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변검

19화. 변검

“형님, 형님의 충혈경 단계는 6단이었지요? 저에게는 그 단계를 한 단계 올릴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르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물론 짧은 시간에는 어렵겠지만,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아마 가능할거에요.”

초량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점점 짙어졌다. 그는 초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태산에서…… 너를 구한 것이 그 새가 아니었느냐? 연경 외곽에 묻혀 있던 사 씨 가문의 고수 다섯 명을 죽인 것도 네가 한 거냐?”

초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초량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초우가 말했다.

“제가 힘을 잃었던 그 해, 저는 연해주 지역에서 어떤 동굴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기연을 만났고, 그게 제 힘을 억제하고 있었죠. 사실 저는 몸이 망가져서 폐인이 된 것이 아니라 그동안 힘을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16년 동안 수련을 계속해왔다는 것이냐? 그 긴 세월 동안?”

이제 초량의 얼굴에서는 기쁨이 번지고 있었다. 동생의 재능에 대해서는 그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어느 고대 문파에서 초 씨 가문으로 사람을 보낸 적이 있었다. 초우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데리러 온 것이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들이 초 씨 가문 저택에 도착했을 때 초우는 이미 폐인이 되어 힘을 잃은 상태였다. 그러자 그들은 초 씨 가문에서 초우 다음으로 재능이 있었던 초석(楚夕)을 대신 데려갔다.

‘만약 초우가 처음부터 폐인이 되었던 게 아니라면, 그렇다면…….’

초량은 갑자기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사 씨 가문과의 싸움에서 이겨서 그들을 몰아내고, 연경성에서 성공적으로 가문의 입지를 다진 것보다 방금 동생의 한마디가 그를 더욱 흥분시켰다.

사가를 몰아내는 것은 모두 초량이 예상하고 계획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동생의 일은 그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고, 동시에 그가 지난 몇 년 동안 그토록 이루어지길 소망해온 일이기도 했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초우가 폐인이 되어버린 그날, 그전까지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었던 초량은 불쌍한 동생을 위해 눈물을 쏟았었다.

“그런 너는 지금…….”

초량이 초우를 보며 물었다. 이제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과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충혈경 8단입니다.”

초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형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도 조금 붉어지고 있었다.

“멋지구나!”

초량은 신이 나서 허공을 향해 주먹을 마구 휘두르며 말했다.

“아주 멋져, 내 동생!”

온갖 기쁨의 감정이 초량의 마음속에서 들끓고 있었다. 너무 감격스러워서 말을 이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윽고 그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곧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기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그 순간 엄청난 기운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폭발했던 기운은 순식간에 초량의 몸 안으로 갈무리되어 들어갔다.

초량은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초우를 보며 크게 웃었다.

“대단한 동생이야! 네가 정말 이 형의 복덩이구나. 방금 너무 기쁜 나머지 혈 자리를 하나 뚫어버렸어. 하하……!”

그가 웃음을 멈추기도 전에 초우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다음 순간 초량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다.

“정신통일!”

초우가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초량은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혔다.

펑! 펑펑펑!

연달아 작은 폭발음이 들리며 초량의 몸 안에서 무언가 터져나갔다. 폭발음은 혈도의 질곡이 터져나가는 소리였다.

또다시 초량의 몸에서 힘의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원래 196개의 혈도가 뚫려 충혈경 6단 중간 단계에 머물러 있던 초량은, 초우의 도움으로 십여 분만에 29개의 혈도를 더 여는데 성공했다.

이제 초량의 충혈경은 7단 중간 단계까지 올라 있었다. 초우 덕분에 상당히 높은 경지에 너무도 쉽게 올라버린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이 경지에 오르는 데 족히 몇 년은 걸렸을 것이다. 그것도 초량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계산에 넣고, 가문의 힘으로 여러 고급 약재를 사용한다는 가정 하에서였다.

초량도 그런 긴 수련시간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었지만, 초우의 앞에서는 한 번도 티를 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16년 동안 그를 괴롭혀온 문제가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내 동생의 재능은 여전히 엄청나구나!’

기분이 좋아진 초량은 두말 않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초량의 주량은 상당했기 때문에, 아무리 높은 도수의 술이라도 그에게 영향을 주진 못했다.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초우도 형의 권유에 못 이겨 몇 잔 걸쳤다. 그러자 초우의 반듯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네 그 능력은 정말 대단하구나. 하지만 절대, 절대 다른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서는 안 된다.”

초량은 조금 취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머리가 맑은 상태로 초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형님. 사실 이런 능력은 외도(外道)지요.”

초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외도 중에서도 제일 외도라 할 수 있겠구나.”

이윽고 초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네 그 능력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을 거다. 그 중에서 그나마 좋은 쪽은, 강대한 고대 문파에서 너를 데려가서 모든 것을 연구하는 것이지. 네가 수련한 공법도 말이다.”

이어 초량은 동생을 지긋이 보며 말했다.

“두 번째는 뭐……, 너도 알고 있을 게다.”

그의 말에 초우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당연히 그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이해하고 있었다.

6살 때 힘을 잃은 직후 그에게 닥쳤던 일들로 인해, 초우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이해하고 있었다. 초우가 새삼 놀란 이유는 그가 익힌 공법에 대해 형이 눈치를 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내 초량이 초우의 마음을 꿰뚫어본 듯 말했다.

“그런 공법이 없었다면, 어떻게 네가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16년 동안 수련을 계속하여 그 경지에 오를 수 있었겠느냐?”

초량은 초우를 보며 진중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이 형은, 네가 성격이 온화하고 착해서 가족을 믿고 싶어 하고 주변사람들을 믿고 싶어 한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명심하거라. 다른 사람을 그리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

“예, 알고 있습니다, 형님.”

초우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초량은 눈썹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하더니, 주머니에서 영롱한 옥석을 조심스레 꺼내어 초우에게 건넸다.

“이건 겉보기에는 그냥 구슬 같지만 사실은 옥간(玉簡)이다. 이 형이 몇 년 전에 얻은 것인데, 그 안에 어떤 공법이 들어 있어. 물론 그 옥간을 열어보기 위해서는 너의 힘을 불어넣어서…….”

“변검?”

초우가 옥석을 들어 올리며 미간을 좁혔다.

“공법 이름이 변검인가요?”

“어찌 알았느냐? 아직 힘을 불어넣는 방법을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초량은 그의 동생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은 얼굴로 물었다. 동생은 어려서부터 능력이 너무 출중했기 때문에, 초량으로서는 그와 같이 지내다보면 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오랜 시간 느껴보지 못했던 그 익숙한 느낌에 초량은 좀 더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그 공법을 어찌 써야하는지 보여 주마.”

곧이어 초량은 순식간에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보였다. 얼굴, 체형, 심지어는 본인 특유의 기척마저 바뀌는 엄청난 능력이었다.

“좋지 않느냐? 내가 한 번도 얘기한 적 없었지?”

초량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너에게 주마.”

“이거 정말 재미있겠네요!”

초우는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서 거울을 보며 공법을 시작했다. 그러자 거울 속에 끝없이 새로운 얼굴이 떠올랐다.

10분 후, 초우와 초량은 다시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형님, 이 공법도 참 특이한데 어디서 얻으신 겁니까?”

“어떤 옛 유적지에서였다. 그걸 얻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지.”

초량은 조그맣게 탄식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무거운 얘기는 그만두고, 그 공법을 어찌 써야할지는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초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런 공법이 있는 것을 알자마자 사용해야 할 곳을 바로 이해했다.

“변검, 이 공법은 엄청난 재능을 필요로 한다. 나도 오랫동안 수련해왔지만 이제 겨우 세 명 정도의 얼굴로 바꿀 수 있어. 기장(氣場)이나 기척을 바꾸는 것도 너 같은 초심자보다도 못하니, 원.”

초량이 허탈한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역시 선천적인 재능은 따라갈 수가 없는 건가…….”

그러자 초우가 웃으며 말했다.

“저의 이 재능도 전부 형님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 네가 점점 강해질수록 이 형은 신이 나는구나, 하하. 이 공법을 열심히 수련하거라. 어느 경지에 도달해 기장과 기척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된다면, 다른 사람의 모습도 따라할 수 있게 될 거다.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말이야.”

초량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겠지!”

“어떤가요. 형님이 보시기에 지금의 저는 괜찮을 것 같습니까?”

초우가 웃으며 초량을 보았다.

초량은 처음엔 고개를 끄덕였으나, 이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초우를 보며 말했다.

“동생아, 네가 만약 지금 이 속세에서만 머무른다면,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그 뛰어난 재능만으로도 차고 넘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저 밖에 있는 진정 거대한 가문들의 제자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넌 충혈과 통맥 두 가지에 한해서는 다른 가문의 제자 수준에 그쳐 있지. 거기서 더 앞으로 나아가려면 선천연기사(先天練氣士) 정도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그래야 간신히 한발을 디딘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선천연기사요?”

초우도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건 자신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이름이었다. 선천연기사는 은둔가문인 초 씨 가문에서도 과거 예닐곱 명 정도가 올라선 적이 있는 경지였다. 그러나 이후로 꽤나 긴 세월 동안 그 경지에 오른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선천연기사, 그들의 수명은 300세에서 500세 정도 된다고들 하지. 산을 옮기고 바다를 메우고 비를 불러오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옛날에는 그들을 신선이라 칭했다고 한다. 자기(磁氣)가 세상을 둘러쌓기 전에는 그 정도의 경지가 기초 중의 기초에 지나지 않았다지만…….”

초량은 흥을 내며 초우에게 이것저것 비밀 이야기를 해주었다. 초우는 그런 초량을 보면서, 형은 경계가 그리 높은 건 아니지만 알고 있는 것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런 것들은 전부 초 씨 가문의 서고에 들어 있는 이야기였다. 다만 그중 밖으로 알려진 건 거의 없었다.

곧 초량이 초우를 향해 웃어보였다.

“우리 초 씨 가문이 사 씨 가문을 이렇게 당당히 정면으로 공격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고 있느냐?”

초우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우리 초 씨 가문이 사 씨 가문보다 강했기 때문이죠.”

초량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저 겉으로 드러난 정보일 뿐이지. 사 씨 가문을 쳐부수는 건 쉽다. 그러나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다른 가문들은 어찌 상대했겠어?”

형의 말에 초우는 잠시 멍해졌다.

확실히 사 씨 가문은 이곳에서 몇 십 년을 자리 잡으며 여러 가문과 동맹을 맺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초 씨 가문이 강하더라도 이런 사 씨 가문을 하룻밤 사이에 뿌리 뽑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