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제30화 : 극품 영석

연의결과 오행천비록을 익히다 보니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갔다.

장소천이 극천문으로 돌아온 지 육 개월.

영취산의 이름 모를 협곡에서 토 속성 영기로 몸을 감싸고 토둔술을 펼치던 장소천은 멀리서 익숙한 기운을 감지했다.

소소였다.

토행귀를 장심으로 빨아들인 장소천은 하늘로 날아올라 소소 앞에 떨어져 내렸다.

“장 공자!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이오. 나를 만나러 이곳까지 온 것이오?”

“맞아요. 전해줄 말이 있거든요?”

“무슨 일인데 낭자께서 직접 온 것이오?”

“탐랑족이 영취산에 있는 무불산 지하 깊숙한 곳에서 극품 영석을 발견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요. 극품 영석은 다른 영석과는 달리 돌 속에 담긴 영기를 직접 흡수할 수가 있어요. 게다가 이번에 발견된 극품 영석은 신기의 구성 비율이 특히 높다고 해요.”

“무불산이라면 극천문에서 아주 가까운 곳 아니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이에요. 탐랑족에서 극품 영석을 모두 차지한다면 놈들의 전력은 크게 높아질 것이에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해요.”

“무슨 말씀을 하려는 것인지 잘 알겠소. 즉시 존장께 알려서 놈들의 야욕을 막도록 하겠소.”

“이번 일은 극천문만으로는 힘들 것이에요.”

“내 생각도 마찬가지이오. 그렇지만 결정은 사조님들이 하시는 것이라서…. 적호족에서 알고 있는 다른 인족이 있다면 그곳에도 소식을 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그건 공주님과 상의해 볼게요. 그건 그렇고 장 공자님의 성취는 하루가 다르게 느는군요. 머지않아 저를 추월하겠어요.”

“아직은 멀었소. 그리고 이건 내가 만든 영단이오. 공주님께 드리구려. 이것은 소소 낭자의 것이고요.”

금련봉으로 와서 장소천이 연단을 중단한 것은 아니었다.

의성에게서 얻은 연단로도 실험해 볼 겸 꽤 많은 영단을 조제하였다.

다만 신력을 투입한 것은 별로 없었다.

지금 소소에게 전해 준 것이 전부였다.

“고마워요. 그리고 이번에 저희 적호족은 무불산에 갈 수 없을 것 같아요. 대신 엄지 공주께서 가시기로 하셨으니 탐랑족에서 극품 영석을 독차지하지는 못할 것이에요.”

“이렇게 좋은 정보를 알려주셔서 고맙소. 공주님께 고맙다고 안부를 전해 주시기 바라오.”

“그럴게요. 다음에 봐요.”

휘리리릭!

허공에서 연속으로 세 바퀴나 재주를 넘고는, 소소의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은신술이 조금 더 진보한 것이다.

하지만 장소천의 눈이 계속 꼬리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까지는 그녀도 눈치채지 못하였다.

소소가 간 후 장소천은 곧바로 사부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소소에게 들은 내용을 이야기하자 사부는 장문진인을 만나러 갔다.

무극진인의 말에 장문진인은 정보의 진위 여부를 의심했다.

친분이 있다고는 해도 요족의 말만 듣고 무모하게 대처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신임 태상장로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는 없었기에 장문진인은 금검대주를 불러 대원 몇 명을 무불산으로 출동시켰다.

그리고 태상장로까지 참석한 대회의를 개최했다.

회의 결과.

회의에 참석한 장로 모두가 무불산에 가기를 희망했다.

연허기 중기 경지인 무천 사숙조차도 은밀하게 알아보겠다고 했을 정도로 장로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그리고 타 문파에 알리는 것은 잠시 보류했다.

먼저 극천문에서 대처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그때 타 문파에 협조를 구하겠다는 결론이었다.

“사부님께서도 가실 것입니까?”

“그렇게 하기로 했다. 광음 사형과 함께 움직일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부님! 극품 영석이 발견된 곳은 인족의 지배구역입니다. 탐랑족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을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극품 영석이라는 말에 모두 눈이 돌아가서, 타 문파를 끌어들이는 일은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소요족은요?”

“그들은 상황을 보면서 대처하기로 했다. 탐랑족과 적대시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요족이지 않느냐?”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출발은 언제 하시는지요?”

“금검대에서 탐색조를 보낸 지 벌써 세 시진이나 되었다. 그들이 도착하면 곧바로 출발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출발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탐색하러 보냈던 금검대원들이 돌아오지 않아서였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장문진인은 이차로 금검대원들을 출동시켰다.

그러면서 은신과 추적에 능한 천계봉의 팔황진인에게 눈짓을 보냈다.

* * *

무불산은 극천문에서 이백 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가까운 거리지만 금검대원들은 각자의 비행 법기를 타고 무불산으로 날아갔다.

그들이 무불산에 근접한 순간.

휘스스스스!

공간이 이지러지며 허공이 악귀처럼 금검대원들을 삼켜버렸다.

공간 결계.

경악한 금검대원들이 황급히 비행 법기를 후퇴시켰지만 결계에서 빠져나온 것은 단 두 사람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였다.

쒜에에에엑!

결계 안에 숨어 있던 창응족 수사들이 법보를 펼쳐냈기 때문이다.

금검대원들이 순식간에 전멸하자 비술로 몸을 숨기고 그들을 따라왔던 팔황진인은 일단 뒤로 후퇴했다.

그리고 전신부를 날려 무불산 상부에 거대한 공간 결계가 펼쳐져 있다고 보고했다.

땅 밑으로 내려간 팔황진인은 옆구리에 차고 있던 영수대를 열었다.

위이이이이잉.

그러자 영수대 안에서 수천 마리의 검은색 개미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철갑의(鐵鉀蟻).

팔황진인과 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 날아다니는 개미였다.

피릿!

뒤늦게….

손가락보다 큰 개미 한 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는데 입가에는 섬뜩한 송곳니가 네 개가 삐져나와 있었다.

철갑의들을 다스리는 여왕개미였다.

탐색조로 보냈던 금검대원들이 전멸당했다는 소식에 장문진인은 한동안 말을 잊었다.

금검대는 극천문의 중추적인 전력이었기 때문이다.

고수가 부족한 극천문으로서는 한 명 한 명이 뼈아픈 손실이었다.

그런데 공간 결계라니….

공간 결계는 인족과 요족을 통틀어 오로지 요족인 흑봉족만이 펼쳐낼 수 있었다.

그 말은 탐랑족에서 이곳 무불산에 흑봉족 수사들을 데리고 왔다는 의미였다.

흑봉족뿐만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극품 영석.

그것이 사실이라면 저들도 이번 행사에 전력을 기울일 것이었다.

“사숙님! 공간 결계는 저희 극천문에서 해진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금천신뢰문에 협조를 요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야수와 같은 놈들이네. 감당할 수 있겠는가?”

광음 사숙의 말에 장문진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금천신뢰문은 뇌전을 부리는 문파.

태현국에 있는 인족 중에서는 오로지 그들만이 공간 결계를 해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정이 사납고 욕심이 많은 자들이었다.

늑대를 몰아내기 위해 자칫 승냥이를 끌어들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요족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그들이 패악질을 부리면 다른 종문에도 사실을 알려 견제토록 하겠습니다.”

“그럴 것 없이 선검문도 함께 부르게. 금천신뢰문의 고수들은 땅속에서는 그리 힘을 쓰지 못할 것이네.”

“사숙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방금 팔황진인에게서 전신부가 날아왔는데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았다고 합니다.”

“어디라고 하던가?”

“복마동(伏魔洞) 아래로 수백 장을 내려가면 긴 천연 동굴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요족들이 암벽을 파헤치고 있다고 합니다.”

“알겠네. 팔황진인에게는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전하게. 나와 무극진인은 먼저 복마동으로 갈 것이니 장문진인은 문도들을 잘 통솔하여 큰 피해가 없도록 조치하게.”

“지시대로 따르겠습니다.”

두 분 태상장로가 몸을 날려 사라지자 장문진인은 곧장 금천신뢰문과 선검문에 전신부를 보냈다.

그러면서 다른 종문에는 알리지 말도록 신신당부를 했다.

극천문과 두 종문은 거리상으로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아무리 빠른 비행 법기라도 며칠은 지나야 도착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그날 오후에 금천신뢰문의 고수 두 사람이 금궁에 도착했다.

상황이 다급하다고 판단한 금천신뢰문에서 극천문 근방을 외유 중인 장로들에게 전신부를 보낸 것이다.

선검문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금천신뢰문의 장로들이 도착하고 오래지 않아 수사 한 명이 하늘에서 검을 타고 내려왔다.

온몸에서 싸늘한 냉기를 발산하는 극강의 고수.

연허기 중기의 경지인 마검 풍기혁이었다.

“어서 오시지요. 풍 수사께서 오시니 마음이 든든하군요.”

“오랜만이군. 금천신뢰문의 수사들은 어디에 있는가?”

“먼저 복마동으로 출발했습니다.”

“평소에는 수선계의 일에 신경도 쓰지 않다가, 극품 영석이 있다고 하니 꼬리에 불이라도 붙은 듯이 빠르게 움직이는군. 안내하게.”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극천문에 와서 이렇게 방자하게 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검 풍기혁은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연허기 중기.

이 정도면 종문을 초월하여 위세를 떨치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더 많은 고수들이 금궁에 도착했다.

그들은 곧바로 무불산으로 가기를 원했고, 장문진인은 금검대원들을 시켜 안내하여 주었다.

그러면서 무불산의 상황을 예의 주시했는데 다음 날부터는 불청객들이 근처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태현국에 있는 여타 종문들이었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지만 장문진인은 동향을 파악하는 데에만 전력을 기울였다.

아직은 극천문에서 뛰어들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 *

오행천비록은 상관천세가 가문에서 도망쳐 나오면서 챙겨 가지고 나왔던 유일한 술법서였다.

방계 출신이었던 그의 부모님은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상관천세가 어렸을 적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의지할 데 없던 상관천세는 가문에서 천대를 받게 되었고….

그야말로 숨만 쉬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한 거대 종문이 세가로 쳐들어왔다.

그들은 가문을 불사르고 가신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는데 그 와중에 상관천세는 죽은 가주의 품속에 있던 술법서를 들고 멀리 도망쳤다.

원래 총명했던 상관천세였다.

도망치면서 오행천비록을 익혔는데, 덕분에 세가에서 수십만 리 떨어진 이곳 태현국까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극천문에 가입하여 장소천과도 만나게 된 것이다.

오행천비록은 수련자의 영근속성에 맞는 화신을 능력껏 만들어 사용할 수가 있었다.

다만 수련 경지가 낮을 경우 영근속성별로 단 한 가지의 화신밖에 만들지 못했다.

상관천세는 화 속성 화신으로 불 뱀을 선택했다.

그리고 금 속성 화신과 토 속성 화신도 만들었는데 그것들은 실전에서 잘 사용하지 않았다.

화 속성 화신은 그의 가문이 불타오를 때 보았던 강렬한 기억 때문인지 의념을 구체화시키는 것이 무척 수월했던 반면….

금 속성과 토 속성 술법은 의념을 구체화시키는 것이 어려워서 화신의 위력이 변변치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소천은 달랐다.

그동안 수련한 연의결 덕분에 장소천의 의식은 연신기 수사와 맞먹을 정도로 높아져 있었다.

그러니 의념을 구체화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었고 짧은 순간 고차원의 변환까지도 가능했다.

토 속성 영기로 토행귀를 만들어 토둔술을 펼치게 된 것도 그 덕분이었다.

토둔술을 펼치는 것이 가능해지자 장소천은 땅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하루 종일 땅속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지하수맥을 발견하면 수 속성 화신인 백마를 만들어 물속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그것이 싫증 나면 백마를 장심으로 빨아들인 후 토둔술을 펼쳐 땅속에 널린 연기재료들을 수집하였다.

연의결 덕분에 술법이 일취월장한 장소천은 오늘도 땅속으로 들어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며 놀고 즐겼다.

슈슈슈슉!

토둔술을 펼치면서 혼원신검으로 검영을 날리는 연습을 한 것이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땅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는데 그의 기감에 수상한 자들이 탐지되었다.

요족이었다.

제31화 : 적의 결계 속으로 들어가다

장소천이 의념화한 토행귀는 빠르고 은밀한 장점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요족들에게 들키지 않고 그들을 추적할 수 있었다.

지금 그가 쫓고 있는 요족은 머리는 인간이지만 몸은 지네처럼 생긴 희귀한 족속이었다.

구유국의 아홉 개 요족에는 포함되지 않는 종족.

그래도 토둔술에 능해 탐랑족에서 무척 중시하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입이 무겁지는 않은 듯싶었다.

“백족아! 극천문 지하에 용암천이 흐르고 있는 것이 확실하냐?”

“물론이다. 지하 삼천 장 아래에 용암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그 기운을 위로 돌리면 극천문은 단숨에 멸문하고 말 것이다.”

“방법은 찾았느냐?”

“용암천 주위에서 화맥을 발견했다. 그곳에 구멍을 뚫어주면 용암이 역류해서 극천문을 지옥으로 만들 것이다.”

“내 말을 듣게 되면 태화랑께서 무척 좋아하실 것이다.”

“극천문 지하에 용암이 흐른다는 사실은 아직까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우리가 처음 발견한 것이니 공로가 적지 않은 셈이다.”

“그러니 빨리 가서 보고하자.”

요족들의 말을 엿들은 장소천은 놈들을 그냥 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들이 태화랑에게 보고하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그러려면.

지금 당장 놈들을 죽여야 했다.

마음을 정하자 장소천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토행귀를 조종하여 요족들에게 다가간 장소천은 이능으로 그들이 지나갈 자리를 선점했다.

그리고 몸을 웅크렸다가 놈들이 지나가자 빗살처럼 위로 솟구쳤다.

목표는 가장 후미의 요족.

끄어어억!

혼원신검에 배가 갈라진 요족은 몸을 뒤틀며 몸부림을 쳤다.

어찌나 사납게 요동치던지 암벽이 갈라지고 땅이 흔들렸다.

그런데도 장소천은 침착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암벽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튀어나오며 요족의 머리를 혼원신검으로 잘라냈다.

취릿!

죽기 전에 요족은 장소천에게 독액을 뿜어냈다.

하지만 독액은 장소천의 몸에 닿지 않았다.

장소천이 혼원신검으로 검막을 펼쳐낸 때문이다.

“웬 놈이냐?”

동료 한 명이 죽자 요족들은 기겁하며 장소천의 수행 경지부터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용기가 백배하여 일제히 장소천에게 달려들었다.

장소천의 경지가 자신들보다 낮은 것을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수행 경지가 실력의 전부는 아니었다.

장소천은 그들보다 훨씬 빠르게 토둔술을 펼칠 수가 있었고….

손에는 혼원신검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놈들을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이유도 가지고 있었다.

콰드드드드.

서걱!

장소천은 몸을 피하지 않았다.

혼원신검의 날카로움을 믿고 용감하게 달려들어 검영을 날리고 놈들의 다리를 베어냈다.

하지만 경지 차이는 쉽사리 극복할 수 없었다.

터엉!

놈들의 두꺼운 갑각은 검영조차 튕겨냈고 근접 공격은 다리가 많은 그들이 훨씬 유리했다.

게다가 놈들은 세 명이었다.

작전을 바꾼 장소천은 토둔술로 놈들을 유인하여 한 놈씩 상대하려고 했다.

그런데 한 녀석이 문제였다.

그의 속도는 장소천과 비등할 정도로 빨랐고 합격술에 능해 몇 차례나 장소천을 위기에 빠트렸다.

혼원신검이 날카롭지 않았다면 도리어 놈에게 당했을 것이었다.

몇 번이나 죽음의 위기를 겪은 장소천은 놈들에게서 물러났다.

그리고 길을 크게 휘돌다가 지하동굴을 발견했다.

지하동굴은 요족들이 가려는 곳과 같은 방향으로 뚫려 있었다.

그렇다면 놈들은 단단한 암벽을 피해 편히 갈 수 있는 동굴을 이용할 것이 분명했다.

쾌재를 부른 장소천은 동굴의 으슥한 곳에 자리를 잡고 막장이 준 은신부를 활성화시켰다.

그의 손에는 뇌전부까지 들려 있었다.

“귀신 껍데기를 뒤집어쓴 인족에게 막내가 죽었는데 이 원한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 태화랑에게 극천문을 없애버릴 비결만 알려주고 바로 돌아와서 놈을 찾아 죽이자.”

요족 중에서 경지가 가장 높은 백석이 동부로 발을 들이면서 말했다.

그들은 특수한 신통을 익혀 토둔술을 펼친 흔적을 늦게라도 찾아낼 수 있었다.

서둘러 돌아오면 인족 녀석을 찾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때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놈을 죽일 것이라고 맹세하면서 백석은 좁은 동굴 틈새로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쉬이잇!

번쩍!

어두운 동굴 속에서 뇌전이 번쩍이더니 백석의 몸을 강타했다.

화르르르르.

뇌전부에 적중되어 몸이 두 동강 난 백석은 온몸에 불이 붙어 살아날 가망성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손에 든 법기로 사방을 후려치고 독액을 어둠 속으로 난사했다.

서걱!

혼원신검으로 백석의 목을 잘라낸 장소천은 남은 두 녀석을 쫓아가려다가 우뚝 몸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백석의 허리춤에 걸린 건곤대를 탈취하고는 다시 추적을 시작했다.

콰두두두두.

요족 중에서 가장 강한 백석이 죽자 남은 두 명의 요족은 동굴을 버리고 암벽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탐랑족의 대공자인 태화랑이 있는 복마동으로 사력을 다해 달아났다.

백석에게서 건곤대를 탈취하느라 다소 주춤했던 장소천은 요족들이 달아나자 전력을 다해 토둔술을 펼쳤다.

하지만 요족들과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콸콸콸콸.

의식을 극한으로 발휘하여 토둔술을 펼치던 장소천의 귓속으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하 수맥.

신식으로 살펴보니 수량이 적지도 않았다.

이 정도면 수 속성 술법을 펼쳐도 될 것이라고 판단한 장소천은 백마를 불러냈다.

그러고는 백마의 등에 달라붙어 물속을 빠르게 날아갔다.

슈슈슈슛!

백마의 등에 올라탔던 장소천의 손에서 검영이 십여 개나 날아갔다.

그것들은 요족들의 발을 자르고….

극천문의 지하에 용암이 강물처럼 흐른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백족의 어깨에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

쿠당당탕.

토둔술을 펼치던 백족의 상체가 앞으로 고꾸라지며 암벽과 세게 충돌했다.

그러자 다리가 반 이상이나 잘려 나간 요족이 손을 뻗어 그를 부축했다.

그러다가 장소천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지자 동료를 버리고 땅속으로 달아났다.

적의 중심부에 가까워진 것을 감지한 장소천은 막장이 준 뇌전부와 염화부를 아낌없이 백족에게 날려 보냈다.

서걱!

그러고는 불타는 백족의 머리를 깔끔하게 베어낸 후 마지막 남은 요족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다리가 잘려서 그런지 요족이 달아나는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요족을 바짝 따라붙은 장소천은 놈의 등허리에 검영을 몇 차례나 쏘아냈다.

그리고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요족의 눈앞에 붉은색 광채가 일렁였다.

결계?

놈이 결계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장소천은 혼원신검을 든 채로 놈을 덮쳤다.

그리고 혼원신검으로 놈의 등을 가르고 꼬리까지 잘라냈다.

그렇지만 놈도 결사적으로 항전했다.

혼원신검에 머리가 잘리기 전에 기어코 결계를 해진시켜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서걱!

요족을 따라 들어간 장소천에게 머리가 잘리고 말았다.

마지막 요족을 죽인 장소천은 염화부로 놈의 시체를 불태웠다.

그러고는 결계 바깥으로 빠져나가려다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결계를 해진할 능력이 없어서였다.

어쩔 수 없이 장소천은 결계에서 멀어져 땅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누가 말해준 것은 아니지만 장소천은 이곳이 소소가 말한 무불산 지하임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복마전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처럼 낮은 경지로는 함부로 설칠 자리가 아닌 것이다.

스스로의 한계를 파악한 장소천은 계속하여 땅 밑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열기가 높은 구역으로 들어섰는데 조금 더 내려가자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입을 꾹 다문 장소천은 거기서도 한참을 더 내려갔다.

그러고는 공간을 넓혀 쉴 자리를 만들었다.

땅속에서는 신식과 청각 말고 사물을 탐지할 방법이 없었다.

엄청나게 좋아진 시력도 전혀 소용이 없고….

토둔술 말고는 의지할 데가 없어진 장소천은 그 안에서 자신이 죽인 요족의 건곤대를 열고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놈의 건곤대를 탈취하면서 장소천이 많은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놈들의 둔술이 기묘하여 관련 비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건곤대에는 책자가 한 권도 없었다.

기껏해야 단방 한 개.

그것도 요족의 단방서였다.

요석단이라는 이름의 영단은 주 재료가 석원(石猿)이라고 불리는 돌 원숭이의 내단이었다.

단방서를 살핀 장소천은 이것이 그가 죽인 요족의 경지에 적합한 것임을 알아냈다.

인요급 후기.

인간으로 치면 연기기 후기와 연신기 초기의 경지였다.

자신이 복용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장소천은 놈의 건곤대를 샅샅이 뒤져보았다.

그런데 영단은 없고 요수의 내단만 무더기로 나왔다.

이능을 통해 그것이 석원의 내단임을 확인한 장소천은 단방에 적혀 있는 나머지 약초들을 살펴보고는 눈에 이채를 발했다.

그가 적호족에서 구해 현천복지에 심은 약초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한가하게 연단을 할 수는 없었기에 장소천은 요족의 건곤대에 담긴 물건을 전부 그의 건곤대로 옮겨놓았다.

* * *

“뭐라고! 극천문의 약점을 알아보러 떠났던 제자들이 모두 죽었다는 말이냐?”

덩치가 커다란 금빛 늑대의 호령에 지네를 닮은 요족 노인은 머리를 움츠렸다.

“그… 그렇습니다. 적의 추살을 받은 것을 보면 중요한 비밀을 탐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모두 죽었지 않느냐?”

“제자 한 명은 결계 안으로 들어와서 죽은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 말은 흉수가 이미 결계 안으로 들어왔다는 말이구나. 그자는 극천문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겠구나.”

“그러니 겁도 없이 여기까지 따라왔겠지요. 추적술에 능한 제자들을 붙였으니 오래지 않아 생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자들 가지고 되겠느냐? 장로들을 붙여라. 그리고 놈을 반드시 생포해서 극천문의 약점을 알아 오너라!”

“존명!”

토둔술에 능한 지네족의 장로가 물러나자 태화랑은 흑봉족의 장로를 불러 공간 결계에 대해 물었다.

결계가 뚫린 흔적을 몇 군데 발견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지네 요족에게서 빼앗은 건곤대를 정리한 장소천은 숨을 쉴 수조차 없는 열기에 화 속성 영기를 내뿜어 화룡을 불러냈다.

그러고는 화룡에게 주위의 열기를 흡수하도록 지시했다.

후와와와왕!

넘쳐나는 열기에 화룡은 포효를 터트렸다.

그리고 근방의 열기를 흡수하더니 암벽 속으로 파고들어 돌과 바위를 녹이기 시작했다.

장소천이 쉴 자리를 넓혀준 것이다.

토행귀와 화룡 두 마리를 동시에 소환시켰는데도 장소천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연의결의 경지가 높아져서 화신 두 마리쯤은 문제없이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화룡 덕분에 숨 쉬는 것이 편안해지자 장소천은 조금 더 쉬었다가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그러다 보니 용암이 펄펄 끓고 있는 동부까지 오게 되었다.

동부는 꽤 넓었다.

그런데 너무 뜨거워서 온몸이 익어버릴 것만 같았다.

극한의 열기에 장소천은 우선 토행귀를 거두었다.

그리고 화룡에게 자신의 의념을 집중했다.

“휴우! 조금 낫나?”

아니었다.

반각도 지나기 전에 다시 숨이 턱턱 막혀오기 시작했다.

토둔술로 용암 동부를 빠져나가려던 장소천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이대로 동부를 나가는 것이 옳은 선택인가?

그럴 리가 없었다.

이런 곳이 아니라면 그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었다.

뚜벅뚜벅.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장소천은 동부에서 가장 뜨거운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뜨거움에 대해 궁구하며 거기서 오는 깨달음을 의념으로 구체화시키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자 장소천을 지키고 있던 화룡은 주변의 열기를 빨아들여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 크기가 무려 십 장에 육박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무아지경에 빠진 장소천은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였다.

슬금슬금.

동부 속으로 지네를 닮은 요족 장로 한 명이 들어왔다.

이곳은 화룡지처라 다른 장로들조차 들어오기를 꺼려 하는 장소였다.

그나마 열기에 대한 내성이 높은 그가 억지로 들어왔는데 갑자기 눈앞으로 거대한 화염이 덮쳐왔다.

“으악!”

비명을 지른 장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수염과 옷이 불타고 있건만 장로는 불을 끌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곳으로 들어오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제32화 : 세계수에 공청석유를 부어 주다

갑자기 숨 쉬는 것이 편해졌다는 생각에 장소천은 연의결 수련을 멈추고 눈을 떴다.

그리고 화들짝 놀랐다.

눈앞에 거대한 화룡이 똬리를 틀고 그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이 만든 화신임을 인지한 장소천은 신기하다는 생각에 화룡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의 의념이 만든 것이지만 화룡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장소천이 화룡에게 심어준 의지는 적을 죽여 주인을 보호하라는 것.

의념이 구체화된 지금은 언제라도 화신을 소환시켜 자신의 신변을 보호할 수 있었다.

비록 무아지경에 빠진 상태라도….

푸스스스스.

장소천이 의념을 발하자 화신의 크기가 손바닥만 하게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화룡이 내뿜는 기세는 줄어들지 않았다.

후와와와왕!

장소천이 다시 화룡의 크기를 키우자 화룡이 사납게 포효했다.

그러고는 장소천 주위를 날아다니며 입에서 불을 뿜고 발톱으로 매섭게 공간을 할퀴었다.

그 순간.

화룡의 발에서 날카로운 발톱 그림자가 쏘아지며 암벽을 할퀴었다.

서걱.

콰르르르르릉.

단단한 암벽에 금이 가며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화룡이 훨씬 강맹하자, 장소천은 오행천비록이라는 술법서를 다시 보게 되었다.

상관천세가 술법을 펼칠 때에는 그저 신기할 뿐 이처럼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지금 그의 눈앞에 나타난 화룡은 장소천의 선입견을 단박에 몰아낼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각성이라도 한 듯, 장소천은 토 속성 영기를 몸 밖으로 흘려냈다.

그리고 토행귀를 만들어 화신의 능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장소천이 토 속성 영기로 토행귀를 선택한 것은 당연히 토둔술 때문이었다.

둔술은 도망치는 능력.

토둔술은 땅을 파고 흙 속으로 도망치는 능력이었다.

토둔술에도 많은 방법이 있지만 토행귀가 펼치는 토둔술은 은밀하면서도 빨랐다.

하지만 지네 요족들과 싸우다 보니 아직은 조금 부족한 듯싶었다.

속도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하지만 은밀함이 문제였다.

유령처럼 소리 없이 이동하고, 막장이 만든 은신부처럼 적의 신식을 피해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 막장이 준 은신부가 아직 남아 있었지.’

품속에서 부적을 꺼낸 장소천은 의념을 은신부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지네 요족을 상대하면서 은신부를 펼쳤었던 감각을 상기하며, 어떻게 해야 신식을 파해할 수 있는지 궁리하였다.

결론적으로 이 방법은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장소천의 부적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자 신식으로 투영되는 토행귀의 형체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는데, 우습게도 그 이유는 장소천이 이전 세상에서 관심을 가졌던 스텔스 기술 때문이었다.

레이더로부터 물체를 감추는 데 사용했던 기술을 신식을 회피하는 데 적용한 것이다.

그렇다고 토행귀가 신식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된 것은 아니었다.

상대와의 거리가 가깝거나 경지가 높은 고수라면 여전히 그를 감지할 수 있었다.

* * *

연의결을 수행하여 의식이 강화되면서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신식으로 볼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났다는 것이었다.

연기기 팔성 수사가 신식으로 감지할 수 있는 거리는 대략 십이 장.

하지만 의식이 강해진 장소천은 거의 백여 장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연신기 초기 수사에 버금가는 거리.

그런데도 장소천은 기척을 죽이고 조심스럽게 땅속을 돌아다녔다.

이 안에서 마주치는 존재는 모두 적이기 때문이다.

팟팟팟팟!

누군가 엄청난 속도로 땅을 파고 다가오자 장소천은 자리에서 멈춰 숨을 죽였다.

굳이 신식을 펼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상대의 경지가 높아 보였기 때문이다.

한참 후.

상대의 기척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자 장소천은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꽤나 시끄러운 요족들을 만났다.

그가 상대한 적이 있던 지네 요족이었다.

요족들의 숫자는 모두 세 명.

그중의 한 명은 수련 경지가 무척 낮았다.

다만 호위 무사 두 명이 그를 지켜주는 것으로 보아 지위는 그렇게 낮지 않은 듯싶었다.

“소공자님! 피곤하지는 않으십니까?”

“괜찮다. 그건 그렇고 조금 전에 백중선 장로가 내게 전해준 것이 오채선보옥이 확실한 것이냐?”

“확실합니다.”

“그럼 안에 든 것이 공청석유겠구나?”

“공청석유는 오채선보옥에 맺힌 옥액이 수십만 년 동안 뭉쳐 소량씩 생성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백중선 장로께서 전해준 보옥의 색이 벽청색인 것을 보면 그 안에 공청석유가 들어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극품 영석을 얻으려고 왔건만 뜻하지도 않게 횡재를 하였구나. 이 정도면 된 것 같으니 우리는 이만 철수하자.”

“요족 구역으로 돌아가시는 것입니까?”

“아무래도 그것이 좋을 것 같다. 태화랑은 의심이 많은 자라 우리 종족이 극품 영석을 몰래 빼돌리고 있는 것을 이미 눈치채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밖으로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결계까지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렇게 해라.”

나이도 어린 수사가 꽤나 결단력이 있었다.

기척을 감추고 숨어 있던 장소천은 공청석유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욕심이 생긴 장소천은 은밀하게 그들을 뒤쫓았다.

그러면서 공청석유를 탈취할 기회를 노렸으나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호위 무사들의 경지는 지요급 초기.

한 명이라면 억지로 싸워볼 수도 있었지만 두 명까지는 장소천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그에게 찾아왔다.

백이라는 호위 무사가 두 사람을 엉뚱한 방향으로 안내한 것이다.

이를 나이 어린 수사가 발견했다.

“백이! 이 길은 결계로 가는 방향이 아니지 않으냐? 네놈이 우리를 배신한 것이냐?”

어린 요족 수사가 외치자 길은 안내하던 백이의 얼굴이 흉악하게 변했다.

그러고는 검을 휘둘러 어린 수사의 발 서너 개를 잘라냈다.

호위 무사인 백이가 지네족을 배신한 것을 알아차린 백기가 급히 달려와 어린 수사를 보호했다.

그러면서 종족을 배신한 백이와 사생결단의 각오로 접전을 벌였다.

뜻밖의 기회에 멀리서 지켜보던 장소천이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접근했다.

하지만 성급하게 몸을 움직이지는 않았다.

지금 자신이 등장하면 싸움을 벌이던 자들이 합심하여 자신부터 공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저들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다가 한 명이 쓰러지면 나머지 한 녀석을 공격하자. 두 녀석이 모두 쓰러지면 나이 어린 수사의 건곤대만 탈취하여 달아나고….”

장소천이 어부지리를 노리며 요족들을 지켜보는데 백이의 검이 백기의 가슴을 갈랐다.

커허헉!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백기의 가슴에서 피가 뭉클거리며 빠져나왔다.

백기가 불리해지자 나이 어린 수사가 깜찍한 행동을 했다.

허리춤에서 건곤대를 풀어 시커먼 바위 뒤에 몰래 숨긴 것이다.

그러고는 토둔술을 펼쳐 결계가 있는 반대 방향으로 도망을 쳤다.

푸욱!

그사이 백기를 죽인 백이는 피 묻은 검을 그의 옷에 닦았다.

그리고 소공자를 쫓아 토둔술을 펼쳤다.

스스스스스.

백이까지 사라지자 그 자리에 장소천이 나타났다.

“싸우지 않고 보물을 습득하다니 오늘 나의 운이 나쁘지는 않구나.”

득의의 웃음을 지은 장소천은 나이 어린 수사가 숨겨놓은 건곤대를 찾아 차신의 허리춤에 묶었다.

그러고는 토둔술을 펼쳐 깊은 땅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허억. 헉!

땅속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던 지네족 어린 수사가 당황한 표정으로 바위 뒤를 뒤졌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가 숨겨놓았던 건곤대는 보이지 않았다.

“백이 이놈! 지네족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서 나의 건곤대까지 훔쳐 가다니…. 내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저주 어린 말을 뱉어낸 어린 수사는 토둔술을 펼쳐 결계가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곳에 백이가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공청석유의 효능은 장소천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기사회생의 영약으로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처억!

동부에 도착한 장소천은 화룡에게 열기를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요족의 건곤대를 열었는데 안에 생각지도 못했던 보물들이 들어 있었다.

요족들이 말했던 오채선보옥과 일곱 개의 극품 영석.

게다가 토둔술 비술서까지 들어 있었다.

마음이 급한 장소천은 먼저 비술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내용을 살펴보니 자신이 수련한 토둔술과는 운용 방법이 전혀 달랐다.

그래도 배울 점이 있을 것 같아 내용을 확인했던 장소천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 안에 속도를 높이는 비방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토행귀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곰곰이 궁리하던 장소천은 곧바로 연의결을 펼쳐냈다.

그러면서 방금 배운 비술을 의념화하여 토행귀에게 주입시켰다.

하루, 이틀.

무려 삼 일 동안이나 의념을 구체화시킨 장소천은 피곤한 표정으로 수련을 멈추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보물들을 바라보더니 결심을 굳힌 듯 오채선보옥을 들고 현천복지로 들어갔다.

* * *

의념으로 세계수가 있는 곳으로 다가간 장소천은 그 아래 푸른색으로 나부끼는 약초 잎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약초들은 생기가 넘쳐흘렀다.

게다가 이능으로 바라보니 효능까지도 외부 세상의 것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곤약토가 좋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뛰어난 줄은 장소천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이것으로 영단을 조제하면 단약의 효과가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장소천은 시선을 돌려 그가 목령주를 묻어놓았던 세계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땅 위에는 생기가 넘쳐흘렀지만 안타깝게도 세계수는 이전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줄기나 가지를 살펴봐도 생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능으로 살펴보면 죽지는 않은 것 같은데….

세계수의 가지를 쓰다듬던 장소천은 손에 든 오채선보옥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현천복지에 들어오기 전에 결심했던 것처럼 혼원신검으로 구멍을 뚫어 안에 든 공청석유를 세계수에게 부어주었다.

콸콸콸콸.

장소천이라고 세계수의 뿌리로 스며드는 공청석유가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청석유같이 천고의 영액이 아니라면 만물에 영기를 부여하고 영성을 높여주는 세계수를 살려내지는 못할 것 같았다.

실패하면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세계수가 살아난다면….

세계수는 그에게 공청석유보다 수천 배 많은 혜택을 줄 수가 있었다.

졸졸졸졸.

남은 것까지 전부 세계수에게 부어준 장소천은 또다시 세계수를 쓰다듬어 주었다.

“세계수야!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 알았지?”

세계수에게 말까지 걸어준 장소천은 미련 없이 현천복지를 빠져나왔다.

이제 그의 눈앞에 남은 것은 일곱 개의 극품 영석뿐이었다.

극품 영석은 가격을 산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쌌다.

중품 영석과 상품 영석의 차이가 백 배인 데 반해 상품 영석과 극품 영석은 거의 삼백 배에 육박할 정도였다.

아니, 가격을 비교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다른 영석은 그 안에 들어 있는 영기로 비행 법기나 설비를 운용하는 효과를 주력으로 삼는 데 반해 극품 영석은 돌 속에 담긴 영기를 수사가 직접 흡수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소소가 말한 바로는 신기의 구성 비율까지도 높다고 했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최근 장소천이 가장 고민한 것이 신력이었기 때문이다.

양손에 극품 영석을 한 개씩 든 장소천은 현천무극심법을 운기하여 영석에 담긴 기운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휘스스스스.

장소천이 운기를 시작하자 극품 영석 속에 담긴 기운이 처음에는 작은 시냇물처럼 흘러나왔다.

그러다가 물줄기가 굵어지더니 점차 강물처럼 큰 흐름으로 단전에 이어졌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도도한 흐름을 이제는 장소천조차 막을 수가 없었다.

졸졸졸졸.

시간이 지나 영석에서 빠져나오는 기운이 감소하자 이번에는 현천무극심법이 묘용을 발휘했다.

영석 속에 담긴 기운을 한 점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흡수한 것이다.

푸수헉!

영기와 신기를 모두 소실한 영석은 먼지처럼 바스러졌다.

자신의 효용가치를 다한 것이다.

“우와! 대단하구나.”

극품 영석은 과연 비싼 가치를 했다.

단 두 개를 흡수했을 뿐인데도 장소천의 단전으로는 엄청난 양의 영기가 유입되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신기의 양.

소소가 말했던 것처럼 신기가 너무 많아서 장소천의 영대 속에는 법력과 신력이 넘쳐났다.

원신의 후광이 훨씬 커지고 밝아진 것을 발견한 장소천은 갑작스레 경지 상승의 조짐을 감지했다.

연의결을 수련하여 의식이 강화된 데다가 영기와 법력까지 한꺼번에 높아진 덕분이다.

과연 극품 영석이라고 극찬하던 장소천은 또다시 영석 두 개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운기행공을 하다가 연기기 팔성 중기가 되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두 번째 영석이 거의 소진될 무렵 팔성 후기로 되었다가 마지막으로 손에 든 극품 영석 두 개는 그를 단숨에 연기기 구성 중기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고는 상승이 멈추었는데 장소천은 영석으로 경지를 올리는 것이 이제는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뭐든 한계가 있는 것이다.

아직 흡수하지 않은 극품 영석 한 개를 소중히 건곤대로 집어넣은 장소천은 신식을 펼쳐보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신식이 무려 백오십 장이나 펼쳐졌다.

뿐만 아니었다.

화룡도 전에 비할 바 없이 강해졌고 토행귀도 훨씬 신묘해진 듯싶었다.

토행귀를 몸에서 떨어트려 신식으로 바라보니 흐릿한 안개처럼 보였다.

집중하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할 정도였다.

기분이 좋아진 장소천은 토행귀를 몸에 걸치고 용암 동부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토둔술을 펼쳐 땅속을 질주하면서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의 수련 경지가 향상된 데다가 지네 요족의 토둔술에서 속도를 높이는 비법을 발견하여 토행귀에게 적용시킨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쉽게 당하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자 장소천은 대담하게 복마동 방향으로 나아갔다.

사부와 사조.

그리고 태현국의 고수들이 몰려간 곳이었다.

제33화 : 혈전(血戰)

복마동은 용암 동부에서 한참이나 위쪽에 있었다.

그 때문에 장소천은 복마동을 지나쳐 땅 밖으로 튀어 나가고 말았다.

신식을 펼쳤기에 지상과 가까워진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땅 밑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무불산 정상.

그곳에서 인족과 요족 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서였다.

혼원신검을 빼어 들고 땅 밖으로 튀어 나간 장소천은 하늘이 뻥 뚫린 것을 발견했다.

요족이 펼친 공간 결계가 무너진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라서 금천신뢰문의 고수들은 아직도 하늘을 날아다니며 뇌전으로 결계를 소멸시키고 있었다.

결계에 작용하는 천지법칙의 기운을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뇌전의 기운으로 불태워 소멸시키는 것이다.

덕분에 결계 안으로 인족들이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변화였기에 장소천은 비천신기를 번뜩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화룡의 화신을 소환시켜 결계 안에 있는 요족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르.

화룡이 입 밖으로 화염을 토해내자 요족 한 명이 불길에 휩싸였다.

그런데 불길에 휩싸이고도 요족은 당황하거나 쓰러지지 않았다.

불이 붙은 채로 장소천에게 날아와 커다란 도끼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도끼에 담긴 요력을 감안하면 놈의 경지는 인요급 후기.

그런데도 장소천은 도망치지 않고 소요검법을 펼쳐 용감하게 도끼에 맞섰다.

스스스스스.

이능으로 도끼를 피해낸 장소천의 신형이 갑자기 빨라졌다.

법기인 운보혜의 효능을 발휘한 것이다.

서걱!

요족에게 가까이 접근했던 장소천은 혼원신검을 휘둘러 놈의 가슴을 길게 갈랐다.

하지만 아쉽게도 너무 얕았다.

장소천이 바짝 접근하자 요수의 몸에서 빛살 같은 광채가 튀어나온 때문이다.

까앙!

혼원신검으로 광채를 쳐낸 장소천은 그것이 암기였음을 발견했다.

놈의 대응 능력에 찬사를 보냈지만 이변은 그 후에 일어났다.

화르르르르.

화룡이 뿜어낸 화염이 온몸을 덮어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도끼를 들고 달려들었던 요족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러다가 가슴이 새카맣게 변해 땅에 쓰러져 죽었다.

혼원신검으로 요족의 가슴을 들춰보았던 장소천은 뒤늦게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요족은 화염을 막아주는 호신 법기를 걸치고 있었다.

그 성능이 뛰어나서 화룡의 불길조차 막아냈는데 혼원신검에 법기가 찢기면서 불타 죽은 것이다.

화룡의 위력이 예상외로 강력하자 장소천은 조금 더 공격적으로 요족들을 상대했다.

비천신기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용비봉무결로 기습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극품 영석에 담긴 신기를 여섯 개나 흡수한 장소천이었다.

원신의 후광도 이제는 많이 밝아져서 더 이상은 신력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다만 신위는 아직도 발현되지 않았다.

그래도 신력이 늘어나서인지 용비봉무결의 위력이 놀라울 만큼 높아졌다.

쿠웨엑!

자신보다 경지가 높은 요족을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목뒤에 구멍을 뚫어 놓은 장소천은 화룡에게 마무리를 부탁했다.

그러다가 땅속에서 뻗어 나온 도기(刀氣)에 인족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발견했다.

지네 요족이었다.

토행귀를 불러 땅속으로 들어간 장소천은 암살자처럼 은밀하게 움직이며 지네 요족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경지가 높은 지네 요족을 만나 한동안 고전했지만 놈을 지하에 있는 동굴로 유인하자 승부는 쉽게 결정되었다.

화르르르르르.

장소천이 동굴 속에 풀어놓은 화룡이 지네 요족을 불덩이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서걱.

혼원신검으로 요족의 목을 잘라낸 장소천은 다시금 지상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면서 땅속을 종횡무진하며 남은 지네 요족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견디다 못한 지네족이 물러나자 장소천은 또다시 지상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비천신기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지상에 있는 요족들과 힘겨운 사투를 이어갔다.

“탐랑족이다.”

곰처럼 생긴 요족과 싸우던 장소천은 회색 늑대가 눈에 보이자 한 장밖에 남지 않은 뇌전부를 사용했다.

그리고 화룡에게 뒷수습을 맡기고는 득달같이 몸을 날려 늑대 인간을 공격했다.

혼원신검이 날아오자 늑대 인간은 손을 뻗어 검날을 움켜쥐었다.

혼원신검이 법기가 아닌 것을 간파한 것이다.

장소천이 상대하는 늑대 인간은 일시적으로 신체의 특정 부위를 쇠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신통이 있었다.

그런 능력이 있었기에 이처럼 대담하게 혼원신검을 탈취하려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늑대 인간의 실수였다.

휘리릭!

혼원신검이 빙글 회전하자 늑대 인간의 팔목은 썩은 나뭇가지처럼 잘려 나갔다.

혼원신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여세를 몰아 요족의 심장 부위로 날아갔는데 그때는 늑대 인간도 이미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다.

취리릿!

늑대 인간과 장소천의 신형이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같은 방향.

게다가 장소천은 운보혜를 운용하여 순간 속도를 증가시킨 상태였다.

푸우욱!

혼원신검이 늑대 인간의 가슴으로 파고들어 심장을 두 조각으로 만들었다.

멈칫!

심장이 꿰뚫린 늑대 인간은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 순간.

늑대 인간의 가슴에서 혼원신검을 뽑아낸 장소천이 검을 크게 휘둘러 놈의 목을 잘라냈다.

서걱!

툭.

목이 잘린 늑대 인간은 주춤거리며 뒤로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

그러다가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쿠웅! 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회색 늑대와의 대결에서 승리하자 장소천은 자신의 실력이 많이 늘었음을 실감했다.

가슴속에서 웅심이 뻗쳐 나온 장소천은 비천신기를 활짝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복마동이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쉬리릿!

암기가 날아오면 비천신기로 막아냈는데 한번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 허공에서 나뒹군 적도 있었다.

촤라라락!

장소천에게 암기를 날렸던 요족이 이번에는 하늘로 날아올라 장소천에게 거대한 그물을 내던졌다.

그 안에 갇히면 신조차 빠져나올 수 없다는 봉신여의망이었다.

법기는 신통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장소천 주위로 무려 백장을 뻗어나가 순식간에 장소천을 가두었다.

하지만 장소천에게는 혼원신검이 있었다.

서걱!

혼원신검이 번쩍이자 그물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았다.

어억!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굳혔던 요족은 순간적으로 방심을 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두 다리가 잘려 바닥으로 쓰러졌다.

손으로 바닥을 짚고 비명을 지르면서 날뛰는 요족을 뒤로 하고 장소천은 다시금 복마동으로 날아갔다.

그러다가 서서히 표정이 굳어졌다.

복마동에 근접할수록 적들의 실력도 함께 높아졌는데 입구 근처에는 장소천이 상대할 수 없는 고수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은빛 늑대도 십여 마리나 있었고 장로급 요족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스스스스스.

흑봉족의 요족 한 명은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그러면서 인족의 공격을 피하더니 허공 속에서 연기처럼 나타나 칼로 인간의 가슴을 후벼 팠다.

끄어억!

죽어가던 인족의 손이 흔들리자 흑봉족 고수의 눈이 몽롱하게 변했다.

그러다가 얼굴부터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크크크큭.

기괴한 웃음을 지은 인족도 손에 독분을 움켜쥔 채로 결국에는 고개를 떨쳤다.

인족이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한 가지라도 특출난 재주가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보다 더 뛰어난 요족들이 사방 천지에 널려 있었다.

특히나 복마동 입구를 지키는 요족들의 실력은 하나같이 뛰어났다.

인족의 연허기 고수조차 그들의 포위망을 쉽사리 뚫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쒜에에에엑!

콰쾅!

그런데도 가끔씩 요족들의 포위망을 뚫고 복마동 안으로 들어가는 용자들이 있었다.

거대 종문의 장로급 고수.

아니라도 심산유곡에서 은둔하며 도를 닦던 절세의 고수들이었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요족들을 뚫고 복마동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장소천은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굳이 입구로 들어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츠팟.

비천신기를 거둔 장소천은 지상으로 내려와 토행귀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토둔술을 펼쳐 땅속으로 들어갔다.

땅속으로 들어간 장소천은 이내 커다란 난관에 부딪혔다.

복마동 방향으로 강력한 결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번쩍!

츠츠츠츠.

결계 주위로 뇌기까지 일렁이자 장소천은 결계에서 멀리 물러났다.

“다시 위로 올라갈까?”

그래 봐야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땅속에 서 있는 것도 방법은 아니라서 장소천은 위로 올라가서 방법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때였다.

슈슈슈슈슛!

누군가 토둔술을 펼쳐 장소천이 있는 방향으로 다가왔다.

‘이거 봐라.’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지네 요족임을 발견한 장소천은 은밀하게 녀석을 따라갔다.

지네 요족의 수련 경지는 장소천보다도 낮았다.

하지만 결계를 해진하는 능력은 사형인 상관천세보다도 더 뛰어난 것 같았다.

순식간에 서너 개의 결계를 통과한 지네 요족은 결국 복마동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에 있던 인족에게 발각되어 몇 번 저항하지도 못한 채 장렬하게 전사하고 말았다.

“이곳까지 데려다주어서 고맙다. 잘 가거라!”

마음속으로 놈의 명복을 빌어준 장소천은 복마동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암석을 뚫고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그러면서 신식으로 복마동 내부를 살펴보았다.

쒜에에에엑!

취릿!

꽈광!

아래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인족의 고수들이 복마동 속으로 들어와서 요족들과 싸우고 있었다.

연신기 중기 이상의 고수들.

간혹 연허기 고수도 보였지만 하나같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동굴 속에 있는 요족들의 실력은 뛰어났다.

우르르르릉,

콰앙!

연허기 고수들의 싸움에 복마동이 무너진 곳도 수십 곳이나 되었다.

하지만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간 동굴은 일부 천장이 무너져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거기서 한참을 더 내려가자 사부님과 사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꽤나 지친 표정이었다.

하지만 큰 부상은 없는 듯싶어 장소천은 일단은 안심할 수 있었다.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자 금천신뢰문의 장로들이 보였다.

금천신뢰문의 장로들이 싸우는 방식은 화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우르르르릉.

번쩍!

뇌기로 몸을 감싼 금천신뢰문의 장로들은 상대를 공격할 때 뇌심추라고 불리는 뾰족한 송곳을 사용했다.

송곳으로 상대를 가리키고 법력을 주입하면 뇌전이 흘러나와 적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렇게 죽은 요족들의 시체가 바닥에 가득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금천신뢰문의 장로들도 상태가 그렇게 좋지는 못했다.

장로 한 명은 팔 한쪽이 보이지 않았고 나머지 한 명도 법력이 소진되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쒜에에엑!

그러다가 몸에 금빛 털이 나 있는 은빛 늑대의 창이 얼굴이 하얗게 변한 장로의 가슴을 관통했다.

쿨럭!

창에 내장이 꿰뚫린 금천신뢰문의 장로는 두 눈을 부릅뜨며 뇌심추로 그를 공격한 늑대를 가리켰다.

우르르르릉.

번쩍!

그러고는 남은 법력을 전부 뇌심추로 밀어 넣어 그를 공격했던 은빛 늑대와 함께 삶을 마감했다.

그들의 싸움을 조금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장소천은 토둔술로 조금 더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경천동지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래쪽에서 싸우고 있는 것은 얼굴이 호남형으로 생긴 금빛 늑대와 선검문의 장로인 마검 풍기혁이었다.

연허기 중기의 고수인 마검 풍기혁은 태현국에서도 알아주는 검수였다.

그의 법보는 여의보검이라고 불리는 양날 검.

흔히 검보라 부르는 것으로 평시에는 영대에 있는 원영이 손에 들고 연화를 했다.

검보가 원영과 혼연일체가 되도록 의념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러다가 적이 나타나면 이마로 방출했는데 빠르고 신묘하여 상대할 자가 드물었다.

원래부터 검보는 법보 중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절기였다.

같은 경지라도 검보를 사용하면 반 정도는 우세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 수사들의 평가였다.

피릿!

여의보검이 스치고 지나가면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동굴 천장은 긴 꼬리를 끌며 아래로 내려앉았고 단단한 바닥도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허공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며 혼백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푸욱!

그러다가 은빛 광채가 상대의 혼백을 관통하면 싸움은 끝이 났다.

하지만 오늘 풍기혁이 상대하는 자는 구요국에서 엄청나게 유명한 고수였다.

탐랑족의 대공자로 이름은 태화랑.

경지는 천요급 초기로 인족으로 치면 연허기 중기에 육박하는 강자였다.

물론 인간과 요족은 수행체계가 달라 실질적인 비교는 불가능했다.

태화랑은 묵혼창이라고 불리는 검은색 법보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창을 손에 들고 직접 휘두르기를 좋아했다.

쩌어엉!

묵혼창과 여의보검이 부딪치자 천번지복 하는 굉음이 울리면서 동굴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쩌억. 쿠우우웅!

천장이 얼음처럼 갈라지며 거대한 암석이 떨어져 내리는 데에도 두 법보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둡고 휘황한 광채로 암석을 튕겨내며 잔영조차 보이지 않는 속도로 다시 상대의 법보를 공격했다.

쒜에엑!

묵혼창의 창영을 뚫고 여의보검이 빠져나왔다.

검보는 뇌전처럼 빨랐다.

그런데도 태화랑은 당황하지 않았다.

눈에서 적광을 발하며 궤적을 살펴보다가 여의보검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입을 벌려 시커먼 방패 하나를 토해냈다.

투웅!

방패를 맞고 여의보검이 튕겨 나가자 태화랑은 몸을 번뜩여 풍기혁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비술인 발톱 그림자로 풍기혁을 피로 낭자하게 만들었다.

투욱!

날아오는 여의보검을 다시 한번 방패로 튕겨낸 태화랑은 머리 위로 높게 들어 올린 묵혼창을 태산압정의 초식으로 내리쳤다.

풍기혁은 가까스로 몸을 피했지만 그 여파는 작지 않았다.

와르르르르.

가공할 요력에 복마동의 한 축이 털썩 무너져 내리고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흔들렸다.

거대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 암벽을 무너뜨리고 숨어 있던 장소천의 몸에 충격을 가했다.

멀리서 싸움을 지켜보던 장소천은 깜짝 놀라 황급히 암벽 속으로 몸을 날렸다.

희번덕.

장소천의 기척을 감지한 태화랑의 눈에서 순간적으로 기광이 번뜩였다.

휘익!

태화랑이 손을 휘젓자 금빛으로 빛나는 발톱 그림자 하나가 장소천의 뒤를 따라갔다.

제34화 : 강철 괴뢰

정체가 발각되자 장소천은 극한의 힘을 발휘하여 토둔술을 펼쳤다.

그러다가 금빛 늑대가 조영(爪影)을 날린 것을 감지하고는 화룡의 화신을 소환시켜 조영을 막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조영은 너무 빠르고 강력했다.

퍼석!

장소천이 심혈을 기울여서 키운 화룡이 거품처럼 터져 나갔다.

그나마 이를 통해 찰나의 시간이라도 얻어낸 장소천은 비천신기를 장착한 후 날개로 몸을 감쌌다.

그리고 혼원신검에 영기를 불어넣어 금빛 늑대가 날린 발톱 그림자를 내리쳤다.

휘스스스스.

혼원신검에 순간적으로 서광이 어렸지만 장소천은 그것을 미처 감지하지 못하였다.

쩌어어엉!

두 기운이 부딪치자 혼원신검을 들었던 장소천의 팔목 뼈가 우드득 부러졌다.

이어서 가슴을 망치로 두드려 맞는 충격과 함께 장소천은 뒤로 물러나며 피를 울컥 토해냈다.

우웩!

다시 고개를 숙여 핏물을 한 사발이나 토해낸 장소천은 토행귀를 운용하여 필사적으로 도망을 쳤다.

그의 비술에 적중되고도 장소천이 도망을 치자 태화랑은 의외라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입가에 냉소를 머금고 차갑게 중얼거렸다.

[흥! 네깟 놈이 도망쳐 봐야 어디까지 갈 수 있겠느냐? 백중선!]

묵혼창으로 마검 풍기혁을 가리킨 태화랑은 전음으로 지네족의 장로를 불렀다.

그러고는 종족들을 이끌고 장소천을 추적하여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했다.

“존명!”

지네 요족의 장로인 백중선이 장소천을 추적하려는 찰나.

콰아아앙!

엄청난 굉음이 복마동을 떨쳐 울리며 동굴이 통째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태화랑의 귓속으로 복마동 입구를 지키는 수하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대공자! 소요족이 강철 괴뢰들을 이끌고 쳐들어왔습니다. 법보조차 통하지 않는 괴물로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습니다.]

강철 괴뢰라는 말에 태화랑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강철 괴뢰는 소요족의 연기술이 총망라된 전략 병기로서 기계로 만들어진 요수의 몸에 소요족 전사들이 들어가서 의념으로 조종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만드는 기술은 이곳 하계의 것이 아니었다.

소문으로는 소요족이 영계의 비술을 전수하여 완성시킨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강철 괴뢰의 위력.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천요급 경지가 아니라면 상대할 수 없었다.

평범한 법보로는 손상조차 시킬 수 없는 것이다.

‘으드득. 소요족 놈들이 어떻게 알고 이곳까지 왔는지 모르겠구나.’

낮게 중얼거린 태화랑은 지네족 장로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백중선! 작전을 변경한다. 도망친 인족을 쫓지 말고 위로 올라가서 소요족의 강철 괴뢰가 땅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라!”

“존명!”

태화랑이 발 빠르게 명령을 변경했지만 지네족 족인 한 명은 벌써 장소천을 추적하고 있었다.

녀석을 부르려던 태화랑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무너지는 동굴의 잔해를 묵혼창으로 쳐내면서 빠르게 풍기혁에게 짓쳐 들었다.

강철 괴뢰들을 상대하려면 인족부터 제압해야 했기 때문이다.

* * *

한편.

태화랑의 공격에 중상을 입은 장소천은 토행귀의 능력에 의지하여 멀리 도망을 쳤다.

도망치면서 부러진 팔은 맞췄지만 냉정하게 자신을 뒤돌아보니 전력이 엄청나게 감소되어 있었다.

오른쪽 팔뼈가 부러져 검법을 펼칠 수도 없고, 자신을 지켜주었던 화룡도 소멸되어서 당분간은 소환할 수 없었다.

막장이 준 뇌전부는 다 사용했고 염화부는 위력이 너무 약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제 남은 것은 도망치는 데 사용될 운보혜와 비천신기뿐이었다.

그나마 토행귀라도 멀쩡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지네족 요족 한 명이 그를 추적해 왔다.

잔뜩 긴장한 장소천은 신식으로 놈의 경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얼굴을 잔뜩 찌푸렸는데 그를 추적하는 요족의 경지가 지요급 후기였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의 처지로는 감당할 자신이 없던 장소천은 마지막 남은 은신부를 사용했다.

그러면서 놈이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기를 학수고대했다.

“어!”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장소천을 쫓아오던 지네 요족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엉뚱한 방향으로 간 것이다.

처음부터 장소천이 목표가 아니었던 듯….

지네 요족은 유려하게 토둔술을 펼치며 장소천의 신식에서 멀어져 갔다.

수상한 기미를 감지한 장소천은 토행귀를 시켜 놈을 추적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면서 의념을 보내 시각을 공유하게 했다.

투드드드드.

장소천을 따라왔었던 지네 요족은 토둔술을 발휘하여 이름 모를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은 위험한 진법으로 보호되고 있었는데 지네 요족은 몇 차례 경험이 있는 듯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쉬잇!

시커먼 화살이 날아와 지네 요족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크윽!

화살을 맞은 지네 요족은 등 뒤에서 일곱 자루의 창을 앞으로 뿌려냈다.

그중 두 자루는 그에게 화살을 날린 어둠 속의 존재에게 날려 보내고 다섯 자루는 그를 호위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품속을 더듬어 작은 단도를 꺼내 가슴속에 박힌 화살을 뽑아냈다.

후두둑!

화살은 살촉이 양옆으로 퍼져 쉽게 빠져나오지 않았다.

억지로 힘을 주어 당기자 살도 한 움큼이나 뜯겨 나왔다.

아픔을 참고 품속에서 요상약을 꺼내 삼키려는데 갑자기 공간이 갈라지며 시커먼 요도가 튀어나와 그의 팔을 잘라냈다.

펄떡, 펄떡.

잘린 지네 요족의 팔이 땅에서 생선처럼 파닥였다.

기겁한 지네 요족은 법결을 날려 허공에 떠 있는 창을 조종했다.

쒜에에엑!

네 개의 창이 허공을 날아 요도가 튀어나왔던 공간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간 것은 한 자루뿐이었다.

크으윽!

조개처럼 오그라든 공간 속에서 희미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지만 지네 요족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창 한 자루를 손에 들고 나머지 창들은 호위병처럼 전방에 세워 놓았다.

스으윽.

지네 요족의 머리 위로 공간이 살짝 흔들렸다.

이에 지네 요족은 세 자루 창을 전부 머리 위쪽으로 날려 보냈다.

바로 그 순간.

지네 요족의 발밑이 쩌억 갈라지더니 그 안에서 흑봉족 장로 한 명이 화살을 날리며 튀어나왔다.

피릿!

창대로 날아오는 화살을 튕겨낸 지네 요족은 들고 있던 창을 회전시켜 흑봉족 장로의 가슴에 창날을 깊숙이 박아 넣었다.

하지만 흑봉족 장로는 또다시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당황한 지네 요족이 허공에 떠 있는 창들을 회수하여 자신을 호위하려는 순간….

등 뒤에서 시커먼 요도가 뻗어 나와 그의 등허리를 두 쪽으로 잘라냈다.

끄어어억!

비틀비틀.

척추가 접혀버린 지네 요족은 남은 법력을 전부 창 속으로 밀어 넣었다.

쒜에에엑!

그리고 이기어창의 수법으로 창을 날렸으나 흑봉족 장로는 또다시 공간 사이로 몸을 피했다.

투우욱!

창들이 모두 바닥으로 떨어지자 그제야 흑봉족 장로는 이면 공간에서 빠져나왔다.

“미련한 놈! 너희 지네족들이 극품 영석을 빼돌리고 있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몰살시키지 않고 남겨 둔 것은 아직 써먹을 데가 있어서일 뿐이고….”

입가에 잔인한 흉소를 지은 흑봉족 장로는 몸이 반으로 접혀 있는 지네 요족을 발로 걷어찼다.

그때였다.

죽은 줄로 알았던 지네 요족이 숙였던 머리를 들어 올리며 손에 쥔 창으로 흑봉족 장로의 가슴을 꿰뚫었다.

커헉!

기습적인 공격에 일격을 허용한 흑봉족 장로는 요도를 휘둘러 지네족 고수의 머리를 잘라냈다.

그러고는 고통에 찬 신음 소리를 뱉어내더니 손에 쥔 활을 건곤대로 집어넣었다.

“비… 빌어먹을 놈이 목숨을 내놓고 간교한 수작을 부렸을 줄이야….”

안일하게 대응했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던 흑봉족 장로도 결국에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때였다.

와르르르르!

동굴 천장이 무너지며 커다란 발 하나가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이어서 몸체와 팔이 드러나더니 금모신원을 닮은 괴뢰 한 구가 형체를 드러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오 장은 될 듯한 강철 괴뢰였다.

강철 괴뢰는 한 구가 아니었다.

짧은 순간 두 구가 더 나타났다.

그중 한 구는 인간을 닮았고 나머지 한 구는 요족이지만 머리가 두 개였다.

동굴 속에 나타난 강철 괴뢰들은 찾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쿠웅!

벽면을 치고 바닥을 부수며 무언가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동굴 속을 뒤지고 헤집던 강철 괴뢰들이 드디어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공간이 뒤틀려 주위와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영역이었다.

진법이 펼쳐진 것을 감지한 인간 모양의 강철 괴뢰가 옆구리에 걸린 장도를 끄집어냈다.

서걱!

그리고 장도로 진법을 갈라냈다.

하지만 진법은 쉽사리 해진되지 않았다.

장도에 실린 요력에 진세가 갈라져서 잠시나마 내부 모습을 보였다가도 금세 제 모습을 회복했다.

진법 안에 극품 영석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한 강철 괴뢰들은 지닌 재간을 전부 진법 해진에 쏟아부었다.

그러다 보니….

토행귀가 슬금슬금 움직여 흑봉족 장로의 허리춤에 걸린 건곤대를 탈취하는 것을 미처 감지하지 못하였다.

흑봉족 장로의 건곤대를 취한 토행귀는 또다시 암벽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눈길로 동부 안을 바라보았는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드르르륵.

인간을 닮은 강철 괴뢰의 이마가 갈라지더니, 그 안에서 손가락만큼 작은 요족 한 명이 빠져나왔다.

등 뒤에 투명한 날개가 달린 요족은 진법 앞으로 날아갔다.

그러고는 눈앞에 펼쳐진 진법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땅에 무언가를 그려 오행구궁의 수를 계산했다.

계산이 모두 끝났는지….

건곤대 속에서 수십 개의 은빛 깃발을 꺼낸 요족은 그것들을 진법 속으로 밀어 넣었다.

중얼중얼.

작은 요족이 법결을 외워 깃발을 활성화시키자 진법 속에서 뇌전이 일고 천지풍운의 기운이 발생했다.

퍼억!

그러다가 요족이 던진 깃발 몇 개가 찢기고 부러졌다.

얼굴이 핼쑥하게 변한 요족은 그런데도 법결을 풀지 않고 끝까지 해진에 집중했다.

그 결과.

마침내 진법이 풀려 그 안에 있던 보물들이 눈앞에 드러났다.

진법을 푼 요족이 강철 괴뢰에 올라타고 진법 속에 감추어져 있던 극품 영석들을 수거하는 사이 또다시 이변이 벌어졌다.

콰앙!

동굴이 통째로 터져 나가며 태화랑과 풍기혁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들이 이곳까지 온 방법은 토둔술이 아니었다.

강력한 기운과 법보로 흙과 암벽을 터트리며 무식하게 땅속을 뚫고 온 것이었다.

콰아앙!

태화랑이 묵혼창을 내뻗자 거대한 암벽이 자갈처럼 부서졌고 풍기혁의 여의보검은 자갈을 모래로 만들었다.

가공할 법보의 위력이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팔 한쪽이 날아간 금천신뢰문의 장로와 장소천의 사부인 무극진인, 그리고 광음 사조까지도 동굴 속으로 들어왔다.

그 뒤로 은빛 늑대들과 인족의 고수들까지 한꺼번에 들이닥치자 동굴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그 와중에.

“극품 영석이다!”

태화랑이 강철 괴뢰들과 싸우고 있는 근방에서 극품 영석이 들어 있는 진법이 중인들의 시야에 노출되었다.

눈이 벌겋게 변한 수사들은 진법으로 달려가서 강력한 기운을 발산시켰고….

강철 괴뢰들이 미처 수거하지 못한 극품 영석들은 천지사방으로 흩어졌다.

스스스스스.

인족과 요족들이 보물을 두고 각축전을 벌이는 사이에 장소천은 의념을 발해 토행귀를 불러들였다.

손을 뻗어 건곤대를 챙긴 장소천은 토행귀를 뒤집어쓰고 다시 토둔술을 발휘했다.

그리고 땅 밖으로 나와 비천신기를 활짝 펼쳤다.

장소천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지상을 바라보니 땅 위에서도 강철 괴뢰 두 구가 요족들과 싸우고 있었다.

직접 본 강철 괴뢰는 너무 강했다.

괴뢰 두 구가 수많은 요족들을 상대하면서도 오히려 요족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요족들의 신통과 법기에 난타를 당하면서도 강철 괴뢰들은 착실히 요족들의 숫자를 줄였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발밑에는 요족들의 피와 시체가 널려 있었다.

콰아아앙!

화산이라도 폭발한 듯 갑자기 지하에서 거대한 폭음이 나며 땅거죽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흙과 바위가 폭풍처럼 터져 나오고 거대한 먼지구름이 아침 햇살처럼 일어나며 무불산 정상을 뒤덮었다.

그 사이로.

두터운 먼지구름을 뚫고 커다란 비행 법기 한 대가 유유히 빠져나왔다.

소요족의 비행 법기였다.

타앗!

소요족의 비행 법기가 나타나자 땅 위에서 요족들과 싸우고 있던 강철 괴뢰가 하늘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비행 법기에 내려서더니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멈추어라!”

그 뒤로 흉악하게 생긴 늑대 머리를 단 비행 법기가 땅 밑에서 솟아 나와 앞서간 물체를 뒤쫓았다.

그것을 본 요족들은 일제히 몸을 날려 배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몇 명은 건곤대에서 비행 법기를 꺼내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비행 법기가 없는 요족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부리나케 산 밑으로 달아났지만 잠시 후 엄청난 함성과 함께 다시 산 위로 쫓겨 왔다.

그 뒤로.

연허기 중기 경지인 무천 사조와 극천문의 제자들이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산 위로 치고 올라온 극천문의 수사들은 위에 있던 인족들과 힘을 합쳐 요족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채약당의 일조 조원들도 끼어 있었다.

제35화 : 세계수에 싹이 돋아나다

휘이익!

요족들을 공격하던 일조 조원들은 며칠 동안 실종되었던 장소천이 허공에서 뛰어내리자 깜짝 놀랐다.

그러다가 장소천의 경지가 또다시 높아진 것을 발견했다.

곽무진이 장소천에게 말했다.

“장 사제는 어디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만 하면 경지가 높아지는군. 어디 갔었는지는 나중에 말하고 일단은 요족들부터 쳐 없애자.”

“알겠습니다. 그런데 산 아래쪽에 매복하신 지는 오래되었습니까?”

장소천이 생각하기에 극천문의 문도들이 나타난 시점이 매우 기묘했다.

요족들이 설칠 때에는 털끝 하나 보이지 않더니만….

탐랑족의 주력이 떠나자마자 득달같이 떨쳐 일어나 무극봉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나중에 말해주겠다. 그런데 팔이 불편한 것 같은데…. 괜찮으냐?”

장소천이 왼손으로 혼원신검을 다루자 곽무진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이에 장소천은 오른쪽 팔을 조금씩 움직여보았다.

적시에 뼈를 맞추어 움직이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지만 그래도 검법을 펼치기에는 아직 무리였다.

“조금 금이 간 정도로 그리 큰 부상은 아닙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취릿!

그때 땅속에 숨어 있던 요족 한 명이 날카로운 반월도를 휘두르며 튀어나왔다.

놈의 목표는 장소천이었다.

그러자 곽무진이 장소천의 앞을 막아서며 단천무극도로 요족의 반월도와 머리를 한꺼번에 잘라버렸다.

포효를 터트리지는 않았지만 곽무진이 싸우는 모습은 요족을 방불케 했다.

구요국에 성성이 종족이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현재 곽무진의 수련 경지는 십일성 중기.

최근의 경지 향상 속도라면 연신기까지는 무난히 올라갈 것이라는 게 중인들의 평가였다.

화르르르르.

상관천세의 불 뱀도 큰 활약을 했지만 장소천이 보기에는 위력이 조금 약한 것 같았다.

그의 은혜를 생각하면 조언이라도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장소천은 막장 곁으로 다가갔다.

“막장아!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일이냐?”

“뭐가?”

“극천문에서 희생을 무릅쓰고 굳이 무불산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말을 하다 말고 장소천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무불산을 점령하면 극천문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적지 않을 것 같았다.

요족들이 복마동에 있는 극품 영석을 다 쓸어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극품 영석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극품 영석이 있다면 상품 영석이나 중품 영석은 더 많을 것이다.

거대 종문에서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분명 고수들을 보내 자신들의 지분을 요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력이 약한 극천문은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형식적으로나마 무불산을 점령하면 향후 복마동 아래 묻혀 있을 영석 쟁탈전에서 극천문은 큰소리를 칠 수 있었다.

‘너희들은 기껏 서너 명을 보내 요족과 싸웠지만, 우리 극천문은 전 문도가 죽음을 무릅쓰고 나서서 요족들을 물리치고 복마동을 지켜냈다고….’

그러면서 극천문의 활약을 강조하면 최소 거대 종문과 유사한 수준으로라도 지분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장문진인의 계략을 짐작하게 된 장소천은 소름이 돋는다는 표정으로 막장에게 말했다.

“장문진인은 큰 계획이 있으셨구나?”

“그렇지.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극천문이 등장할 시점이었다.”

“그랬을 것 같다. 너무 빠르게 등장하면 요족의 역습을 받아 피해가 커질 수 있고, 늦으면 우리의 희생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가 없으니….”

“킥킥! 조장만 잔머리가 좋은 줄로 알았는데, 장문진인은 몇 수 위에 계시더라. 역시 우리 극천문에는 인재가 많아….”

“매복하느라 고생했겠구나?”

“그것이 향후 우리 극천문을 강하게 할 것이다. 그것 말고 이렇게 소소하게 얻는 이익도 많고….”

막장이 앞에 죽어 있는 고계 요족의 허리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당연히 있어야 할 건곤대가 보이지 않았다.

씨익!

웃음을 지은 막장이 뇌전부를 땅속으로 던져 깊은 구덩이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구덩이 아래로 뛰어 내려가 검으로 바닥을 파헤치더니 건곤대 하나를 찾아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았다.

죽은 요족 장로가 신통력으로 땅속에 숨겨놓았던 건곤대를 기어코 찾아낸 것이다.

우와와와!

자신들만 버림받았다는 배신감에 남은 요족들은 변변히 싸우지도 못했다.

지닌 병기를 땅에 버리고 두 손을 들어 올리는 요족들이 속출했다.

결국 싸움은 인족들의 승리로 끝이 났고….

태상장로 세 분은 복마동 속으로 내려가 남아 있는 잔당을 전부 없애버렸다.

* * *

싸움이 끝나고도 극천문의 문도들은 한동안 복마동 입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호국성을 지키던 호성군만 남기고 전원 철수했는데 그때는 싸움이 벌어진 지 한 달이 지나서였다.

그사이 장소천은 사부님과 조원들에게 자신이 사라졌던 이유를 말해주었다.

우연히 요족들의 말을 엿들었는데, 금련봉 아래쪽에 용암이 흐르는 용맥이 있으며 그것을 터트리면 극천문을 멸문시킬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 그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죽였다는 말이었다.

무극진인의 말을 들은 장문진인은 토둔술을 익힌 문도 한 사람을 땅속으로 보내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장소천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이 확인되자 토둔술에 능한 종문의 수사들을 극비리에 초청하여 화맥을 아예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버렸다.

재원은 복마동에서 채취한 상품 영석으로 충당했다.

공사를 마무리한 장문진인은 장소천에게 문파의 위기를 막아주었다며 엄청난 양의 공헌점수를 부여했다.

이제 장소천이 가지고 있는 옥패에는 공헌점수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 장소천도 잘 모를 정도였다.

투욱!

옥패를 건곤대에 집어넣은 장소천은 부러진 팔목 뼈가 회복되는 동안에 화 속성 화신을 만들었다.

그런데 장소천이 이번에 새로 만들어낸 화신은 화룡이 아니었다.

주작.

사신도(四神圖)에 나오는 불을 다스리는 상상 속의 새.

입으로 불을 뿜고 화염의 깃털을 암기처럼 발사하는 불사조였다.

복마동을 철수하여 자신의 숙소로 돌아온 장소천은 죽은 흑봉족 장로의 건곤대를 열었다가 쾌재를 불렀다.

그 안에 상품 영석이 백 개나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건곤대 안에는 장소천이 그토록 염원하던 공간비술서 한 권이 들어 있었다.

천공비록(天空秘錄).

책의 제목을 확인한 장소천은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천천히 내뱉으며 긴장된 기색으로 책자를 넘겼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는 장소천의 얼굴이 갈수록 기이하게 변했다.

잔뜩 흥분한 표정이었다.

천공비록에는 비술을 펼쳐 이계 공간으로 들어가는 진결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 말고도 허공중에 몸을 숨기고 일정한 영역의 공간을 장악하며, 공간을 건너뛰는 순간 이동의 비술까지….

문제는 상기의 비술을 펼치는 것이 모두 신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법력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자신에게 신력을 키우는 비법을 알려준 은단비에 대한 고마움이 장소천의 가슴으로 파도처럼 밀려왔다.

두근두근.

자신이 엄청난 기연을 얻었음을 알게 된 장소천은 책자를 덮고 천천히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구요국에서 가장 위험한 종족은 탐랑족이 아니라 흑봉족임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장소천은 천공비록을 수련했다.

그중에서도 허공중에 몸을 숨기고 공간을 건너뛰는 순간 이동의 비술을 집중적으로 수련했다.

그 결과.

두 달이 지났을 때쯤에는 두 가지 비술을 어설프게나마 흉내 낼 수 있었다.

두 달 동안 장소천이 천공비록만 수련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요족의 건곤대에서 얻은 단방을 보고 석원의 내단을 주재료로 하는 요석단까지 만들었다.

요수의 내단을 주재료로 하는 영단은 장소천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단방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돌 원숭이의 내단도 불순물을 최대한 제거하였다.

그 과정에서 현천복지로 들어가 약초도 채취하였고 그것들을 다듬고 건조하여 연단하기 쉽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단 세 번 만에 연단에 성공했는데 문제는 호리병이었다.

장소천이 신력까지도 주입시켜 영단을 만들었건만 또다시 호리병은 영단을 거부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그동안의 경험으로 장소천은 호리병이 한 번 연화시킨 영단은 두 번 다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약효를 발현시킨 영단만을 받아들였다.

그 말은 영단의 약효를 증가시킬 수 있는 요인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말이었다.

고민하던 장소천의 머릿속으로 뭔가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고개를 저은 장소천은 건곤대에서 정방형의 검은색 돌을 꺼냈다.

그리고 신력을 주입하여 현천복지로 들어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세계수 나뭇가지에 초록색 새순 하나가 돋아나 있었다.

이제 막 돋아난 듯 새순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무 주위는 영화로운 기운으로 가득했다.

“와아!”

세계수 아래쪽에서 자라고 있는 약초들을 본 장소천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만물에 영기를 부여하여 영성을 높여준다는 세계수가 살아나자 약초들의 기운이 마치 영초처럼 높아졌다.

두 달 전 채취했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것 때문인가?”

호리병에 있는 절세 미녀가 이곳의 상황까지 알 리야 없을 터이지만 장소천은 홀린 듯이 약초들을 뽑았다.

그리고 현천복지 밖으로 빠져나가 또다시 연단을 실시했다.

연단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장소천은 처음부터 신력을 사용했다.

그리고 심혈을 기울여 연단한 결과 영롱한 요석단이 네 알이나 만들어졌다.

그중 하나를 호리병 속에 집어넣었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문제 없이 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안도한 장소천은 남은 세 개의 요석단은 건곤대 속에 집어넣었다.

요족의 단방으로 만들어진 영단이 인족에게 효과가 높다는 것은 장소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복용할 것이 아니었다.

* * *

“조장님! 이번에는 바닷가로 영초를 채취하러 가신다면서요?”

“그래. 이번에 가기로 한 곳은 태현국 끝자락에 있는 다도해이다.”

“다도해요?”

“섬이 많아서 다도해라고 부르지만 어차피 그곳도 천하해의 일부이다. 그곳에 용린자엽초라는 귀한 영초가 있다고 들었다.”

“바닷속에요?”

“용린자엽초는 심해 깊숙한 곳에서만 자란다. 그것을 채취하면 사부께서 용화단이라는 영단을 조제하실 것이다.”

사부께서는 과거 장소천에게 극천문의 단방서를 주신 적이 있었다.

그래서 장소천은 용린자엽초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용화단을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이 극천문의 단방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부와 자신만이 아는 비밀.

그래서 장소천은 표정 관리를 하여야 했다.

“와! 저는 태어나서 바다는 처음 가보는 것 같아요.”

“왜? 소천이 너도 가려고?”

“그럼요. 사부님께서 요즘은 연단을 많이 하지 않으시잖아요. 이 기회에 바다도 구경하고, 영초도 채취하고…. 참! 여기서 천하해까지는 얼마나 멀어요?”

“비행 법기를 타고 보름 정도를 가야 한다.”

“엄청 머네요. 그래도 사부님께서 하사하신 비행 법기를 타고 가면 며칠 정도는 단축할 수 있잖아요?”

“그것을 타고 가는 것이 그 시간이다. 사제는 요즘 꽤 바쁜 것 같은데?”

곽무진의 말처럼 최근 석 달 동안 장소천은 엄청나게 바쁘게 지냈었다.

천공비록에 실린 공간비술을 수련하고 요석단을 연단하느라 조원들과 가까이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는 괜찮아요. 그런데 출발은 언제 하시는 거예요?”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예정이다. 소천이 너는 가려거든 사부님께 허락을 맡고 오너라.”

장소천은 같은 일조의 조원이지만 그들과 다른 신분도 가지고 있었다.

사부님의 적전제자.

그래서 멀리 원정을 떠날 적에는 반드시 사부님께 아뢰고 허락을 받아야 했다.

“저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조장님! 내일 아침에 뵐게요.”

사부님께 허락을 맡을 자신이 있는지 장소천은 부리나케 달려갔다.

제36화 : 다도해로 채약을 떠나다

부우우우웅.

장소천을 비롯한 채약당 일조 조원들은 비행 법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중간에 쉬어가자는 장소천의 요청에 작은 산등성이에 내려섰다.

다행히 비행 법기가 착륙한 지점에 커다란 동굴이 하나 있었다.

“장 사제! 도대체 쉬어 가자는 이유가 무엇인가? 영단은 또 무엇이고?”

“하하하! 제가 사형들의 도움에 감사를 드리기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하였습니다. 금련산에 있을 때에는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워 선뜻 전해 줄 수가 없었는데, 이제 밖으로 나왔으니 한시라도 빨리 전해 주고 싶습니다.”

“선물이면 요족 구역에 갔다 와서 이미 주지 않았느냐? 그때 네가 선물한 기신단을 먹고 조원들 모두가 경지 향상을 이루었다.”

“그것보다도 더 귀한 영단입니다. 요석단이라고 은단비 공주님에게 선물로 받은 것인데 그쪽에서는 성단이라고 불린다고 들었습니다.”

“성단이라고? 그런 귀한 것을 왜 네게 주었느냐?”

“제가 공주님께서 필요로 하는 영초를 찾아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딱 세 개밖에 없습니다.”

장소천이 조장과 부조장 그리고 한 사저에게 목갑 하나씩을 건네주었다.

“소천아! 나는?”

“너는 따로 줄 것이 있으니까 잠시 기다려라.”

막장은 수련 경지가 낮아 요석단을 복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장소천은 막장에게는 다른 것을 주기로 결심했다.

극품 영석.

수중에 단 한 개밖에 없는 영석이었다.

목갑을 연 상관천세가 장소천에게 물었다.

“사제! 이것이 성단이라고 불릴 정도로 영험한 것이라면 사제가 직접 복용하지 왜 우리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냐? 아무리 사형제지간이라도 해도 너무 과한 것 아닌가?”

‘허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장소천이 상관천세를 바라보았다.

그 자신은 이것보다 수배는 귀중한 술법서를 장난스럽게 건네주었으면서….

“사형!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제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여기에 계신 분들과 사부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함께 강해져야지요.”

“…고맙다.”

“그런 말 하실 것 없습니다. 지금은 다른 생각 하시지 말고 빨리 성단을 복용해서 경지를 올리시길 바랍니다.”

장소천이 세 사람에게 건네준 것은 세계수가 싹을 피운 이후로 채취했던 약초로 만든 최상품의 영단이었다.

장소천의 건곤대에는 약효가 조금 떨어지는 요석단도 꽤 많았다.

하지만 그것들을 사형들에게 줄 수는 없었다.

이왕에 주는 것.

최고의 것을 나누어주고 싶었다.

“이곳에서 바로 복용하라는 말이냐?”

“우리 일조에 철칙이 있지 않습니까? 아끼다가 똥 된다.”

막장이 뒤를 이었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말도 있다.”

“막장의 말이 맞습니다. 오늘 강해지지 않으면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신 사람이 조장님 아닙니까? 제가 보위를 서겠습니다.”

장소천이 은근히 압박하자 조원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사형과 사저가 운기조식에 들어가자 장소천은 막장을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손에 극품 영석을 쥐여 주었다.

“뭐냐?"

[쉬! 극품 영석. 공짜다.]

[뭐라고! 이것이 극품 영석이라는 말이냐?]

[그래. 내가 실종되었던 이유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극천문을 탐색하던 요족들을 죽였는데, 그놈들의 건곤대에서 얻은 것이다.]

장소천의 전음에 막장은 떨리는 눈빛으로 자신의 손에 들린 영석을 바라보았다.

극품 영석의 가치는 너무 높아서 자신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을 공짜라고 내밀다니….

감동에 찬 눈길로 막장이 장소천에게 물었다.

[소천아! 극품 영석은 안에 담긴 영기를 직접 흡수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이냐?]

[물론이다. 이번에 내 경지가 올라간 것도 사실은 극품 영석 때문이었다. 너처럼 수련 경지가 낮은 사람은 한 개만 흡수해도 경지를 한두 단계는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냐?]

[그렇지 않으면 극품 영석이 왜 그렇게 비싸겠냐? 이번에 극천문에서 복마동에 가서 얻은 영석도 네 개밖에 안 된다고 하더라.]

[나도 그렇게 들었다. 그중에 한 개는 팔아서 법기를 만들 연기재료를 구입했고, 남은 세 개는 태상장로들에게 하나씩 배분하였다고 들었다.]

막장의 말에 장소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제 채약을 떠나겠다며 무극진인을 찾아갔는데 사부께서 그에게 극품 영석을 하사하였다.

사문에서 나누어준 영석을 제자에게 내민 것이다.

그래서 방금 막장에게 말한 것처럼 자신도 우연히 극품 영석을 하나 얻어서 영기를 흡수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부께서 내민 영석은 극구 사양했다.

장소천의 고집을 꺾지 못한 사부는 껄껄 웃으며 장소천에게 복록이 많은 녀석이라고 말했었다.

잠시 사부를 생각했던 장소천이 막장에게 전음을 보냈다.

[막장아! 너도 빨리 극품 영석 속의 영기를 흡수해라. 연기기 육성에 오르게 되면 예전에 내가 준 기신단으로 또다시 경지 향상을 노릴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러려고 했다. 거듭 말하지만 고맙다.]

[고맙기는…. 네가 준 부적이 아니었으면 극품 영석을 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너는 그것을 취할 자격이 있다.]

[정말이냐?]

막장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자신이 준 부적들이 장소천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듣자 마음의 부담이 준 것이다.

막장의 현재 경지는 연기기 사성 후기였다.

사형들이 요석단을 먹고 운기조식을 하는 것을 보고 막장도 극품 영석을 손에 들고 곧바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

장소천이 말했던 것처럼 수련 경지가 낮은 막장은 극품 영석의 효과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다.

황정단 이후로는 꿈쩍도 하지 않던 경지가 갑자기 오성으로 오르더니 거기서 진일보하여 마침내 연기기 오성 중기에 이르렀다.

뛸 듯이 기뻐한 막장은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기 육성이 되었다면 기신단을 복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영근체인 자신이 연기기 오성 중기가 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 정도면 뇌전부의 위력을 한층 높일 수가 있다고 생각하며 막장은 치솟는 욕념을 누그러트렸다.

조원들을 보위하던 장소천도 막장이 연기기 오성 중기에서 그치자 아쉽다는 표정을 보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환생하여 이영근체를 벗어난 것이 정말로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그가 여전히 이영근체였다면….

아무리 많은 기연을 얻어도 지금과 같은 경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었다.

나머지 조원들 중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본 것은 사영근체인 한 사저였다.

그녀는 팔성 후기에서 십성 중기로 단숨에 이 단계를 뛰어올랐다.

상관천세는 십성 초기.

조장인 곽무진조차 십이성 초기로 올랐으니 과연 요석단의 효과는 경이적이었다.

운기조식에서 깨어난 조원들은 갑작스레 올라간 경지에 다들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장소천은 경지를 안정시켜야 한다며 추가적인 운기조식을 제안했고….

반나절이 더 지나서야 한 명씩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가장 먼저 일어난 한여옥이 장소천에게 다가왔다.

“장 사제! 고마워.”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받기만 해서 어떡하지? 나는 딱히 줄 것도 없는데….”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제가 어렸을 때 저를 돌봐주고 함께 놀아주셨잖아요. 한 사저님은 저에게 그냥 사저가 아니에요.”

“그러면?”

“누님이죠. 이제 그 은혜를 조금 갚는 것뿐이에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이번에는 상관천세가 깨어났다.

그가 한여옥의 경지를 살펴보고는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의 경지가 처음으로 역전된 것이다.

장소천이 웃으며 사형을 위로해 주었다.

“부조장님! 하늘이 한 사저님을 어여삐 여겨 사영근체로 태어나게 하셨는데 어쩌겠어요. 사형께서 적응하셔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겠지?”

피식!

사저보다 경지가 낮아졌지만 뭐가 그리도 좋은지 상관천세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장소천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가장 늦게 자리에서 일어난 곽무진은 자신의 경지 상승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멍하니 동굴 천장을 바라보더니 성큼성큼 장소천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장소천을 덥석 껴안으며 성성이 같은 얼굴을 마구 비볐다.

“으악! 조장님. 따가워요.”

“하하하! 그래도 조금만 참아라.”

부비부비.

장소천을 내려놓은 곽무진이 그에게 물었다.

“네가 성단이라고 말했지만 믿지 않았는데 이처럼 효과가 뛰어날 줄은 몰랐다. 세상에 이처럼 영험한 영단이 있을 줄이야…. 영단을 얻으면서 요족의 공주에게 약점이라도 잡힌 것은 아니지?”

“그런 일은 없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경지 상승을 두고 누가 시비라도 걸면, 깊은 바닷속에서 단체로 이상한 풀을 뜯어 먹었는데 갑자기 경지가 상승되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곽무진은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가 원했던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잘 들었지. 우리는 요석단을 본 적조차 없다. 이번에 경지 상승을 이룬 것은 바닷속에서 기이한 풀을 뜯어 먹은 때문이고….”

다들 고개를 끄덕이자 곽무진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믿는 것이다.

조원들을 태우고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 비행 법기는 순조로운 운행을 계속했다.

비행 법기 안에서 장소천은 생각에 잠겼다.

최근에 장소천은 몸과 마음을 연단하여야 한다는 의성의 말에 약간의 깨우침을 얻었다.

연의결 덕분이었다.

사물에 대한 깊은 사색과 궁리는 그의 마음을 한껏 여유롭게 만들었고 신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관찰하면서 몸을 어떻게 연단할 것인지 토대를 구축했다.

그래서인지 몸은 한결 가벼워지고 심경도 아침 이슬처럼 맑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스르릉.

기분이 고양된 장소천은 혼원신검을 반쯤 빼어 들고 검날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장소천이 그동안 많은 기연을 얻었지만 그가 생각하기로 가장 대단한 것은 바로 이 혼원신검과 검법인 용비봉무결이었다.

특히나 혼원신검은 너무 신비로웠다.

이 검은 사악하고 요사스러운 것과는 상극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매우 날카로워 영기를 주입하지 않아도 베지 못할 것이 없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혼원신검의 정체가 궁금하여 신식으로 살펴보았는데 신식이 검날 안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안개 같은 것이 신식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보다 더욱 기이한 것은 혼원신검이 장소천에게 매우 친숙하다는 것이었다.

마치 영혼이라도 이어진 듯….

그와 한 몸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철컥!

혼원신검을 검집 속으로 집어넣은 장소천은 사조께서 주신 용비봉무결을 떠올렸다.

용비봉무결이 본 위력을 드러내려면 원신이 신위를 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장소천의 경지는 거기까지 이르지 못했다.

그나마 최근에 신력을 크게 축적시켰지만 신위가 언제 발현될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날이 아주 멀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희망하며 장소천은 무심결에 앞에 있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어!”

갑자기 장소천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구름 속에 커다란 이무기 한 마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조장님! 앞에 있는 구름 속에 요수 한 마리가 숨어 있습니다. 비행 법기의 운행 방향을 옆으로 틀어야 합니다.”

“요수?”

자신보다 경지가 낮은 장소천이 요수를 먼저 발견했다고 하는데도 곽무진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장소천의 능력이 워낙에 종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지가 무척 높은 이무기입니다. 우리 배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아요.”

“알겠다. 다들 전투 태세로!”

단천무극도를 빼어 들고 선수로 달려간 곽무진의 목소리가 허공을 쩌렁쩌렁 울렸다.

경지가 올라가니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제37화 : 비천공도(飛天空島)

전투 태세라고 했지만 그리 특별할 것은 없었다.

막장이 부조장에게 달려가 비행 법기의 조종간을 넘겨받았을 뿐이었다.

쿠우우우웅.

조종간을 넘겨받은 막장은 비행 법기의 경로를 틀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는지 운전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자신이 매복한 것이 발각되자 이무기는 당황한 듯싶었다.

이 정도 먼 거리에서 자신이 숨어 있는 것을 파악하려면 비행 법기에 엄청난 고수가 타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행 법기를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누군가 먼 곳을 살피는 법기를 가졌다고 판단한 이무기는 곧장 구름 밖으로 뛰쳐나왔다.

후와와왕!

하늘을 향해 커다랗게 포효한 이무기는 거대한 몸체를 꿈틀거리며 비행 법기 쪽으로 날아왔다.

그러자 일조 조원들도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처음은 한 사저였다.

피잉!

그녀의 손에는 멸혼궁이 들려 있었는데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화살이 날아가자 천둥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푸욱!

화살은 이무기의 머리로 날아갔는데 화살에 비술이라도 걸려 있는지 그녀가 목표했던 이마를 정확히 명중시켰다.

그런데도 이무기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가소롭다는 듯이 눈에 흉광을 발하더니 커다란 앞발을 들어 비행 법기를 후려치려고 했다.

강철 같은 발가락 끝에 달린 발톱들은 그 어떤 법보보다 강하고 날카로워 보였다.

이무기가 항아리처럼 두꺼운 앞발을 들어 올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조장은 법기인 회선창을 날려 보냈다.

쒜에에엑!

조장이 회선창을 날리자, 투창에서 눈부신 적광이 아침 햇살처럼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무기를 꿰뚫지는 못하였다.

터엉!

앞발로 회선창을 튕겨낸 이무기는 입을 벌려 비행 법기를 물어뜯으려고 하였다.

화르르르르.

그 순간 상관천세의 불 뱀이 하늘로 날아올라 이무기의 머리를 공격했다.

한 사저가 멸혼궁으로 발사한 화살은 이무기의 입 속으로 들어갔고, 조장은 회귀한 회선창을 다시 한번 이무기에게 날려 보냈다.

우르르르릉.

번쩍! 번쩍!

이에 비행 법기를 몰던 막장도 뇌전부를 날려 이무기의 머리를 연속으로 강타했다.

일조 조원들의 격렬한 저항에 이무기는 잠시 뒤로 몸을 물렸다.

그런데 큰 타격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우득, 우득.

한 사저가 쏘았던 화살을 입 밖으로 뱉어낸 이무기의 눈에서 다시 한번 흉광이 번뜩였다.

회선창과 뇌전부까지 그의 비늘을 뚫지 못하자 놈들 중에 고수가 없다는 것을 확신한 듯싶었다.

화르르르르.

상관천세가 소환시킨 불 뱀이 몸집을 크게 부풀렸다.

그리고 입을 벌려 불길을 토해내자 이무기는 귀찮다는 듯이 꼬리로 내리쳤다.

퍼억!

이무기의 꼬리에 얻어맞은 불 뱀은 순간적으로 형체가 흐려졌다.

이무기의 꼬리에 강력한 요력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장소천이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취릿!

비천신기를 장착한 장소천은 곧장 이무기의 머리 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혼원신검으로 이무기의 미간을 찌르자 이무기는 머리에 난 뿔로 장소천을 들이받았다.

서걱!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당연히 검을 떨어트리고 뿔에 받혀 죽을 줄로 알았던 장소천은 멀쩡한 반면, 이무기는 뿔이 잘리고 미간에는 깊은 상처 자국까지 생겨났다.

푸홧!

상처에서 붉은 피가 폭포수처럼 터져 나오자 이무기는 비행 법기에서 멀리 물러났다.

법보도 아닌 검이 그의 뿔을 자르고 비늘까지 꿰뚫다니….

믿어지지 않아서였다.

‘저 검이 이계에 있는 신족들의 성화검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아니면 마족들의 혼원마검이거나?’

그러기에는 검이 너무 평범해 보였다.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꺼림칙한 기분에 이무기는 슬슬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장소천은 이대로 이무기를 놓아줄 마음이 없었다.

번쩍!

비천신기를 번뜩이며 혼원신검으로 수염 하나를 잘라내더니 거대한 주작까지 소환시켜 이무기를 불태워 죽이려고 했다.

화르르르르.

장소천의 장심에서 빠져나온 주작은 크기와 기세만으로도 이무기를 바짝 긴장시킬 정도였다.

상관천세가 날린 불 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주작이 날개를 휘젓자 불길에 싸인 깃털이 거대한 화염 폭풍을 일으키며 이무기에게 날아갔다.

후와와왕!

그렇다고 물러설 이무기가 아니었다.

크게 포효한 후 불길 속으로 뛰어든 이무기는 강력한 기세로 주작을 물고 할퀴었다.

그러다가 주작이 불사조임을 감지하고 당황하는데 갑자기 꼬리 쪽에서 끔찍한 고통이 전해졌다.

인간의 검에 살이 길게 갈라진 것이다.

화르르르르.

비늘까지도 같이 잘려 나간 것을 발견한 이무기는 꼬리가 불에 타는 줄도 모르고 십 장 밖으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았다.

이무기가 도망치자 조원들은 다들 놀란 표정으로 장소천을 바라보았다.

그의 무위가 생각보다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조원들은 잘했다고 장소천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 주는 것으로 그쳤다.

아무리 사형제지간이라도 비전절기를 함부로 캐물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 후.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침울하게 서 있던 상관천세가 장소천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조금 복잡한 눈빛이었다.

[주작 때문에 오신 거죠? 그토록 강한 화신을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 궁금해서….]

대답 대신 상관천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 수가 없어서였다.

그가 오행천비록을 처음 접한 것은 거의 삼십 년 전이었다.

그런데 술법을 배운지 일 년도 안 되는 장소천의 화신이 자신의 것보다 훨씬 강했다.

장소천의 수련 경지가 자신보다 높으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장소천의 경지는 연기기 구성 중기.

자신은 그보다 높은 십성 초기였다.

[예전에 요족 구역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태고종의 의성이 남긴 유품을 얻은 적이 있어요. 연의결이라고 의식을 강화하는 책자이죠. 보여드릴까요?]

[그렇게 막 보여줘도 되는 책이냐?]

[아니요. 이 책은 금제로 봉인되어 있어서 쉽게 읽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책자가 저한테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태고종에서 살인멸구 하려고 할지도 몰라요.]

[다른 사람에게 보여줘서는 안 되는 책이구나.]

[그래도 사형께서 원하시면 보여드릴게요. 운이 좋으면 의식을 강화해서 화신의 위력을 높일 수도….]

[됐다.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아볼 터이니 이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말자.]

[…알겠습니다.]

사형이 거부한 것은 장소천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장소천은 대답을 하고도 마음이 무거웠다.

며칠을 고민하던 장소천은 자신의 도량이 생각보다 작다고 생각했다.

사형은 그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오행천비록을 전수해 주셨건만….

자신이 편협하였음을 깨달은 장소천은 연의결을 참조하여 화 속성 화신의 의념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요약 정리했다.

그리고 상관천세에게 내밀었다.

“무슨 책이냐?”

“소천록이라고 최근에 제가 지은 책입니다. 사형에게 기증하는 것이니 자손에게 물려주셔도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줘도 상관없다는 말이냐?”

“물론이죠. 그래도 막 뿌리지는 말아주세요.”

장소천이 부담을 갖지 말라고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상관천세는 쉽게 손을 내밀 수가 없었다.

책자의 내용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형!”

장소천이 독촉하자 그제야 상관천세는 책자를 받았다.

거부할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나 혼자만 보겠다.”

“형수가 될 사람에게는 보여주셔도 상관없습니다.”

“험. 꼭 뭘 아는 사람처럼 말하는구나.”

상관천세의 말에 장소천은 대답 대신 어깨만 으쓱였다.

책자를 건곤대로 집어넣은 상관천세는 장소천에게 고맙다고 말을 한 후 한여옥에게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 장소천은 심경이 한결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뜻밖의 일로 편협함을 한 꺼풀 벗겨낸 기분이었다.

* * *

“와아! 천지해다!”

바다를 바라본 장소천과 막장이 하늘 위에서 함성을 질렀다.

바다는 너무나 광활했다.

그리고 신비했다.

쏴아아아아!

산만 한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몰려가는데 수천 마리의 백마가 무리 지어 달려가는 것 같았다.

하늘이 들썩이고 땅이 흔들렸다.

그 장엄한 광경에 도취되었던 두 사람은 한참이 지나서야 제정신을 차렸다.

“조장님! 조장님은 천지해에 와 보신 적이 있으세요?”

“그럼. 내 나이가 몇 살인데.”

“부조장님은요?”

“나도 안 가본 데가 없다.”

막장이 한 사저를 바라보자 그녀가 먼저 대답했다.

“나는 아예 바닷가에서 태어났다.”

“그러셨구나. 소천아! 너도 잠룡각에서 수중 전투는 배웠지? 수영은 잘하냐?”

“그럭저럭. 막장 너는?”

“나? 내 별명이 한때 물개였다.”

“퍽이나.”

바다에 도착했지만 목표한 섬을 가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

조장에게 물어보니 이틀은 더 날아가야 한다고 했다.

하늘에서 보니 다도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바다 위에 수많은 섬이 떠 있었다.

형상과 크기도 가지각색.

나무가 무성하고 크기도 커서 수많은 생령들이 살아가는 섬들이 있는 반면 어떤 섬은 바다 위에 뾰족한 암석 하나만 외롭게 솟아 있었다.

“와아! 조장님! 저것도 섬이에요?”

멀리 하늘 위에 떠 있는 섬이 보이자 막장이 놀란 듯이 물었다.

“비천공도(飛天空島)이다. 저 섬은 피해서 가자.”

“왜요? 저곳에 요괴라도 살고 있어요?”

“그것보다 더 무서운 괴물이 살고 있다. 연허기 고수들도 피해갈 만큼….”

막장이 질린 얼굴로 하늘의 섬을 바라보는데 부조장이 알아서 진로를 틀었다.

무사히 그곳을 벗어나자 갑자기 물새들이 공격해 왔다.

끼룩! 끼룩!

크기가 이 장도 넘는 새들이지만 조원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이것들은 제가 처리할게요.”

막장이 앞으로 나서더니 건곤대에서 기이한 법기를 꺼냈다.

요족 장로의 건곤대에 들어 있던 법기로 천라지망이라고 불리는 그물이었다.

촤아악!

막장이 손을 떨치자 투명한 그물이 백 장 높이로 솟아올랐다.

그러더니 원을 그리며 둥글게 퍼져 나가 순식간에 네 마리의 물새를 가두었다.

끼루룩.

그물이 몸을 조여 오자 안에 갇힌 물새들이 당황하여 울부짖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막장의 경지가 너무 낮아서 더 이상은 그물을 조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막장에게는 비장의 한 수가 남아 있었다.

취릿!

막장이 손을 떨치자 그의 손에서 염화부 두 장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화르르르.

천라지망을 타고 퍼져 나간 불길은 순식간에 물새들의 깃털로 옮겨붙었다.

휘리릭!

물새들이 불타 죽은 것을 확인한 막장은 거두었던 그물을 다시 하늘로 던져냈다.

끼룩. 끼루루룩.

막장이 천라지망을 다시 던지자 물새들은 그물에 갇히지 않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덕분에 비행 법기는 물새들의 포위망을 유유히 빠져나갈 수가 있었다.

그물을 거둔 막장이 장소천에게 다가왔다.

“어때? 대단하지?”

“그래. 그런데 오늘 처음 사용하는 것이냐?”

“그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경지가 오르지 않았으면 이 정도 위력을 보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속으로 들어가면 완전히 내 세상이 되겠지만.”

“야! 법기나 온전히 다루면서 그런 소리를 해라. 물속에서는 염화부도 사용하지 못하잖아?”

“클클클. 그래도 다 수가 있다. 이것은 작살부(斫殺符)라고 불리는 부적으로 물속에서도 사용할 수가 있다. 몇 장 줄까?”

“뇌전부하고 은신부를 열 장씩이나 줘 놓고 다른 부적을 또 주겠다고?”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왜 있겠냐? 잔말 말고 받아라.”

그러면서 막장은 작살부 열 장을 장소천에게 넘겨주었다.

“고맙다. 사용 방법은 같지?”

“법력을 불어넣고 의념하기만 하면 된다.”

“잘 쓰마.”

“그러던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장소천은 막장이 이것들을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는지 알고 있었다.

‘목숨을 갈아 넣어서 만들었다.’

막장이 예전에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장소천은 부적을 소중하게 건곤대에 집어넣었다.

제38화 : 수령주를 얻다

한참을 가다 보니 하늘에서 물이 떨어져 바다로 섞여 들어가는 곳이 있었다.

다들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이능을 사용하는 장소천은 그것이 환상임을 알 수 있었다.

거대한 폭포수를 뚫고 지나가자 하늘에서 물고기들이 날아다녔다.

허공인지 물속인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 그 영역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하늘 물고기 몇 마리가 비행 법기 안으로 떨어졌다.

은빛 날개를 단 물고기들을 바다로 던져버린 일행은 다시금 드높은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반 시진.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다.”

조장의 말이 끝나자 저 멀리 별 모양으로 생긴 섬 하나가 나타났다.

섬 중앙에는 거대한 호수가 있었는데, 나선형으로 빠르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런데 바닥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막장이 모두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물었다.

“조장님! 저 호수 속에 용린자엽초라는 영초가 있다는 말씀이세요?”

“정확히는 호수와 연결된 바닷속에 영초가 있다고 들었다. 호수 속으로 뛰어들면 물살에 휩쓸려 깊은 바다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그곳에서 영초를 찾아야 한다.”

“영초를 찾으면 어떻게 하죠?”

“그때는 물 위로 올라와서 내게 전신부를 보내면 된다. 한 사람이라도 영초를 찾으면 바로 영취산으로 돌아갈 것이다.”

“만약에 못 찾으면요?”

“그때는 이 섬으로 돌아와서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가자. 몇 번 시도하면 한 번쯤은 영초가 있는 곳으로 보내줄 것이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역시나 조장님은 머리가 좋으세요.”

“잔머리 얘기는 왜 안 하느냐?”

“그냥 머리가 좋다고 인정하려고요. 잔머리 대왕은 금궁에 계시는 장문진인이시잖아요.”

“뭔가 시원섭섭하구나.”

“아쉬우세요.”

“천만에. 이제 그만 준비해라!”

소용돌이 중앙 깊은 곳으로 비행 법기가 내려가자 곽무진이 조원들에게 지시했다.

“들어가자!”

조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다들 소용돌이 속으로 몸을 날렸다.

조장은 비행 법기를 축소시켜 건곤대로 집어넣고 가장 늦게 뛰어들었다.

풍덩!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 장소천은 세상이 빙빙 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부할 수 없는 흐름에 휩쓸리더니 몸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압력이 풀렸는데 이름 모를 바닷속이었다.

깊은 바다라서 그런지 물은 몹시 차가웠다.

바다 밑에는 수초가 나부끼고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그중에는 공격성이 뛰어난 무리도 있었는데 장소천을 먹이로 노리고 달려들었다가 혼원신검의 재물이 되고 말았다.

심해도 깊은 영산과 마찬가지로 약초와 영초들이 존재했다.

연기재료도 많고 요수와 괴물까지 있었다.

거의 한 시진을 탐색한 끝에 장소천은 희미한 초록색 광채를 발견했다.

커다란 수중 동굴.

입구로 들어가려던 장소천은 주둥이에 날카로운 칼이 달린 칼치 무리의 습격을 받았다.

비록 놈들의 칼이 날카롭고 단단했지만 혼원신검과 견줄 수는 없었다.

사나운 이무기의 용린까지도 베어낸 혼원신검이었다.

서걱!

그의 몸을 베고 찔러오는 칼치의 칼을 일격에 베어냈다.

문제는 놈들의 몸놀림.

어찌나 유연하고 재빠른지 혼원신검으로도 쉽사리 상대할 수 없었다.

철컥!

물속인데도 불구하고 장소천은 비천신기를 장착해 보았다.

날개에 닿는 수압은 높아졌지만 속도는 그렇게 느려지지 않았다.

장점이라면 날개로 칼치들을 공격할 수도 있었다.

호신에 큰 도움이 되는지라 장소천은 비천신기를 장착한 채 칼치들과 싸움을 벌였다.

칼치와 싸움을 하다 느낀 것인데 이놈의 물고기는 숫자가 너무 많았다.

수천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그나마 한꺼번에 달려들 수 있는 숫자는 채 열 마리도 되지 않았기에 장소천은 소요검법을 펼쳐 놈들을 죽이고 또 죽였다.

그러다가 용비봉무결을 펼쳐보았는데 이상하게 위력이 높아진 것을 발견했다.

물속을 유영하며 검법을 펼치는 것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것과 유사한 때문이다.

신이 난 장소천은 운보혜까지 운용해 보았다.

이 또한 사용이 가능했다.

운보혜를 운기하면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물론 방향 전환도 쉬어진다는 것을 발견한 장소천은 거침없이 칼치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마치 사나운 맹수가 양 떼를 사냥하는 듯싶었다.

장소천의 기세가 돌변하자 칼치들은 서서히 뒤로 몸을 물렸다.

그러고는 언제 공격했냐는 듯이 일제히 동굴 밖으로 빠져나갔다.

서걱!

마지막 남은 칼치를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든 장소천은 비천신기를 활짝 펼쳤다.

그리고 조심조심 녹색 광채가 흘러나오는 곳으로 헤엄쳐 갔다.

“저것은?”

동굴 깊은 곳에서 장소천이 본 것은 만년산호초라고 불리는 희귀한 영초였다.

이것은 영초이지만 연기재료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장소천이 알고 있는 단방에는 만년산호초가 들어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실망이 컸지만 채취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만년산호초는 뿌리가 바위 속에 박혀 있기에 채취하려면 혼원신검을 이용하여야 했다.

장소천이 혼원신검을 꺼내 바위를 잘라내는 순간.

스멀스멀.

장소천의 등 뒤를 노리고 동굴 깊숙한 곳에서 크고 길쭉한 다리 하나가 뻗어 나왔다.

기이한 예감에 장소천은 몸을 돌리며 혼원신검을 휘둘렀다.

서걱!

뭔가 갈라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두 조각으로 잘리지는 않았다.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상대의 정체를 파악했던 장소천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엄청나게 두껍고 긴 다리.

솥뚜껑처럼 커다란 빨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다리가 그를 공격한 흉수였다.

혼원신검에 상처를 입었지만 다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장소천을 공격했다.

깜짝 놀란 장소천은 동굴 입구 쪽으로 빠져나가려고 몸을 뒤로 돌렸다.

그런데 어느새 다가왔는지 또 다른 다리 하나가 동굴 입구를 틀어막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괴물의 다리에 있는 둥그런 빨판에서 강력한 흡입력이 발생했다.

“허억!”

몸이 다리 쪽으로 빨려 들자 장소천은 비천신기를 활짝 펴고 동굴 위쪽으로 날아올랐다.

그런데도 흡입력을 이겨낼 수 없자 법기인 운보혜까지 운용했다.

그 결과.

가까스로 장소천은 괴물의 빨판에서 발생한 흡입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괴물의 다리는 한 개가 아니었다.

스멀스멀.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다리가 다가오자 장소천은 작전을 달리했다.

피하지 않고 부딪친 것이다.

괴물의 다리에서 흡입력이 작용하자 장소천은 몸을 피하지 않고 거꾸로 다리 쪽으로 날아갔다.

그러고는 용비봉무결의 전반 십팔 개 초식 중에서 가장 변화가 많은 팔방풍우(八方風雨)를 시전했다.

원래 용비봉무결에는 초식명이 없었다.

그래서 몇 개는 장소천이 직접 작명했다.

팔방풍우가 시전되자 혼원신검과 부딪친 다리 부위는 걸레처럼 찢겨 나갔다.

그런데도 괴물은 끝까지 다리를 뻗어내 장소천을 후려쳤다.

타핫!

운보혜로 물을 박차며 가까스로 공격을 피해낸 장소천은 혼원신검 속으로 영기를 주입했다.

그러자 검이 두 자나 길어졌다.

검의 길이가 늘어나자 혼원신검의 위력이 배가되었다.

장소천이 일도양단의 초식으로 검을 내리치자 괴물의 다리 하나가 잘려 나갔다.

꿈틀꿈틀.

잘린 다리가 동굴 바닥에서 기어 다녔지만 이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장소천이 다리 하나를 잘라내자 괴물의 흉성이 폭발했다.

잘려 나간 것까지 다리 세 개를 동시에 휘저으며 장소천을 사납게 공격했다.

쿠루루루룽.

쏴아아아!

물이 격렬하게 요동쳤고 물살은 당겨지고 갈라지면서 장소천이 움직이는 것을 방해했다.

그것이 괴물의 빨판에서 일어난 신통임을 감지한 장소천은 운보혜로 물살을 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차피 괴물을 죽이지 못하면 동굴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이에 사생결단의 자세로 혼원신검을 휘두르자 오래지 않아 괴물의 다리 하나를 또다시 잘라낼 수 있었다.

그제야 괴물은 장소천이 든 검이 보통의 물건이 아닌 것을 알아차렸다.

이렇게 산발적으로 공격하다가는 되레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괴물은 마침내 진체를 드러냈다.

거대한 문어.

그것이 괴물의 정체였다.

괴물 문어는 남은 여섯 개의 다리를 전부 동원하여 장소천을 공격했다.

그러면서 붉은 두 눈을 번뜩이며 길고 흉측한 주둥이를 장소천이 있는 방향으로 겨누었다.

뭔가 섬뜩한 느낌에 장소천은 천장으로 솟아올랐다.

그러면서 수 속성 화신인 백마를 불러냈다.

푸슈웅!

그 순간.

문어의 길쭉한 주둥이에서 검은 먹물이 장소천이 있는 방향으로 쏟아져 나왔다.

불길한 느낌에 장소천은 백마에게 자신을 감싸라고 의념을 보냈다.

그러면서 운보혜로 물을 박차며 몸을 세 번이나 이동시켜 가까스로 먹물을 피해냈다.

으윽!

옆구리 쪽이 조금 당겼지만 그 정도는 상처도 아니었다.

먹물이 퍼진 동굴은 흑암처럼 어두워졌다.

눈앞에 손가락을 세워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능이 있는 장소천은 흐릿하게 사물을 구분할 수 있었다.

“흐음.”

희미한 냄새로 먹물에서 독 기운을 감지한 장소천은 자신의 몸으로 물이 한 방울도 스며들지 못하도록 백마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기척을 죽이고 독 문어에게 다가갔다.

독 문어는 자신이 뿜어낸 독물에는 내성이 있었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인간도 앞이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독 문어는 여섯 개의 다리로 동굴 안을 어지럽게 휘저었다.

그때였다.

휘이익!

물속에서 무엇인가 날아와서 독 문어의 눈 속으로 틀어박혔다.

끄아아악!

눈알 하나가 터져 나간 독 문어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호지세.

푸슈욱!

독 문어의 길쭉한 주둥이에서 또다시 먹물이 분사되었다.

막장이 준 작살부의 성능에 장소천은 크게 만족했다.

문어에게 바짝 다가서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는데 작살부는 목표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도 발사할 수가 있었다.

문어의 눈알 하나를 터트렸던 장소천은 괴물이 혼란한 틈을 타서 동굴을 빠져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괴물의 머리 뒤쪽으로 파란색 광채가 보였다.

보물.

밝기로 보면 목령주에 버금갈 것 같았다.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사이에 독 문어의 길쭉한 주둥이에서 시커먼 먹물이 넓게 퍼져 나왔다.

자신을 중독사시킬 요량인 듯싶었다.

동굴 속의 어둠이 더욱 짙어지자 장소천은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되면 문어는 눈먼 맹수나 다름이 없었다.

쿠루루루.

쏴아아아아!

문어의 다리들이 물살을 가르며 위협적으로 날아왔지만 장소천은 이능으로 궤적을 꿰뚫어 볼 수가 있었다.

운보혜를 운용하여 다리 사이로 빠져나간 장소천은 이번에는 작살부 두 장을 문어의 눈 속으로 쏘아 보냈다.

끄아아악!

남은 눈알마저 터져 나가자 독 문어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고는 동굴 깊은 곳에서 빠져나와 사방으로 먹물을 난사하며 여섯 개의 다리를 마구 휘저었다.

서걱!

또다시 다리 하나를 잘라낸 장소천은 동굴 천장에 납작 달라붙었다.

그리고 독 문어가 아래로 지나가는 기회를 노려 혼원신검을 역수로 쥐고 천장에서 뛰어내렸다.

푸욱!

혼원신검이 독 문어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자 장소천은 검 속으로 영기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검 끝에서 영기가 흘러나와 독 문어의 뇌를 터트려 반죽으로 만들었다.

그런데도 독 문어는 죽지 않았다.

피쉬쉬쉬!

주둥이 밖으로 먹물을 뿜어내며 다리를 휘둘러 머리 위에 있는 장소천을 공격했다.

그런데 뇌가 터져서 그런지, 정확도가 저하되어 자꾸 엉뚱한 곳을 때렸다.

그 틈에 장소천은 펄쩍 뛰어 문어가 빠져나왔던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과연.

문어의 보금자리 뒤쪽에 파란색 광채를 뿜어내는 구슬이 있었다.

“수령주!”

구슬을 보는 순간 장소천은 그것이 수령주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장소천도 수령주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구슬에서 강력한 수 속성 영기가 농후하게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면 이것은 수령주가 분명했다.

멈칫!

수령주를 건곤대로 넣으려던 장소천의 손이 갑자기 멈추어졌다.

수 속성 화신인 백마와 수령주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묘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장소천은 연의결로 마음을 연단하는 중이었다.

그 덕분에 심경이 맑아져서인지 생각에 한계가 없어졌다.

푸욱!

수령주를 든 장소천의 손이 백마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다시 나왔는데 빈손이었다.

장소천이 백마의 머릿속에 수령주를 넣자 놀라운 변화가 생겨났다.

백마의 몸에서 눈부신 서광이 흘러나와 주위에 있는 시커먼 먹물을 맑고 깨끗하게 정화시켰다.

번쩍!

그리고 백마의 눈이 푸른색으로 빛나더니 가공할 수 속성 기운을 뿜어냈다.

백마에게 영성이 생긴 것이다.

제39화 : 금제진으로 들어가 이무기를 죽이다

생각지도 못한 변화에 장소천도 깜짝 놀랐다.

수령주가 신비한 것은 알았지만 이런 효과까지 발휘할 줄이야….

그렇다면 다른 오행의 구슬들도….

세계수 아래에 묻어둔 목령주를 떠올렸던 장소천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목령주는 그대로 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였다.

굳이 시험해 보지 않았지만 장소천은 백마가 엄청나게 강해진 것을 감지했다.

백마는 그의 수 속성 화신.

자신의 의념으로 만든 것이라서 위력까지도 능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령주를 거두고 독 문어에게 다가간 장소천은 괴물이 이미 죽은 것을 알아차렸다.

뇌가 곤죽이 되고도 살아서 날뛰더니 이제야 움직임을 멈춘 것이다.

안심한 장소천은 만년산호초가 있는 곳으로 가서 영초를 채취했다.

서걱!

영초의 뿌리가 파고들어 간 바위를 혼원신검으로 잘라낸 장소천은 바위까지 함께 건곤대로 집어넣었다.

동굴을 빠져나온 장소천은 백마를 타고 물속을 뛰어다녔다.

그러면서 초록색 광채를 찾았는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광채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수색 범위를 넓혔는데 그러다 보니 먼바다까지 가게 되었다.

그러고도 영초를 찾지 못하자 장소천은 미련 없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비천신기를 활짝 펴고 하늘로 올라간 장소천은 반 시진이 지나서야 조장의 비행 법기를 발견했다.

비행 법기 위에는 조장을 포함해서 네 명이나 있었다.

자신이 제일 늦게 돌아온 것이다.

막장이 물었다.

“없지?”

“응.”

“와! 우리 중에 운발이 가장 좋은 너마저 찾지 못했다면 이건 문제가 있는데? 진짜 못 찾는 거 아니야?”

“그럴지도 모르겠다.”

한 사저가 피곤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러고 보니 일조 조원들 모두가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물속에서 갖은 고생을 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호수가 있는 섬으로 다시 돌아가자.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으냐?”

“그럼요. 오늘은 운이 없었지만 내일은 좋을 것이에요. 소천아! 그렇지?”

“맞아. 내일도 없으면 모레를 기대하면 되고….”

“맞아. 맞아. 부조장님! 출발!”

막장이 소리치자 상관천세가 비행 법기의 속도를 높였다.

기관을 조절하여 영석에서 더 많은 영기가 빠져나가게끔 한 것이다.

섬에 돌아온 일행은 적당한 휴식처를 발견했다.

호수와는 조금 떨어졌지만 암석이 처마처럼 길게 늘어져서 비와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자리였다.

바닥도 평평하고 전망도 훌륭하며 은신하기 딱 좋은 장소였다.

멀리 호수를 바라보던 막장이 장소천에게 물었다.

“소천아! 네 등 뒤에 달린 날개도 법기이냐?”

비천신기는 투명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장소천이 날개를 장착하고 하늘을 종횡무진하며 날아다니자 그것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하긴, 부럽지 않을 리가 없었다.

“구요국에 소요족이라는 종족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만든 법기야. 종족의 전략자산이라 쉽게 유출하지는 않는데, 은단비 공주님의 소개로 어렵게 얻은 것이지.”

“전략자산을 인족에게 넘겨주었다는 말이야?”

“나에게 이 법기를 주신 분이 은단비 공주님의 친구이거든….”

“결국 공주님 덕분에 보물을 얻을 수 있었다는 말이로구나. 진짜 부럽다.”

“너도 비행부가 있잖아?”

“그건 그렇지…. 어! 저건 뭐지?”

장소천과 대화를 나누던 막장이 손가락으로 먼 하늘을 가리켰다.

막장의 손끝으로 네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커다란 비행 법기 한 척이 섬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긴장한 조원들은 자연스럽게 몸을 은신했는데 장소천이 가장 크게 놀랐다.

요족 구역에서 돌아오면서 그와 충돌한 적이 있던 비행 법기였기 때문이다.

그 안에 엄청난 탐지 능력을 지닌 고수가 있었음을 기억해 낸 장소천은 일행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저 안에 연허기 경지의 요족이 타고 있어요. 모두 은신부를 사용하고 기척을 지워야 해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막장이 준 은신부로 몸을 숨긴 조원들에게 장소천은 자신이 비천신기를 이용하여 놈들을 따돌린 적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막장이 장소천에게 전음을 보냈다.

[연허기 수준이라면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잖아?]

[그래도 비천신기를 따라올 수는 없어. 괜히 전략자산이라고 부르겠냐?]

[비행 법기는?]

[비행 법기는커녕, 뒤에 따라오는 창응족 고수들도 나를 따라올 수는 없다.]

장소천이 호언장담을 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처음 저들과 만났을 때 장소천의 수행 경지는 육성 후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경지가 비약적으로 상승하여 구성 중기에 이르러 있었다.

경지가 올라가면 비천신기의 속도가 높아질 것이 자명하니, 이제는 저들이 두렵지 않은 것이다.

[그럼 몰래 한번 따라가 봐라. 저것들이 괜히 온 것은 아닐 것 아니냐?]

[그럴까?]

요족들이 용린자엽초를 채취하려고 온 것은 아닐 터이지만 그래도 호기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장소천이 저들을 미행하겠다고 말하자 조장은 반대를 했다.

위험하다는 말이었다.

이에 장소천은 무엇을 하는지만 멀리서 살피고 오겠다고 설득하여 간신히 조장의 허락을 얻어냈다.

그렇다고 비행 법기를 바로 뒤따라갈 정도로 장소천이 무모하지는 않았다.

비행 법기에 탔던 고수들이 모두 물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장소천은 끈질기게 기다렸다.

예상외로 비행 법기에 탄 요족들의 수가 많지 않았다.

전에는 일백여 명이나 타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십 명도 채 안 됐다.

하지만 모두가 고수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연허기 고수가 법력으로 배를 축소한 후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지고….

뒤를 따라왔던 창응족 고수들이 호수 속으로 들어가는 기회를 노려 장소천은 은밀하게 그들을 뒤따랐다.

창응족 수사는 모두 세 명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허공중에서 날개를 접고 손을 맞잡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비행 법기에 탄 고수들도 저런 방법으로 뛰어들었던 것 같았다.

저러면 흩어지지 않고 함께 갈 수 있는 것이다.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것이 분명하다고 감탄하며 장소천도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지만 장소천은 처음처럼 물살에 몸을 맡기지는 않았다.

백마를 소환시켜 몸을 보호하라고 지시하고는 이능으로 요족들이 휩쓸린 물살을 파악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그 흐름을 쫓아갔다.

그런데도 마지막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물살에 휩쓸리고 말았다.

“끄응.”

갑자기 압력이 풀리자 장소천은 정신을 차리고 창응족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런 일에는 수 속성 화신인 백마가 제격이었다.

백마에 올라탄 장소천은 수중을 질주하며 창응족 고수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백마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 것을 체감했다.

영성이 생긴 덕분이었다.

“저기에 있었구나. 멈추어라.”

창응족들을 발견한 장소천은 화신의 형체를 변환시켜 자신의 몸을 감싸도록 지시했다.

이렇게 하면 물처럼 투명한 막이 몸을 가려 멀리서는 그를 발견할 수 없었다.

물론 가까이 다가오면 알 수 있었다.

창응족과 멀리 떨어졌지만 장소천의 비상한 시력은 그들의 종적을 한 차례도 놓치지 않았다.

“저건 뭐지? 저것도 법기인가?”

자세히 보니 가장 앞에 선 창응족 고수는 손에 풀잎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풀잎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열심히 뛰어갔다.

“역시나! 앞서간 자들을 추적하는 법기를 지니고 있었구나. 그러니 함께 뛰어들지 않은 것이지.”

놈들의 치밀함에 다시 한번 감탄한 장소천은 그들과의 사이를 조금 더 벌렸다.

멀리 떨어져도 다 보였기 때문이다.

거의 두 시진이나 이동했을까?

바닷속에 커다란 산 하나가 높이 솟아 있었는데 창응족은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산 중간쯤 올라간 창응족은 드디어 앞서간 일행들을 발견했다.

그렇다고 반갑게 뛰어갈 수 없는 것이 지금 그들은 수중 괴물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휘루루루룽!

쩌억!

요족들과 싸우고 있는 괴물은 이무기였다.

그것도 두 마리.

멀리서 싸움을 지켜보던 장소천은 요족들과 싸우고 있는 이무기 한 마리가 낯이 익은 것을 발견했다.

구름 속에 숨어 일조 조원들을 습격하다가 혼원신검에 뿔과 수염이 잘려 도망쳤던 바로 그 이무기였다.

공중에서와는 달리 물속으로 들어온 이무기는 기이한 신통을 몇 가지나 더 부렸다.

물속에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켜 요족들이 몸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입으로는 커다란 거품을 뿜어내서 그 안에 요족을 가두었다.

거품에 갇힌 요족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숨을 쉴 수 없다는 듯이 목을 붙잡고 울부짖다가 거품이 터지면 요족도 함께 몸이 터져 죽었다.

그 밖에 물살의 흐름을 타고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것이 태생이 물속 괴물인 모양이었다.

이무기들이 물속에서 날고뛰었지만 요족들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나 장소천에게 금륜법창을 탈취당했던 수탉처럼 생긴 요족은 수백 장 길이의 쇠사슬을 풀어내어 이무기 두 마리를 동시에 공격했다.

촤르르르륵.

쇠사슬이 몸에 감기면 어찌 된 것이 쉽게 풀어내지 못했다.

장소천에게 뿔이 잘린 이무기가 쇠사슬에 묶여 움직임이 급격하게 둔해지자 나머지 한 마리는 겁에 질려 도망을 쳤다.

그런데 하필 장소천이 숨어 있는 방향이었다.

힐끗!

그를 스쳐 지나가던 이무기가 자신이 숨어 있는 쪽을 바라보자 장소천은 백마를 변환시켜 몸을 가리는 것이 큰 효과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무기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에게 뿔이 잘렸던 이무기를 단숨에 두 조각으로 만든 요족들이 도망친 이무기를 뒤쫓아 자신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에잉!”

어차피 가까워지면 정체가 밝혀질 것.

장소천은 수 속성 영기로 만든 화신의 형체를 또다시 백마로 변환시켰다.

그리고 말 위에 올라타고 빛살처럼 이무기의 뒤를 쫓아갔다.

“억!”

숨어 있던 장소천이 모습을 드러내자 요족들은 분노 어린 함성을 지르며 속도를 더욱 빨리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간까지 출현하자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어! 저건 뭐지?”

이무기를 쫓아가던 장소천이 눈을 크게 떴다.

커다란 이무기가 절벽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진법.

절벽에 금제진이 펼쳐진 것을 감지한 장소천은 뒤를 돌아보았다가 앞으로 튕기듯이 몸을 날렸다.

요족이 그를 바짝 따라왔던 것이다.

이능을 발해 절벽을 바라보자 금제진이 닫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기겁한 장소천은 백마에게 의념을 발해 속도를 더욱 높일 것을 지시했고….

금제진이 닫히기 전에 가까스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쿠웅!

금제진이 닫히는 소리가 장소천의 귀에 천둥처럼 크게 들려왔다.

진법 안으로 들어왔지만 위험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먼저 들어왔던 이무기가 장소천을 보고는 득달같이 달려와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금제진 내부는 육지와 환경이 똑같았다.

피릿!

백마를 장심으로 빨아들인 장소천은 운보혜로 허공을 박차며 이무기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고 비천신기를 번뜩여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허공에서 몸을 선회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화 속성 화신인 주작을 불러내 이무기를 공격하도록 지시한 장소천은 뇌전부를 무려 세 장이나 발사했다.

그리고 자신도 불 속으로 뛰어들어 혼원신검으로 이무기의 머리를 공격했다

우르르르릉.

번쩍!

뇌전부에 머리를 가격당한 이무기는 하늘을 향해 포효하며 장소천을 한입에 삼켜버리려고 했다.

이에 장소천은 이무기의 입 속으로 또다시 뇌전부를 날려 보냈다.

끄아아악!

입 속에서 뇌전이 터진 이무기는 하늘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그러면서 주작을 떨치려고 고개를 흔들다가 머리가 장소천의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장소천이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혼원신검에 영기를 잔뜩 주입하고는 이무기의 머리로 뛰어올라 정수리에 검을 깊숙하게 틀어박았다.

푸욱!

검 끝으로 빠져나왔던 검기가 실타래처럼 풀어지며 이무기의 머릿속에서 요동을 쳤다.

그렇게 이무기에게 치명상을 입힌 장소천은 혼원신검을 빼어 들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순간.

고개를 쳐들고 발악하는 이무기의 머리를 주작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지옥의 불길처럼 뜨거운 화염으로 이무기를 불태워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휘유!

나직이 한숨을 내쉰 장소천은 주작을 장심으로 빨아들인 후 고개를 돌려 금제진 안쪽을 바라보았다.

제40화 : 현천복지에 용정수(龍精樹)를 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