 없지.’

어딘가는 분명 경악할 정도로 더럽고 음습할 터였다.

인간들의 세상 이상으로.

그런 성좌들의 세상에서 숭달여를 만나다니.

정말이지.

마현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운이 좋았구만.’

생각하면 할수록 역시 숭달여만 한 성좌가 없다.

사신관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것은 그때였다.

“지금부터 선택받은 후예들은 모두 별자리 연회장으로 이동하라!”

긴장과 설렘이 뒤섞인 표정으로 후예들이 하나둘 게이트 안으로 사라졌다.

마현의 차례가 다가왔다.

‘별자리 연회라…….’

전생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인데.

‘조금은 궁금하긴 하네.’

마현은 살짝 들뜬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엔 천천히 걷던 그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고,

게이트 앞에 다다르자 일말의 주저 없이 몸을 날렸다.

파아앗!

한차례 시야가 온통 빛으로 물들었고 다음 순간 마현은 낯선 공간에 있었다.

빛의 입자가 쏟아지는 분수대와 우주의 색채를 흩뿌리는 샹들리에가 밝게 비추는 곳.

천장과 바닥의 그 높이가 지구의 하늘과 땅과 비견될 정도로 거대한 백색 신전이었다.

후예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고, 입이 다물 줄 모르고 벌어졌다.

“여, 여기가 연회장……?”

누군가가 숨죽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광활하다는 표현조차 부족할 만큼, 이곳은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였다.

평생 보아 온 모든 건축물을 합쳐 놓아도 이 신전의 위용에는 미치지 못할 것 같았다.

그 웅장한 크기에 오히려 자신들이 벌레처럼 작아진 게 아닌가 싶었다.

“와, 그림들이 날아다녀!”

과연, 성좌들이 모인 공간이라는 건지 평범한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창공을 자유롭게 활공하는 새들처럼 공중을 유영하는 그림들이 그랬다.

그림들은 각 성운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장식된 액자에 담겨 있었는데.

‘화신들의 초상화인가?’

그림엔 성운을 대표하는 화신의 모습이 담겼다.

그 초상화를 보고 있으면 화신의 활약상이 재생되었다.

“저기 봐, 백가 신성 백서담이야!”

“저건 빙뢰룡 에즈라?!”

“예언자 세이지도 있어!”

세계 유수의 헌터들의 모습에 눈빛이 반짝이는 후예들.

자신들도 저렇게 되고 싶은 마음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아무나 이 초상화에 걸릴 수 없다.

이 초상화들은 성운 단위에서 밀어주고 있는 화신.

그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은 이만이 가능했다.

즉, 이들은 일종의 트로피 화신이며.

성운의 힘과 추세를 보여주는 일종의 지표인 것이다.

그렇기에.

가장 높은 곳에 그것이 있었다.

“저기 봐!”

아니, 그놈이 있었다.

한 후예의 손끝을 따라 일제히 고개를 돌리는 후예들.

그들의 시선은 천장에 한없이 가까워졌고.

이윽고 가장 크고 화려한 액자에 담긴 인물을 볼 수 있었다.

고아한 눈빛 속에 예리한 칼날을 감추고 있는 그 녀석.

“그레이다!”

성운 ‘천상’의 대표 화신이자.

날마다 시스템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는 괴물 신인.

화신이 되기 전부터 검룡이라 불렸던 천재.

현 랭킹 100위 헌터, 그레이.

마현은 알고 있다.

머잖아 그 검룡은 검성이라 불릴 것이고.

지금은 고작 100위권에 불과한 그 등수도 머지않아 당당히 1위 자리에 오를 거란 걸.

그리고.

내 등을 찌를 거란 사실도.

‘왜일까, 그저 그림일 뿐인데 말이지.’

피식 웃은 마현의 눈빛이 차갑고도 날카롭게 빛났다.

그레이의 무심한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보였다.

차분하게 박동하는 심장은 그 피만큼은 무척이나 뜨겁고도 맹렬했다.

달아오르는 몸.

피가 끓는다.

가끔은 이런 기분도 나쁘지 않군, 아니.

‘딱 좋네.’

몸에 힘이 가득 차는 이 느낌.

마치 전투에 앞서 만전의 상태가 된 것만 같다.

마현이 그레이의 눈을 응시했다.

“별로 높지도 않군.”

마현의 입술이 비웃듯 휘어졌다.

더 열심히 강해져야 할 거다. 그레이.

따라잡히는 그 순간에는.

그날의 수모, 네가 짓밟은 내 믿음.

너의 오만한 등을 보며 내가 느꼈던 그 고통을.

‘네가 똑같이 맛보게 될 테니까.’

마현의 눈빛이 불꽃처럼 타올랐고.

그 차가운 미소는 더욱 서늘해졌다.

그나저나.

그레이에 시선을 거둔 마현의 고개가 점차 낮아졌다.

세인트 길드의 다른 놈들을 찾기 위해 초상화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 X년은 없는 건가.

김새롬.

어디에도 그년은 없었다.

아쉽구만.

아주 그 초상화를 찢어 버리고 싶었는데 말이지.

비단 김새롬만이 아니다.

아직 성운의 대표 화신이 될 만큼 두각을 보이지 못한 시점인지, 다른 놈들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마현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은 것은 그때였다.

“반갑구만.”

성운 ‘혈월’의 대표 화신이자.

중국 구대 명문 일가 중 하나인 홍염화가의 소가주.

‘불사투귀 화영영.’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한 머리카락과 짙은 눈매를 가진 화영영의 모습이 마현의 시선에 담겼다.

화영영은 세인트 녀석들과 같이 활동할 때, 나를 가장 못살게 굴던 놈 중 하나.

당장 떠오르는 기억만 해도 이렇다.

― 하! 미개한 소국의 태생답네. 수준 떨어져. ……뭐?! 아줌마?! 야! 너랑 몇 살 차이 안 나!

― 진짜 지긋지긋해! 세인트에 너 따위는 없어도 상관없다고! ……뭐? 나도 마찬가지라고? 너 진짜 죽고 싶냐?

― 真是又笨又蠢. ……什么? 你说你的智商比我高?! 等等! 你会说中文吗?!

(진짜 바보 같고 멍청하네. ……뭐라고? 네 IQ가 나보다 높다고? 잠깐만! 너 중국어 할 줄 알아?!)

정말 성가셨지.

가끔은 정말 적으로 만났으면 싶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씨익.

‘이젠 적이네?’

놈이 다루는 스킬과 패턴은 이미 내 머릿속에 있다.

남은 건 더 강한 힘을 만들기 위한 성실함뿐!

하지만 나란 사람은 성실함마저도 갖췄으니.

‘크크크, 조만간이 되겠군.’

저 재수 없는 꽃을 꺾어 줄 날이 머지않았다.

벌써부터 잔뜩 짓밟아 줄 그날을 생각하자 마현의 입꼬리가 절로 씰룩였다.

백색 신전에 이변이 발생한 것은 그때였다.

퍼드득!

철새처럼 떼 지어 날아오는 초상화들.

후예들의 시선도 모두 그것들로 향했다.

“저건?”

“마가 출신 화신들이야!”

그곳엔 역대 마가 일족 화신들의 초상화가 담겨 있었다.

어림잡아 수백은 가뿐히 넘는 그 수.

그곳엔 냉엄한 표정을 짓는 마휼과.

‘어머니.’

마하윤.

가슴을 절로 애틋하게 만드는 어머니의 초상화도 있었다.

철새처럼 나타난 초상화들은 그저 하나의 연출이라는 듯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때문에 마현이 감상에 빠질 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아쉽진 않았다.

‘별자리 연회 오기 잘했어.’

그저 그 모습을 볼 수 있던 것만으로 자신은 만족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그 가슴 따듯해지는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재헌이다!”

“암흑성운 대표 화신인가 봐!”

마재헌, 그놈도 있었으니까!

그것도 가장 거대한 액자에 담겨 있어서 그 쓰레기 같은 면상이 유독 크게 보였다.

마현은 절로 이가 갈렸다.

어딘가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재헌의 초상화는.

마치, 가까운 미래 자신의 손에 의해 불타 사라질 마가를 우롱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암익파가 그래도 현재로서는 마가 제일이지.”

“유력한 소가주 후보지?”

“익히고 있는 스킬만 해도 100개가 넘는데!”

다가올 암울한 미래를 전혀 모르는 후예들이 재잘재잘 떠들었다.

그때.

쩡―

갑작스럽게 청아한 울림이 퍼졌고.

후예들은 순간 영혼이 흔들리는 듯한 기묘한 느낌과 함께 믿을 수 없는 순간을 목도했다.

그건.

【구천마검 일 초식 균천】

마현이 초상화에 검을 찔러 넣는 순간이었다.

푸우욱!

마재헌의 눈깔에 박힌 마현의 검!

그 상처 입은 초상화는 어째서인지 피를 흘렸고.

마재헌이 피눈물을 쏟는 꼴이 되었다.

“엣……?”

모두가 경악해 얼어붙은 가운데.

마현은 혀를 찼다.

“쳇.”

드럽게 단단하군.

과연 성좌들이 간직하는 그림이라는 건가?

전력을 다한 찌르기였으나 안타깝게도 검이 제대로 박히지 않았다.

푸다닥!

상처 입은 초상화는 헐레벌떡 마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달아났고.

그제야 후예들의 정신도 조금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무, 무슨…… 짓을?”

그러나 그 누구도 마현에게 따져 물을 수 없었다.

어딘가 화가 난 듯한 마현의 모습은 둘째치고.

할 말을 잃게 할 정도로 너무나 당혹스러운 순간이었으니까!

단 한 명은 예외였다.

빠드득!

“무슨 짓이냐, 마현!”

마기헌만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마현에 일갈하는 것이다.

“감히 내 형님을, 암익파를 모욕하다니!”

붉게 달아오른 마기헌.

그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마재헌은 단순한 형이 아니다.

자랑스러운 암익파의 역대 최고 기재이자.

암흑성운의 대표 화신으로 선정될 만큼 전도유망한 화신이며.

장차 마가의 소가주가 될 사람이었다!

그런 형님인데……!

감히 더러운 사생아 따위가……!

마기헌의 목소리가 떨렸다.

“형님은 미천한 네놈 따위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분이다!”

그 눈빛에 경멸의 빛이 스쳤다.

제아무리 마현이 자신을 한 번 이겼다 하여도 지금 이 상황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

“형님은 대표 화신으로서 마가의 위상을 드높여 주고 계신다! 네놈은 은혜도 모르는 거냐!”

멍청해도 정도가 있어야지!

마기헌은 주제도 모르는 천한 놈이라며 짓씹듯 말했다.

순식간에 백색 신전의 공기가 무거워졌고 긴장감이 물결치듯 퍼져 나갔다.

다른 후예들은 숨을 죽인 채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그들의 눈동자가 마현과 마기헌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누구 하나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모두가 조심스레 상황을 주시했다.

도망치는 초상화를 바라보던 마현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간 건 그때였다.

그 눈빛과 시선이 후예들을 지나 마기헌을 향했다.

“대표 화신? 그딴 건 아무 의미 없다.”

어딘가 비상식적인 그 말에 마기헌의 눈이 뒤집혔다.

‘저놈은 정말 대표 화신이 얼마나 명예로운 것인지 모르는 것인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마기헌이 진득한 살기를 마현을 향해 쏘아 냈다.

지켜보는 후예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마현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표 화신, 중요하지.’

성운 단위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면 화신은 강해질 수밖에 없다.

화신의 강함은 가문의 위상을 드높이며, 가문의 성장은 성운과의 유대를 더욱 깊게 만드는 선순환을 낳는다.

즉, 대표 화신이란 성운과 가문, 화신 모두에게 있어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왜냐하면.

“어차피 그깟 타이틀.”

씨익.

“내가 갈아 치울 거니까.”

그 확신에 찬 미소와 무엇이든 꿰뚫을 듯한 눈빛은 지켜보는 후예들의 입을 벌어지게 만들었다.

“와…… 저래야 강해질 수 있는 거구나.”

“나 조금, 마현 님이…… 아, 아니야.”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 알 것 같아…….”

흉흉했던 신전의 분위기가 고양된다.

마현의 절대 굽혀지지 않을 것 같은 기세를 타고 끓어오르는 것이다.

“네, 네놈!”

마기헌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려왔다.

방금 마현이 한 말은 명백했다.

도전.

평범한 도전이 아니다.

마재헌을 향한 그 선언은.

결국, 암익파에 대한 도전이었으니까!

“감히, 우리 암익파에 도전하겠다는 거냐!”

어리석고 멍청하다.

이 시험 끝에 놈이 후계자로 낙점된다 하여도 형님은 이미 출발선을 통과한 상태.

하물며 형님의 가파른 성장은 이미 앞서 출발한 암천파의 후계자들도 따라잡았을 정도였다!

바보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비교 불가능한 상황이건만.

그런데…….

그런데 저놈은……!

“그딴 게 무슨 상관이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이 말하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마재헌한테 전하기나 해라.”

선전포고했다.

“내가 모든 걸 박살 낼 거라고.”

“…….”

마기헌은 이성적으로 그 말이 한낱 개소리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 새끼…… 진심이야.’

정말로 그렇게 만들겠다고.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든 걸 박살 낼 셈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분명, 마현 따위가 감히 덤벼도 어쩔 수 없을 형님이건만.

마기헌의 등줄기에 차가운 전율이 흘렀다.

정말, 마현이 형님을 꺾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마, 막아야 한다.

‘반드시, 저놈을 막아야 한다.’

불끈 주먹을 쥐는 마기헌.

그 손바닥 사이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백색 신전에 이변이 발생한 것은 그때였다.

쿠구궁―

신전을 뒤흔드는 거대한 땅울림.

그것의 근원은 신전 끝의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문이었다.

천천히 열리는 문틈으로 밝은 빛이 새어 나왔고, 그 빛 속에서 수많은 인영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또각또각.

정제된 구둣발 소리가 신전에 울려 퍼졌다.

다가올수록 흐릿해지는 역광.

선명해지는 그 모습들.

문 너머에서 나타난 이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모습을 한 여인들이었다.

마현은 이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호문쿨루스.’

인조인간이라 불리는 그것들이 별자리 연회를 보좌하는 모양이다.

“환영합니다. 뛰어난 재능을 겸비한 어린 후예 여러분.”

선두에 선 호문쿨루스가 말했다.

“이곳은 연회장의 입구.”

그 공허한 눈빛은 이들이 한낱 인형에 불과함을 보여 주었다.

“지금부터 여러분을 연회장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40화. 기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