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그가 돌아왔다

[지난 이야기]

반군 팔콘네스트는 오스킬 승리와 보급기지 장악을 계기로 병력을 대폭 확장하고, 시민군과 연계한 남부 시가지 탈환 작전을 개시한다. 작전은 정오의 시민 봉기로 시작되었다. 남부 시가지 전역에서 시민들이 일제히 봉기하며 계엄군을 교란시키자, 반군은 이를 틈타 주력 병력을 도시로 진입시킨다.

계엄군은 여러 지역으로 병력을 분산해 봉기를 진압하려 하지만, 반군의 기습과 시민군의 지원으로 전선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특히 중앙광장과 7구역 행정청에서 벌어진 전투는 치열했다. 반군과 시민군은 계엄군의 저격과 중장비에 맞서 육탄전을 벌이며 밀고 들어갔고, 레이나의 저격, 블랭크의 지휘 아래 반군은 점차 행정청을 포위·장악해 나간다.

결국 계엄군은 피해를 견디지 못하고 후퇴 명령을 내리고, 반군은 중앙광장과 행정청을 완전히 점령하게 된다. 이로써 제7구역은 사실상 반군의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

한편 제3구역 총독부에서는 데이란 카이론이 남부 시가지의 함락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참모들은 이를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해임된 전 사령관 호르스트 베르켄을 지목하고, 총독은 그의 복귀를 타진하기로 결심한다.

테라니아력 891년 6월 25일 – 밤

행성 네라카 제3구역, 네라카 총독부 사령부 회의실

침묵이 무겁게 깔린 회의실 한가운데, 계엄군 고위 참모진이 엄중한 얼굴로 서 있었다. 총독부는 이미 전면적 위기 상황으로 돌입한 상태였고, 그 누구도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방금 전, 베르켄 전 사령관을 접촉한 연락 장교가 굳은 표정으로 보고를 마쳤다.

“그는… 복귀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카이론 총독은 깊게 주름진 미간을 움찔이며 눈을 감았다.

“이유는?”

“‘명령받고 싸우는 자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또, ‘자신을 희생양 삼아 해임한 자들의 변덕에 응할 이유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회의실 안에 정적이 흘렀다. 참모들은 불편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 시선을 피했다. 베르켄의 말은 맞는 말이었고, 누구보다 그 ‘변덕’을 부린 당사자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총독 카이론임을 모두 알고 있었다.

“젠장… 그 늙은놈의 고집이 지금도 남아 있단 말인가…”

카이론은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잠시 벽면에 걸린 군사지도 앞으로 걸어가, 제7구역에서 중앙광장을 가리키는 깃발이 반군의 것으로 바뀐 부분을 바라보다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베르켄 말고 누가 있나. 누가 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단 말이냐.”

참모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그 누구도 계엄군을 장악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카이론은 침묵을 깨듯 말했다.

“좋다. 내가 직접 가겠다.”

“총독님…?”

에이렌 중령이 놀라 조심스럽게 나섰다.

“직접 찾아가시는 건 위험합니다. 게다가 지금 총독부도 안전하다고는—”

“내 정치적 자존심을 세우는 게 중요하냐? 아니면 이 네라카가 지옥이 되는 걸 막는 게 중요하냐?”

카이론은 날카롭게 말을 끊었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도, 초조함도 아닌, 진심으로 벼랑 끝에 선 지도자의 무게가 서려 있었다.

“이번만큼은… 내가 직접 그의 마음을 돌려야한다. 내가, 베르켄에게 무릎을 꿇는 한이 있어도.”

카이론은 조용히 외투를 집어 들며 말했다.

“차량을 준비해라. 베르켄이 머무는 곳으로 간다. 지금 당장.”

회의실 안의 참모진은 잠시 숨을 죽였다. 그리고 몇 초 뒤, 모두가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날 밤, 제3구역 총독 전용차량의 행렬은 총독부를 빠져나와 침묵 속 어둠을 가르며 서서히 출발했다. 총독 카이론은 창밖에 드리운 불타는 하늘을 바라보며, 고요하게 중얼거렸다.

“그 누구보다도 내게 불편한 자… 하지만 지금 가장 필요한 자. 호르스트 베르켄… 널 설득하러 간다.”

테라니아력 891년 6월 27일

네라카 제3구역 – 북부 외곽, 베르켄 자택

호르스트 베르켄은 무거운 피로감을 느끼며 자택 서재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군 지도와 보고서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그는 그 모든 것들을 침울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 안은 오직 작은 탁상등의 희미한 빛만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때 현관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베르켄은 조용히 일어나 문을 열었다. 문 밖에는 총독부의 작전참모 에이렌 중령과 몇 명의 장교들이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무슨 일인가, 중령?”

“사령관님, 총독께서 직접 만나 뵙기를 원하십니다.”

“난 더 이상 사령관이 아니야. 돌아가게.”

베르켄은 단호히 돌아서려 했으나 에이렌이 급히 말했다.

“상황이 매우 심각합니다. 총독님이 친히 오셨습니다. 잠시만이라도 만나 주십시오.”

베르켄이 멈칫한 순간, 뒤편에서 데이란 카이론 총독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다급함과 초조함이 서려 있었다.

“베르켄 사령관, 제발 부탁이니 내 말 좀 들어주게.”

베르켄은 냉담한 시선으로 총독을 바라보았다.

“총독님께서 저를 직접 찾아오실 정도로 상황이 급박합니까?”

“상황은 자네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네. 제7구역이 반군에게 넘어갔고, 이제는 이곳 제3구역마저 위태로운 지경이야. 자네가 아니면 이 상황을 수습할 수 없어. 다시 돌아와 사령관직을 맡아 주게.”

베르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미 저는 총독님의 결정으로 해임되었습니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카이론 총독은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잘못 판단했네. 인정하지. 자네에게 전권을 줄 걸세. 계엄군 전 병력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넘기겠네. 내가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제발, 네라카를 구해주게.”

베르켄은 긴 침묵 후에야 짧은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군사 작전에 대한 모든 지휘권은 오직 저에게 있습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하십시오.”

총독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모든 것을 자네에게 맡기겠네.”

테라니아력 891년 6월 28일

네라카 총독부 사령부 회의실

사령부로 복귀한 베르켄은 즉시 참모들과 함께 상황 점검에 나섰다. 작전 지도의 현황은 예상보다 더 절망적이었다. 남부 시가지와 오스킬 지역을 포함한 제7구역은 완전히 반군의 손에 넘어가 있었고, 반군의 기세는 이제 제3구역까지 위협하고 있었다.

베르켄은 지도 위를 짚으며 낮게 말했다.

“지금 상태로는 전투를 벌여도 이기기 어렵습니다. 탄약과 보급은 거의 고갈됐고, 병력의 사기는 바닥입니다. 현지 징집병들로는 반군의 세력을 막기 어렵습니다.”

그는 잠시 침묵한 뒤, 결단을 내린 듯 총독을 돌아보며 말했다.

“총독님, 이제는 정규군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테라니아 중앙으로부터 정식으로 지원군을 요청하십시오.”

총독은 얼굴을 찌푸리며 즉각 반박했다.

“그건 불가능하네, 베르켄. 지금 내가 처한 정치적 입지를 생각해 보게. 내가 자네를 다시 복귀시킨 것도 큰 타격인데, 중앙에 정규군까지 요청한다면 내 정치적 생명은 끝이야.”

베르켄은 날카롭게 반문했다.

“총독님의 정치적 입지보다 중요한 건 제3구역과 네라카 전체의 안전입니다. 이대로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습니다.”

총독은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정규군을 부르는 순간, 공화국 중앙정부는 내가 이 상황을 완전히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었다고 판단할 거야. 그러면 우리 모두가 책임을 지게 될 걸세.”

베르켄은 긴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는 눈을 뜨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힘으로 막아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정규군의 개입이 없다면,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될 겁니다.”

총독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네, 베르켄. 하지만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어.”

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차갑고 침울했다. 베르켄은 어깨를 펴고 다시 지도 위에 손을 올렸다. 이제 그는 다시 한 번, 절망적인 전장 속으로 뛰어들어야만 했다.

테라니아력 891년 6월 30일 – 네라카 제7구역, 오스킬 지휘통제소 내부

팔콘네스트의 전술지도 위로 3구역과 맞닿은 북측 전선이 붉은 광선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반군 전투원들은 끊임없이 드나들며 통신과 정찰 보고를 공유하고 있었고, 블랭크는 홀로그램 위에 손을 얹은 채 정적 속에서 보고서를 곱씹고 있었다.

잠시 후, 정보분석을 담당하는 참모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언가 이상합니다. 7구역 전역에서 패주하던 계엄군 병력이, 최근 조직적인 진지 구축에 빠르게 돌입한것 같습니다.”

“다시 모였다고?”

블랭크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

“정확히는 ‘재편 중’입니다. 진지 형성 속도, 전술 후퇴 경로, 병력 정렬… 누군가가 전장 전체를 하나로 엮어 조율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레이나가 무거운 눈으로 말한다.

“계엄군엔 그런 능력자가 없지 않아? 베르켄이 해임된 이후로는 전선이 엉망이었는데…”

그때, 구석에 앉아 있던 과거 공화국 출신의 정보통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금의 움직임은… 그 자 외엔 설명이 안 돼. 이 정도로 침착하고 효율적인 지휘는 호르스트 베르켄, 그 자 말고는 불가능해.”

순간 방 안이 잠시 정적에 휩싸였다. 블랭크가 미간을 찌푸리며 칼로를 바라본다.

“확실해?”

“확실하진 않아. 하지만 이런 유형의 배치와 재편은, 그가 실전에서 써온 방식과 너무 흡사해. 패주한 병력부터 정예 부대까지, 차근차근 퍼즐처럼 제자리를 찾는 느낌이야.”

정보분석 담당자가 날카롭게 받아쳤다.

“그렇다면, 그자가 돌아왔다는 거겠군.”

블랭크는 손을 턱에 올리고 깊은 침묵에 빠졌다. 잠시 후, 그는 결단을 내린 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아직 병력이 완전히 재편되기 전, 3구역 관문을 뚫고 총독부를 위협해야 해.”

레이나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너무 빠른 결정 아닌가? 아직 장비도 충분치 않고, 3구역은 보급선이 멀어.”

“시간이 없다고.”

블랭크는 홀로그램 지도 위의 붉은 선을 손끝으로 따라가며 말했다.

“베르켄이 완전히 지휘체계를 회복하기 전에, 3구역 관문을 타격해야 한다. 저 요새가 무너지면 총독부는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게 되고, 3구역 전체가 심리적으로 흔들릴 거야.”

정보분석 담당자가 침착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합니다. 지금처럼 아직 병력이 이탈하고, 지휘가 혼란스러운 틈이라면, 기동 타격조를 구성해서 소규모 강습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정면돌파가 아닌, 틈을 벌려 심리전으로 이어가야 합니다.”

블랭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3구역 공격은 정규전이 아니라 기습과 공세 압박으로 간다. 레이나, 네가 시가지 측 병력을 이끌고 우측을 담당해. 거기, 너는 수색조와 함께 관문 외벽을 타격하고, 나는 중앙돌파 조를 지휘하겠다.”

레이나가 단호히 대답했다.

“명령 확인.”

블랭크는 무전을 들고 전체 지휘 채널을 열었다.

“팔콘네스트 전 병력에 고지한다. 제7구역은 이제 우리가 확보했다. 지금, 공화국이 숨을 곳은 없다. 제3구역 관문을 향한 진격을 개시한다.”

전술 지도 위에 붉은 화살표들이 3구역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