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사 씨 가문

14화. 사 씨 가문

경계가 삼엄한 어느 최고급 개인병원 안.

많은 무사가 흉흉한 기운을 내뿜으며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이곳은 사(謝)씨 가문이 연경에서 운영하고 있는 가문 전용 병원이었다.

병원의 꼭대기 층에 있는 제일 큰 병실엔 혼수상태에 빠진 사천우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의 모습은 보기 딱할 정도였다. 자잘한 상처들은 이미 치료가 끝났지만, 아직도 붓기가 빠지지 않은 얼굴은 여전히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기절해 있는 그의 몸은 가끔씩 경련을 일으켰다.

그의 옆에서 칠순은 되어 보이는 노인이 그를 치료하고 있었다.

노인의 머리에서 다량의 열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마치 안개처럼 천천히 위로 올라가 곧 흩어졌다. 이 노인은 공력(功力)이 출중할 뿐만 아니라 의술에도 상당히 고명한 자로, 사천우의 몸에 쉴 새 없이 은색 침을 꽂아 넣고 있었다.

침은 사천우의 몸에 닿을 때마다 빠른 속도로 진동했다. 마치 벌이 날갯짓을 하듯 웅,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동시에 침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흩어졌고, 그 때문에 방 안은 온통 열기로 꽉 차서 온도가 50도를 넘어섰다.

보통사람이라면 오래 버티지 못할 정도의 고온이었지만, 노인은 병실에서 벌써 두어 시간 동안이나 치료를 계속하고 있었다. 실내의 온도는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노인의 얼굴에는 피로감이 가득했다.

마침내 마지막 침이 사천우의 몸에 꽂히자, 노인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밖으로 나가자마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삼(三) 장로, 천우는 어떻습니까?”

“삼 장로, 천우는 괜찮습니까?”

“뭔가 후유증이 남는 건 아니겠지요?”

사람들은 노인의 창백한 안색은 살피지도 않고, 모두 앞다투어 자기가 궁금한 것만 물어 왔다.

노인은 사천우를 치료하기 위해 모든 체력을 쏟아 부어, 그의 몸 안에 돌아다니는 이상한 힘을 간신히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사실 사천우가 상처를 입고 실려 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노인은 처음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큰 오산이었다. 뺀질이의 공격은 그리 가벼운 게 아니었다. 뺀질이는 사천우를 공격하면서 그의 몸에 어떤 힘을 불어넣었고, 그로 인해 제때 치료하지 않았더라면 사천우는 비록 죽지는 않아도 폐인이 될 수도 있었다.

삼 장로라 불린 노인은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치료는 제때 잘 끝났네.”

그 말에 사람들은 모두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미심쩍어하는 기색이 얼굴에 떠올랐다. 치료는 제때 끝났는데 왜 한숨을 쉰단 말인가?

삼 장로는 침통한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아마도 이후에 천우의 수행에 차질이 생길 것 같네.”

“예?”

“뭐라고요?”

삼 장로의 말에 중년 귀부인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울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아이고, 내 아들…… 우리 불쌍한 아들,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이냐? 초우, 초 씨 가문……. 이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다른 사람들도 얼이 빠져서 할 말을 잃은 상태였다.

“삼 장로, 천우의 상처가 그리 깊었습니까?

몸에 강력한 기장(氣場)을 두르고 있는 중년 남자가 침통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는 바로 사 씨 가문이 세상에 나온 후 가문을 관리하고 있는 대장로(大長老)이자 사천우의 아버지인 사소천(謝嘯天)이었다.

“천우가 생명이라도 건진 게 다행일 정도였다오. 만약 치료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지금쯤…….”

삼 장로가 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만큼 상대방의 손속에 자비가 없었던 듯하오.”

중년 귀부인의 울음소리가 더욱 켜졌다. 그녀는 북지초가를 멸문해야 한다느니, 초우를 죽여서 그 시체를 잘라 각지에 뿌려버린다느니 하는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내뱉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한 평범한 젊은 여자만이 냉정을 유치한 채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이내 사소천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

“사로(謝璐), 그날 있었던 모든 일을 내게 다시 한 번 말해보아라.”

그러자 중년의 귀부인이 울며불며 소리쳤다.

“무슨 할 말이 더 있겠습니까? 저 초가의 자식 놈이 저리 천방지축 날뛰는데, 우리 사가(謝家)가 뭘 그리 두려워해야 합니까? 당장 그놈을 쳐 죽이고 사지를 잘라서…….”

“냉정하게 구시오.”

“어찌 냉정해질 수 있겠어요!”

사소천의 말에 중년 귀부인이 다시 흥분하며 쏘아붙였다.

짝!

그러자 사소천은 귀부인의 뺨을 한 대 때리고는 쌀쌀맞게 물었다.

“이제 좀 냉정해지는 것 같소?”

사소천의 부인인 중년 귀부인은 무식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떤 은거 가문 출신으로 그 신분이 결코 낮지 않았으며, 평소에는 온화하고 점잖으며 행동거지에서 우아함이 넘쳐흐르는 사람이었다.

다만, 세상에서 오직 그녀의 아들만이 그녀를 이렇게 발광하게 만들 수 있었다.

뺨을 맞은 중년 귀부인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녀는 뺨을 감싸 쥐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사소천이 주위를 둘러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선 부인을 쉬실 수 있게 모시거라.”

이내 두 여자아이가 귀부인을 부축하여 자리를 뜨자, 사소천은 사로라는 이름으로 불린 젊은 여자와 삼 장로, 그 외의 몇 명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날 따라와라.”

사소천은 어느 방으로 들어가 앉더니, 삼 장로에게도 자리를 권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방 안에 가만히 서서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곧, 방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른 뒤, 사소천이 사로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해보아라.”

“네.”

사로는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천우와 초우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을 처음부터 소상히 말하기 시작했다.

“임설몽은 출신도 평범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문파는 한 공법(功法)을 지니고 있는데, 그 이름이 내조경(內照經)이라고 합니다…….”

“내조경이라고?”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도중에 끼어드는 것은 사소천이 싫어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사로의 말을 끊고 말았다.

사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그 공법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들어본 적도 없구요.”

“너는 당연히 들어본 적이 없을 테지……. 그건 천 년도 전에 어떤 대능(大能)이 남긴 수련공법이다. 오장육부를 수련하는 공법이지.”

사소천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주인어른. 저…… 저는 그것이 그리 중요한 일인 줄 모르고…….”

사로의 얼굴에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이 동시에 떠올랐다.

은거하던 가문들이 세상에 나온 이후에도, 오래된 가문과 조직들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관습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를 부르는 호칭, 위아래가 확실한 계급체계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었다.

사로는 어려서 사소천에게 거두어져 키워졌으며, 외모는 평범하지만 모든 방면에서 우수했다. 사소천이 그녀를 사천우의 주변에 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중 첫 번째는 사천우의 보조를 하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는 정보 수집을 하기 위함이었다.

사로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했으며, 이를 통해 사소천의 신임을 얻었다. 세월이 지나도 사로에게 사소천은 여전히 경외의 대상이었다.

“너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사소천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계속 말해보거라.”

내조경이라는 세 글자를 듣자마자, 사소천은 사천우가 어째서 초우를 죽이려 했는지 이해했다. 물론 사천우가 어떤 방법으로 그 공법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지는 의문이었다.

소위 공법이라는 것은 제삼자에게 함부로 넘기는 게 아니었다. 특히 은둔가문이나 종파들은 그런 일의 단속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 임설몽의 사문(師門)들이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그냥 눈뜨고 볼 리가 없었다. 내조경은 설사 부부 사이라 할지라도 가벼이 넘길 수 있는 게 아닌 특별한 공법이었다.

그러나 만약 사천우가 임설몽을 부인으로 삼게 된다면, 그 공법을 얻을 기회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임설몽과 초우는 이미 여러 차례의 연회에 연인처럼 함께 나타났습니다. 두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같이 나고 자랐다고 하며, 초우를 비웃는 자들은 임설몽이 자비 없이 짓밟았다고 하구요. 임설몽은 설사 상대가 쉬이 짓밟지 못하는 상대라 해도 물러나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우가 죽거나 없어지지 않는 한, 임설몽에게 다가갈 기회조차 없을 것이라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사소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간을 좁혔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깊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이 녀석, 너무 어리숙했어!”

삼 장로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자, 사로는 영문도 모르고 사소천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사소천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내조경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직계제자가 어떻게 초우 같은 그런 폐물 녀석과 친하게 지냈겠느냐? 제아무리 두 사람이 죽마고우라 할지라도……. 말도 안 되지!”

삼 장로가 뒤이어 말했다.

“십중팔구, 초우 그놈을 방패막이로 삼은 거겠지. 아니면 초우 본인이 그걸 원해서 임 씨 가문의 그 아이를 지키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영리한 사로는 이 정도만 듣고도 그들의 대화가 무슨 의미인지 짐작했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입을 열었다.

“실은 도련님이 초우를 죽이라고 직접 명령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임설몽이 도련님께 사람을 보내 경고했거든요. 또다시 초우를 건드린다면 서로 끝장을 보게 될 것이라고요.”

그러자 삼 장로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임설몽이 정말 초우를 방패막이로 내세운 것이든 아니든, 그에게 연모의 정이 있는 건 확실하구먼. 그런 임설몽의 태도가 천우 그 아이를 자극한 것이겠지.”

사소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아들이니 당연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내 그는 사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계속 말해보거라.”

“예.”

사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도련님은 초우가 본인의 앞길을 막고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초우의 처리를 매우 조심스레 준비 중이셨고, 그 과정에서 선택하신 것이 산동의 흑호방(黑虎帮)이었습니다. 도련님은 깔끔한 마무리를 원하셨지만, 흑호방의 방주인 방호는 그리 똑똑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수하에게 임무를 명하면서 도련님의 이름을 발설해버렸고, 그 때문에 지금의 소란이 벌어진 겁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삼 장로가 담담히 말했다.

“여차할 경우 위험을 나눌 보험이었겠지. 북지초가는 흑호방 따위가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그 말을 들은 사소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흑호방이 쓰일 만한 곳은 아직 있을 겁니다.”

곧이어 사로는 이날 벌어진 두 가지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방 안에 잠시의 침묵이 다시 내려앉은 뒤, 삼 장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듣자하니 초우 그놈에게 충혈경 7단 정도의 영물이 있다고? 오늘 우리 쪽 사람 다섯을 죽인 게 그 새인가? 그렇다면 태산에서 초우를 보호한 것도 그 새란 말이지?”

“그런 것 같습니다.”

사로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소천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

“네가 보기에 그 초우라는 놈은 여전히 수련도 못하는 폐물이더냐?”

사로가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현재 저희 수중에 들어와 있는 정보로는 그렇습니다. 초우가 위장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사로는 사소천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한두 해 정도의 시간이라면 위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그마치 16년 동안 위장을 한다는 건…… 제 생각에는 불가능합니다.”

방 안의 모든 사람이 사로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이윽고 한 청년이 말했다.

“맞습니다. 더군다나 초우는 지난 16년 동안 평범하게 바깥 생활을 했습니다. 그 무엇도 숨기지 않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