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강을 건너는 용맹한 용과 같이
어느 잠 못 드는 밤, 연경의 모든 눈은 두 가문에게 집중되었다.
정부는 계속 침묵을 지키는 중이었고, 다른 가문과 세력들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저 조용히 일의 결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 장로님, 어째서 이렇게 된 겁니까? 우리끼리 얘기는 이미 끝난 거 아니었…….”
끊어진 전화를 보며 사소천은 할 말을 잃은 듯했다. 그의 모습은 순식간에 마치 영혼이라도 뽑혀나간 것처럼 나이보다 몇 십 년은 늙어보였다.
사소천은 지금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저쪽이 이렇게 쉽게 이 일에서 손을 떼는 것인지, 그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한낱 북지초가 따위가 이렇게나 강한 세력이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물론 그들이 산동의 흑호방을 쓰러뜨리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감히 사 씨 가문에게 창끝을 겨누다니! 대체 그들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란 말인가?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은 진즉에 이런 행동을 할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당했구나…….”
사소천이 뭔가 깨달은 듯 갑자기 중얼거렸다.
“초 씨 가문에게 당한 거야. 망할! 우리 사 씨 가문을 짓밟고, 우리를 초석으로 삼아 위를 향하겠다는 건가? 초 씨 가문 네놈들이 그리하면 연경성의 권문세가들이 그 꼴을 가만히 두고 볼 줄 아느냐?”
사소천이 사 씨 가문을 이끄는 자리인 대장로를 맡은 지 이제 20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혼란에 빠져 있었다.
뒷일이 그가 말한 대로 흘러갈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현재 연경성 안에 있는 가문과 조직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개중에는 사 씨 가문과 동맹관계에 있는 자들도 있었다. 사실은 그들도 초 씨 가문에게 한방 먹는 바람에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제 두 가문 사이의 원한관계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게 되었고, 아무리 동맹관계라 해도 그런 문제에는 쉬이 끼어 들 수 없었다. 사소천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기에 동맹관계에 있는 자들에게 도움을 구하지 못했다. 그리고 숨겨두었던 마지막 패마저 방금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정부가 침묵하고 있는 이유도, 사소천이 일전에 말한 것처럼 이번 일이 강호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 누가 이기고 지든 정부는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해가 가지 않는 한, 정부의 간섭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초 씨 가문은 지난 33년 동안 자신들의 자리를 지켜왔다. 다른 은둔가문이나 파벌들이 연경성으로 사람을 보내 자리를 잡는 동안, 초 씨 가문은 소박한 사업을 유지하고 있었다.
33년이 지나 여러 세력이 연경에 자리를 잡고 안정되면서, 이제는 어떤 외부세력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질서와 균형이 잡혔다. 그렇기에 다른 은둔가문들은 초 씨 가문을 안중에 두지 않았고, 심지어는 은근히 무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북방의 낭족은 무슨. 그냥 시골에 처박힌 촌놈들이지!”
“그 발톱을 쓸 줄은 아는 건가?”
“늑대들은 그냥 산에 숨어 있는 게 좋을 거다. 나오기만 해봐라.”
“그저 북쪽 지방의 가문이잖은가. 거기서야 꽤나 힘을 쓸지 몰라도, 다른 곳에서는 어림도 없지.”
지금까지 초 씨 가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이번 전투로 인해 초 씨 가문은 33년 만에 처음으로 이빨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한 번으로 세상을 뒤집어놓았다.
게다가 초 씨 가문이 힘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기는 참으로 절묘했다. 너무도 절묘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이 진즉에 사 씨 가문과 짜고 이런 일을 벌인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추측은 곧바로 사라졌다. 왜냐하면 사 씨 가문은 이번 싸움으로 인해 거의 모든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 게 당연한 법인데, 만약 합을 맞추고 공모를 한 것이라면 같은 편을 이렇게 심하게 짓밟을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사태가 이쯤 진행되자, 정작 초우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많이 줄어들었다. 다들 초우가 그의 가문과 한바탕 연극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우와 함께 있는 그 참새도 사실은 초 씨 가문이 그에게 붙여준 진짜 경호원일 거라고 믿었다.
연경에 한바탕 새로운 바람이 불면서, 초 씨 가문은 마치 강을 건넌 용처럼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당당하게 연경성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방 안에서 나온 사소천은 속이 비어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밖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며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그가 다시 눈을 뜨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대장로!”
“대장로,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대장로, 온다던 원군은 어디 있습니까?”
“대장로,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사 씨 가문의 고위층 몇몇이 다급한 목소리로 사소천에게 물었다. 그러자 사소천은 깊게 한숨을 내쉬면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사 씨 가문의 모든 사람에게 전한다……. 연경성을 빠져나가라!”
* * *
다음날 새벽, 모든 사건이 일단락되어가고 있었다.
33년 동안 연경성에서 커다란 조직으로 군림해온 사 씨 가문은 그 자리에서 뿌리가 뽑혀서 내쫓기고 말았다. 오랜 시간 찬란하게 빛나던 가문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린 것이다.
이와 반대로 승천하는 용이 된 초 씨 가문은 연경성의 새로운 세력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사 씨 가문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한 것은 초 씨 가문이 아니라, 뜻밖에도 정부에서 발표한 선언이었다.
“사 씨 가문이 연경성에 자리 잡고 이곳을 대표하는 가문이 된지 오래되었으나, 그들은 자신들의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 사 씨 가문의 일원들은 방자하고 교만하기 이를 데 없어, 간사하게도 가문의 이름을 등에 없고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그리하여 정부는 이 같은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앞으로는 초 씨 가문이 사 씨 가문을 대신하여 연경성을 태평성대로 이끌 것이며…….”
마음에 큰 원한을 품고 연경성에서 떠나던 사 씨 가문 사람들은 그 성명을 듣고 분개했다.
“태평성대는 무슨 얼어 죽을 태평성대야!”
“우리가 오만방자하다고?”
“모든 죄를 덮어씌우다니…….”
“이건 모함이다!”
사소천은 마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그는 머리끝까지 화가 올라서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았다.
“망할! 망할 초 씨 가문 놈들!”
연경성에 자리 잡은 지 몇 십 년 동안, 사 씨 가문은 상당수의 사업에 투자해왔다. 그러나 이렇게 허망하게 연경성을 떠나게 되면서 극히 일부분의 현금을 제외하고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은 챙겨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남겨진 재물들은 누구나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들 정도의 값어치가 있었지만, 그건 모두 초 씨 가문이 사 씨 가문을 무너뜨리며 얻어낸 전리품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탐하지 않았다.
만약 이번에 패배한 것이 초 씨 가문이었다면, 반대로 초 씨 가문이 연경성에서 일궈놓은 모든 사업은 사 씨 가문에게 흡수되었을 것이다. 사 씨 가문의 사업을 관리 감독하던 핵심인원들이 연경을 떠나던 그때, 이렇게 되는 것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었다.
* * *
사 씨 가문 사람들이 연경성을 떠날 즈음, 임설몽도 네 명의 노인과 함께 초우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그녀에겐 이제부터 처리해야 할 일과 만나야 할 사람들이 넘쳐났다. 초우의 안전이 확보된 지금에야, 임설몽은 비로소 안심하고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초우는 임설몽을 배웅하고 소월과 뺀질이를 아래층에 있도록 했다. 그리고 초천강과 초천승을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간단한 치료를 받은 그들의 손은 겉으로는 불편한 곳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제아무리 그들이 충혈경 6단에 달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손목 힘줄이 절단되었기 때문에 회복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터였다. 다행히 임설몽이 데려온 노인의 치료 실력이 좋았고 제때 치료를 받았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앞으로 그들이 어찌 됐을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처였다.
“도련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으신 겁니까?”
초천강이 따뜻한 표정을 지으며 초우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손목의 상처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사실 그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도련님의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16년 동안 폐물로 살아온 도련님이 어떻게 전음을 사용하셨다는 말인가?
1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초 씨 가문 사람들은 여전히 그때의 도련님을 잊지 않고 있었다. 초우가 보여준, 놀라움을 금치 못할 실력들을 말이다.
초천승은 옆에서 잠자코 있었지만, 그 역시 초우를 보며 기대감이 넘치는 눈빛을 감추지는 못했다.
초우는 초천강의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고,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기억하는 게 맞다면, 분명 강 숙부와 승 숙부는 충혈경 6단이셨죠?”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초우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만약 두 분이 원하신다면 말이지만, 저와 같이 용성에 가지 않으시겠어요?”
초천강과 초천성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초우를 향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가겠습니다!”
초우의 몸이 여전히 폐물이라 수행을 하지 못한다 해도, 가문 내에서 그의 신분은 상당히 높았다. 반면 초천강과 초천승은 비록 능력은 우수했지만, 서출(庶出)이기에 가문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에 한계가 있었다. 그만큼 많은 시간과 충성을 바쳐야 간신히 수련에 필요한 자원을 얻을 수 있는 정도였다.
초우가 자라나는 걸 옆에서 지켜본 그들은 초우의 품성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앞으로도 초우의 옆에 계속 있을 수 있다면, 그들이 수행에 필요로 하는 자원을 얻는 것이 전보다는 수월해질 것이다.
초우는 두 사람을 평온하게 바라보며 전음으로 말했다.
- 그럼 좋습니다. 이제 맹세를 해주세요. 여기서 본 것들을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초우의 말에 두 사람은 주저하지 않고 선언했다.
“나 초천강과 초천승은 지금부터 무엇을 보더라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이를 어긴다면 천벌을 받을 것을 맹세합니다.”
맹세를 마친 두 사람이 초우를 바라보자, 초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강 숙부, 손을 내밀어보세요.”
초천강이 멀쩡한 손목을 내밀자, 초우가 고개를 저었다.
“다른 쪽이요.”
그러자 초천강은 상처를 입은 손을 다시 내밀었다. 초우는 치료를 위해 상처를 묶어두었던 것을 풀어서 바닥에 던졌다.
초천강의 손에 난 상처는 이미 피가 멎었고, 가느다란 선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보기만 해도 섬뜩할 정도의 상처였다.
초천강은 영문을 모른 채 초우를 바라보았으나, 초우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초천승 역시 초우가 무엇을 하려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것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잠시 후, 초우가 초천강의 상처 부위를 손으로 쥐었다. 초천강은 강렬한 통증에 얼굴을 찡그렸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꾹 참았다.
“후후, 역시 멋지시네요!”
초우가 놀리듯이 말했다.
초천강이 뭐라고 답하기도 전에, 그의 손목에 있는 상처 부위에서 마치 불이라도 붙은 듯 열이 올랐다.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높은 온도였다. 이어 그 뜨거운 기운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초천강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초우의 몸에선 여전히 그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초천승은 옆에서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었으나,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초우에게서 힘의 파동을 확실히 느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는 눈을 힘껏 비비면서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지 확인했다.
‘도련님이 돌파(突破)를 하신 것인가?’
충혈경을 익히고 사용하는 자들에게 있어 돌파란, 일종의 혈도를 뚫는 과정을 뜻했다. 이를 통해 혈도를 하나 뚫을 때마다 몸의 힘이 한 단계 상승하는 것이다. 그리고 방금 초우가 보여준 것처럼, 돌파의 과정에서 나오는 강렬한 힘에 의해 파동이 일어나게 된다.
초천승이 눈앞에서 그 순간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초우가 보여준 돌파는 지금껏 그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속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충혈경 6단의 초천강은 원래 183개의 혈도가 뚫려 있었다. 하지만 방금 그는 몸에 4개의 혈도가 새롭게 뚫리며 생긴 힘이 느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4개의 혈이 뚫린 것인가? 이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가?’
사람이 무사로서 가지고 있는 재능은 각자 달랐다. 소천강과 소천승 형제는 아무리 재능을 펼친다 해도 지금 자신들이 올라와있는 단계에 다다르는 게 전부였다. 만약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그만큼 엄청난 노력을 해야 가능한 일인데,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광경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