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작렬하는 불꽃

[지난 이야기]

계엄군 사령관 베르켄이 해임된 뒤, 제7구역의 지휘체계는 무너졌고, 반군 팔콘네스트는 이 틈을 타 반격에 나선다. 남부 외곽 보급기지 B-19를 기습한 반군은 혼란에 빠진 계엄군을 단시간 내에 제압하고 기지를 점령한다. 이어 시민군과 연계하여 오스킬 교차지점을 포위, 내부 봉기와 외부 공격을 결합해 탈환에 성공한다.

그러나 남부 시가지에 진입한 반군은 계엄군 잔존 정예병력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해 큰 피해를 입고 철수하게 된다. 이 소식을 접한 총독 데이란 카이론은 남부 시가지 전투 승리에 고무되어, 참모의 반대를 무시하고 오스킬 탈환을 명령한다.

계엄군 5개 중대가 출병하지만, 반군의 매복과 지뢰, 포위공격에 의해 3개 중대가 전멸하고 작전은 참담한 실패로 끝난다. 반군은 이 승리를 바탕으로 보급기지에서 전력을 재정비하고, 시민군의 대규모 참여를 통해 병력을 증강시킨다.

이제 블랭크는 시민 봉기와 기습 작전을 연계한 ‘남부 시가지 재탈환 계획’을 시작하려 한다. 이 작전이 성공한다면, 제7구역은 사실상 반군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테라니아력 891년 6월 24일

네라카 제7구역 – 남부 시가지

정오의 햇살이 구름을 뚫고 거리를 환히 밝혔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빛 뒤편으로 감춰진 긴장감은 도심의 골목골목에 무겁게 깔려 있었다.

정확히 정오가 되자, 숨죽여 기다리던 시민들이 일제히 행동을 개시했다.

“지금이다! 자유를 위해 싸워라!”

시민들의 외침은 마치 봇물 터지듯이 터져 나왔다. 골목과 광장, 시장과 주택가, 공공건물과 주요 도로 곳곳에서 시민들이 총과 화염병, 심지어 몽둥이와 돌을 들고 계엄군 초소와 검문소를 습격했다. 시민들의 규모는 예상보다 컸고, 각지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봉기는 계엄군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는 혼란을 일으켰다.

계엄군은 당황한 나머지 즉각 대응에 나섰다.

“북쪽 지대 지원 필요! 즉각 병력 투입!”

“중앙 병참로가 차단됐다! 시민들이 도로를 점거했다!”

계엄군 지휘관들은 병력을 소규모로 분산해 여러 지역에 진압 부대를 급파했다. 그러나 그들이 진압을 시작할 때마다, 또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봉기가 터져 나왔다. 계엄군은 차츰 힘이 빠지고 지쳐갔다.

봉기가 절정에 달한 오후 1시 20분, 남부 시가지 진입로에 기다리고 있던 팔콘네스트 반군 병력이 마침내 움직였다.

“모든 부대 진입 개시! 반격의 시간이 왔다!”

블랭크의 명령 아래 팔콘네스트는 신속하고 과감하게 도시 내부로 진입했다. 도심 외곽에 대기하고 있던 기갑 차량이 우르릉거리며 도로를 따라 진격했고, 보병들은 차량 뒤에서 신속히 전투대형을 갖추며 도시 내부로 뛰어들었다.

그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봉기 중인 시민들과 신속히 합류하여 계엄군을 분쇄하는 것.

그러나 계엄군 역시 만만치 않았다. 남부 시가지 내부의 주요 거점은 아직까지도 강력한 계엄군 병력으로 요새화되어 있었다. 특히 행정청과 경찰서, 그리고 중앙 광장은 계엄군의 정예 병력이 철저하게 방어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후 1시 50분, 경찰서로 접근하던 팔콘네스트 전열에서 날카로운 폭발음이 울렸다.

“저격수다! 엄폐하라!”

블랭크는 빠르게 차량 뒤로 몸을 숨겼다. 건물 옥상에서 계엄군 저격병들이 정확하게 반군의 진격로를 조준하고 있었다. 반군 병사 몇 명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남은 병력은 황급히 근처 건물로 흩어졌다.

블랭크는 즉각 무전기를 들어 외쳤다.

“레이나, 옥상 저격수 제거해!”

“이미 이동 중이야.”

레이나는 상처가 아물지 않은 다리를 끌면서도 근처 고층 빌딩 내부 계단을 전력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옥상 출입문을 걷어차고 나가 곧바로 엄폐물 뒤에 몸을 숨긴 뒤, 차갑게 스코프를 통해 저격병들의 위치를 포착했다.

한 호흡 뒤, 그녀의 총구에서 날카로운 총성이 울렸다.

저격병 한 명이 옥상에서 무너졌고, 계엄군 저격수들은 당황해 엄폐물을 찾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레이나는 연달아 격발했다. 결국 옥상의 저격 위협이 사라졌고, 진격로는 다시 열렸다.

그러나 도심에서는 중장갑 차량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계엄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팔콘네스트 기갑 차량이 도심으로 진입하자 계엄군 차량과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총성과 포탄, 유탄과 폭발음이 도심 전체를 뒤흔들었고, 도로 위엔 부상병들의 비명이 아비규환처럼 울려 퍼졌다.

블랭크는 지휘 차량 안에서 전략을 수정했다.

“기갑대는 우측 우회로로 돌아서 적 차량을 견제하라! 보병대는 건물 내부로 진입해 우회 공격을 펼쳐라!”

팔콘네스트 병력은 그의 명령을 즉시 실행했다. 기갑 차량들이 기동로를 바꾸어 적의 측면을 강타했고, 보병들은 근처 건물들을 점령하여 창문과 옥상에서 계엄군 병력에 집중사격을 가했다.

전투는 치열했고 쉽게 승패가 갈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봉기한 시민들이 반군에 합류하며 병력의 균형이 서서히 무너졌다. 오후 4시, 결국 계엄군은 행정청과 중앙광장에서 반군과 시민군에 둘러싸인 채 포위되고 말았다.

네라카 제7구역 – 남부 시가지 중심부, 중앙광장과 7구역 행정청

오후 5시가 가까워지자 남부 시가지 중심부의 중앙광장과 행정청 일대는 폭풍 전의 적막감에 휩싸였다. 계엄군이 통제하는 거리는 텅 비었고, 두꺼운 철제 바리케이드가 광장과 행정청 사이를 굳게 막고 있었다. 계엄군 병사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바리케이드 뒤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총구를 잡은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정확히 5시가 되자마자 사방에서 함성과 함께 시민군과 반군의 총공세가 시작되었다. 중앙광장을 둘러싼 건물에서 일제히 창문이 열렸고, 반군과 시민들이 계엄군을 향해 화염병과 돌멩이를 투척하기 시작했다. 행정청과 중앙광장에 배치된 계엄군 병력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고, 지휘관의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병사들은 우왕좌왕했다.

“사격 대기! 발포 명령을 기다려라!”

중대장의 외침이 있었지만, 이미 시민들이 바리케이드에 접근하며 계엄군 병사들의 대열은 흔들리고 있었다. 총을 든 병사들의 얼굴엔 공포와 망설임이 교차했다. 바로 그때였다.

“쾅—!!”

광장 북쪽 입구에서 엄청난 폭음과 함께 바리케이드가 날아갔다. 연기와 먼지 사이로 장갑차를 앞세운 팔콘네스트의 반군 병력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맨 앞에 서 있던 블랭크는 한 손에 소총을 든 채 병사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돌격하라! 행정청을 점령한다!”

반군의 병력과 시민군은 굉음을 지르며 바리케이드를 뛰어넘었고, 계엄군도 드디어 발포를 시작했다. 광장은 순식간에 총탄과 폭발, 비명과 함성이 뒤엉킨 지옥으로 변했다.

중앙광장의 한가운데에서 양측의 병사들이 처절하게 충돌했다. 총탄이 빗발치는 속에서 시민군들은 일부 병사와 뒤엉켜 격렬한 육탄전을 벌였다. 한 시민군은 계엄군 병사의 총구를 잡아채고 몸싸움을 벌이다가 바닥에 나뒹굴었고, 또 다른 반군 병사는 부상을 당한 동료를 끌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전진했다.

행정청 정문 앞 계단에서는 상황이 더욱 치열했다. 팔콘네스트의 레이나는 저격 소총을 들고 엄폐물 뒤에서 계엄군 지휘관을 노리고 있었다. 그녀가 방아쇠를 당기자, 지휘관은 곧장 바닥에 쓰러졌다. 지휘관을 잃은 병력은 순간적으로 대열을 잃고 우왕좌왕했다.

그러나 계엄군도 만만치 않았다. 행정청 내부에서 증원된 중장갑 보병들이 방탄 방패를 앞세우고 나오며 압도적인 화력을 뿜어냈다. 이들의 공격에 반군과 시민군은 다시 밀리기 시작했다.

“버텨라! 후퇴하지 마!”

블랭크는 고함을 치며 병력의 사기를 끌어올리려 했지만, 중장갑 보병이 장착한 기관총의 집중 사격에 많은 병사가 쓰러졌다. 행정청 계단 앞에선 피가 흘러내렸고, 부상병들의 신음과 비명이 울려 퍼졌다.

행정청 내부에서는 복도마다 전투가 벌어졌다. 시민군 일부가 창문을 깨고 건물로 침투해 계엄군과 밀폐된 공간에서 난투전을 벌이고 있었다. 계단과 복도는 피와 연기로 뒤덮였고, 총성이 건물 벽을 울렸다.

광장 중심에선 양측이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다. 계엄군 병사 한 명이 바닥에 쓰러지자 다른 병사가 달려와 그를 끌고 엄폐물 뒤로 이동했다. 반군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내민 병사들이 총탄에 맞아 쓰러지며 상황은 점점 더 참혹해졌다.

그러나 반군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블랭크는 다시 한번 병사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이 아니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없다! 버텨라! 조금만 더!”

시민군들은 그의 외침에 힘입어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계엄군을 향해 끈질기게 맞서 싸웠다. 반군 병사들은 행정청 내부로 돌진하며 진입로를 열었고, 중앙광장에서부터 행정청 내부까지 전투는 점차 계엄군을 밀어내며 깊숙이 들어갔다.

서서히 계엄군은 병력이 부족해지자 지휘관들이 다시 후퇴를 명령했다.

“후퇴하라! 행정청을 버리고 2선으로 물러나라!”

계엄군은 행정청 북측 비상통로를 통해 일부 병력을 철수시켰다. 연막탄과 장갑병의 화력 엄호 아래, 후방에 남겨진 병력이 마지막까지 버티며 반군의 시선을 끌었다. 반군이 중심부 돌입에 집중하는 사이, 살아남은 병력 일부는 뒷골목 하수구 출입구를 통해 2선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계엄군이 철수하자, 반군은 전투를 멈추고 숨을 고르며 부상자들을 살폈다.

피와 잔해로 뒤덮인 중앙광장과 행정청 앞, 수십 명의 병사들이 쓰러져 있었다. 행정청 건물 벽에는 총탄의 흔적이 처참하게 남아 있었고, 반군의 깃발이 마침내 행정청 꼭대기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블랭크는 숨을 몰아쉬며 행정청 계단에 올라섰다. 그의 얼굴에는 피와 먼지가 뒤엉켜 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단호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오늘 우리는 승리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중앙광장과 행정청 일대는 그렇게, 값비싼 피를 치르고서야 반군의 손에 들어왔다. 그날의 승리는 처절한 전투 속에 이루어진, 진정한 희생의 대가였다.

테라니아력 891년 6월 25일 – 저녁

행성 네라카 제3구역, 네라카 총독부 사령부 회의실

거대한 모니터 위로 남부 시가지의 참담한 전황이 선명하게 펼쳐졌다. 화면 속 남부 시가지 곳곳에서는 연기와 불꽃이 피어올랐고, 반군의 노란 깃발이 중앙광장과 행정청 꼭대기에서 도발적으로 펄럭이고 있었다.

데이란 카이론 총독은 핏기가 빠진 채 떨리는 손으로 탁자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에이렌 중령을 포함한 수십 명의 참모가 굳은 표정으로 묵묵히 서 있었다. 집무실 내부의 공기는 한없이 무거웠고, 그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긴 침묵을 깨고 총독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제… 남부 시가지마저 잃었으니, 제7구역은 완전히 놈들 손에 넘어간 셈인가.”

그의 목소리는 분노라기보다는 절망에 가까웠다. 참모들이 눈치를 보며 서로를 힐끗 쳐다보았다. 에이렌 중령이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총독님. 중앙광장과 행정청이 무너졌다는 건 사실상 제7구역 전체가 반군의 영향권에 들어갔다는 걸 의미합니다. 게다가 시민들의 봉기까지 합쳐져 반군의 세력은 더욱 확장될 것입니다.”

카이론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고, 그의 눈동자는 절망으로 흔들렸다.

“그렇다면… 이제 놈들은 제3구역, 총독부 바로 앞까지 치고 올라올 수도 있다는 뜻인가?”

참모들은 침묵을 유지했지만, 대답이 없다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긍정이었다. 이대로라면 총독부가 위치한 제3구역마저 위협받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어찌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이 난국을 극복할 수 있단 말인가!”

카이론이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고함쳤다. 그러나 그 소리마저도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다.

바로 그 순간, 방 뒤편에 서 있던 작전 참모 중 한 명이 조심스레 앞으로 나섰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총독님, 지금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됐다. 카이론이 힘없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누군가?”

참모는 긴장된 얼굴로 단호히 말했다.

“호르스트 베르켄 사령관입니다. 지금 상황을 돌이킬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 사람뿐입니다. 그를 다시 불러와 지휘권을 맡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방 안은 다시 긴장된 침묵이 감돌았다. 베르켄은 얼마 전 카이론 본인이 책임을 전가하며 공식적으로 해임한 인물이었다. 그를 다시 부른다는 것은 사실상 카이론 자신의 결정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었고, 총독의 권위에도 큰 타격을 입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존심이나 명예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잠시 후, 데이란 카이론은 마른 입술로 짧게 한숨을 쉬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베르켄을 다시 불러와라. 당장, 가능한 빠르게 복귀시켜서 지휘권을 맡겨라.”

그의 말투에는 굴욕감이 묻어 있었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참모들은 즉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신감을 잃은 총독은 의자에 주저앉아 텅 빈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총독부 바깥으로 어두운 구름이 천천히 몰려오고 있었다. 폭풍이 다시 한 번 네라카를 덮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