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보호
소월은 할 말을 잃은 듯 뺀질이를 지켜보다가 초우를 향해 말했다.
“나가서 숨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때 문 밖에서 아름다운 노랫가락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숨을 필요는 없어!”
그 순간 뺀질이는 구석에 있는 냉장고 위로 재빠르게 숨어버렸다. 이어서 문이 열쇠로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임설몽이 들어왔다. 네 명의 노인이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왔는데, 그들의 몸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노인들이 집 안에 들어와서 제일 처음 본 것은 구석에 숨어 있는 뺀질이였다. 높은 경계(境界)에 오른 무사들은 기의 흐름에 매우 민감했기 때문에, 안에 들어서자마자 그 새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초우만큼은 아니지만, 뺀질이의 기의 흐름 역시 방대하기에 쉽게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내 뺀질이는 숨어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잔뜩 긴장해서 말했다.
“초우, 저 사람들 누구야? 설마 이 몸을 잡으러 온 건가? 오늘 이 몸이 했던 일들은 전부 초우 너를 위해서 한 거잖아. 주인이면 주인답게 책임져달라고!”
임설몽은 그런 뺀질이를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도대체 초우는 어디서 이런 물건을 데려온 것인가?
사실 임설몽은 오늘밤에 일어난 일, 그러니까 새 한 마리가 두 날개만으로 사천우에게 중상을 입혔다는 이야기를 반쯤은 의심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의 증언이 없었다면 절대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 이렇게 뺀질이를 보니 충분히 그럴만한 힘이 있는 영물로 보였다.
임설몽은 고개를 들고 2층에서 내려오는 초우를 보며 말했다.
“걱정 할 것 없어. 사 씨 가문이 널 상대하려면 우선 우리부터 상대해야 할 거야!”
임설몽은 말하면서 방 한쪽에 있는 소월을 주시했다. 소월은 여전히 소파에 조용히 앉아서 만화영화를 보고 있었다. 마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본인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초우는 미소를 띠고 임설몽의 뒤를 따라 들어온 네 명의 노인을 향해 포권(抱拳)을 하며 말했다.
“네 분의 선배님을 뵙습니다.”
“그리 긴장할 것 없습니다, 초 공자.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러 왔을 뿐입니다.”
네 명의 노인이 초우에게 인사하며 답했다. 그들의 태도는 꽤나 정중했다.
뺀질이는 방금 들어온 사람들이 도움을 주러 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들이 꽤나 강하다는 것도 눈치 채고는 숨어 있던 곳에서 나왔다. 이윽고 뺀질이는 초우의 어깨에 앉아서 가슴을 부풀린 채,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이곳에 올 자가 누구든 제 발로 걸어 나가지 못할 것이다!”
“…….”
그때 초우의 휴대전화가 또다시 울리자, 그가 전화를 받았다.
“형님.”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진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동생아, 무서워하지 마라.
초우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형님, 저 무섭지 않습니다.”
- 우리 쪽 사람들이 이미 그들을 막아서고 있다. 듣자하니 임설몽이 이미 사람을 꾸려 네 쪽으로 향했다더구나. 그 말을 들으니 좀 안심이 된다.
“형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 괜찮다. 나는 괜찮아. 오늘은 아마 사투가 벌어질 거다. 너는 너의 안전만 생각하거라. 원래 있던 경호원 말고 두 명의 고수를 더 보내뒀다. 이미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를 보호하고 있을 거야.
초우는 코끝이 시큰해지는 걸 느꼈다.
“형님…….”
- 다 큰 녀석이, 그만두거라. 하하! 알겠느냐? 너의 안전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화기 너머로 시원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통화 내용을 듣고 있었다. 곧이어 임설몽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했다.
“아무래도 오늘 연경성의 밤은 잠들지 못하는 밤이 되겠군.”
뺀질이가 흉흉한 기세로 외쳤다.
“적은 어디냐? 몇 명이 오든 다 때려눕혀주지!”
뺀질이는 전화기 너머로 초량(楚良)이 하는 말을 듣고는, 이곳으로 적들이 오지 못한다는 걸 알고 기고만장해서 외친 것이었다.
그 순간, 무언가 차가운 기운이 먼 곳에서 쏘아졌다.
휙!
곧바로 초우를 겨냥한 살기가 화살처럼 날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 기운을 감지한 뺀질이는 기겁을 하며 다시 구석으로 날아가더니, 박제된 새 마냥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임설몽과 네 노인의 시선이 유리창 너머의 먼 곳에 꽂혔다. 그곳에는 한 사람의 형태가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음속을 넘는 속도로 날아들고 있었다. 그 신형이 쏘아내는 아찔한 살기는 마치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모두 초우에게 집중돼 있었다.
곧 한 노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갑시다!”
임설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디 조심하세요.”
사람의 형태를 한 무언가가 초우가 있는 집 안으로 들어오려는 순간, 또 다른 두 명의 그림자가 엄청난 속도로 그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전투는 순식간에 시작되어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사람의 형태를 한 그것이 멈춰 서자, 그의 두 손에는 피가 맺힌 단도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를 막아섰던 두 사람은 잠시 비틀거리더니 그와 거리를 두고 떨어졌다. 이내 그들은 손목을 부여잡으며 신음을 삼켰다.
“약하군!”
사람의 형태를 한 무언가가 음산하게 말했다.
그는 두 번의 일격으로 앞을 막아선 두 사람의 손목 힘줄을 잘라버렸다. 그 반응속도와 정확도만 보더라도, 그의 경계가 어느 정도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큰일이다!’
창가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임설몽이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지금 밖에 있는 적은 상당히 강했다. 경계가 높다고 해서 무조건 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자는 분명 사 씨 가문에서도 비장의 한 수인 게 분명했다. 경계도 높을뿐더러, 본인의 전투 감각도 상당했다.
그때 또 다른 두 명이 그 자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 달려든 두 명은 초우의 경호원이였다. 임설몽과 마찬가지로 창가에서 바깥의 전투를 지켜보던 초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경호원들은 초우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자들이었고, 게다가 형님이 초우를 보호하기 위해 보내준 가문의 고수들도 모두 연이 있었다.
초우는 더 이상 그들이 상처 입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자신의 실력을 감추기 위해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사람 형태의 그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경호원에게 단도를 휘둘렀다. 그 순간 임설몽과 함께 온 네 명의 노인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마치 화살처럼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사람의 형태는 잠시 멈칫거리더니, 두 명의 경호원을 죽이는 것을 일단 포기했다. 네 명의 노인 쪽이 더욱 위험하다는 걸 순식간에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양쪽은 서로의 힘을 어느 정도 자제하며 싸움을 시작했다. 힘을 마음껏 방출하여 성내의 물건들을 파괴하게 되면, 정부도 그들의 싸움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펑! 펑펑펑!
북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네 명의 노인과 상대의 싸움은 상당히 격렬했다. 가해지는 공격 한 방이 모두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것이었다. 게다가 속도도 상당히 빨랐기 때문에, 주변 환경에 아무런 해가 없도록 힘을 줄였음에도 충분히 위력적으로 보였다.
사람 형태를 한 그의 몸이 금세 얼룩덜룩 변했으나, 노인들의 몸에도 상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사람 형태의 그 자는 지금 당장 초우를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는지, 빠르게 몸을 돌려서 어둠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그러나 네 명의 노인들은 굳이 그를 쫒지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초우의 안전이었다. 게다가 적이 유인책을 쓸 수도 있었다.
잠시 후, 네 명의 노인은 초가의 고수 네 명과 함께 초우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상처를 입은 초 씨 가문의 고수는 얼굴이 창백했지만, 초우를 보자 침착하게 예를 표했다.
“초천강(楚天强), 초천승(楚天勝)……. 도련님을 뵙습니다!”
초우가 급하게 달려와 그들을 살펴보며 물었다.
“강 숙부, 승 숙부, 둘 다 무사하십니까?”
이 두 사람은 모두 초우에게는 당숙부에 해당하는 항렬이었으나, 은둔가문의 신분차이로 인해 서로 서열이 달랐다. 그 때문에 이 둘은 초우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그를 만나면 예를 갖춰야 했다. 그러나 초우는 어려서부터 가문 바깥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이런 허례허식에 신경 쓰지 않았다.
초천강과 초천승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곧이어 초천강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임설몽과 네 노인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쪽 손목의 힘줄이 잘렸으니, 이후 치료를 받는다 해도 전력(戰力)이 떨어질 것이 당연한 결과였다. 그게 어찌 괜찮다는 말인가.
그때, 초우가 갑자기 전음(傳音)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 당숙부들, 걱정 마십시오. 이 일이 끝나면 제가 그 손을 고칠 수 있을 테니까요.
초천강과 초천승은 태연하게 있었지만 속으로는 꽤나 충격을 받았다.
‘도련님은 수련이 불가능한 몸이 되지 않았던가? 어떻게 전음을 사용하신다는 말인가?’
전음이란 목소리를 뭉쳐서 가느다란 선으로 만든 뒤, 말을 전하고 싶은 사람의 귀에 직접 연결해 전달하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전음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충혈경 5단은 되어야 했다.
또 일반적인 것보다 한 단계 더 위에 있는 방법으로 상대방의 뇌에 직접 소리를 쏘는 전음이 있는데, 그 능력을 사용하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눈치를 챌 수 없었다. 이는 한 차원 높은 정신 조작 영역에 속한 능력이었다.
임설몽이 데려온 네 명의 노인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제가 의술을 조금 할 줄 압니다. 우선 두 분에게 치료를 해드리지요.”
초천강과 초천승이 초우를 바라보자, 초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노인에게 감사를 표한 뒤, 그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서 손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도련님.”
나머지 두 경호원이 초우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만면에 희색이 역력했지만, 초우를 바라보는 눈에는 약간의 원망이 실려 있었다. 일전에 초우가 그들을 따돌리고 단신으로 태산에 오른 일 때문이었다. 당시 초우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은 너무나 놀랐었다.
비록 가문에서 처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내심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통감하고 있었다. 이내 초우가 그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괜찮아!”
그때 갑자기 TV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 여우 요괴 놈, 사람 마음을 가지고 놀고, 마을을 혼란에 빠트리다니, 네놈은 죽어 마땅하다!”
시종일관 소파에 앉아 만화영화를 보던 소월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웃기고 있네.”
“…….”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 TV를 볼 수 있다니. 게다가 저렇게까지 만화영화에 빠져들다니?
임설몽이 몸을 돌려 초우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이쪽은 큰 문제가 없겠어. 다만…….”
임설몽은 그 이상 말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 있는 소월을 보았다. 그러자 소월은 마치 뒤통수에 눈이 달리기라도 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이쪽은 그럴 생각 없어.”
정말 한순간이었지만, 임설몽의 눈에 이채로운 빛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는 초우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진짜 아무 문제없겠다!”
초우는 잠시 멍하니 임설몽을 보았다. 그런 다음 눈을 돌려서 열심히 만화영화를 보고 있는 소월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