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늑대, 이빨을 드러내다
사로가 다시 말했다.
“오늘 초우가 한 행동으로 보면, 초우는 그리 생각이 깊고 온화한 성격은 아닙니다. 원한을 숨길 줄도 모르고, 장소도 가리지 않고 이런 소란을 일으켰으니까요.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초우는 그저 충동적이고 멍청한 남자입니다.”
그 말에 삼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만약 천우가 아닌 우리 쪽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리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게야.”
“기회를 찾아서 혈혈단신으로 죽이고,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우리 사 씨 가문은 그런 곳이다.”
사소천이 담담히 덧붙였다. 물론 사천우가 그의 아들이니 이런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내 사로가 말했다.
“제 짐작이 맞는다면, 그 새도 최근에 얻었을 겁니다. 초우가 보여준 성격상, 그런 패가 있었다면 진즉에 드러났을 겁니다.”
사소천이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외에 뭐 다른 일은 없었나?”
사로가 고개를 젓다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
“아참, 한 가지를 깜빡했습니다. 소월 아가씨가 초우를 따라갔습니다.”
“응?”
사소천의 미간이 순간 좁혀져서 내 천(川)자를 이루었다.
그는 사천우가 큰 상처를 입고 돌아와서 수련의 길이 막혔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에도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지금까지 이야기를 하던 중에 가장 분명하게 언짢음을 드러낸 것이다.
“소월이 떠났다고?”
삼 장로가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도 숨길 수 없는 당혹감이 나타나고 있었다.
사로는 자신이 또 무언가 잘못한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녀의 신분상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 사 씨 가문과 관련된 거의 모든 내용은 기밀이었고, 그 기밀 정보를 볼 권한을 가지고 있는 건 몇몇 장로들뿐이었다.
예를 들어, 사로가 보기에 소월은 그저 무언가 내력이 있어 보이는 아름다운 소녀일 뿐이었다. 또 사천우는 그녀를 대할 때 언제나 손윗사람을 대하듯이 했다. 그러나 사로는 그 점에 대해서 그리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소월이 떠났다는 소식에 이 두 장로가 이토록 놀랄 줄은 몰랐다.
“예…… 예, 그렇습니다. 초우가 소월에게 무언가 병이 있는 거 아니냐고 물었고, 그 뒤 자신이라면 그 병을 고칠 수 있다며 소월에게 따라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로가 이렇게 말하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그리도 간단히 움직였단 말인가?”
“이런 쳐 죽일!”
사소천의 얼굴색이 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 변하더니, 그가 이를 꽉 물며 말했다.
“설마……. 북지초가가 소월의 신분을 알고 데려갔단 말인가?”
그러나 삼 장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소?”
이내 사소천은 뒷짐을 지고 방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하려는 듯 보였다.
잠시 후, 사소천이 삼 장로에게 말했다.
“내일 후한 선물을 준비해서 초우에게 갑시다. 가서 사과를 하고! 그리고 반드시 소월을 데리고 돌아와야 합니다.”
삼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겠구먼.”
두 장로의 말에 사로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 씨 가문을 관리하는 대장로가, 심지어 삼 장로까지 대동해서 다른 가문에게 사과를 하러 간다니? 그 이유도 이전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던 계집아이 한명을 데리고 돌아오기 위해서란 말인가? 도대체 소월이라는 그 여자의 신분은 무엇이란 말인가?
사소천과 삼 장로가 그 이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서 감히 캐물을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의문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날 저녁 벌어진 사건은 아마도 이미 연경성 곳곳에 알려졌을 것이다. 어쩌면 화하의 모든 사람 귀에 들어갔을 수도 있었다. 만약 내일 대장로와 삼 장로가 초우에게 사과를 하러 간다면, 사 씨 가문은 앞으로 어떻게 체면을 세워야 한다는 말인가?
사람들은 대장로와 삼 장로가 본인들이 사과한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전부 예상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의 결정이 더욱 이해되지 않았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때 바깥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자, 사소천이 눈썹을 찌푸리며 작게 말했다.
“들어와라.”
그러자 한 청년이 안으로 들어와서 말했다.
“주인어른, 큰일입니다. 산동 흑호방의 방주 방호가 죽었습니다. 방주뿐만 아니라 흑호방의 전원이 살해당했습니다.”
“뭐라!”
사소천은 대경실색을 했고, 방안의 모든 사람 역시 얼이 빠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흑호방이 이렇게 갑자기 전멸했다?
사소천은 다시 물어볼 것도 없이 범인이 누군지 확신했다. 초 씨 가문 사람들 외에 그런 일을 벌일 자들은 없었다.
흑호방은 산동 지방에 자리를 잡은 지 오래되었다. 그 때문에 자연스레 적대하는 이들도 많아졌지만, 지금까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꽤나 자유롭게 활동해온 편이었다.
특히 방주인 방호는 밑바닥 출신이었지만, 최근 들어 서서히 상류층에 섞여 들어오고 있었다. 사 씨 가문 뿐만 아니라 다른 명문가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흑호방은 산동 지방의 뒷세계에서 제일 큰 조직으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이런 거대 세력이 이렇게 단시간에 전멸 당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범인이 북지초가라면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유인즉,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눈에 북지초가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었다. 북방에서 북지초가의 위세는 확실히 대단했지만, 외지로 나와서는 그렇게까지 힘을 쓰지 못하는 게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현실은 지레짐작하던 사람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북지초가는 북방에서만 위세를 펼치는 한 마리의 늑대가 아니었다. 산동이라는 외지에 와서도 종횡무진하며, 한 번 문 먹잇감은 놓치지 않고 끝까지 물어뜯는 철저한 포식자였다.
사소천에게 가장 충격을 안겨준 것은 초 씨 가문의 놀라운 반응 속도였다. 초우가 태산에서 습격을 받은 것은 어젯밤이었는데, 바로 오늘 저녁 흑호방을 전멸시킨 것이다. 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삼 장로의 얼굴색도 변했다. 그의 낯빛은 방금 전 사천우를 치료하고 나왔을 때보다도 더 창백해보였다. 마치 얼굴에 있는 핏기가 전부 가신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는 은둔가문의 장로로서 현재 상황을 매우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초 씨 가문이 흑호방을 전멸시킨 것은 명목상으로 보면 초우를 습격한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는 분명 사 씨 가문을 비롯한 모든 은둔가문에 대한 경고였다. 누구든 우리 초 씨 가문의 자제를 건드렸다가는 같은 결말을 맞게 될 것이라는 전언(傳言)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북지초가의 차갑고 날카로운 이빨이 세상에 드러난 만큼, 아마도 이후 많은 사람이 북지초가를 그저 그런 북방의 낭족(狼族)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북지초가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늑대의 후예였다.
지금 사소천은 마치 수만 마리의 양떼가 제 머릿속에서 날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너무도 놀란 한편 화가 치밀었다.
지금 방 안에 들어와 있는 자들은 사 씨 가문 내에서도 정예 중의 정예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방금 대장로와 삼 장로가 말했듯, 그들이 내일 초우에게 사과를 하러 가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싫은 광경이었다.
사람들에게 그리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흑호방은 공공연히 사 씨 가문에게 흡수되기 시작한 세력이었다. 완전히 사 씨 가문에 귀속된 것은 아니나 머지않아 그리 될 예정이었다는 뜻이다. 지금 이처럼 흑호방이 완전히 박살이 난 것은 초 씨 가문이 사 씨 가문의 뒤통수를 때린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럴 때 사 씨 가문의 대장로는 도대체 어떤 얼굴로 초 씨 가문의 자제에게 사과하러 가야 한단 말인가? 만약 정말 그리 된다면 사 씨 가문 사람들은 다들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도 없게 될 것이었다.
결국 사 씨 가문의 대장로 사소천은 흑호방이 무너졌다는 소식에 결단을 내렸다. 그는 삼 장로를 보며 말했다.
“사람들을 모아주십시오. 초우를 치겠습니다.”
그러곤 이렇게 덧붙였다.
“그리고 소월을 데리고 돌아와야 합니다. 앞길을 막아서는 자는 전부 죽여도 좋습니다!”
그 말에 삼 장로의 두 눈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바로 모두에게 연락하겠소.”
곧이어 사소천은 사로를 향해 말했다.
“로야, 너도 당장 사람을 모으거라. 초 씨 가문이 연경에서 하는 모든 사업을 정리해버리고, 그들의 사업을 인수인계할 채비를 해라!”
그러자 사로는 잠시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럼 정부쪽에는 어찌…….”
“이건 우리 강호의 일이다.”
사소천이 초연한 얼굴로 당당하게 답하자, 사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주인어른.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사로는 몸을 돌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삼 장로도 방안에 남아 있던 인원을 이끌고 나갔다.
이제 방 안에는 사소천 혼자 남았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금방 연결되었으나 상대편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사소천의 말투가 정중해졌다.
“소(苏) 장로님, 이렇게 늦게 연락드려 송구합니다. 제가 긴히 보고드릴 일이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예, 맞습니다. 소월에 관한 일입니다……. 예, 소월은 잘 있습니다. 다만 오늘밤 누군가에게 속아서…….”
사소천은 전화를 끊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서 차가운 빛이 비쳤다.
“북지초가, 너희가 아무리 북방의 낭족이라 자칭하며 극성을 부린다지만, 청구(靑丘)와는 어찌 싸울지 한번 두고 보자꾸나.”
* * *
그러나 사소천은, 그가 전화를 끊는 것과 동시에 초우의 집에 있는 소월에게 전화가 걸려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실 소월은 방약무인의 성격이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의 집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거리낌도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전화가 왔을 때, 그녀는 뺀질이와 같이 소파에 앉아서 흥미진진하게 만화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휴대전화 화면에 뜬 번호를 보고 살짝 눈을 찌푸렸지만, 전화는 받았다.
“응, 맞아. 거기 없어. 응, 일이 좀 있었거든. 나중에 얘기하자. 아니, 내가 원해서 온 거야. 그가 나를 고칠 수 있다고 하잖아. 맞아, 말했어. 만약에 날 속이는 거라면 바로 죽여 버릴 거야. 응? 그럼 너희도 상관하지 마. 난 안 돌아갈 거야. 응, 알겠어.”
소월은 전화를 끊고 위층을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초우, 사 씨 가문 사람들이 당신을 죽이러 온대요.”
초우의 목소리가 위층에서 들렸다.
“알았어.”
뺀질이가 뭔가 켕기는 얼굴로 소월에게 물었다.
“그 사람들, 강해?”
“엄청 강하지.”
소월의 대답에 뺀질이가 당황하며 말했다.
“그럼 당장 도망가야지!”
“왜 도망을 쳐?”
소월이 물었다.
“안 도망가면 그냥 여기서 죽자고? 분명 오늘밤 때려눕힌 그놈 복수를 위해서 오는 걸 텐데, 그놈을 때린 것도 이 몸이잖아. 지금 도망 안 가면 언제 도망가겠냐고.”
뺀질이가 당당하게 말했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다는 선언이었다.
그러자 위층에서 또다시 초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도망가면 그때는 영원히 안녕이야.”
“헤헤, 형님, 장난입니다. 이 몸이 그런 짓을 할 새입니까?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는 친밀한 형제사이 아닙니까!”
뺀질이는 본인과 초우의 공생관계에 관해 열변을 토하는 한편으로, 그 작은 두 눈으로 쉴 새 없이 숨을 만한 곳을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