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화. 너희는 그들을 이곳에 남게 할 수 없어 (1)
“설혹.”
그때 혈린사족 축염이 입을 열어 사법전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그리고 싸늘한 표정의 설혹을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독단적으로 혼계를 맺은 건 확실히 보통 일이 아니야. 그래도 죽을죄까지는 아니지. 네가 정말로 이 아이를 죽인다면 그거야말로 정말로 큰 죄가 될 거다. 내가 보기에 이 아이는 일시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 같네. 그냥 설월호족의 한월(寒月) 땅굴에 한동안 가두어 두세나. 그럼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도 깨닫는 게 있을 거야.”
축염의 말은 설혹에게 퇴로를 주는 셈이었다. 그와 설혹은 오랜 세월 동안 입씨름을 해 왔다. 그러니 축염 역시 자연히 설혹의 성격에 대해 아주 잘 알게 되었다. 설령 설혹이 금방이라도 백려를 죽일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하려 했다면 진작에 죽였으리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설혹이 얼마나 체면을 신경 쓰는지도 알고 있었다. 갑자기 손을 떼기 위해선 그럴싸한 이유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