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임설몽

7화. 임설몽

산동에서 연경으로 향하는 고속열차 안.

세상이 신기원에 들어선 후, 일부 첨단기술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맹렬한 기세로 발전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고속열차만 해도 과거에는 최대 시속 300킬로미터 정도의 속력을 낼 수 있었지만, 신기원이 시작될 무렵에는 시속 500킬로미터, 오늘날에는 무려 시속 1,000킬로미터에 달하는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이는 산동에서 연경까지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속도였다.

물론 충혈경 5단의 고수가 전력으로 질주하면 이 정도의 속도를 낼 수 있긴 했다. 그러나 이런 속도를 오래 유지하는 건 힘들었다. 그랬다가는 체온이 극심하게 상승해서 몸에 큰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첨단기술의 산물들은 여전히 이 세상에 널리 퍼져 있었다.

열차의 고급스러운 좌석에 몸을 푹 기대고 있는 초우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그러나 그의 속마음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어지럽게 들끓고 있었다.

멋대로 보표들을 따돌리고 태산에 올라갔던 이번 행동은 뜻밖에도 나쁜 결과와 좋은 결과를 모두 가져왔다.

처음에는 살수들이 나타나 꼼짝없이 죽는가보다 싶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16년 동안이나 자신을 괴롭혀온 문제가 너무 손쉽게 해결되지 않았는가.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태산에 갈 걸. 왜 그 고생을 했던 거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 16년 덕분에 사람이 되는 법, 사람을 상대하는 법, 세상일에 대처하는 법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이는 분명 큰 수확이었다.

만약 순풍에 돛 단 것처럼 일생이 평온하기만 하다면 어떻게 이런 경험을 얻을 수 있겠는가.

다만, 이번 출행의 유일한 흠은 바로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이었다. 둘 모두 죽어 마땅한 자였지만, 초우는 아직까지 살인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하긴, 세상일이란 게 어디 내 마음대로만 되나.’

초우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엿보고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한 척, 담담한 표정으로 정면만 응시했다.

사실 초우는 열차에 오르자마자 자신을 보는 시선을 느꼈다. 그러나 타초경사(打草驚蛇)하지 않기 위해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천우, 내가 죽지 않은 걸 알고 엄청 실망했겠지? 대체 누가 날 구한 건지 궁금해 하고 있을 테고 말이야.’

속으로 냉소하던 초우는 봉인이 깨진 후 자신의 몸에 생긴 여러 변화를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외부의 다른 사람들이야 알아차리기 힘들 테지만, 초우 스스로는 이 엄청난 변화를 너무나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그의 몸속에는 언제라도 폭발시킬 수 있을 듯한 가공할 힘이 잠재돼 있었다.

초우는 연경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내내 자신의 힘을 느끼고, 거기에 익숙해지는 것에만 온 정신을 집중한 채 다른 것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감시하는 자 역시 초우가 자신의 존재를 눈치 챘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젠장, 저딴 한심한 놈이 어떻게 살수들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거지? 대체 누가 구한 거야? 괜히 나까지 이게 무슨 고생이냐고!’

* * *

그러는 사이 열차는 어느새 연경역으로 진입해 서서히 멈춰섰다. 줄곧 눈을 감은 채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던 초우도 눈을 떴다.

‘연경아, 내가 돌아왔다!’

그동안 여러 일이 있었지만, 실제로 초우가 연경을 떠난 건 겨우 사흘 전이었다.

고작 사흘 만에 돌아온 연경을 보며 엄청난 감동이 밀려온 것은 당연히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 때문이었다.

원래 초우는 자신의 이번 생은 고인 물과 같은 지루한 인생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저 집안의 지시에 따라 용성에 있는 가문의 기업에서 실습사원 신분으로 일을 시작하고, 나중에는 회사를 이끌고 수익을 내면서 집안을 위해 제몫을 다할 수 있게 노력하는 삶 말이다.

그와 동시에 혼인해서 자식을 얻고, 그 뒤에는 혼인해서 자식을 얻고, 그 다음에는 혼인해서 자식을 얻어야 했다.

잘못 말한 게 아니다. 초우는 많은 아내를 얻은 다음, 그녀들로부터 많은 자식을 얻어야 했다. 이는 가문이라는 나무의 가지와 잎을 무성하게 만들어 힘을 보태는 중요한 임무였다.

아무튼 이런 삶은 언뜻 그럴듯하게 보일지도 몰랐다. 대저택에 살면서 멋진 차를 타고 미녀에 둘러싸여 부와 권력을 누리는 것. 이는 분명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삶일 것이다.

하지만 초우에게 있어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삶이었다.

물론 초우도 그런 세속의 삶에서 완전히 초탈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이 그저 수련이 불가능한 폐물이라서, 회사일 밖에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맡게 됐다는 건 그로선 엄청난 수치였다.

사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멸시 속에서 살면서도, 초우는 한 번도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진짜 천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건 결코 그가 주제도 모르고 자만해서가 아니었다. 화하 전체를 뒤져봐도 초우의 나이에 240개 혈을 타통해 충혈경 8단에 들어선 자, 그것도 경맥이 봉인된 상태에서 다른 자원의 도움도 전혀 받지 않고 그런 성취를 이룬 자는 드물고도 드물었다. 적어도 초우는 그런 사람이 자신 외에 또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를테면 천교방의 1위 자리에 올라 있는 인물도 초우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충혈경 8단 절정의 경지에 올랐을 뿐이었다.

더구나 그 자는 워낙 대단한 가문을 배경으로 두고 있었다. 그래서 외부인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풍부한 자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으며, 그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공법(功法) 역시 소규모 가문들이 가진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세상에 나오기를 꺼려하고 있는 옛 문파와 가문에는, 어쩌면 초우보다 더 뛰어난 후기지수(後起之秀, 후배 중 뛰어난 인물을 이르는 말)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들도 당연히 자신들의 집안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지 않았겠는가.

반면 초우는 쓸모없는 아이라고 낙인찍힌 이후로는 수련과 관련해서 가문으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지금과 같은 경지를 이룬 것이니, 이런 자가 천재가 아니라면 누가 천재겠는가.

어쨌든 이번 생이 지루하고 덧없이 흘러갈 거라는 생각에, 운명에 순응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멋대로 행동해보려고 떠난 길에서 그는 상상치도 못했던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내내 파도치던 초우의 마음은 열차에서 내려 승강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마침내 평온을 되찾는가 싶었다. 그러나 초우는 곧바로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열차의 문 앞에 서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초우와 겨우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손으로 빚은 듯 정교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여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여자의 미모에 놀라는 한편, 그녀가 어떻게 이 승강장까지 들어와 있는 건지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열차를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누군가를 마중하기 위해 승강장 안으로 들어오는 건 금지돼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정도의 미녀가 자신들과 같은 열차에 타고 있었다면 진즉에 일대 소동이 벌어졌을 것이므로, 그녀가 열차의 승객이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그러나 곧, 사람들 중 누군가가 여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저기 봐, 임설몽이야!”

“말도 안 돼. 임설몽이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세상에…… 진짜 임설몽이네? 나의 여신님! 아,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나의 여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임설몽은 내 여신님이라고!”

“허! 야, 너 거울은 보냐? 창피하지도 않아?”

“그래도 너보단 낫지! 왜, 인정 못 하겠으면 한판 떠?”

승강장 안은 임설몽을 알아본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로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임설몽은 키가 상당히 큰 편이었고, 거기다 굽 높은 구두까지 신으니 180센티미터를 넘었다. 거기에 빼어난 미모, 그리고 상대를 압도하는 기세까지 더해지니 보석처럼 반짝였다. 그녀를 제외한 주위의 모든 것이 색이 바래져버리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초우도 신장이 180센티미터가 넘었지만, 그녀 앞에서는 실제 키보다 훨씬 작아 보였다.

한편 열차에서 계속 초우를 감시하던 인물은 고개를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초우 곁을 지나쳐갔다. 그는 멀리까지 걸어간 뒤에야 몰래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임설몽이 자신 쪽을 바라보며 냉소하자, 그는 흠칫 놀라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자리를 떠났다.

초우는 임설몽의 냉랭한 표정을 보고 약간 실망했지만, 곧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설아(雪兒)야, 어쩐 일이야? 설마 날 데리러 여기까지 온 거야? 역시 우리 설아가 최고라니까.”

“그래? 여기서 날 봤는데 기쁘다고?”

“당연하지!”

초우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도 임설몽은 싸늘하게 대꾸했다.

“웃기고 있네. 나한테 잡혔다는 생각에 속으론 철렁했을 거면서. 너, 내가 여기 안 나타났으면 앞으로 다시는 날 안 만날 생각이었잖아. 아마도 나는 신문을 통해서나 네 소식을 알 수 있었겠지. 안 그래, 초 회장님?”

임설몽은 눈 주위가 붉게 보일 정도로 초우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눈치 한번 빠르네.’

초우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지만 애써 담담한 척 대답했다.

“회장이라니. 난 용성에 가도 그냥 평범한 직원으로 일할 거야. 자, 너무 뭐라고 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화하자. 응?”

초우는 자연스럽게 임설몽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임설몽은 몸이 약간 굳어진 채 동그래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딱히 손을 빼내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초우는 그렇게 임설몽의 손을 잡고 역 밖을 향해 걸었다.

“가자. 여기서 괜히 사람들 지나다니는데 방해되지 말…….”

초우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주위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이고! 야, 내 심장 박살 난 소리 들었냐? 내 여신님을 겨우 저딴 놈이 채 가다니 말도 안 돼!”

“너 눈 삔 거 아니냐? 겨우 저딴 놈이라니. 쟤 옷, 수제 맞춤옷이잖아. 거기다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는 파텍 필립이라고. 그것도 한정판! 에휴, 관두자, 관둬. 너 같은 놈하고 무슨 대화가 되겠냐. 말해봤자 저게 얼마나 비싼 건지도 모를 텐데. 어쨌든…… 내 여신님이 딴 남자한테 끌려가는 건, 나도 진짜 못 참겠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젠장, 그래서 저 남자가 대체 누구란 건데? 누군데 감히 여신님 손을 함부로 잡는 거냐고. 거기다 여신님도 아무 저항 안 하시잖아!”

이 시대의 소셜 미디어는 오히려 예전보다도 더 발전해 있었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온라인에는 천교방 10위 안에 들어 있는 바로 그 임설몽이 연애 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불처럼 퍼졌다.

* * *

호화로운 승용차 안에서, 임설몽은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손가락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초우는 약간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임설몽의 섬세한 옆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말을 해야 되는데?”

“글쎄…… 뭐 아무 거나. 예를 들면 오늘 날씨가 참 좋다든가, 스모그도 없이 쾌청하다든가…….”

초우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임설몽은 고개도 들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스모그는 신기원 전에나 있었던 현상이잖아.”

“우리 설아는 진짜 똑똑하다니까!”

초우는 일부러 과할 만큼 칭찬을 퍼부었다.

“그럼 앞으로는 할머니라고 안 부를 거야?”

“절대.”

사실 방금 전 임설몽의 손을 잡고 걸은 순간, 초우도 속으로는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바짝 긴장했다. 임설몽이 자신의 손을 뿌리칠까봐 무서웠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임설몽은 초우의 체면을 생각해서인지, 사람들 앞에서 별달리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초우가 이렇게 겁을 내는 것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예전에 천교방에도 이름이 오를 만큼 뛰어난 기재였던 한 청년이 어느 연회에서 술기운을 빌려 임설몽의 손을 잡았다가, 하마터면 그대로 죽을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임설몽은 이미 보유하고 있던 수많은 별명에 ‘얼음 여신’이라는 별명을 새로 추가하게 되었다.

그래서 초우 역시, 임설몽의 손을 잡고 함께 거리를 걷고 싶다는 소망을 줄곧 가슴 깊숙한 곳에만 묻어두고 있었다. 수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못난이가 재색을 겸비한 그 대단한 임설몽에게 어떻게 감히 가까이 갈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