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EP-40 기사들의 봄(1)
-늘 그렇듯 오늘도 추운 날씨다.
"…오늘도 요정님은 화가 많이 나셨나 보다."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보며 아이는 몸을 한차례 떨었다.
허나 아이는 늘 그렇듯 두 손을 모았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방향을 향해 용서를 빌었다.
"요정님, 용서해주세요."
약 3년 전부터 매일 말하는 용서의 말.
과연 요정님이 듣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아이는 항상 용서를 빌었다.
"햇빛을 보고 싶어요."
어른들이 말하길 예전에는 '햇빛'이란 것이 있었다고 한다.
하늘은 먹구름이 자욱하지 않고, 푸르렀다고 하며 마스크 없이 숨을 쉬어도 상쾌하였다고 했다.
허나 아이는 그러한 것을 모른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항상 하늘은 칙칙했고, 새하얀 설원만이 가득했으니까.
어른들이 말하기론 그것이 다 요정님을 분노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했고, 이 때문에 어른들은 '높으신 분?' …이란 걸 자주 욕하였다.
또 몇몇은 요정님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그들은 잘못도 없는데 왜 이리 잔인한 짓을 하냐며.
허나 아이는 그런 어른들에게 공감하는 대신 매일 이 시간이 되면 마을을 빠져나와 두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었다.
용서.
엄마랑 아빠는 말했다.
잘못했으면 사과부터 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그러니 아이는 그 높으신 분이란 걸 대신하여 매일 사과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사과하다 보면.
'언젠가 햇빛을 돌려주시지 않을까?'
아이는 꿈을 꾸었다.
언젠가 자신 또한 푸르른 하늘을 볼 수 있기를.
마을 사람들이 위험한 사냥이 아니라 농사를 통해 식량을 얻을 수 있기를.
자신의 여동생이 햇빛을 보며 자라길.
그리고….
"'콜로니'에 사는 사람들처럼 따뜻하게 살 수 있기를…."
아이는 그러한 훗날을 위해 용서를 빌었다.
부디 요정이 사람을 더는 미워하지 않기를 바라며.
"에렌, 거기서 뭐하니."
"아, 엄마!"
"빨리 오렴, 감기 걸릴라."
"네에!"
아이는 모친의 부름에 대답하며 자신의 보물과도 같은 예쁜 조약돌 하나를 바닥에 놓았다.
요정에게 전하는 선물이었다.
*
*
*
휘이이이이익!!
중앙 대륙에는 눈보라가 사시사철 휘몰아친다.
원래부터 이런 건 아니었다.
제국 황실과 마탑이 힘을 합쳐 요정을 포획하여 이용하려 한 일이 있었고, 이로 인해 겨울 요정의 분노로 인해 중앙 대륙에는 10년이 넘어가는 겨울이 찾아왔다.
이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중앙 대륙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저주받은 땅이 되었고, 분노한 백성과 영지는 각각 번왕을 자처하며 군벌을 형성하는 중이었다.
다만 우습게도 이러한 분노가 향하는 방향은 제국에만 국한된 것이고, 실험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마탑에겐 질타의 시선이 쏟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유?
딱히 제국의 백성들이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다.
단순히.
"이게 마탑의 거대 온실이군."
"진짜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네?"
"장관이구먼."
마탑에 의해 만들어진 온실.
도시 전체를 감싼 마력장이 마치 작물을 키우는 비닐하우스처럼 보인다.
대신 도시 전체를 감쌀 정도로 거대하게 지어진 것이 특징이었고.
웅장하기 이를 데 없었고, 감탄마저 나온다.
바깥의 날씨는 겨울인데, 도시 안은 따스한 봄의 기운이 감도니 말이다.
그리고 중앙 대륙에서 이러한 온실 형태 도시는 이제 당연하듯 형성되어 있었다.
비록 마탑은 잘못을 저질렀으나 그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 대책을 마련한 결과물.
거대 온실 '시티 하우스'였다.
혹은 [콜로니]라고도 불렸고.
이런 콜로니 덕분인지 제국민에게 있어 마탑에 대한 인식은 '사고는 치지만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집단'이며, 자신들이 살기 위해 필요한 필요악의 시설 등으로도 불렸다.
물론 모든 백성들이 콜로니에 사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마법사를 부정하며 콜로니 밖에서 사는 이들도 있거나, 화전을 일군 이들은 이러한 특혜를 누리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콜로니란 특혜를 누리는 이들 입장에선 마탑은 결코 부정해선 안 될 조직이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한없이 필요한 신전과 같은 조직으로 여겨졌지.
후욱.
콜로니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따스한 공기가 출입자들을 감싼다.
눈보라를 뚫고 콜로니 안으로 들어온 상인이나 여행객들은 이제야 살겠다며 두터운 외투를 벗었다.
"후우, 이제야 살겠군."
"얼어 죽는 줄 알았네."
"자, 물건부터 옮기자고."
눈보라가 가득하다 보니 상인들은 대부분 식량 장사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어느 콜로니를 가든 식량은 부족했으니까.
그리고 서부 대륙에서 온 어느 신입 상인은 이 험한 눈보라를 뚫고 온 보람을 느끼듯 비싼 값에 팔리는 식량에 안도했다.
고생한 보람이 있음을 느끼는 것이었다.
일이 끝나 약간 심적인 여유가 생겼음일까.
"그러고 보니 마탑을 아직도 본 적이 없군. 선배들 말로는 길만 지나가고 있으면 무조건 볼 수 있다고 했는데…."
혼잣말과 같은 상인의 중얼거림이었으나, 이를 놓치지 않고 캐치하는 이들이 있었다.
"흐음, 상인 나리께선 중앙 대륙은 처음이신가 보군요."
"…자네는?"
"헤헤, 그냥 용돈벌이를 하는 놈입니다."
"아아, 스트리트인가."
스트리트.
길거리에 사는 버림받은 스트리트 칠드런을 부르는 멸칭이었고, 아마 이 꼬마는 정보를 팔아 용돈을 버는 아이일 거다.
대부분의 스트리트가 도둑질을 통해 돈을 번다고 생각했을 때, 이렇게 어른들이 북적거리는 곳에서 용돈을 버는 것을 보면 약간 안쓰러우면서도 기특하다.
이번 상행으로 약간은 주머니가 두둑해진 상인은 궁금증도 풀고 좋은 일도 할 겸 아이에게 은화 하나를 던졌다.
"그래, 나는 중앙이 처음이다. 그러니 아는 것을 말해보거라."
"가, 감사합니다, 나리!"
은화 하나의 위력은 아이의 입을 가볍게 하기 충분했다.
"나리께서 정확히 궁금하신 게 무엇입니까? 현재 중앙에서 가장 거대한 군벌? 아니면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제후나 번왕? 혹은 마탑?"
"…하나같이 다 궁금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마탑이 가장 신경 쓰이는구나."
중앙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을 이룩한 마법사들의 상아탑.
그 영향력은 제국의 5할에 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바.
상행을 주로 다니는 상인인 그로선 아무래도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마탑이 무얼 주목하느냐에 따라 거래 품목이 자꾸만 달라지니까.'
마탑은 상인들에게 있어 가장 좋은 거래처 중 하나란 건 그와 같은 초보조차 알 사실이다.
돈이 넘치는 놈들인지라 물건 값도 깎지 않는다지?
…한데 제국에 들어서고 나서 상인은 한 번도 마탑은커녕 마법사조차 만난 적이 없었다.
마탑의 이름이 엄청난 것치곤 그 존재가 왜 이토록 보이지 않는지 의문일 따름.
'대체 탑이 어디 있다는 건지….'
여행 내내 여러 콜로니를 돌아다녔지만, 탑 같은 건 본 적도 없다.
혹시 제국의 중심인 제도에 있는 것일까?
"하하, 나리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중앙하면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 다름 아닌 마탑인데, 어찌 마탑은커녕 마법사도 보이지 않나 의문일 테지요."
"…눈치가 제법이구나, 영특한 녀석이군."
"헤헤, 감사합니다. 크흠, 대답하기 앞서 혹시 나리께선 마탑이 어떻게 생기셨을 것 같습니까?"
"음?"
생뚱맞은 되물음에 상인을 눈을 끔뻑거렸다.
탑이 탑이지, 어떻게 생겼을 거란 게 무슨 뜻인가 싶어.
"혹시 진짜 탑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생각하십니까?"
"그, 그게 아니었나?"
"흐음, 나리께선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중앙에 오셨군요. 다른 분들에게라도 물어보시면 아셨을 텐데…."
"나, 나라고 모르고 싶어서 몰랐을까? 짓궂은 양반들이 가면 알 수 있을 거라며 답을 가르쳐주지 않더구나."
"아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크흠!"
약간은 민망하다.
정보에 민감해야 할 상인이 이러한 것도 모른다는 것이.
허나 눈치 빠른 소년은 괜히 상인의 민망한 부분을 찌르지 않았다.
받은 돈도 돈이지만, 괜히 타인에게 불쾌함을 주는 것이 좋지 않음을 잘 아니까.
"…그 짓궂은 분들이 하신 말씀도 틀린 건 아닐 겁니다. 중앙에 있다 보면 마탑을 볼 기회가 무조건 있으니 말입니다."
"음?"
"마침 타이밍이 좋군요. 아니면 나리께서 운이 좋으신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위를 보십시오."
"…위?"
상인은 이 소년이 무슨 말을 하나 헷갈렸으나 저도 모르게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헉!"
곧 상인은 대경실색하며 헛숨을 들이켰다.
그 정도로 그는 비현실적인 광경을 보았기에.
[고오오오...!]
─거대한 물체가, 아니 성이 하늘 위를 날고 있었다.
천공의 성.
절로 이러한 이름이 떠오르는 성은 한없이 거대했고,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광경이었다.
어찌 저만한 성이 하늘을 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의문에 답하듯.
"-마탑 안에는 수백 명이 넘는 마법사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수백 명의 마법사들의 염동력은 마탑을 실시간으로 공중으로 띄우는 에너지가 된다고 하지요. 덕분에 마탑은 1년 내내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합니다."
"1, 1년 내내?"
"네에, 물론 식량이나 물자 보급을 위해 가끔은 착륙하는데, 그 착륙 장소가 어디일지는 랜덤이라고 하지요."
"허어…."
상인은 어째서 마탑과 계약을 맺는 상인이 소수인지 알 것 같았다.
'저토록 제멋대로 돌아다니니 계약하는 게 쉽지 않겠지.'
…다만.
"한데 왜 저만한 성을 공중에 띄우며 다니는 거지?"
"으음,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마탑 안에는 무수한 아티팩트가 있다고 합니다. 그 아티팩트를 지키기 위해 어떤 이들도 도달하지 못할 높은 장소에 자신들의 탑을 공중에 띄웠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럴듯하군."
"다음 소문으론 하늘에서만 가능한 연구가 있다고 합니다. 너무 위험해서 땅에서 하는 건 안 될 연구가 말입니다."
"…그건, 참으로 무서운 얘기구나."
의문이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소년의 말에 어느 정도 납득하며 상인은 추가적으로 은화 하나를 더 던졌다.
"어? 이, 이건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만…."
"제법 말솜씨가 좋더구나, 흥미롭게 대화를 풀 줄도 하고. 음유시인의 재능이야, 하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리!"
"열심히 살거라."
그렇게 상인은 궁금증을 해결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며….
"다음 상행은 결정됐군!"
그는 꿈에 불타올랐다.
다름 아닌….
"…또 한 사람의 바보가 마탑을 쫓겠군, 쯧쯧."
방금 전 세상 순진한 표정은 어디 가고, 염세적인 조소를 머금은 소년은 은화를 주머니에 넣으며 혀를 찼다.
저런 놈들이 있다.
첫 상행에서 일이 수월하게 풀리니 뭐든 잘될 거라고 착각하는 부류가.
초보자의 행운인지도 모르고, 원래 하던 것이나 잘하면 되는데 저렇게 오르지도 못할 나무를 오르기 위해 객기를 부린다.
열정 하나만 가지고 모든 게 풀리면 세상 살기가 얼마나 편할까.
참으로….
"어리다 어려."
아직 새파랗게 어린 소년이 할 발언으로는 적절하지 않지만, 적어도 험난한 세상살이를 초보 상인보다 더욱 열심히 했을 소년은 그렇게 평가하며 뒤돌아섰다.
집으로 가려는 것이 아니라, 또 헛꿈을 꾸는 호구가 없는지 물색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흠칫!
소년은 일순 발걸음을 멈추었다.
"...."
아니, 멈출 수밖에 없었다.
12년밖에 살지 않았으나, 그 12년 동안 거리에서 살며 위기감지 능력이 누구보다 발달한 소년은 이 순간 어마어마한 식은땀을 흘렸다.
그도 그럴게.
"…자, 이 정도면 되었나?"
"이놈 보게?"
뒷골목의 어딘가.
위험해 보이기 그지없는 두 사내가 서로에게 도끼와 창을 겨눈 채 살벌한 기백을 내뿜고 있었기에.
"꿀꺽…."
소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뒷걸음을 쳤다.
정말 엮여서는 안 될 위험한 부류가 아닐 수 없었-.
타악.
"…놀 됐네."
어쩐지 운이 좋다 싶더니, 뒷걸음질 치다가 나뭇가지를 밟은 소년은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우리한테 무슨 볼일 있냐-?"
"...."
…소년은 혼절했다.
"이 녀석, 갑자기 왜 기절해?"
"무뢰배, 네 얼굴이 살벌하니까 그런 것이겠지."
"…스읍, 부정해야 하는데, 왜 부정을 못 하겠지?"
이한은 떨떠름해 하면서도 아이를 편히 눕혀주었다.
괜히 이상하게 쓰러져 있다가 입 돌아가면 안 되니까.
그렇게 아이를 안전하게 놔둔 후, 그는 다시금.
"…약간 상황이 이상해지긴 했지만, 다시 해볼까."
"쯧, 건방진 놈."
"싫으면 넌 오지 마. 나 혼자 가면 되니까."
"...."
창잡이 놈은 불만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며 미간을 찌푸렸으나, 지금만큼은 자신이 '을'이니 어쩔 수 없이….
후우욱!
거침없이 창을 내질렀다.
카앙!
"...음, 괜찮네."
"...."
그리고 창촉은 이한의 이마를 정확히 노렸으나, 창은 조금도 이한의 이마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쇠를 때리는 소리만 날 뿐.
#167 EP-40 기사들의 봄(2)
라크 드 듀론은 표정을 굳혔다.
'…이 무뢰배 녀석, 확실히 옛날보다 성장했군.'
약 반년 전 처음 붙었을 때도 몸이 비상식적으로 튼튼했던 녀석이다.
그때도 라크는 온몸의 기운을 쏟아부어서 상대해야 했고, 끝내 우위를 점하지 못하며 기술마저 썼었다.
그의 주특기였으니까.
허나 지금, 예전처럼 기술을 건다고 해서 이 무뢰배와 동수를 이룰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아니, 적어도….
'맨손으로 싸우는 건 이제 불리하겠군.'
예전에는 그냥 튼튼하다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단단하다.
마치 고열 속에서 수백 번 담금질을 통해 완성된 질 좋은 강철과 같은 바.
설마 사람에게서 이러한 감상을 느낄 줄 몰랐다.
즉.
'이 무뢰배 놈은 인간이 아니다.'
진작 이상한 놈이다 싶었는데, 더 괴상한 놈으로 진화한 셈.
맨손 결투는 피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상기하는 라크였다.
…물론, 맨손으로 싸워야 할 상황이 온다면 피할 마음은 전혀 없지만.
"자식, 눈빛 진짜 살벌하네."
"…네놈이 할 말은 아니다."
라크는 미간을 찌푸리며 창을 거두었다.
원래 같으면 이토록 순순히 창을 거두지 않을 테지만, 아쉽게도 오늘만큼은 그가 창을 겨눠야 하는 상대는 무뢰배가 아니다.
그가 창을 겨눠야 하는 상대는 감히 주제도 모르는 시건방진 마법사 무리였고, 그들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아직도 내가 짐으로 여겨지나."
─무뢰배의 협력은 필수불가결이었다.
무뢰배가 어깨를 으쓱였다.
"난 너보고 짐이라고 한 적 없는데, 뭔 헛소리야."
"네놈이 '나 혼자 다녀올 건데, 기다리고 있지?' 라고 한 게 무시한 것이 아니라고?"
"…그냥 혼자 가는 게 편해서 그런 건데?"
"그게 무시라는 거다, 이 무뢰배 놈아!"
라크는 이를 갈았다.
아직도 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허나 더욱 짜증나는 사실은.
'이 무뢰배가 협력하지 않으면 내가 마탑에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겠지.'
조금 전 이마로 창을 튕겨낸 것처럼, 이 무뢰배는 신기한 재주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검에서 꽃을 피워내는 기술이나, 마치 화살처럼 몸을 날리는 기술 등을.
또한.
'하늘을 걷는 기술….'
대충 기술의 원리는 알겠으나, 저러한 기술은 투기법을 익힌 이에게 맞지 않는 섬세한 기술이 아닐 수 없었다.
'힘을 섬세하게 분사하여 발판을 만드는 것이겠지.'
다만 투기법을 익힌 기사가 쓰기엔 어려운 기술이 아닐 수 없다.
몸속의 폭발력을 이용해 힘을 발산하는 것이 기사들의 기본적인 전투법이었으니까.
저토록 섬세한 기술은 사용하는 건 지극히 어려울 따름이다.
그러니.
"날 데려가라, 무뢰배."
"…부탁하는 자세가 너무 건방진데?"
"...."
"뭐, 됐고. 부탁만 하지 말고 더 보여줘 봐라. 네가 널 데리고 갈 만한 가치가 있는지."
"...후회나 하지 마라."
후욱!
라크는 다시금 창을 내질렀다.
* * *
거침없이 찔러오는 창은 단순히 직선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지만, 무수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떠한 방향으로 피해도 무조건 쫓아올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아니나 다를까.
캉!
'-또네?'
이한은 또 창에 맞았다.
처음에도 그는 창을 일부러 맞고 싶어서 맞은 게 아니었다.
피했는데도 맞은 것이었지.
남다른 감각과 재빠른 몸놀림을 가진 이한조차 피하는 게 어려운 창놀림.
'정교함이 무슨 기계보다 정확한 것 같은데?'
이한은 왜 저 창을 피할 수 없는지 알 것 같았다.
특별한 신비나 투기법 때문이 아니었다.
단순히 창잡이의 창이 가진 정교함과 기술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극한의 수준까지 오른 달인(達人)의 것이었기 때문이었지.
'그냥 내지르는 게 아니야. 고도의 계산이 들어간 거야.'
단순히 창을 내지르는 것이 아니라, 손과 팔꿈치, 어깨와 등을 비롯한 온몸의 관절을 동시에 사용하여 날리는 일격은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일창이었다.
이한이 기술보단 육체의 '기능'을 중요하게 사용하는 것에 반해, 저놈은 '기예'에 모든 것을 투자한 것만 같았다.
이한과 전혀 반대되는 타입이었고, 따라할 엄두도 나지 않는 완성도였다.
허나 기술의 완성도보다 더욱 대단한 것은.
'수읽기.'
놈은 머리가 좋았다.
흔히 이한 같은 기사를 보고 '직감형 기사', 그러니까 뛰어난 신체능력과 타인보다 우월한 오감과 전투 경험을 통해 전투를 치르는 타입이라면 저 녀석은 '전략형 기사'라 부르는 타입임이 분명했다.
마치 전투를 바둑이나 체스를 두듯이 하는 놈들.
그리고 이한은 직감형 타입보다 이런 전략형 타입이 더할 나위 없이 까다로웠다.
비슷한 실력을 갖춘 전사끼리의 결투에서 중요해지는 요소 중 하나가 수싸움임을 생각했을 때 더더욱.
그리고,
'이놈은 최소 그랜드 마스터다.'
창잡이의 수읽기 솜씨는 체스 기사로 따지면 그랜드 마스터 타이틀을 획득한 수준이 아닐까 싶었다.
그 정도로 이한은 놈의 공격에 대응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공격을 허용했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이렇게 완전히 내 움직임을 읽어내는 게 가능한가?'
창잡이의 수읽기 솜씨가 뛰어나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이한은 피하기 무섭게 자신을 쫓아오는 창날을 보며 눈을 반개했다.
자신이 어디로 움직일지 예측하는 솜씨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예측 수준이 아니라 예지 수준인 것 같은데?'
미래 예지.
그러한 생각이 들 정도로 창은 그가 다음으로 향할 방향을 찔러왔다.
이를 느끼며 이한은 확신했다.
창잡이에겐 다른 특별한 것이 있다고.
막시무스, 그 북부의 챔피언이 천무지체란 것을 가지고 있던 것처럼, 이 살기 충만한 창잡이는 그와 비슷한 어떠한 '기능'이 있는 거다.
그리고 나흘하고도 반나절 동안 붉은 산맥을 돌파하며 보았던 창잡이의 능력을 떠올리며 이한은 대충 놈이 가진 기능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너, '눈'이 무지하게 좋네."
"...."
"[신비] 같지는 않고, 갈라하드에서 내려오는 특별한 비전이나 기술인가?"
"…역시 생긴 것과 달리 눈치는 좋군."
"거, 생긴 거로 계속 뭐라 하지 말지? 외모로 사람 차별하는 놈 같으니…."
"...으음, 그 점은 내가 잘못한 것이 맞군."
"의외로 사과를 할 줄 아네?"
"못 배워먹는 놈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면 주군께서 잘못은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으니까."
타악.
녀석이 창을 내려놓았다.
그러며.
"[천리안]의 신비를 들어본 적 있나?"
"응? 으음,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뜬금없는 발언을 하는 창잡이었으나, 이한은 적의를 보이지 않는 질문에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분명 천 리 앞을 내다볼 수 있는…."
"244마일을 내다 볼 수 있는 눈이지."
"...."
"왜 그러지?"
"…부탁할 테니까 제발 킬로미터를 써라, 염병."
"?"
이한은 혈압이 오를 것 같았다.
* * *
세상에는 다양한 [신비]가 있다.
비록 신비를 지닌 사람은 얼마 되지 않지만, 신비의 종류는 별과 같이 많은 바.
다영한 신비가 세상에는 존재하며, 이러한 신비의 강력함에 매료된 이들은 많다.
이한이 잡아들인 그렉이 신비를 갈취하기 위해 일생을 다 바친 것만 보아도, 신비가 가진 값어치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고.
허나 저러한 저열한 수단마저 이용하여 신비를 얻고 싶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신비 자체를 연구하여 그것을 '기술적으로 활용하는 게 어떠한가?' -하는 아이디어를 내는 올곧은 이들도 있는 법이었다.
예를 들면.
"갈라하드는 예로부터 신비를 기술로 승화시키는 데 진심이었다. 물론 연구 과정 자체는 어려웠으며, 설사 성과가 있다고 해도 이를 익힐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지."
"소수라도 익힌 사람이 있다는 거구나?"
"그렇다. 특히 갈라하드의 역대 기사단장들은 필수적으로 익혀야 할 기본 소양과 같은 것이지."
"기준이 너무 높지 않냐?"
"그 정도도 못 하고 감히 갈라하드의 기사단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은가! 당연히 익혀야 하는 것이다."
"...."
…왜 갈라하드의 기사들이 강한 건지 납득이 가는 대목이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걸 익힐 가능성 있는 애들만 받아들이니까 강한 게 당연하겠네.'
그에 비하면 백은사자는 뭐….
'어휴, 거긴 진짜 답없다.'
비교하려고 해도 비교할 수 없는 격차가 있으니, 원.
이한은 제 직장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며 혀를 차려고 할 때, 라크의 발언이 이어졌다.
"갈라하드가 기술로 체화하는 데 성공한 신비의 숫자는 총 31가지다. 물론 이 모든 비전을 익힌 이들은 없으며 이 중 한두 가지라도 제대로 익힌 자들도 충분히 대단한 것이지."
"넌 몇 개 익혔는데?"
"일곱 가지다."
"…이제 보니 자기 자랑질하는 거였네?"
"무뢰배 네놈이 먼저 물어보지 않았는가!"
"됐고, 신기한 재주를 익힌 건 알겠다."
"…네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그가 보았을 때, 자기 창을 맞았음에도 여전히 멀쩡한 놈의 모습이 더 신기하다.
아무리 [살기]를 담지 않았다 해도 상처 하나 없는 것은 굴욕이었으니까.
애써 그렇게 분함을 감추며 라크가 말을 이었다.
"…또한 일곱 가지를 익혔다고 해도 내가 익힌 신비는 대부분 눈에 집중되어 있다. 총 다섯 개의 기예를 모두 눈에 담은 것이지."
"흐음, 어쩐지."
이한이 그의 눈을 특별하다 싶은 이유가 있었다.
중앙까지 오는 중 단 한 번도 길을 잃지 않고 올 수 있던 이유.
안개나 지진을 만나고, 지형이 변할지언정 전혀 길을 헷갈리지 않고 제대로 찾을 수 있는 수단을 알 것 같다.
'대충 천리안에다 이것저것 섞은 거군.'
흐음…
"눈이 붉어지고 동공 주위에 곡옥 같은 건 안 생기냐?"
"…무슨 헛소리지?"
"...그런 게 있다."
딱 봐도 그런 계열이다.
통찰력 상승과 상대의 움직임 예측 및 주변 환경 관측, 거기다 동체시력이 어마어마하게 좋아지는 게 보인다.
저기서 이제 상대 기술 카피하고, 불만 뿜어지면 딱 좋지 않을까?
'…북부 녀석도 그렇고, 이 새끼도 그렇고, 뭐 이리 치트키가 많지?'
한 놈은 타고나길 헤라클레스 같은 놈이고, 또 한 놈은 재능으로 최종병기 눈깔을 손에 넣은 것이 아닌가?
참….
"인생 진짜, 재능 없는 놈은 억울해서 살겠나."
"...."
"왜 그렇게 보냐?"
"...."
후욱!
콰직!
"왜 또 시비야?"
"…막았군."
"막아야지 그럼?"
"…하."
다시금 창을 찌르는 창잡이였고, 이한은 이놈이 왜 갑자기 이러나 싶어 미간을 찌푸릴 따름이었다.
…라크는 확신했다.
'이 무뢰배 놈은 짐승이다.'
라크는 놈의 움직임과 행동을 모조리 읽었다.
블레이크 전하께서 평하길, '[제3의 눈]'이라 명명하기까지 한 특별한 눈을 가진 것이 다름 아닌 라크였다.
그의 눈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해도 감히 자신하는 바였다.
한데….
'내 눈에서 벗어나는 반응 속도를 보인다고?'
인간의 반응 속도가 아니었다.
즉, 놈은 자신과 몇 번 투닥거리며 어느새 그의 속도에 적응한 것이다.
아마 전투를 치르다 보면 점차 그의 공격에 더욱 빠르게 반응할 것이며, 어느 순간 대항하는 것도 가능해질 터.
한데 이런 놈이 재능 어쩌고 하고 있으니 라크로선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웃기지도 않는군!'
확신한다.
저 무뢰배는
'직감형 기사는 봤어도, 맹수형 기사는 처음 보는군….'
난생 처음보는 타입의 기사임을 말이다.
라크는 타인에게 설마 이런 감탄을 느낄 날이 올 줄 몰랐다며 마냥 눈살을 찌푸렸다.
...감탄한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 * *
몇 번의 투덕거림이 있긴 했지만, 이제는 슬슬 시간이 없었다.
휴가가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그런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여기 오래 있어서 좋을 게 없거든.'
비록 제국이 다 망해가는 와중이고, 언제 황건적이 나올지 모를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국은 제국이다.
이 드넓은 대륙에서 제국이란 이름으로 천 년을 유지한 미친놈들.
약 5억의 인구를 가진 대륙 최대의 인구 대국.
인구가 깡패라고, 저놈들이 작정한다면 틀림없이 팬드래건 소속인 자신들이 여기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이한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하니.
'마탑만 빠르게 조지고 빠진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널 업고 저길 올라야 한다는 거겠지…."
"...끔찍하군."
"내가 할 말이다, 이 자식아."
싫지만, 어쩔 수 없다.
이놈의 실력은 인정하기 싫지만 비범하였다.
데리고 가면 시간 단축에도 도움이 될 터.
"날이 새기 전에 마탑을 조진다."
움찔!
"...."
"…이봐, 어린 친구. 기절 놀이는 해도 되는데, 계속 그러고 있으면 입 돌아간다."
"...."
"뭐, 우리는 이제 갈 테니까 알아서 해. 험한 꼴 보인 건 미안하고."
이한은 딱히 자신이 공격한 건 아니지만, 기절하게 된 원흉이 된 것은 미안했기에 솔직하게 사과하며 그대로 떠날 생각이었다.
그들이 있으면 불편할 뿐일 테니까.
그렇게 이한은 발걸음을 돌리려 할 때-.
"-마, 마탑으로 가실 거면 하늘로 가는 방법은 좋은 방법이 아니실 거예요…."
"…?"
"마, 마탑의 전방에는 강력한 방어 마법이 깔려 있거든요. 마, 마법사가 아니면 절대 뚫을 수도 없고요, 그, 그러니까 들어가시려면…."
"...."
"…다, 다음 말을 들으시려면 유, 유료입니다…."
"…이 녀석 보게?"
이 어린 친구가-.
"가격은 좀 할인해 주냐? 돈 챙겨 온 거 얼마 없는데…."
장사를 할 줄 안다.
#168 EP-40 기사들의 봄(3)
스트리트 출신인 아이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누군가가 이리 묻는다면 이한은 이렇게 말하리라.
저 녀석의 배짱과 당당함이 증거라고.
…뭐.
'심장 소리도 고요하고.'
그의 거짓 탐지 능력이 신뢰의 8할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리고,
"아, 제, 제가 이런 걸 아는 이유는 예전의 술에 취한 상인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거예요. 한때 마탑과 거래하던 상인이었거든요."
혹시라도 의심할까 정보의 출처까지 말하는 아이의 눈빛은 또렷했다.
비록 다리는 후들거리는 것이 겁을 먹은 것 같지만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그런 소년, 패트릭을 향해 이한이 물었다.
"어린 친구야, 근데 정말 돈이 아니라 이런 조건으로 괜찮은 거냐?"
"네에, 절 남부까지만 데리고 가주세요. 그거면 돼요!"
"…그다지 좋은 선택지는 아닌 것 같은데."
소년 패트릭은 제국을, 아니 중앙 대륙에서 탈주하길 원했다.
이를 정보 값으로 원하였고.
패트릭은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중앙은 지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과 같아요. 제후들과 번왕들이 다스리는 도시는 반목하고, 황실은 지금 그들을 막을 명분도 힘도 없죠. 그러니 제국은 약간의 총성만 울려도 곧장 전란이 시작될 거예요. 그리고 저 같은 아이는 곧장 강제 징집당하겠죠. 그럴 바에야 남부로 가는 게 이득이죠."
"…그걸 너 혼자 생각했다고?"
"머리 좀 굴리면 계산이 서잖아요?"
"...내가 저 나이에 뭐했더라."
이한은 헛웃음이 다 나왔다.
놀라운 녀석이다.
배짱과 당당함도 대단하지만, 머리가 보통 영민한 게 아니다.
만약 제국이 이런 꼴만 아니었다면 영재로 이름을 날리지 않았을까?
그러한 감탄을 드러내고 있자니.
"한데 왜 우리지? 우리가 정녕 너를 안전하게 남부까지 데리고 가리라 장담하는 건가?"
"...."
갑작스러운 라크의 발언.
언뜻 위협하는 것 같았으나 이한은 그런 게 아님을 알았다.
이 녀석….
'시험해 보고 있네?'
마치 원석을 품평하듯이.
패트릭은….
"…제가 상인들을 많이 상대해봐서 아는데,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선 때론 과감함이 필요하대요. 물론 무작정 달려들면 안 되고 이게 성공할 거란 확신이 서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 뜻에서 기사님들은 과감하게 투자해도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무얼 보고?"
"강한 무력도 무력이지만, 어린아이에 불과한 저를 무시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해주는 것과…."
"...."
"마법사를 혼내주기 위해 왔다는 점에서 신뢰가 가네요."
"주문쟁이?"
"…네에, 저는 마법사가, …주문쟁이가 정말 싫거든요."
"...."
두 기사는 침묵했다.
숨긴다고 숨기는 것 같지만, 결코 숨길 수 없는 원망과 증오심이 엿보였기에.
아무리 영특할지언정 아이는 아이란 걸까, 제 감정을 미처 숨기지 못하는 패트릭이었다.
"...."
허나 두 기사는 많은 걸 묻지 않았으며 묵묵히 아이를 따라 나아갈 뿐이었다.
오히려 패트릭의 분노를 보며 어딘지 납득했다는 표정마저 짓는 그들이었다.
그렇게.
"다 왔어요."
"저게 그거냐?"
"네, 유일하게 마탑으로 갈 수 있는 입구죠."
도시의 중심.
콜로니의 장막을 유지해주는 거대 시설이자 콜로니의 장막을 관리하는 마법사가 상시 대기하는 관측망.
허나 비밀스럽게도 그러한 용도로만 쓰이는 게 아닌 건물이라고 원망을 품은 아이는 발언했다.
마탑으로 이동하는 장치, 일명,
"상인들은 저걸 보고 [포탈]이라고 부르더라고요."
"흐음."
"기사님?"
그의 미묘한 반응에 패트릭은 눈을 끔뻑거렸다.
혹,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이한은 패트릭의 물음에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딱히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저건 포탈보단, 그냥…."
[캡슐 사출 장치]처럼 생겼다, -는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하며 볼을 긁적이는 이한이었다.
* * *
마탑에는 적이 없을까?
- 엄청 많죠!
소년은 단언했다.
정말 발에 챌 정도로 적이 많다고.
딱히 두 명의 기사가 아니더라도 마탑을 노리고 수작을 부리는 이들은 널리고 널린 것이다.
뭐, 손에 꼽히는 조직이나 기관쯤 되면 적이 없는 게 더 이상한 일일 터.
이런 의미에서 지금껏 마탑은 무수한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마탑을 공격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이유?
- 마력 역장이 마탑을 보호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듣기론 엄청 튼튼하대요.
마력 역장.
흔히 염동력으로 펼치는 마법사의 기본적인 소양 같은 거지만, 마탑 주위에 펼쳐진 마력 역장은 그 질과 양에서부터 레벨이 다르다고 한다.
- 옛날에 공성병기를 이용한 대대적인 공격이 있었는데, 한 달이 넘게 공격해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고 해요.
당시 공격받는 마탑의 마법사들은 적들의 공격에도 무색하게 여유롭게 차나 마시면서 '오늘 날씨가 좋군'이라는 대화를 나눴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 정도로 마탑의 마력 역장은 튼튼했다.
도저히 뚫을 엄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런 의미에서.
"기사님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시더라도 마탑을 뚫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예요. 역사적으로도 날고 긴다 하는 기사들과 군대조차 뚫은 역사가 없으니까요. 그러니 마탑에 들어갈 방법은 저 포탈을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푸슉!
마침 패트릭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특이하게 생긴 건물의 사출구에서 동그란 물체가 하늘 위로 쏘아졌다.
순식간에, 그리고 매끄럽게 하늘을 날아 빠르게 허공을 나는 물체는 마탑을 향해 날아갔다.
마침 패트릭이 있는 콜로니 위를 지나가는 상태인 덕분에 그 모든 광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고, 그들은 캡슐이 마탑의 쏘옥, 하고 들어가는 것까지 관람할 수 있었다.
"보셨죠? 저것만 탈취하면 어떻게든 마탑 안으로 진입하실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후우….
패트릭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설명을 끝마쳤다.
허나 설명을 끝내자마자 급격히 피로가 몰려오며 머리가 차갑게 식어갔다.
'내가 괜한 짓을 한 게 아닐까…?'
냉정해지니 새삼 느낀다.
마탑은 정말 난공불락의 요새가 아닐 수 없다고.
아무리 저 기사님들이 강하다고 할지라도, 저 마탑을 공략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포탈도 마찬가지야. 말이야 쉽지 저 건물을 탈취하는 게 성공한다고 해서 포탈을 쓸 수 있는 건 아닐 테니까. 마법사가 아니면 움직일 수 없을지도 모르고.'
아니, 아마 마법사가 아니면 절대 못 움직이는 게 정확할 거다.
패트릭이 아는 마탑은 멍청한 이들이 아니다.
오히려 한없이 증오스럽기에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적을 알아야만 상대할 방법이 나오기에.
…허나 상대에 대해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답이 나오지 않는 게 문제일 테지....
'아빠, 엄마….'
까득!
그럼에도 패트릭이 여전히 원망을 불태우는 건 억울하게 죽은 부모님 때문일 것이다.
마탑, 저들은 콜로니를 만든 이후부터 원래도 제국에서 강력했던 자신들의 지위를 더욱 크게 올린 상태였다.
귀족보다 오만하며, 상인보다 더욱 사치스럽고, 왕족보다 더욱 권위적이게 변한 것이다.
자신들이 없으면 눈보라를 막을 방도가 없음을 알기에 그 지위를 마음껏 누리는 격이었다.
급기야 마법사들의 횡포는 그 도를 넘어가기 시작했고, 귀족이 아닌 이들, 그러니까 하층민이라 불리는 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패트릭은 아직도 잊지 않는다.
가난하지만 그래도 가슴만은 따스했던 그들의 집안이 풍비박산 났던 당시의 일을 말이다…!
마법사가 실험을 명목으로 전염병을 퍼트렸고, 이로 인해 마을 하나가 쑥대밭이 되었던 사건….
또한 마을 사람들과 부모님이 죽어가고 있음에도….
- 흠, 그렇군. 이 병균은 일반인에겐 이 정도로 치명적인 건가? 까다롭군. 치료제는 사용해봤자 의미가 없겠어.
마치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은 시선.
이를 패트릭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렇게 마법사는 떠났고, 패트릭 또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패트릭은 마을에 유일하게 있는 포션을 복용하는 것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부모님이 그를 살리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포션을 몰래 먹인 것이다.
이후 패트릭은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고, 여전히 마법사에 대한 원망을 잊은 적이 없다.
어떤 이는 말한다.
마법사는 필요악이라고.
악하지만, 그래도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웃기지 마라!'
라고, 소리쳐주고 싶다.
세상에 필요악이란 건 없다. 그저 모른 척 외면할 뿐이지.
저 마법사란 놈들이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데, 그걸 다 외면하고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패트릭은 세상 모든 것을 증오했으며, 오로지 돈만을 믿었다.
신이 있지 않느냐고?
'신은 그저 방관자에 불과해.'
신은 결코 세상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지켜만 볼 뿐.
그렇기에 도움이 되지 않고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다.
허나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배신하지도 않는다.
하기에 믿는 것이다.
그리고 패트릭은 돈을 모아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 상인이 되자, 상인이 되어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버는 거야, …제국, 아니 마탑마저 없애버릴 부를 축적하는 거야.
어떻게 보면 패트릭의 인생 목표라 할 수 있으리라.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임을 안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
새삼스럽게 느끼는 거지만, 마탑은 너무나 거대했으며, 강력하기 그지없었다.
쓰러트릴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패트릭은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의 꿈이 너무 어리게만 느껴져서.
"기, 기사님들 아무래도…."
패트릭은 자신의 심경과 분함을 숨기며 가까스로 말을 이으려 했다.
아무리 봐도 저 난공불락의 요새를 단 두 사람이 무너트리는 건 말도 되지 않으니까.
냉정해지면 냉정해질수록 두 기사의 돌진은 자살행위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패트릭은 인간적으로 괜찮은 기사들이 부디 죽지 않도록 말릴 생각이었다.
부디 목숨을 소중히 하길 바라며….
다만.
"뭐 좀 보이는 거 있냐?"
"가만히 있어라. 너 때문에 집중력이 흩어지면 책임질 것이냐."
"…가만히 있을게."
"흐음, 그렇군, 저런 구조인가…."
그들은 이미 공략 준비에 들어간 상태였다.
"…기사님들?"
패트릭은 눈을 끔뻑이며 기사들을 불렀다.
무얼 하고 있나 싶어서.
그러한 물음에.
톡.
"잘 데리고 와줬다, 어린 친구. 덕분에 어떻게 공략할지 대충 가락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네."
"…네에?"
"결국 그거잖아, 무식하게 힘으로 몰아붙이면 안 된다는 거."
"??"
"가만히 기다려봐, 어린 친구. 조금 있다 보여줄 테니까."
"...?"
패트릭은 도저히 저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생긴 거랑 다르게, 손이 다정하시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투박한 손길이 왠지 모르게 따스하여 패트릭은 불안했던 마음은 어느새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 * *
이한이 아이에게 한 말은 겉치레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도움이 되었기에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다.
'난공불락의 요새란 건 알겠다. 주위에 퍼진 힘이 심상치가 않으니까.'
대략 수백 명의 주문쟁이가 염력을 사용하기에 단단하다는 건 직감한다.
저런 걸 맨몸으로 뚫을 수 있는 건 오러 유저밖에 없으리라.
허나 이한은 포기하지 않았다.
단단하다고 해서 어쩌란 말인가?
언제는 쉬운 일이 있었는가?
허나 아이가 가르쳐준 포탈이란 것이, 그러니까 캡슐이 사람을 태우고 마탑을 오르는 것을 보며 이한을 알았다.
아, 저것에도 틈이 있구나, -하는.
'당연한 얘기지. 아무리 강력한 방어막이라고 해도 완전할 수는 없을 테니까.'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다.
모든 것에는 틈이 있으며, 그 틈을 찔러 커다란 구멍을 내는 것이 공략의 법칙인 법.
그런 뜻에서….
"-보인다."
그는 운이 좋았다.
갈라하드가 붙여준 길잡이는 비범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삼색으로 물든 안광이 하늘에 떠 있는 마탑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고, 캡슐이 마탑을 통과할 때 보이는 흐름마저 창잡이는 기억했다.
갈라하드의 무수한 역사 속에서도 일곱 가지의 신비를 기술로 체화하는 데 성공한 유일한 기사.
라크 드 듀란은 기어이 천 년의 역사 동안 그 누구도 알아내지 못한 마탑의 틈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허나 아무리 틈을 찾아냈을지언정 그걸 뚫는 건 다른 얘기다.
저걸 뚫긴 위해선 저 캡슐과 같은 속도와 움직임으로 하늘을 돌파할 파괴적인 병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때마침.
"무뢰배, 네 녀석이 가진 기술 중 혹시 저 캡슐처럼 하늘로 솟구치는 동시에 성벽을 파괴할 만한 위력을 가진 기술이 있나?"
"…사람한테 그런 게 가능하냐고 보통 물어보냐?"
"네놈은 사람이 아니니까 물어보는 것이다."
"...."
"그래서, 있나 없나."
"스읍, 없지는 않은데…."
"...."
"아니…! 네가 물어놓고 왜 그렇게 봐?"
"…짐승 놈."
"!!?!"
마침 '병기'가 있었다.
*
*
*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제국력 1,024년.]
[마탑이, 아니 사람의 형상을 한 '마물'이 거주하는 탑이 반으로 쪼개지며 하늘에서 추락했으나,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황금의 대상인 패트릭의 일기에서 발췌된 내용 중-
#169 EP-40 기사들의 봄(4)
야구를 본 적이 있는가?
이한은 한때 야구란 걸 전혀 몰랐지만, 군인일 당시 조금 친해진 부사관 선배에 의해 야구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양반이 야구팬이었고, 직급 높은 선배의 취미에 어울리는 건 군대란 생태계가 가진 자연의 순환과 같았으니까.
- 저게 다 뭔 말이야….
다만 처음엔 다 어려웠다.
규칙이나 점수를 내는 법이 약간 이해가 가지 않은 거다.
타율이니 출루율이니….
못 알아먹을 것밖에 없다가 점차 야구를 보는 눈을 (강제로)키우게 되고, 어느 순간 응원하는 팀이 생기며, 어쩌다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그날따라 기분이 좋아지고, 지면 우울해지고….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어느 순간 가을 야구까지 보게 됐을 때는….
- 야구 진짜 뭐 같이 하네!
그는 상대팀에게 최고의 찬사를 날리며, 그가 응원하는 팀이 질 때마다 화병을 느끼게 되었다.
혈압이 실시간으로 오르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하고.
그리고 어느 날부터 그는 체단 시간이 되면 애들과 족구를 하는 게 아니라, 홀로 야구공을 잡아서 공을 던지고, 배트로 공을 치는 연습을 했다.
욕을 할지언정 선수들이 하는 게 어떤 운동인지 몸소 겪어보고 욕을 하자는 뜻에서.
…그리고.
- 와, 미치도록 어려운 거구나.
이게 만만치 않은 운동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더라.
공 던지는 건 정말 어려웠다.
공을 치는 것도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특히 야구공을 만져보며 놀란 건 생각보다 딱딱하고 무거웠으며, 이를 전력으로 던질 때마다 팔꿈치와 어깨가 갈려나가는 기분이란 거다.
거기다 변화구.
이것도 동영상을 보고 연습해보았는데 진짜 몇 배로 더 힘들어지는 기분이었다.
원래도 갈려나갔는데 손목도 더 갈려나가는 기분이라고 할까?
왜 투수들이 수술을 자주 받고, 팔꿈치를 갈아 낀다는 표현을 쓰는지를 깨닫는 그였다.
그 이후로 투수들에게 욕을 하지 않게 되었고, 야구를 보지 않게 되었다.
욕은 하지 않되, 화병은 나기 싫어서.
대신 캐치볼을 하는 취미가 생겼고, 이한은 변화구도 가끔씩 연습했다.
칠흑 같은 군인 인생에 처음으로 생긴 취미였고, 훗날 전역하면 사회인 야구단이나 들어갈 정도로 연습해놓자 싶었다.
그러나 설마.
'이렇게 써먹게 되는구나?'
역시 세상살이 배워두면 다 쓰게 되는 법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리곤 이한은 몸을 열심히 풀어주었다.
"그러니까, 네가 짚은 방향으로 가서 긁으면 된다는 거지? 커터로 해야 하나 슬라이더로 해야 하나…."
"…커터와 슬라이더가 무엇이지?"
"대충 알아들어."
"그래, 그러도록 하지."
"…왜 갑자기 말을 순순히 잘 들어?"
"어차피 실행하는 것은 내가 아니니까."
"어이…."
이런 무책임한 놈을 봤나.
'지가 시켜놓고는….'
허나.
"겁을 먹었다면 지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고맙다, 도발해줘서."
진짜 겁이 나도 겁을 먹었다 말할 수 없게 하는 멋진 도발이 아닐 수 없었고, 이한은 피식 웃었다.
어차피….
"네놈이 없었어도 무조건 뚫을 생각이었으니까."
그래, 그는 주문쟁이 놈들을 가만히 둘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그렇기에.
콰드드득!
"방향 지시 잘해라."
"내가 틀릴 일은 없다."
"…재수 없는 놈."
이한은 몸을 회전시켰다.
녀석은 말했다.
저 거대한 성체를 요격할 힘과 정확성, 그리고 속력이 필요하다고.
처음엔 관일창을 생각했지만….
'이걸로는 조금 부족하지.'
관일창은 위력적이지만, 컨트롤이 쉽지 않다.
하니.
콰드드득!
'내가 직접 하면 그만이다!'
이한은 허공답보를 시전했다.
허나 평범한 허공답보와는 흐름이 달랐다.
마치 두둥실 뜨듯 몸의 방향이 자꾸만 변해간다.
우우우웅!
서서히 모이는 힘의 흐름.
공기가 떨릴 정도로 강력한 힘이 그에게 집중되었고, 어느 순간 이한은 작은 태풍이 되어갔다.
그래 이것이야말로 도가의 전설이자 신선들의 고향 곤륜의 무공에서 파생되었고, 이한의 독자적인 해석이 들어간 기예.
트리스탄과의 격돌에서 가까스로 완성된 이 기예는 자신의 몸을 회전시켜 작은 태풍이 되어 상대를 꿰뚫는 포탄이 되었다.
- 운룡대팔식.
구름을 노니는 용의 움직임을 막을 것은 하늘 아래 없으니…!
콰아앙!
이한의 몸이 날아갔다.
적을 정확히 겨누며 그대로 날아가는 이한의 속도는 사출되는 캡슐과 맞먹는 속도를 자랑했다.
그리고 곧장.
파앗!
한 자루의 창이 포탄처럼 날아가는 이한보다 더욱 빠르게 앞으로 나아간다.
마치 방향을 알려주듯.
"──."
이한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창이 나아가는 방향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창이 나아가는 방향이 곧,
'틈이라는 거잖아.'
이한은 몸을 둥글게 말았다.
필요한 건 이 거대한 성을, 아니 지금만큼은 거대한 방망이에 불과한 이것을 가차 없이 긁어버릴 구속과 구위, 그리고 거침없는 변화였으니까!
까드드드득!!
작은 태풍을 연상케 하는 이한의 몸은 그렇게 하나의 공이 되어 거침없는 회전과 함께 마탑을 감싼 역장을 제대로 긁어버렸다.
면도날, 아니 톱날처럼 거침없이.
쿠구구궁!
...마탑이 뒤흔들렸다.
* * *
"내, 내가 꿈을 꾸고 있나…?"
패트릭은 자신이 보는 광경이 믿기지 않아 입을 쩍 벌렸다.
사람이 공중을 나는 것도 나는 거지만, 작은 태풍이 되어 날아가 마탑을 가차 없이 긁어버리고 있다.
...만약 남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면 마약이라도 했냐며 그를 질타하리라.
하지만 패트릭은 자신이 보는 그대로를 말할 뿐이었고, 그는 마냥 얼이 빠질 따름이었다.
그러나,
"-역시 조금 부족하군."
"기사님?"
"물러서라."
"!!"
오싹!
언뜻 차가운 인상의 기사가 내뿜는 살벌한 기세에 패트릭은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지릴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그가 내뿜는 기운은 차원이 다르게 살벌했기에.
고오오오!
붉은 기운이 감도는 아지랑이가 기사의 몸을 감싸기 시작한다.
콰직…!
오로지 한 남자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가공할 만한 살기가 세상에 유형화한 것이었고, 살기만으로 바닥을 가르고 주변 건물에 실금을 가게 하는 파괴력을 머금고 있었다.
흉흉한 별 아래에서 태어난 남자는 자신의 살기를 창 안에 담았다.
처억!
제국에서 대충 구한 창에 불과했지만, 살기가 담겨진 창은 그 어떠한 것도 꿰뚫을 거력을 머금기 시작했다.
기사의 주인, 블레이크 공작이 명명하길 [적색투기]라 이름 붙은 기사의 독자적인 힘이 점차 창에 밀집되었고, 그 창은.
파아아앗!
붉은 궤적을 그리며 쏘아졌다.
인간이 날릴 수 있는 투창의 속도가 아니라, 마치 작살포처럼 쏘아지는 창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마탑에게 적중했다.
쿠우우웅!
"됐다."
그냥 날린 게 아니다.
유일하게 마탑의 틈을 보는 사내는 안 그래도 불안정한 마력 역장을 끝장내기 위해 제대로 던진 것이었지.
"…천 년을 버텼다 했었나, 우습군."
천 년이 지나면 아무리 튼튼하게 지은 성벽조차 보수해줘야 하는 법이다.
저 정도 시간이 지나면 성의 설계도도 다 털리고 남았을 테니까.
한데 저 잡것들은 무슨 배짱으로….
"떡 하니 표적이 되어주는 것이지 모르겠군."
어리석기 그지없다.
맞춰 달라 용쓰는 것도 아니고, 저런 꼴이니 겨우 아무 대장간에서 산 낡은 창 두 자루와….
"무뢰배 한 놈한테 무너지는 거겠지."
기사는 차가운 조소를 머금으며 달렸다.
그가 조금이라도 늦장을 부리면.
─맹수 새끼가 맛있는 부분을 다 먹어버릴 테니까.
기사는 달렸다.
"...남부에는, 저런 기사들이 평균인 거야?"
주저앉은 소년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뭐 저런 괴물들이 다 있나 싶어서.
남부에 대한 자그마한 오해가 싹트는 소년이었다.
* * *
콰지지지직!
마탑의 마력 역장이 부숴진다.
무려 천 년을 버틴 역장이 단번에 부숴지는 것이다.
허나 마력 역장이 부숴지는 건 단순히 마탑의 방어막이 뚫렸다는 뜻이 아니다.
"커허어억!"
"웨에에엑!"
"사, 살…려…!"
마력 역장을 유지하는 건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들의 마력이다.
한데 이 마력이 깨진다는 건 그들에게도 큰 타격이 올 수밖에 없다.
기브 앤 테이크.
모든 것에는 리스크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마법사들은 결코 깨질 리 없다 생각한 마력 역장이 깨지는 것으로 인해 커다란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온몸의 마력이 뒤엉키는 끔찍한 감각!
이것만으로도 보름은 정양해야 할 내상이 생긴 것이었다.
허나 그들은 지금 부상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후우우욱!
마탑이 떨어진다.
천공의 성이라 경외 받는 마법사들의 성지가….
마력 역장이 풀리며 성을 공중에 띄우는 힘도 사라진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다, 당장 마법을 펼쳐!"
"마탑이 지상과 충돌한다!!"
"아, 안 돼!!"
마탑 안에는 마법사들의 모든 연구와 실험성과, 그리고 아티팩트 등이 있다.
마법사들에게 목숨과도 같은 성과가 아닐 수 없었고, 마탑이 무너진다는 것은….
콰아아앙!!!
…그 모든 것이 파괴된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마법사들이 손 쓸 틈도 없이 마탑은 지상과 충돌하며 땅을 뒤흔들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아무것도 없는 설원에 추락한 덕분에 백성들이 피해를 입을 일은 없었다.
콰자지직!
쿠구구궁...!
허나 성과 땅이 부딪치며 나는 거대한 지진만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땅을 뒤흔들었다.
쏴아아아!
설원의 눈이 모조리 다 들썩이는 충격.
아마 가까이 있는 콜로니는 갑작스러운 지진에 기겁하고 있을 것이며 여행객들은 기겁하며 걸음을 멈추지 않을까 싶은 충격이었다.
실상 이 정도 되면 아무리 튼튼한 성이라도 무사하지 못하는 게 맞다.
하늘에서 곤두박질하듯 떨어진 것인데, 건축물이 어떻게 버틸 수 있으랴.
상식적으로 무너지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마, 마탑은!"
"내 연구 자료…!!"
"…다, 다행이다, 무너지지 않았어."
…천공의 성은 조금의 균열만 일어났을 뿐, 대략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 겨우 이 정도로 무너질 리가 있겠는가?
기록에 의하면 마탑을 세울 때 쓰인 벽돌은 모두 특수한 마력 코팅을 받았으며, 재료 하나하나가 특별하다고 하는 바.
비록 공중에서 곤두박질 쳤으나, 어느 정도 버틸 내구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
"-이것도 버티나 보자."
후욱!
허나 그런 마법사들의 안도감을 농락하듯 기사는 몸을 공중으로 띄운 채 바위를 들었다.
어디서 났냐고?
그냥 땅속에 있던 걸 그대로 파낸 것이었고, 그 바위를 그대로 공중으로 띄우며 이한은 공을 던지듯이 자세를 잡았다.
그래, 그는 야구를 할 때도….
'스트레이트로 꽂히는 직구가 기분 좋았지!'
후욱!
구속 160km를 넘는 공을 던지는 투수를 향해 파이어볼러라고 부른다.
한데 말이다.
화아아악!
황소만한 바위를 300km의 속도로 던지는 투수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메테오볼러?
물론, 뭐가 됐건.
콰지지지직!
마탑 입장에선 불행이란 사실이 변하지 않았지만.
과거, 마법사들이 노예들을 부려먹어 만들어낸 그들만의 상아탑.
비마법사들을 향해 잔혹한 폭거를 저질러, 무수한 피와 눈물을 머금은 저주받은 탑은 그렇게….
"도…, 도망쳐!"
마법사들을 덮치며 그들의 피와 눈물로 적셔지려 하고 있었다.
#170 EP-40 기사들의 봄(5)
쿠구구구구궁!
"...."
콰르르릉-!
"…바깥이 소란스럽군."
콰앙!
"흠, 생각보다 길어지는 건가? 별일이군."
그는 원래 바깥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
항상 바깥과 단절된 공간에서 책을 읽고 연구를 할 뿐.
한데 오늘따라 여간 시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자꾸만 거슬리는 소리가 울렸기에.
콰아아아앙!
소리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고 점차 더 커지기만 한다.
소음공해도 이토록 크면 살인이 날 판이다.
"쯧."
타악.
그는 결국 일어섰다.
원래는 바깥으로 나갈 마음은 없었으나.
"동족들이 상대하기엔 버거운 것이 온 것인가."
약간 위험한 생물이 온 것 같기에.
그가 발을 뻗었다.
소음공해를 멈추기 위하여.
*
*
*
콰과과과광!
제국 최고의 기관.
그 어떤 이들도 돌파한 적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
마법사들의 상아탑.
범인(凡人)은 감히 오르지 못할 천공의 성.
무수한 이명으로 불리는 마법사의 성지가 분쇄되고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재앙에 의해….
천 년의 역사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고, 웬만한 기관이라면 이러한 공격에 정신조차 차리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임이 분명하리라.
하지만.
"[북풍의 바람이여 불어라]!"
"[더욱 강하게, 힘차게]!"
"[흙이여 나를 도와라], [굳건하게, 더욱 굳건해져라]."
이곳은 마탑.
마법사들은 넘치고도 또 넘쳤다.
마법사들은 감히 자신들의 성지를 공격한 이를 보고 공포에 떨기보다 분노에 떨며 마법을 펼쳤다.
파괴되는 성을 복구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방어 마법을 펼치는 이들도 있고, 마탑의 역장을 고치려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이들은….
"저놈이다! 저놈이 감히 마탑을 공격했다!"
"이놈…!!"
마법사들은 곧장 마법을 난사했다.
어떤 이는 마법사를 생각하면 고아하고 우아하게 싸우는 줄 알겠지만, 지금 모습만 보면 우아하긴커녕 야만적이기 그지없다.
뭐, 자기 집을 파괴당했는데 화가 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으나, 항상 냉정함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 마법사가 보일 모습치곤 저급하다.
하여….
'이것들 뭐지?'
문득 침입자는, 마탑을 붕괴시킨 1등공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일방적으로 마법사를 농락하는 그였으나, 어쩐지 묘하게 찜찜한 것이었다.
이한, 그는 본의 아니게도 마법사란 생물에 대해 잘 안다.
혐오하다 보니 그 누구보다 잘 알게 된….
말 그대로 현 시대에서 가장 열심히 마법사를 잡다 보니 전문가가 되었다 할 수 있으리라.
…그렇기에 이상했다.
'왜 이리 허접하지?'
갖가지 주문이 들린다.
그를 위협하는 주문이.
"[내 앞을 가로막는 자에게 일격을]! [타올라라, 더욱 뜨겁게 타올라라]!"
"[잎이여 속삭여다오], [흙이여 부디 철퇴를 내려다오]."
불꽃의 활과 잎사귀로 이루어진 암기, 흙으로 이루어진 망치가 그를 위협한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어어억!
'상대하기 너무 쉽잖아….'
이한이 주먹을 뻗으며 발생하는 권풍(拳風)이 그를 덮치는 마법을 깔끔하게 지워버렸다.
단순히 마법만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몸이 허약하기 그지없는 마법사들은 예기치 못한 일격에 대응하지 못하고 그대로 날려졌다.
압도적.
이한은 마법사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
한데도 그는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약한 건, 아니야….'
약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수준은 높았고, 마법은 매서웠다.
아카데미에서 마법 익히는 생도들은 비교하는 것조차 안 될 노릇.
…허나 그뿐이다.
'이놈들, 샌님이다.'
그리고 이한은 확신했다.
자신이 상대하는 이들이 왜 이토록 약한지를.
실전 경험의 부재.
이한은 마탑이란 안식처가 주문쟁이에게 '독'이 됐음을 깨달았다.
'워낙 안전한 곳에 있으니 사냥하는 법을 모르는 거야. 한없이 약한 놈들은 농락하지만, 전투란 것 자체를 해본 적이 드문 거겠지.'
싸우면 싸울수록 확연하게 느끼게 된다.
이 주문쟁이들은 일종의 동물원에 사는 호랑이와 마찬가지다.
야생성이 제거됐다는 뜻이 아닌, 그저 사냥을 못하는 짐승.
차려진 먹이만 먹어치우는 놈들이 아닐 수 없는 바.
우습다.
이러니 기습 따위를 당하는 거다.
너무 약해서 실망스러울 정도다!
해서….
─이걸로 끝날 리가 없잖아?
이한은 더욱 경계심을 드높였다.
다시금 말하지만 이한은 주문쟁이에 대해서 본의 아니게 잘 안다.
전문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는 주문쟁이를 혐오할지언정 과소평가하거나 얕보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보다 주문 쓰는 종자를 위험하게 여기면 여겼지.
하여 찜찜하다.
자신이 위험하게 여기는 주문쟁이가 겨우 이것밖에 안 된다?
...그럴 리가.
이한은 결코 얕보지 않았다.
무려 천 년을 제국에서 기생한 놈들이다.
한데 겨우 이걸로 끝날 리 없다.
혐오하는 만큼 신뢰하기에.
아니나 다를까.
[Uoooo-!]
놈들은 이한의 신뢰에 보답하듯 드디어 자신들의 저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야 그럴듯한 게 나오네."
주문쟁이, 혹은 마법사라 불리는 종자들의 이명은 '준비하는 자'다.
여러 뜻이 있지만, 이한의 식대로 풀이하자면 위기를 항상 대비하는 음흉함이 있는 놈들이란 뜻이다.
그리고 저 음흉한 것들은 기어이….
"청, [청동 거인]이 움직인다!"
"저 침입자는 이제 끝났군."
"허허, 내 생애 설마 저것이 움직이는 걸 보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쩝, 너무 늦군, 늦어."
쿠궁!
쿠구궁!
쿵…!
반으로 부숴진 마탑의 안.
그곳에서 점차 거대한 발걸음을 내딛으며 그것이 나타났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10미터의 신장을 자랑하며 '거인'이라 불려도 이상할 것 없는 청동의 거인이 말이다.
그리고 한 마리가 아니라, 무려.
"…열두 마리라."
하.
'진짜 재밌는 걸 숨기고 있었네, 이것들.'
이한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열두 마리의 거인을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역시 주문쟁이 소굴은,
'이게 맞지.'
우직!
이한은 우악스럽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 * *
마탑의 마법사들은 비록 한 번도 뚫린 적이 없는 마탑의 마력 역장이 파괴된 것에 당황하며 순간적인 대응이 늦긴 했지만, 그렇다 한들 그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적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탑에는 저러한 침입자를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 더없이 널렸으니까.
당장 청동 거인만 해도 마탑의 모든 지혜가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마도공학의 산물이었다.
단 한 개의 기체만으로도 거인은 영지 하나쯤은 농락하고 파괴하는 게 가능할 터인데, 그런 청동 거인이 무려 열두 기체나 있는 상황.
침입자의 죽음은 확정된 것이었-.
콰지직!
"…??"
...마법사들은 제 눈을 의심했다.
"거, 거인의 팔이…?"
"…뽑혔다?"
청동 거인의 팔이 무척이나 쉽게 뽑힌 것이었다.
마법을 이용한 것도 아니다. 그저 단순히.
콰직!
저 침입자가, 기사가 힘으로 청동 거인의 팔을 뽑아버린 것이다,
압도적인 힘으로 말이다.
허나 만약 기사가 저런 생각을 읽었다면 비웃었을 것이다.
자신은 힘으로 뽑은 것이 아니라, 기술을 쓴 것이었으니까.
[내가중수법]이란 기술을 말이다.
쿠구구궁!
땅울림을 보이며 거인들이 기사를 덮쳤다.
허나 기사는 전혀 겁을 먹지 않은 채 걸음을 밟았다.
후욱!
청동 거인을 농락하듯 유유히 놈들의 빈틈 사이를 빠져나가는 기사의 몸놀림은 바람과 같았다.
저 큰 덩치로 저토록 유연하면서도 재빠르게 움직이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을 따름.
청동 거인 또한 거대한 몸집과 다르게 재빠를 터인데, 그걸 너무 쉽게 피하고 있으니 마법사들 입장에선 어안이 벙벙할 지경.
추가적으로.
퍼억!
기사는 비범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움직임을 보이는 동시에 청동 거인에게 주먹을 꽂아 넣었다.
큰 덩치를 자랑하는 만큼 타격할 곳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리고 주먹에 맞은 거인은.
꾸드드득!
…기가 막히게도 내부에서부터 부품이 파괴되며 다리 부위가 깨져나가고 있었다.
콰지직!
마치 청동 거인을 농락하는 것 같은 기사였고, 청동 거인이 원래 저토록 약한 물건이었나 싶었지만.
쿠웅!!!
청동 거인의 주먹이 땅바닥에 닿는 순간 크게 들썩이는 것을 보며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청동 거인은 강하다.
전장의 학살자이자 파괴신이 다름 아닌 청동 거인인데, 약할 리가 없지 않은가.
허나 이 말은 바꿔 말하자면.
"-저놈은 대체 뭐냐?"
저 기사가 청동 거인을 농락할 실력을 갖추었다는 뜻도 되리라.
마법사들은 경악을 숨지지 못했지만, 곧이어 정신을 차리고 마법을 준비했다.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그들이 나서서 저놈을….
숭겅!
"!?!"
"데, 데브릭 공!!"
"동족이여!!"
마법을 날리려고 하던 마법사 한 사람의 목이 그대로 날아갔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청동 거인과 기사의 전투에 몰려 있을 동안 한 마리의 흉랑은 이미 전쟁터에 도착한 상태였는 바.
그리고 흉랑은 결코 방심한 먹잇감을 놓치지 않고 바로 숨통을 끊어놓았다.
지금처럼.
"머저리 같은 놈들. 나설 거라면 진작 나섰어야지, 어디서 기사의 전투에 끼어들려고 하는 것이냐. 부끄러운 줄 알아라, 명예도 모르는 것들."
라크.
전장에 도착한 창의 기사는 명예도 모르는 마법사들을 향해 일갈하며 창을 들었다.
무뢰배에게 모두 빼앗길 것이라 여겼는데, 다행스럽게도 아직 상대할 놈들이 많은 것 같았다.
'흠, 다만 가장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은 무뢰배가 차지한 것인가?'
청동 거인.
꾸드드득!
무뢰배와 싸우는 저 거인들은 자기 수복 기능이 있는지 파괴된 팔이나 다리가 다시 재생되고 있었다.
거기다.
철컥! 철커덕.
놈들은 인간의 형상으로 무뢰배를 이기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 자의적으로 판단한 것인지 짐승의 형태로 변화하고 있었다.
사자와 곰, 호랑이와 늑대, 살쾡이와 원숭이 등으로.
'세상이 넓긴 하군.'
역시 마탑. 특이한 것들이 많다.
하여 아쉽다.
저것을 자신이 상대했다면 좋았을 텐데.
'실망스러운 부스러기만 남은 것 같군.'
라크가 그렇게 미간을 찌푸리려고 할 때….
[-벼락이여].
파지지직!!
라크는 자신을 노리는 강렬한 일격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파앗!
물론 자신을 덮치는 벼락을 빠르게 쳐내긴 했지만, 팔이 약간 저릿했다.
충격을 모두 쳐내지 못한 것이었다.
"장로님!"
"스승님들이 오셨어…!"
"끝났군."
후우욱.
하늘을 나는 다섯 명의 노인들이 등장하자 마법사들이 언제 겁을 먹었냐는 듯 희소를 머금었다.
청동 거인이 마탑의 수호신이자 적을 격멸하는 파괴 병기라면, 저들은 여타의 마법사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진 고위 마법사였으니까.
마탑의 1급 마법사, 다른 이름으로 대마법사라 불리는 이들.
제국 내에서도 단 일곱 명밖에 없다는 대마법사들 중 다섯 명이 지금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걸 튕겨내?].
[범상치 않은 전사군].
[그래 봤자 하등한 생물이지 않은가].
[그건 그렇군].
[호오, 실험체로 제격일 것 같은데-].
콰직──!
대마법사들이 입을 열 때마다 그것이 곧 주문이 된다.
입을 열 때마다 강렬한 압박감이 대기를 짓눌렀고, 건물을 산산조각 낸다.
살아있는 마력 덩어리와 같으며, 괴물도 저런 괴물이 없을 수 없다.
고대에는 대마법사란 족속들이 신으로 군림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째서 숭배 받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고대에는 신으로 숭배받기까지 한 대마법사 다섯을 눈앞에 둔 남자는.
"...그래, 이제야 좀 덜 실망스럽군."
더할 나위 없이 만족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래, 이래야지….
"그 고생을 하며 제국까지 죽이러 온 보람이 있는 것이다."
화아아악!
라크의 몸에서 막대하다 못해 농후한 살기가 내뿜어졌다.
어찌나 농후한지 안개처럼 자욱하게 퍼져나가는 살의!
타고나길 수천 명분의 살기를 타고난 흉랑은 한 번씩 마음껏 살기를 뿜어낼 시기가 있어야 했다.
원래는 그의 주군인 블레이크 공작이 자주 도와주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게.
'마음껏 죽여도 되겠군.'
명분은 충분하다.
감히 주군을, 갈라하드의 마검을 노린 불경한 놈들…!
저들에게 내려야 하는 처벌은 오로지 하나.
'사형!'
흉랑은 마법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신났네, 저 자식."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한테 미친놈이라고 욕할 때는 언제고, 막상 오니까 자기가 더 신이 나 있다.
놀이공원 가기 싫다고 하다가 조카들보다 더 신나게 노는 삼촌도 아니고, 참.
"스읍, 저것들은 내가 상대하고 싶은데…."
허나 한편으론 아쉬움도 느낀다.
방대한 마력을 내뿜는 아크 메이지 같은 것들은 비교적 그가 상대하고 싶었으니까.
화르르르륵!
…이런 이상한 로봇, 아니 골렘이랑 드잡이나 하려고 제국까지 온 게 아니거늘.
'그리스의 불'을 연상케 하는 화염을 입으로 내뿜는 청동 거인들이었고, 이한은 거침없이 검을 뽑으며 횡으로 그었다.
그냥 일격으론 어차피 다시 재생을 반복할 녀석들이다.
그러니!
우우웅!
이한은 자신의 검에 '별무리'를 담았다.
서걱!
[Uoooo!]
"…너희도 슬픔을 느끼냐?"
이한의 일검이 청동 거인의 몸을 반으로 쪼개, 아니 소멸시켜버렸다.
그의 검에서 내뿜어지는 강렬한 힘의 응집력은 자력으로 재생하는 청동 거인마저 복구할 수 없게 완전히 지워버린 것이다.
허나 이는.
"…위력이 이 정도였구나."
딱히 이한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실전에서 써본 것이 처음인지라 위력이 이 정도일 줄 몰랐던 것뿐.
- 검기성강.
'검강'이라고도 불리는 검기의 상위호환을 보며 이한은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사람한테는 쓰지 말자, 사람한테는….'
괜히 살인자가 되고 싶지 않으면.
#171 EP-40 기사들의 봄(6)
청동 거인들은 위협적이었다.
자기들이 마냥 쇳덩어리로 이루어진 프라모델이 아니란 것처럼 자율적으로 움직이며 적을 섬멸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사람의 형상을 했다가 뜬금 동물로 변모하여 덮쳐들 때는 약간 기겁까지 했다.
꾸드드득!
콰드드득!
[Uoooo!!!]
"황소로 변신하는 건 또 뭐냐?"
황소로 변신한 청동 거인이 달려든다.
날카롭게 번뜩이는 뿔은 닿기만 해도 몸통이 반으로 쪼개질 듯한 절삭력을 머금고 있었으나, 이한은 이를 두 손으로 막아냈다.
금강.
그의 손을 자르기엔 절삭력이 한참 부족한 것이다.
그러나 절삭력은 부족할지언정 힘은 만만치 않았다.
꾸드드득…!
전신의 근육이 요동치며 거대한 청동 황소의 전력 들이박기를 맨몸으로 막아낸다는 것은 그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실상 이런 놈과 인간이 힘겨루기를 한다는 전제부터가 오류가 아닐 수 없다.
허나 이한은 해냈다.
지난날 드디어 7톤 스쿼트까지 가능하게 된 이한이다.
노력의 성과였고, 그의 근력은 나날이 성장하며 더욱 뛰어난 근질을 가지게 된 바.
물론 목표하는 10톤 데드리프트까진 멀었으나, 그래도 이런 황소 따위야…!
'날려버리면 그만이다!'
이한은 [경]을 사용했다.
안 그래도 강했던 힘의 발산은 그를 월등히 뛰어넘는 질량의 물체마저 들어 올리는 거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개미가 자신보다 한참 큰 사냥감을 이끌고 굴까지 가고, 장수풍뎅과나 사슴벌레과의 곤충이 손에 움켜쥐었을 때 온몸에서 비범한 힘이 느껴지는 것처럼.
이한의 경은 그러한 비범한 힘을 발산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경을 익혔다고 해서 아무나 가능한 행위가 아니다.
수천 킬로그램의 질량을 상시로 든다는 건 그만한 질량을 평온하게 들 수 있는 '그릇'이 만들어졌다는 뜻도 되었고, 그 그릇을 만든 당사자만이 가능한 거력일 테지.
"으아아아아아아!!"
이한은 기합을 지르듯 힘껏 소리쳤다.
기합이란 단순히 포효가 아닌, 온몸의 힘을 더욱 크게 활성화시키는 요소 중 하나.
기백을 담은 그의 포효는 쩌렁쩌렁하게 울렸고, 근처에 있던 마법사들은 고막이 터지며 귀를 부여잡기 일쑤였다.
쿠구구궁…!
허나 마법사들의 고막이 터지는 것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청동 황소가 번쩍 들리며 허우적거리는 광경이 아닐 수 없으리라.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도무지 파악되지 않은 전투 속에서 이한은 그대로 황소를 던져버렸다.
어느 쪽으로?
당연히….
[──!?]
청동 거인들이 있는 쪽으로.
콰앙, 하고 엄청난 폭음이 일순 울렸다.
날아간 청동 황소에 부딪치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허나….
푸슉!
"…아프네."
이한이라고 해서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청동 황소를 날려버리며 그 또한 한계 이상의 힘을 쓰고 만 것인지 손바닥에서 피가 터졌다.
'너무 무식했나?'
역시 무식하게 힘으로 몰아붙이는 게 좋은 방식은 아니다.
머리도 쓰면서 싸워야지.
다만.
'검강을 계속 쓸 수도 없는 일이니, 원.'
기어이 청동 거인 세 마리를 썰어버렸으나, 이후에는 체력 때문에라도 검강을 그만 써야 했다.
검둥이가 자연스럽게 쓰는 것과 달리, 아직도 힘의 낭비가 심하여 자유롭게 쓰는 건 불가능했다.
좀 더 다듬을 시간이 필요할 터.
그런 뜻에서 남은 청동 거인은 검강 없이 상대해야만 하는 게 맞다.
마냥 청동 거인만 상대하면 체력이 바닥나건 말건 검강을 뽑아내면 될 테지만, 그의 느낌상….
'청동 거인이나 늙은 주문쟁이로 끝이 아닐 것 같거든.'
이한은 직감했다.
마탑에는 아직도 남은 것들이 있다고.
지금 나온 적들만큼 위협적인 게 한참이나….
이게 참.
'그래, 이래야 주문쟁이지.'
기대에 보답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한, 마법사를 증오하고 경멸하는 만큼 높게 평가하는 사내는 아이러니하게도 마탑이 약하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잘못된 애증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만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 * *
한편, 제국 전역은 난리가 났다.
제국의 명물과 같은 천공의 성이 갑자기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광경은 아무래도 볼 사람은 모두가 볼 수밖에 없었고, 이 소식은 금세 제국 전역을 뒤흔들었다.
-대체 누가….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허어…!
-천벌이야, 드디어 그놈들이 천벌을 받는 게야….
왕족, 귀족, 평민 할 것 없이 무수한 이들에게 소식이 전해졌고, 제국은 빠르게 회의에 돌입했다.
주제는 '마탑을 구하러 가야 하나, 아니면 가지 말까'에 대한 것이었으나, 현재의 제국은 개판이었고, 회의에 참석해야 할 관료조차 미적지근하게 움직일 따름이었다.
또한 당대 제국에는 마탑에 대한 사감이 즐비한 바.
느릿하게 움직이는 게 당연했다.
그나마 멀쩡하다 평가받는 번왕과 제후들이 있긴 하지만, 이들은 마탑이 피해를 보는 것으로 '황실을 비롯한 중앙 귀족들이 피해를 본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탑을 도우러 가지 말자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인과응보.
평소 얼마나 원한을 쌓고, 제국 이곳저곳에 밉보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허나, 한 가지.
분명히 말해 마탑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들었을지언정-.
"-마탑이 진정으로 패배할 리 없다는 '확신'과 '신뢰'가 깔려 있군."
제국의 그 누구도 마탑이 없어질 리 없다는 확고함이 엿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니리라.
비록 위기를 맞이했을지언정 언제든 극복하리라 여기면 여겼지.
"'그 마탑'이니까요."
"…그렇군. 마탑이지."
"...마탑이 그렇게 대단한 거예요?"
"...."
"모, 모를 수도 있지, 그, 그렇게 보기 있어요!"
"…그저 너무 의외의 발언을 들어 놀랐을 뿐이다. 무례했다면 사죄하지, 영애."
"흥, 됐어요!"
"…하하…."
회색머리 소년이 어색하게 웃으며 개성 강한 두 남녀의 날 선 대화에 난감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곧장 흑발머리 소년을 대신하여 요정이 강림한 듯한 금발벽안의 아름다운 소녀를 향해 소년은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무려 천 년이 넘게 제국을 호령한 조직이니 제국인들 입장에선 그들이 무너질 리 없다는 기조가 당연히 깔려 있을 겁니다. …설령 자신들의 나라가 무너지더라도 끝까지 살아남으리란."
"…그 정도면 약간 신앙 같은 게 아닐까요?"
"신앙이 생길 법도 합니다. 그들이 천 년을 넘게 모은 힘은 팬드래건조차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일 테니까."
"흐음, 그래요…?"
"…?"
"그렇게 대단한데, …왜 교관님이랑 라크 경한테 저렇게 당하고 있는 건데요?"
"...."
…일순 회색머리 소년, 데릭은 할 말을 잃었다.
소녀, 아이린 윈들러의 물음에 대해선 자신조차 무어라 입을 열 수가 없어서.
그리고 그런 그를 대신하여….
"…저건 그냥 저 두 사람이 이상한 거다."
흑발의 검사, 로엔이 질린 반응과 함께 답변했다.
하긴, 질리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청동 거인, 저것들 분명 싹 다 레벨7.5에 해당하는 병기인 걸로 아는데….'
청동 거인, 기체의 이름은 <탈로스>.
무적의 청동 병사이자, 마탑의 모든 지혜가 모인 거인.
가진 바 힘은 오우거의 약 3배이며, 몸놀림은 하이에나처럼 날렵하다.
추가적으로 자동수리 능력과 섭씨 1,500도의 불을 내뿜으며, 동물의 형태로 변신도 가능하다.
'한 개의 기체만으로도 도시 다섯 개는 파괴할 강대한 병기지.'
한데 그런 병기가 무려 열두 대.
저 정도면 작은 소국 정도는 하루 만에 지워버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교관님 혼자서 농락하네."
데릭은 스킬 [확대]와 [시력강화] 등으로 교관의 싸움을 보았다.
그야말로 농락.
홀로 청동 황소를 들어 올려 날려버릴 땐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저게 진정으로 인간이 내는 힘이 맞는 건가?
"아니, 농락하는 것이 아니다. 교관도 최선을 다하는 중이지."
"…예에?"
"기술과 힘, 그리고 기백으로 몰아붙이는 거다. 다만, 조금 무리하시는군. 기운을 아끼고 있어."
"저, 저게 기운을 아끼는 거라고요?"
"그래, 아마 다음 상대를 대비하는 것이겠지."
"...."
…역시 전사의 시선으로 보는 건 다른 것일까?
데릭과 다른 시선으로 싸움을 관찰하는 로엔이었고, 로엔은 심각하게 표정을 굳혔다.
"헤에, 그렇구나. 그럼 라크 경도 지금 힘을 아끼는 중인 거네요."
물의 마력으로 만든 볼록 렌즈를 통해 멀리서 치러지는 전투를 보던 아이린 윈들러는 라크의 전투에서 시선을 주었다.
그래도 안면이 있다고 어찌 싸우는지 보는 것이었다.
대마법사 다섯과 싸움에도 조금도 밀리지 않고, 그들의 마법을 공략하며 오히려 치명적인 살법을 쓰는 라크의 모습은 말 그대로 전율마저 드는 것이었다.
이한의 전투가 아슬아슬한 서커스와 같다면, 라크의 싸움은 정교한 기계체조를 보는 느낌이다.
한끝 실수조차 용납해선 안 되는 아슬아슬한 전투가 말이다.
'과연 흉랑이군.'
'뭐, Lv.8의 영웅이니까. 당연하지.'
각각 두 소년의 평가는 갈렸다.
미래를 아는 회귀자는 흉랑이 얼마나 강대한 존재인지를 기억하기 때문이고, 또 한쪽은 동세대 영웅 클래스 중에서도 그가 최상급 티어임을 알기에 고개를 주억거릴 따름이었다.
추가적으로….
띵-.
━
이름 : 라크 드 듀론.
종족 : ??
특성 : [천살성(Lv.8), 귀재(Lv.6), 만병대가(Lv.7), 철인(Lv.5), 신비의 체화자(Lv.8), 강의 수호자(Lv.5), 올라운더(Lv.5)]
천살성 : 삼십육천강의 별에서 태어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특성. 가공할 만한 살기와 비정상적인 살육 욕구를 가지게 된다. 희대의 학살자가 될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천살성의 특성 덕분에 귀재(鬼才)의 재능을 타고났다.
귀재 :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닌 귀신이 내린 재능을 가진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특성. 천재와 다른 소름 돋는 특별한 자질과 영특한 머리를 가지게 되며, 오싹한 이해력과 능력을 보인다. 사이코패스가 될 확률이 높지만, 스승이 누구인가에 따라 올바른 길로도 갈 수 있다.
만병대가 : 모든 무구를 자유롭게 다루는 달인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 어떠한 무기를 잡아도 고수가 될 수 있다. 허나 한 가지 무기에 집중했을 경우 더욱 특별한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게 해준다.
철인 :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자에게 주어지는 특성. 강대한 기운에도 몸이 버틸 수 있게 되며, 체력 또한 강맹하게 해준다.
신비의 체화자 : 신비를 기술로 승화한 자에게 주어지는 특성. 신비란 특별한 힘을 일곱 개 이상 체화시킨 상태이며, 그 힘은 평범한 신비를 뛰어넘고, 비범한 신비와도 맞먹는 상태다.
강의 수호자 : 강에서 일만 번의 전투를 치른 자에게 주어지는 특성. 배와 강물 위에서도 압도적인 전투능력을 부여한다. 또한 바다에서도 연계가 된다. 물 위에서 전투를 할 시 능력 상승을 보인다.
올라운더 : 어떠한 위치에서도 열 사람 몫을 해내는 자에게 주어지는 특성. 어떠한 역할이 주어지더라도 모두 능숙하게 해내며, 대처하는 게 가능하다. 위기 상황 속에서도 항상 제 실력을 발휘한다.
━
-역시나.
최상급 티어다운 놀라운 특성이다.
'천살성이나 귀재는 갈라하드 공작 덕분에 억제하는 데 성공한 거겠네, 원래는 레벨6까지 올리다 자멸하는 게 정상적인데, 저걸….'
'만병대가나 철인은 뭐, 저 정도 재능이 있는데 당연히 얻겠지.'
'신비의 체화자라, 와아, 저건 그냥 개사긴데? 뭐 저런 걸 가지고 있지…?'
'강의 수호자라…. 거인 학살자랑 맞먹는 효율을 보이는 걸로 아는데, 완전 레어네.'
'올라운더!? 저것까지 있으면 그냥 사기잖아? 저 사람도 이기라고 만든 캐릭이 아닌데, 이건….'
보면 볼수록 헛웃음이 다 나온다.
천살성과 귀재 하나만으로도 최상위인데, 다른 특성도 1티어밖에 없다.
실상 특성만 보았을 땐 그 누구보다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셈이다.
'물론 특성만으로 모든 게 결정되진 않겠지만.'
당장 북부의 대전사 막시무스의 특성은 교관님을 압도하는 요소가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실전에서 교관님이 밀리지 않았었다.
이처럼 특성은 그저 그 사람이 가진 재능과 능력을 글로 보여줄 뿐이지, 강함의 격차를 보여주는 게 아니다.
그저 도구에 불과하며, 그 도구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는 개인의 몫일 뿐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저 든든한 특성을 가진 레벨8의 맹자가 교관님의 편에서 같이 전투를 치르고 있다.
대마법사들과 싸우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해야 할 일은.
"공자님, 공녀님, 이제 움직이시죠. 솔직히 저희가 지각했잖아요."
교관님이 준 '미션'을 완수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두 남녀는 데릭의 발언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만히 저들의 전투를 구경할 시간이 아님을 자각하며.
다만….
"지각하고 싶어 지각한 게 아니지 않나, 도리어 하늘을 날아서 온 우리보다 더 빨리 온 저 두 사람이 이상한 게 아닐까 싶군."
"데릭 조교님이 가지고 온 아티팩트 불량 아니죠?"
"…불량 아닙니다, 저분들이 그냥 비정상적인 거죠. 그보다 저 조교 아닙니다!"
"그, 그랬죠, 참."
자신들이 지각하고 싶어서 지각한 게 아니라, 아티팩트로 하늘을 날아온 그들보다 달려서 더 빠르게 도착한 그들이 이상한 게 아닐까 싶었다.
세 남녀는 인간에게 불가능이 없음을 몸소 가르쳐주는 교관의 가르침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임무 수행을 위해 재빨리 움직였다.
"…우리 애들이 슬슬 도착했을까?"
이한은 믿을 만한 2남 1녀를 떠올렸다.
원래는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으나, 혹시나 싶은 마음에 미리 태창이 녀석을 통해 말을 전달해 놨다.
듣기론 공중비행 아티팩트가 있으니 잘 올 수 있다고 했던가?
'3인용만 아니었으면 나도 그거 타고 오는 건데.'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며 피식 웃고 있자니.
...끼…끼이이이…이익!
"…아, 화내지 마라. 너를 무시하는 게 아니니까."
이한은 자신의 상대방에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저 잠시 애들이 얼마나 일을 잘 처리해줄지 걱정했을 뿐이다.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니….
"이제 푹 쉬어라."
[------.]
…끼이이...….
쿠웅…!
마지막 남은 청동 거인이 끝까지 이한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닿지는 못하였다.
…그대로 굳어 활동을 정지했기에.
"…만만치 않은 놈일세."
이한은 혀를 내둘렀다.
강한 녀석이었다.
마냥 힘이 강하거나 변신도 할 줄 알고, 불도 내뿜어서 강하다는 게 아니다.
더럽게 끈질겼다.
아무리 때려도 계속해서 재생하는 주제에 끊임없이 달려든다.
지침을 모르고 더욱 세련된, 좀 더 나은 방식을 통해 덤벼든다.
놀라웠다.
아마 수복 능력 외에도 학습 능력도 있다는 거겠지.
만약 이 청동 거인이 조금만 더 발전했다면 이한조차 이기는 게 쉽지 않았을 터였다.
허나 승자는 그였고, 패자는 청동 거인이었다.
하니.
"고생했다."
툭.
이한은 청동 거인을 지나치며 툭 쳤다.
수고했다는 듯.
파스스스슥….
청동 거인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마탑의 명령에 따라 천 년간 마탑을 수호하던 수호신의 최후였다.
허나 안타깝게도 그런 수호신의 최후에도 눈길을 주는 이들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콰르르르릉!!
…여전히 큰 전투가 치러지는 중이었으니까.
"이야, 늙은 주문쟁이들이 확실히 매섭긴 매섭네."
하늘 위를 가득 매운 먹구름이 반시계 반향으로 회전하며 거대한 기단(氣團)을 형성한다.
천둥번개를 비롯한 바람, 그리고 회오리가 요동치며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있는 것이었다.
사이클론(Cyclone).
그것도 특대형 사이클론이 덮치며 사람을 공격한다.
빌어먹게도 웅장한 파괴의 자연경관을 한차례 감상한 후 이한은 물었다.
"살아있냐?"
"...."
"음, 드디어 죽었나?"
"…멋대로 죽이지 마라, 무뢰배."
"쯧, 살아있네."
"...이놈!"
"얼씨구."
기운이 넘치네, 자식.
이한은 창잡이 주변에 널브러진 주문쟁이를 보았다.
한 서른?
하나같이 목이 떨어져 있다.
허나 저런 허접한 주문쟁이에게 시선을 줄 필요는 없었다.
중요한 건 귀찮기 짝이 없는 늙은 주문쟁이 다섯 마리였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겨우 팔 하나 자른 게 다냐?"
"크윽!"
늙은 주문쟁이 한 마리의 팔을 자른 것밖에 하지 못한 모습이 영 실망스럽다.
이한의 질타였고, 라크는 분하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본인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질타라는 듯이.
...마법사들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이었음에도.
그들의 대화를 들은 마법사들은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몸을 떨 따름이었다.
마치 천적 앞에서 굳은 피식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