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17화. 길드, 흑월 (2)
길드원 당사자를 포함하면 최대 20명.
나와 수영이까지 22명 정도가 될 것이다.
"인당 5만 원씩이면 110만 원 정도인가?"
길드 마스터로서 그 정도 비용은 감당해도 괜찮겠지.
또, 교통비로서 인당 5천 원씩 길드 가입 신청서에 기입된 계좌로 지급해 줄 생각이다.
잠시 뒤, 답변을 보내온 헌터들.
해당 메일에는 동반하는 인원도 함께 기입되어 있었다.
"흐음, 16명이네."
곧바로 식당에 예약을 잡았다.
이틀 뒤, 나는 정장 차림으로 수영이와 함께 JG레스토랑을 방문했다.
불고기, LA갈비, 우동, 볶음밥, 초밥, 피자, 치킨, 닭강정, 과일, 야채, 음료 등.
수많은 음식들을 뷔페 형식으로 즐길 수 있는 식당이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식당에 도착했는데.
"건... 아니, 마스터."
"오랜만이네요, 태형 씨."
현재 모집한 길드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자, 김태형.
올해 24살이 된 그는 3년 차 헌터로서 이번 달 서열 427,211위에 올라섰다.
몇 차례 공략대에 참가하여 전투 경험까지 쌓은 헌터이니 나쁘지 않은 인재라고 해야겠지.
태형은 부모님과 여동생을 동반한 채 참석했다.
그리고....
"하아... 하아.... 제... 제가 너무 늦었나요?"
지혜는 교복 차림의 남동생과 함께 식당을 찾아왔다.
이어, 서열 516,180위 김지수, 서열 546,737위 신현민, 서열 528,019위 노세형.
세 사람이 내게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검은 생머리에 원피스 차림의 지수.
곱슬머리에 캐주얼한 복장의 현민.
마지막으로 짧은 스포츠 헤어에 안경을 쓴 세형까지.
"자, 그러면 모두들 들어가시죠."
전원 가족을 동반하고 있었다.
나는 8인용 테이블 3개가 비치된 룸으로 들어갔다.
테이블 중앙에는 '길드원석', '성인석', '미성년자석'의 팻말이 세워져 있었는데, 나는 각자 배정된 테이블로 그들을 안내해 주었다.
"이번 식사 자리는 길드원끼리 얼굴을 익히기 위한 자리이니, 서로 인사라도 나누시면서 즐겁게 식사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길드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둔 다음 나는 곧장 성인석으로 다가가 어른들에게 인사를 건네 드렸다.
부모 입장에서 자녀가 헌터라는 위험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심적으론 많이 불안할 것이다.
때문에 나는 부모님들을 안심시킬 수 있도록 길드의 운영 방침을 세세하게 설명해 드리고, 질문 사항 역시 정중하게 대답해 드렸다.
"더 궁금하신 것이 있으신가요?"
내 물음에 부모님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저는 자녀분들께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맛있는 저녁 식사가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나는 길드원석으로 걸어갔다.
30분이다.
내가 부모님들의 의문과 불안을 해소시키면서 보낸 시간이.
그동안 길드원끼리 다양한 대화를 나눈 것인지, 꽤나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펼쳐졌다.
뭐, 나를 제외하면 모두가 20대의 젊은 청년들이니까.
'어째 아재가 된 느낌이네.'
나는 머쓱한 얼굴로 의자에 착석했다.
"모두들 대화를 잘 나누신 모양이네요. 길드의 운영 방침에 대해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제게 물어봐 주세요."
그때, 지수가 번쩍 손을 들었다.
"앞으로는 F등급 게이트만 들어갈 생각인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은 그럴 생각입니다. 공략대는 대부분 김태형 씨와 제가 선두에서 마수를 토벌합니다. 이것이 기본적인 대형이죠. 그리고 열 번의 공략 중 두세 번 정도는 짐꾼 여러분 역시 헌터로서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대형을 구성할 생각입니다."
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 게시판에도 기입되어 있는 내용 그대로니까.
나는 작게 한숨을 흘리면서 길드원들과 눈을 한 번씩 마주쳤다.
"여러분들이 짐꾼에서 멈추고 싶지 않으시다면, 수시로 헌터 훈련장을 드나들면서 본인의 능력을 강화하십시오. 길드원의 숫자가 늘어나면 저는 팀제로 움직일 생각입니다. F등급 게이트를 공략할 제2팀과 그보다 높은 등급의 게이트를 공략할 제1팀으로 말이죠. 짐꾼의 보수는 길드에서 지급해 드립니다만... 그 정도에서 만족하실지는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내 이야기에 헌터들의 눈동자가 변했다.
짐꾼으로서 얼마나 고된 경험을 해 왔는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눈빛.
나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슬슬 식사를 해야겠네요. 여러분들도 오늘은 마음껏 드십시오."
나는 갈비와 불고기 및 볶음밥을 가져와 식사를 시작했다.
"아, 그런데... 아내분께서는 안 오셨나요?"
지혜가 슬쩍 수영이를 바라보며 질문하자, 나는 씁쓸히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내는 3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혜는 잠시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숙연해진 분위기.
하지만 이 자리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었다.
근처에서 누군가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흔하디흔한 이야기니까.
나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작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보다도 바로 모레에 일정을 잡아 두었습니다. 앞으로는 하루가 부족할 정도로 바빠질 테니, 몸 관리 잘해 주십시오. 저도 이 자리에서 멈출 생각은 없으니 말입니다."
"더... 올라가실 생각이에요?"
"최소 1,000위 안에는 들어가고 싶네요."
내 대답에 모두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장난스러움이 1도 없는 진지한 대답.
디저트를 먹던 그들이 손을 멈추자, 나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제 뒤를 바짝 따라오십시오. 안 그러면 놓고 가겠습니다."
그들의 성장을 느긋하게 기다려 줄 생각은 없다.
앞으로 발생하게 될 레이드와 마왕의 침공 역시 우리의 성장을 기다리지 않을 테니 말이야.
나는 생긋 웃으면서 식사를 재개했다.
헌터들은 잠시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숙여 테이블을 바라봤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 나는 헌터들과 한 명 한 명씩 악수를 나누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만약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문자로 물어봐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흑월의 첫 모임은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길드원들은 서로의 전화번호를 주고받으며, 조금이나마 편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앞으로 생사를 함께할 전우가 될 테니, 서먹서먹한 것보다는 낫겠지.
"수영아, 가면서 아이스크림이나 먹을까?"
"응."
나는 편의점을 들러 아이스크림을 샀다.
그리고 편의점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은 뒤, 택시를 호출해 집으로 돌아왔다.
모처럼의 뷔페였기 때문일까?
지불한 금액을 충당하겠다는 마음으로 배가 터질 때까지 음식을 먹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탈이 난 모양이다.
"으으... 소화제라도 먹어야겠어."
나는 약이 담긴 서랍에서 소화제를 꺼냈다.
그러곤 거실의 소파에 앉아 얼마 전에 구매한 TV를 시청했다.
뉴스를 시청하던 도중 수영이가 방에서 나왔다.
부엌에서 찬물을 한 잔 들이켜더니, 이내 내게 다가와 품속에 안겨 들었다.
"어이쿠, 우리 공주님이 벌써 이렇게나 자랐었네?"
"아까 그 사람들하고 게이트에 들어가는 거야?"
"그래, 이젠 아빠 직장 동료들이야."
"게이트는 언제 들어가는데?"
나는 수영이의 물음에 얼마 전 예약해 둔 게이트를 떠올렸다.
"모레. 그보다도 수영이, 내일 숙제는 다 했니?"
"응, 아까 학교 다녀오자마자 끝내 뒀어."
"...그래."
하긴, 초등학교 3학년 숙제가 어려워 봐야 얼마나 어렵겠어.
지금의 수영이라면 몇 분 만에 끝내 버릴 수 있으리라.
나는 머쓱한 얼굴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얼른 자야지. 이제 10시네."
"...응."
그녀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무리하지 말라는 뜻인가?
뭐, 나 역시 무리할 생각은 없다.
하나뿐인 목숨을 쉽게 버릴 리가 없잖아.
게다가 내가 죽으면 수영이는....
나는 씁쓸히 웃으며 TV의 전원을 껐다.
* * *
다음 날, 헌터 훈련장을 방문해 다섯 시간 동안 종합적인 트레이닝을 진행했다.
트레이닝을 마친 다음에는 초등학교 앞으로 수영이를 마중 나갔고, 수영이를 자택까지 데려다준 뒤, 다시금 헌터 훈련장을 들락거리면서 하루 일과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흑월의 첫 공략전이 시작됐다.
강남구 제19번 게이트에 모인 길드원들.
"어제 문자를 보내 드리기는 했습니다만,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금일 짐꾼은 이지혜 씨, 신현민 씨, 노세형 씨가 담당하며, 김태형 씨와 김지수 씨는 헌터로서 공략에 참가합니다. 게이트의 필드 환경은 동굴이며, 김태형 씨와 김지수 씨의 보수는 비율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보수는 내가 50%, 태형이 30%, 지수가 20%의 비율로 결정됐다.
태형과 지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비율이 생각보다 적었기 때문이겠지.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두 분께서는 짐꾼을 호위하며 전투에 임해 주십시오."
태형과 지수는 보수에 대해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금일 공략하는 게이트는 F등급.
마석은 개당 3~5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20%와 30%의 비율로는 많아 봐야 수십만 원 정도라고 생각한 것이리라.
'뭐, 40마리를 토벌해도 짐꾼들에게 보수를 건네주면 남는 게 없을 테니....'
하지만 내가 목표로 잡은 토벌 수는 40마리가 아니다.
촤아아아!
-키에에엑!
자이언트 레트(Giant rat).
F랭크로 분류된 쥐 형태의 마수다.
길이는 7~80cm 정도.
높이는 대략 3~40cm로 확인된다.
서걱!
"뒤로 세 마리 보내겠습니다!"
내 외침에 지수와 태형이 자세를 낮추었다.
역시라고 해야 할까?
F랭크 마수 정도는 그들 역시 어렵지 않게 토벌할 수 있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돌렸다.
"대충 마무리된 것 같군요. 마석을 회수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수를 치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게이트에 들어서고 벌써 세 시간이나 지났다.
나는 길드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마석을 회수한 뒤, 곧바로 점심 식사를 하겠습니다."
슬슬 허기가 진 길드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수의 가죽과 살코기를 베어 내 마석을 회수했다.
* * *
"확실히 대단하긴 대단하네요."
지수의 감탄 어린 목소리에 태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3~40마리 정도 처리했던가요?"
그런 태형의 물음에 마석을 회수하던 지혜가 입을 열었다.
"제가 센 것만으로도 50마리는 넘었어요."
건혁 혼자 2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인 것이다.
반면, 지수와 태형이 토벌한 마수는 고작 17마리.
건혁과 두 사람의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가 너무나도 컸다.
그렇게 회수 작업이 마무리되자, 건혁은 새로운 대형을 구성했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제가 후위에서 짐꾼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지수 씨와 태형 씨는 앞에서 마수들을 상대해 주세요. 그리고... 4시부터 6시까지는 제가 다시 선두에 서겠습니다. 그리고 6시 30분까지 게이트를 나가는 것으로 하죠."
게이트에 모인 시간은 오전 10시.
점심시간을 빼고 7시간 30분 정도의 공략이라면 길드원들도 불만은 없겠지.
일반적인 회사원들도 8시간은 기본으로 근무하니 말이다.
건혁의 새로운 대형에 지수와 태형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18화
18화. 길드, 흑월 (3)
"어렵다고 생각되면 놈들을 뒤로 보내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뒤로 물러나면서 제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러면 제가 곧바로 가세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지수와 태형이 선두에 서게 되었다.
재빠른 속도로 질주해 오는 자이언트 레트.
녀석들의 날렵한 움직임에 두 사람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으면서 대응했다.
서걱!
-키이이이...!
건혁은 두 사람이 흘려보낸 자이언트 레트를 토벌했다.
의도적으로 흘려보낸 게 아니다.
'빈틈이 많아.'
건혁은 지수와 태형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펴봤다.
근력을 이용해 검을 휘두르는 태형.
움직임 자체는 굼떴지만, 검을 휘두르는 속도는 나쁘지 않았다.
반면, 지수는 검에 담긴 위력과 속도 심지어 정확도마저 태형에게 크게 뒤처졌다.
"...여러모로 노력이 필요해 보이네."
건혁의 중얼거림에 짐꾼들은 은근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태형과 지수의 움직임과 토벌 수는 그만큼 큰 격차가 존재했다.
두 시간이 지나자, 지수와 태형은 녹초가 된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후... 훈련장에서도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었는데."
"하아... 하아... 하아.... 이렇게까지 많은 마수를 상대해 본 건 난생처음이었어요."
태형과 지수가 차례로 말했다.
두 시간 동안 태형은 34마리를, 지수는 16마리를 토벌했다.
그리고 뒤에서 짐꾼을 호위하던 건혁은 24마리를 토벌하였는데.
짐꾼들은 지수보다 많이 토벌한 건혁의 모습에 살짝 기가 막히고 말았다.
"30분간 휴식을 취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선두에 설 테니, 두 분께서는 뒤에서 짐꾼의 호위를 맡아 주십시오."
"후우...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30분의 휴식 이후 건혁이 길드원들에게 출발을 알렸다.
재개된 자이언트 레트의 토벌.
촤아아악! 서걱!
"허, 오전보다 움직임이 더 빨라지지 않았나요? 그보다 체력이 정말로 남아도는 건가?"
"아무래도... 우리가 취직은 제대로 한 모양이네요."
태형과 지수의 목소리에 짐꾼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후 6시 20분경.
게이트를 빠져나온 흑월의 길드원들.
짐꾼들은 가방에 담긴 마석을 바닥에 쏟아 내 개수를 세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동안 토벌한 마수의 숫자는 F랭크 237마리, E랭크 7마리로 확인됐다.
"대... 대박."
그들이 수성그룹에서 운영하는 게이트 처리 관리소에서 마석들을 매각하자 도합 1,040만 원이 길드의 계좌에 입금되었다.
짐꾼들에게는 예정대로 40만 원씩, 태형에게는 276만 원, 지수에겐 184만 원이 각자의 통장 계좌로 보내졌다.
"하... 하루 만에 276만 원이라니...."
"저도 이 정도의 금액을 벌려고 했었다면, 짐꾼으로 몇 번이나 뛰어야 했을 거예요."
태형과 지수는 스마트폰에 입금된 금액을 바라보면서 잠시 넋을 잃었다.
그 모습을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짐꾼들.
460만 원을 챙긴 건혁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길드원들을 바라봤다.
"지금 여러분들께서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네?"
지수의 반문에 건혁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후 저희들은 이보다도 몇 배나 많은 돈을 벌게 될 겁니다. 적어도 다음 달에는 E등급 게이트를 공략할 생각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짐꾼 여러분들 역시 매달 적게는 3회, 많게는 5회 정도 하루 1~2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가져가실 수 있을 테니, 그렇게 부럽다는 표정을 짓지는 말아 주십시오."
"E... E등급 게이트라니...."
"오늘 전투로 지수 씨와 태형 씨의 실력은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수 씨의 자택은 분명 강남구라고 했었죠?"
"...네, 그런데요?"
"만약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싶으시다면, 그저께 말씀드린 대로 헌터 훈련장을 방문하도록 하세요. 강남구에는 헌터 훈련장만 10개가 넘을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지구력과 동체 시력에 관련된 트레이닝을 추천드립니다. 이 부분은 다른 분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보다도 몇 배, 몇십 배에 달하는 돈을 벌고 싶으시다면, 오늘 당장이라도 자기 자신을 성장시킬 방법을 찾고, 그에 따른 노력을 하십시오."
건혁은 길드원들을 향해 스마트폰을 들어 보였다.
"지금 저희와 같은 시간에 E등급 게이트에 들어간 길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오늘 하루 만에 300만 원 정도를 벌었다는군요. 그리고 어제는 한 길드가 D등급 게이트에 들어가 무려 500만 원 상당의 돈을 벌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성장점수가 낮게 측정되었다고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 성장 점수는 현재 34점입니다."
건혁이 본인의 성장 점수를 밝히자, 모두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건혁의 성장 점수는 현재 눈앞에 서 있는 헌터들과 거의 비슷한 수치다.
물론, 스테이터스 능력이 반영되지 않은 점수지만....
"초기 각성에서는 21점을 받았었습니다. 때문에 여러분들 역시 충분히 저처럼 강해질 수 있으며, 다른 길드들처럼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목표를 높게 잡으십시오. 절대로 현재 상황에 안주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건혁의 강한 목소리에 길드원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숙인 길드원들.
건혁은 피식 웃으면서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일단, 오늘은 이쯤하고 해산하죠. 저도 얼른 딸아이 저녁밥을 준비해야 돼서... 모두들 오늘 하루 고생하셨습니다."
건혁이 자리를 벗어나려 하자, 길드원들이 건혁을 향해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외치면서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건혁이 택시에 올라타자, 그와 함께 길드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린 지수.
"박건혁 씨... 아니, 마스터의 생각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로 저희가 E등급 게이트를 공략할 수 있을까요?"
그녀의 물음에 태형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F랭크 마수들을 상대해 보면서 E랭크 마수도 어느 정도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입금된 금액을 확인했을 땐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라고도 생각했었어요. 하루에 276만 원, 열흘이면 2,760만 원이잖아요. 게다가 한 달에 10번씩 F등급 게이트를 뛴다면 1년에는 거의 3억 원 이상을 벌 수 있으니...."
그런 태형의 대답에 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오늘 하루 헌터로서 검을 휘둘렀을 때,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더군요."
지수는 선두에서 헛스윙만 수십 번을 반복했다.
심지어 검격이 마수를 스쳤을 때나, 일격으로 쓰러트리지 못했을 때는 어마어마한 체력 낭비를 하고 말았다.
"짐꾼을 맡아 주신 세 분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세요. 마스터는 저희 모두가 '진짜' 헌터가 될 수 있으리라 믿고 계셨으니까요."
"저는 애초에 짐꾼을 그만두기 위해서 마스터를 따라 흑월 길드에 들어온 겁니다."
서열 528,019위인 노세형의 발언에 지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세형과 마찬가지로 오늘 하루 짐꾼으로 활동한 지혜와 현민 역시 눈빛을 굳히면서 지수와 눈을 마주쳤다.
"그렇다면 내일부턴 모두가 헌터 훈련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겠네요. 아, 참고로 마스터는 서초구 제7 헌터 훈련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는 모양입니다."
지수의 뒷말에 모두가 '서초구 제7 헌터 훈련장'을 머릿속에 주입하며 주먹을 세게 쥐었다.
"그럼 저도 이만 오늘은 돌아가 볼게요."
지수가 자리를 벗어나자, 다른 헌터들 역시 서서히 몸을 움직였다.
오늘의 각오가 작심삼일로 끝날지, 아니면 계속해서 유지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마스터, 좋은 아침이네요."
"...지수 씨? 분명 자택이 강남구라고...."
"마스터한테 조언이라도 받고 싶어서요. 저 외에도...."
지수가 고개를 돌리자, 건혁 역시 시선을 움직였다.
훈련장 외곽을 달리는 태형과 세형.
훈련용 도검을 휘두르는 현민.
동체 시력 훈련장에 들어간 지혜까지.
"굳이 이곳까지 나오지 않더라도 훈련장에는 트레이너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인터넷을 찾아보면 각자에게 맞는 효율적인 방법들도...."
"네,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훈련장에서 합을 맞춰 보거나, 대련 상대가 되어 주는 것으로 훈련의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지 않을까요? 게다가 저희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마스터한테 보여 주는 것도 가능하고."
"하아."
지수의 마지막 말에 건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가는 시간이 정말로 아깝네요."
이 훈련장을 방문하기 위해 왕복 1시간 이상을 소요하는 사람도 존재했다.
그 시간을 조깅이나 달리기에 사용하는 편이 더욱 효율적이겠지.
"물론, 지혜 씨와 세형 씨는 대중교통으로 30분 이상 걸려서 망설이긴 했었어요. 그래도 이곳에서 함께 훈련하기로 결정했죠. 태형 씨와 현민 씨의 경우에는 20~25분 정도를 달려서 왔다고 하네요."
건혁은 잠시 눈을 감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뭐, 훈련에 대해선 뭐라고 할 수 없겠죠. 일단, 길드 마스터로서 최소한의 조언은 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제 조언보다는 각자에게 맞는 훈련법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네, 그 정도는 저희도 알고 있어요. 저 역시 여러모로 조사를 해 봤거든요."
본인만의 장점을 강화하여 특기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은 헌터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생활하는 직장인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건혁은 지수로부터 시선을 돌려 탈의실로 들어갔다.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건혁.
그는 곧바로 훈련장의 외곽을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타다다다닷!
10초 동안의 전력 질주.
적당한 달리기와 전력 질주를 반복하는 건혁의 모습에 태형과 세형이 그 뒤를 따랐다.
"으으으으...."
이를 악물면서 건혁의 뒤를 쫓는 두 사람.
그러나 불과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태형과 세형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반면, 건혁은 한 시간을 멈추지 않고 훈련장의 외각을 달렸다.
그렇게 몸이 풀렸을 무렵.
그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훈련용 도검을 휘둘렀다.
쐐애액! 쐐액! 쐐액!
"후우...."
그렇게 수십 차례 도검을 휘두른 다음, 동체 시력 훈련장 옆에 위치한 반사 신경 및 검술 훈련장으로 입장했다.
10,000원을 지불하고 말이다.
훈련장 내부에는 동체 시력 훈련장과 마찬가지로 허공에 작은 공들이 매달려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서걱!
실제 도검으로 공을 베어 내느냐, 베어 내지 못하느냐의 차이겠지.
"...."
숨을 가다듬으면서 지름 10cm의 스티로폼 공을 재빠르게 베어 낸 건혁.
그 모습을 훈련장 밖에서 지켜보던 길드원들은 감탄사를 터트리고 말았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공들을 날렵하고 정확하게 두 동강 내다니.
"아, 공에 맞으면 –3점이구나."
"베어 내지 못하면 –1점.... 하긴, 공격에 당하는 것보단 피하는 게 낫기는 하지."
태형과 세형이 차례로 말했다.
훈련이 종료되고 건혁은 밖으로 나오면서 길드원들을 바라봤다.
"이 훈련은 동체 시력 훈련 1단계에서 80점으로 통과한 다음에 해 보십시오."
그런 건혁의 조언에 길드원들은 일제히 동체 시력 훈련장으로 달려갔다.
제19화
19화. 놀이공원 (1)
"제길, 48점...."
"저는 36점이에요. 스펀지 볼이 닿을 때마다 –2점이라니...."
지혜가 실망스러운 얼굴로 결과표를 바라봤다.
그렇게 흑월 길드의 멤버들은 한 달 동안 건혁을 따라 훈련장을 들락거렸다.
물론, 게이트를 들어간 후에는 충분한 휴식을 취했으며, 휴일마다 6~7시간 동안 개별 훈련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능력을 기르기 시작했다.
"한 달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내일이면 서열도 새롭게 갱신되겠네요."
길드원들은 살짝 기대되는 얼굴로 눈을 반짝였다.
"내일부터 사흘간 휴식을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일은 반드시 마사지를 받아 두세요. 영수증을 제게 건네주시면, 10만 원까지 비용을 지원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 마사지 비용을요?"
"일종의 복리 후생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동안 여러분들도 무리한 훈련과 게이트 공략을 반복하셨으니 말입니다."
"그... 그래도 마스터 덕분에 돈도 많이 벌었는데, 그런 비용까지...."
다섯 중 가장 적은 소득을 받은 지혜도 한 달 동안 무려 640만 원이라는 돈을 받았다.
길드원 모두의 성과가 건혁의 1/3에도 미치지 못함에도 말이다.
그렇다고 건혁을 빼고 게이트에 들어갔다간 분명 사상자가 발생하겠지.
건혁은 흑월의 기둥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에게 후한 보수를 받는데, 거기에 복리 후생비까지 받는다니.
길드원들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그것이 표정에서 드러난 걸까?
건혁이 작게 웃었다.
"다음 달부터는 E등급 게이트에 들어갈 겁니다. 그에 대한 작은 호의이니, 반드시 전문가한테 마사지를 받으세요. 저는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하니, 그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모두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매번 자리를 벗어날 때마다 말하는 저녁 식사의 준비.
길드원들은 건혁이 얼마나 팔불출인지 알 수 있었다.
일전에는 회식 비용이라면서 30만 원을 건네주곤 곧장 자택으로 귀가했다.
세상에 이런 상사가 또 어디에 있을까.
"빨래, 청소, 요리... 심지어 헌터 활동까지. 그야말로 슈퍼 아빠네."
"그보다 오늘은 어떡할래? 주변에 맛있는 초밥집이 있는데."
"누나가 산다면 당연히 따라가야죠."
"이 녀석이...!"
세형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지수가 주먹을 들면서 때리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두 손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하는 세형.
"어쭈, 이젠 막을 수 있다 그거냐? 이 주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수들 앞에서 벌벌 떨었던 녀석이...."
"아... 아니, 처음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그런 세형의 변명에 지수는 콧바람을 차면서 고개를 돌렸다.
"흥, 나는 처음에도 무덤덤하게 마수를 토벌했었어. 그보다 지혜는 시간 괜찮아?"
"저도 남동생 때문에 돌아가 봐야 해요."
"남동생이 고등학교 2학년생이라고 했었던가?"
"네."
"그 정도면 혼자서도 밥은 챙겨 먹을 수 있을 텐데...."
"한번 전화해 볼게요."
지혜는 스마트폰을 꺼내 지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말로 괜찮겠어?"
―나도 곧 성인이야. 밥 정도는 알아서 먹을 수 있으니까, 누나는 동료분들하고 먹고 와.
"...알겠어. 누가 찾아와도 절대로 문 열어 주면 안 돼. 알겠지?"
―누나, 나 18살이야. 내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아무튼, 너무 늦지 말고 들어와.
통화를 마친 지혜의 모습에 지수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마스터도 마스터지만, 너도 참... 너무 과보호하는 거 아니야? 고등학교 2학년인 남동생한테 누가 찾아와도 절대로 문 열어 주지 말라니...."
"그래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단 하나뿐인 가족이니까."
"그래, 그러면 지혜도 괜찮다는데, 그쪽 남자 두 명은 어때?"
"나도 상관없어."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나도 가능해."
태형과 현민의 대답에 지수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내일 갱신될 서열을 기념하며 오늘은 이 누나가 쏜다!"
"오오!"
지수가 안내한 곳은 초밥 뷔페였다.
잠시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 세형은 식당 내부를 바라보면서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인당 25,000원의 금액으로 수많은 종류의 초밥과 샐러드 바까지 즐길 수 있다니!
한바탕 즐거운 식사 시간을 보낸 다섯 사람은 자택으로 귀가해 자정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12시!"
자정이 되자마자 서둘러 헌터증을 확인한 흑월의 길드원들.
"드... 드디어 40만대에 들어섰어!"
지수는 본인의 서열을 확인한 순간, 주먹을 쥐면서 침대 위를 펄쩍펄쩍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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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김지수
*출신 국가: 대한민국
*길드: 흑월(黑月)
*서열: 499,983위
*등록일: 2012. 04.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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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아슬아슬하게 40만대에 들어선 지수.
그녀는 스마트폰을 쥐고 곧장 전화를 걸었다.
"아, 지금 전화하는 건 너무 늦었...."
―여보세요?
"아, 미안해. 잠깐 전화 괜찮을까?"
전화 상대는 길드원 중에서도 가장 친밀한 관계를 지닌 지혜였다.
그녀는 지수의 물음에 기분 좋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물론이에요. 저도 방금 전화를 해도 괜찮을까 고민했었거든요.
"너도 확인했지?"
―언니는 어땠어요?
"나는 499,983위야!"
지수의 힘찬 대답에 스마트폰 너머에서 지혜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러면 40만대의 헌터가 되신 거예요?
"아하하, 많이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그리고 49만대를 40만대라고 부르기도 조금은 민망하겠지?"
조금 전까지 40만대가 되었다며 기뻐했던 그녀였으나, 일부러 겸손 아닌 겸손을 보였다.
"그래서 너는 어때?"
―저는 방금 522,811위로 갱신됐어요. 설마, 이렇게나 큰 폭으로 올라가게 될 줄은....
"그만큼 노력했다는 증거 아니겠어? 아, 그보다 마스터의 서열도 확인해 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지수는 곧바로 협회 홈페이지에 접속해 길드 게시판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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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박건혁
*출신 국가: 대한민국
*서열: 214,777위
*길드: 흑월(黑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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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는 건혁의 프로필을 확인한 순간 몸이 굳고 말았다.
"...금세 10만대에 들어서겠는데?"
―네? 방금 뭐라고....
"마스터, 저번 달 서열이 몇 위였더라?"
―아마 24만대... 정도로 기억하고 있어요.
지수는 건혁의 서열 상승세를 다시금 확인하면서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마스터 서열이 21만대야."
―....
잠시 침묵한 지혜.
아무래도 크게 놀란 모양이다.
그에 지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본인처럼 516,180위에서 499,983위로 상승하거나, 지혜처럼 537,980위에서 522,811위로 상승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서열은 높으면 높을수록 올리는 것이 어려워지는데.
그만큼 강한 헌터들이 머리 위에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여전히 급격한 성장세를 이어 가는 건혁의 모습에 지수는 조금 전까지 기뻐했던 감정을 순식간에 지워 버렸다.
"아무래도 내일은 집 근처의 훈련장에 가 봐야겠어. 적어도 마스터 옆에 설 정도의 실력을...."
―저도 내일은 훈련장에 가 볼게요. 언제까지 짐꾼 노릇을 하면서 언니랑 마스터에게 보호를 받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 반드시 강해지자."
건혁의 서열에 굳은 각오를 다짐한 두 사람.
그것은 지혜와 지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수천 명의 헌터를 제치며 서열을 상승시킨 태형, 현민, 세형.
세 사람 역시 건혁의 서열 상승을 확인하자마자 눈빛을 굳히면서 주먹을 세게 쥐었다.
"412,887위... 마스터와의 격차가 더 벌어졌어. 제기랄!"
한 달 만에 14,000여 명을 뛰어넘은 태형.
그러나 건혁과의 서열 격차가 크게 벌어졌단 사실에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안 그래도 어마어마한 격차가 존재했는데, 거기서 더욱 벌어지게 될 줄이야.
"내일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훈련장부터 가 봐야겠어. 마사지는 저녁에 받아도 상관없겠지. 지금은 얼른 자자."
태형은 복잡한 심경을 가라앉히면서 서둘러 침대에 드러누웠다.
성장에 대한 강한 욕구.
그는 건혁의 서열에 큰 자극을 받았다.
* * *
나는 길드원들에게 사흘의 휴가를 주고, 토요일 아침 서둘러 외출을 준비했다.
"아빠, 나는 준비 다 됐어!"
신나 보이는 수영이가 가벼운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거실로 나왔다.
"아빠도 챙겨야 하니까 TV라도 보고 있어."
"응!"
오늘은 수영이와 놀이공원에 가는 날이다.
잠실에 위치한 OO월드라는 놀이공원.
한 달 동안 바쁘게 돌아다녔던 내게 주는 작은 포상임과 동시에 오랜만에 수영이와 함께하는 즐거운 데이트 시간이다.
나는 가볍게 옷을 갖춰 입고 곧장 택시를 잡았다.
'슬슬 자차를 마련해야겠어. 아니, 지금은 이사가 먼저인가?'
4월 동안 흑월 길드는 무려 13개의 게이트를 드나들었다.
그로부터 얻게 된 5,000만 원 상당의 수익.
게이트의 등급은 낮았지만, 임시 공략대에서 활동하는 것보다도 높은 수익과 원활한 전투 환경을 얻을 수 있었다.
길드원들도 4월 달 수익금에 만족하는 모양이고.
"...사람 엄청 많아."
"주말이라 그런가?"
수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가운데, 나는 서둘러 티켓을 끊고, 수영이와 함께 OO월드로 들어갔다.
"여기서 좀 놀다가 야외로 나가 보자. 우선...."
"저거!"
내가 회전목마를 거론하려던 순간, 수영이 롤러코스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처음부터 롤러코스터라니.
"그... 그래, 오늘은 수영이가 원하는 거 전부 타 보자."
그렇게 수영이를 따라 롤러코스터 주변에 모여 있는 인파로 다가갔다.
놀이기구를 하나 타는 데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최소 20분에서 최대 1시간 30분까지.
나는 수영이와 함께 줄을 서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젠가는 이 놀이공원을 전세로 빌리고 만다.'
물론, 그 정도의 돈을 벌려면 국내 헌터 상위 1% 안에는 들어서야겠지.
현재로선 너무나도 먼 미래가 될 테고 말이다.
아니, 그때가 되면 수영이가 직접 전세로 빌릴 수도 있으려나?
1회차만 하더라도 상위 0.1%에 들었던 헌터였으니까.
"아빠, 다음에는 저거 타자."
내 소매를 당기며 바이킹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수영이.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제대로 작정한 모양이다.
그렇게 롤러코스터와 바이킹에 이어 범퍼카에 탑승하면서 오전을 순식간에 보내 버렸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나는 수영이와 함께 OO월드 내에 위치한 식당을 찾아갔다.
"점심 먹은 뒤에는 밖으로 나가 보자."
"응!"
수영의 힘찬 대답에 나 역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생각해 보니 소설 속에서도 수영이가 놀이공원에 방문한 적이 있었었지?
딱히 특별한 에피소드는 아니었다.
놀이공원을 방문한 경험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이야기가 거론되고, 야외에서 B등급 게이트가 폭발하며 큰 소란이 일어날 뿐.
'1년에 2~3번 정도는 수영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와 보자. 동물원도 괜찮고.'
수영에게 가능한 많은 경험과 추억을 선물해 주자고 다짐하며, 식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야외로 빠져나갔다.
실내보다 더욱 다양한 종류의 놀이기구들.
수영이는 내 손을 붙잡고 놀이기구의 앞으로 달려갔다.
제20화
20화. 놀이공원 (2)
"아빠, 나 솜사탕!"
넘쳐 나는 먹거리들.
자이로 드롭에 탑승했던 우리는 잠시 벤치에 앉아 솜사탕, 추로스, 핫도그 등의 간식을 먹었다.
이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수영의 발걸음.
"아빠, 다음은 저거!"
앞서 달려가는 수영의 모습에 나는 작게 미소를 보이면서 수영이를 붙잡았다.
"그러다 넘어지겠다."
한참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우리는 하늘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곧바로 실내로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열기구 한 번 타고 가자."
천장에 매달린 채 실내를 한 바퀴 도는 열기구.
나는 수영이와 함께 마지막 놀이기구에 올라탔다.
"오늘 재밌었어?"
"응!"
"그러면 나중에 또 올까?"
"정말로?!"
"다음에는 동물원도 한번 가 보자. 그리고 워터 파크에도...."
내가 주절주절 말하던 그때, 수영이가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이내, 그녀의 뺨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물방울.
나는 잠시 멈칫하며 당황했다.
"수... 수영아?"
"저... 정말로 다음에도 놀러 오는 거야? 정말로?"
수영이 얼굴을 들이밀며 질문한다.
그 모습에 나는 당혹스러움보다도 미소가 먼저 흘러나왔다.
"당연하지. 우리 공주님이 원하는 장소라면 아빠가 어디든지 데려다줄게."
"약속이야!"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수영이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그러곤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수영이의 눈가를 닦아 주었는데.
열기구가 원점으로 되돌아온 그 순간.
투콰아아앙!
지상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실내를 쩌렁쩌렁 울리는 거대한 폭음.
어디서 폭발 사고라도 일어난 건가?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푸른빛의 게이트.
"이게 무슨...."
원작은 수영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OO월드에서 게이트가... 아니, 레이드가 발생하는 것은 9년 뒤의 일일 터!
게이트에서 녹색의 마수가 걸어 나오자, 내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우워어어어어어!
"서... 설마...."
포효를 토해 낸 것은 다름 아닌 오크 장군이다.
신장 2.3m에 우락부락한 육체를 보유한 녹색 피부의 마수.
심지어 화려한 칠흑의 갑옷으로 무장한 녀석은 붉은 안광을 반짝였다.
그런데....
"하... 한 마리가 아니라고?"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대여섯 마리의 오크 장군.
심지어 주술사까지 섞여 있다.
-취이익! 취익!
"제길!"
나는 열기구가 원점에 도착하자마자 수영이를 껴안고 달렸다.
'미친, 오크 라이더까지!? 게다가 장군과 주술사가 여럿이라면... 100% B등급 게이트다!'
설마, B등급 게이트가 OO월드에서 개방될 줄이야!
심지어 개방과 동시에 발생한 레이드.
원작에서도 OO월드의 게이트는 거론된다.
하지만 그것은 9년이 지난 미래에서 발생하게 될 일.
'왜 지금...!'
가슴이 두근거렸다.
초조함과 불안함이 뒤섞인 순간.
"꺄아아아악!"
"도... 도망쳐!"
"으아아아아악!"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투콰아앙! 콰콰콰쾅!
"이런...!"
계단을 내려가려던 때, 거대한 화염구가 놀이기구에 직격하면서 계단을 깔아뭉갰다.
앞서 나가던 사람들은 그대로 깔려 버리고 말았는데.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난간을 바라봤다.
"수영아, 눈 꽉 감아!"
나는 붐비는 인파를 뚫고 난간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곤 난간을 밟고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2층 높이라고는 하지만 아파트의 2층과는 차원이 달랐다.
"흐읍!"
나는 수영이를 보듬어 안은 채 바닥을 굴렀다.
내가 멀쩡해 보였기 때문일까?
몇몇 사람들이 2층에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퍼억!
"크아악!"
쾅!
"커헉...!"
다리가 부러지거나, 체내에 심한 충격이 가해지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
뒤에서 들려오는 도움 요청을 나는 무시했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보다 내 딸이 우선이니까.
하지만 신께서는 그런 내 이기적인 행동을 용납하지 못한 모양이다.
콰앙!
인파를 뚫으면서 출구를 코앞에 둔 내 머리 위로 롤러코스터의 철로가 무너져 내렸다.
나는 이래 보여도 상당한 겁쟁이다.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
그럼에도 품속에 안겨 있는 이 작은 아이만큼은....
"으아아아아아!"
콰콰콰콰콰콰쾅!
* * *
거대한 굉음과 함께 OO월드의 출입구가 막혀 버렸다.
수영은 먼지 속에서도 눈을 또렷이 뜨면서 건혁을 바라봤다.
핏물을 토해 내는 부친.
"아... 아빠?"
쿨럭!
"어... 얼른 도망쳐."
무너진 철로에 왼팔이 잘려 나가고, 허리께에 기다란 철사가 박힌 건혁.
품속에 안겨 있던 수영은 작은 찰과상뿐이었다.
"저... 저기로 내려가면 돼."
건혁은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구멍을 가리켰다.
출입구와 연결된 통로다.
수영은 출입구를 보면서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잘려 나간 건혁의 왼팔과 허리께를 관통한 철사.
그로부터 나온 다량의 핏물이 그녀의 두 손을 적셨다.
"피... 피...."
거칠게 흔들리는 수영의 눈동자가 건혁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했다.
건혁은 그런 딸의 머리를 오른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빠는 괜찮아. 그러니... 쿨럭! 어... 어서 저기로 들어가."
"하... 하지만...."
"아... 아빠는 강한 헌터야. 그러니까 괜찮아. 우리 다음 달에는... 쿨럭!"
건혁이 핏물을 토해 냈다.
목구멍에서 토사물이 쏟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의 입에서 흘러내리는 핏줄기에 수영의 눈동자는 다시 한번 크게 흔들렸다.
건혁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다... 다음 달엔 동물원에 가 보자. 사자랑 코끼리랑 기린... 이랑...."
그가 다시 한번 피를 토하며 기침을 했다.
그에 수영이 입을 뻐끔거렸다.
"야... 약속했잖아. 나랑 동물원이랑 워터 파크에 간다고 약속했잖아! 손가락도... 소... 손가락도...!"
"아빠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야. 그러니... 머... 먼저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 아빠도... 금방 따라갈게."
눈을 감은 채 힘을 쥐어짜듯 목소리를 낸 건혁.
수영은 입술을 잘근 깨물면서 부친의 좌측 어깨와 허리께에 두 손을 가져다 댔다.
쩌저저적.
얼음으로 출혈을 막은 것이다.
"저... 절대로 죽으면 안 돼! 도와줄 사람을 데려올 테니까!"
수영이 작은 구멍을 통해 출입구로 향하자, 건혁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떨어트렸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폭음과 비명 소리.
곧 그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역시 죽는 건 무섭네.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야.'
씨익 미소가 지어졌다.
'신무영이든 박건혁이든 간에... 이걸로 된 거야. 수영이가 무사하다면 그걸로....'
그렇게 건혁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두 눈을 감았다.
한편, 출입구로 나온 수영은 마침 출입구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기사단과 각 길드의 헌터들을 향해 달려가 그들의 바지를 붙잡았다.
"아... 아빠가...!"
그녀는 눈물과 콧물을 쏟아 내며 건혁의 구조를 요청했다.
그에 한 여성이 걸어 나오더니, 자세를 낮추며 수영과 눈을 마주쳤다.
"아빠가 어디에 있니?"
"계... 계단 위... 로... 롤러코스터 철로에 깔려서...."
수영이 울먹이며 대답하자, 여성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으렴. 아빠는 반드시 구해 줄게."
그녀는 서둘러 수많은 헌터들을 이끌고 출입구로 달려갔다.
철로에 의해 막혀 버린 출입구.
헌터들은 미간을 찡그리면서 곧바로 직원용으로 사용되는 출입구를 통해 놀이공원 내부로 돌입했다.
-취이이익!
"제1팀과 제2팀은 마수들을 상대하고, 제3팀과 제4팀은 민간인들을 구조한다! 서둘러!"
청룡 기사단원과 각 길드원들로 편성된 4개의 팀.
사람들은 헌터들의 유도에 따라 직원용 출입구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쪽 조심해! 잘못하면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고!"
"조심히! 조심히 들어 올려!"
"안쪽의 사람들부터 구조해!"
철로에 깔린 민간인의 구조가 시작됐다.
"제길, 죽었어."
철로에 깔려 살아남은 사람은 발견할 수 없었다.
수영에게 부친의 구조를 약속한 여인.
청룡 기사단의 부단장, 이진화는 주먹을 세게 쥐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전부 죽었...."
"사... 살아 있어! 생존자 발견!"
진화는 화들짝 놀라면서 생존자를 향해 달려갔다.
2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외모의 사내.
사내의 왼팔은 잘려 나가 있었으며, 허리는 철사에 꿰뚫려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부분이 발견됐다.
얼음에 의해 상처가 지혈되어 있었던 것이다.
"설마, 특수 능력을 보유한 헌터인가?"
진화는 살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그 아이의 아빠라고 보기에는 너무 젊어."
잠시 뒤, 수영의 부친으로 추정되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년들을 발견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미안하다."
엉뚱한 사람 앞에서 수영을 떠올리는 진화.
그녀는 부상자와 민간인을 구조한 뒤, 곧바로 토벌에 투입됐다.
B등급 게이트의 폭발.
그나마 인근 지역에 헌터들이 대기 중이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잠실이라는 지역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을 뻔했다.
"주술사부터 처리해!"
헌터들이 오크 라이더를 상대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서열 1,000위 안에 속해 있는 23명의 헌터들은 오크 장군과 주술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마수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오크 전사와 라이더는 추정 6~700마리 정도.
그 외 장군 다섯, 주술사 셋이 전부다.
숫자만으로는 소규모 레이드에 해당되지만, 마수들의 랭크 때문일까?
언론에서는 해당 레이드를 중규모 레이드로 보도했다.
"모두 나와 주십시오!"
건혁은 구급대원들의 손에 이송됐다.
그 모습을 발견한 수영이 곧바로 구급대원의 뒤를 따라갔다.
이어, 구급차에 동승하려는 수영의 모습에 화들짝 놀란 구급대원들.
"우... 우리 아빠예요!"
그런 수영의 외침에 구급대원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수영을 동승시켰다.
* * *
"끄응...."
몸 전체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눈을 뜨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의 통증.
나는 이를 악물면서 새하얀 천장을 바라봤다.
"여기는...."
이세계로 전행하기 위한 곳인가?
슬쩍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자, 이곳이 어딘지를 깨달았다.
아무래도 죽진 않은 모양이네.
나는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앞으로는 외팔 신세인가."
왼팔이 사라져 있다.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난생처음으로 겪는 생소한 경험.
나는 상의를 벗으면서 작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나마 저 사람보다는 나은 건가?'
맞은편 침대에는 두 다리를 잃은 환자가 누워 있었다.
저 사람도 이번 OO월드에서 일어난 레이드의 피해자겠지.
"아빠?"
병실 문 앞에 서 있는 수영이.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내가 작게 미소를 짓는 순간.
수영이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 아빠!"
달려오는 수영이를 나는 조심스럽게 껴안았다.
그녀는 내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연신 '괜찮아'라는 말을 반복했다.
물론, 괜찮지는 않았다.
아까부터 허리께가 미친 듯이 아팠으니까.
그리고 수영이의 울음소리 때문일까?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오더니, 내 모습을 보자마자 곧바로 의사를 불러왔다.
제21화
21화. 의수 (1)
"수술 자체는 큰 문제 없이 성공했습니다. 포션을 사용하신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퇴원할 수 있겠죠."
백의를 걸친 중년 의사.
나는 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뒤, 병원에서 취급하는 4등급 포션을 건네받았다.
당연히 비용은 따로 청구될 것이다.
하루를 병실에서 보내고 정밀 검사를 통해 회복 상태를 확인했다.
"한동안 무리한 활동은 자제해 주십시오. 아무리 포션을 드셨다곤 하지만, 적어도 사흘간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의사의 발언에 나는 왼쪽 어깨를 문질렀다.
"왼팔은... 1등급 포션을 사용하지 않는 한 재생시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렇군요."
"직업이 헌터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의수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전문가가 있으니, 그를 만나 보시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이어지는 의사의 설명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설 속에서도 몇 번 등장했었던가?
이 세계의 의수는 내가 살았던 세계보다 크게 진보되어 있었다.
체내의 마력이라는 에너지를 의수와 연결시켜 본인의 의지대로 주먹을 쥐었다가 펼치는 등, 진짜 팔처럼 다양한 움직임을 구현한다.
문제는 금액인가.
나는 퇴원 준비를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의수의 금액을 검색해 봤다.
"...수술까지 받아야 해?"
의수를 탈부착할 수 있도록 뼈와 연결시키는 의수 고정대가 있어야 한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수영이를 데리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마스터."
내 퇴원 소식과 함께 병원을 방문해 준 길드원들.
나는 씁쓸히 웃으며 그들을 바라봤다.
"다들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요."
아니, 실제로 오랜만이었다.
내가 병실에서 생활한 것은 무려 5일.
나는 나흘간 눈을 뜨지 못했었던 모양이다.
길드원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안부를 물었고, 나는 그들과 함께 병원 인근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길드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헌터 생활은 계속할 생각이니 말입니다. 물론, 탈퇴를 희망하신다면 언제든지 탈퇴 신청서를 제출해 주셔도 상관없습니다."
흑월 길드의 주력이었던 내가 외팔이 되어 버렸으니....
분명 길드원들 중에서도 불안한 사람들이 존재하리라.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었을 뿐.
길드원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어 보였다.
"이 자리에서 탈퇴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대표로 대답한 지수.
나는 쓰게 웃으면서 식당의 직원이 대령해 준 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제길....'
왼손으로 컵을 집으려는 순간.
나는 속으로 욕설을 터트렸다.
확실히 외팔이라는 부분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아 참, 요새 이런 것들도 나오고 있던데...."
세형은 본인의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의수들을 보여 주었다.
던전 내부에서 채광한 희귀 금속 크랄티늄.
강철보다 몇 배나 튼튼하면서 가벼운 무게를 자랑하는 금속이다.
때문에 크랄티늄으로 제작된 의수에는 무기와 방패 등을 장착할 수도 있다는 모양이다.
"무... 물론, 금액이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요."
세형이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더 메이드이기 때문일까?
무기와 방패가 장착된 크랄티늄 의수는 최소 7,500만 원, 최대 2억 원에 가까운 금액으로 판매된다고 한다.
또, 무기와 방패가 장착되는 만큼 금액은 수천만 원씩 뛰어올랐으며, 무게 역시 2배 이상으로 무거워졌다.
"뭐, 마스터라면 이 정도 무게는 여유롭겠지만, 좌우 균형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모양이에요. 그리고 크랄티늄제 의수는 유지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가서 일반인들은 꺼려 한다는 이야기도...."
의수에 사용되는 지출도 지출이지만, 마력 전지에 소요되는 비용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의수를 사용하기 위해선 체내에 마력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의수에 내장된 마력 전지가 체내의 마력과 연결되어 힘줄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다.
대량의 마력을 보유한 것이 아니라면 마력 전지는 반드시 필요하겠지.
참고로 크랄티늄제 의수는 하루에 30MN이라는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모양이다.
"헌터들의 경우에는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100MN이라는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고 하네요."
MN이란 마력 에너지를 수치화하기 위한 단위다.
전기를 와트(W)라고 부르듯 마력 에너지를 수치화할 때 사용하는 기호를 MN으로 규정한 세계 헌터 협회.
그리고 시중에서 거래되는 100MN의 마력 전지의 금액은 무려 100,000원.
"하루에 10만 원이면... 한 달에 300만 원꼴이잖아요. 그래서 웬만하면 크랄티늄제보다 더 저렴한 의수를 알아본대요. 저렴한 건 몇십만 원에도 구매할 수 있고, 유지 비용도 얼마 안 되니까요."
세형의 이야기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관심을 기울였다.
크랄티늄.
확실히 그런 금속도 존재했지.
설마, 내가 의수를 착용하게 될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지만, 세형의 이야기에 나는 고개를 몇 차례 끄덕이면서 헐렁이는 왼쪽 옷소매를 바라봤다.
'의수 고정대 수술부터 먼저 받아야겠어.'
나는 식사를 마친 뒤,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설명했다.
"한동안 휴식기를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께선 임시 공략대에 참가하셔도 상관없고, 개인 훈련을 진행해도 괜찮습니다."
"한동안이라면 얼마나...."
"의수를 착용하게 된다면 고정대 수술부터 받을 생각입니다. 그에 따라 재활 훈련을 진행해야겠죠. 그렇다면 적어도 1~2개월 정도는 생각해 두십시오. 그리고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여러분들에게는 매달 200만 원이 지급될 겁니다."
"예? 그건 왜...."
지수의 물음에 나는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일종의 유급 휴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참고로 여러분들끼리 F등급 게이트를 공략하는 것도 마스터로서 허락하겠습니다. 물론,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주세요."
휴식기 동안 지급되는 200만 원의 급여.
인원은 다섯이니 두 달간 도합 2,000만 원 정도가 세금을 공제한 다음 각자의 계좌로 이체될 것이다.
본래 길드 마스터가 이 정도의 호의를 베풀 의무는 없다.
길드란 회사가 아니니까.
그들 역시 그것을 아는 걸까?
지수와 태형이 무언가 말하려는 듯 상체를 움찔거렸지만, 눈동자를 반짝이는 지혜와 현민을 보곤 그만 입을 다물었다.
지혜와 현민은 가정 형편상 매달 6~7번 정도는 공략대에서 짐꾼으로 뛰어야 했다.
그들 본인이 한 집안의 가장이니 말이다.
그들에게 200만 원이란 돈은 분명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면 오늘은 이만 해산하도록 하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길드원들 역시 뒤따라 식당을 빠져나왔다.
물론, 식사 비용은 모두 내가 결제했다.
"모두들 조심히 들어가세요."
내 인사에 현민과 지혜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마스터도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조심히 들어가세요!"
말 그대로 자본주의에 물든 모습이다.
나는 수영과 손을 잡은 채 대로로 나가 어플로 택시를 호출했다.
* * *
며칠 만에 돌아오게 된 집.
OO월드에 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이런 모습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후우, 얼른 방에 들어가서 쉬어. 계속 병원에서 잤었잖아."
"응, 그런데 정말로 괜찮아?"
"그래,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어. 아빠도 들어가서 쉴 테니까, 수영이도 한숨 자."
내 대답에도 수영이는 우물쭈물거리면서 헐렁이는 내 왼팔을 바라봤다.
본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걱정스러운 수영의 눈빛에 나는 작게 웃으며, 오른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얼른 들어가서 쉬어."
"그... 그래도 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려 하는 수영.
나는 그녀를 강하게 보듬어 안았다.
"수영이 탓 아니야. 아빠가 나쁜 사람이라서 벌 받은 거뿐이야."
도움을 구하던 사람들을 무시하지만 않았다면, 아마 왼팔이 잘려 나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 아빠는...."
수영이 코를 훌쩍이며 울먹였다.
"우리 수영이, 아무래도 오늘은 아빠랑 같이 자야겠네?"
나는 장난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수영이를 품에 안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인터넷으로 의수에 대해 조사해 볼 생각이었지만, 울음을 그치지 않는 딸아이의 모습에 나는 거의 30분 동안 그녀를 달래 줘야 했다.
그렇게 수영이를 달래면서 나 역시 수마에 빠져들고 말았다.
* * *
"끄응...."
나는 어두워진 창밖을 보면서 상체를 일으켰다.
수영이는 내 옷자락을 붙잡으면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새벽 4시인가.'
스마트폰을 확인한 나는 옷자락을 붙잡은 수영이의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 낸 후,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고정대 수술에 대한 후기와 의수의 착용 후기 등을 살펴봤다.
'확실히, 크랄티늄이 좋기는 좋은 모양이네.'
내가 휘두르는 도검은 강철에 크랄티늄을 일부 섞어 놓은 것이다.
수백 마리의 마수를 베었음에도 여전히 망가지지 않은 도검.
그것만으로도 크랄티늄이 얼마나 단단한 금속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헌터들이 착용한 후기 역시 전부 호평 일색이다.
"유용하긴 유용하겠는데.... 가벼운 대신 팔에 무기와 방패를 착용할 수 있다면, 전투에서도 큰 도움이... 이건 또 뭐야? 30cm 두께의 강철을 종이처럼 찌그러트릴 수 있다고?"
리뷰를 살펴보던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내용은 확실히 놀라웠다.
그런데....
"1억 8천만 원...."
높은 등급의 금속을 사용할수록 그만큼 금액도 높아졌다.
내가 본 크랄티늄제 의수는 대한민국에서도 2~30만대 서열에 속하는 근력을 자랑한다는 모양이다.
10억대의 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부유한 집안이라면, 굳이 각성하지 않더라도 2~30만대 서열의 근력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본인의 팔을 잘라 내 의수를 착용하는 미친X은 찾아보기 드물겠지만 말이야.
'지금은 가벼우면서 무기의 탈부착이 가능한 크랄티늄제 의수를 하나 마련해야겠어.'
인터넷에서 거래되는 다양한 의수들.
고정대만 부착된다면 의수는 인터넷으로 구매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매장에 방문해서 구매하자.'
금액이 워낙 크다 보니 사기를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2~3개월간 벌어 둔 돈을 한순간에 증발시킬 순 없으니 말이다.
'수술도 수술이지만, 재활 훈련 시간도 고려하면... 조금 서둘러야겠어.'
나는 수술 예약과 수술 기간 및 재활 기간 등의 정보를 조사하며 새벽을 보냈다.
이어, 날이 밝음과 동시에 수영이와 함께 병원을 방문해 직접 수술 예약 날짜를 잡았다.
그러곤 수성그룹에서 운영하는 의수 매장을 방문했는데.
"크랄티늄제 의수라면 이쪽에 있습니다."
직원이 보여 주는 다양한 의수들.
의수 내부에는 단검과 소형 방패, 심지어 작은 석궁까지 장착되어 있었다.
물론, 그만큼 금액이 높아졌다.
"의수를 처음 사용하시는 것이라면 먼저 이쪽의 제품을 추천드립니다. 크랄티늄과 데리아늄의 합금으로서 금액도 저렴하고, 강도도 다른 의수보다 확실하게 뛰어나죠. 단검과 소형 방패의 장착도 가능합니다."
데리아늄이라는 금속 역시 게이트에서 채굴된 금속 중 하나다.
크랄티늄과 비교하면 그 강도가 크게 떨어지지만, 무게만큼은 크랄티늄보다 가볍다고 한다.
게다가 순수 크랄티늄제 의수보다 6~70% 이상 저렴하니, 서열이 낮은 헌터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추천일 것이다.
하지만 크랄티늄이란 금속이 1~20%밖에 들어가진 않았다는 이야기에 나는 저렴한 이유를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그래도 가성비적으론 뛰어나다고 볼 수 있겠지.
더욱이 의수를 처음 사용하는 헌터들에게 많은 인기를 받고 있다고 하니....
"금액은... 3,400만 원이네. 단검과 방패를 모두 장착한다면 무게는 2.6kg 정도 높아지면서 800만 원이 추가된다는 건가."
의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제22화
22화. 의수 (2)
'뭐, 찻값에 준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네.'
그나마 금액 기준으론 외제 차에서 국내 차까지 내려갔다고 봐야 하나?
결국, 의수 고정대 수술을 마친 뒤, 다시 매장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적어도 착용은 해 봐야 편한지 불편한지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매장을 나온 나는 수술 날까지 가능한 외출을 삼갔다.
그리고....
"아빠 금방 나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응."
수술실로 들어가는 내 모습을 수영이는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솔직히 나도 무섭다.
난생처음으로 받았던 수술은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진행됐다.
OO월드에서 일어난 레이드의 부상으로.
그러나 지금은 수술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만큼 두려움은 가중되었는데.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롤러코스터의 철로에 깔렸을 때, 나는 진심으로 죽는 줄로만 알았다.
원작 개변으로 일어난 천벌.
그땐 그렇게 생각했었지.
피식.
그때의 공포와 비교하면, 지금의 두려움은 별거 아니네.
* * *
건혁이 수술실로 들어가자, 수영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마주 잡은 수영.
그런 그녀에게 한 여인이 다가왔다.
"우리 오랜만이지?"
"...아."
청룡 기사단의 부단장, 이진화.
대한민국 서열 16위의 헌터가 수영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
박건혁이 아닌 박수영을 말이다.
"이름을 알려 줄 수 있을까?"
"바... 박수영."
"예쁜 이름이네. 수영이는 특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지? 빙결... 아니, 얼음을 만드는 능력을 말이야."
진화의 물음에 수영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건혁의 상처를 지혈하기 위해 사용한 빙결 능력.
진화는 20대로 추정된 젊은 생존자가 박건혁이라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면서 그가 후천적으로 특수 능력에 눈을 뜬 것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때문에 OO월드의 레이드가 발생한 당시, 진화는 건혁의 특수 능력 검사를 병원에 요청하였다.
그 결과, 박건혁 본인이 특수 능력 각성자가 아님이 확인됐다.
그럼, 도대체 누가 박건혁의 상처를 지혈해 준 거지?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수영이는 나중에 헌터가 될 생각이 있니?"
"...아빠가 허락해 주면요."
"그렇구나. 언니는 헌터 협회 청룡 기사단 부단장인 이진화라고 해."
대한민국 국민이 이진화를 모른다는 게 말이나 될까?
가끔 TV에까지 얼굴을 비추는 유명인.
거기에 1회차에선 마왕군과 함께 싸운 전우였다.
"언니랑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네."
수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화는 '그럼 실례할게.'라고 말하며 옆 좌석에 착석했다.
진화는 수영의 특수 능력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화제를 꺼내 들면서 이야기를 주도했고, 그런 진화의 의도를 곧바로 눈치챈 수영은 거짓말과 사실을 섞어 진화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 그렇구나."
능수능란하게 대답하는 수영의 모습에 진화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수영이 아빠는 정말로 대단한 분이시네. 언니도 수영이를 구하는 아빠 모습을 봤었어."
CCTV를 통해 건혁의 모습을 확인한 진화.
딸을 위해 몸을 내던진 아버지의 모습.
진화를 포함한 수많은 헌터들이 그 모습을 보고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헌터로서 민간인의 구조에 나서지 않았다는 사실은 비난받을 수밖에 없겠지.
게다가 일반인보다도 먼저 도망가려고 했었으니, 자업자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하지만 타인의 목숨과 딸의 목숨은 비교 자체가 성립되지 못했다.
'박건혁 헌터는 100명... 아니, 수천 명의 목숨이 걸려 있다 하더라도 딸의 목숨을 우선시할 사람이야.'
너무나도 이기적이다.
하지만 공무원도 아닌데 자식을 위해 이기적인 행동을 하면 어떠하랴.
딱히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아빠는 분명 대단한 헌터가 될 거야. 그러니 수영이도 나중에 크면 아빠를 꼭 도와주렴."
진화는 수영이가 헌터로서 자라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했다.
동시에 언젠가 반드시 청룡 기사단에 입단시키고자 하는 마음을 먹었다.
속성 능력을 발현하는 헌터는 희귀하다.
수영이라면 분명 대한민국 최정예 헌터가 될 수 있겠지.
물론, 박건혁이 대단한 헌터가 될 것이라는 말 역시 빈말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비정상적인 성장 속도만 보더라도 건혁이 언젠가 대한민국의 정예 헌터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리라.
진화는 잠시 수술실을 바라봤다.
'나야 특수 능력 덕분에 초기 각성을 7만대 서열부터 시작했었지만, 저 사람은 56만이라는 바닥에서부터 21만이라는 서열까지 올라왔어. 특수 능력을 발현시킨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건혁을 향해 작은 존경심을 표했다.
그러나 그는 곧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특수 능력이라는 한계에 말이다.
그때, 부디 절망하지 말고 수영을 뛰어난 헌터로 키워 주길 바랐다.
진화는 건혁이 수술실을 나오기 전까지 수영과 함께하면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나중에 무슨 일 생기면 언니한테 꼭 연락해. 언니가 반드시 도와주러 갈게."
"네."
수영은 스마트폰에 저장된 진화의 연락처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민국 최정예 헌터의 연락처.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100위 안에 속한 헌터와의 인연은 안전성에도 관여했다.
게다가 헌터가 된다면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
건혁의 수술이 끝나는 순간, 진화는 의자에서 일어나 수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니는 그만 가 볼게. 나중에 보자."
"네, 안녕히 가세요."
수영은 인사를 한 뒤, 곧장 수술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건혁의 왼쪽 어깨에는 검은빛의 의수 고정대가 장착되어 있었는데.
하루가 지난 후, 의사는 눈을 뜬 건혁에게 찾아가 수술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뼈와 잘 고정되어 있습니다만, 일주일 동안은 과격한 움직임을 자제해 주세요."
건혁은 자신의 왼쪽 어깨를 살펴봤다.
"정말로 움직이네요. 그런데...."
"예, 마력 전지가 사용되고 있다지만, 체내의 마력이 부족한 만큼 여러모로 움직이긴 힘드실 겁니다."
의사는 사전에 경고를 해 주었다.
체내의 마력 부족으로 의수의 사용이 크게 제한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말이다.
건혁은 의사가 병실을 나서자마자, 곧장 스테이터스 화면을 펼쳤다.
'만약을 대비해 포인트를 남겨 둔 게 정답이었구나.'
레벨이 40에 도달할 때까지 모아 둔 7AP.
그동안 민첩과 체력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였으나,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남겨 둔 7AP는 수술을 받기 전 마력에 투자했다.
그는 고정대를 움직이면서 작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마력도 10~15까지 올려 두는 편이 좋겠어.'
그렇게 사흘 동안 입원한 채 안정을 취하게 된 건혁.
"우리 점심이라도 먹으러 갈까?"
병원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던 그는 딸을 데리고 병원 건물 내에 위치한 식당을 찾아갔다.
'그냥 집에 돌려보냈어야 했나?'
건혁의 수술로 수영은 등교를 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담임 교사와 연락을 나누긴 했지만, 그럼에도 본인의 탓에 수영이 사흘간 병실에서 지내야 한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전생의 기억이 존재하니까, 자택으로 돌아가거나, 식사를 하는 것 정도는 혼자서도 해결할 수도 있을 텐데....'
건혁은 맞은편에서 우동을 먹고 있는 수영을 바라보며 씁쓸히 웃어 보였다.
"수영이가 아빠 때문에 고생이 많네."
"...."
건혁의 한마디에 수영이 잠시 손을 멈추었다.
이내 슬그머니 고개를 들더니,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러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뻐끔거렸는데.
끝내 그녀는 뱉으려던 말을 삼켜 버리듯 고개를 돌렸다.
건혁은 그런 수영의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으음?"
"...아무것도 아니야."
수영은 짧게 대답하고, 곧바로 식사를 재개했다.
점심을 먹은 뒤, 다시 병실로 돌아온 두 사람.
둘은 병실에 비치된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만지는 등, 사흘간 지루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퇴원 수속을 밟은 이후에도 건혁은 자택에서 일주일간 안정을 취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수영은 등교를 재개하면서 건혁이 도맡던 가정일을 도와주었다.
"아빠, 건조기에서 빨래 꺼내도 돼?"
수영의 질문에 청소기를 돌리던 건혁이 침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대답했다.
"그래, 꺼내서 거실에 놔둬. 아빠가...."
"내가 개 둘게."
건혁은 본인의 왼팔을 슬쩍 바라보면서 씁쓸히 웃었다.
"그럼, 부탁할게."
오른손만으로 빨래를 개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
그는 마저 침실과 부엌 바닥을 청소한 뒤, 배달 전문 음식점에서 육개장을 주문했다.
'한동안 식사는 배달 음식으로 해결해야겠네.'
반찬들은 냉장고에 가득 채워져 있으니, 배달 음식만으로도 충분히 식사는 해결 가능하다.
건혁은 일주일 동안 다양한 의수 매장을 들락거리면서 의수의 금액과 스펙들을 하나씩 비교해 보고 시착을 해 봤다.
"우와, 이건 확실히 내 팔이라는 느낌인데?"
그렇게 병원에서 퇴원하고 닷새째가 되는 날.
오전 10시 47분, 수영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을 그 시각.
건혁은 일전에 OO대학 병원의 의사로부터 소개를 받은 의수 매장을 방문했다.
가능하면 다양한 매장을 방문하고 하나하나 비교해 보면서 구매하고 싶었다.
거의 차량 한 대를 구매하는 격이니 말이다.
* * *
"...여기가 맞나?"
오래된 3층 건물.
'지하 1층-모르건 의수 매장'이라는 간판을 본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건물로 들어가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건물 부지는 대략 30평 정도로 모르건 의수 매장은 지하 1층 전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매장 내부는 마치 오래된 자동차 정비소를 연상시켰지만, 벽걸이에 걸려 있는 수많은 의수들을 보자마자, 나는 이곳이 의수 매장임을 다시금 상기시킬 수 있었다.
"여어~ 처음 보는 손님이네. 의수라도 찾으러 오셨나?"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왔다.
자라다 만 턱수염과 뺨에 그어진 날카로운 상처.
마치 게이트에서 한창 뛰어다니고 있을 법한 베테랑 헌터처럼 보였다.
"나는 강진철이다. 이 모르건 의수 매장의 주인이지."
요즘 세상에 고객을 반말로 응대하는 가게 주인이 있다니.
그동안 공손하면서도 서비스가 좋은 매장들을 돌아다녔던 탓일까?
나는 그의 불손한 태도에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아, 내 태도가 신경 쓰인다면 그냥 돌아가도 상관없어. 어차피 죽을 때까지 먹고살 돈은 모아 뒀으니까 말이야. 이 매장도 취미 삼아 운영하는 거고."
도대체 이 인간은 뭐지?
나는 미간을 찡그리며 메모를 들어 보였다.
"OO대학 병원의 김경수 교수님 추천으로 찾아왔습니다만...."
"...그 자식, 쓸데없는 짓을...."
진철은 작게 혀를 차곤 무어라 투덜거렸다.
고객을 보내 준 사람한테 쓸데없는 짓이라니....
나는 작게 한숨을 흘리면서 눈을 감았다.
"크랄티늄과 데리아늄의 합금 소재 의수를 찾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단검과 방패가 장착된 것으로...."
"헌터증은?"
"여기 있습니다."
나는 품속의 헌터증을 제시했다.
서열을 본 걸까?
그는 피식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살짝 조소처럼 느껴지는 웃음이다.
그에 살짝 울컥한 나는 눈을 부라렸다.
이 자식은 도대체 뭐야?!
고객을 대하는 자세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람을 대하는 자세부터가 글러 먹은 인간이다.
그러나 진철은 내 시선을 무시한 채 왼쪽 벽으로 걸어가 의수들을 하나씩 살펴봤다.
제23화
23화. 의수 (3)
"팔 길이하고 무게는?"
대답을 해 줘야 하나?
그냥 매장을 나가 버릴까?
기분이 상한 탓에 잠시 갈등이 일어났지만, 나는 작게 한숨을 토해 내며 그의 물음에 순순히 대답했다.
그러자 진철이 의수를 하나를 가져왔다.
"가장 비슷한 사이즈다. 무게도 적당하겠지. 한번 착용해 봐."
그의 권유에 나는 의수를 건네받아 착용해 봤다.
"...."
착용감은 나쁘지 않네.
나는 손목 부분의 안전 커버를 벗겨 낸 뒤, 폭 5.5cm, 길이 50cm의 양날의 검신을 꺼냈다.
손등을 향해 뻗어 나가는 흑색의 검신(劍身).
이어, 지름 30cm의 소형 방패가 손등에서 펼쳐지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의수 자체는 크랄티늄 30%, 데리아늄 70%로 구성되어 있고, 검과 방패는 100% 리바늄으로 만든 거다."
"리바늄...?"
"크랄티늄과 똑같은 3급 금속으로 강도는 크랄티늄보다 15% 정도 높고, 무게는 7%나 가볍다고 알려진 금속이지."
"아...."
4급 금속 70%, 3급 금속 30% 구성되어 있는 본체.
그 밖에 장비는 100% 3급 금속인 리바늄이라고 한다.
나는 작게 입을 벌렸다.
"이건 얼마나...."
"2,100만 원."
"예?"
"그거 2,100만 원이라고. 그 이상으로 저렴하게는 못 준다."
그동안 4,500만 원을 커트라인으로 매장들을 둘러봤다.
그런데 커트라인보다 2,400만 원이나 저렴하다고?
유명한 의수 매장에서 해당 비율의 제품을 구매하려면 분명 5,000만 원 이상은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 때문일까?
나는 금속의 비율이 사실인지 의심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크랄티늄 30%, 데리아늄 70%인 겁니까? 그리고 이 검과 방패가 정말 100% 리바늄으로... 다른 매장에서는 분명...."
"뭐, 걔네들은 인건비네 유통비네 마진을 엄청나게 잡으니까 당연히 비싸겠지. 내 경우에는 아는 헌터들한테 금속을 사들여서 직접 만드는 거라 저렴하게 파는 거고."
"이걸... 직접 만들었단 말입니까?"
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보였다.
그러자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진철.
"그래, 그래서 비율 하나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지. 거짓말이라고 생각된다면 돌아가도 상관없어. 이 건물이 내 거라서 월세만 받아도 가게는 충분히 유지할 수 있고, 아까 말한 것처럼 평생 먹고살 돈은 벌어 뒀거든."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에 나는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말았다.
고객 앞에서 담배까지 피운다고?
이 사람, 접대는 최악이다.
스윽.
그의 태도에 살짝 불쾌함을 느꼈지만, 커트라인보다 2,400만 원이나 낮은 금액이라는 부분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나는 의수를 몇 차례 움직여 보면서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사람이 없는 겁니까?"
이 세계는 위험한 재난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심지어 헌터라는 직업이 생기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의수와 의족을 자주 이용하였는데.
다른 매장에서 볼 수 있었던 손님들의 모습이 이 매장에선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진철을 바라봤다.
"뭐, 어제도 두 사람이 찾아오기는 했었는데, 주절주절 욕설을 쏟아 내곤 곧바로 나가더라고."
그는 느긋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욕설을 듣고도 태도를 고치지 않는다니.
정말로 손님이 찾아오든 말든 상관없다는 건가?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그는 피식 웃으면서 몸을 돌렸다.
"뭐, 아무튼 간에 천천히 생각해 봐.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고."
진철은 그리 말하면서 매장의 구석진 장소에 위치한 카운터로 돌아갔다.
이내, 스마트폰을 가로로 돌려 두 손으로 붙잡는다.
아무래도 게임을 시작한 모양이다.
'손님이 있는데도 담배를 물면서 모바일 게임을 한다니....'
이젠 헛웃음밖에 안 나오네.
어제 방문한 손님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이렇게 참고 있는 내가 대단한 거겠지.
하지만, 다른 매장에서 하나 구입할 금액에 두 개를 살 수 있다는 것은 발걸음을 쉬이 떨어트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본 결과, 진철의 말대로 리바늄이라는 금속은 크랄티늄보다 높은 금액을 자랑한다는 모양이다.
'이걸 직접.... 도대체 정체가 뭐야?'
나는 미간을 찡그리면서 슬쩍 진철을 바라봤다.
게임이 잘 풀리지 않는 걸까?
그는 머리를 박박 긁으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의수로 주먹을 세게 쥐어 봤다.
이어, 의수에 착용된 검을 휘둘렀다.
쓔왁!
"휘두르는 것도 나쁘진 않네. 아니, 오히려 지금까지 착용했던 의수보다 더...."
고객 대응은 꽝이지만 의수를 만드는 실력만큼은 최고인 모양이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곧장 진철에게 다가갔다.
"이 무게로 100% 크랄티늄 또는 리바늄으로 만든 의수는 얼마나 하나요?"
"흐음, 가장 저렴한 건 3,900만 원 정도였던가? 지금 착용한 사이즈의 검과 방패가 달려 있고, 음성 인식 장치가 장착된 건 500만 원 정도 추가돼."
"음성 인식...?"
"의수에 장착된 초소형 음성 인식 장치에 본인의 목소리를 저장시켜 음성만으로 무기와 방패를 꺼냈다가 집어넣는 기능이야. 물론, 수동으로도 가능하고."
정말 대단한 기술력이네.
"물론, 등록된 목소리와 유사한 목소리를 지닌 사람들이 가끔씩 존재해서 그런지, 음성 인식을 할 때는 흔하지 않은 명령어를 기억해 두게 만든다고 하더라고. 예시로 알파-1 또는 알파-2 같은 걸로 말이야."
진철의 부가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착용해 볼래?"
게임을 멈춘 진철이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가져와 준 의수를 착용해 봤다.
무장은 이전 것과 동일하다.
음성 인식 장치에 내 목소리로 알파-1과 알파-2를 기억시켜 둔 뒤.
"알파-1."
명령어를 입에 담았다.
그 순간, 철컥.
팔등에서 길이 50cm의 양날의 검신이 튀어나왔다.
"알파-1, 해제."
쓔욱!
해제 명령어에는 검신이 의수 내부로 감춰졌다.
알파-2로 기억해 둔 방패 역시 마찬가지.
확실히 음성 인식 기능이 편리하긴 편리하네.
"어때? 꽤 괜찮지?"
씨익 장난스레 웃어 보이는 진철의 모습에 그만 고개를 가로젓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음성 인식 장치는 마음에 든다.
파는 사람이 진철만 아니었다면 칭찬을 마구 쏟아 냈겠지.
나는 짜증을 억누르고 깊게 한숨을 토해 냈다.
"이건 얼마나 하나요?"
"그쪽은 리바늄으로만 만든 거라서... 적어도 5,000만 원은 받아야겠지?"
칠흑의 금속이라 불리는 3급 금속, 리바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갑을 꺼내 보였다.
"그걸로 구매하게?"
"네, 일시불로 계산해 주세요."
"호오, 자동차 한 대 금액을 일시불로? 서열과 다르게 꽤 잘나가는 헌터였나 봐? 그보다 지금 착용한 의수는 이전 것보다 3.2kg이나 무거워서, 의수를 처음 사용하는 사람한테는 이전 것으로 적응해 보길 추천하는데...."
"이걸로 적응해 보겠습니다. 그것보다 마력 전지도 판매합니까?"
"물론이지. 아, 참고로 음성 인식 장치도 꽤 마력을 잡아먹으니까 게이트에 들어갈 때는 150MN의 마력 전지를 추천할게. 그리고 첫 구매니까, 100MN 마력 전지 30개와 150MN 마력 전지 10개를 서비스로 주지."
480만 원 상당의 마력 전지를 서비스로 주겠다고?!
진철의 과한 서비스에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이거... 정말로 적자 안 납니까?"
내 물음에 진철은 손을 휘저으면서 대답했다.
"뭐, 조금은 남으니까 신경 쓰지 마. 그리고 마력 전지는 다른 매장보다 30% 저렴한 금액으로 판매하고 있으니, 자주 방문해 달라고? 이래 보여도 꽤나 심심해서 말이야."
"설마, 마력 전지로는 마진을...."
"응, 안 남겨."
카드를 긁으면서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진철.
이 사람, 정말로 장사할 생각이 없는 건가?
의수에 투입된 비용은 금속과 음성 인식 장치와 같은 기타 부속 장치의 매입 비용만으로 판매 금액의 4~50%를 가볍게 상회한다.
그렇다고 마진을 50~60%나 남겨 먹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의수와 의족을 제작하기 위한 시설 및 공장 건물 등에 대한 비용과 진철의 기술력에 대한 인건비도 계산해야겠지.
그렇다면....
'정말, 뭐 하려고 장사를 하는 거야?'
내 얼굴에서 생각을 읽은 걸까?
체크 카드를 건네준 진철이 피식 웃으면서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왜 이런 식으로 장사를 하는 건지 궁금해?"
"...솔직히 궁금하긴 궁금하네요."
그는 씨익 웃으면서 선반에 몸을 기댔다.
"크큭, 알고 싶다면 천천히 시간을 들여 내 친구가 되어 보라고."
"그건 사양하겠습니다."
이런 이상한 사람과 친구가 되면서까지 알고 싶진 않았다.
뭐, 시간이 지나다 보면 언젠가 말해 주겠지.
아님 말고.
"아, 150MN 마력 전지 10개하고, 100MN 마력 전지 10개도 추가로 사겠습니다."
"쯧... 그래, 150만 원 정도다."
"정도라니...."
100MN을 100,000원, 150MN을 180,000원으로 계산하면 280만 원일 터.
그 값에서 30%를 빼면 196만 원이다.
근데, 200만 원도 아닌 150만 원으로 넘겨 버리려 하다니.
"하아, 30%를 뺀 금액이면 정확히 196만 원이네요. 제대로 결제해 주세요."
"그래, 그래."
그가 카드를 긁자, 스마트폰이 진동을 울렸다.
정확히 196만 원이 결제됐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 마력 전지들을 건네받았다.
"감사합니다. 그럼...."
"그래, 다음에 또 오라고!"
진철이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자,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르건 의수 매장을 빠져나왔다.
"정말, 세상엔 이상한 사람들이 많구나."
그보다 일시불로 5,196만 원을 사용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네.
국내 차 중에서도 꽤 좋은 차를 한 대를 구매할 수 있는 금액이다.
생각해 둔 예산보다 696만 원이나 초과했지만, 이왕이면 좋은 물건으로 구매하는 게 좋겠지.
나는 슬쩍 왼팔을 움직여 봤다.
팔꿈치를 비롯해 손가락 마디마디가 정말로 세심하게 움직여졌다.
'레벨을 올리게 되면 우선 마력부터 높여야겠어.'
일상적인 활동에는 큰 지장이 없지만, 전투와 같은 격렬한 활동에선 체내의 마력 역시 빠르게 소모될 것이다.
의수를 움직이는 데 마력 전지가 9할의 역할을 수행해 준다 하더라도, 나머지 1할인 체내 마력이 없다면 의수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 1할의 마력이 일종의 힘줄과 같은 활동을 해 주니 말이다.
"후우, 돌아가자."
나는 왼손에 검은색 장갑을 끼우고 곧장 택시를 호출했다.
* * *
점심시간이 지나 자택으로 귀가한 수영이는 내 왼팔을 바라보면서 신기한 듯 만져 봤다.
"내... 내가 만지는 게 느껴져?"
그녀는 내 왼팔을 툭툭 손가락으로 건들며 물어봤다.
감각은 거의 없었다.
단지, 마력을 통해 무언가가 내 팔을 건드렸다는 느낌이 어깨에 감지될 뿐.
"어깨에 살짝 느낌이 오기는 하는데, 팔에는 별로...."
그런 내 대답에 수영이는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의수를 착용한 채 요리, 빨래, 청소 등의 가정일을 해 본 결과.
외팔일 때보다 편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왼팔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 나는 수영이가 잠든 늦은 새벽.
음성 인식 기능에 내 목소리를 기억해 두어 몇 차례 실험을 해 봤다.
제24화
24화. 의수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