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용성 (2)

21화. 용성 (2)

초천웅은 초우의 이름을 듣자마자 눈썹을 찌푸렸다.

“이런 회의에…… 초우를 참석시켜주지는 않을 것 같구나.”

“안 될 것도 없지요. 초우 오빠가 수련을 못하긴 해도 여전히 우리 초가의 자제이고, 앞으로 용성의 초가 그룹을 맡으면 이런 회의에도 참석해야 하는 거니까요. 나중에 아버지가 자리에서 물러나고 오빠가 혼자 이런 일을 하려면 더 힘들지 않겠어요?”

초소소는 어려서부터 초우와 함께 노는 것을 좋아해서 그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그래서 이번에 초우가 용성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고, 그와 만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초천웅은 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그렇다면…… 좋다. 초우를 데려가서 용성의 사람들에게 소개시켜주는 것도 좋겠지.”

“잘 생각하셨어요. 그럼 저도 따라가도 되죠?”

초소소가 기뻐하며 말했다. 그러자 초천웅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무나. 그래도 말썽부리지 말고 조심히 다녀야 한다.”

초소소는 나이도 어린데다 아직 실력이 대단하진 않았지만, 세상에 무서워하는 게 없었다. 아버지 앞에서는 얌전한 척 하고 있지만 밖에서는 말괄량이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이윽고 초소소가 아버지에게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아빠. 이렇게 착하고 귀여운 딸인데 별 일 있겠어요?”

초천웅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곧 그 사람들이 도착하겠구나. 가자, 이 아비랑 같이 마중을 나가보자꾸나.”

“네!”

초소소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 * *

용성의 밖.

초천웅 일행이 용성 입구에 도착한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고속도로 멀리에서 차 한 대가 그들을 향해 날아오듯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빠, 저거 보세요. 저 차 엄청 빠르네요. 제가 모는 것보다 훨씬…….”

놀란 얼굴로 재잘거리던 초소소는 아버지가 눈치를 주자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

“저 차에 초우 오빠가 타고 있는 걸까요?”

“그럴 리가. 초우가 너처럼 그렇게 천방지축 함부로 움직이는 아이더냐?”

초천웅이 그의 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내가 이곳에 없더라도 초우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그리고 제발 그 양아치 놈들과 어울리는 것도 좀 자제를…….”

“네에~ 네에~, 알겠습니다, 아버지.”

초소소는 자기 입을 막는 시늉을 하면서도 눈으론 질주하고 있는 차를 쫒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는 활짝 웃으며 그 차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하하, 역시 오빠 차 맞잖아요. 네? 제 말이 맞죠, 아빠? 운전하는 건 오빠가 아닌 것 같은데, 엄청난 미녀예요! 오빠가 여자친구를 데리고 온 걸까요?”

초소소보다 훨씬 높은 단계인 초천웅은 이미 딸보다 그 광경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알기로, 그의 조카는 단 한 명의 여자하고만 용성을 오가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 같이 온 여자는 전에 같이 왔던 그 아이가 아니었다. 설마…… 정말로 그 사이에 여자 친구라도 생긴 것인가?

차는 금세 초천웅 일행의 앞에 멈춰 섰다. 곧이어 초우가 보조석에서 내렸지만, 차를 몰고 온 소월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초우는 그녀의 성격을 알기에 그냥 내버려두었고, 뺀질이는 잠이라도 자고 있는지 소월과 같이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초소소는 초우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그의 품에 안기며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하하, 오빠는 더 멋있어졌네!”

그녀의 몸에서 향기로운 바람이 일었다. 초우는 자신에게 안겨드는 초소소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이 녀석, 벌써 숙녀 티가 나는구나? 한 뼘은 더 자란 것 같은데?

“그렇다니까!”

초소소가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지었다.

“키만 컸지, 아직은 어린애네.”

초우가 농담을 했다. 초천웅은 한편에 서서 이들 남매가 즐겁게 떠드는 모습을 미소 지으며 지켜보았다.

“됐거든요? 그런데 오빠 차를 몰고 온 저 미녀 분은 누구신가 궁금하네?”

초소소가 초우의 품에서 벗어나 운전석 쪽으로 넘어가 창문을 살짝 두드렸다.

“헤이, 거기 미녀님? 그렇게 무서운 표정만 짓고 있지 말고 서로 자기소개나 할까요? 운전 실력이 어마어마하던데, 저한테도 보여주실래요?”

소월이 창문을 내리고 초소소를 쓱 훑어보았다.

“당신이 저 사람의 여동생인가요?”

초소소가 말했다.

“어째 새삼 그렇게 들으니 쑥스럽네요?”

소월의 무표정한 얼굴에 갑자기 자그마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모습은 굉장히 아름다웠다. 초소소는 그녀의 미소를 보고 갑자기 몸이 굳어진 듯했다.

“타세요. 드라이브 한 바퀴 하면서 인사나 주고받죠.”

소월이 초소소에게 뜻밖의 말을 했다.

“드라이브? 좋아요, 좋아!”

초소소는 두말없이 차에 올라탔다. 그녀가 올라타는 순간 소월은 있는 힘껏 엑셀을 밟았고, 차는 낮은 포효소리를 내며 쏜살같이 앞으로 내달렸다. 멀어져가는 차에서 초소소가 흥분하며 내지른 소리가 초우의 귀에 어렴풋이 들려왔다.

잠시 후, 차 창문을 통해 빠져나온 뺀질이가 초우에게 돌아와서는 조잘거렸다.

“미친, 쟤 돌았나봐. 그렇게 있는 힘껏 밟으면서 오더니 아직도 모자랐나? 이 몸은 막 잠이 들 참이었는데!”

초우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느린 건 지루해서 싫다고 하더니?”

“자극을 즐기는 것도 때와 장소를 따져야 되는 법이지!”

뺀질이는 초우의 비아냥거림이 불쾌한 듯 말했다.

한편 초천웅은 딸이 납치당하듯 차를 타고 떠나버리고, 그 차에서 내린 참새가 초우와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초천웅도 그 새에 대해서는 이미 가문을 통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그 새가 초가에서 키우던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초우가 초천웅에게 웃어보였다.

“웅 숙부, 잘 지내셨습니까?”

초천웅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저 아가씨는 누구신가?”

초우가 웃으며 말했다.

“그냥 데려온 아이입니다. 저 아이가 어떤 사람인지는 아직 대화를 많이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듣자하니 저 아이의 뒤에 누군가 대단한 사람이 있는 모양이에요.”

“…….”

초천웅은 그의 말에 다시금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그때 초천강과 초천승, 그리고 초우의 경호원 두 명이 탄 차가 드디어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네 사람은 초천웅에게 예를 표했다.

초우는 초천웅이 몰고 온 차를 타고 용성 안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차에서 다시금 인사를 나누었고, 초우는 초천웅에게 용성에 대한 이모저모를 들었다.

초천웅은 먼저 용성에 있는 많은 가문과 세력에 대해 설명했고, 차가 시내에 도착할 즈음에야 간신히 여우 신선 동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영 씨 가문은 원래 은둔가문이 아니다. 다만 그들 뒤에 어떤 은둔가문의 지지가 있었고, 그 덕분에 빠른 속도로 입지를 다지고 발전하기 시작했어. 용성 내에서는 우리 초 씨 가문보다 그들의 영향력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지.”

초천웅은 비교적 건실한 타입으로, 용성에서 지내온 세월 동안 그도 많은 것을 보고 익혔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많은 정보를 알아내고, 그 정보를 분석하는 능력이었다. 덕분에 초천웅은 정보 수집과 분석에 일가견이 있었다.

“내가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영 씨 가문의 배후 세력이 사 씨 가문이라는 말이 있어.”

초천웅이 초우를 보며 말했다.

“사실은 그 때문에 이번 일을 거절하려고 했다. 음모가 있을 가능성이 너무 커. 하지만 내조경에 버금가는 공법을 가지고 여우 신선 동굴에서 살아 돌아온 그자가 영 씨 가문에게 붙잡혔다는 소문만큼은 사실인 것 같더구나.”

“영 씨 가문의 배후세력이 사 씨 가문이라면…… 그 사 씨 가문 말씀이시죠?”

초우가 물었다.

“그래, 우리 가문에게 밀려 연경성을 떠난 그 사 씨 가문 말이다.”

초천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초우가 초천웅을 보며 물었다.

“웅 숙부는 그들이 이번 탐색을 우리 초가에게 제안해온 걸 어떻게 보십니까?”

“시간상으로 따지자면 이번 제안은…… 우리 가문을 겨냥하고 만든 덫으로 보이기도 한다만. 초우 네가 용성에 온다는 것은 우리 가문의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니까…….”

초천웅이 초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내 초우가 웃으며 덧붙였다.

“그러니 그런 유적이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해도 제가 직접 그곳에 갈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 적어도 저를 노린 함정은 아니라는 뜻이 되겠군요.”

초천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문 밖 사람들의 눈에 초우는 여전히 수련도 못하는 폐물의 몸이었으니, 그런 사람이 위험한 곳에 직접 뛰어들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말하자면 여우 신선 동굴에 대한 소문이 덫이라면, 그것은 우리 초가만을 겨냥해 만든 덫은 아닐 거라는 말씀이시죠?”

초우가 물었다.

“그래,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렇다 해도 덫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초천웅의 말에 초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 소문이 퍼져 나왔다는 것부터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그 말대로다.”

초천웅은 초우가 자신의 생각을 파악한 게 기쁜 듯 웃으며 말했다.

사실 초천웅은 초우가 자신을 이어 용성을 장악하고 기업을 꾸려나갈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초우와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의 짐을 어느 정도 덜어낼 수 있었다. 그의 조카는 비록 수련을 못하는 범인(凡人)이었지만, 그 외의 능력은 예상보다 훨씬 출중했다.

* * *

초우 일행은 초천웅이 그를 위해 준비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상당히 수려한 경관의 별장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었다. 초천웅은 초우를 위해 세 채의 별장을 준비해두었는데, 한 채에서만 열 명 이상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초우는 그 별장들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초천웅은 앞으로 곁에 두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냐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웅 숙부가 이렇게 저를 생각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초우가 성의껏 예를 표했다.

“가족끼리 그렇게 체면 차릴 것 없다.”

초천웅은 온화하게 웃음을 지으며 초우를 데리고 별장의 안쪽 뜰로 향했다.

“건물 안쪽도 최대한 보수해두었어. 물론 불편한 점이 있다면 네가 따로 고쳐서 써도 좋고.”

초우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충분합니다. 차고 넘칠 정도로 받았습니다.”

별장에 있는 물건들은 화려하거나 사치스럽지 않았지만, 초우는 그것들이 장인이 만든 섬세한 물건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소월과 초소소는 한 시간 정도가 지난 후에야 돌아왔다. 두 미녀가 같이 서 있자 갑자기 뒤에서 광채가 흘러나오는 듯 했다. 별채가 세 채나 있는 것을 확인한 소월은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길 원했다. 그녀는 혼자 살고 싶어 했고, 초우 자신도 조용한 것을 원했기에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사실 초우는 소월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거나 하는 이유로 그녀를 사천우에게서 데려온 게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다만 그녀가 정말로 자신을 따라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남들의 눈에는 납치라도 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천우의 지인을 데려온 것뿐이니 초우가 딱히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다.

소월은 자신이 지낼 별장을 서둘러 살펴볼 마음이 없었다. 이내 그녀는 잔뜩 신이 나 있는 초소소에게 이끌려 초우 쪽으로 다가갔다. 초소소는 금세 소월과 친해진 듯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었고, 거실에 들어온 뒤에도 놓지 않았다.

소월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쪽으로. 제가 차라도 한잔 대접하죠.”

“좋아요! 저 차 마시는 거 좋아해요!”

초소소가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말했다. 초천웅은 그런 자신의 딸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언제부터 차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는 거냐?’

초우도 그런 둘을 보면서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여자들의 우정이란, 남자인 그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비록 소월이 자기 발로 초우를 따라나서기는 했지만, 둘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다. 초우는 그녀에게 자신의 시녀가 되라고 말했지만, 소월은 그저 하루 종일 만화만 들여다봤다. 심지어 초우는 그녀가 다도를 할 줄 안다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