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던전 도시 테일 (1)
클라리스.
제국 전체를 뒤흔들고 귀족들을 적대하는 반란군.
그 구성원은 대부분 귀족에게 탄압을 받았던 마족이나 수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목적은 제국을 멸망시켜 차별받는 종족들을 해방하는 것이었다.
그 일원이 지금 우리를 습격해 온 것이었다.
"서로 힘 빼지 않는 게 어때? 어차피 지킬 용병도 더 없는 것 같은데."
모습을 드러낸 남자의 왼팔엔 클라리스를 상징하는 문신이 있었다.
방금 일어난 살인과 자신은 무관하다는 듯 말끔한 웃음을 짓고 있다.
"도련님, 괜찮으신가요."
에드나가 달려와 내 앞을 막아섰다.
이어서 카인도 에드나의 옆에 서서 경계 태세를 취했다.
남성은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는지 웃기 시작했다.
"하하, 우리 고귀한 귀족께서 이제는 메이드 뒤꽁무니에 숨는 건가? 혼자라고 무시하지는 마."
남성이 손을 들어 올리니 숲에서 다른 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만 온 게 아니니까."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열 명 정도의 인원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검과 도끼로 무장한 여덟 명과 로브를 입고 뒤에 서 있는 두 명.
방금 전 용병들의 목숨을 앗아간 마법사인 듯했다.
나는 내 발밑에 쓰러진 용병들의 시체를 봤다.
'활달하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는데.'
싸늘한 주검이 돼 버린 용병들.
생기가 없는 눈동자는 이제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하게 됐다. 활기차게 웃던 입술이 열릴 일도 다시는 없을 것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식사를 나눠 먹던 사람들이었는데.
싸늘해진 감정을 숨기고, 앞으로 나선 남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날 잡으려는 거지?"
우선 적들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아무리 반란군이라지만 공작가를 건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베네딕 공작의 분노는 반란군의 수뇌부조차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우리는 앞으로 대대적인 귀족 숙청을 시작할 거야. 제국의 대들보인 공작가의 공자가 마법도 못 쓰는 머저리라면 당연히 먼저 노려야 하지 않겠어?"
말단의 독단적인 행동이었나. 이 일로 찾아올 여파는 생각지도 않고 벌인 일인 듯했다.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있을 때 습격을 당하는 바람에 허무하게 두 사람을 잃고 말았지만, 상대가 누군지를 아는 상태에서 당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나지막한 소리로 에드나와 카인에게 말했다.
"에드나, 어때 할 수 있어?"
"네, 문제 없을 것 같아요."
"카인, 너는 어때?"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내가 신호를 보낼게. 그리고 카인은 가능하다면, 뒤에 있는 마법사 중 하나는 살려서 데려와."
계획을 전달한 나는 두 팔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래, 그래 목숨을 부지하려면 그래야지."
날 비웃던 남성은 웃으며 내게 걸어왔다.
"에드나, 카인 준비됐어?"
"응?"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뒤에 있던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러자 앞에 있던 남자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적들을 향해 두 손을 펼쳤다.
"눈 감아!"
내 말이 끝나자마자 양손에서 마법이 발동됐다.
1서클 빛 마법 라이트.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라이트 마법과는 다르다. 부여 마법을 사용해서 한층 더 강력하게 만들었다.
강해진 라이트 마법은 섬광탄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강렬한 빛이 어두운 숲을 한순간 하얗게 물들였다.
"으아악! 눈, 눈이!"
"뭐,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앞이 안 보여!"
"이 새끼가! 무슨 짓을 벌인 거야!"
시야를 잃은 적들이 당황한 것이 보였다.
내 앞에 있던 남자 역시 허공에다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지시에 따라 눈을 감고 있던 두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카인은 후방에 있는 마법사들에게 곧장 돌격했다.
에드나 역시 바로 마법을 시전했다. 목소리가 가라앉은 것을 보니 화가 머리끝까지 난 모양이었다.
"...감히 도련님에게 위협을 가하다니."
에드나가 두 손을 펼쳤다. 손바닥 가운데 붉은 피가 구슬처럼 맺혔다.
"블러드 스피어."
에드나가 나직하게 중얼거리자 피로 만들어진 구슬이 지면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윽고, 땅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젠장!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허둥대고 있는 적들의 발밑에서부터.
"으아악!"
지면을 뚫고 솟아오른 붉은 가시가 적들의 몸을 가차 없이 관통했다.
뱀파이어의 특기인 혈마법이다.
적들은 종잇장처럼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모든 적이 바닥에 쓰러지고 난 뒤 나는 에드나를 멈춰 세웠다.
"에드나, 끝났어."
고개를 끄덕이며 에드나는 마법을 거뒀다.
눈앞엔 참혹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에드나의 강함을 다시 실감하면서도, 이런 인물이 어째서 유클리드를 그토록 따랐는지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도련님, 여기도 정리했습니다."
카인도 마법사 한 명을 질질 끌며 다가왔다.
상처 하나 없는 것을 보니 큰 위기는 없었던 모양이다. 카인의 능력은 마법사에겐 천적이나 다름 없을 테니까.
나는 카인이 데리고 온 남자를 살펴봤다.
"얘 살아 있는 거 맞지?"
남자는 입에 거품을 문 상태로 축 늘어져 있었다.
에드나가 남자에게 다가가 맥을 짚었다.
"잠시, 기절한 거 같아요."
"그러면 일단 나무에 묶어 둬."
"알겠습니다."
에드나는 남자의 팔을 붙잡고 나무가 있는 쪽으로 질질 끌고 갔다.
"카인, 용병들의 시체를 한곳에 모아줘. 화장해 주자."
"알겠습니다."
최소한의 예의였다.
은패의 등급이라면 이런 곳에서 허무하게 스러질 인물들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나로 인해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용병패는 따로 챙겨 둬."
카인이 시체를 가져와 한곳에 모았다.
이윽고 불이 붙어 시체가 타올랐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용병들에게 한 것처럼 예의를 차릴 생각은 없었지만, 에드나의 마법에 죽은 다른 시체들도 모두 태워 버릴 작정이었다.
방치된 시체는 언데드가 될 수도 있으니까.
용병들의 시신을 불태우고 나니 에드나가 다가왔다.
"도련님, 남자가 깨어났습니다."
"그래? 곧 갈게."
남자는 캠프파이어 옆 나무에 묶여 있었다.
그는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천천히 다가오는 나를 보고서야 현실을 파악한 것 같다.
"미, 미안하네! 정말로 죽일 생각은 없었다네!"
남자는 다급히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는 것이 다른 동료들처럼 죽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정보를 얻기 위해 남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상한 신념이라도 있는 녀석이었으면 골치 아팠을 테지만, 다행히 그런 상황은 오지 않았다.
놈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동료를 팔아먹었다.
"여기엔 너희들만 온 거야?"
"산을 벗어나면 다섯 명이 더 기다리고 있네!"
습격 인원까지 합치면 총 열다섯. 근방에서 일어났다는 강도 사건도 이 녀석들이 벌인 일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외엔 아는 게 없네! 우리는 말단이라서 클라리스의 내부 정보에 대해선 정말 아는 것이 없어!"
"알았어, 풀어 줄게."
"...뭐라고?"
선뜻 살려 주겠다는 말을 했더니, 남자는 말을 잘못 들었다는 듯 내게 되물었다.
나는 남자의 어깨를 짚으며 아까 했던 말을 다시 전했다.
"정말로 풀어 줄게. 나는 거짓말 같은 거 하는 사람 아니야."
"정말, 정말 고맙네."
"괜찮아. 공짜는 아니거든."
나는 환한 웃음을 보여 주며 남자에게 말했다.
* * *
다음 날 아침.
남자가 정신을 차렸을 땐 베네딕가의 망나니 공자와 그 악귀 같은 하수인들은 모두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정말로 나를 살려 두고 그냥 떠난 건가?"
나무에 묶여 있던 남자는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일행의 목숨을 단번에 앗아가 버린 잔혹한 혈마법과 자신을 노리고 쇄도하던 마법을 무효화시키는 검은 머리의 늑대 수인.
그야말로 악몽 같은 밤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어찌 됐든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느꼈다. 그는 묶인 손으로 반지를 툭툭 건드렸다.
반지에 내장된 호출 마법이 발동해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행들을 불렀다.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얼마 후 도착한 일행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노리고 있던 베네딕가의 공자는 보이지 않았고, 남아 있는 일행 역시 한 명밖에 없었다.
"일단 이것 좀 풀어 줘. 다 얘기해 줄 테니."
일행은 상황을 전해 듣기 위해 묶여 있던 남자를 풀어 줬다. 남자는 굳어 있던 몸을 풀며 어젯밤 있었던 일을 나머지 일행들에게 설명했다.
"그런 일이...."
이야기를 듣는 일행의 표정이 점차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역시 베네딕 가문의 일원은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됐다.
하지만 이야기를 전달하는 당사자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다시 가서 복수하자고."
동료들을 모두 잃고 꼴사납게 목숨을 구걸했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어차피 이대로 클라리스에 돌아간다고 한들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앞에 있는 동료들은 복수할 생각도 못하는 것 같았다. 다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겁쟁이 새끼들."
남자는 쭉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든 다른 인원을 모아 다시 한번 놈을 칠 생각이다. 그렇게 나무 그늘 밖으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으윽, 뭐야?"
햇빛을 받는 남자의 몸이 서서히 굳기 시작했다. 그늘 밖으로 가장 먼저 나간 발에서부터 굳기 시작해 몸 전체가 경직되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으아아악! 살려 줘!"
마지막까지 움직일 수 있었던 혓바닥이 남자의 유언을 남기고 멈췄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나머지 다섯 명 역시 공포에 질려 잠시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가까스로 입을 뗀 한 사람이 말했다.
"역시 베네딕 가문은 건들면 안 되겠어."
"...난 이렇게 죽기 싫다고."
클라리스의 일당들에게 베네딕가의 악명이 퍼지는 순간이었다.
* * *
나는 마차에서 마법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거 어렵네."
내가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세 개의 마나 구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마나 컨트롤을 좀 더 세밀하게 하기 위한 연습이었다.
"도련님 그 남자는 왜 살려 두신 건가요?"
앞에 있던 에드나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마법 연습을 멈추고 말했다.
"풀어 준다고 했지, 살려 준다고는 안 했어."
자리를 떠나기 전, 나는 파르텐의 비고에서 얻었던 트랩 마법을 녀석에게 걸어 뒀다.
햇빛을 쬐면 몸이 돌이 되어 버리는 마법이라. 창의적이고 끔찍한 마법이다.
"도련님이 그러시다면야, 알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에드나가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방긋 웃음을 보였다.
"도련님! 던전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밖에서 말을 끌고 있던 카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야."
나는 창밖 너머로 고개를 꺼내 앞을 내다봤다. 세찬 바람에 머리가 흩날렸다.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눈앞의 광경이 나타났다.
'왔다.'
저 멀리 수많은 바위 산맥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보였다.
11화. 던전 도시 테일 (2)
멀리서 도시의 풍경이 드러났다. 주변이 거대한 바위 산으로 둘러싸인, 협곡 안에 위치한 도시였다.
주변을 단단히 절벽이 지키고 있다 보니, 일반적인 도시라기보다는 군사적 목적으로 세워진 요새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보니 장관이네.'
용병과 모험가들이 사랑하는 도시.
임페리오 제국 북부에 위치한 던전 도시 '테일'이다.
던전 도시 테일은 그 이름처럼 도시 밑에 수많은 던전과 미궁을 품고 있었다.
그 신비한 매력에 이끌린 모험가와 용병들로 인해 척박한 험지에 위치한 도시였음에도, 테일은 대도시로 성장하게 됐다.
우리는 곧 도시 입구에 도착했다.
던전 도시라는 명성답게 입구 주변에는 수많은 모험가와 용병들이 모여 있었다.
검문을 받고 성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줄을 설 수밖에 없는 듯했다.
우리도 그 대열에 서 줄어들기를 기다렸고 마침내 우리 차례가 되자 경비병이 다가왔다.
"신분증을 제시해 주십시...."
의례적으로 말을 건네던 경비병은 마차에 새겨진 베네딕 가문의 문양을 보고선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베네딕 공작가에서 오셨군요. 신분은 확인되었습니다. 바로 들어가시죠!"
이럴 땐 참 귀족이 좋단 말이지.
마차에 있는 문양 하나만으로 신분이 증명되다니.
"저기,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나는 창을 열어 경비병을 불러세웠다.
도시에 들어가기 전에 확인할 것이 있었다.
"네?"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어, 어떤 것이 궁금하신가요!"
경비병은 바짝 긴장을 한 모습이었다.
"지금 검문을 하는 것 같은데 도시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평소에도 검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제국에서 발급한 신분증을 제시하면 별다른 조사 없이 통과를 시켜 주는 편이다.
하지만 지금은 꽤 엄중한 검문이 이뤄지고 있었다. 도시 내에서 사건이 터져 경계도 높아진 듯했다.
"요즘 들어 던전 안에서 귀족들만 노리는 연쇄 살인 사건이 터져서 그렇습니다."
"음, 혹시 사건이 어느 정도 발생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직 조사를 더 해 봐야겠지만, 경비대에서 파악한 것은 총 세 건입니다."
"알겠습니다. 정보 감사합니다."
나는 경비병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창을 닫았다.
"도련님, 사건은 왜 알아보신 건가요?"
에드나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아마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우리가 마주친 습격범들이랑 연관이 있을 거야."
던전 살인도 필시 클라리스가 벌인 행각일 것이다.
발견된 것은 세 건이라고 말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살인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경비병도 계속해서 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고.
이렇게 확신을 하는 것은 이곳이 던전 도시이기 때문이다.
도시 지하에 개미굴처럼 퍼져있는 던전에선 사람을 습격하는 것도, 시체를 숨기는 것도 모두 쉬운 일이었다.
"에드나, 우리가 만난 습격범들 문신은 기억하고 있지?"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문신을 한 인간을 발견하면 바로 알려 줘."
에드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파가 많은 대도시인 만큼, 습격자가 숨어들기도 쉽다. 미리미리 습격에 대비해 둘 필요가 있다.
* * *
나는 마차 안에서 도시의 일상을 구경했다.
던전 도시라는 이름답게 거리를 거니는 이들의 대부분은 허리춤에 무기를 차고 있는 용병이나 모험가들이었다.
'베네딕 영지와는 분위기가 다르네.'
베네딕 영지가 정갈하고 세련된 느낌이라 하면, 테일은 자유롭고 활발한 느낌이었다.
계획없이 이곳저곳에 세워진 건물들이라던가.
골목 안에 좌판을 펴고 호객을 하는 상인들.
신경이 거슬리며 무턱대고 주먹부터 날리는 용병들까지.
던전 도시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풍경이다.
그렇게 거리의 풍경을 보고 있을 때였다.
"...윽. 뭐, 뭐야?"
잘 가던 마차가 갑자기 급정지하며 멈췄다.
나는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확인하기 위해 창문을 열었더니, 앞에서 말을 몰고 있던 카인의 말이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잠시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어떤 여자가 앞을 막아서고 있어서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갑자기 여자라니?
나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마차에서 내렸다. 에드나도 내 뒤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나는 마차 앞에서 있는 여자를 보고는 잠시 말을 잃었다.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이 여자가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다면 이렇게 도로 한가운데에서 마주칠 일은 없다. 곧 신학기가 시작되는 만큼 업무가 많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기엔 여자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인물의 얼굴과 너무 닮아 있었다.
그녀 또한 나를 발견한 것인지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왔다.
단지 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고고한 기품.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연둣빛 머리카락 그리고.
"안녕하세요, 당신이 유클리드 공자가 맞나요?"
보석처럼 빛나는 푸른빛 눈동자.
"반가워요. 아난타 테르시아라고 해요."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인사를 건네는 여자의 모습을 쳐다봤다.
그녀는 제국의 단 일곱 명뿐인 대마법사 중 하나이면서 바윈 아카데미의 총장이니까.
수업을 맡기 전 아카데미 총장과 면접이 있을 거란 얘기를 듣긴 했지만, 이렇게 길 한복판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반갑습니다. 아난타 님."
나는 표정을 가다듬고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공작가의 위세가 대단하다 할지라도, 대마법사에겐 예의를 지켜야 했다. 어떤 고귀한 모숨도 그들 앞에선 큰 의미가 없었으니까.
그녀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이곳에서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몰랐다.
"그래요. 잘 부탁해요."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신 건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음, 도시 분위기가 흉흉해서 말이죠. 안내 좀 해 주려고요."
도시 안내는 좋긴 하다만.
왜 사용인이 아니라 대마법사가 직접 온 거지?
대마법사가 옆에서 도시 안내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힐 것 같다.
"하하, 대마법사한테 안내를 받는 건 저한테 너무 과분합니다."
"괜찮아요. 저희 아카데미를 담당하게 될 교수이신데요. 설마 거절하는 건 아니겠죠?"
웃는 얼굴로 건넨 말이었지만, 그녀의 청을 거절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도망치는 길은 없는 것 같다.
"아, 아닙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은 선택이에요."
그렇게 대마법사와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 안에는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에드나는 자리를 피해 마부석에 카인과 함께 앉았고, 마차 안에 있는 건 나와 아난타 둘뿐이었다.
'숨 막히네.'
그녀 앞에서는 말을 섣불리 꺼낼 수 없었다.
단지 대마법사라서 긴장을 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아난타의 성격.
그녀는 자신한테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게는 가차 없는 사람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도시 밖으로 내쫓는 것은 예사고, 마법으로 반 죽은 상태로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괜히 말을 꺼내 그녀의 심기를 건들기보단 이렇게 침묵을 하는 게 낫다.
그렇게 그녀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던 중.
나는 거리에 있는 한 건물을 보고 카인에게 말해 마차를 멈춰 세웠다.
"응? 여기엔 왜 온 건가요?"
아난타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멈춘 곳은 용병 길드 앞이었다.
* * *
아난타는 영문 모를 표정으로 유클리드를 바라봤다.
여기엔 왜 온 거지?
용병 길드.
신분과 종족을 가리지 않고 모든 용병들이 의뢰를 받기 위해 모이는 장소. 귀족들도 자주 용병을 구하긴 하지만, 보통 사용인에게 의뢰를 시키지 본인이 직접 길드를 찾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 이유로 아난타는 유클리드가 이곳을 찾은 이유가 궁금했다.
무언가 의뢰라도 맡긴 것일까.
"용병 길드에 돌려줘야 할 물건이 있습니다."
돌려줘야 할 물건?
아난타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질문을 던졌다.
"돌려줘야 할 게 있다고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잠시만요, 저랑 같이 가시죠."
아난타는 유클리드와 함께 마차에서 내렸다.
그냥 확인을 하고 싶었다.
그가 무슨 이유로 용병 길드로 발걸음을 하게 된 것인지.
아난타와 유클리드는 용병 길드 안으로 들어섰다.
용병 길드 안은 술집 형태를 하고 있었다.
안에는 테이블을 차지한 용병들이 술을 마시며 자신들의 무용담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유클리드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용병들의 시선이 단번에 그에게로 쏠렸다.
"뭐야? 저거 귀족 아니야?"
"귀족이 이런 곳엔 왜 온 거야?"
몇몇 용병들이 유클리드를 보고 수군거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카운터에서 접객을 하고 있던 안내원에게 다가갔다.
안내원은 유클리드를 보고 잠깐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다시 미소를 지으며 응대했다.
"어떤 것을 도와드릴까요?"
"이것을."
유클리드는 품에서 은색의 용병패 두 개와 돈주머니를 꺼내 안내원에게 건넸다.
클라리스에게 죽은 용병들이 가지고 있던 물품과 그들이 받아야 했을 의뢰 보상이었다.
"해당 용병들의 유족들에게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난타는 살짝 커진 눈으로 유클리드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까지 온 이유가 죽은 용병들의 유품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니.
사실 죽은 용병의 용병패가 용병 길드에 반납되는 일은 드물다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죽음은 의뢰의 실패일 뿐, 한 인간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제국 내에서도 소문이 자자한 망나니의 행동이다 보니 더더욱 기이한 일처럼 느껴졌다.
"...알겠습니다. 확인 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안내원은 담담한 표정으로 물건을 받았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할 일을 끝마치고 두 사람은 용병 길드를 나왔다.
유클리드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아난타는 건물을 나오자마자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그러신 거죠?"
아난타는 그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한 것인지 궁금했다. 그녀가 있는 방향을 힐끔 쳐다본 유클리드는 마차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어젯밤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했다는 사실에 아난타는 잠시 움찔했지만, 잠자코 유클리드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안타까운 일이란 건 알겠어요. 하지만 꼭 당신이 할 필요는 없는 일이잖아요? 옆에 있는 하녀나 집사를 시키면 될 텐데."
아난타는 유클리드의 눈을 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유클리드가 들려준 대답은 그녀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냥, 제가 직접 하고 싶었습니다. 나를 위해 죽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고 싶었어요."
자존심 강한 귀족들과는 다른 대답.
의외의 말이었지만, 그녀의 마음에 드는 답변이었다.
아난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별종이네요?"
"네?"
"아니에요. 이제 바윈 아카데미로 가죠."
* * *
달리는 마차 안은 고요했다.
아난타는 그저 유클리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들었던 그 망나니가 맞는 거야?'
아난타가 들어 왔던 소문은 지금 유클리드가 보여 주고 있는 모습과 사뭇 달랐다. 매일 술을 마시며 행패를 부리는 것은 기본, 자신의 열등감을 달래려고 다른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인물이라 들었다.
'너무 이상하단 말이야.'
하지만 오늘 본 그의 모습은 그녀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죽은 용병의 유품을 추슬러 유족을 챙기고, 의뢰비까지 전해 주다니.
'소문대로의 인물이라면 내쫓으려고 했었는데.'
작년에도 귀족 교수가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 교수는 귀족으로서의 자존심이 유난히 강해, 이종족이거나 신분이 낮은 학생들을 공공연하게 차별하곤 했다.
결국 그에 반발한 학생 하나와 마찰이 생긴 것을 빌미로 아난타는 그를 도시 밖으로 쫓아냈다.
얼마 전 일어난 일인지라 귀족 출신을 교수로 임용하는 것이 꺼림칙했었는데, 지금의 유클리드라면 괜찮을 것도 같았다.
물론 면접은 치러 봐야겠지만.
* * *
"이제 곧 도착하겠네요."
아난타가 작게 중얼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손 좀 줘 보실래요?"
"알겠습니다."
나는 군말 없이 손을 펼쳤다.
그러자 아난타가 오른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새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이 깍지를 꼈다.
"아난타 님?"
"미안해요, 하지만 꼭 확인해야 하는 게 있어요."
그녀의 머리위에 황금색 천칭이 생겼다.
그리고, 아난타의 손에서 밝은 빛이 나타나더니 깍지를 낀 두손이 환하게 빛나는 금색의 실로 매듭지어졌다.
그녀는 아까보다 서늘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그럼, 몇 가지 질문 좀 할게요. 답변에 따라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요."
12화. 합성 마법
나는 아난타의 말에 당황하기보다는 머리 위에 나타난 천칭을 확인했다.
'이렇게 나타나는 건가.'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는 마법.
'진리의 천칭.'
마법이 발동되면 마법을 건 대상의 발언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천칭이 오른쪽으로 기울면 진실, 왼쪽으로 기울면 거짓이다.
"요즘 들어서 테일 내에서 사건이 터져서 그래요. 몇 가지 질문을 할게요."
"알겠습니다. 편하게 질문하세요."
긴장감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거짓을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먼저, 당신이 낀 반지는 고위 아티팩트로 보이는데 혹시 용병이 죽은 것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닌가요?"
아난타가 내 오른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쩐지 용병 길드에서부터 반지를 바라보더니 출처를 의심하고 있던 것 같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이 반지는 이전에 던전에서 얻은 겁니다. 용병들은 아난타님께 말씀드린 것처럼 습격당해서 죽은 것이 맞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천칭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다.
아난타는 천칭을 확인하고선 다시 입을 열었다.
"진실이네요. 그러면 두 번째로 왜 바윈 아카데미로 온 거죠? 분명 다른 아카데미에서도 제안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혹시 불순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닌가요?"
"불순한 의도는 일절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천칭이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그럼 무슨 의도로 이 아카데미에 온 건가요?"
"저는 바윈 아카데미를 최고로 만들기 위해서 왔습니다."
정확하게는 이곳에서 힘을 길러 대륙의 위기를 막는 것이 내 목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바윈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최고 수준으로 키워야 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 말이 끝나자 천칭은 다시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다 진실이군요. 이걸로 질문은 끝이에요. 수고하셨어요."
아난타에 말이 끝나자마자 마법은 풀렸고, 두 손을 잇던 금실도 흩어지듯이 사라졌다.
"의심한 건 미안해요. 하지만 요즘 뒤숭숭한 사건이 많이 벌어져서 말이에요."
클라리스 인가.
아난타는 총장이면서 도시를 지켜야 하는 입장이니 이해할 수 있다.
"아닙니다. 의심이 풀려서 다행이네요."
아난타는 턱을 괴며 미소를 지었다.
"당신 정말 망나니 맞아요? 듣던 소문과는 너무 달라서요."
"소문을 다 믿을 수는 없는 법이죠."
"하하, 그렇긴 하네요. 모든 말이 진실일 리는 없으니까."
아난타는 창밖을 보더니 무언가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 바윈 아카데미에 도착했어요."
* * *
"도련님,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카인의 말에 나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봤다.
입구엔 커다란 대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에 산이 있어 평평한 지형이 있기 어려운 곳이었음에도, 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여러 채의 건물을 품고 있는 광활한 부지였다.
'게임과는 확연히 다르단 말이야.'
끼이이익.
그렇게 학교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입구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아마 사전에 말을 해둔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바윈 아카데미 내부로 들어갔다.
3대 아카데미 중 가장 뒤처지는 곳이라는 비아냥을 듣긴 하지만, 바윈 아카데미 역시 제국의 가장 큰 교육기관 중 한 곳인 만큼 뛰어난 설비를 갖춘 곳이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여러채의 건물들과, 학생들의 훈련을 위해 설치된 훈련장, 그 중앙에는 고풍스러운 양식의 성채가 하나 자리잡고 있었다.
바윈 아카데미의 중앙동이다.
"이곳이에요."
마차에 내리자 협곡을 타고 불어온 바람에 옷자락이 흔들렸다.
옆에 선 아난타가 물었다.
"그럼 들어갈까요? 아차, 아카데미에는 내부인만 들어올 수 있으니 하인들에겐 잠깐 이곳에서 기다려 달라고 말해 주세요."
나는 아난타의 말대로 카인과 에드나에게 잠시 기다려 줄 것을 부탁하고, 중앙동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외관처럼 중앙동의 내부 역시 고풍스러운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곳곳에 비치된 조각상과 그림, 드나드는 이의 편의를 위한 마법진도 눈에 띄었다.
"아직 사람은 많이 없는 거 같네요."
사람이 없어 휑한 내부를 둘러보며 아난타에게 말했다.
학기가 시작되지 않아서 그런가?
아카데미 내에는 학생들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몇몇 사람이 분주히 걸음을 옮기는 것은 가끔씩 보였지만, 학생이나 교수가 아니라 다른 업무를 보는 직원들인 듯했다.
"개강하지 않아서 그래요. 잠시만 기다려 봐요."
아난타는 팔을 뻗어 날 멈춰 세웠다.
그녀가 멈춘 곳 앞에는 하얀색 포탈이 놓여 있었다.
무엇을 하려는 거지? 의문을 표하려던 순간 그녀가 포탈을 보면서 미간을 좁혔다.
"나엔! 아카데미 개강 안 했다고 빈둥거리는 거 아니죠? 빨리 나와서 문 열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포탈 속에서 새 형상을 한 정령이 나타났다.
정령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아, 아닙니다. 아난타 님, 빈둥거린 거 아니에요! 잠시, 일이...."
"나엔 네가 무슨 일이 있어! 그리고 네 일은 포탈 관리밖에 없잖아요. 총장실로 갈 테니까 문부터 열어요."
"아, 알겠습니다!"
정령은 다시 포탈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포탈의 색이 푸른빛으로 변했다.
아난타는 내게 눈짓을 보내곤 포탈 속으로 걸어갔다.
나도 그 뒤를 따라 포탈 속으로 걸어갔다. 포탈 속을 들어간 순간 시야가 일렁거리더니, 총장실이 나타났다.
"처음엔 속이 좀 울렁거릴 텐데 괜찮은 거 같네요?"
아난타는 집무용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익숙해지면 편할 거예요. 총장실, 교수실은 저 포탈을 이용해서 갈 수 있어요. 방법은 아까 제가 한 것처럼 나엔이라는 정령에게 말하면 될 거예요."
"그렇군요."
확실히 편리한 방법이다.
저러면 포탈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바로 교수실로 갈 수 있다.
정령이 직접 관리를 하고 있으니 안전성도 확실할 터였다.
"이제 교수직에 관해서 이야기 좀 할까요? 거기에 앉으세요."
아난타는 총장실까지 올 때와 다르게 진중한 모습이 되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아난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어떤 수업을 맡고 싶어요?"
그녀는 말하면서 탁자에 리스트들을 쫘르륵 펼쳐놨다.
마법 이론학, 기초 마법학 등등.
내 전공인 마법과 관련된 수업들이었다.
"제가 추천하는 건 이 수업이에요."
아난타는 한 수업을 손으로 가리켰다.
마법 이론학 수업.
"아마 당신한테 어울리는 수업일 거예요. 아카데미 교원 임용 시험에서도 이론에 특히 두각을 보이기도 했고, 마법도 쓸 일이 없을 테니 괜찮을 거예요."
나름대로 아난타가 날 배려한 게 느껴졌다.
확실히 마력량이 부족한 내게는 이론이 주가 되는 수업이 적합하다.
마법의 구조를 이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론에 한해선 앞에 있는 아난타보다도 뛰어난 구석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건 내가 원하는 수업이 아니다.
"저는 다른 수업을 맡고 싶습니다."
"그래요? 잠시만요, 그럼 '마법 속성의 이해'는 어때요? 이것도 이론이 주가 되는 수업인데...."
"아니요, 제가 원하는 수업은 따로 있습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리스트 위에 있는 한 수업을 가리켰다.
"저는 이 실전 마법 전투학 수업을 맡고 싶습니다."
"네? 뭐라고요?"
아난타는 내 말을 듣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내가 이 수업을 하고 싶다고 말할 줄은 생각지 않았던 것 같다.
"정말로 이 수업을 선택하겠다고요?"
"네."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흠, 사실대로 말할게요. 저는 당신이 이론 수업을 담당하는 걸 원해요."
뭐 예상한 바였다.
유클리드가 임용 시험에서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이론적 지식의 수준이 높아서였으니까.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녀의 생각은 타당하다.
"그리고 소문대로라면 당신은 마력을 쌓을 수 없는 체질이라고 들었어요, 아닌가요?"
"그 체질은 개선하고 있습니다. 아난타 님이라면 알 수 있지 않나요?"
"확실히 몸의 마력이 있는 건 알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많은 양으로는 보이진 않는데요?"
역시 대마법사는 대마법사네.
보기만 해도 마력량을 알 수 있다니.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날 순 없었다. 저 수업을 맡지 않으면 내가 세운 계획이 어긋난다.
"저는 꼭 이 수업을 하고 싶습니다."
"...흐음."
아난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실전 전투 마법학은 아직 교수가 배정되지 않은 상태긴 하죠. 생각할 부분이 많거든요. 왜 그런지 알고 있나요?"
이유는 알고 있다.
"네, 실전 전투 마법학 수업이 발푸르기스의 밤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발푸르기스의 밤은 아카데미 실적과 연관된다.
전투 마법학 수업에는 배우는 전투 마법의 수준이 그대로 발푸르기스의 밤에 영향을 끼치는 만큼, 아카데미 입장에서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만년 꼴등에 머물러 있는 바윈 아카데미라면 더더욱.
"잘 알고 있으시네요. 보아하니 마음을 꺾을 순 없어 보이고, 그러면...."
아난타의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뭐, 뭐야?'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번쩍하고 빛이 터져 나왔다. 깜짝 놀라 눈을 한 번 깜빡였을 때엔 나는 이미 총장실이 아닌, 다른 장소에 이동해 있었다.
나무와 풀로 뒤덮여 있는 공간.
아마도 아난타가 만든 공간일 것이다.
대마법사쯤 되면 자기 안에 있는 심상을 외부에 구현할 수 있다고 하니까.
이윽고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 당신이 이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세요.
아난타의 목소리였다.
- 제 사역마를 상대하는 걸 보고 판단하겠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닥에서 나뭇잎이 휘몰아치며 사역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 형태를 한 나무.
숲의 정령 중에서도 중위의 수준인 드라이어드다.
- 그럼 실력을 보여 주세요. 기대할게요. 갑작스러운 시험이니 선공은 먼저 드릴게요.
"...알겠습니다."
나는 정령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야.'
중위 정령이라 정도면 상대를 하는 게 가능했다.
아카데미의 다른 교수들이라면 상위 정령을 처치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나의 수준에선 무리였다.
아난타도 나의 수준을 감안해 준 듯했다.
무슨 자신감으로 전투 마법학을 하겠다 말한 것인지 궁금한 거겠지.
나는 드라이어드를 보면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속전속결로 끝내야 해'
드라이어드는 시간을 끌면 끌수록 까다로운 상대다.
재생력이 뛰어나서 한 번에 소멸시키지 않는다면, 금방 회복해 살아날 것이다.
그러니 단번에 드라이어드를 쓰러트릴 수 있는 강력한 마법이 필요하다. 그리고 난 그런 마법을 알고 있었다.
에드나와 대련을 할 당시 나는 생각했다.
마력이 부족한 내가 최대치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윈 아카데미에 오는 여정 중에도 계속해서 마법 연구를 이어 갔다.
그렇게 찾아낸 나만의 새로운 마법.
부여 마법을 활용하는 새로운 방식.
이걸로 에드나의 쉴드를 처음으로 부술 수 있었지.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마법을 전개했다.
이 세계에서 나만이 쓸 수 있는 마법을.
13화. 수업 준비
나는 드라이어드를 겨냥해 마법을 시전했다.
내 의지에 따라 마법 술식이 만들어진다. 오른손에 커다란 붉은 화염이 타올랐다.
하급 화염 속성 마법 이그나이트.
나는 여기서 하나의 마법을 더 사용한다.
왼손에 진한 녹색 물방울이 떠올랐다. 중급 독 마법 포이즌이다.
넥타 포션을 마신 이후로 계속해서 마법을 연습한 덕분인지 이제는 중급 마법까지는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드라이어드를 쓰러뜨리기 위해선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여기서부터 집중해야 해.'
오른손과 왼손에 있는 두 가지 마법.
나는 두 손에 모인 기운을 한데 모았다. 두 마법이 반발 작용을 일으키며 요동치기 시작한다.
여기서 나는 새로운 마법을 사용했다.
부여 마법을 사용하다 깨우친 새로운 마법 방식.
마법의 성질을 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두 마법의 힘을 합쳐 새로운 마법을 만드는 것이었다.
두 마법의 수식을 분해하고 새롭게 조합함에 따라 서로 반발하며 요동치던 두 기운이 천천히 합쳐지게 되었다.
- 저 마법은 도대체 뭐야?
아난타도 내 마법을 보고 놀란 것 같았다.
아마도 지금의 마법사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겠지.
몸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마력이 소모되는 게 느껴진다. 이윽고 내 손에 남게 된 것은 칠흑의 화염이었다.
부여 마법은 게임에선 생각지도 못했던 여러 가능성을 나에게 제시해 주었다. 물론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이었던 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마법을 만들어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수백 번의 실험 끝에 결국 이 마법을 만들어 냈다.
화염 속성과 독 속성의 마법을 섞었건만, 튀어나온 것은 생뚱맞게도 어둠 속성의 마법이었다.
위력은 상급 마법 정도.
아난타가 시험 상대로 정령을 내세운 것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린 것은 정령이 어둠 속성의 마법에 취약하기 때문이었다.
어둠 속성은 흑마법사들이 주로 쓰는 속성이다. 특히 정신계 마법이 강한데 덕분에 육신이 없는 정령이나 요정 같은 종족들에게 강한 속성이었다.
드라이어드는 내가 마법을 시전하는 동안에도 가만히 있었다.
아까 아난타의 말처럼 선공을 양보하려는 것.
하지만 다음 기회는 없을 것이다.
나는 곧장 드라이어드에게 마법을 쐈다.
드라이어드는 위험을 감지했는지 피하려고 했지만, 나무처럼 거대한 몸은 민첩하지 않았다.
칠흑의 화염은 곧장 날아가 정령을 집어삼켰다.
당연히 상급 어둠 속성 마법을 중위 정령이 견뎌 내기엔 무리였고.
검은 불에 타오르던 드라이어드는 어느 순간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드라이어드가 죽기 전에 아난타가 역소환을 한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올리며 말했다.
"아난타 님, 합격인가요?"
아난타는 드라이어드가 일격에 당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지.
- 어, 어? ...네. 합격입니다.
목소리에서 당황했다는 게 느껴졌다.
* * *
총장실에 적막함이 맴돌았다.
방안에는 째깍, 째깍, 시계 소리만 묵묵히 들려올 뿐이었다. 아난타는 탁자를 한참을 두드리다 입을 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죠? 그런 마법은 처음 봤어요."
"비장의 수라서 비밀입니다."
"흐음. 알았어요. 마법사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법이니. 더 이상 캐묻진 않을게요. 그리고 당신을 믿어 볼게요."
"정말인가요?"
"그래요, 실력도 증명했고, 무엇보다 어떤 수업을 할지 기대가 되네요."
아난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 앞으로 잘 부탁해요. 유클리드 교수."
"예. 잘 부탁드립니다. 총장님."
나는 미소를 지으며 총장과 악수를 나누고,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총장실을 나섰다.
* * *
바윈 아카데미의 총장 아난타 테르시아는 방금 전 떠나간 유클리드를 떠올렸다.
"역시 흥미롭단 말이야."
대마법사인 자신 앞에서도 크게 위축되지 않았고, 원하는 바를 확실히 말하기 까지 했다.
거기에 더해 자신 또한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마법의 수식을 개량하는 기이한 능력까지.
'베네딕의 핏줄이 맞긴 하네.'
은은하게 빛나던 하얀색 머리카락과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던 황금색 눈동자는 어린 시절의 아르웬 공작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과거 아르웬의 행보를 떠올려 보면 유클리드에게도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은 어떤 수업을 보여 줄까?'
마력량은 최저, 하지만 이론으로는 천재.
그가 어떤 수업을 할지 자신조차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방금 전에 한 말처럼 정말로 그가 바윈 아카데미의 역사를 바꿔 버릴지도 모른다.
아난타는 유클리드에게 기대를 걸었다.
* * *
"...으으, 뭐지?"
갑자기 온몸에 오한이 느껴졌다.
누가 내 얘기를 하고 있나.
중앙동 입구로 가니 에드나와 카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빨리 가자. 어째 좀 추운 거 같다."
우리는 아카데미를 나서서 테일에 있는 공작가 별채로 이동했다.
바윈 아카데미에서 교수용 숙소를 마련해 준다고 했지만, 내가 거절했다.
별채가 있는데 굳이 교수용 숙소에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별채는 바윈 아카데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 정도면은 훌륭한데?'
별채는 2층짜리 저택이었다.
생각만큼 으리으리한 곳은 아니었지만, 세 명이 살기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앞에는 적당히 큰 공터가 있어서 훈련장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바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에드나와 카인은 내부 정리를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에드나의 안내를 받아, 곧장 욕실로 향했다.
공작가의 별채라 그런지 욕실도 남달랐다. 예술 작품이 새겨진 대리석 욕조부터 시작해, 황금으로 도색된 수도꼭지까지.
게다가 물의 온도를 조절하는 마법 술식도 새겨져 있었다.
먼저 물로 몸을 씻은 다음 바로 욕조에 몸을 담갔다.
"하아, 힘드네."
피로가 쫙 풀리는 느낌이다.
바윈 아카데미까지 오는 여정은 너무 험난했다.
클라리스의 습격에 이어, 대마법사의 압박 면접까지 치러야 했으니.
순탄치 않은 여행에 피로감이 가득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잘 넘긴 건가?"
어찌 되었든 목표했던 바윈 아카데미에 도착해, 전투마법학 수업까지 맡게 되었으니 일이 잘 풀린 것이기도 했다.
아난타의 면접이 끝나고 이미 늦은 시간에 도착한 탓인지, 욕실 창밖엔 이미 캄캄한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욕조에 들어찬 물에 달빛이 비쳤다.
꼬르르륵.
배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았지.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니 갑자기 허기가 느껴졌다.
"도련님, 식사 준비가 됐습니다."
타이밍 맞게 문밖에서 에드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밥부터 먹자.
* * *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내 방으로 왔다.
방은 에드나가 미리 정리했는지,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하다.
"도련님, 차를 내왔습니다."
내가 의자에 앉자마자 에드나가 다과를 가지고 들어왔다. 쉴 새 없이 일하는 모습이 좀 안쓰럽다.
"에드나 오늘은 고생했으니 들어가서 쉬어."
"괜찮습니다."
"어차피 오늘은 일찍 잘 거야."
"도련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에드나가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본 후, 나는 다시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총장에게 부탁해서 얻은 서류.
바로 바윈 아카데미에서 징계를 받은 이력이 있는 문제아 리스트다.
서류에는 문제아들의 징계 사유가 주르륵 나열돼 있었다.
'2학년 크루엘. 같은 학우를 폭행.'
평범한 학교 폭력부터.
'2학년 셀린 이리에드. 수업 중 마법을 사용하여 교수에게 상해를 입힘.'
교수를 직접 공격하는 미친 학생.
'2학년 이안 임페리오. 학교 외부에서 도박, 사기 등 범죄에 연루되어 학교의 권위를 실추시킴.'
도대체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지게 만드는 황족까지.
"이렇게 보니까 정말 막장이네."
문제는 이 서류에 적혀 있는 아이들을 앞으로 내가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골치를 앓는 문제아들이지만, 동시에 출중한 마법 실력을 갖춰 발푸르기스의 밤에 참여하게 만들어야 할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는 다른 누구보다 이 아이들을 잘 알고 있었으니.
"그래도 준비는 제대로 해야지."
하지만 게임이 현실이 된 지금, 상황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둔, 나와 봐."
허공에서 다람쥐가 나타났다.
"아카데미 수업 관련 서적들 좀 꺼내 줘."
"알겠습니다."
둔은 세 권의 책을 책상 위에 꺼냈다. 그러고는 자기에는 꼭 맞는 작은 의자와 탁자를 허공에서 꺼내더니 책상 한편에 있던 먹다 만 쿠키 조각에 다가갔다.
"주인님, 이거 먹어도 되죠?"
다람쥐는 과자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먹어."
"아싸."
둔은 행복한 표정으로 쿠키를 가져갔다.
신이 난 다람쥐를 뒤로하고, 나는 건네받은 책을 펼쳤다.
전투 마법에 대한 강의법과 다른 아카데미의 전투마법학 교수들이 사용하는 강의 교재였다.
나는 그 책들을 참고해 나만의 강의 계획을 만들었다.
"주인님, 정말 괜찮으신 건가요? 여기 적힌 아이들 말을 전혀 안 들을 것 같은데요."
옆에서 쿠키를 갉아먹고 있던 둔은, 심심했는지 문제아 리스트를 보고 있었다.
주인이 가르치게 될 학생들이라 하니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나는 펜을 내려놓고 둔을 바라봤다.
"나는 괜찮아. 말 안 듣는 애들 갱생시키는 법을 알 고 있거든."
"...그, 그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다람쥐가 말을 더듬었다.
역시 반응이 재밌단 말이지.
"장난이야 장난."
"그러면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요?"
글쎄, 마법을 배운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이 세계에선 어떤 식으로 수업을 하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못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애들은 많이 상대해 봤거든."
빙의 전에 게임에서 진저리나게 상대해봤던 나다. 당연히 캐릭터들의 모든 상대법을 꿰뚫고 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수업 날에 보여 줄게."
* * *
다음 날.
나는 에드나와 함께 물건을 사기 위해 저택을 나섰다.
수업에 필요한 물품도 사야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마법사들의 무기라 할 수 있는 마법 지팡이를 구하는 것.
아르웬 공작이 날 위한 마법 지팡이를 준다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테일에서 마법 지팡이를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장비 제작에 필요한 고급 마석을 들고 테일에 올 때부터 생각해 두었던 가게로 향했다.
"도련님, 정말 이곳에 지팡이 제작자가 있는 게 맞나요?"
"맞아. 날 믿어봐 엄청 실력 좋은 지팡이 제작자를 알고 있거든."
나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에드나는 못 믿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우리는 지금 테일에서 가장 치안이 안 좋은 슬럼가에 와 있었으니까.
실패한 모험가의 말로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팔이나 다리를 잃어 다시 던전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모험가, 무리한 던전탐사를 진행했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용병 등. 회생이 불가능한 인생을 살고 있는 이들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먹잇감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다.
"...여긴 위험하네요."
에드나는 그 시선이 못마땅했는지 그들에게 살기를 내비쳤다.
그러자 에드나의 살기를 느낀 이들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에드나에게 덤비면 죽을 것이라고 느낀 거겠지.
에드나를 데리고 오길 잘했다.
덕분에 아무런 소란 없이 이곳을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에드나, 이제 곧 도착이니 긴장 좀 풀어"
슬럼가 끝에는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석조 건물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굴둑에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건물 안에서부터 탕, 탕, 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노크를 하지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드워프 하나가 담금질을 하는 것이 보였다.
우리가 왔는지도 모르는지 하염없이 탕, 탕 망치를 휘두르고 있다.
에드나가 드워프를 보며 중얼거렸다.
"잠시만요 도련님, 마법 지팡이를 설마... 드워프한테 맡긴다고요?"
"맞아."
나는 드워프에게 다가가 말했다.
"제작 의뢰를 하고 싶습니다."
대장장이의 이단아, 돌킨.
유일하게 마법 지팡이를 제작할 수 있는 드워프.
미래에 5대 신기중 하나인 미스틸테인을 제작하는 인물이었다.
14화. 오리엔테이션 (1)
검이나 창을 만드는 것과는 달리 마법 지팡이를 제작하는 데엔 섬세한 마력 컨트롤이 동반된다.
하지만 드워프들은 태생적으로 마력을 제어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뛰어난 날붙이를 만들 수 있었지만, 마법사들의 도구를 만드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돌킨은 보통 드워프와는 달랐다.
돌킨은 드워프이면서도 남다른 마력 컨트롤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대장장이 기술에 접목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 낸 제작품들은 같은 드워프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고, 집단 내에 받아들여지지 못한 그는 결국 부랑자들이 사는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탕, 탕.
내 말을 들었을 텐데도 돌킨은 담금질을 멈추지 않았다. 에드나가 다시 나서서 말을 하려 했지만, 내가 팔을 뻗어 제지했다.
"괜찮아, 기다리지 뭐."
드워프들은 다른 사람에 의해 작업이 방해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그에게 말을 거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탕, 탕.
1시간쯤 흘렀을까. 돌킨이 담금질을 멈추고, 자신이 만들어 낸 검을 들어 보였다. 과연, 일반적인 검이 아닌 듯, 검면으로 미세하게 마력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자신의 작업물에 만족한 것인지 그는 그제야 끼고 있던 육중한 장갑을 벗어 던지며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예의를 아는 사람이군, 그래서 무슨 일로 온 건가?"
"마법 지팡이 제작을 의뢰하고 싶습니다."
"…뭐라고?"
돌킨은 내 말을 듣자마자 미간을 좁혔다.
"드워프인 내게 마법 지팡이를?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건가?"
"장난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돌킨 님의 실력을 믿고 있습니다."
나는 건물 내부에 있는 무기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무기들 전부 마석이 사용되었죠?"
일반적인 철제 무기처럼 보이지만, 이것들은 모두 마석이 들어간 것들이다.
나는 주변에 놓인 무기를 만져봤다. 무기에서 희미한 마력이 느껴졌다. 대단하지 않은 것 같지만, 마력의 전도 효율을 크게 높인 무기라 할 수 있었다.
수준이 높은 전사들이라면 무기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돌킨의 자본이 더 있었다면 질 좋은 마석을 사용해 더욱 좋은 무기들을 만들었을 거다.
"무기 하나하나의 완성도가 높더라고요. 이미 마석을 활용해 무기를 만들고 있으시니, 마법 지팡이를 제작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돌킨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보는 눈이 있긴 하군. 자네 말대로 지팡이 제작 의뢰를 받을 수는 있다네 하지만...."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보다시피 질 좋은 마석이 없어서 수준이 높은 장비를 만들기는 힘들다네. 그래도 괜찮겠나?"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시죠. 에드나."
나는 에드나에게 손짓해 가지고 온 물건을 꺼냈다.
"필요한 재료는 제가 다 준비해 왔습니다."
에드나는 돌킨에게 물건을 건네줬다.
의뢰금 1500 델리와 최상급 마석 1개, 상급 마석 5개까지.
드워프에게 무기 제작을 의뢰하는 데 보통 500 델리 정도가 든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엄청나게 많은 의뢰금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가 만들어 내는 무기는 1만 델리, 2만 델리로도 살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돌킨은 돈주머니에 담긴 내용물을 보더니 크게 당황한 듯했다.
"이 정도로 줄 필요는 없다만."
"돌킨님의 작업물이 가지고 있는 정당한 가치라 생각해 주세요. 또 앞으로의 의뢰를 계속 부탁하게 될 것 같아서요."
"...그렇다면야. 좋아, 내가 최고의 지팡이를 만들어주지."
드워프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바로 작업에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드워프를 불러 세웠다.
아직 줄 것이 남아 있었다.
"돌킨 님, 한 가지 부탁이 더 있습니다."
"응? 무엇인가."
나는 품속에서 설계도를 꺼내 돌킨에게 건넸다.
지난밤, 게임을 할 때의 기억이 떠올리며 그린 지팡이 설계도였다.
"이 설계도대로 만들어주실 수 있나요?"
돌킨은 설계도를 건네받고는 신기하다는 나를 바라봤다.
"이게 지팡이라고? 이런 지팡이는 난생처음 보는군."
"가능하실까요?"
"복잡한 구조는 아니니 어렵지는 않을 것 같네. 어림잡아서 닷새 정도 걸릴 거 같은데 괜찮나?"
닷새라.
"알겠습니다. 닷새 후 에드나를 보내겠습니다."
다행히 첫 수업 전에는 지팡이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 * *
일주일이 흘러 아카데미 개강 날까지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지팡이 의뢰를 위해 슬럼에 갔던 날 외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시장에 들러 필요한 물품을 구매했다.
'아직 돈은 넉넉하니까.'
공작가를 나설 당시 마차에는 엄청난 양의 금화가 담겨 있었다.
필시 아르웬 공작이 배려해 준 거겠지.
덕분에 돈이 부족해 허덕일 일은 없었다.
구매한 물품은 대부분 수업에 사용할 물건이었다.
훈련용 골렘, 과녁, 장애물 등.
훈련용 골렘은 내가 마법을 걸어 수업에서 쓸 수 있게 조정을 해 둔 상태다.
수업 준비를 하면서 내 성장도 빼먹지 않았다.
매일같이 에드나와 대련을 했고, 이제 상대 전적이 같아질 정도까지 되었다.
그리고 오늘 주문 제작한 마법 지팡이가 도착했다.
"도련님, 이게 정말 마법 지팡인가요? 신기하네요."
에드나는 지팡이를 보면서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반응은 이해가 간다.
길쭉한 막대기처럼 생긴 여타의 지팡이들과 달리 나의 지팡이는 만년필의 형태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모양의 지팡이를 만든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수식을 자주 다루는 부여 마법을 주력으로 사용해씩에, 필기가 수월한 형태로 의뢰를 한 것이었다.
나는 지팡이를 들어 살펴봤다.
'역시 실력이 좋단 말이야,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만들어진 것 같은데.'
아직 두각을 드러낼 시기가 아니었음에도 돌킨은 돌킨이었다.
최상급 마석을 사용했기 때문인지 펜촉에서부터 높은 밀도의 마나가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지팡이가 설계대로 만들어졌다면 부여 마법을 사용할 때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할 터였다.
이제 수업 준비는 모두 마쳤다. 곧 개강일이 다가온다.
* * *
아카데미 개강 첫날이 찾아왔다.
나는 혼자 바윈 아카데미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카데미에는 하인을 데려갈 수는 없기에 에드나와 카인에게 저택을 지키라고 했다.
운동을 너무 게을리한 걸까. 학교로 향하는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나는 허리를 숙이고 가빠진 숨을 고르고 있었다.
"허억, 허억."
힘들어 죽을 것 같다.
'에드나랑 대련을 하면서 체력이 조금은 늘어난 줄 알았는데.'
크나큰 착각이었던 것 같다.
오르막길 하나 오르는 것도 이렇게 힘들 줄이야.
"넌 무슨 수업 들을 거야?"
"난 이번엔 연금술 들어 보려고."
"벌써 개강이라니."
아난타와 처음 왔을 때와는 달리 학생들로 넘쳐나는 등굣길이었다. 하나같이 바윈 아카데미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후우."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봤다.
역시 바윈 아카데미답게 다양한 종족의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엘프.
복슬복슬한 꼬리를 바지 바깥으로 내놓은 수인.
제국에선 보기가 어렵다는 마족까지.
'에드나 말고 다른 마족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
에드나와 다르게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달려 있었다.
아마도 도깨비의 피를 이은 마족일 터였다.
그렇게 등교하는 학생들을 살피던 중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찬란한 황금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학생.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네.'
저렇게 환하게 빛나는 황금색 머리카락을 가진 이는 제국의 황족뿐이다. 그리고 바윈 아카데미를 다니고 황족이라면 단 한 사람밖에 없다.
이안 임페리오.
바윈 아카데미의 문제아 중 하나.
역시 문제아답게 황족의 품위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풀어헤친 셔츠 앞섶과 정리하지 않아 잔뜩 헝클어진 머리.
역시 문제아는 문제아인가.
'지금은 내 갈 길 가야지.'
지금 만나 봤자 딱히 할 이야기도 없다.
어차피 조만간 수업에서 만나게 될 거니까.
나는 무거운 발길을 이끌고 다시 오르막을 올랐다. 교문을 통과한 뒤에는 포탈을 지나 지정받은 교수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방에 들어오자니 향긋한 꽃향기가 느껴졌다.
책상 뒤에 창틀에 화분이 있었는데, 화분에 문구가 적힌 카드 하나가 꽂혀 있었다.
- 첫 수업 선물이에요. 수업 기대할게요.
다른 아는 사람이 없으니, 아난타 총장이 줬을 것 이 분명했다. 선물을 받았으니 기분이 좋지만, 이 세계의 절대자 중 하나가 내게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하니 속이 답답해졌다.
"둔, 지금 있지?"
"네, 있습니다."
"제대로 물건은 챙겼어?"
"여기 보여드릴게요."
둔이 자신의 아공간에서 물건을 꺼냈다.
나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하나라도 빼 먹으면 오늘 있는 수업 오리엔테이션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으니 확실히 해야 한다.
"제대로 다 챙겼네. 둔, 잘했어.'
물건은 빠진 것 없이 완벽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첫 수업까지 남은 시간은 약 1시간.
곧 있으면 교수로서의 첫 수업이다.
* * *
바윈 아카데미 내에 있는 연무장.
연무장에는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실전 마법 전투학의 수업을 듣는 2학년 학생들이었다.
실전 마법 전투학 학생들은 한 주제에 대해서 떠들고 있었다.
"이번에 담당할 교수는 누구일까?"
"지난번처럼 이상한 교수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바로 신임 교수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던 중 학생 하나가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꺼냈다.
"베네딕가의 망나니 공자가 교수로 부임한다던데?"
"마법도 제대로 못 쓰는 사람이잖아 그런 사람이 전투 마법학을 어떻게 가르쳐."
하지만 정문에서 그를 보았다는 목격담은 한층 더 학생들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그 사람 아냐? 정문 앞에 있던 하얀색 머리카락."
"하얀색 머리면 베네딕 가문 맞잖아!"
"진짜로 그 망나니가 교수로 온다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이번 교수를 제일 못마땅해하는 불퉁한 표정을 한 소녀가 있었다.
'또 귀족 교수라고?'
긴 붉은색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머리카락 색과 대조되게 얼음처럼 맑고 아름다운 피부를 가진 소녀.
'거기다 마법도 못 쓰는 사람이라니, 말이 안 되잖아?'
화염 마법으로 명성을 널리 알린 이리에드 백작가의 여식.
셀린 이리에드였다.
짧게 한숨을 쉰 그녀는 작년의 일을 떠올렸다.
작년에도 교수와 마찰이 있었던 그녀였다.
그는 가진 실력에 반해 자의식이 과했던 인물로, 매일 자기 자랑만 하며 수업은 뒷전이었던 사람이었다.
발푸르기스의 밤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 가문에 인정받고 싶었던 그녀는 좀 더 제대로 된 수업을 받고 싶었다.
무엇보다 자신보다도 실력이 낮은 이에게 수업을 듣고 싶지 않았다.
계속 이어진 마찰은 이내 교수와 학생 간의 결투로 번졌고, 결과는 셀린의 승리로 끝나게 됐다.
하지만 과정이 어찌 됐든 문서엔 단순한 징계 사유만이 남을 뿐이었다.
실린 이리에드 유급. 교수에게 마법을 사용해 상해를 입힘.
그때 자신과 싸웠던 교수도 쫓겨났다는 얘기를 들어서 올해는 얌전히 지내려고 했었는데.
유클리드 베네딕이라면 마법도 쓸 줄 모르는 반푼이가 아니던가.
셀린은 그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어.'
하루빨리 가문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것만이 셀린이 살아가는 목표다. 자신보다 실력이 뒤떨어지는 교수한테 배우는 건 시간만 허비하는 거였다.
'이번엔 실수하지 않고.'
전처럼 교수에게 대드는 건 셀린에게도 위험했다.
또 유급당하면 학교에서 쫓겨나게 될지도 몰랐다.
그러니 아예 큰 망신을 줘 버릴 생각이다. 제 발로 나가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망신을.
그녀가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던 찰나.
끼이익.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연무장에 들어오고 있었다.
15화. 오리엔테이션 (2)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연무장에 들어왔다.
새하얀 로브를 입은 남자는 걸을 때마다 기품이 느껴졌다.
로브는 황금 실로 새겨진 자수가 돋보였고, 햇빛에 반사된 빛나는 하얀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몇몇 학생들은 그 아름다운 외형에 넋을 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저게 소문의 망나니 공자라고?'
그건 셀린도 마찬가지였다.
방금까지도 망나니 교수를 망신 줄 생각만 하고 있던 그녀였지만, 지금만큼은 그저 남자를 바라볼 뿐이었으니.
망나니 공자라기엔 그녀의 생각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남자는 묵묵히 서류를 보면서 걸어오다 넋을 놓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학생들을 발견했다.
그는 서서히 다가와 학생들 앞에 서며 말했다.
부드럽고 낮은 음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나서 반갑다. 바윈 아카데미에 실전 마법 전투학 과목을 맡게 된 유클리드 베네딕이라고 한다. 잘 부탁한다."
* * *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는 거 아니야?'
무능한 것으로 유명한 망나니가 되었으니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저 눈빛들은 부담스럽다. 뭐 하나 잘못하면 공격해 올 것 같은 눈빛이다.
게다가 여긴 문제아들의 터전 바윈 아카데미가 아니던가.
하나같이 호전적인 학생들이니 조심해야 한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일단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말을 하면서 연무장에 모여 있는 학생들의 면면을 슬쩍 살폈다.
하나같이 개성 넘치는 아이들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학생이 있었다.
사기꾼 황족 이안 임페리오, 교수에게 마법을 날렸다는 셀린 이리에드, 앞의 두 명과 비교하면 그나마 얌전한 편인 크루엘까지.
게임에서 숱하게 봤던 인물들.
'실제로 마주하니 감회가 새롭긴 하네.'
에드나 때도 그렇지만 이렇게 직접 대면하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나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 내가 준비한 자료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번 학기에 어떤 수업이 진행될지 설명해 주겠다."
* * *
연무장에 모인 학생들의 이목이 유클리드에게 집중됐다.
"이번 학기엔 마법의 실전적인 운용과 더불어 우리는 부여 마법이라는 학문을 배우게 될 것이다."
망나니 교수는 그렇게 말하면서 만년필을 품에서 꺼냈다. 학생들은 그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종이도 수첩도 없이 만년필은 왜 꺼낸 것일까.
하지만 학생들의 의문은 바로 해소되었다.
유클리드가 마치 글을 쓰는 것처럼 만년필을 움직이니 펜촉에서 흘러나온 마력으로 인해 허공에 글자가 생겨난 것이다.
"2학년들은 마력을 얼마나 잘 컨트롤하는지가 중요하겠지. 이건 곧 다가올 실력 테스트랑 연관 있는 것도 알고 있을 거다."
아카데미는 총 3학년으로 나뉘어 있고, 학년별로 평가하는 방식이 달랐다.
1학년은 마법사의 잠재력을 보고.
2학년은 마력 컨트롤을 보고.
3학년은 전체적인 것을 보며 어떤 마법사일지 평가한다.
"마침, 내가 가르칠 학문인 부여 마법도 마력 컨트롤과 깊은 연관이 있다."
유클리드 교수가 다시 허공에 글을 써 내려 갔다.
교수가 마지막 마침표를 찍어 내자 허공에는 학생들이 난생처음 보는 마법 술식이 떠올라 있었다.
"부여 마법이란 수식의 변형을 통해 마법을 강화하거나 성질을 변화시키는 마법이다."
망나니 교수의 말에 시큰둥해 있던 몇몇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부여 마법'이라는 낯선 이름에도 호기심이 생기긴 했지만, 그 설명은 더더욱 매혹적이었다.
수식의 변형을 통해 마법의 성질을 바꾼다니,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 마법을 배우기 위해선 앞서 말한 것처럼 우선적으로 필요한 능력이 있다."
유클리드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 방향을 가리켰다.
가리킨 방향에는 과녁 몇 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수식의 변형을 위해선 섬세한 마력 컨트롤 능력이 필수적이지. 그렇기에 우리는 수업 전반에 걸쳐 마력 제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법을 배울 것이다."
유클리드는 과녁 몇 개를 눈앞에 가져왔다.
"오늘의 수업은 마법을 사용해 이 과녁들을 꿰뚫는 것이다."
방금까지 유클리드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학생들이 허탈하다는 듯 어깨를 늘어뜨리는 것이 보였다.
마법으로 과녁을 맞히는 것 정도야 진작에 할 수 있었던 일이다.
수업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셀린 이리에드는 손을 들며 말했다.
"교수님, 저희는 그런 기초는 옛날에 다 배웠는데요. 그리고 수식으로 마법을 변형하다니 확실한 건가요?"
몇몇 학생도 셀린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학생들은 역시 망나니라면서 비아냥댔지만, 유클리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셀린에게 웃음을 보였다.
"학생은 이름이 뭐지?"
"셀린 이리에드 입니다."
유클리드는 가져온 과녁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셀린 학생은 이 과녁들을 맞히는 게 기초라고 했나?"
"네, 교수님은 못 하시는 건가요?"
셀린은 의기양양한 태도로 되물었다.
유클리드는 그녀의 자신만만한 웃음을 보며 다시 물었다.
"그럼 한 번 해 볼까?"
"네, 알겠습니다."
셀린은 지팡이를 꺼내 과녁을 맞힐 준비를 하려 했지만, 이어지는 교수의 행동에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교수님? 이게 뭔가요?"
유클리드는 과녁 다섯 개를 한 줄로 세웠다.
게다가 연무장에서 사용하는 사람 모양의 과녁이 아니라, 여러 개의 동심원이 그려진 처음 보는 모양의 과녁이었다.
"저기 점수 보이나? 마법으로 중앙만 맞히면 돼. 마법은 총 다섯 번 사용 가능하고."
셀린은 눈앞의 상황에 얼어붙었다.
그녀가 생각하던 일반적인 과녁 맞히기와는 다른 형태였다.
위력이 강한 마법을 사용해 과녁을 부수는 방식만 해봤지, 과녁을 부수지 않고 중앙을 꿰뚫는 연습을 해 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주어진 기회는 다섯 번.
그녀의 눈이 크게 요동쳤다.
"뭐지, 기초라고 하지 않았나? 못 하겠나?"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유클리드의 말을 듣고는 분했는지, 그녀는 과녁 앞에서 마법을 전개했다.
하지만 그녀는 차분함을 유지하지 못했고.
그녀의 마법은 5개의 과녁을 제대로 뚫는 건 고사하고, 총 3개의 맞힌 채 물러설 뿐이었다.
"호언장담한 것 치곤 결과가 그리 좋지 않은데."
"...."
셀린은 창피한 결과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 정도도 못한다니 실망이 좀 크군."
유클리드는 직접 과녁 앞에 섰다.
"어떻게 하는 건지 보여 주지."
유클리드가 한 개의 매직 미사일을 전개했다.
미사일은 곧바로 과녁을 향해 날아갔고.
정확히 과녁의 중앙을 맞혔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명중이었다.
학생들은 교수의 마나 컨트롤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마법을 배울 땐 마력 출력을 높여 위력을 강화하는 것만 생각했지, 저런 식으로 마력 제어 능력을 높이는 것은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유클리드는 다음 마법을 전개했다.
"섬세한 마나 컨트롤 능력이 되면 이런 것도 가능하다."
두 번째의 매직 미사일.
하지만 평범한 매직 미사일과는 달랐다. 마법을 전개하는 속도도, 날아가는 속력조차도 달랐다.
위력 역시 먼저 시전했던 것보다 강했다. 이번엔 아예 과녁을 꿰뚫고 지나갔으니까.
그 광경을 보고 놀란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게 매직 미사일이라고?"
"내가 알던 거랑은 너무 다르잖아?"
"매직 미사일로는 저런 위력이 나올 수가 없는데...."
유클리드는 계속해서 마법을 전개했고 나머지 3개의 과녁을 명중시켰다.
그리고 다시 학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게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부여 마법이다. 수식의 변형을 통해서 마법을 강화한 거지. 하지만...."
유클리드는 고개를 숙이고 있던 셀린을 바라봤다.
"셀린 이리에드 아직도 기초를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나?"
"...."
셀린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의 말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교수를 무시한 것도, 그의 말을 걸고 넘어진 것도 모두 자신이다.
'이런 사람이 망나니일 리가 없잖아. 누가 그런 소문을 낸 거야?'
셀린이 보기에 유클리드는 지독하게 냉정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의 황금색 눈은 자신의 속내를 완전히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 수업 내용에 대해서 이제 불만은 없나?"
"...네."
"그러면 다행이군, 자리로 돌아가라."
셀린은 고개를 숙이고 학생들이 서 있는 장소로 돌아갔다. 그녀는 돌아가면서 주먹을 꽉 쥐며 다짐했다.
다시는 이런 일을 벌이지 않겠다고.
제대로 실력을 늘려서 저 교수에게 인정받겠다고.
"그러면."
유클리드는 학생을 둘러보며 말했다.
"과녁을 맞히는 것은 성적 평가에도 반영이 될 테니, 계속 연습해 두는 것이 좋을 거다."
유클리드는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예상했던 것보다 수업 시간이 길어졌다. 원래라면 마법 시연만 간단히 하고 수업을 마칠 생각이었으니까.
그는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오늘 오리엔테이션은 이걸로 끝내겠다."
* * *
나는 수업이 끝난 후 개인 교수실로 돌아와 소파에 몸을 던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피로감이 상당했다.
"하아, 역시 힘드네."
너무 긴장했는지 몸이 부르르 떨렸다.
역시 게임과는 확연히 달랐다.
공기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첫 수업부터 실수 한 건 없는지 계속해서 생각할 뿐이었다.
"일단은 잘 넘어간 건가?"
셀린과 약간의 마찰이 있었지만 그래도 교수의 권위를 지키면서 원만하게 넘어갔다.
그 이상 셀린을 다그쳤다면 먼젓번의 교수처럼 셀린에게 공격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학생들을 확인하지 못한 게 아쉽네."
셀린에게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른 학생들의 반응을 살펴보진 못했다.
뭐, 앞으로 잘하면 되겠지.
나는 소파에 일어나 책상에 놓인 서류를 들었다.
교수실로 돌아오면서 행정 직원에게 요청해 서류 하나를 가져왔다.
현재 아카데미에서 활동하는 모든 동아리의 현황이 담긴 서류.
이 서류를 찾은 이유는 아카데미에서 벌어지는 첫 번째 메인 에피소드가 한 동아리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스토리의 주요 분기점인 메인 에피소드는 하나하나가 대륙의 위기를 야기하는 거대한 악과 관련이 있었다.
이를 위기 없이 지나가기 위해선 일이 닥치기 전에 사건을 해결해야 했다.
문제는 게임 내에서도 동아리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서류를 계속 살펴봐도.
"수상한 건 없단 말이지."
특별히 눈에 띄는 동아리는 없었다.
[고위 서클 마법 연구 동아리]
[고대 마법 해독 동아리]
[창조 마법 연구 동아리]
'지금은 활동하지 않는 건가?'
아니면 일반적인 동아리처럼 위장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다.
동아리를 발견하는 시간이 늦춰질수록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니까.
그래서 지금부터 대비하는 것이 좋다.
'일단 다시 확인해 보자.'
수상한 점이 없는지 다시 서류를 넘기던 순간이었다.
똑. 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고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클리드 교수님 지금 계신가요?"
"네, 있습니다. 들어오시죠."
문이 열리며 검은색 고깔모자를 쓴 여자가 들어왔다. 동시에 그녀가 과자를 먹었는지 달콤한 냄새도 함께 났다.
그녀는 나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
"유클리드 교수님,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플랑이라고 해요. 상태 이상 마법학을 다루는 교수에요."
"그렇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플랑 교수님. 무슨 용무로 찾아오신 건가요?"
플랑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총장님이 부탁하신 게 있어서요. 따라오시죠."
16화. 아카데미의 마녀
나는 교수실을 나와 걷고 있었다.
앞에는 플랑 교수라는 사람이 앞장서서 걷고 있었다.
그녀의 첫 모습은 마법보단 마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한 손에 들고 있는 곰방대라거나, 마녀가 주로 쓰는 고깔모자를 쓴다거나.
아카데미를 드나드는 다른 마법사들과는 다른 차림새였다.
플랑 교수가 나가면서 말하길.
총장인 아난타가 아카데미 안내를 부탁했다고 한다. 상황으로 보아 총장이 신임 교수에 대한 배려를 한 것 같다.
"유클리드 교수님은 신임 교수시죠?"
앞서가던 플랑이 곰방대를 뻐끔뻐끔 피며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바윈 아카데미가 처음이죠."
"신기하네요...."
그녀는 갑자기 걸음을 멈춰 날 바라봤다.
"어지간히도 총장님이 유클리드 교수님을 마음에 드신 것 같네요. 원래 이런 부탁을 하시는 분이 아니었는데 말이죠."
플랑이 말을 할 때마다 주변에 연기가 자욱하게 퍼졌다. 곰방대에서 피어오른 연기는 신기하게도 사탕처럼 달콤한 냄새가 났다.
"그런가요? 전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말이죠."
"이례적인 일이에요. 경력도 없는 신임 교수를 위해서 인심을 쓸 사람이 아니거든요."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겠죠?"
순간 플랑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지만, 이내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거는 아닐 거예요. 제가 물어본 이유는 유클리드 씨가 싫다는 건 아니고, 경력 없는 교수에게 이렇게 총장님이 관심을 주는 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라서요."
"그렇군요."
"그래도 총장님의 안목은 틀린 적이 없으니. 대마법사잖아요."
그녀의 눈은 의구심으로 가득해 보였다.
그녀는 나를 보면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유클리드 교수님, 첫 수업은 어떠셨나요? 실전 마법 전투학 수업이니 힘들진 않았나요?"
"괜찮았습니다. 오히려 학생들의 의욕이 넘치는 것 같더라고요. 곧 다가올 발푸르기스의 밤에서 좋은 소식을 얻을 수 있을 거 같네요."
"…정말요? 좋은 소식이라니...."
내 말을 듣고선 그녀의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그만큼 실전 마법 전투학에서 실적을 얻어낸다는 게 어렵다는 거겠지.
하지만 내가 가르친다면 가능할 거다.
"제가 가르친 학생들이라면 가능할 거라 믿습니다."
"도대체 어떤 수업을 하시는 거예요?"
"그건 비밀입니다. 그래도 곧 테스트가 다가오잖아요? 거기서 학생들의 실력을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녀의 가느다란 눈매와 내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흥미롭다는 듯 손으로 입을 훑었다.
"흐음, 총장님이 당신을 왜 마음에 들어 하시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네요."
"그런가요? 저는 아직 모르겠는데."
"나중에 알게 되실 거예요. 일단 계속 가시죠."
그러면서 플랑은 다시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나도 그 뒤를 따르며 플랑을 유심히 바라봤다.
상태 이상 마법학 교수 플랑.
플랑은 게임에서 정보가 그렇게 많지 않던 인물로 알고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 사건에 휘말려 죽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정보는 아는 게 없지만, 현재로선 심성은 착한 인물인 것 같다.
"지금 바로 식당으로 가는 건가요?"
"네, 아카데미 식당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잇거든요. 곧 도착할 거예요. 그리고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하잖아요?"
플랑을 따라 아카데미 외부에 있는 식당을 향해 걸어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순간.
어디선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 새끼가!"
* * *
아카데미 식당에서 그리 멀지 않고, 사람들의 인적이 뜸한 장소.
외곽진 장소에서 5명의 남학생이 모여 있었다.
"야 무슨 낯짝으로 아카데미에 돌아온 거냐?"
한 학생을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였는데 어쩐지 분위기가 흉흉했다.
"나한테 그런 수치를 주고선 무슨 생각으로 돌아온 거냐고!"
레츠너 백작가의 아들.
더글 레츠너가 나무에 등을 대고 앉아 있는 남학생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남학생은 크루엘.
크루엘은 더글의 대답에 답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마치 모든 걸 포기한 듯한 표정을 한 채로.
그 모습을 본 더글이 짜증이 났는지 미간을 좁혔다.
"야 평민, 대답이라도 하지 그래? 평민 주제에 귀족을 건들고 제대로 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아?"
더글이 크루엘에게 다가가 발로 흉부를 찼다.
퍽! 퍽! 그의 발길질에 크루엘이 바닥에 뒹굴었다.
"도대체 뭔 생각으로 날 때린 거냐? 봐봐, 지금 도 아무것도 못 하잖아? 그때는 무슨 자신감이었냐?"
더글의 말대로 크루엘은 발길질을 받고 나뒹굴어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더글의 말대로였다.
폭행죄.
그것도 평민의 몸으로 귀족을 폭행한 중벌.
원래대로라면 퇴학까지 갈 죄였지만, 더글도 죄가 있었기에 유급으로 끝났었다.
그럼에도 크루엘이 그에게 대항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더글과 다르게 크루엘은 평민.
더 이상 일을 저지르면 아카데미 퇴학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크루엘은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할 수는 없었기에, 치솟은 분노를 가까스로 삭이고 있었다.
"하아."
더글은 발길질에도 반응하지 않는 크루엘이 재미없었는지 발길질을 멈추곤 갑자기 웃었다.
"야, 평민 너 설마...."
그렇게 크루엘의 머리채를 잡고 시선을 마주했다.
"고아라고 말한 게 화가 났냐? 아니, 고아 맞잖아?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지?"
그 순간 크루엘의 눈이 요동쳤다.
과거에 크루엘이 폭행한 이유가 바로 더글이 부모님을 모욕했기 때문이었다.
크루엘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져갔다. 슬슬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던 것.
더글도 크루엘의 표정 변화에 눈치챘는지 더욱더 비아냥거렸다.
"왜? 또 주먹으로 날 때리려고? 야 때려, 때려봐. 이런 자식 때문에 부모가 죽었다니 참 좋겠네."
그 순간 크루엘이 자리에서 일어나 더글을 발로 찼다.
그도 더 이상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커억."
발길질에 날아간 더글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리고 주변 학생들에게 외쳤다.
"야! 다 공격해 마법이든 뭐든 다 퍼부어! 내가 책임진다."
더글의 무리가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크루엘도 보고만 있지 않고 지팡이를 꺼냈지만, 그 모습을 보고 더글이 웃기 시작했다.
"뭐야? 마법을 쓴다고? 네가? 마력 운용도 제대로 못 하는 들러리가."
그의 말대로 크루엘이 마법을 펼쳤지만.
차카앙─
마법은 제대로 전개되기도 전에 마법진이 부서져 버렸다.
'또 이러는 건가.'
아카데미에 오면서 언제부터인가 마법이 제대로 발동이 되지 않았다.
마법진을 구축하는 순간 부서져 버린 것이었다.
'그것만 완성된다면... 나도 다시 마법이 가능할 텐데.'
크루엘은 지팡이를 품에 넣고 더글을 바라봤다.
마법을 못 써도 육체 능력은 자신 있었다. 그래서 마법을 보고 피하려고 준비하던 순간이었다.
더글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동시에 귀족 학생들과 크루엘 사이에 커다란 돌벽이 생겨나 가로막았다.
이윽고 들려오는 서늘한 목소리.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거지?"
바로 망나니로 유명한 신임 교수 유클리드.
그가 학생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카데미 내에서 상대에게 마법 사용은 금지되어 있을 텐데?"
유클리드가 미간을 좁히며 학생들을 둘러봤다.
아무리 봐도 4명이 1명을 향해서 공격하는 상황이었다.
상황을 얼추 이해한 유클리드가 입을 열려는 순간.
더글이 먼저 말을 꺼냈다.
"교수님, 저 녀석이 먼저 저를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법으로 방어하려고 했던 겁니다."
그는 크루엘에게 대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유클리드 교수도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이 됐다.
1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 교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단 말이지? 하지만 여기 다섯 명이 상대방에게 마법을 쓰려고 했다는 건 변함없다. 중징계는 피할 수 없을 테지. 퇴학까지도 갈 수 있겠고."
일제히 학생들의 몸이 움찔했다.
방어하려고 했든, 공격하려고 했든, 상대방에게 마법을 쓰려고 했던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학생들의 침묵이 길어지던 순간 교수가 의외의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아카데미 첫날부터 학생들에게 징계를 내리는 건 영 찝찝하군. 여기서 끝마치고 헤어지는 게 어떤가? 그럼 오늘 일은 눈감아주지."
"...네?"
갑작스러운 교수의 제안에 학생들의 눈이 크게 터졌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라고 표정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말이 없는 거로 보아 징계를 원하는 건가?"
"아, 아닙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더글의 무리는 빠르게 인사를 한 후 자리에서 떠났다.
"그럼, 저도...."
크루엘이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유클리드 교수 뒤에서 플랑 교수가 나타났다.
"크루엘! 괜찮니?"
"프, 플랑 교수님?"
플랑이 정말 걱정하는 듯한 표정으로 크루엘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학생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말했다.
"일단 보건실로 가서 치료받으렴. 얘기는 나중에 하자."
"...알겠습니다."
그렇게 크루엘은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떠났다.
* * *
유클리드는 플랑 교수를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방금 벌어진 사건에 대해선 별다른 얘기를 하진 않았다. 그저 플랑 교수에게 감사하단 말을 들었을 뿐이다.
유클리드가 상황을 그렇게 처리한 이유는 플랑의 부탁 때문이었다.
'크루엘과 접점이 있는 인물이었나?'
크루엘은 눈여겨보고 있는 학생 중 한 명이었다.
무려 첫 번째 에피소드와 아주 연관이 있는 학생이었으니까.
그런 크루엘과 친밀해 보이는 플랑 교수에게 흥미가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클리드 교수님, 여기가 식당이에요."
유클리드가 다른 생각을 하던 중.
어느새 식당 앞에 도착했다.
식당 앞에는 동료 교수들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 하나에 여자 하나.
"안녕하세요!"
먼저 활기차게 웃으며 인사를 한 건 생기발랄하게 웃는 여성이었다.
유클리드도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유클리드 베네딕입니다. 이번 신임 교수로 실전 마법 전투학 2학년 반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클레아에요. 마법 연구학을 담당하고 있어요. 잘 부탁해요."
그다음 죽을 듯한 표정을 지으며 동그란 안경을 쓴 남자가 악수를 청했다.
남자는 매우 피곤했는지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저는 고대 마법학을 담당하고 있는 가벤이라고 합니다. 제가 피곤해서 말이 어눌하니 죄송합니다."
유클리드는 악수를 받으며 웃어줬다.
"괜찮습니다."
교수진들과 짧은 소개를 마친 후.
그렇게 식당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한 남자가 유클리드에게 다가왔다.
복장으로 보아서 아카데미 교수진.
어딘가 정갈한 모습의 남자였다. 걷는 모습 하나하나가 흔들림이 없어 보일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플랑이 그 남자를 보더니 미간을 찡그렸다.
"자네가 바로 이번에 새로 부임한 신임 교수인가?"
능구렁이 같은 눈빛을 가진 남자는 곧장 유클리드에게 다가갔다.
"유클리드 교수라고 했던가. 나는 그레이드 백작가의 달튼이라고 하네 이번에 우리랑 같이 식사하는 게 어떤가?"
달튼이 의기양양하게 말하며 손을 건넸다.
플랑이 따로 설명하진 않았지만, 방금 유클리드가 악수한 이들은 모두 평민 출신의 교수들이었다.
그리고 달튼 교수가 자신들과 식사하자는 것은 귀족 파벌로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플랑은 그런 달튼의 언행에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유클리드가 그를 따라 자리를 옮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유클리드 교수도 어쨌든, 귀족이니까.'
자신들과 밥을 먹는다 한들 큰 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또한 달튼 교수는 유클리드 교수와 마찬가지로 실전 마법 전투학 3학년 반을 담당하는 교수다.
같은 수업을 담당하는 유클리드 교수에겐 좋은 상황일 수도 있다.
달튼이 수업 비전을 전수 할 수도 있고.
귀족 교수들과 식사하고 인맥을 쌓는 것이 더욱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학생들을 대하는 것을 보니 저 역겨운 귀족들보다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플랑이 그런 생각을 하던 차였다.
그녀는 자신에게로 고개를 돌린 유클리드와 눈이 마주쳤다.
플랑을 본 유클리드가 미소를 짓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손을 건넨 달튼 교수에게 답했다.
"달튼 교수님 제안은 죄송합니다만 거절하겠습니다. 선약이 있어서 말이죠."
"...음."
옆에 있던 플랑 또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유클리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편 유클리드는 귀족과 평민의 관계 같은 복잡한 문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단지 플랑 교수와 관계를 더 다지고 싶었을 뿐이다.
또한 유클리드는 달튼 교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겐 제대로 모르고 있는 플랑 교수에게 더욱 흥미가 갈 수밖에 없었다.
"유클리드 교수 2학년 반이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곧 다가오는 실력 테스트는 알고 있죠?"
"네."
달튼이 유클리드의 뒤를 바라보며 웃었다.
"저기 뒤에 있는 교수들보다 제대로 된 조언을 할 수 있는데 어떤가요?"
"괜찮습니다. 저는 혼자 힘으로 할 수 있어서 말이죠."
유클리드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돌렸다.
"달튼 교수님, 그럼,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단호한 유클리드의 거절에 주변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달튼 교수의 제안을 거절하리라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유클리드의 행동에 더욱 놀라고 있었다.
'총장님의 눈독에 들은 사람이긴 하구나.'
플랑이 바라본 바로는 그는 도덕적인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이득보다 사람이 먼저인 사람.
그녀가 바라본 유클리드 교수는 그런 사람이었다.
대화가 끝난 후 달튼 교수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썹은 흔들리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제안이 거절당한다고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면야. 아쉽긴 하네요. 실력 테스트에서 어떻게 할지 기대 하겠습니다."
달튼이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그럼 가시죠, 플랑 교수님."
"어, 어? 네."
유클리드는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17화. 첫 수업 (1)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에피소드를 수월하게 막아야 한다.
나는 모든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있고, 막는 법도 알고 있다. 하지만 혼자서 모든 걸 막기엔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네임드 캐릭터를 강하게 만들기로 한 거다. 마침 실력 테스트가 다가오고 있다.
실력 테스트.
아카데미에서 실전 마법 전투학 수업을 듣는 학생들 위주로 시행되는 테스트다.
이 테스트로 인해 학생들은 마법사의 잠재력을 시험받고, 발푸르기스의 밤 선별 학생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 실력 테스트로 학생들의 성장을 체크할 예정이었다.
물론 테스트 통과는 시킬 거다.
난 바윈 아카데미에서 어떤 시험이 시행되는지 전부 알고 있으니까.
이번 다가올 테스트를 토대로 한 가지 수업을 만들었다.
"이 정도면 준비가 되겠지."
난 탁자에 놓인 작은 공을 바라봤다.
수업을 위해서 제작한 특수한 아티팩트였다.
"학생들이 좋아해 주면 좋겠네."
곧 수업 시간이 다가왔다.
난 로브와 공을 챙겨 연무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오리엔테이션으로부터 시간이 흘러서 첫 수업이 다가왔다.
연무장에서 학생들이 교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수님이 어떤 수업을 하려나?"
"어떤 수업을 할지 감이 안 잡힌단 말이지."
오리엔테이션 때와는 다르게 학생들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가득했다.
유클리드 교수가 강렬한 모습을 보여준 덕분일까.
덕분에 학생들은 수업을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하는 것이 있었다.
"이제 곧 실력 테스트가 다가오잖아?"
"이번에는 좋은 성적을 내야 할 텐데...."
학생들은 곧 다가오는 테스트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테스트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모두의 목표는 발푸르기스의 밤에서 선별되는거니까.
학생들이 갖가지의 생각을 가지고 교수를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유클리드 교수가 드디어 연무장에 나타났다.
"곧 수업을 시작하겠다."
교수는 학생들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수업을 들어가겠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우리는 마력 컨트롤 능력을 높이기 위한 연습을 할 거다."
유클리드가 손을 튕기더니 허공에서 신기한 물건이 튀어나왔다.
"저번에도 과녁을 맞히는 걸 했었지, 이번에도 비슷한 걸 하겠다."
그는 말하면서 허공에서 꺼낸 물건을 들었다.
"바로 이 공을 맞히는 것이 오늘의 수업 목표다."
유클리드는 주먹 정도의 크기를 가진 작은 공을 들고 있었다.
학생들은 그 공을 신기하게 바라봤지만, 수업 내용을 듣고는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한 학생이 손을 들어 질문을 했다.
"교수님, 이번 수업은 마법을 사용해 저 공을 맞히는 게 목표인 건가요?"
"맞다."
교수는 손을 들어 학생들에게 공을 보여 줬다.
"이 공은 단순한 공은 아니다. 내가 수업을 위해 특수하게 제작한 공이지 한번 봐라."
교수가 작은 공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공에 새겨져 있던 마법 술식들이 마력에 반응해 하나둘씩 떠올랐다.
이윽고 공의 양옆으로 새하얀 날개가 뻗어 나왔다.
'도대체 저게 뭘까? 또 어떤 걸 보여 주려 하는 거지?'
학생들은 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리엔테이션 때도 강렬한 모습을 보여 준 유클리드 교수였다.
이번에도 그가 어떤 걸 보여 줄지 기대하고 있던 것이다.
"날개가 뻗어 나온 걸 보면 눈치챈 학생들도 몇 있을 거다."
교수가 공을 위로 높이 던졌다.
하지만 공은 떨어지지 않았고 교수의 주변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이 날아다니는 속도는 평범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간신히 따라잡을 정도였으니까.
"이번 다가오는 테스트까지 이 표적을 제대로 맞히는 걸 목표로 할 거다."
교수의 말을 듣자마자 학생들의 표정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저 작은 공을 맞히는 것도 벅찬데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몇몇 학생들은 덤덤히 바라보고 있었다.
'할 만한 것 같은데? 광역 마법 하나면 쉽잖아?'
약삭빠른 학생들은 벌써 잔꾀를 부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공이 날아다니는 것으로 보아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2서클 광역 마법을 쏴서 전체를 날리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유클리드가 입을 열었다.
"단, 이번 수업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매직 미사일 하나로 제한한다."
유클리드 교수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수업의 목적은 마력 컨트롤을 연습하는 것이다. 광역 마법을 써서 쉽게 공을 맞힐 순 있겠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다."
교수가 몇몇 학생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설마 광역 마법을 쓸 생각을 한 학생은 없겠지?"
잔꾀를 부리던 학생들이 찔렸는지 교수의 시선을 피했다.
"최소한의 마력으로 마법을 사용해 표적을 맞히는 것이 목표다. 이 수업이 당장 도움이 될지 감이 안 잡히겠지만...."
교수가 지팡이를 꺼내 허공에 글을 써 내려갔다.
글의 내용은 곧 다가오는 테스트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수업을 제대로 듣는다면 곧 다가올 테스트에서 도움이 된다고 장담할 수 있다. 실력 또한 한층 더 좋아지겠지."
그 말을 듣자마자 학생들의 눈빛이 바뀌기 시작했다.
교수의 호언장담에 학생들은 의지가 충만해졌지만, 다음 교수의 말이 학생들을 한층 더 불타오르게 했다.
"이번 테스트를 통과한 상위 다섯 명의 학생에겐 부여 마법을 하나씩 전수해 주겠다."
교수가 말했던 마법 술식을 바꾸는 마법.
부여 마법은 마법의 근원을 뒤틀 수 있는 획기적인 마법이었다.
학생들도 오리엔테이션에서 잠깐이나마 봤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도 부여 마법이 굉장한 마법이란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덕분에 학생들의 머릿속에는 테스트를 상위로 통과할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럼, 한 명씩 나오도록 공을 나눠 주겠다."
* * *
학생들이 표적을 맞히기 위해 마법을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는 작은 공을 매직 미사일 하나만으로 맞히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너무 어렵잖아...."
마법에 자신있어하던 셀린 이리에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계속해서 마법을 날리고 있었지만, 저 작은 공은 그녀를 놀리듯이 계속 피할 뿐이었다.
마법을 계속 날린다면 언젠간 가능할지도 몰랐지만, 사람의 마력은 무한하지 않았다.
"...으, 으. 너무 힘들어."
셀린이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그녀의 마력도 바닥을 본 것이었다.
마력이 얼마나 없으면 손이 덜덜 떨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좀 쉬어야겠어. 이 이상 마법을 쓰다간 마력 탈진이 오겠어.'
마력이 고갈되면 발생하는 마력 탈진.
마력 탈진에 걸리게 된다면 하루 동안 몸을 못 움직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셀린은 쉬면서 마력을 회복하길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셀린이 고개를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역시나 공을 맞힌 학생은 없어 보였다.
셀린과 마찬가지로 마력이 고갈됐는지 많은 학생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으니까.
셀린이 주변을 둘러보는 도중 옆에서 큰 한숨이 들려왔다.
"하아."
노을빛을 머금은 듯한 금발이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금발.
이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저 금발을 모를 리 없었다.
당연히 셀린도 지금 한숨을 쉬는 사람이 누군지는 알고 있었다.
임페리오 제국의 제 3황자 이안 임페리오.
그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푹 내쉬고 있었다.
"이걸 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는 거지? 이러다 마력이 먼저 고갈되겠어."
이안의 말과 다르게 그는 지치진 않아 보였다. 역시 황족이라서 그런지 마력량은 남다른 것 같다.
그는 마법을 쓰면서 계속 툴툴거렸다.
그러고는 지팡이를 세 번 정도 휘두르더니, 마법을 거두고 셀린을 바라봤다.
"...음, 넌 이리에드가의 여식인 셀린이었나?"
밝은 금색 눈동자가 셀린을 향했다.
그는 지팡이를 마치 저글링을 하듯 던지며 말했다.
"셀린, 넌 이 수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셀린은 갑작스러운 황자의 질문에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교수님이 도움이 되지 않은 수업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계속 연습한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네 생각은 그렇단 말이지?"
이안의 표정은 미묘해졌다.
그가 원하던 대답이 아니라 그런 것 같았다.
이안은 당장 이 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셀린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니까.
"난 더 이상 이 수업을 듣고 있을 수는 없겠어. 원하던 수업도 아니고, 시간 낭비인 것 같단 말이지."
이안이 지팡이를 품에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셀린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난 먼저 가 본다. 열심히 하라고."
"네?"
그 말을 끝으로 이안은 연무장 밖으로 나가 버렸다.
셀린이 말리려고 했지만, 너무 찰나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린다 한들, 이안의 성격이라면 무시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소문은 익히 들은 게 있었다.
'저게 진정한 망나니지.'
셀린은 이안에 대한 소문은 적잖이 들었다.
유클리드 교수의 망나니 소문이 거짓이라고 한다면, 이안은 진정한 의미로 망나니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지금은 술과 도박에 절어 있는 이안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 총명함으로 제국에 소문이 자자했던 인물이었으니까.
그랬던 그가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한 것은 다른 황족들에 비해 마법 재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였다.
하지만 그런 사연이 있다고 해서 지금의 행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업에 제대로 참석하지 않고, 계속된 결석은 물론이며, 도박과 유흥에 빠져 살기까지 하니까.
"황족이 저 정도로 품위가 없다니."
셀린이 지금까지 봐온 이안은 황족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사람이었다.
일단 행동 하나하나가 경박하기에 짝이 없었으니까.
'뭐 지금은 이게 문제지.'
셀린은 상념을 뿌리치고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유클리드 교수가 학생 한명 한명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학생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 주고 있었다.
"넌 마력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 게 문제구나, 일단 내가 시연을 보여 줄 테니 어떻게 마력량을 조절하는지 확인해 봐라."
마력 고갈이 빠르게 온 학생에겐 직접 마법을 쓰면서 확인해 줬고.
"크루엘 넌 마력 컨트롤이 느슨하구나. 집중하면서 몸속의 마력을 느껴라. 그리고 마법을 사용할 때는 눈을 뜨고 목표에 집중해라. 일단은 내가 도와줄 테니 다시 사용해 봐라."
마법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있는 학생에겐 직접 몸의 손을 대서 마력 컨트롤을 도와줬다.
그렇게 유클리드 교수는 50명의 학생 전부를 둘러보면서 봐주고 있었다.
'저런 교수가 최근에 있었을까?'
다른 교수들도 수업의 질이 좋은 적은 있었다.
질이 좋은 수업에도 낙오되는 학생은 나오는 법이다.
교수가 모두를 봐줄 수 없는 노릇이고, 50명가량의 학생을 하나하나 살피는 건 중노동과 비슷할 텐데.
'저 정도로 학생들에게 진심이라니.'
유클리드 교수는 그 중노동을 손수 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수업에서 낙오되는 학생들이 나오지 않게 하려는 것처럼.
셀린이 계속 주변을 둘러보던 중이었다.
"너도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어느새 유클리드 교수가 셀린의 앞에 다가왔다.
"왜 가만히 앉아 있지?"
교수가 이상하다는 듯 표정을 짓고 있었다.
셀린은 당황하면서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 교수님. 잠시 마력을 회복하고 있었어요."
"그렇단 말이지 정말 문제는 없나?"
"네, 지금에선 문제는 없어요."
셀린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오리엔테이션에 대들고 나서 교수와 첫 대면이었다. 아직 그날의 상황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교수는 셀린을 힐끔 바라보더니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지? 옆 학생은 어딜 간 거지?"
"...아."
셀린이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입술이 몇 번이고 열렸다 닫혔다. 그러자 유클리드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도, 도망쳤습니다."
"뭐?"
유클리드 교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학생이 수업 도중 도망쳤다는 사실이 믿기 힘든 것 같았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셀린을 보며 말했다.
"...설마, 이안 임페리오인가?"
"네, 죄송합니다. 말릴 새도 없이 나가 버리셔서."
셀린이 고개를 숙이며 쥐 죽은 듯 말했다.
그녀는 또 교수에게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교수에게 혼날 생각에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지만.
"그렇단 말이지?"
유클리드 교수는 화를 내기보단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고.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하지."
그러면서 셀린에게 한마디를 했다.
"셀린 걱정하지 마라. 이안은 다음 수업에 꼭 참여하게 만들어 주마."
18화. 첫 수업 (2)
"으아악! 맞아 맞으라고!"
"...이걸 어떻게 맞히라는 거야."
학생들의 고통받는 목소리가 한 폭의 음악처럼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몇몇은 화가 났는지 얼굴색이 붉게 바뀌기까지 했다.
나는 그 장면을 흡족해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쉬울 리가 없지. 저건 간단히 통과하라고 만든 건 아니니까.'
내가 저 공을 이유 없이 만든 건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대로라면 이 수업은 반드시 도움이 될 거야.'
곧 다가오는 실력 테스트.
이번 테스트의 내용은 다가오는 마물에게서 수정을 지키는 것이다.
나는 테스트에서 나오는 마물을 알고 있어서 저 공을 만든 것이다.
테스트에 나오는 마물의 속도를 생각해서 공의 속도를 비슷하게 조절해 놓았다.
이 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은 확연히 달라지겠지.
"곧 끝날 시간인가."
수업이 끝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역시 첫 수업부터 성공하는 학생은 없었다.
이안, 셀린 등 내가 눈여겨본 학생들도 공을 맞히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댕─ 댕─ 댕─.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중앙동에서 들려왔다.
종소리가 들려오자마자 학생들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계속해서 마법을 사용한 덕분에 진이 다 빠져 버린 것이었다.
"오늘 수업은 이걸로 마치겠다. 나눠준 공은 개인이 보관하고 있도록 수업 이외에 자율적으로 연습해도 된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학생들을 쓰윽 훑어봤다.
'역시나 안 돌아왔나?'
셀린이 아까 말한 것처럼 이안 임페리오는 수업을 나간 후 돌아오지도 않았다.
수업이 끝나기 전에 돌아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역시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황제의 오점이라 불리는 3황자 이안 임페리오.
방탕한 생활을 누리며 대중에게 지탄받고 있는 그였지만, 사실 그 이면엔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그의 경박한 태도는 위장이었고, 뒷면에서는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행동했다.
도박으로 벌어들인 뒷돈으로 자신의 세력을 키웠고, 에피소드 후반부 그는 제국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뭐 막긴 막지만, 다음 상황이 좋지 않지.'
결국 게임 속에선 이안의 반란은 어떻게든 진압되지만, 그 과정에서 제국은 큰 분열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클라리스의 세력이 강해지는 계기가 된다.
아직 그가 반란을 일으키기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그때까지 그가 가진 문제점을 해결해 주면 될 것이다.
'이안도 처음부터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가 반란을 일으키게 된 계기는 형제들의 멸시와 경멸 때문이었다.
형제들에게 마법사로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아버지에게조차도 무시당하게 된다.
그 응어리가 쌓이고 쌓여서 반란까지 가게 된 것이었다.
의외로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이안을 무시 받지 않을 정도의 마법사로 만들어 주면 된다.
'내가 아는 이안이라면 거기 있겠군.'
다행히 나는 이안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잡으러 가야겠어."
나는 겉옷을 챙겨 연무장을 나서 저택으로 향했다.
도망친 학생을 잡기 위해 준비할 것이 있었다.
* * *
테일 중심지에서 가까운 장소.
중심지에서 몇 개의 골목을 건너면 나타나는 술집이 있었다.
술집의 이름은 유토피아.
이상향이라는 뜻을 가진 이 술집은 항상 손님이 많은 가게였다.
왜 술집이 유토피아라는 이름을 가졌을까?
술이 맛있어서? 호화로운 음식들이 넘쳐나서?
둘 다 아니었다.
술집과 함께 다른 일을 하는 가게였다.
"아, 오늘도 다 잃어버렸어.... 내가 던전에서 얼마나 힘들게 모았는데."
바로 술보다 도박을 주로 하는 가게였다.
1층은 술집을 운영하고, 지하는 도박을 중점으로 하고 있었다.
지하에는 마법으로 만들어진 각종 게임 도구들이 넘쳐났다.
적당한 도박은 사람들의 삶을 즐겁게 만들어 줬고, 유토피아는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곳이 됐다.
"오늘은 빨리 왔네? 표정이 좋지 않은데 무슨 일 있어?"
그리고 그 유토피아에 언제나 상주하고 있는 인물 중 한 명.
"아, 오늘 재미없는 일을 겪은 게 있어서 그래."
방탕한 황자 이안 임페리오가 탁자에 발을 올리며 말했다.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이안의 머리카락은 황족 특유의 금발이 아니었다.
그도 황족인 걸 들키는 걸 탐탁지 않았는지, 마법으로 머리 색을 갈색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덕분에 3 황자와 이름이 같아도 누구도 이안이 황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거구의 남자가 신문을 들며 다가왔다.
"다음 달이면 건국제잖아? 이안 너도 제국으로 갈 거야? 한 번쯤 가 보고 싶긴 한데."
건국제.
제국이 건국한 날을 기념하는 축제였다. 그리고 마침 그날은 아카데미 테스트가 끝난 후였다.
건국제라는 말을 듣자마자 이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건국제라...."
황자인 이안은 건국제에 반드시 참여해야 했지만.
"모르겠다. 뭐 가지 않을까?"
그는 건국제에 가기가 싫었다.
건국제 자체가 싫은 건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자신들의 혈육을 만나는 것이 싫었다.
'내가 능력만 좋았다면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 텐데.'
들려오던 소문.
이안이 마법사로서 능력이 부족하다는 건 정말 사실이었다.
그는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바람 속성만 다룰 수 있었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게 재능이 없다고 무시당하며 살아왔다.
그렇다고 그도 마냥 포기하고 있진 않았다. 계속 해결할 방법을 찾았고, 테스트에서라도 활약해서 마법사로서 인정받을 생각이었다.
'마력 컨트롤? 그딴 수업이 지금 내게 도움이 될 리가 없잖아.'
유클리드 교수의 수업은 확실히 다른 학생에겐 도움이 돼 보였지만, 이안의 성에 차지는 않았었다.
'다른 속성의 마법을 다루게 만드는 수업은 없는 건가?.'
그런 생각하던 찰나였다.
아까 건국제의 대한 이야기를 하던 남자가 다른 신문을 꺼내 왔다.
이번엔 용병과 모험가들의 이야기가 적힌 신문이었다.
"이안 이거 봐 봐. 드레켄 던전이 공략됐다는 기사가 떴다고."
드레켄 던전.
각종 상위 마물과 트랩이 넘쳐나서 악명 높은 던전으로 불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드레켄 던전에 도전했다.
이유는 첫 입구에서부터 각종 고위 아티팩트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그 드레켄 던전이 완전히 공략된 것이다.
이안이 신문을 낚아채 유심히 읽었다.
'여기서 나온 아티팩트라면 원하는 게 있지 않을까?'
드레켄 던전의 아티팩트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을 수도 있었다.
아마도 곧 시장에 풀리거나 경매장에 고위 아티팩트들이 올라오겠지.
지금 가진 돈을 생각한다면 더 돈을 모을 필요가 있다.
'거기에 힘을 빌릴 필요도 없어.'
구박받는 처지라지만, 제국의 3황자인 이안이다.
돈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첩의 자식이었던 탓에 항상 자신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형제들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트집을 잡았으니까.
아마 아티팩트를 사는 일에 돈을 쓴다면, 또 좋지 않은 잡음이 생길 터였다.
이안은 고개를 돌려 거구의 남자를 바라봤다.
"이데, 오늘은 도전해 오는 사람 없어?"
"이안, 너한테 도전할 사람이 있을까? 유토피아에서 네 실력에 대해서 소문이 퍼졌다고."
이데가 한 서류를 꺼냈다.
그는 이 유토피아를 관리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고, 서류에는 주요 인물들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안도 그 서류에 적혀 있었다.
"이안 네가 얼마나 돈을 벌어 갔는지 알잖아? 너한테 내기를 하면 돈만 날린다고. 너한테 내기를 걸 사람이 있을까?"
"다 아는 사람이 왜 이래? 이데, 너도 알잖아? 도박은 다 운이야. 운. 일단 금액을 더 높게 부른다고 소문내면서 말해 봐."
이안은 능청스럽게 말했지만, 많은 돈을 딴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눈치가 빠르다는 소리를 들었다.
타고난 속성 때문인지 이안은 특이 체질을 가지고 있었다.
바람을 통해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읽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찰나의 표정, 호흡의 빈도, 높아지는 체온 등 여러 생체 정보가 바람을 통해 이안에게 전달됐다.
덕분에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 도박에서 승리하고 있던 것이다.
이데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래 알았어. 일단 찾아보고 오지."
거구의 남자는 투덜대며 시야에서 멀어졌고, 이안은 다시 신문을 펼쳐봤다.
"일단은 돈을 모아야 할 텐데."
아마도 많은 고위 귀족이 경매에 참여할 것이다.
지금 가진 돈도 어느 정도 있지만, 원하는 물건을 확실히 얻기 위해선 준비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신문을 보던 찰나였다.
"이안, 데리고 왔다고."
방금 나갔던 이데가 한 남자를 데리고 왔다.
"이 사람이 너랑 하고 싶다는데?"
"...저 사람이?"
남자를 보자마자 이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봐도 남자는 돈이 많아 보이진 않았다.
얼굴에 새겨진 큰 흉터에, 거적때기 같은 옷, 며칠은 씻지 않은 것인지 몸에선 퀴퀴한 냄새가 풍기기까지 했다.
이안은 애써 표정을 가다듬고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온 도전자다. 바로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래, 당신이 나랑 내기하고 싶다고?"
이안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야야, 저기 봐봐 이안에게 도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아직도 있다고? 얼마나 돈을 잃고 싶은 거야?"
유토피아에서 유명한 이안에게 도전하는 간 큰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던 것.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남자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그렇게 잘한다고 하더라고. 한 판 어떤가?"
"나야 오랜만에 온 손님이라 좋지만, 당신 돈은 있는 거 맞지? 빈털터리는 사양이라고."
"아 옷 때문에 그런 건가? 며칠 전 던전을 클리어하고 돌아와서 말이지. 옷을 살 여유가 없었네."
이안은 던전이라는 말에 흠칫 놀랐다.
'설마? 드레켄 던전에서 온 건가?'
그렇다면 저 남자의 행색도 이해가 간다.
어쩐지 큰 흉터가 있더라니 용병이었던 건가.
남자를 유심히 살펴보던 찰나였다.
그가 품에서 한 물건을 꺼내 보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델리는 별로 없지만, 그 대신 이 아티팩트를 담보로 하지 어떤가?"
남자가 보여준 아티팩트는 한눈에 봐도 고위 아티팩트 같았다. 금색 팔찌에다 보석이 박혀 있었다.
팔찌에 박힌 세 개의 붉은 보석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모두가 팔찌로 시선이 쏠리던 순간이었다.
남자가 이안에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내기를 받을 당신에게만 말해 주지. 이 아티팩트를 착용한 사람은 다른 속성의 마법도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하더라고. 어때 이 정도면 내기의 물건으로 괜찮지 않은가?"
이안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 말이 사실이야?"
"당연하지, 방금 감정도 받아 왔다고. 한번 확인해 보게나."
남자가 한 증표를 건네줬다.
베네딕 가문의 문양이 박힌 증표였다.
저 증표가 있다는 것은 왕국 내 각 도시에 파견된 베네딕가의 아티팩트 감정사가 물건을 감정했다는 뜻이었다.
그곳에서 나온 증표라면 그가 말한 것처럼 아티팩트의 능력은 확실한 것이다.
이안은 속으로 기뻐했지만, 일단 침착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러면 믿을 만하네. 내기를 받아 주지."
"와아아아! 이안이 내기를 받아들였다!"
"오늘 얼마나 돈이 나가는지 한번 보자고!"
주변 사람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얼마나 많은 돈을 탕진할 호구가 나타났는지 기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처음에는 적은 돈부터 시작하는 게 어때?"
"그러지. 그리고 내기를 하기 전에 한 가지."
남자가 주머니에서 스크롤 하나를 꺼냈다.
이안이 오묘한 표정으로 스크롤을 바라봤다.
"그건 뭐지?"
"용병 일하면서 나만의 수칙이 있어서 말이지. 계약을 하는 게 어떤가?"
"무슨 계약?"
"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할 시 상대방을 따르는 계약이지."
"흐음."
이안은 턱을 괴며 생각했다.
저런 계약은 패배하면 큰 리스크를 달고 사는 거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황족이라서 더욱더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다 제치더라도 저 아티팩트는 필요했고, 자신이 질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 계약하지. 단 패배하고선 다른 말 하지 말라고."
"당연하지. 용병의 자존심을 걸고 맹세하지."
이안이 스크롤에 계약하던 순간, 남자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이안을 바라보며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당신도 다른 말 하지 말라고. 그리고 게임은 이걸로 하지."
남성이 트럼프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통적인 게임으로 가 보자고."
이안도 카드를 보고선 웃음을 지었다.
"카드라 좋지."
포커는 이안이 제일 잘하는 게임 중 하나였고, 더욱더 질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럼 시작하자고."
"좋아."
아티팩트를 건 도박이 시작됐다.
19화. 방황하는 황자 이안
'지금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건가?'
유토피아를 관리하는 거구의 남자.
이데는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분명 초반에는 이안이 이기고 있었는데?'
이안과 용병이 도박을 시작하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역시 이안이 승기를 잡아가며 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는 계속해서 이기면서 많은 판돈을 얻어 갔다.
하지만 상대인 용병은 그렇게나 델리를 잃었는데도 한 치의 흔들림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여섯 번째 게임이 시작되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용병이 이안에게 한 가지를 제안했다.
"판돈이 적은데 한번에 크게 올리는 게 어떤가?"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의아하게 용병을 바라봤다.
많은 돈을 잃었던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말일까?
이안도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크게 웃으면서 제안을 받아들였다.
제안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상황은 거짓말처럼 역전되었다.
용병이 판돈을 쓸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이안의 델리는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바뀐 판도로 인해 사람들의 의심이 커지기 시작했고, 이내 사기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나왔다.
"저거 사기는 아니겠지?"
"몸 한번 뒤져 보라고! 이럴 리가 없잖아."
하는 수 없이 이데가 용병의 몸을 조사해 봤지만, 어떠한 장치도 없었다.
그는 온전한 실력으로 상황을 역전한 것이다.
'실력을 숨기고 있던 건가?'
게임의 양상을 다 알진 못하지만, 이번에도 용병이 이길 것 같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던 이안의 얼굴도 점차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는 애써 표정을 가다듬고 있었지만, 얼굴에서 미세한 떨림이 보일 정도였다.
'이안이 저렇게 몰린 적이 있었을까?'
작년에 갑자기 이곳 유토피아에 나타난 이안은 천부적인 감각으로 도박판을 휩쓸어 버린 신성이었다.
항상 승리해 왔던 이안이 저런 모습을 보이다니.
그리고 다시 한번 게임의 결과가 나왔다.
"또 졌다고?"
이안의 패배.
판돈을 올린 시점부터 점차 용병이 게임을 가져가는 횟수가 늘어나더니, 두 시간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쯤엔 이안은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돈도 거의 떨어진 것으로 보아 내기는 이쯤에서 끝날 것 같았다.
이데가 나서서 중재하려는 순간.
이안이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마지막,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다시 하지."
* * *
꿀꺽.
이안이 마른침을 삼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분명 처음엔 승기를 잡았다.
계속해서 이긴 덕분에 곧 끝날 거란 확신도 있었다.
이안도 자만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확실히 이기기 위해 계속 집중했다.
바람 마법을 통해 상대방이 긴장하거나 흥분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일까? 그의 감정을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왜 갑자기 감정을 읽을 수 없게 된 거지?'
상대방의 정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이안과는 달리 맞은편의 남자는 마치 이안의 패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승부를 걸고 있었다.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이럴 생각할 시간이 없어.'
이 판을 이기려면 더 집중해야 했다.
이안은 딜러에게 받은 패를 들어 올리며 잠시 눈을 감았다.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주변 술 냄새 때문에 머리가 몽롱해지며, 사방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귀를 강타했다.
그 순간 방금까지 느낄 수 없었던 상대방의 감정이 흘러들어 왔다.
'동요하고 있는 건가?'
상대방의 숨이 거칠어진 게 느껴진다.
그 감정을 알아차린 이안은 천천히 눈을 뜨며 손에 들린 패를 확인했다.
'이 패라면 가능해.'
이번 패는 숫자 3 카드 세 장과 J 카드가 두 장인 풀 하우스였다.
확실히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에 최고의 패.
이안은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애써 표정을 가다듬었다. 이번에야말로 승기를 잡은 느낌이 들었다.
카드를 다시 덮고 이안은 손가락으로 탁자 위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이번에 모든 돈을 걸지. 이제 슬슬 지루하잖아? 끝을 보자고."
계속 승부를 내주기는 했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지는 것을 이안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좋은 패가 들어온 지금, 한방 승부를 걸어 볼 생각이었다.
리스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이번에도 지면 스크롤의 계약 내용대로 용병의 말을 따라야 할 처지였으니까.
"전부라, 어지간히 자신이 있나 보지?"
"이럴 때야말로 승부에 나서야지."
"그렇단 말이지? 그럼, 나도 전부를 걸지."
맞은편의 용병이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포커를 시작하기 전, 이안이 계약서에 서명을 할 때 보여 줬던 그 미소였다.
이안은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설마 아니겠지? 이번엔 분명 감정을 읽었다고.'
조금 전, 이안은 분명 패를 받아 든 용병이 동요한 것을 읽었다. 그렇다면 저 웃음은 뭐지?
계속 불안한 생각이 맴돌던 와중 옆에 있던 이데가 입을 열었다.
"양쪽 다 패를 까시죠."
이안이 먼저 엎어진 카드를 펼쳤다.
"봐봐, 이안은 풀 하우스야!"
"이번엔 이안의 승리 같은데?"
사람들은 그 패를 보고 수군댔다.
이안의 승리를 확정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용병이 패를 펼쳤다.
"뭐, 뭐라고? 저게 나온다고?"
"이안도 운이 없군."
"...말도 안 돼."
이안은 그 패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포카드라고?"
관리인이던 이데도 포카드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 이번 내기는 내가 이긴 건가? 보아하니 당신 지급할 금액도 부족해 보이는데?"
이안은 망연자실한 채 고개를 숙였다.
아직 자신의 패배를 납득할 수 없었다.
"이, 이럴 리가. 내가 진다고?"
"일단 진 거니까, 그리고 스크롤에다 계약한 건 알지?"
모든 돈을 탕진한 이안에게는 선택권이란 없었다.
그는 이제 용병성의 어떤 말이라도 따라야 했다.
"...으윽."
이안은 침음을 흘렸다.
지금 저 스크롤을 해결할 방법도 없고, 황족의 신분도 통하지 않는다.
그 스크롤에 서명한 건 이안 자신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당신 정체가 뭐야?"
용병이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독특한 형태의 만년필이었다.
그 만년필을 보자마자 이안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건 서, 설마. 당신의 정체는...."
저 만년필을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수업 오리엔테이션에서 강렬한 기억을 남긴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목구멍까지 그 이름이 차오르던 순간.
중년 남성이 이안에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일단 조용히 하고, 나가서 얘기하자."
그러면서 스크롤을 꺼내 이안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도망치면 알지?"
* * *
유토피아를 나온 나는 테일의 밤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내 뒤로 이안이 주눅이 든 표정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내가 이안과의 승부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데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게임 속에서도 이안을 영입하기 위해 그와 포커를 친 적이 있었기 때문.
좋은 패가 들어왔을 때 눈을 깜박거리는 것이나, 패가 잘 안 풀릴 때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는 행동은 이안을 키운 게임 유저들이 모두 알고 있는 그의 습관이었다.
'이안의 마법을 차단하는 것도 중요했지.'
이안이 바람 마법으로 상대의 감정을 읽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초반부 나는 게임에 집중하기보단 마법을 분석하는 데 집중했다. 분석이 끝나자마자 마법을 역이용해 감정을 차단한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이안도 이렇게까지 무리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꺼낸 아티팩트를 보고 이성이 잠시 마비된 거겠지.
'안타깝게도 이안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아티팩트는 아니지만.'
내가 이안에게 보여 준 건 파르텐의 비고에서 얻은 세 가지의 마법이 저장된 아티팩트다.
뭐, 이긴다는 전제하에 내민 거니 상관은 없었다.
고개를 돌려 이안을 바라봤다.
"이쯤이면 되려나?"
얼굴에 새겨진 마법이 사라지며, 내 본모습이 나타났다.
이안이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유클리드 교수님이었군요. 왜 그런 짓을 한 거죠?"
"네가 수업 중에 도망쳤잖아."
"후우, 그거 하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벌였다고요?"
이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죠? 불량학생 하나 잡자고 이러는 건 아닐 것 같은데요."
"눈치가 빨라서 좋네. 일단 스크롤에 적힌 계약은 알지?"
스크롤에는 아주 간단한 제약이 걸려 있었다.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의 명령에 복종한다.
"넌 이번 테스트 때까지 날 도와줘야겠어. 당연히 수업도 계속 참여하고."
"알겠습니다. 내기에 졌으니, 말에 따라야죠. 그거면 충분한가요?"
"그래."
이안의 시선이 내 손을 향했다.
정확하게는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아티팩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걸 원해?"
"네, 저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라서요."
"미안하지만, 이 아티팩트를 사용한다고 해서 다른 속성의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어."
"네? 뭐라고요?"
이안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절 속인 거군요.... 역시 그런 아티팩트는 없나 보네요."
그의 목소리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아마도 나는 네 문제를 해결해 주진 못할 거야."
사용할 수 있는 속성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으니까.
하지만 다른 해결안을 제시해 줄 수는 있다.
나는 이안에게 다가가 어깨를 붙잡았다.
"하지만 너를 누구에게도 무시당하지 않는 마법사로 만들어 줄 수는 있어."
"네? 말뿐이면 저도 할 수 있어요. 교수님은 저에 대해서 아시나요? 전 한 가지 속성밖에 못 쓰는 삼류 마법사라고요! 그게 가능했다면 벌써 했겠죠."
"아니, 한 가지 속성이면 충분해."
한 가지 속성의 마법만 사용할 수 있다고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지금 유명한 마법사 중에서도 한 가지 속성만 사용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또 이안은 미래에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물로 성장한다.
"이번 테스트에서 네 실력을 보여 주면 되잖아? 내가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게 도와줄게."
이안이 황당해하며 날 바라봤다.
"어떻게 말이죠?"
"일단 수업부터 제대로 듣는 게 먼저야. 네 태도를 보고 도와줄게."
내 말을 들은 이안은 말문이 막힌 것처럼 바로 답하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의중을 알고 싶다는 듯 내 눈을 지긋이 쳐다보던 이안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교수님을 믿어 보죠. 수업은 제대로 들을게요."
"좋은 선택이야. 하마터면...."
나는 이안에게 스크롤을 꺼내 흔들며 보여 줬다.
"이걸 써서 명령할 뻔했잖아."
"...윽, 그것만은 봐주시죠. 그래도 저 황족이라고요."
"아카데미에서는 신분은 상관없잖아?"
"뭔가 수업 때와는 성격이 다르시네요."
"기분 탓이야. 그럼, 다음 주 수업에서 보자고."
작별 인사를 건넨 나는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제 테스트까지 3주간의 시간이 남았다.
20화. 실력 테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