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후.
“아니! 내가 취미로 우표 수집을 하고 있었는데 여편네가 어디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오더니 이런 곳에 허튼 돈 쓰지 말라고 화내는 게 아닌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는 여느 때처럼 점심 식사 후에 본부 건물 앞을 거닐며 에른스트의 푸념을 듣고 있었다.
참고로 내 부관인 루시 또한 얼떨결에 합류한 채 에른스트의 가정사를 듣는 중이었다.
“내가 하는 취미 생활이라고는 낚시랑 우표 수집 두 개밖에 없는데! 그 두 개중 하나를 못하도록 막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듣다 보니 조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모님이 너무한 것 같긴 합니다. 부장님이 가정에 소홀하신 것도 아니고 일을 끝내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시는데 말입니다.”
“내 말이! 역시 우리 다니엘 대위랑은 말이 통하는구만! 인사과장은 내가 우표 수집에 돈을 너무 많이 쓴다고 핀잔을 주던데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 세상에 돈 안 드는 취미가 어디에 있나?”
……뭔가 느낌이 이상한데.
“부장님? 혹시 최근에 구매한 우표가 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응? 아아. 베르크하우젠 미술관 한정판 우표가 매물로 나오는 통에 지출을 좀 하긴 하였네.”
베르크하우젠 미술관 한정판 우표? 내가 알기로 이건 우표에 별 관심이 없는 나도 알고 있을 정도로 비싼 값을 자랑했었다.
‘판매 당시 가격이 10만원이었지 아마.’
이 시대의 노동자 한 달 봉급이 3만원에서 6만원 사이라는 걸 감안하면 큰 지출인 셈이었다.
에른스트의 아내가 왜 화를 낸 건지 이해가 되었지만 그냥 침묵하기로 하였다.
침묵은 금이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내가 비상금에 손을 댄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용돈을 모아서 산 건데 그걸 가지고 뭐라하면 억울해서 어떻게 살란 소린지. 하여간 이 여편네를…….”
에른스트의 푸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나는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뭐지?’
처음 보는 하급 장교와 부사관들이 참모 본부 앞에서 오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급 장교보다 고위 장교를 더 보기 쉬운 곳이 바로 참모 본부다.
이런 곳에서 처음 보는 소위나 중위급 장교들이 이리저리 오가는 것은 생소한 광경이었다.
“저기, 부장님?”
아내에 대한 험담을 이어가던 에른스트가 나를 돌아본다.
“응?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그게…… 오늘 이상할 정도로 참모 본부를 오가는 간부들이 많지 않습니까? 다들 처음 보는 얼굴들인데 말입니다.”
“처음 보는 얼굴들? 아아. 오늘 인사과에서 북부 방면군에 작전 지원을 가는 간부들을 호출했다던데 다들 지금 도착한 모양이군.”
북부 방면군에 작전 지원을? 궁금증이 동했던 내가 말했다.
“북부 확장 전쟁은 지금 순조롭지 않습니까? 몇몇 구역을 제외하면 엘드레시아 왕국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그 몇몇 구역이 문제라서 말이지. 자네도 알다시피 겨울이 되기 전에 왕국을 밀어버리지 못하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크네. 그래서 지원을 보내는 거야.”
손에 들고 있는 종이컵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내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간부들의 계급을 볼 때 작전 지원을 가는 부대는 중대급으로 보입니다만, 군단이 움직이는 전장에 중대가 합류한다고 양상이 달라질 것 같진 않습니다.”
내 말에 에른스트가 낮게 웃음을 흘린다.
“그게 아닐세. 중대는 어디까지나 유능한 참모를 지키기 위한 호위 부대에 불과하네. 북부 방면군에 합류하러 가는 길목에서 적들의 게릴라 공격에 노출되면 안 되니까 말이야.”
“아. 그런 거라면 납득이 되는군요.”
유능한 참모를 실전에 투입시켜 전쟁의 양상을 조금이나마 제국에 유리하도록 만들려는 것이 참모 본부의 계획인 것 같았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주겠다는 건가…….’
하긴 제국 입장에서는 상대적인 약소국인 엘드레시아 왕국을 빠르게 점령한 후 동부 전선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었다.
겨울의 한파가 몰아치기 시작하면 보급과 진군에 차질이 생겨 지연전이 될 테니, 다소 무리해서라도 여름이 지나기 전에 전쟁을 끝내려는 거겠지.
어찌 되었든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느 참모가 작전 지원을 가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생을 꽤나 하겠군요.”
불쌍한 놈 같으니라고. 동정심마저 들 정도다.
따뜻하고 안전한 후방에 있다가 최전방으로 배속이 전환당하면 전쟁광이 아닌 이상 피눈물을 흘리겠지.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게 네 업보인 것을 말이다.
“……다니엘 대위?”
속으로 키득거리는 와중에 에른스트가 어색하게 뺨을 긁적인다.
왜 그러는가 싶어서 빤히 바라보자 에른스트가 낮게 헛기침을 내뱉었다.
“이거 미안하군. 요즘 일이 너무 바빠서 말해주는 걸 깜빡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북부 방면군에 작전 지원을 나가는 참모는 다름 아닌 자네일세.”
예? 순간 사고가 마비된다.
손에 힘이 풀리는 바람에 하마터면 종이컵을 떨어트릴 뻔했다.
한동안 멍하니 있던 내가 겨우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제가 말입니까?”
“그래. 참모차장님이 이번에 자네를 좋게 봐주신 모양이야. 전장에서 한 번 활약해보라고 판을 깔아주신 것이지. 중대 규모도 200명이나 되니 소규모 작전 같은 경우는 자네가 직접 지휘해도 될 걸세.”
믿기지 않는다. 믿고 싶지 않았다.
심호흡을 한 내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정말 제가 말입니까?”
“확실하니 두 번 물어볼 필요는 없네. 그리도 기쁜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보니 내가 다 기분이 좋을 정도야. 하하하! 어디 한 번 열심히 해보도록 하게!”
기쁜 게 아니라 토할 거 같았다.
에른스트의 격려에 무어라 반응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루시가 끼어들었다.
“축하드립니다. 다니엘 슈타이너 대위님께서 전장에서 활약하실 동안 본부에서의 사무는 제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걸 본 에른스트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당연히 부관인 자네도 같이 올라가야지?”
루시가 보기 드물게 당황한다.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하지만 작전참모부장님? 저까지 본부를 떠나면 참모실은 과중한 업무를 맡게 됩니다.”
“그거야 야근을 하면 될 일이야. 지금은 어디까지나 전시이지 않나. 전방에서 자네들이 활약할 것에 비하면 우리 고생은 고생도 아니야.”
루시가 입을 다문 채 식은땀을 흘렸다.
하긴 루시는 물론이고 연합국 첩보부에서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루시의 상황따위 지금의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
‘젠장…….’
일이 생각 이상으로 틀어졌다.
남몰래 침음을 흘리던 나는 멈칫하고 말았다.
참모 본부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한 여자의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걸을 때마다 부드럽게 살랑거리는 연갈색 머리칼에 갈색빛이 감도는 검은 눈동자.
장차 제국의 성녀라 불리게 되는 프리엔이었다.
‘쟤가 왜 여기에 있어?’
이 시기면 군사학교에서 장교 수업을 받고 있어야 하지 않나?
의아했던 내가 에른스트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프리엔을 향해 다가갔다.
“거기 생도. 자리에서 멈추도록.”
내 말을 들은 프리엔이 뒤를 돌아보았다가 곧 화색하며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다니엘 슈타이너 중위님! 아니, 실례했습니다! 이제 대위시군요!”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목소리가 높았다.
물론 나는 별로 반갑지 않았기에 무표정을 유지하였다.
“인사를 나눌 생각은 없으니 묻는 말에 대답해라. 왜 생도가 참모 본부를 기웃거리고 있는 거지? 군사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 아닌가?”
“아……! 참모 본부로부터 북부 방면군 지원 공고가 내려오기에 제가 직접 인사과에 편지를 썼습니다. 아마 그걸 보시고 특례 처리를 해주신 것 같아요.”
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편지?”
“네. 다니엘 대위님이 지휘하신다는 공고를 보고 제가 이전에 대위님과 함께 작전을 수행했다는 것을 포함한 지원 서류를 편지를 통해 보냈습니다.”
“그걸 읽은 참모 본부 인사과 편제관이 너를 내 중대에 포함시켰다고?”
“그렇습니다! 다시 한 번 다니엘 대위님을 모시게 된 것은 가문의 영광입니다!”
참모 본부의 결정이라면 내가 토를 달 수는 없겠지만 영 꺼림칙하다.
전장을 앞두고 있는데도 이런 해맑은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건 둘 중 하나다.
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들끓고 있거나 모종의 광기에 사로잡혀있거나.
그리고 보통 충성심과 광기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많았다.
“……프리엔? 네 마음은 알겠다만 북부 방면군에 지원을 가기에는 어린 나이가 아닌가? 생도인 네가 포기한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거니 신중하게 선택하도록 해라.”
당장 지원을 철회하라고 돌려 말하고 있었지만, 프리엔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가슴 위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저는 이미 결심했답니다. 군사경찰대의 유치장에서 다니엘 대위님께 받은 은혜를 목숨으로 갚자고 말입니다. 그러니 지원을 철회하지 않을 겁니다.”
……은혜? 무슨 은혜? 고작 말 몇 마디 나눈 게 전부 아닌가?
“그러니 저는 다니엘 대위님과 함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멀지 않은 미래에 대위님과 저는 볼 수 있겠지요.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진 이상적인 나라를 말입니다.”
“……이상적인 나라?”
“네에. 하나의 제국, 하나의 황제, 하나의 민족. 저열한 쥐새끼들이나 마찬가지인 연합국 인간들이 모두 제거된 하느님의 천국을 이 땅에 건국해야지요.”
그리 말한 프리엔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마치 성화(聖化) 과정에서 나올 것만 같은 따스한 미소였기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미친년인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프리엔은 충성심을 넘어서 이미 광기의 상태에 돌입해있었다.
식은땀을 흘린 내가 두려움 속에서 침을 꿀꺽 삼켰다.
‘차장님께 말씀드려야겠어. 프리엔을 내 중대 편제에서 빼달라고 말이야.’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시도라도 해봐야 했다.
내 눈앞에 있는 이 맑은 눈의 광인은 진심으로 무서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