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4화. 사릉무사의 출현 (2)

494화. 사릉무사의 출현 (2)

초목이 우거진 들판.

한 줄기의 가늘고 긴 그림자가 풀밭 위로 드리워졌다. 손가락은 하늘에 걸려 있는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느릿하게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그의 손 안에서 한 줄기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빛은 옥처럼 뽀얀 손바닥 안으로 녹아들었다. 순간 사내의 흉곽이 가볍게 융기하더니 입가에서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흥.”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사내가 입가의 피를 깨끗이 닦은 다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개 원신으로선 당연히 그들의 적수가 될 수 없지. 천지자연의 법칙을 뒤흔들 힘 역시 훨씬 미미하고 말이야. 원신이 본체로 돌아가 녹아들면 부상 역시 완전히 본체에 녹아들게 돼. 그런데 이 부상은 일개 원신에게는 중상이겠지만 본체에게는 원신에 난 작은 상처일 뿐이야. 정말로 상대방이 나에게 악의가 담긴 중상을 입힌다면 원신이 장소를 옮겼다고 해도 작은 부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내가 원한다면 그들에게 얼마든지 벌을 줄 수 있다고. 그들을 혼비백산하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번 생에 더는 발전하지 못하게 하기엔 충분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