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는 법
택시에서 내린 초우는 곧장 오른쪽에 보이는 산으로 향했다. 길과 산 사이에는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일렁이는 논이 펼쳐져 있었다.
초우는 논 사이의 좁은 길 위를 매우 평온한 얼굴로 걸어갔다.
한편 택시를 뒤쫓던 검은색 승합차에는 운전자까지 합쳐서 모두 다섯 명이 타고 있었다. 그중 중년의 운전자가 멀리서 논길을 걷고 있는 초우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 놈이 우리를 일부러 여기로 유인한 것 같은데.”
“자기 묫자리를 여기로 고른 건가?”
누군가가 냉소했지만, 또 다른 사람은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확실히 이상하긴 해. 생각해봐. 기껏 연경에 돌아와 놓고 왜 자기 집으로 가지 않는 거지? 거기다 왜 보표한테 연락도 안 한 채로 이런 외진 데까지 왔겠냐고.”
이 말을 한 사람은 서른 살 정도의 나이에 평범한 체격을 가진, 어딘가 흉악한 인상의 남자였다.
“아무려면 어때요. 어쨌든 이건 공자께서 친히 내리신 임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해야 되잖습니까. 게다가 상대는 고작 수련도 못하는 쓰레기일 뿐이고요.”
스무 살 남짓으로 보이는, 꼭 병아리처럼 노란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청년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운전자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반박했다.
“만약 진짜로 저 놈이 우릴 유인한 거라면? 만에 하나라도, 아까 택시 안에서 미리 수하들을 불러서 대기시켜 놓은 거라면 어떡할 거지?”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걸어가던 초우가 갑자기 확 돌아서더니 그들을 경멸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러더니 마치 도발하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승합차 안 사람들을 콕콕 짚더니, 씩 웃으며 손으로 자신의 목을 그어보였다.
“저 미친! 당장 죽여 버리겠어!”
노란 머리의 청년은 바로 차 문을 열어젖히고 초우에게 달려갔다.
위쪽의 고속도로에는 여전히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차 안의 사람들은 한 줄기 푸른 연기처럼 변해서 미친 듯이 내달리는 노란 머리 청년의 모습을 눈으로 좇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저 청년은 나름대로 충혈경 4단의 경지에 올라 있는 무인이었다.
나머지 네 사람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초우를 해치우면 분명 자신들의 주인에게서 큰 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저 놈 혼자 공을 독차지하게 놔둘 순 없지!”
네 명은 서로 시선을 교환한 이후, 잇따라 차에서 내려서 초우 쪽으로 돌진했다.
이들의 실력은 초우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판단이 됐다. 중년의 운전자는 방금 전의 신중한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넷 중 가장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으며, 실제로도 충혈경 6단의 고수였다. 그 외의 나머지 세 사람 중 두 명은 4단, 한 명은 5단이었다.
초우는 여전히 태연하게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바로 그 다음 순간, 산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야, 이 등신아! 거기 안 서?”
노란 머리 청년이 매섭게 소리쳤다. 그는 충동적이긴 했지만 결코 멍청하지는 않았다. 저 산 속에 초우가 매복을 숨겨놓았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 초우가 산으로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든 그를 잡아 없애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중요한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다. 자신의 빠른 속도로도 아직까지 초우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데도, 전혀 이상함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아까의 진출로에서 저 산까지 족히 4리는 되는데, 초우가 그 사이에 벌써 산기슭까지 도착할 수 있었던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노란 머리 청년뿐만 아니었다. 뒤를 따르고 있는 다른 네 사람, 즉 이들 일행 중 가장 신중한 중년의 운전자까지도 이런 사실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이들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초우가 수련이 불가능한 폐물이란 생각이 강하게 박혀 있었다. 만약 정말로 초우가 실력을 회복할 방법이 있었다면, 그 대단한 북지초가에서 왜 여태 그런 방법을 실행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기다렸겠는가.
그래서 이들은 산 속에 초우의 함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하면서도, 초우 본인이 위험인물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의 문을 열어두지 않았다.
* * *
이들이 쫓고 쫓기는 사이, 초우는 어느새 산속으로 들어섰다.
이 산에 와보는 건 초우도 처음이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늘 이런 환경에서 자라온 초우만큼 산이 가진 특성에 익숙한 자는 많지 않을 것이었다.
초우는 산에 들어오자마자 마치 강을 만난 용처럼 순식간에 추격자들을 따돌렸고, 그 때문에 화가 난 노란 머리 청년은 길길이 날뛰었다.
“이런 제기랄! 완전히 미꾸라지가 따로 없네. 대체 어디로 숨은 거야?”
다른 네 사람도 뒤이어 산속으로 들어왔다. 산 안쪽으로 들어서니 바깥의 더위와 대비되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놈은?”
“뭐야, 그새 어디로 간 거지?”
뒤늦게 도착한 네 사람이 두리번거리자, 노란 머리 청년이 성난 얼굴로 소리쳤다.
“흩어져서 찾읍시다! 그딴 놈을 놓치는 건, 내 자존심 문제라고요!”
“그래도 같이 모여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운전자, 즉 충혈경 6단의 중년 남자가 이번에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자, 노란 머리 청년은 발끈했다.
“이상하긴 뭐가 이상하다는 겁니까! 그깟 등신이 숨어 봤자죠!”
“어쨌든 방심은 금물이다!”
중년 남자가 차갑게 말하자, 청년도 차마 더는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앞쪽에서 누군가가 마른 나뭇가지를 밟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중년 남자가 가장 빠른 반응속도를 보이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노란 머리 청년은 얼굴까지 새빨개지면서 노호했다.
“빌어먹을! 결국 자기 혼자 독식할 생각이었던 거야!”
이어 청년은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려갔고, 다른 사람도 바로 그 뒤를 따라갔다.
한편 중년 남자는 자신의 앞쪽에서 신형 하나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신형의 정체는 물론 초우였다. 지금 초우가 내고 있는 속도는 최소한 충혈경 5단의 수준이었다.
‘그동안의 모든 건 다 위장이었던 건가?’
중년 남자는 자신이 알아낸 비밀에 흠칫 몸을 떨었지만, 이내 냉소했다.
‘흥, 그게 뭐 대수라고. 아무리 충혈경 5단이라도 혼자 몸으로 우릴 상대하겠다는 건 자만이지!’
중년 남자는 한층 속도를 끌어올려 초우를 쫓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침내 둘 사이의 거리가 점차 좁혀지기 시작하자, 중년 남자의 입가에 흉악한 미소가 번졌다.
“초우, 그래봤자 넌 독 안에 든 쥐다!”
앞쪽에서 달려가던 초우는 드디어 걸음을 멈추고 중년 남자를 돌아보았다.
“아까부터 왜 자꾸 쫓아오는 거냐? 나한테 무슨 볼일 있냐?”
초우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흥, 태연한 척하기는. 계속 도망가지 그러느냐? 더 달려봐라. 내가 응원해주마!”
중년 남자가 한껏 비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쯧쯧, 그렇게 오랫동안 실력을 감추고 살다니 피곤하지도 않더냐? 어차피 이렇게 죽을 거, 그 고생이 다 무슨 소용이라고.”
“넌 충혈경 6단이냐?”
초우가 자신의 조소 따위는 무시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중년 남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왜, 놀랐느냐? 아마 만만한 놈들이 올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안됐구나. 아까까지만 해도 네놈 혼자 우릴 쓸어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
중년 남자는 주위 풍경을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풍수적으로 꽤 좋은 곳이군. 묫자리로 딱 알맞겠어.”
“누구 묫자리를 말하는 거냐?”
“하하하하! 물론 네놈 묫자리지! 설마 내 것이겠느냐?”
초우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래도 나보단 나이가 많은 네놈이 먼저 땅에 묻혀야 하지 않겠어?”
“흥, 입만 살았군. 시끄럽고, 곱게 죽기나 해라!”
뒤이어 중년인의 주먹이 초우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는 법은 간단하다. 상대보다 빠르고 강하면 되는 것이다.
파아아아앗!
중년 남자의 주먹에 담긴 살기가 사방으로 번졌다.
그러자 주위의 초목이 그 살기에 의해 순식간에 가루가 돼 버리더니, 곧 흙먼지가 휘날렸다.
“이게 바로 경지의 차이다! 경지의 차이를 넘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
중년 남자의 눈에는 오만함이 담겨 있었다.
“응, 맞는 말이야.”
초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주먹을 날렸다.
퍼억!
분명 한발 늦게 펼친 공격이었음에도, 초우의 주먹은 중년 남자의 주먹보다 빠르게 상대의 가슴에 꽂혔다. 그리고 그 순간, 엄청난 힘이 폭발했다.
중년 남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푹 꺼져버린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쿨룩! 푸흐읍……!”
곧이어 중년 남자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오장육부가 방금 전의 단 일격으로 완전히 박살나버린 것이다.
중년 남자는 곧바로 힘없이 땅에 쓰러졌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눈을 감지 못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믿고 싶지도 않고, 믿기지도 않는 일이었다!
저승에 한 발을 들여놓은 순간에야 중년 남자는 비로소 깨달았다. 16년 동안 등신 소리를 들으며 살았던 저 빌어먹을 놈은 결코 충혈경 5단 수준이 아니었다. 그의 경지는 자신의 짐작을 훨씬 뛰어넘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 초우가 뒤늦게 가한 공격이 자신의 선제공격보다 먼저 도달했다는 건, 그의 실력이 적어도 7단, 어쩌면 8단의 경지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공자…… 어쩌면 좋습니까…!’
이 충직한 중년 남자는 죽음을 맞는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의 가족이 아니라 주인을 걱정했다.
초우는 살인을 행함으로써 생긴 언짢은 기분을 애써 누르고, 중년 남자의 시체를 끌고 빠르게 사라졌다.
그러자 그 직후에 노란 머리 청년과 다른 한 동료가 그 자리에 나타났다.
현장을 본 두 사람의 표정이 곧바로 굳어졌다.
“아무래도 형님은 벌써 변을 당하신 것 같아요. 그 빌어먹을 놈, 역시 다른 고수를 준비해둔 거였어!”
노란 머리 청년이 이를 갈며 말하자, 그 옆의 충혈경 5단 남자가 무거운 얼굴로 재촉했다.
“빨리 여길 떠나는 게 좋겠다. 공자께도 바로 보고하고!”
남자의 말에 노란 머리 청년은 즉시 그들의 공자, 바로 사천우에게 연락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냈다.
콰직!
그 순간, 청년의 휴대전화가 그의 손과 함께 순식간에 부서졌다.
“아악!”
청년의 비명이 터져 나오자, 그제야 날카로운 파공음이 뒤늦게 울렸다. 방금 전의 공격이 소리의 속도마저 뛰어넘을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자 노란 머리 청년 옆에 있던 또 다른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초우의 곁에 엄청난 고수가 숨어 있다는 정보를 반드시 사천우에게 알려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여기서 죽고 싶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충혈경 6단의 형님도 변을 당한 게 확실한 마당에, 고작 5단인 자신이 어떻게 여기서 버틸 수 있겠는가.
퍼억!
그 순간, 충혈경 5단의 남자는 달아나던 걸음을 멈춘 채 자신의 가슴에 난 구멍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구멍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는 걸 확인하자마자 그의 전신에서 순식간에 힘이 빠졌다. 남자는 두 다리가 풀려서 털썩 무릎을 꿇으며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때 충혈경 4단인 나머지 동료들이 나타났다.
“어떻게 된 거야?”
“뭔데? 무슨 일인데?”
이들은 노란 머리 청년과 같은 경지였다. 다만 노란 머리 청년은 발에 있는 혈도 중 두 개를 타통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앞서 좀 더 빠르게 달려올 수 있었다.
“윽!”
“큭……!”
뒤늦게 등장한 두 사람은 미처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었다. 곧이어 날아온 돌멩이 두 개가 이들의 이마를 깨끗하게 꿰뚫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