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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원형 투기장]

RULE:[데스매치][5분 제한]

대인전을 이루는 두 요소, 환경과 규칙이다.

영웅으로서 의뢰를 수행하다 보면, 상대를 제압하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대표적인 예시가 호위 임무.

암살자의 제압보다 요인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는 임무다.

무식하게 무력만 열심히 키웠다면, 압도적인 힘으로 적들을 쓸어버렸는데 정작 호위 대상은 죽어 버리는 불상사도 왕왕 발생하게 마련이다.

이렇듯 학생들을 다양한 환경과 상황에 대비시키려는 목적으로, 대인전의 규칙은 수시로 바뀐다.

이번 배치 고사의 규칙인 [데스매치]는 대인전의 단골 메뉴 중 하나다.

한 사람이 체력을 모두 소진하거나, 전투불능이 되거나, 패배를 선언할 때까지 끝나지 않는 간단한 규칙.

거기에 [5분 제한]이 더해져서, 5분 동안 승패가 갈리지 않으면 판정승 또는 무승부로 끝난다.

환경은 원형 투기장.

두 사람이 치고받기 적당한 크기의 원형 공간이다.

중앙의 커다란 무대가 독립된 투기장 여럿으로 나누어져 있고, 투기장마다 학생들이 두 명씩 들어가서 대인전을 치르게 될 것이다.

이수독이 3반 학생들을 관중석에 앉힌 후 위와 같은 내용을 설명했다.

옆 반 선생님도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같은 설명을 하는 듯했다.

"그럼 시작하지. 호명하는 학생은 경기장으로. 최정필. 박경아."

남학생 하나, 여학생 하나가 몸을 일으켰다.

경기장 앞의 마법진에 발을 올리자 순간 모습이 사라지더니, 여러 개의 투기장 중 하나에서 다시 나타났다.

그 위 스코어보드의 내용이 바뀌었다.

[최정필 100% vs 박경아 100%]

[남은 시간 5:00]

준비되었음을 확인한 이수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3]

[2]

[1]

[Start!]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마나를 끌어올렸다.

넘실거리는 마나를 갑옷처럼 몸에 두른 후,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중앙에서 격돌한다.

- 콰아앙!!

폭발음이 울리며 스코어 보드의 숫자가 변했다.

[최정필 89% vs 박경아 92%]

[남은 시간 4:43]

이수독은 거기까지만 확인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직 빈 투기장은 많고, 부를 이름도 잔뜩이었다.

"다음. 고현우. 황혁."

"오! 본인의 차례로군."

고현우가 반색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벌써부터 몸이 근질거리는지 허리춤의 철검을 슬슬 쓰다듬는다.

"다녀오리다."

"그래, 잘해라."

내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방금 도착한 퀘스트를 불러냈다.

[서브 퀘스트:배치 고사]

▷목표:배치 고사에서 중위권 이상의 성적을 거두십시오.

▷대인전 배치 고사에서 1승 이상 (0/1)

▷공략전 배치 고사에서 상위 50% 이상 (현재 랭킹:N/A)

▷보상:[복사-스킬] 슬롯+1

대인전에서 최소 1승, 공략전에서는 중위권 이상의 성적만 거두면 된다.

대충해도 식은 죽 먹기라 사실상 나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퀘스트나 다를 바가 없었다.

지금 정말로 중요한 건 따로 있다.

'탐색전.'

배치 고사라고 자기만 잘하면 끝이 아니다.

이 대인전 배치 고사는 1학년 전체가 보는 앞에서 치러지고 있다.

즉, 다른 학생의 경기를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지켜볼 수 있다는 뜻이다.

거기에서 수집하는 다양한 정보들.

다른 학생의 무기, 스킬, 성향, 습관, 약점 등을 미리 파악해 놓는다면, 학기 내내 벌어질 대인전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으리라.

자기 순서만 기다리면서 안절부절못하는 놈들은 하수고, 눈치 빠른 놈들은 이미 경기장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단 한 번의 전투라도 더 눈에 담아 둬야 하니까.

나에게도 이건 아주 좋은 기회였다.

추후 EX급으로 육성할 만한 재목이 있나 점 찍어 두는 게 첫 번째 목표.

그리고 [복사]할 괜찮은 스킬이나 특성을 가진 학생들을 기억해 두는 게 두 번째 목표다.

장기적으로 둘 모두 중요하다.

'쟤는 센스가 좋아. 스펙이 한참 딸리는데 안 밀려. 키워 볼 만하겠다.'

'저건 보기에만 요란해 보이지 장비빨이야.'

'저건 희귀 스킬인데. 일단 체크.'

경기 하나하나를 뜯어보던 중 내 이름이 불렸다.

"김호. 홍연화."

주위를 슬쩍 둘러보니 나 말고는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홍연화는 다른 반인가 보다.

관중석 어딘가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겠지.

조그마한 순간이동 마법진 위에 올라서자 순식간에 시야가 급변했다.

원형 투기장 내부로 이동한 것이다.

금세 맞은편 마법진에서도 누군가 소환되었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학생.

그리 길지 않은 완드에는 굵은 루비가 박혀 있다.

'루비 마탑이군.'

화염 계열 마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마탑.

파괴력과 공간 장악력이 일품이라, 루비 마탑주는 S급 영웅 중에서도 내가 은근히 자주 데리고 다니는 주류픽이었다.

그런 마탑 소속 마법사가 상대로 나오니 기분이 묘했다.

마치 부하의 제자를 괴롭히는 듯한 죄책감.

'가엾은지고.... 근데 어쩌겠냐, 배치 고사인데. 나도 이겨야지.'

딱 5분만 내 연기에 놀아나 줘야겠다.

* * *

홍연화는 루비 마탑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유망주다.

간혹 마탑의 장로들 사이에서 차기 탑주로 추대하자는 말까지 오르내릴 정도로.

그것을 현실로 만들려면 우선 이 용살학원을 제패해야 한다.

검후의 제자, 토파즈 마탑의 재녀, 명문세가의 후기지수 같은 쟁쟁한 천재들을 모두 제치고 정상에 우뚝 선다면, 졸업 후에 그녀가 마탑주 자리를 요구하더라도 아무도 반대표를 내지 못할 것이다.

이 배치 고사는 그녀가 내디딜 위대한 첫걸음이었다.

그러나....

첫 상대로 나온 남자는 그녀에게 실망감만 안겨 주었다.

김호?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다.

아무리 배치 고사라도 그렇지, 조금이라도 네임밸류를 가진 상대를 꺾어야 그만큼 명성이 올라갈 텐데.

어쩐지 김이 샌다.

무기랍시고 들고나온 것도 형편없다.

척 보기에도 저건 [대지의 지팡이(E)].

견습 마법사조차 거르는 허접한 아이템이다.

대지 계열 마법이나 보호 마법의 효과를 개미 눈곱만큼 증폭시켜주는, 그녀 입장에서는 그냥 나무 막대기나 마찬가지인 스태프.

'목토 마법사는 아니야.'

에메랄드 마탑과는 썩 사이가 좋지는 않지만, 그쪽 마법사들과 안면은 익혀 두었다.

저 남자가 에메랄드 마탑 소속이 아닌 건 확실하다.

에메랄드 마탑과 관련이 없다는 건 대지 계열 마법을 익혔을 가능성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말이고,

소거법에 따라 대지 마법보다는 보호, 또는 유틸 마법의 보조로 [대지의 지팡이(E)]를 들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한 긴 스태프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기동성을 포기하고 위력에 치중하는, 이른바 포대형 술사일 가능성이 크다.

서포터. 포대형 술사.

그렇다면,

'속전속결로 승부를 본다.'

[김 호 100% vs 홍연화 100%]

[남은 시간 5:00]

양측이 자리를 잡자 스코어보드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3]

[2]

[1]

[Start!]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홍연화는 완드를 앞으로 쭉 뻗었다.

[컴버스천(Combustion)]

-펑!

상대방의 상반신이 작은 화염 폭발에 휩싸였다.

E급 발화 마법, 컴버스천이다.

파괴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시전 시간이 극도로 짧다는 게 강점.

저 허접해 보이는 서포터가 보호 마법을 시전한다 해도 능히 뚫을 수는 있겠지만, 경기가 지지부진하게 끌리는 건 그녀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깔끔하고 압도적인 승리를 원했기에 아예 상대가 마법을 시전할 틈도 주지 않은 것이다.

- 와, 저거 시전하는 거 봤냐?

- 뭐가 반짝하긴 했는데 그게 술식이었나 봐.

- 역시 루비 마탑이구만.

관중석의 감탄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홍연화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찬사였다.

그러나....

[김 호 100% vs 홍연화 100%]

[남은 시간 4:41]

스코어보드를 확인한 그녀는 두 눈을 의심했다.

고작 이걸로 끝나지는 않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100%라고?

단 1%의 영향조차 없었다는 말이 아닌가?

다시 시선을 돌려보니 김호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느긋하게 팔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뭐지?

혹시 대지의 지팡이는 연막이고, 방어형 아티팩트라도 두르고 있는 건가?

'그럼 이건 어때?'

홍연화가 마나를 끌어올려 캐스팅을 시작했다.

지팡이 위에 마나의 구체를 만들고, 그 안에 화염 술식을 채워 넣는다.

"...."

계속 그 자리에 멀뚱멀뚱 서 있던 김호가 처음으로 움직임을 보였다.

느릿하게 스태프를 사선으로 기울이며 반대쪽 손을 앞으로 향한다.

마치 손으로 상대방의 마법을 흩뜨리려는 듯한 동작.

그것을 보고 홍연화는 눈살을 찌푸렸다.

마법사라면 모를 수가 없는 동작이었기 때문이다.

'디스펠(Dispel).'

주문 해제 마법.

하지만 그녀의 상식에 디스펠은 낌새조차 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사용하는 마법이었다.

저렇게 대놓고 시전하는 행위에는 이런 속뜻이 담겨 있다.

나는 초보라서 디스펠을 제대로 쓸 줄 모른다.

혹은.

너 따위한테는 대놓고 써도 통한다.

'좀 열받네.'

아무래도 후자는 다소 비약이다 싶지만 그럼에도 기분이 확 나빠진 홍연화였다.

부글부글 끓는 속마음과는 반대로, 머리를 차갑게 가라앉히고 마법의 완성에 집중한다.

어쨌든 디스펠을 쓰려고 한다는 건 파악했다.

그렇다면 디스펠이 들어오기 전에 빠르게 술식을 완성해서 날려 버리면 그만이다.

"...."

김호는 여전히 한 손을 자신을 향해 뻗은 채였다.

그러나 마법이 전혀 방해받지 않는 걸 보면 아직도 적절한 타이밍을 잡지 못한 듯하다.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속은 바짝 타들어 가고 있으리라.

홍연화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미 늦었어!'

사람 몸뚱이만 한 거대한 화염의 구체가 완성되었다.

홍연화는 그것을 그대로 상대를 향해 집어 던졌다.

감히 날 상대로 수작을 부리다니,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

[플레임 오브(Flame Orb)]

- 퍼엉!!

이글이글 불타는 화염구가 김호를 집어삼켰다.

화염구는 재차 폭발을 일으켜 일대를 화염으로 뒤덮어 버렸다.

홍연화는 그녀의 뺨에 닿는 열기를 느끼며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끝났어.'

실전에서 플레임 오브에 격중 되었다면 모조리 불타서 잿가루만 남았겠지만, 교복에 자체적으로 D급 보호 마법도 걸려 있고, 아레나에 학생들을 보호하는 각종 안전장치도 존재하니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최소 전투 불능이 됐음은 분명했다.

이 압도적인 일격에 의지가 뚝 꺾여서 나머지 배치 고사도 망치지는 않으려나 모르겠다.

그러나....

[김 호 100% vs 홍연화 100%]

[남은 시간 3:58]

"...어?"

스코어보드를 확인한 홍연화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황급히 시선을 정면으로 향하자 서서히 사그라드는 불길 사이로 김호의 모습이 드러난다.

멀쩡하다.

아까와 전혀 다를 것 없이, 그냥 제자리에 서 있다.

마치 이 정도 화염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정말 디스펠을 한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멀쩡한 건 설명이 안 된다.

마법이 적중하기 직전, 그 찰나의 순간에 디스펠을 써서 마법을 와해시켰다는 말인가?

그런데 이미 완성된 마법을 디스펠하는 게 가능했던가?

무엇보다 홍연화를 놀라게 한 것은, 저 남자가 디스펠을 언제 쓰는지 잡아내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그녀의 등줄기에 오한이 스쳐 지나갔다.

'그, 그렇네. 내가 방심했나 보네.'

홍연화는 겉모습만 보고 상대를 얕잡아 봤던 자신을 질책했다.

저 남자 또한 수많은 경쟁을 뚫고 이 용살학원에 입학한 영웅 후보.

녹록한 상대일 리가 없지 않은가.

크게 심호흡을 하고 지팡이를 꽉 움켜쥔다.

다음 마법도 방해받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렇다면 아예 디스펠의 영향을 거의 안 받는, 마법진 계열 술식으로 승부를 본다.

- 부우웅—

홍연화가 마나를 끌어올렸다.

루비에서 방출된 마나는 김호의 발밑에 붉은 마법진을 그려 냈다.

그의 시선이 흘끔 아래로 내려가며 마법진을 확인했다.

"...."

마법진이 나타난 위치에 곧 마법이 떨어진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단순한 인과관계다.

그러므로 자기 발밑에 마법진이 나타났다면 당연히 거기에서 최대한 멀어져야 한다.

홍연화는 김호가 황급히 몸을 피하리라 예상했고, 그를 옭아맬 다음 수까지 준비해 두었다.

그러나….

'...안 움직여?'

김호는 그 자리를 계속 지킬 생각인 듯했다.

몸을 피하기는커녕 자기 스태프를 바닥에 쿡 찍는다.

얼마 안 되는 기동성조차 완전히 버린다는 뜻.

서포터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강력한 방어 마법으로 맞상대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하. 하하."

홍연화는 어이가 없어서 헛바람을 터뜨렸다.

내가 루비 마탑 출신인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파괴력으로는 다른 어떤 마법에도 밀리지 않는 화염 계열임을 알면서도,

감히 방어 마법으로 정면 승부를 걸어온단 말이지?

그렇다면 좋다.

- 번쩍!

완드에 박힌 루비가 광채를 뿜었다.

붉은 마법진의 지름이 두 배가량 넓어지고, 빈자리에 술식이 추가되었으며, 한층 더 선명한 붉은빛을 머금었다.

반면 김호는 석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바닥에 스태프를 꽂아 넣은 모습 그대로 자신을 기다릴 뿐이다.

홍연화가 보기에는 '그래서 마법은 언제 쓸 거야?' 하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재촉 안 해도 지금 쓸 거야!'

그럼 어디 한번 막아 봐라!

[파이어 필라(Fire Pillar)]

- 콰아아아아!

거대한 마법진에서 불기둥이 솟구쳤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

12화 배치 고사 (2)

파이어 필라(Fire Pillar).

마법진으로 지정한 구역을 타오르는 불의 기둥으로 점하는 마법이다.

일반적으로는 적에게 타격을 입히기보다 적의 움직임을 제한하거나, 연이어 시전할 화염 마법을 보조하는 용도로 쓰인다.

단, 상대가 멍청하게 마법진 위에 멀뚱멀뚱 서 있는 경우는 예외다.

바로 지금처럼.

- 콰아아아아!

강화한 파이어 필라의 위력은 홍연화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화염이 솟구치는 기세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마법을 시전한 그녀 본인조차 몰아치는 열풍을 감당하지 못하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날 정도였다.

열풍은 또한 자욱한 흙먼지를 피워 올리며 투기장 내부의 시야를 차단했다.

따라서 한동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파이어 필라의 지속 시간이 끝나 서서히 사그라들고 자욱하던 흙먼지도 조금씩 걷혀 갔다.

홍연화는 시야가 확보되자마자 제일 먼저 스코어보드부터 확인했다.

[김 호 100% vs 홍연화 99%]

[남은 시간 1:01]

"아니...!"

이래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정말로 강화한 파이어 필라마저 빈틈없이 방어했다고?

누구나 이런 상황에서는 전의를 상실할 것이다.

그러나 홍연화는 '누구'가 아니었다.

'나는.... 나는 차기 루비 마탑주야.'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학기 중반쯤에나 강자들을 상대로 꺼내 들기 위해 숨겨 두었던 비장의 카드들.

그것들을 꺼내 쓴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기고 말 것이다.

홍연화가 마나를 끌어모아 다시 주문을 시전하려 할 때였다.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은 흙먼지 속에서 반짝 작은 무언가가 빛났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뇌전으로 이루어진 벌새였다.

- 치지지직—

'허밍버드!?'

황급히 대응 주문을 외워서 허밍버드를 후려치려 했으나, 벌새는 휙휙 불규칙하게 움직이다가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벌새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두리번거리던 홍연화의 어깨에서 짜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 파지직!

"윽!"

['마비' 상태이상이 적용됩니다.]

뻣뻣해져서 쓰러지려는 몸을 이를 악물며 겨우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그녀도 직감하고 있었다.

마비에 걸린 이상 이미 승산이 지극히 낮아졌다는 사실을.

김호가 흙먼지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자기 앞에 서더니, 길쭉한 스태프를 어깨 위에 턱 올렸다.

"여기까지 하지."

"...!"

마주 보는 그의 시선은 한없이 무감정하기만 했다.

그리고 무감정한 시선만큼이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다 보여 주는 것보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패를 아끼는 게 더 나을걸. 나머지 경기를 생각한다면."

"...!"

그제야 홍연화는 깨달았다.

경기 내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읽히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신은 완전히 이 남자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것이다.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여기에서 남은 마법을 다 쏟아부어도 통하리란 보장이 없다.

반면 자신의 숨겨 둔 패를 공개하는 것은 다음 경기, 나아가서는 학기 내내 대인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은 일단 물러나는 게 나은 선택이리라.

게다가 홍연화에게 별다른 선택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장 상대의 무기가 어깨 위에 걸려 있지 않은가.

저 제안을 거절하는 순간 어떤 마법이 날아올지는 몰라도, 지근거리에서 맞는 만큼 치명적일 것이다.

홍연화의 머릿속에 꼴사납게 나동그라지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저 남자는 그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백기를 들도록, 나름대로 체면을 세워 주려 하는 것이다.

'알아, 아는데...!'

이것들을 모두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직전까지 투지를 불태우던 홍연화에게 패배를 인정한다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한참이나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던 그녀가 마침내 고개를 떨구었다.

"져, 졌습니다...."

* * *

[김 호 Win vs 홍연화 Lose]

시작 전까지만 해도 루비 마탑의 승리를 의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상대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무명이었기에 더욱.

따라서 홍연화가 반쯤 혼이 빠진 채로 터덜터덜 무대를 나서자 관중들은 저마다 바쁘게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 와, 루비 마탑이 졌어? 쟤 뭔데? 무슨 마법 썼는지 봤어?

- 아니. 내가 봤을 땐 저거 마법 아니야. 술식이 아예 안 보였거든.

- 무슨 소리야. 마법으로 뭘 했으니까 피가 안 깎였지.

- 아, 그러니까 마법 아니래도?

- 근데 어떻게 100%에서 아예 안 떨어질 수가 있냐.

- 저게 돼?

대부분은 내가 어떻게 쏟아지는 화염 마법을 완벽하게 방어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맞상대한 홍연화 본인에게도 꽤 오랫동안 의문으로 남을 것이다.

진실을 알게 되면 모르긴 몰라도 엄청 허탈해하지 않을까?

'그걸 다 속아 줄 줄은 몰랐지.'

방어 아티팩트를 쓴 척.

디스펠을 하는 척.

방어 마법을 쓰는 척.

그럴싸하게 연기만 했을 뿐이지만 홍연화는 그대로 도발에 걸려들어서 정면승부에 응했다.

화력하면 루비 마탑이니 정면 승부는 무조건 이긴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겠지.

다만,

'원소 저항은 계산 밖이었고.'

S급 [원소 저항]을 가진 상대에게 원소 마법으로 아주 작은 생채기라도 내려면 최소 B랭크 마법은 써야 한다.

혹은 적의 저항력을 낮추는 디버프를 곁들이거나.

이도 저도 아니라면 백날 마법을 퍼부어 봤자 내 체력은 100%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홍연화가 조금 더 마음에 여유를 갖고 신중하게 관찰했다면, [원소 저항]의 존재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족한 실전 경험과 겨우 5분에 불과한 제한 시간이 그녀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초조함은 결국 패배로 이어지고 말았다.

투기장 이곳저곳에 저절로 마법진이 생성되더니 불타고 부서진 부분들을 말끔히 수복했다.

동시에 빛무리가 모여들며 나를 무대 밖으로 이동시켰다.

관중석으로 돌아가려는 내 발걸음을 이수독의 목소리가 붙잡았다.

"김호. 송천혜."

곧바로 다음 배치 고사가 잡힌 것이다.

관중석이 또 한 차례 술렁거렸다.

- 송천혜?

- 진짜 송천혜야?

- 올해 입학했다고 듣기는 했는데, 3반인가 보네.

- 쟤 선도부도 들어갔대.

- 역시, 이름값은 하는구나.

이름만으로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유명인사.

하지만 정작 본인은 쏟아지는 관심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태도다.

송천혜가 나를 향해 똑바로 걸어오더니 시선을 맞췄다.

"운이 좋네요. 마침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확인해 보고 싶다고 말하는 걸 보니 나와 홍연화의 경기를 관전한 듯하다.

뇌 속성 마법사라면 내가 마지막에 날린 허밍버드에 관심이 안 생길 수가 없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투지를 불태우는 송천혜였으나, 사실 운이 좋다는 말은 틀렸다.

"미안하게 됐다. 그건 다음으로 미뤄야겠는데."

"그게 무슨...?"

이 승부는 처음부터 성사될 수가 없었으니까.

나는 이수독을 바라보며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저 기권할게요."

"...네?"

어안이 벙벙해진 송천혜.

이수독 역시 이런 상황은 처음 겪어보는지 가볍게 인상을 찌푸리곤 물었다.

"왜지."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요. 대인전을 더 진행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세 번째 경기도 기권 처리해 주세요."

"당장 컨디션이 안 좋더라도 한 번 승리를 더 따 두는 게 따로 300점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쉬울 거다. 그래도 기권하겠나?"

"예. 그거야 어쩔 수 없죠."

"...좋다. 패배로 처리해 주지."

이수독은 지나치게 승패에 달관한 내 태도가 미심쩍은 기색이었으나,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고 내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그로 인해 훨씬 낮은 랭킹부터 시작하고, 원하는 순위를 달성하려면 더 많은 대인전을 치러야 하겠지만, 어차피 손해는 내가 보는 거니까.

발걸음을 돌리는데,

"잠깐만요."

송천혜가 나를 불러 세웠다.

"왜?"

"정말 그런 이유로 포기하는 건가요?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응. 그러면 안 돼?"

송천혜는 아주 잠깐 눈을 감고 치밀어오는 화를 삼키는 듯했다.

그리고 훈계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승부에는 항상 만전을 기하라. 최적의 상태가 아니라도 최선을 다해 임하라. 불리한 상황에서도 끝내 승리를 쟁취해 내는 자만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방금 막 지어낸 말 같지는 않고, 어느 고인(高人)께서 하신 말씀이야?"

"저희 조부님이요."

그러고 보니까 얘네 할아버지가 우레군주랬지.

자기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영웅인 만큼, 우레군주가 했다는 말은 영웅 지망생이라면 새겨들을 만한 조언이었다.

...그 조언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별개의 문제고.

이미 세워 둔 계획을 수정할 생각은 없다.

해서 나는 말싸움 최고의 회피기술인 '네 말이 다 맞단다'를 시전했다.

"그래, 아무래도 나는 안 될 놈인가 봐. 네가 이긴 걸로 치자."

"...실망스럽네요.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기대를 한 제가 바보 같아요."

송천혜의 눈빛은 이제 실망을 넘어 미약한 경멸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호감도가 표시되었다면 아마 한없이 0에 가깝지 않을까?

다 시간 낭비였다며 떠나는 송천혜를 이번에는 내가 불러 세웠다.

"아, 맞다."

"...왜요."

"디저트 쿠폰. 보내 준다며."

"이 상황에 디저트 생각이 나요?"

"솔직히 말하면 단 게 땡기기는 해."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까먹기 있냐? 디저트 쿠폰."

"...."

송천혜는 나를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실 붙어 보고 싶기는 했는데, 상황이 별로 안 좋다.

'벌써 너무 눈에 띄었거든.'

첫 경기에서 홍연화에게 항복을 받아 내는 바람에 나에게는 '루비 마탑을 꺾은 정체불명의 실력자'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적잖이 귀찮아질 텐데, 거기에 우레군주의 손녀딸까지 이긴다?

학기 초부터 일약 슈퍼스타 탄생이다.

명성은 양날의 검이다.

그리고 대개 부정적인 쪽이 더 예리하고 날카롭다.

이름이 알려질수록 주시하며 분석하는 시선도 늘어나게 마련이니까.

S급 [원소 저항]은 용살학원의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마저도 쉽게 못 뚫는 어마어마한 특성이다.

다만 지금 나는 원소 저항'만' S랭크고, 다른 건 아직 별 볼 일 없다.

그 정보가 새어 나가면 앞으로 대인전이 아주 귀찮아질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지금 송천혜와 붙는 건 하책 중의 하책.

앞서 홍연화와의 경기를 지켜본 사람 몇몇은 벌써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을 테고, 같은 방법을 두세 번 쓰다 보면 의구심이 확신으로 굳어질 터.

정보전이 한창 진행 중이다.

다른 수단을 손에 넣기 전까지는 최대한 내가 가진 패를 감춰야 한다.

- 엥? 쟤네 왜 하려다 말아?

- 기권이라는데?

- 기권? 배치 고사에서 기권을 하는 놈이 있어?

- 상대가 송천혜라니까 쫄았나 보지.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해 보지도 않고 그냥 튀냐. 김빠지네.

- 겁쟁이야, 슈퍼 겁쟁이.

당연히 관중들이 그 속뜻을 헤아릴 리가 없었다.

'쟤 누구야?'라는 호기심이 담겼던 시선이 순식간에 '그럼 그렇지' 하는 비웃음과 조롱이 섞인 시선으로 바뀌었다.

별 볼 일 없지만 운 좋게 루비 마탑을 이긴 놈.

그러다가 막상 토파즈 마탑과 붙게 되자 곧바로 꼬리를 말고 도망친 겁쟁이.

'아주 좋아. 아주 적절해.'

그야말로 정확히 내가 의도한 평가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야유 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관중석으로 돌아왔다.

배치 고사 중반쯤이라 그런지 오히려 관중석에서 대기하는 학생이 드물었다.

어차피 다음 경기가 금세 잡힐 테니 아예 무대 근처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신병철은 관중석에 자리를 잡은 몇 안 되는 학생 중 하나였다.

무대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메모장에 열심히 무언가를 휘갈기고 있다.

정보를 사고파는 녀석이라 그런지 이럴 때는 열심이다.

자리에 앉는 나에게 신병철이 물었다.

"다 끝났나 보네? 몇 승 했냐?

"1승 2패. 너는?"

"동지."

신병철과 나 사이에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우리는 손을 굳게 맞잡았다.

송천혜의 다음 상대로는 창을 든 남학생이 나왔다.

시작 전에 호기롭게 뭐라고 선언을 하는 것 같은데, 송천혜는 그저 싸늘한 눈빛만 되돌려 줄 뿐이다.

신병철이 두 사람의 대치를 지켜보며 물었다.

"난 너랑 쟤랑 붙는 거 좀 기대했거든. 왜 기권했냐?"

"그냥, 못 이길 것 같더라."

"그래, 송천혜면 어쩔 수 없지."

신병철은 전격 마법의 피해자로서 내 결정에 깊이 공감하는 듯했다.

어차피 질 싸움, 온몸이 마비된 채 바닥에서 추하게 꿈틀거리는 것보다는 일찌감치 기권해 버리는 게 미관상 아름답지 않겠느냐, 이 말이다.

내 원래 의도와는 굉장히 동떨어진 해석이지만 이렇게 생각해 주면 나로서는 차라리 고맙다.

[3]

[2]

[1]

[Start!]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달려들던 창잡이 남학생이 갑자기 속도를 잃고 비틀거렸다.

부주의하게도 곧바로 허밍버드에 격중당한 것이다.

창잡이는 바닥에 꿇리려는 무릎을 붙들고 안간힘을 써 가며 겨우 자세를 회복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자신을 향해 사람 몸뚱이만 한 벼락을 내리꽂는 송천혜의 모습이었다.

- 쿠르르릉!! 쾅!!

귀청이 찢어질 듯한 천둥소리가 아레나를 뒤흔들었다.

"...쟤 화났나 본데?"

"그런가 봐."

씩씩거리던 송천혜의 시선이 관중석을 뒤지다가 나를 찾아냈다.

째릿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더니 순간이동 마법진을 타고 투기장 밖으로 나가 버린다.

그리고 창잡이 남학생은 들것에 실려 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신병철이 혀를 끌끌 찼다.

"아유, 쟤는 아직 3경기도 안 했던데, 해보지도 못하고 부전패네. 불쌍하게 됐구만. 불쌍하게 됐어."

"쟤만 불쌍한 게 아니지. 송천혜도 3경기는 안 했잖아."

"어, 그렇네? 다음은 누구래?"

송천혜의 배치 고사. 그 마지막 희생양은 누구인가?

신병철의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이수독이 이름 둘을 입에 담았다.

"송천혜."

그리고,

"서예인."

서포터가 다 해먹음

13화 배치 고사 (3)

송천혜는 말없이 맞은편의 서예인을 바라보다가, 품에서 장갑 한 짝을 꺼내 오른손에 꼈다.

황금빛 자수가 수놓여 있고 토파즈가 깨알처럼 박힌 검은색 장갑.

토파즈 마탑의 고유 아티팩트일 것이다.

창잡이 남학생을 상대할 때는 아주 맨손이었으니, 마지막 배치 고사에는 더 진지하게 임하겠다는 생각 같다.

반면 서예인은 교복 셔츠 위에 멜빵 같은 것을 메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권총을 꽂아 두는 홀스터(Holster)였다.

그리고 권총이 양쪽에 한 자루씩 두 자루.

신병철이 그걸 보고 나에게 묻는다.

"쟤 이제 보니까 총사였네? 넌 알았냐?"

"아니. 나도 지금 알았지."

총사. 또는 거너.

마력을 담은 탄환으로 적을 제압하는 원거리 계열 클래스다.

겉모습이 다가 아니라고, 서예인이 총사일 줄은 나도 예상치 못했다.

따지고 보면 만난 지 하루밖에 안 됐고, 그마저도 절반은 늘어져라 자는 모습밖에 못 봤으니까.

거기에서 기민하게 움직이며 표적을 꿰뚫는 총사의 이미지를 연상하기는 쉽지 않다.

신병철이 흥미롭다는 듯 양측을 번갈아 관찰했다.

"이거 일이 재미있게 됐네. 총사면 마법사랑 완전 상성이잖아? 6 대 4? 7 대 3? 이거 의외로 송천혜가 질 수도 있겠다야."

"그건 모르지. 더 두고 봐야 해."

"에이, 아무리 토파즈 마탑이라도 그렇지, 총사 쪽이 기본만 해 줘도 지기 힘들다니까?"

"그럼 내기할까?"

내기라는 단어에 신병철이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아하, 내기. 저야 언제든 환영이죠. 뭐 걸어?"

"5실버."

"오케이. 5실버면 쬐끔 많은데, 그래야 쫄리는 맛도 있는 거지."

"그럼 너는 서예인, 나는 송천혜에 거는 거다."

"콜."

전 재산 5실버를 탈탈 털어 넣었다.

곧 두 배로 복사될 예정이다.

한편, 근처에 앉은 남학생 갑과 을 사이에서도 송천혜와 서예인을 두고 열띤 토론이 진행 중이었다.

다만 주제는 우리와 살짝 달랐다.

- 자네는 어느 쪽인가?

- 으으음.... 실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로군.

- 한 명도 보기 힘든 절세미인이 둘이라, 고르기 어려운 것도 이해하네.

- 굳이 한 쪽을 택한다면 송 소저가 더 내 취향일세. 도도한 눈빛이 마치 빙화(氷花)를 보는 것 같군.

- 그런가? 나와는 의견이 갈리는군그래.

갑과 을뿐만 아니라 다른 남학생들 역시 '누가 이길 것인가?'보다는

'누가 더 예쁜가, 누가 더 내 취향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반으로 갈라져 싸우는 중이었다.

송천혜 파의 의견을 대충 요약해 보면 여왕님 같아서 평생 모시고 싶다,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세게 밟혀 보고 싶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반면 서예인 파는 어떤 뚜렷한 의견을 내놓기보다는 시선을 한곳에 집중한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남정네들의 생각이란 어딜 가나 비슷한 것이다.

[송천혜 100% vs 서예인 100%]

[남은 시간 5:00]

스코어보드가 두 사람의 체력과 남은 시간을 띄워 올리고.

곧이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3]

[2]

[1]

[St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