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직접 본 것만 믿는다

7화. 직접 본 것만 믿는다

며칠 뒤 어느 날, 조회를 마치고 대전을 나서던 정왕은 슬그머니 온여귀의 뒤로 다가가 그를 냅다 걷어찼다.

온여귀는 땅바닥에 그대로 엎어졌다. 그런데 넘어짐과 동시에 온여귀는 예부 장 시랑의 신발에 코를 박으며 그의 바지를 잡아당겼다.

장 시랑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온 시랑, 지금 무슨 짓이오?”

늘 체면을 중시하던 온여귀는 모두가 보는 가운데 앞으로 고꾸라지는 추태를 보인 것 때문에 얼굴이 시뻘겋게 물든 채 허겁지겁 일어나 사과했다.

“미안하오.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온여귀는 변명하면서 뒤를 돌아봤다. 다들 구경꾼이 되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온여귀의 안색이 더욱 나빠졌다.

분명히 누가 자신을 걷어찬 것 같았는데 누구냐고 고함을 지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저 냉가슴만 앓을 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온 시랑, 평소에 운동을 좀 하셔야겠소.”

장 시랑은 원래부터 온여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모처럼 온여귀가 망신을 자초했으니 야유할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장 시랑, 신경 써 주어서 고맙소.”

온여귀는 한마디를 남기고 서둘러 대전을 떠나려고 했다.

이때 아직 대전에 남아 있던 태안제가 대전 밖의 소란에 내시에게 물었다.

“밖에 무슨 소란이냐?”

내시가 허둥지둥 말했다.

“아마도 온 시랑이 넘어졌나 봅니다.”

태안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전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온여귀는 퇴궐하면서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는 관직에 발을 들인 이후로 한미한 가문 출신 때문에 남의 비웃음을 살까 봐 몸가짐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런데 오늘 그런 망신을 당하다니.

마차 안은 답답했고 바퀴가 돌아가는 지루한 소리는 더욱 속을 시끄럽게 했다. 하지만 아직 꽃샘추위가 여전해 밖에서 산책하기는 추웠다.

온여귀는 마차 휘장을 걷고 마부에게 말했다.

“희래관(喜來館)으로 가자. 차 한잔 마시고 돌아갈 것이다.”

마부가 대답하고 채찍을 휘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멈춰 섰고 온여귀가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멀지 않은 찻집으로 향했다.

희래관 맞은편의 주루 별실에 있던 시동 옷차림의 한 사람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가씨, 저기 노야 같습니다!”

창가에 기대 서 있던 온선의 낯빛이 순간 하얗게 변했다.

여의방 마화 골목의 세 번째 집에 사는 사람은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키우는 부인이었다. 아들의 이름은 상휘, 딸의 이름은 상청이었다.

그녀가 지난 며칠 동안 알아낸 정보는 동생이 한 말과 딱 들어맞았다. 다만 아버지가 드나드는 건 보지 못했기에 아직 믿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소하야, 지금 바로 쫓아가서 아버지가 어느 집으로 들어가는지 보고 와.”

소하는 대답하고 빠른 걸음으로 주루를 떠났다.

온선은 찻잔에 남은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던 차를 마시자 마음이 더 차갑게 식었다.

그녀는 일어나서 몇 걸음 서성이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찻잔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부인과 두 자식이 정말 아버지의…….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소하가 돌아왔다.

“아버지가 어느 집에 가셨지?”

온선이 벌떡 일어나 물었다.

“세 번째 집입니다.”

그 대답에 온선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아가씨…….”

소하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온선을 불렀다.

온선은 두 손을 뻗어 탁자를 짚고 일어나 힘겹게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자.”

남장을 한 주인과 몸종은 주루를 떠났다. 그리고 마차에서 여자 옷으로 갈아입고 온부로 돌아와 바로 동생의 처소인 낙영거로 향했다.

온선의 표정을 본 온유는 상황을 바로 알아채고, 보주에게 문 앞을 지키라고 분부했다. 그리고 언니와 둘만 남게 되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봤구나……?”

온선은 온유의 손을 꼭 잡았다. 온선의 손은 차가웠다.

“내 생각이 틀렸어.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그녀는 얼마 전까지 말도 못 하던 동생이 이런 사실을 알고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아버지는…….”

그 한마디가 온선에게 갑자기 낯설게 다가왔다.

“아버지는 그 여인과 자식들을 계속 온부 밖에 두진 않을 거야.”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상휘를 직접 본 이상, 온선도 더 이상 아버지가 어머니를 진정으로 아낀다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는 않았다.

정말 아낀다면 여자를 숨겨 두지도, 그 여자와의 사이에 자식을 둘이나 낳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를 아끼지 않는다면…… 유일한 아들을 호적에 올리고 싶지 않을 리 없었다.

“유아야, 이 일은 일단 어머니에게는 말씀드리지 말자.”

온유는 고개를 끄떡였다.

“알았어. 언니, 무슨 좋은 생각이 있어?”

“그 여자가 낳은 자식, 상휘와 상청 두 사람은 이미 다 자란 데다가 아버지의 자식이니 온부에 들이는 걸 막긴 힘들 거야. 하지만 그 여자 상 씨는 경우가 좀 다르지.”

온선은 잠시 뜸을 들이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딸 입장이니 아버지의 행동을 막기 힘들어. 어머니에게 알리면 아버지와 정면으로 부딪칠 거고 좋게 마무리되긴 힘들겠지. 내 생각에는 적당한 시기에 외할머니께 말해야 해. 외할머니라면 아버지가 그 여자를 멀리 딴 곳으로 보내게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온유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가볍게 탄식했다.

세상 사람들은 아들이 대를 잇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상휘를 집에 들이지 못하게 한다면 오히려 아버지가 세상 사람들에게서 동정표를 받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언니는 상 씨 하나만이라도 온부에 들이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언니는 아버지가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 모르고 있었다.

전생에 아버지는 아들인 상휘 하나만 온부에 들여 대를 잇게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자기가 아끼는 여인에게 정실부인의 자리를 주어 아들을 명실상부한 적장자로 만들고 어머니의 막대한 재산을 빼앗아 주고 싶어 했다.

“언니 말대로 할게. 내 발목이 다 나으면 외할머니께 말씀드리자.”

전생의 사달이 났을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이 시기면 아버지도 아직 거짓 증언을 할 두 사람을 준비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갑자기 일이 터지면 아버지도 허둥댈 게 틀림없었다. 그럼 어떻게 아버지가 추악한 진면목을 드러낼 수 있겠는가?

* * *

어느덧 예부상서부(禮部尚書府) 진(陳) 삼소저의 생일이 되었다. 온부의 두 자매는 며칠 전에 이미 초대장을 받았다.

“유아야, 정말 안 가려고?”

온선은 출발 직전까지 동생에게 거듭 물었다.

온유는 웃으면서 언니를 재촉했다.

“빨리 출발하지 않으면 늦겠어. 정왕부에서 일이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난 가 봐야 괜히 구설에나 오를 거야.”

“그럼 언니 다녀올게. 오는 길에 만길네 가게에서 간식 좀 사다 줄게.”

온선이 출발하자 온유의 얼굴에서 웃음이 싹 사라졌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전생에도 진 삼소저의 생일잔치에 가지 않았다.

초대장에는 온유의 이름도 있었지만 사실 언니만 초대하는 것이 분명했다. 규수의 몸가짐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그 진 삼소저가 함부로 남의 집 담장을 넘는 말괄량이를 탐탁하게 여길 리 없었다. 굳이 환영받지 못할 곳에 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전생에 많은 일을 겪어 보았기 때문에, 그녀는 사실 남들이 자신에 대해 뭐라고 하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유아야, 오늘 진보각(珍寶閣)에 가 보려고 하는데 네 발목도 다 나았으니 이 어미와 같이 가서 말동무 좀 해 줄래? 안 간 사이 아마 새로운 물건이 들어왔을 거야.”

온유는 어머니 임 씨를 보며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전생에서도 언니가 진 삼소저의 생일잔치에 참석하러 집을 나선 다음에 어머니는 똑같은 말을 했었다.

겉으로는 자신의 말동무가 되어 달라고 했지만, 사실 진 삼소저의 생일잔치에 가지 못한 그녀가 속상할까 봐 기분 전환하라고 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오늘 반드시 어머니와 진보각에 가야 했다. 그것이 진 삼소저의 생일잔치에 가지 않은 진짜 이유였다.

그녀가 짐작한 대로라면 전생에 자신을 노리던 그자는 바로 오늘 진보각에 갔을 때 마주쳤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 년 동안 그녀는 온부 아니면 장군부에서만 지내 밖을 돌아다닌 일이 없었다. 장군부 담장에서 정왕부 후원으로 떨어졌을 때도 언니가 금세 그녀를 데리고 장군부로 돌아왔었다.

진 삼소저의 생일날이 그녀가 밖에서 오래 머문 유일한 날이었다.

그리고 그 후 아버지가 상 씨를 온부에 들이고 외할머니는 화병 때문에 심장에 탈이 났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어머니 걱정에 한 번도 외출한 적이 없었다.

언니가 시집가면서 형부를 알게 된 것이 그녀가 외부인을 만난 유일한 경우였다.

온유는 그자를 찾을 단서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딸을 팔아넘길 작정을 하게 만든 자라면 분명 보통 신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차피 악연으로 엮일 자라면 놈에게 노려지는 걸 기다리는 것보다 차라리 적극적으로 상대방을 파악하는 게 나았다.

“좋아요. 저도 바깥바람을 쐬고 싶었어요.”

온유가 승낙하자 임 씨는 서둘러 외출 채비를 마치고 기분 좋게 온부를 나섰다.

장춘가에는 오고 가는 수많은 사람으로 떠들썩했다.

임 씨는 온유와 함께 마차에서 내려 진보각에 들어갔다.

“임 부인, 참으로 오랜만이십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여행수가 임 씨를 보고 만면에 웃음을 띤 채 반갑게 맞이했다.

임 씨는 진보각의 단골이자 큰 손님이었다.

임 노장군은 태조를 따라 천하를 평정한 다음 정국공에 봉해졌다.

원래 산적 출신이던 외할아버지는 재산을 불리는 데 상당한 재능이 있었다. 정국공이 엄청난 갑부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임 씨는 그 외동딸인 만큼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다. 게다가 꽃처럼 아름다운 두 딸이 있었으니 금은방의 단골이 아니라면 더 이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임 노장군이 별세한 뒤 임 씨는 일년상을 치르느라 이곳에 발길을 끊었었다.

그래서 지금, 두 모녀는 어느 때보다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커다란 탁자에 비녀, 팔찌 등 장신구가 가득 놓여 금빛 찬란하게 반짝였다.

“부인, 이 옥 팔찌를 좀 보십시오. 색도 아주 좋고 광택도 최상품입니다. 둘째 아가씨의 피부색에 잘 어울릴 겁니다.”

임 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재작년에 우리 딸들에게 사 준 것만 못한 것 같은데?”

그러자 여행수는 단단해 보이는 작은 상자 하나를 임 씨 앞으로 밀어 놓으며 말했다.

“이 나비 모양 비녀 좀 보세요. 순금에 붉은 보석으로 장식했는데, 보석도 보석이지만 그 세공이 참으로 절묘하여 생동감 넘치지 않습니까……?”

“어머니!”

온유가 적당한 때를 봐서 입을 열었다.

“밖이 소란스러운데 좀 나가 보고 싶어요.”

“너, 재미없구나?”

임 씨는 웃으며 온유의 손을 쓰다듬었다.

“나가 보렴. 너울 쓰는 거 잊지 말고.”

온유는 원립에 망사를 드리워 얼굴을 가리는 너울을 쓰고 망사 천을 내린 다음 보주와 함께 진보각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