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집무실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업무를 보고 있던 세드릭이 고개를 들었다.
벽걸이 시계를 보니 시침이 벌써 오후 5시에 위치해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노크를 하고 있는 것은 다니엘 슈타이너 대위겠군.’
점심 무렵에 다니엘에게서 북부 작전 지원에 관련해서 상담할 게 있다며 면담 요청이 왔었다.
안 그래도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었던 세드릭이었기에 오후 5시에 찾아오라고 했었는데, 정확하게 시간을 맞춰 노크를 한 셈이었다.
“들어오게.”
세드릭이 허락하자 다니엘이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열린 문 너머로 작전참모차장실의 내부를 처음 보게 된 다니엘은 묘한 위압감에 휩싸였다.
작전참모차장실은 이상할 정도로 불필요한 물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옷걸이, 책장, 만년필, 전화기, 책상, 각종 서류들이 끝이었다.
보통 골프공이라던가 우표처럼 자신이 취미로 즐기는 물건을 하나 정도는 비치할만한데 이곳에는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양쪽 벽면에 위치한 책장에 기밀 서류들이 파일의 형태로 수도 없이 꽂혀 있을 뿐이다.
“왔군.”
저조하지만 날카로운 목소리다.
고급스러운 마호가니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세드릭이 다니엘에게 눈길을 한 번 던지고는 샌드위치를 마저 먹어치운다.
그 모습을 본 다니엘은 내심 긴장하며 집무실의 중앙까지 걸어가 경례를 올렸다.
“식사 중에 결례를 끼치게 되어 죄송스럽습니다. 그러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샌드위치를 입에 다 넣은 세드릭이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아내고는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사백안의 눈동자가 적막 속에서 묻고 있었다. 용건을 말하라고 말이다.
“……차장님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제 부관 루시 소위와 프리엔 생도의 북부 지원을 철회해주셨으면 합니다.”
다니엘의 입장에서는 둘 모두 꺼림칙한 존재였으니 최대한 떨어트려놓고 싶었다.
하지만 다니엘의 속내를 알 수 없었던 세드릭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우물거리던 샌드위치를 목 너머로 넘긴 세드릭이 질문을 던졌다.
“왜지.”
여기서 ‘루시는 스파이고 프리엔은 제정신이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몰래 한숨을 내쉰 다니엘이 그럴듯한 변명을 떠올렸다.
“제 부관과 프리엔 생도는 이제 막 성인이 된 몸입니다. 소녀의 티를 벗지도 못한 여자들을 위험한 전장에 데리고 다닐 수는 없습니다.”
“루시 소위라면 몰라도 프리엔 생도는 병사 시절일 때 자네가 데리고 다녔던 걸로 안다만?”
“그때는 자국의 영토 방위 목적으로 작전 지원을 나간 것이었습니다. 적진 깊숙한 곳에 들어가는 이번 북부 방면군 작전 지원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임무였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기에 세드릭이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의외군.’
진급을 할 수만 있다면 사소한 문제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을 정도의 냉혈한이라 생각했는데.
자신의 부하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는 것을 보면 꽤나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더니.’
부하를 아끼는 것은 지휘관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다니엘이 더욱 마음에 드는 세드릭이었지만 저 부탁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거절하마. 제국의 이념은 신상필벌이다. 이는 기회의 평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니 나이 어린 여자라고 하여 전장에 내보내지 않는 것은 제국의 이념에 반하는 결정이다.”
여기까지는 다니엘도 예상한 바였다.
“그렇다면 프리엔만이라도 제 부대 편제에서 제외시켜주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군사학교의 교육 과정에 있는 생도입니다. 제가 일개 생도를 안고 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굳이 교육도 안 된 생도를 부대에 등용할 필요는 없다. 정론이었다.
하지만 세드릭은 프리엔이 가진 ‘특수성’에 무한한 가능성을 두고 있었다.
“다니엘 대위. 그녀는 일개 생도가 아니네. 같이 전투를 경험했을 테니 알고 있을 텐데. 프리엔의 마력은 일반적인 군인들과는 달리 ‘색’을 가지고 있다는 걸 말이야.”
다니엘은 부정할 수 없었다. 프리엔은 제레미 대령을 사살했을 적에 다니엘 바로 옆자리에서 탄에 마력을 부여하여 사격했었으니까.
“프리엔의 마력은 빛이 통과하지 않는 검은색이지. 일반적인 마력이 투명하거나 옅은 푸른빛을 동반하는 것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이질적인 현상이다. 일종의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지.”
세드릭이 쓰고 있던 외눈 안경을 벗어서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조금 딴 이야기를 해볼까. 예로부터 검은색은 불길함의 징조였지. 악마의 상징이었으니까 말이야. 검은 고양이나 까마귀가 불운을 몰고 온다는 미신도 그로 인해 비롯된 것이네.”
세드릭이 양손을 책상 위에 올려 깎지를 꼈다.
“물론 어디까지나 미신에 불과해. 요즘 같은 시대에서 자네처럼 검은 머리나 검은 눈을 가졌다고 누가 뭐라고 한다면 미친 사람 소리 듣기 딱 좋지.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마력은 다르다. 특히 성직자 가문에서 태어난 아이가 검은 마력을 보이게 된다면? 종교적으로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대충 이해가 되었던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엔 생도는 자발적으로 입대한 것이 아니군요. 분명 외부의 압력이 있었겠습니다.”
“이해가 빨라서 좋군. 그래. 프리엔 생도는 가문에게 버림받았네. 호국정신을 보임으로서 네가 사탄의 자식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라고 군대에 반강제적으로 보낸 것이지. 사실상 적과 싸우다 죽으라고 보낸 것과 다름이 없어.”
“제게 갑자기 그런 말씀을 들려주시는 이유는…….”
세드릭이 서랍을 열어서 편지를 한 장 꺼냈다.
프리엔의 북부 방면군 지원 서류였다.
“가문과 가족에게 버려졌다는 걸 애써 부정하며 살아가던 프리엔 생도는 새롭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네. 그게 바로 자네인 모양이야.”
“각하? 저는 결단코 프리엔이 의지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가? 편지를 읽어보면 자네는 유치장에서 프리엔 생도에게 적잖은 위로를 해주었고, 북부에서 같이 작전을 수행할 때도 검은 마력을 쓴다고 하여 차별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다니엘은 다소 어처구니가 없었다.
유치장에서는 그냥 심심풀이 땅콩 수준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거고, 검은 마력을 쓸 때 놀라지 않았던 것은 게임의 지식으로 인해 미리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세드릭의 입장에서는 다니엘의 마음이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다니엘 슈타이너 대위. 알아듣기 쉽게 말하지. 검은 마력은 종교적으로 비난을 받을지언정 군에서는 칭송받아 마땅하다. 그 자체로 전략성이 있기 때문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나?”
빛이 통하지 않는 검은 마력은 주변에 흩뿌리기만 해도 은엄폐를 용이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니 전략적 가치가 높다는 점에 의거해 프리엔 생도를 전장에 적합한 인재로 만들라는 소리였다.
‘그걸 왜 제가?’
그런 건 다른 유능한 사람한테 시키라며 거절하고 싶었던 다니엘이었지만 세드릭의 눈빛은 단호하였다.
여기서 말꼬리를 붙잡았다가는 괜히 세드릭의 분노를 살지도 몰랐다.
결국 다니엘은 울며 겨자 먹기로 경례를 올렸다.
“각하의 말씀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만족스러웠던 세드릭이 경례를 받아주었다.
“좋다. 용무가 끝났으면 이만 나가보도록.”
손을 내린 다니엘이 뒤돌아 걷더니 집무실의 문을 열고 나간다.
그걸 본 세드릭은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낮게 웃음을 흘렸다.
‘옛날의 참모장님을 보는 것 같군. 상관을 앞두고 긴장을 하면서도 자기가 할 말은 모두 뱉어내는 걸 보면 말이야.’
세드릭은 알고 있다. 저런 자들은 결코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이토록 키워보고 싶은 인재가 나타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
같은 시각, 프리엔과 루시는 다니엘의 개인 집무실에 모여 있었다.
루시야 퇴근 시간에 가까워진 터라 서류를 정리하기 위해 집무실에 온 것이다.
그렇다면 프리엔은? 다니엘이 차장님과 면담을 하고 결과를 전해줄테니 개인 집무실에서 기다리라고 하여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었다.
사락─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던 프리엔이 슬쩍 곁눈질을 한다.
자기 자리에 앉아 능숙하게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 루시의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부럽다.
‘다니엘 대위님의 부관 자리는 내 자리가 되었어야 했는데…….’
어딘가 모르게 자리를 빼앗긴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루시는 일하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둘의 시선이 마주친다.
“…….”
“…….”
기이한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루시였다.
“무슨 생각을 그리도 골똘히 하십니까.”
사무적인 목소리에 프리엔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냥. 루시 소위님께서 다니엘 대위님의 부관 자리를 지원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서요.”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굳이 이유를 찾아내자면 제국의 영광을 위해서겠지요.”
즉답이었다.
실은 스파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위장 직업으로 이 자리가 최적이었기에 지원한 것이지만 그걸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속내를 완벽히 숨기는 것에 성공한 루시였지만 프리엔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딘가 모르게 루시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직관보다는 육감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들어맞는 프리엔만의 분별력인 셈이었다.
“루시 소위님? 저는 신부님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매일 예배를 드리고는 했답니다. 예배가 끝나면 보통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싶으신 분들이 남아요. 그들은 아버지를 따라 고해성사를 하러 들어가죠.”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었던 루시가 서류를 정리하던 손을 멈추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의 저는 예배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누가 고해성사를 하러 갈지 맞추는 놀이를 했답니다. 정확도는 꽤나 높았어요. 아무리 경건하고 건실하게 기도를 하고 있다고 해도 죄를 숨기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거든요.”
탁. 루시가 서류를 덮고 프리엔을 가만히 바라본다.
프리엔 또한 루시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바라보았다.
째깍─
벽걸이 시계가 움직이는 소리가 선명히 들릴 정도의 침묵 끝에, 루시가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간 프리엔이 책상 위에 손을 짚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보이네요.”
천천히 고개를 숙인 프리엔이 루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감한 눈빛이 서로 마주치며 공간이 얼어붙는다.
그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에서, 프리엔이 조용히 입술을 달싹였다.
“소위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이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