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깨져버린 침묵

[지난이야기]

오스킬 철도 교차지점에서 벌어진 참극 이후, 계엄군의 무차별 사격 장면이 반군 측에 의해 포착되며 네라카 제7구역은 혼란에 빠진다. 블랭크는 시민들을 철수시키고 교차지점을 포기하지만, 그 자리에 남은 건 수십 구의 민간인 시신뿐이었다.

이 참상을 담은 영상은 팔콘네스트에서 공개 여부를 두고 논의되며, 죄책감과 전략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블랭크는 결국 영상을 외부에 퍼뜨릴 것을 결심하고, 이는 공화국 여론 전체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한편, 공화국의 수도행성 테라니아 국방부에선 정규군 투입 여부가 논의되지만, 국방부 장관 제무르 카르비엘은 사태를 관망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군 개입을 보류한다. 공화국은 계엄군의 책임으로 국면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다.

총독 데이란 카이론은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 제7구역 전체 통신망을 차단하지만, 이는 오히려 도시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시민 불만을 폭발시킨다. 그는 무너지는 체제와 함께 지휘실 안에 고립된 채, 오스킬의 피비린내를 응시하며 고뇌 속에 잠긴다.

테라니아력 891년 6월 12일

네라카 제7구역 – 전 구역 통신망 차단 이후

세상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는 안정을 의미하지 않았다.

네라카 제7구역은 이제 말이 끊긴 도시였다.

통신망의 차단은 단순한 기술적 조치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주민들의 휴대 단말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병원은 약품 수급 정보를 공유할 수 없었으며, 식량 배급소 앞에선 며칠째 줄을 선 이들이 왜 대기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서 있었다.

메시지도, 행정 통보도 그 무엇도 없었다.

도시는 기능을 멈췄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조차 어디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왜 이 모든 것이 갑자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가게 주인은 물건을 팔 수 없었고, 어머니는 자식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으며, 경찰조차 상부 명령을 받지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있었다.

혼란은 조용히, 그러나 급속도로 퍼지고 있었다.

네라카 – 팔콘네스트 지하 통제실

이 같은 상황은 반군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팔콘네스트 내부, 통신 상황을 모니터링하던 기술팀은 접속 실패 알림이 쉴 새 없이 올라오는 단말기를 보며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통제실 안엔 긴장 대신 희미한 웃음이 퍼지고 있었다.

“자충수군.”

정보담당자는 웃으며 말했다.

“통신을 끊어 우리를 막으려 했겠지만…

그건 곧 지들도 눈을 감았다는 뜻이야.”

다른 요원이 조용히 덧붙였다.

“지휘 명령도, 병력 요청도 못 해.

시가지 내 계엄군 부대끼리 무전만 돌리는데… 이미 중복 투입, 잘못된 배치로 삐걱대고 있더라.”

블랭크는 침묵 속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그 안에 단단한 확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시민들과 말이 통했다.

이제 그들은 우리를 찾을 수는 없어도—

공화국이 잘못됐다는 감각만큼은 확실히 공유하고 있을 거야.”

네라카 – 총독부 사령부, 지휘통제실

그러나 그 반대편, 총독 데이란 카이론은 점점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었다.

통신망 차단은 그에게도 ‘양날의 검’이었다.

계엄군의 작전 보고는 수 시간씩 지연됐고, 각 지휘소 간 정보 공유는 아날로그 수기 보고로 되돌아갔다.

긴급 수송은 길을 헤맸고, 오해로 인한 오폭 사례가 두 차례나 발생했다.

“총독님, 제8구역 방면에서 패잔병들이 도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는데… 공식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보급선이 끊긴 9중대에서 약탈 의심 사례가…”

“지휘관들끼리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카이론은 그 모든 보고 앞에서 더 이상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만… 그만하라고!”

그는 마침내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통신망 복구해. 당장. 전 구역.”

통신장교가 당황한 듯 물었다.

“그러면… 오스킬 영상 확산 위험이…”

“그건 검열로 막아.

정보통제국에 알리고, 콘텐츠 감시 알고리즘 가동해.

필터링 단계 늘리고, 자동삭제 우선순위 조정.

‘폭력·극단주의 콘텐츠’ 규정 항목을 확대 적용해.”

그의 눈빛은 피로에 절은 듯 흐리면서도, 자신을 살리려는 마지막 이성으로 필사적이었다.

그로부터 8시간 후

네라카 제7구역 – 시민망 복구

통신이 돌아오자, 도시엔 다시 활기가 돌아왔다.

앱이 재연결됐고, 길거리 전광판이 켜졌고, 사람들은 스마트 단말기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순간——

오스킬이었다.

삭제된 줄 알았던 영상, 검열이 막을 수 없던 파편화된 영상 클립들, 자동번역 자막과 함께 편집된 재송출본들이

‘의도된 검열망’을 가볍게 비웃듯 시가지 전역을 휩쓸었다.

철로 위의 아이, 붉게 물든 교차지점, 흐느끼는 군인, 쓰러진 시민—

모두가 봤다.

그리고 모두가 분노했다.

사람들은 다시 거리로 나왔다.

이번에는 더 조직적으로, 더 분노에 차서, 더 준비된 채로.

네라카 제7구역 – 총독부 사령부

통신망 복구 하루.

오스킬 사건의 영상은 이미 광역망을 통해 시민망을 점령했고, 시위는 제어 가능한 국지 소요가 아닌, 체계 없는 도시 봉기로 변모하고 있었다. 슬럼지대는 물론이고 상업지구와 행정구까지 간헐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반군의 조직적인 교란과 민간 저항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었다.

총독 데이란 카이론은 모니터 앞에서 피로와 굴욕의 이중 그림자를 짊어진 채 앉아 있었다.

지휘통제실 안엔, 정적만이 흘렀다.

그 정적을 깨고, 호르스트 베르켄 계엄군 사령관이 들어섰다.

그는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한 채 경례를 붙였다.

“총독님, 보고드립니다. 시가지는 여전히 과도한 정보 유입으로 인한 혼란이… 봉기 통제가 어렵습니다.”

카이론은 고개를 돌렸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고, 그 침묵은 무기처럼 조여들었다.

베르켄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잡았다.

“제13중대는 현재 철수 중이고, 제6보병대는… 제압 작전 도중 병력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여전히, 봉기 진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부 부대는 오스킬 사태의… 심리적 충격을 아직 극복하지 못해 사기 저하가—”

“그만.”

카이론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냉정했고, 단호했다.

그는 서류철 하나를 천천히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다.

“사령관 베르켄. 당신은 지난 72시간 동안 네라카 제7구역의 군사적 통제를 사실상 상실했습니다.”

베르켄은 당황한 듯 고개를 들었다.

“총독님, 저희는 현장 명령 체계를 유지하며—”

“오스킬 교차지점에서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을 때, 당신은 보고를 누락했습니다.”

카이론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채 서류를 한 장 넘겼다.

“그 이후, 반군 측 영상 확산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했고,

지금 이 시각까지도 도시 내 9개 소요지점에 대한 주도적 통제가 전무합니다.”

베르켄은 눈을 굴렸다.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며 반론을 준비했다.

“공습이나 정밀 타격이 제한된 상황에서 병력 배치는—”

“계엄군 사령관은, 변명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카이론은 몸을 앞으로 숙이며 베르켄을 응시했다.

“우리는 지금, 도시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싸우는 건 반군만이 아닙니다.

정보입니다. 여론입니다. 통제력 그 자체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하면서도 그 속엔 쌓인 압력이 스며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모든 통제력 상실의 첫 번째 책임자는—계엄군 지휘부입니다.”

베르켄은 말을 잃었다.

카이론은 천천히 결재란에 전자 서명을 입력했다.

홀로그램 문서의 제목은 선명했다.

[긴급 명령 제 142호 – 계엄군 총사령관 호르스트 베르켄 즉시 해임 및 직무 정지]

“즉시, 계엄군 총사령관 직에서 물러나십시오.

남은 병력 지휘권은 총독부 직속 지휘통제실로 이관됩니다.”

베르켄은 경직된 자세로 경례를 붙였다.

그러나 그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눈빛은 감정 없는 외피 속에서 무력하게 부유했다.

“…알겠습니다, 총독님.”

그는 한 걸음 물러나며 돌아섰다.

그러나 그 뒷모습은 더 이상 군 지휘관이 아니었다.

책임을 짊어지지 못한 자, 체계를 되살리지 못한 자, 공화국이 필요로 하지 않는 자—

그는 조용히 문 밖으로 사라졌다.

카이론은 홀로 남은 자리에서 짧게 눈을 감았다.

이것이 문제 해결이 아님을 그는 알고 있었다.

희생양 한 명으로 덮을 수 있는 국면은 이미 지났다.

그러나, 그는 오늘 하루를 연장하기 위해,

또 하나의 이름을 바닥에 내려놓아야만 했다.

이후 계엄군은 지휘체계 공백 하에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고,

총독은 다음 선택을 유예한 채, 다음날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테라니아력 891년 6월 15일

네라카 제7구역 – 시가지 남부, 계엄군 지휘본부

통신망이 복구된 지 사흘째.

도시의 공공 인프라는 점차 숨을 돌리기 시작했지만, 그 와중에 사라진 중심 하나가 모든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계엄군 사령관, 호르스트 베르켄 대장.

전선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쥐고 있었으며, 오스킬 전투 당시 실질적으로 병력 배치를 총괄했던 인물이었다.

그가 사라지자, 계엄군은 통제력을 급속히 잃어가기 시작했다.

명령 체계는 무너졌다.

각 중대와 소대는 상부 명령을 기다리며 이동을 멈추었고, 일부 부대는 자체 판단으로 수색 작전을 벌이려다 민간구역과 충돌하기도 했다.

“다음 명령은 언제 내려오는 겁니까?”

“지금 누구 지휘를 받는 건지 아십니까, 중위님?”

“제발 저희 구역에선 시민과 마찰 일어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탄약도 부족합니다.”

지휘망은 느려졌고, 분대장들은 혼자 책임을 떠안기 싫어 무선 주파수만 번갈아 붙잡았다.

복구된 통신망은 오히려 혼선을 확대했다.

하나의 명령이 전달되기도 전에 다른 지역에선 상반된 지시가 내려지고 있었고, 이를 확인하려는 시도는 계엄군 내부에서 서로를 향한 불신으로 변해갔다.

무전기는 끊임없이 울렸지만, ‘명확한 지휘자’의 부재는 모든 메시지를 공허한 소리로 바꾸어갔다.

마치 전선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령선을 탄 듯했다.

군복은 입고 있었지만, 그들 누구도 방향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공식 발표가 내려졌다.

같은 날 – 네라카 총독부 사령부

총독부 정문 상단의 디지털 게시판이 반짝이며 새로운 공지를 띄웠다.

현지시간 오전 08시 정각, 총독부 대변인이 비상 발표를 위해 연단에 섰다.

하늘은 무겁게 흐렸고, 광장 앞에는 소수의 언론인과 공무원, 군 관계자들이 정적 속에 줄지어 서 있었다.

대변인은 공식 원고를 천천히 펼치고,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본 총독부는, 오스킬 철도 교차지점 전투 이후 발생한 민간인 피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해당 작전 전반을 총괄 지휘한 계엄군 사령관 호르스트 베르켄 대장에 대해 전면적인 책임을 묻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순간, 일부 참모들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

“이에 따라, 베르켄 대장은 명일내에 모든 직무에서 해임되며, 계엄군 지휘권은 총독부 직속으로 임시 이관됩니다.”

공식적으로는 단호한 조치였다.

그러나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계엄군의 과오는 특정 개인의 판단 오류이며, 공화국 체계 전체는 무관하다’는 메시지.

그리고 그것은 곧, 책임의 선을 그으려는 ‘정치적 손절’이었다.

그 순간, 몇몇 병사들은 먼 거리에서 전광판을 바라보며 짧게 중얼거렸다.

“우릴 버린 거군…”

그리고, 이제 남은 건—

통제자를 잃은 계엄군과,

더 이상 조종되지 않는 전장의 긴장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