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파티
잠시 후, 소월이 차를 내리는 도구를 가지고 와서 사람들에게 차를 대접했다. 초천웅은 평소에도 차를 마시는 것을 좋아해서 차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소월이 익숙하게 차를 내리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반면 초우는 소월이 차를 내리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는 차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소월에게서 느껴지는 평온한 분위기와 차에서 우러나오는 기분 좋은 향기 때문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 같았다.
어느덧 방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뺀질이마저도 한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 소월을 지켜보고 있었다. 초소소도 분위기에 물 들은 듯, ‘소월에게 이런 면도 있었나’하는 표정으로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초소소는 문학 쪽으로는 영 젬병이었지만, 소월을 보며 시구 한마디를 떠올렸다.
움직일 때는 마치 초원에서 뛰노는 한 마리의 토끼 같은데, 가만히 있는 모습은 마치 귀중처녀와 같구나.’
* * *
초천웅은 파티에 참가하러 가는 길에도 소월의 다도 솜씨를 쉴 새 없이 칭찬했다. 조카의 곁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즐거운 듯 보였다.
“그 아이, 정말 대단하더구나. 나도 오랫동안 차를 가까이 해왔지만 그 아이처럼 기예가 출중한 자는 본 적이 없다. 일평생을 다도에 바쳤던 어떤 노인도 그 아이보다는 못했어. 그 아이의 겉모습을 생각하면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것 같구나!”
일행은 곧 용성 내에서도 가장 큰 클럽에 도착했다. 이곳 역시 영 씨 가문이 관리하는 곳으로,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고급 파티를 위한 장소였다. 그만큼 보안이 철저해서 누군가 안에 들어서면 주위의 경계가 더욱 강화되었다. 그래서 파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선 뒤에도 배배 꼬인 길을 지나 간신히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깥에서는 그 주차장이 보이지도 않았다.
이번에 파티에 참가한 초가 쪽 사람은 초천웅과 초소소 부녀, 그리고 초우 세 명 뿐이었다. 뺀질이와 소월, 그리고 초천강, 초천승과 두 명의 경호원은 집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천웅의 말에 따르면, 초가 사람들은 이곳 용성에서는 경호원을 일일이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뺀질이와 소월은 시끄러운 장소를 싫어했다.
클럽 안쪽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사람이 도착해 있었다. 초우 일행이 들어가자 많은 사람이 몰려와 초천웅에게 인사를 건넸다.
“초 사장님!”
“초 사장님이 오셨네.”
“하하, 소소는 더 예뻐졌구나.”
사람들은 대부분 예의를 지키며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초천웅에게 인사를 하는 한편 초우를 살피고 있었다. 이 멋지게 생긴 청년이 누구인지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초천웅은 초우에게 사람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쪽은 우리 초가의 직계 자제이신 초우 도련님이라네.
이 사람은 고 사장. 맞네,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허허.
그리고 이 사람은 조 사장이고……, 이쪽은…….”
초천웅은 거리낌 없이 사람들에게 초우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때 60세는 되어 보이는 노인이 그들에게 다가오자, 초천웅은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노인은 조용하고 침착해보였지만 몸에서 풍겨오는 기운이 상당했다. 그는 초우를 보며 뭔가 응원하는 듯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초우야, 이쪽은 동(董) 장로님이시다. 우리 용성의 큰 어르신이지!”
초천웅은 초우에게 노인을 소개하고, 그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허허, 동 사장이라고 불러도 괜찮다네, 음? 동성주(董城主)? 그 아이가 어쨌다고? 오오, 젊은이들 사이의 그 정도 다툼이야 뭐 비일비재한 일 아닌가?”
동 장로는 초천웅에게 그의 제자 이야기를 하며, 초우와 동성주 사이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동 장로가 말한 제자 동성주는 일전에 초우와 사천우의 소란이 벌어진 그날, 사천우와 같이 식사를 하고 있던 일행 중 한 명이었다.
동 장로는 그의 제자와 초우 사이에 자그마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젊은이들의 일이니 자신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그의 속마음은 실제로 어떨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데 능숙한 능구렁이 같았다.
반면 젊은 나이라 아직 미숙한 초우는 그런 동 장로의 말에 적지 않게 동요하고 있었다.
곧이어 초천웅은 50세 정도로 보이는 사람을 초우에게 소개시켜줬다.
“이분은 육(陸) 장로님이시다.”
육 장로는 초우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자네의 이야기는 조카인 육풍(陸風)에게 전해 들었다네.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지?”
초우가 예의를 지키며 웃어보였다.
“과찬이십니다.”
초우는 이곳에서 동(董)씨 가문과 육(陸)씨 가문을 만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보아하니 저 은둔가문들은 용성에서 꽤나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듯했다.
그 뒤로도 초천웅은 초우를 계속 데리고 다니며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일일이 소개했다.
소개를 받은 사람들은 초우가 초가의 도련님이라는 것을 알고 모두 겉으로는 정중하게 대했다. 그러나 초우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는 무언가 다른 속내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초우에게 있었던 일은 거의 모든 은둔가문의 사람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초가의 그 천재소년인가? 여섯 살 나이에 이미 폐인이 되어버린……. 허허, 벌써 이리 컸단 말이야? 그때 초우가 보여줬던 천재성은 대단했지. 아쉽게도 그리 되어버렸지만…….”
“듣자하니 이번에 초가가 연경성에서……. 예, 그 일이 전부 초우와 관련이 있다지 뭡니까. 예……. 아, 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그저 싸움의 도화선으로 쓰였을 뿐이지, 직접적으로 손을 쓴 건 초가라지요.”
“그럼 그냥 연경성에서 도련님 취급이나 받고 있지, 뭐하러 이리 먼 용성까지 왔답니까?”
“놀러 온 거 아니겠어요? 사가의 눈에서도 벗어날 겸 해서.”
“사가에게서 도망치려면 고향으로 돌아가 엄마 품에 숨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청년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초우를 흘끗 보며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 몇 명은 진짜로 선을 넘는 이야기까지 서슴없이 주고받았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 있는 초천웅의 귀에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전부 똑똑히 들려왔다. 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초우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초우는 마치 그들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순간 초천웅은 현실을 깨닫고 쓰게 실소를 하고 말았다. 그의 조카는 수련을 하지 못하는 폐인의 몸이라는 걸 깜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초우는 이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다른 청년들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초천웅은 초우에 대해 자기들 마음대로 왈가왈부하며 모욕하는 젊은이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행동에 나선 사람이 있었다. 바로 초천웅의 딸 초소소였다.
초소소는 얼굴을 굳히더니 선을 넘는 발언을 하고 있는 청년들을 향해 걸어갔다. 초천웅이 그녀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이미 그들의 앞에 서 있었다.
“너희들, 꽤나 강한가봐?”
초소소는 키가 컸다. 게다가 오늘밤에는 파티 의상으로 긴 치마를 입고 수정으로 된 하이힐을 신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욱 커보였다.
게다가 그녀는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도 풍기고 있어서 상당히 강해보였으며, 방금 전까지의 말괄량이 같은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이런 상황에 익숙한 초소소는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초소소, 너 그게 무슨 뜻이야?”
젊은이 무리 중에서 19세 정도로 보이는 한 소년이 삐딱한 눈빛으로 초소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전 누구보다 신이 나서 초우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소년이었다.
“내 말 뜻은, 너희들의 그 입을 좀 조심하라는 거야. 괜한 말을 해서 가문에 먹칠하지 말고…… 좀 교양 있는 사람이 되라고.”
초소소의 말은 마치 가시처럼 청년들의 가슴에 박혔다. 그녀는 욕 한마디 덧붙이지 않고 에둘러서 말을 했을 뿐이지만, 그녀의 말을 들은 소년은 대번에 눈을 까뒤집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소가 장소인지라 목소리를 줄이며 말했다.
“내가 말한 것에 뭔가 문제라도 있어? 흥, 뭔가 켕기는 게 있으니 이런 장난에도 그렇게 예민하게 구는 거겠지.”
“켕기는 일?”
초소소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곧이어 초소소가 덧붙였다.
“너는 사가가 약하다고 생각해?”
누가 감히 은둔가문인 사 씨 가문을 보고 약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들이 연경성에서 초 씨 가문에게 패해서 도망을 가버린 것은 사실이지만, 화하(華夏) 아래에서 감히 그들을 약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말에 청년들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쯧쯧, 그러니 언제까지고 애라는 소리나 듣지. 어른 취급을 받고 싶으면 그 언행부터 어떻게 좀 해봐.”
초소소는 그렇게 말한 뒤 마치 백조처럼 우아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웃으며 자리를 떴다. 청년들은 입을 꾹 닫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머리끝까지 화가 나는지 작은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했다.
“젠장!”
“젠장은 무슨, 나 하나도 이기지 못하는 놈들이 말이야. 하하.”
벌써 멀찌감치 떨어진 초소소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 소란을 옆에서 전부 보고 있던 몇몇 사람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초천웅은 한숨을 내쉬며 초우를 바라보았다.
“우리 소소를 부탁하네. 저 아이는 나와 함께 가문에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아. 하지만 저 아이의 성격이 저래놔서, 혼자 두면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항상 걱정이야.”
“웅 숙부, 걱정 마세요. 제가 저 아이를 지키겠습니다.”
초우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이미 충혈경 8단에 다다른 초우는 물론 방금 청년들과 초소소가 벌인 소란을 다 듣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아이들 사이의 다툼이니 굳이 상관하지 않았다.
* * *
클럽 안의 가장 호화스러운 방에서, 호리호리한 몸에 잘생긴 얼굴의 청년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는 두 다리를 테이블 위에 걸친 경박한 자세로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방 안에는 또 다른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 역시 외모가 출중했다. 그러나 그는 마치 여자처럼 곱상한 외모였고, 어딘지 모르게 조금 음울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너희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그딴 폐인 놈한테 당하기나 하다니. 게다가 가문에 그렇게 먹칠이나 하고 말이지……. 큭큭. 연경성에서 너무 늘어진 거 아니냐?”
호리호리한 청년은 통화를 하는 상대방에게 조롱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
“듣자하니 그놈이 지금 내가 있는 곳에 있다던데. 하하, 너 지금 나한테 부탁하는 거냐? ……뭐, 좋아. 우리는 친구니까 이번만큼은 도와주지. 하지만 그 놈은 그런 폐인의 몸이니까 여우 신선 동굴에는 가지도 못할 거다. 네가 직접 와서 죽일 거냐? 그래, 난 못 본 척 해주지. 이번에도 실수하면 그만큼 창피한 일도 없을 거다…….”
청년은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음울한 분위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게 어색해 보이는 젊은이에게 물었다.
“영준(冷峻), 초가에서 온 사람은 세 명인 게 확실하겠지?”
음울해 보이는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오(吳) 공자님. 초천웅과 그의 딸 초소소, 그리고 그 폐인 놈까지 셋이 왔습니다.”
영준이라 불린 청년은 그렇게 대답하며 조그맣게 웃어보였다. 영준이 청년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오 공자님, 들어보세요. 초천웅의 딸은 올해 열여섯인가 열일곱이라고 하던데, 벌써부터 미모가 엄청납니…….”
오 공자님이라고 불린 청년이 손을 휘저으며 영준의 말을 가로막았다.
“너는 하루 종일 그 소리뿐이구나.”
그러자 영준이 조금 당황스러워하며 말했다.
“네, 오 공자님이 알려주신 것은…….”
“내가 뭘 알려줬다는 거야? 사람이 연이 있으면 만나게 되는 거지. 내가 너한테 딱 두 가지만 말해주마.”
청년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세상에 나와 있는 가문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은둔가문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야. 너희 영(冷) 씨 가문처럼 용성 내에서 간신히 대가문이라 불리는 가문도, 그런 은둔가문들에게는 아주 쉽게 짓밟힐 수 있다는 말이야. 그러니 은둔가문 출신이라면, 그 초우라는 놈처럼 아무리 폐인이라 해도 너 같은 놈들이 건드리면 안 된다는 뜻이지. 이건 너한테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충고야.”
영준은 청년의 말에 감격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 공자님이 말씀하시는 건 뭐든 저에게 교훈이 됩니다!”
“응, 그래, 가자. 가서 그 초가의 아가씨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서로 마음이 통하면 그대로 시녀로 만들어도 좋고…….”
호리호리한 청년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