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쳐라!

12화. 쳐라!

‘미친……. 그딴 등신을 왜 그렇게 싸고 도는 거야?’

사천우는 속으로 욕을 뱉었다. 동시에 그의 가슴속에는 후회와 걱정이 생겨났다. 초우를 죽이는데 실패했으니, 십중팔구 살인 배후에 자신이 있다는 사실이 초우에게 알려졌을 것이다.

즉, 이번 일은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한편 사람들은 사천우가 통화 내용에 대해 언급하기 싫어한다는 걸 눈치 채고, 화제를 돌리며 다시 술잔을 부딪쳤다. 술잔이 몇 바퀴 돌자 술자리의 열기도 서서히 회복되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앙!

특별실의 문이 누군가에 의해 벌컥 열렸다. 이내 문이 벽에 부딪히며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술을 마시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들 모두 상당한 고수인데도 침입자의 접근을 전혀 눈치 못 챘다는 건, 상대가 그만큼 강자라는 의미였다.

“대체 누구냐? 넌 여기 규칙도 모르는 거냐? 회원제 클럽 특별실에 이런 식으로 난입하다니!”

눈가가 거뭇한 잘생긴 청년이 침입자 초우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러면서도 청년은 욕을 뱉지는 않았다. 그건 그가 결코 고상한 자라서가 아니었고, 단지 안목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침입자의 옷차림이나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세 등을 봤을 때, 그가 자신들 무리의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인물이 틀림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침입자의 어깨에 앉아 있는 참새는 아무래도 좀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다.

침입자를 본 순간 사천우는 꼭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입가에도 경련이 일었다.

‘뭐야, 저 놈이 어떻게 여길……!’

사천우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초우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의 옆에 있던 이십대 후반쯤의 다른 청년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친구, 아마도 방을 잘못 찾았나보군?”

그러자 초우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방은 맞게 찾았다. 하지만 내가 볼일이 있는 상대는 네가 아니야.”

그때, 사천우와 합석해 있던 어느 젊은 여자가 초우의 어깨에 앉아 있는 참새를 가리키며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 저 참새 좀 봐. 애완동물로 참새를 키우는 건 진짜 처음 본다. 깔깔깔! 그것도 뭐 저렇게 못생긴 새를 데리고 다니는 거야? 저기, 잘생긴 오빠? 오빠 진짜 개성 넘친다!”

“야, 이 멍청한 계집애야, 못생긴 건 너지! 그 호박 같은 얼굴을 보니, 너희 엄마 아빠도 어떻게 생겼을지 뻔하다! 이 지렁이만도 못하게 생긴 게. 가서 거울이나 다시 봐!”

초우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어깨 위의 참새가 속사포로 욕을 쏘아붙였다. 방금 전의 예쁘장한 여자는 독한 욕지거리를 듣고 넋을 잃었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순간 웃음이 터지려는 걸 억지로 참았지만, 한편으로는 호기심도 일었다. 대체 무슨 새가 저렇게 걸출한 입담을 가졌다는 말인가?

그러나 사람들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친 순간,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말을 할 수 있는 참새라면 수련을 통해 제법 높은 경지를 이룬 게 분명했고, 저렇게까지 말을 잘한다는 건 영성(靈性)이 상당히 높다는 의미였다.

참새에게 욕을 들은 여자는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러곤 두 뺨이 새빨개진 채 살벌하게 으르렁거렸다.

“죽고 싶어?”

여자의 위협에, 참새는 아까 전 자신의 굴욕적인 모습이 떠올라 새삼 화가 치밀어 올랐다. 참새는 그때의 분통한 심정을 드디어 해소할 수 있겠다 싶었는지, 여전히 초우의 어깨에 쪼그리고 앉은 채로 날건달처럼 비웃음을 날렸다.

“침상에서 죽여주려고? 새랑 그러는 취미가 있는 줄 몰랐네?”

“풉!”

눈가가 어두운 청년은 자기 취향의 농담에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모두 묘하게 일그러졌다. 심지어 도도한 소월조차도 입가에 살짝 경련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참새에게 불의의 공격을 당한 여자는 분노로 하마터면 기혈까지 뒤틀릴 뻔했다. 간신히 진정한 후 참새를 노려보는 그녀의 전신에서는 금방이라도 살초(殺招)가 펼쳐질 것처럼 거대한 힘의 파동이 퍼져 나왔다.

한편 사천우는 초우를 본 순간, 그가 당연히 자신을 찾아온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때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하는 것뿐이었다.

사천우는 분노를 폭발시키려는 여자를 다독이며 담담하게 일어서더니, 초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초우, 여긴 왜 온 거지?”

질문을 던지면서도 사천우는 초우가 혼자 여기까지 쳐들어온 걸 보고 의아해졌다. 대체 어디에서 나온 자신감으로 저러는가 싶었다.

‘설마, 저 놈이 그동안 실력을 감추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불길한 생각이 사천우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초우에게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뺀질아, 쳐라!”

난데없이 초우가 그 못생긴 참새한테 공격을 명령한 것이다.

그의 말에 사천우의 일행들은 다들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늘 냉랭하던 소월의 얼굴에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특이한 새라고는 해도, 저 작은 참새 한 마리가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죽일까?”

초우의 어깨에 앉은 채 거드름을 피우며 묻는 참새의 태도에, 사천우의 낯빛이 분노로 새파랗게 변했다. 그도 나름대로 천교방 20위 안에 드는 인물인데, 저런 못생긴 참새 따위에게 조롱을 받고 어찌 담담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초우는 사천우를 흘긋 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됐어, 그냥 혼내주기만 하면 돼.”

사천우는 한층 더 무섭게 어두워진 얼굴로 초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죽고 싶나?”

“죽는 건 너지, 멍청아!”

사천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뺀질이라고 불린 참새가 욕을 퍼붓더니 바로 출수(出手)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출익(出翼)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녀석은 푸드덕 날아가서 날개를 들어 올리더니, 사천우의 뺨을 힘껏 후려쳤다.

* * *

웅!

온 방안에 갑자기 맹렬한 폭풍이 불어 닥친 듯했다.

튼튼해 보이는 나무 테이블은 금세 박살났고, 그 위에 있던 쟁반도 순식간에 먼지로 변해버리면서 잔에 들어 있던 음료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당황해서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서둘러 일어났다.

한편, 사천우는 마치 빠르게 움직이는 기차에라도 치인 듯, 휙 하고 날아가서 벽에 처박혔다.

콰광!

소리와 함께 벽에 사람 모양의 구멍이 나면서, 사천우는 그걸 통해 옆방까지 날아가 버렸다. 옆방에 사람이 없으니 망정이지, 만약 누군가 있었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방 안이 정적에 휩싸이더니, 곧 모든 사람의 시선이 초우에게로 향했다. 정확히는 초우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참새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표정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바뀌어갔다.

‘저게 정말로, 우리가 알던 그 참새란 말이야?’

방금 참새는 그들을 공격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공격에서 발생한 바람에 휩쓸린 것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저 참새의 실력이 자신들은 절대 당해내지 못할 정도의 수준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런 공격을 정면에서 받은 사천우는…… 도대체 어떻게 됐을 것인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바로 죽지는 않았으리라. 사실 초우조차 뺀질이의 그 한방이 너무 과했다는 생각을 하며 입을 씰룩거릴 정도였다. 물론 방금 초우가 마음속으로 떠올린 말을 뺀질이가 들었다면, ‘나를 친 네놈 손이 훨씬 매웠다’며 오히려 어이없어 할 테지만 말이다.

곧 클럽에 있던 모든 사람이 놀라서 사천우 일행이 있는 방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사천우는 날아간 옆방에서 움직일 기미를 안 보이고 있었고, 눈 밑 그늘이 짙은 청년, 스물여덟이나 스물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청년 등 방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멍청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눈 밑이 거뭇한 청년이 돌연 크게 숨을 들이마시곤, 두려움에 떨며 초우에게 외쳤다.

“너 이게 무슨 짓이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하잖아!”

반면 스물여덟 살쯤으로 보이는 청년은 차가운 눈으로 초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적의가 가득했다.

그때, 바깥에서 적잖은 인원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상황을 살펴본 그들 역시 할 말을 잃었다.

이 클럽의 사장은 40세 정도 된 중년이었는데, 호리호리한 몸에 얼굴에는 멋들어진 팔자수염이 있는 우아한 외모의 남자였다. 그는 방으로 들어와서 초우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 친구, 조금 심한 거 아닌가?”

초우가 그를 보며 되물었다.

“누구십니까?”

“이곳의 사장이지.”

사장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사실 연경성에서 알 만한 사람은 전부 다 알 정도로 상당한 세력과 힘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 자신도 상당한 실력자였고, 무엇보다 성격이 아주 불같았다.

그러나 그는 눈썰미가 좋고 영리한 사람인데다, 많은 경험을 통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 청년은 그 사천우와 감히 정면에서 대적했고. 게다가 저렇게 심한 상처까지 입혔다. 보통사람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 이거 죄송합니다. 여기 부서진 물건들 전부…….”

초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중년 사장은 초우의 말이 끝나기 전, 이 멀끔하게 생긴 청년이 그래도 예의는 갖추고 있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 덕분에 마음속에 치밀었던 화가 조금은 진정되고 있었다. 그러나…….

“전부 사천우 앞으로 달아놓으세요.”

초우의 말에 방 안은 또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그곳의 모든 사람은 초우의 말을 잠시 이해하지 못한 채,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장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마터면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을 뻔했기 때문이다.

‘네가 진정 사람이냐? 사람을 저렇게 반죽음으로 만들어놓고, 그것도 모자라서 모든 뒤처리를 전부 그에게 맡겨?’

“어디서 온 친구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이곳에서는 처음 보는 얼굴인 것 같은데.”

깊게 심호흡을 하며 간신히 화를 억누른 사장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호구조사라도 하십니까? 뭐 하러 그리 귀찮게.”

초우가 사장을 보고 말했다. 이어 차가운 목소리로 쓰러져 있는 사천우를 향해 덧붙였다.

“사천우, 당장 나와서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소란의 손해 배상은 전부 네가 하겠다고 사장님께 말씀드려. 거기서 죽은 척 하지 말고. 계속 그러고 있으면 뺀질이한테 네놈 입에 똥이라도 싸갈겨버리라고 한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 광경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초우의 말을 들은 뺀질이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뭐라고 하는 거야? 저놈 얼굴은 지금 곤죽이 돼서 아주 난장판이라고. 그런데 저 위에 똥을 싸라고? 더러워서 쳐다보기도 싫은데?”

“…….”

주위 사람들은 이제 어이가 없는 나머지, 기절이라도 할 것만 같았다. 이 참새는 진정 엄청난 요물이었다. 그것도 입에 걸레를 문. 평소 감정을 잘 내비치지 않는 소월도 이때만큼은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이 참새는 참으로 저질이라고.

바로 그때, 벽에 처박혀 있던 사천우가 뛰쳐나왔다. 그는 싸늘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초우……! 아직 안 끝났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사천우의 얼굴 반쪽은 마치 만두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고, 눈 주위가 움푹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원래 눈이 있던 그곳에서는 피가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그의 나머지 얼굴 반쪽 역시 빨갛게 부풀어 올라 있었지만, 하나 남은 그의 반대쪽 눈에서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차가운 안광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초우가 그런 사천우를 보며 담담히 말했다.

“쳐라.”

“잠깐…….”

사장이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이미 한발 늦어버렸다. 이윽고 방 안의 사람들은 다시 몰아친 바람에 휩쓸려서 뒷걸음질을 쳤다. 그들의 얼굴은 긴장으로 창백해져있었다. 그중 몇몇 사람은 그 바람에 맞서 버티고 있을 수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에도 난색이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