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뒤흔들다

18화. 뒤흔들다

초우의 손에 상처 부위를 잡힌 초천강은 자신의 몸으로 흘러들어오는 힘을 느끼고 있었다. 그 말인즉, 그의 몸에 있는 혈도가 점점 열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초천승은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마치 기적의 한 장면 같았다. 16년 동안 폐인으로 살아온 도련님이 이렇게 쉽게 두 형제의 인생을 뒤바꾸어놓은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초천승은 완전히 멍해진 상태였고, 몸으로 직접 겪고 있는 초천강은 초천승보다 몇 배는 더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혈도의 한 부분인 질곡(桎梏)은 마치 와인 병의 마개와 같았다. 다른 이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마개를 쉽게 열기 위한 병따개가 바로 강력한 공법이었다.

좋은 병따개를 사용할수록 마개를 여는 것은 쉬워지고, 병에 가해지는 손상도 적어지게 된다. 소위 고급 병따개를 사용하면 마개를 조금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여는 것이 가능했다. 즉, 단계가 높은 공법을 쓰면 돌파의 순간에 몸에 가해지는 손상이 점점 적어지는 것이다.

혈도가 뚫리는 순간에는 그곳에 쌓여 있는 각종 노폐물이 벽에 부딪히며 혈도와 맥에 손상을 입힐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사들이 돌파를 할 때는 그 과정에서 입은 손상을 치유하게 위해 엄청난 양의 약재가 필요했다. 정상적인 무사의 수련을 보면, 보통 공법을 통해 먼저 혈도에 있는 질곡(桎梏)을 조금씩 갉아낸다. 그리고 그 질곡의 벽이 얇아지는 순간, 전력을 다해서 남아 있는 벽을 뚫어내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지금 초천강의 몸에 있는 혈도들은, 파도를 만난 물살처럼 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수며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혈도가 열리는 순간에도 초천강의 몸은 어떤 해도 입지 않았다. 정말이지 엄청난 능력이었다.

15분 후, 마침내 초우가 초천강의 손을 놓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고는 초천강에게 물었다.

“강 숙부, 느낌이 어떠세요?”

초천강의 얼굴에는 기쁨, 환희, 당황 등등, 갖가지 표정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내 그는 다시 한 번 천천히 자신의 손목을 살펴보았다.

손목에는 여전히 빨갛게 선이 그어져 있었으나, 끊어졌던 맥이 다시 돌아와 있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이 몸 안에서 용솟음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웅!

충혈경 7단의 강력한 기운이 폭발하듯 날뛰었다.

초천강은 재빨리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가라앉혔지만, 얼굴에 떠오르는 기쁜 기색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그는 초우를 향해 포권을 취하며 예를 표했다. 운둔 가문의 신분차이를 떠나서 그가 초우에게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예를 표하는 게 마땅했다. 이렇게 몸을 숙여 예를 표하는 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표현이었다.

스승은 자신의 깨달음을 전하고, 제자는 그의 말을 듣고 의문을 해소한다. 무엇을 익히든 그 끝에 다다른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스승인 것이다.

초우는 그에게 단순히 손목을 치료해주는 것 이상의 은혜를 베푼 것이나 다름없었다. 초우가 행한 방법은 어떤 은둔가문에서도 정말 보기 드문 것이었다.

이는 사람들이 관정(灌頂)이라 칭하는 것으로, 대능(大能)을 사용하는 아주 무모한 방법이었다.

이건 힘을 직접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실어 보내는 방법인데, 당연하게도 그렇게 힘을 보내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대능자(大能者)가 아니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방법이었다. 만일 조금이라도 힘이 흐트러진다면 관정을 받는 사람을 폭발해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 씨 가문 같은 큰 가문에서도 소문만 무성할 뿐, 실제로 관정을 하는 것을 본 사람은 없었다.

‘어쩐지 도련님이 우리에게 맹세까지 하게 하신다 싶더니…….’

이번 일은 설사 맹세 때문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말해봤자 믿어주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두 숙부는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초우는 자신들과 같은 충혈경 6단의 혈도를 관정을 써서 뚫을 정도의 힘을 가졌다. 그렇다면 도련님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경계(境界)에 있는 것인가?

초천승은 다음은 분명 자신의 차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승 숙부, 이제 숙부 차례입니다.”

초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십 분 후, 초천승 역시 감격과 환희, 당황의 감정이 뒤섞여 이 일을 쉽사리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초천강과 마찬가지로 포권을 하며, 허리를 숙여 초우에게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강 숙부, 승 숙부, 맹세를 잊지 말아주세요.”

초우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미간에 박혀 있는 제3의 눈을 사용해 시천심법(弑天心法)을 펼쳐 두 사람의 혈도를 뚫어주었다. 이는 그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련의 과정이 아주 쉽게 이어진 것 같지만, 실은 그의 심신과 양면에서 고도의 집중이 필요했다.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었다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초우 입장에서는 그만큼의 이득도 있었다. 초천강과 초천승 두 사람은 서출이긴 하나, 초 씨 가문의 모든 사람은 각기 출중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이 둘은 가문에 대한 충성도도 높았으며, 초우 같은 폐물 도련님도 그 어떤 편견 없이 대해주었다.

초우는 돌파를 도와서 그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그런 그들을 곁에 둔다면 자신의 신분을 감추는 것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도 분명 했다. 가문 밖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어온 초우는 그런 경험으로 인해 자신의 진정한 실력을 감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사 씨 가문이 이대로 쉬이 물러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역시 사 씨 가문에서 손을 뗄 생각이 없었다.

‘아직 마음에 앙금이 남아 있으니까…….’

문제는, 대체 언제 그들에게 한방을 먹이면 좋을 것인가였다.

초우가 초천강, 초천승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뺀질이가 음흉한 눈빛으로 세 사람의 머리 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그들을 살폈다. 초천강과 초천승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고 위층에서 초우가 돌파를 할 때 뿜어져 나왔던 힘의 파동 역시, 아래층의 뺀질이와 소월 둘 다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것이 뺀질이가 초우와 함께 지내기로 결정한 이유였다. 그의 끝 모를 불가사의한 힘 말이다. 물론 뺀질이도 방금 전까지는 초우에게 이런 능력이 있는지 확신하지는 못했었다.

한편, 소월의 영롱한 두 눈이 초우를 한 번 훑었다.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려 조그맣게 웃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계속해서 만화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초우의 나머지 두 경호원은 여전히 바깥에서 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초우는 언젠가는 그 두 사람에게도 같은 처치를 할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금 초우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는 형님을 만나러 가고 싶었다.

* * *

초량(楚良)은 초 씨 가문 칠가주, 초천북의 장자이자 초우의 친형이었다.

그는 올해 나이 27세였으며, 충혈경 6단이었다. 아직 젊은 나이였지만 구레나룻과 짙은 눈썹, 커다란 눈 때문에 상당히 억세 보이는 인상의 소유자였다.

자세히 보면 초량과 초우는 겉모습이 상당히 닮아 있었다. 그러나 둘의 성격은 천지차이였고, 옷차림도 그만큼 차이가 났다.

초량은 17, 18세 때부터 가문의 어른들을 따라다니며 일을 처리하곤 했다. 그는 수련 쪽으로도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의 진짜 재능은 가문의 여러 일을 처리할 때 본격적으로 발휘됐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군사(軍師)라고 불렀다.

사 씨 가문이 연경에 남기고 간 사업들의 규모는 상당히 컸고, 그 종류도 각양각색이었다. 그래서 하루나 이틀 만에 정리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초량의 지휘 아래, 초 씨 가문은 이 모든 사업을 한나절 만에 자신들의 이름으로 바꾸는 것에 성공했다.

모든 일을 끝마친 후 초량은 초우에게 전화한 뒤, 사람을 시켜서 동생을 데려오도록 했다. 생각해보면 두 형제가 만나는 것도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두 형제는 연경성의 어느 조용한 클럽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다.

이 클럽은 상당히 이전부터 초 씨 가문이 운영해온 사업장 중 한 곳이었다. 비록 초 씨 가문이 다른 은둔가문처럼 처음부터 연경성으로 들어와서 자리 잡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아무것에도 손을 대지 않은 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아무리 사 씨 가문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해도, 그들의 사업을 인계하면서 한계에 다다랐을 게 분명했다.

사실 초량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해고 일을 진행해왔다. 그저 이번의 소란과 같은 좋은 기회를 노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초우를 본 초량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더니, 동생을 덥석 끌어안으며 등을 철썩 때렸다.

“너 이 녀석,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더 말랐구나!”

그 말에 초우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초량은 이렇게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형님, 일은 어떻게 되어갑니까?”

초량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말거라.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 중이다.”

초량은 초우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방이었지만 그곳에는 두 형제뿐이었다.

“여긴 방음이 잘 되어 있어서, 바깥에서는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든 들을 수 없을 거야. 너와 이렇게 만난 것도 오랜만이니 오늘은 이 형이랑 신나게 수다나 떨자.”

초량은 그렇게 말하며 초우에게 한잔 가득 술을 따라준 뒤, 자신의 잔도 채웠다. 그는 손에 들어 초우와 잔을 맞부딪힌 다음 한입에 털어 넣었다.

“하…….”

초량이 깊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술, 꽤 독하구나!”

반면 초우는 잔에 살짝 입만 가져다 대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우웩! 써!”

“하하, 녀석, 아직도 이 맛을 모르는구나. 이건 아주 좋은 술이다. 이과두주라는 전통주지. 60년은 넘게 보관해온 것인데, 이것들은 전부 사 씨 가문의 창고에서 가져온 거야.”

초량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초우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나중에 저한테도 몇 개 좀 챙겨주십시오.”

“넌 술은 싫어하지 않았느냐?”

초량이 동생을 보며 말하자, 초우가 헤벌쭉 웃으며 답했다.

“나중에 장인어른께 가져다 드리려고요.”

“너 말이다…….”

초량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초우를 바라보았다.

“그 일과 관련해서 너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예, 말씀하세요.”

“임설몽이 있는 문파는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밖에 있는 저 많은 고대 문파 중에서 감히 최고라고 자칭할 수는 없지. 이전에 어떤 소식을 들었는데, 물론 상대방도 확실치는 않다고 얘기하긴 했다만, 임설몽의 스승들이 그녀의 약혼을 결정한 것 같더구나. 말하자면 정략결혼 같은 것이겠지.”

초량은 커다란 눈으로 초우를 응시하며 말했다. 초우는 잠자코 그 말을 듣고 있다가 불쑥 말했다.

“형님, 저 힘이 돌아왔어요.”

“그건 좋은 일이……. 응? 어? 너 방금 뭐라고 한 거냐?”

초량은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더니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초우에게 물었다.

“정말이냐?”

초우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