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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모양만 갖춘 마력탄으로 장벽을 뚫으려 들면 마력과 마력의 싸움이 되지. 그럼 마력량이 우월한 마법사가 유리할 수밖에 없고."

다음으로 정교한 쪽을 들어서 똑같이 끄트머리로 손바닥을 쿡쿡 찔러 보인다.

끄트머리가 파괴되어 약간의 푸른 기운이 새지만 형태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검사가 마법사의 장벽을 가르고, 총사가 뚫을 수 있는 이유는 일점에 집중된, 응축된 마력을 써서야. 그러니까 마력 수련에 시간을 더 투자하고, 마력탄 하나하나의 조형에 신경을 쓰면 답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

서예인은 내가 설명을 끝마칠 때까지 말없이 경청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면서 묻는데,

"마력 수련은 어떻게 해?"

"...뭐?"

나는 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확인차 되묻는다.

"마력 수련을 할 줄 모르면, 여태까지 마력탄은 어떻게 만들었어?"

"그냥 하니까 됐어."

"[마력탄] 스킬은?"

"안 배웠어."

"?"

"?"

아직도 내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다.

'이건 예상 밖인데.'

방금 내가 만든 마력탄은 그럴듯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보여 주기용이었다.

그냥 만든 마력탄과 [마력탄] 스킬이 더해진 탄환은 살상력이 하늘과 땅 차이다.

총사의 기본적인 토대를 이루는 스킬.

그런데 얘는 여태까지 그걸 안 익혔단다.

마력 수련도 할 줄 모른다니까 관련된 스킬이나 특성들도 밑바닥에 가까우리라 짐작된다.

결국 이 모든 것을 감으로 때웠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천재적이다.'

오히려 서예인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올려야 할 것이다.

기본조차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상태에서 송천혜를 고전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니까.

그 재능의 끝이 어디인지, 내 손으로 직접 확인해 볼 필요성을 느낀다.

"괜찮으면 언제 시간 내서 한번 봐줄까?"

"응."

서예인은 곧바로 내 제안을 수락했다.

지금 간단하게 몇 개 시험해 볼까 싶었지만,

— ♩♪♩♬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가 점심시간의 끝을 알렸다.

공략전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 * *

던전섬 한 구역을 차지하는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동산.

그 동산은 사람이 오르내리는 곳이 아니다.

안으로 들어가는 곳이지.

그리고 눈앞의 거대한 터널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무수한 던전들이 얽히고설켜 끝없는 지하까지 이어지는 마경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용살학원의 학생들이 공략전을 치르는 장소, 던전동이다.

"김 형."

터널 근처에서 고현우와 만났다.

다시 만난 고현우의 표정은 한결 밝아져 있었다.

샌드위치를 건네며 물었다.

"좀 괜찮아졌냐."

"덕분에. 거듭 감사하오."

"일일이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친구끼리."

눈 깜짝할 새에 샌드위치를 해치운 고현우가 앞장섰다.

"그럼 배치 고사를 마저 치르러 가 봅시다."

* * *

던전동 지상층의 던전들은 모두 학생들의 교육 또는 시험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공 던전들이다.

이수독 옆에 입을 벌리고 있는 순간이동 포탈 여러 개가 좋은 예시다.

"다 모였나. 공략전에 대해 설명하겠다."

이수독이 자신 옆에 작은 창을 띄워 올렸다.

MAP:[안개숲]

RULE:[하이 스코어], [10분 제한], [픽스 존]

"한 명씩 포탈을 타고 들어가서 시험을 친다. 하이 스코어 규칙에 대해서는 아마 많이들 숙지하고 있을 것이다."

하이 스코어.

제한 시간 10분 동안 처치한 몬스터의 숫자를 모두 합해 점수로 환산한다.

등급이 높은 몬스터는 마리당 배점도 높은 편.

가령 고블린보다는 오크, 트롤이 점수를 더 많이 준다.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이, 양질의 몬스터를 처치하는 게 목표다.

"질문할 시간을 주겠다."

"저.... 선생님."

학생 하나가 조심스레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상대가 인간 백정이라 질문을 하기가 두렵지만,

막 떠오른 의문점을 해소하지 않고 배치 고사에 임하는 건 더 두렵다.

"저.... 픽스 존은 어떤 규칙이에요?"

그렇게 물은 뒤 동의를 구하듯 다른 학생들의 눈치를 살피는데, 다들 비슷한 표정을 한 것으로 보아 같은 의문을 품은 것 같다.

이수독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투로 대답했다.

"픽스 존(Fixed Zone)은 고정 능력치 구역이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의 성능이 최하급으로 '고정'되지. 너희들 대부분이 갖고 있을 [코어]도 F급으로 제한이 걸리니 주의하도록. 평소에 부족함 없이 마법을 펑펑 썼던 놈들은 마나를 잘못 관리했다간 후회할 것이다."

"...!"

"...!"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여태까지 제 몸처럼 다뤄 오던 장비, 스킬, 특성 등의 성능이 대폭 하락한다.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오랜 세월 자신의 몸에 밴 기술뿐.

고현우가 목소리를 낮추고 나에게 물었다.

"하면 저 픽스 존이라는 곳에서는 어떤 명검이든 이 철검과 하등 다를 바가 없어진다는 말이오?"

"그런 셈이지. 고등급 아이템이나 스킬을 아예 못 쓰는 건 아닌데, 그 위력이 안 나와. 그 시간에 칼 한 번 더 휘두르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으음. 흥미롭군."

그렇게 말하면서 새로 가져온 철검을 슬슬 쓰다듬는다.

하지만 우리 반에서 이 상황이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고현우를 포함해 겨우 몇몇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혼란과 걱정이 점철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힐끗 보니 송천혜 역시 이런 시험 내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갑자기 무슨 픽스 존이야?

- 저거 2학년은 돼야 나온다고 들었는데.

- 야, 저거 많이 어렵냐?

- 나도 모르지, 근데 선배들이 엄청 싫어하긴 하더라.

- 진짜? 망했네....

"그만."

이수독의 한마디에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언짢은 표정으로 내뱉듯이 말하는 이수독이었다.

"던전의 내용물이 조사한 정보와 다른 일은 아주 비일비재하다. 그때마다 지금처럼 갈피를 못 잡고 허우적거릴 건가? 너희는 지금 급변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질책은 효과 만점이었다.

모두 얼굴을 굳히고 각오를 다지기 시작한 것이다.

안에서 뭐가 기다리든 가진 건 다 써 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럼 준비해라. 호명하는 학생부터 한 명씩 입장한다. 최정필."

최정필이 긴장한 기색으로 앞으로 나섰다.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순간이동 포탈에 발을 들이자 곧 던전이 주둥이를 닫았다.

거기까지 확인하고 이수독이 다음 이름을 불렀다.

"한소미."

"넹!"

한소미는 기분 좋은 미소를 방긋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던전에 입장했다.

그 모습에서 긴장한 기색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에 이수독의 눈빛이 잠시 이채를 띠었다.

곧 시선을 거두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박경아."

이름이 불릴 때마다 대기하는 학생이 하나씩 줄어들고, 순간이동 포탈이 하나씩 닫혔다.

그렇게 던전들이 절반쯤 들어찼을 때,

"크허억!"

외마디 비명과 함께 학생 하나가 포탈에서 튕겨 나왔다.

규칙은 10분 동안 최대한 많은 몬스터를 잡는 것인데, 이 친구는 들어간 지 10분은커녕 3분 정도밖에 안 됐다.

중도 리타이어.

던전의 안전장치가 모종의 이유로 더 이상 시험을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대로 참가자를 쫓아내 버린 것이다.

"으악!"

포탈이 학생 한 명을 더 뱉어 냈다.

얘는 그래도 2분 더 버텨서 5분.

물론 리타이어라는 점은 같다.

'평소대로 했나 보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안 봐도 뻔하다.

평소대로 스킬을 펑펑 갈기며 몬스터들을 쓸어 버리려 했을 것이다.

스킬의 파괴력이 F급으로 떨어졌다는 점을 간과하고.

무더기로 쓸려 나가야 했을 몬스터들이 버젓이 살아서 달려드니, 어버버하다가 흠씬 두들겨 맞았을 테지.

그렇게 계속 처맞다가 결국 쫓겨난 것이고.

"억!"

"꺄악!"

탈락자가 속출했다.

그 말은 추하게 바닥을 기는 학생이 늘어났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학생들은 그 광경을 보며 더욱 긴장했다.

나는 절대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으으으...."

"그만, 그만 때려 이 개자식들아...!"

탈락자들은 던전에서 쫓겨난 뒤에도 바닥을 구르며 신음했다.

어디까지나 인공 던전인 데다 안전장치도 겹겹이 걸려 있기에 육체적인 피해는 없지만, 우글거리는 몬스터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하는 경험은 멘탈을 터뜨리기에 충분했으리라.

그러던 와중 드디어 공략전을 개시하고 10분이 지났다.

우리 반에서 처음으로 10분을 채운 사람이 나왔다.

바로 처음 들어갔던 최정필이었다.

비틀거리며 걸어 나오는 꼴이 정신적으로 몹시 피로해 보였으나 어쨌든 두 발로 땅을 딛고 섰다.

[최정필, 530점, 20%]

공략전 포탈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는 큼지막한 대자보 크기의 홀로그램창이 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리더 보드 되시겠다.

학년 전체 기준으로 [이름, 점수, 랭킹]이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곧이어 최정필 다음으로 들어간 한소미도, 그다음으로 들어간 박경아도 자기 시험을 끝마치고 걸어 나왔다.

[한소미, 928점, 1위] New!

...

[박경아, 543점, 40%]

[최정필, 530점, 45%]

다른 반에서도 성공하는 학생들이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리더 보드에 이름과 점수가 추가되고, 순위가 계속해서 갱신되었다.

상위 20%였던 최정필의 순위가 뚝뚝 떨어진다.

- 와씨, 한소미 점수 봐.

- 거의 두 배네, 두 배.

- 저게 실력 차이인가?

- 쟤가 알고 보면 진짜 무서운 애라니까.

- 생긴 건 되게 귀여운데.

탈락자들에게 집중되었던 관중의 이목이 순식간에 리더 보드로 옮겨 갔다.

순위에 대해 떠들면서 점점 더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픽스 존] 때문에 긴장한 것은 여전하지만, 남들이 다 보는 리더 보드에 높은 순위를 기록해야겠다는 욕심이 동기 부여가 된 듯하다.

"서예인."

서예인의 차례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권총 두 자루를 점검하는 서예인에게 짧은 조언을 던졌다.

"라이플로 드는 게 더 나을 거야. 마나 관리가 힘들어진다 싶으면 가까이 붙는 놈들한테 헤드샷만 날리는 식으로 운용해."

"응."

서예인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내 조언을 받아들였다.

권총들이 순식간에 분해되고 라이플로 재조립되었다.

무표정한 눈으로 나를 흘끔 보는데, 어쩐지 '나 잘했지?' 하고 묻는 것 같다.

고개를 끄덕여 주자 마주 고개를 까딱이곤 던전에 입장한다.

"...."

뒤통수가 따가운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송천혜가 못마땅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

쟤 입장에서는 내 주제에 무슨 조언이냐 싶겠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홱 고개를 돌린다.

"김호."

기다리다 보니 내 이름도 불렸다.

포탈에 한쪽 발을 집어넣자 몸이 어디론가 쑥 빨려 들어갔다.

다음 순간 나는 안개가 잔뜩 낀 숲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아직 동이 트기 전, 새벽녘의 어둠과 축축함을 간직한 숲.

[곧 몬스터가 소환됩니다.]

[남은 시간 10:00]

나는 알림 메시지를 보면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여기도 오랜만이군.'

<용살학원>에서 나는 수많은 별명을 갖고 있었다.

S급 찍어 내는 공장, 랭킹 1위, 최강의 서포터.

그리고 하나 더.

픽스 존의 신(神).

서포터가 다 해먹음

17화 픽스 존 (2)

<용살학원>을 시작한 이래 나는 언제나 랭킹 1위였다.

필연적으로 내 자리를 탐하는 자들의 무수한 도전을 마주해야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도전은 나에게 닿지도 못하고, 내가 키워 놓은 영웅들 선에서 허무하게 정리되기 일쑤였다.

샌드백도 손맛이 있어야 치는 법이다.

해서 가끔씩은 재미 삼아 영웅을 쓰지 않고 도전자들과 일대일로 붙었다.

간혹 새로운 아이템이나 스킬을 얻은 날에는 그것들을 시험해 볼 상대로 다른 랭커들이 아주 적격이었다.

그치들도 녹록하기만 한 상대는 아니라, 일대일로 붙으면 가끔씩은 나를 위기로 몰아넣기도 했다.

나보다 랭킹이 낮다 뿐이지, 크게 보면 피라미드의 최상위층에 위치한 실력자들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실력자들도 픽스 존에서는 모두 공평하게 내 발밑을 기는 신세였다.

실력 차이가 나도 너무 났다.

대인전에서 승부를 겨루든, 공략전에서 경쟁을 하든, 무엇이든 내 뜻대로 되었다.

그리고 그 명제는 지금도 변함없이 그대로다.

[곧 몬스터가 소환됩니다.]

[남은 시간 10:00]

상태창을 불러내 보았다.

[김 호]

▷스킬

증폭(F)

복사-스킬[1/1]

1. 허밍버드(F)

▷특성

코어(F)

군주(F)

복사-특성[1/1]

1. 원소 저항(F)

▷장비

교복(F)

대지의 스태프(F)

픽스 존의 규칙대로 모든 스킬, 특성, 장비의 랭크가 F랭크로 고정된 상태다.

나야 원래 가진 것들이 거진 E급이었기에 크게 변한 건 없다.

덧붙여 [허밍버드] 같은 스킬은 어차피 파괴력보다 적을 제어하는 게 주목적이라, F급이 되었더라도 비슷한 성능이 나올 테고.

물론 이번에는 허밍버드마저 봉인하고, 기본적인 육체 능력만 써서 도전할 생각이다.

'몸 좀 풀어야지.'

입학하고 처음으로 겪는 픽스 존이고, 지금 내가 얼마나 할 수 있나 확인도 할 겸.

그리고 육체 능력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나에게 괜히 '픽스 존의 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게 아니다.

주위를 쓱 훑어보았다.

[안개 숲]의 지형은 도전자가 포탈을 타고 입장하는 순간 무작위로 형성된다.

다만 아무리 무작위라도, 결국 이 던전은 사람이 만든 것이다.

크게 보면 몇 가지 정형화된 패턴이 존재한다.

그 패턴만 파악한다면 언제, 어디서, 어떤 몬스터가, 몇 마리나 소환될지 예측하고 행동할 수 있다.

내 주위를 이루는 덤불, 나무, 잡초, 바위 등의 배치, 그리고 안개가 흐르는 방향 등으로 유추해 보면,

'C 패턴이군.'

바위 근처 빈 공간 앞에 자리를 잡았다.

대지의 스태프를 양손으로 움켜쥔 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린다.

시스템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3]

[2]

[1]

[Start!]

[몬스터가 소환됩니다.]

[남은 시간 9:59]

[현재 점수:0점]

내 앞 허공에서 까맣고 지저분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 속에서 대여섯 살배기 어린아이의 키를 한, 초록색 피부의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케륵, 케르륵."

고블린은 소환되자마자 누런 눈깔을 번뜩이며 죽일 대상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놈의 시야에 가장 처음 들어온 것은, 자신의 정수리를 노리고 떨어져 내리는 두꺼운 나무 막대기였다.

- 콰직!

첫 고블린의 머리통을 으깨 버리고 곧바로 놈이 들고 있던 단검을 빼앗았다.

동시에 스태프를 왼쪽으로 강하게 휘두르자 머리 하나가 더 터졌다.

그 고블린의 단검까지 챙기고 무작정 덤불 쪽으로 달렸다.

그곳에서 피어오르는 까만 연기 세 개가 고블린의 형상으로 변하기도 전에 스태프를 휘둘렀다.

- 콰직, 콰직, 콰직!

고블린 세 마리가 소환되자마자 점수로 환산되고,

똑같은 자리에 족히 열 개는 되어 보이는 까만 연기 덩어리들이 우르르 떠올랐다.

또다시 스태프를 휘두를 준비를 하면서,

'7시 방향에 오크 두 마리. 앞으로 3, 2, 1초.'

'1초'를 세는 순간 어깨너머로 단검 두 자루를 집어 던진다.

- 푹푹!

"끅."

"컥."

눈앞의 고블린들을 쓸어 버리는 도중 등 뒤에서 들리는 피육음 둘, 짧은 단말마 둘.

대지의 스태프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이제는 널린 게 무기다.

고블린들이 떨군 단검들을 한 아름 품에 안은 채, 방금 죽인 오크들의 사체로 달려간다.

그러면서 단검들을 사방으로 흩뿌리듯이 던진다.

사방에서 몰려들던 고블린들이 미간에 단검 한 개씩을 꽂고 널브러진다.

죽은 오크 두 마리의 시체는 각각 숏소드와 도끼를 들고 있었다.

그것들을 한 손에 하나씩 쥐고 다음 소환 장소로 질주했다.

나무 둘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커다란 연기와 작은 연기 여럿.

'좌측 고블린 여섯, 우측 고블린 넷에 오크 둘, 최후방에 트롤. 3, 2, 1.'

이번에도 '1'을 세는 순간 연기 속으로 뛰어들어 몸을 풍차처럼 회전시켰다.

- 서거거걱!

잡몹들을 한순간에 몰살시키고 갓 소환된 트롤에게 돌진했다.

놈이 저항할 틈도 없이 심장에 숏소드를 박아 넣고, 비틀고, 손잡이를 걷어차 더욱 깊숙이 박히게 하고, 마지막으로 이마에 도끼를 내려찍는다.

-콰직!

다음 장소, 또 다음 장소로.

몬스터들은 소환되는 즉시 목이 날아가기 바빴다.

제삼자가 본다면 심각하게 부정행위를 의심할 만한 플레이였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내가 가는 곳에만 몬스터를 소환해 주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하지만 이것은 부정행위가 아니라, 오랜 경험과 치밀한 분석이 더해진 결과물이다.

'좋아. 여기까지.'

슬슬 때가 됐다 싶어 다음 소환 장소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스코어보드로 시선을 옮겨 보니,

[남은 시간 7:02]

[현재 점수:683점]

결과가 살짝 실망스러웠다.

'3분 해서 683점이라....'

나도 많이 죽었네.

한창 신기록을 세우고 다니던 시절에는 안개 숲 3분이면 800점은 찍었는데.

아무튼 당초의 목적은 달성했다.

[서브 퀘스트:배치 고사]

▷목표:배치 고사에서 중위권 이상의 성적을 거두십시오.

▷대인전 배치 고사에서 1승 이상 (1/1)

▷공략전 배치 고사에서 상위 50% 이상 (현재 랭킹:N/A)

▷보상:[복사-스킬] 슬롯+1

배치 고사 퀘스트의 목표는 대인전 1승 이상, 공략전 상위 50% 이상.

보통 상위 50% 커트라인이 400점에서 500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편이니까, 683점이라면 확실하게 중상위권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남은 시간이 7분이나 되지만 더 점수를 올릴 필요성은 못 느낀다.

물론 설렁설렁해도 공략전 1위는 떼놓은 당상이겠지.

그런데 그렇게 이목을 끌어 버리면, 관중들한테 겁쟁이 소리까지 들으면서 송천혜한테 기권한 게 다 무용지물이 된다.

- 어? 김호가 랭킹 1위네?

- 쟤 알고 보니까 엄청 센 거 아니야?

- 그럼 기권은 왜 한 건데?

- 그냥 봐준 거 아닐까?

대강 이런 식으로 구설수에 오르겠지.

대인전과 마찬가지로, 유명세를 감당할 실력을 키우기 전까지는 실력을 감출 필요가 있다.

그러니 배치 고사는 여기서 마감한다.

"그만할래."

모든 것이 회색으로 변하며 일시에 정지하고, 눈앞에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물론 남은 시간은 계속해서 줄어든다.

[남은 시간 6:49]

[정말 공략전을 종료하겠습니까?]

[수락/거절]

"어."

[리플레이를 저장하겠습니까?]

[수락/거절]

"아니."

곧바로 출구가 입을 벌렸고,

나는 유유히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나약한 놈들.'

이수독이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에도 험상궂던 얼굴이 더 흉악해져서 지나다니는 학생들이 저도 모르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의 시선 끝에는 '나약한 놈들', 즉 탈락자들이 있었다.

시험이 시작한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바닥에 드러눕거나 주저앉은 채다.

'아직도 못 일어나는가.'

이수독의 성격상 먼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교사의 재량으로 리타이어한 학생에게 재도전할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

저들 중 한 명이라도 부탁했다면, 어떻게 만회할 방법이 없는지 묻기라도 했다면 기회를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 패배자들에게서 그런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완전히 의욕이 꺾여 버린 듯하다.

'고작 이따위 일로.'

이수독 역시 한때 용살학원의 재학생이었다.

그가 걸었던 길은 이것보다 훨씬 더 가혹하고 험난한 가시밭길이었다.

그런 환경에서도 밑바닥부터 악착같이 기어 올라온 그였다.

그러니 벌써부터 포기하는 저들이 못마땅할 수밖에.

"...."

이수독이 눈길이 슬쩍 옆을 향했다.

닫혀 있던 포탈 하나가 벌어지며 학생 하나가 빠져나왔다.

기억하기로는 입장한 지 3, 4분쯤 됐다.

그 말은 10분을 채우지 못했다는 뜻이니,

'또 리타이어군.'

이름은 잘 몰라도 기억에는 남아 있는 얼굴이었다.

대인전 배치 고사에서 '컨디션이 안 좋다'며 기권했던 녀석.

아니나 다를까 공략전마저 리타이어했나.

'저따위 썩어 빠진 근성으로 무슨 드래곤을 잡겠다고.'

드래곤은커녕 졸업하고도 B급 보스나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기 부하가 저런 한심한 짓거리를 했다면 단숨에 피떡으로 만들었을 테지만, 이곳은 용살학원이었고 저 녀석은 그의 담당 반 학생이었다.

담임으로서 저런 버러지 같은 놈도 가르치고 이끌어야 한다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 온다.

아무리 전대 용사의 의뢰라도 섣불리 수락하는 게 아니었다며, 거듭 후회하는 이수독이었다.

'가만....'

이수독이 고개를 돌렸다.

문득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위화감의 정체를 곰곰이 되짚어 보다가, 탈락자들의 면면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저 녀석, 걸어 나왔다.'

인공 던전의 안전장치들은 공략전을 치르는 학생의 안전이 위기에 처한 순간, 강제적인 순간이동 마법으로 학생을 '방출'한다.

탈락자들이 던전에서 튕겨 나와 바닥을 구르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후유증이 남아 한동안 제정신을 못 차리는 건 덤.

그런데 저 녀석은 멀쩡히,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나와서 리더 보드를 확인하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방출'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이수독의 눈길이 녀석의 시선을 따라 리더 보드를 훑었다.

[김 호, 683점, 38%]

'중상위권?'

저 점수는 절대로 3분 만에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조금 과장해서 폴리모프한 드래곤이 오더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10분을 다 채우고 나왔다는 말인가?

분명 들어간 지 3분밖에 안 됐는데, 내가 잘못 봤던가?

항상 차가운 평정심을 유지하는 이수독이었으나, 지금만큼은 약간의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김호라고 했지.'

이수독은 저 녀석의 이름을 기억에 남겨 두었다.

나중에 반드시 리플레이를 확인해 보겠다 다짐하며.

서포터가 다 해먹음

18화 픽스 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