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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후계 대전

별자리 연회장으로 갔던 후예들이 화신이되어 돌아올 때마다 사신관의 열기가 조금씩 달아올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고조되어 갔다.

꿀꺽.

후예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원로들은 점잖은 표정을 지은 채 다리를 떨었다.

이제 막 화신이 되어 돌아온 이들도 조금은 긴장한 모습으로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사신관의 모두가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다.

게이트 너머에서 나타날.

마가 역사상 두 번 다신 없을 그 후예의 귀환을.

지이잉―

일렁거리는 게이트.

후예들은 숨죽였고, 원로들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됐다.

점차 선명해져 가는 게이트 너머의 존재.

그는 마가 일족 특유의 흑발 자안을 가진.

눈물점이 인상 깊은 청년.

그래.

“와아아아!”

나다.

“마현 님이다!”

“마현 님이 화신이 됐어!”

“아아! 그분이 오셨다!”

가신 일족들의 탄성이 울려 퍼진다.

무척이나 손꼽아 기다린 듯한 반응.

나의 귀환에 순수하게 기뻐하는 것이다.

‘애도 아니고,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건지.’

마치 아이처럼 숨김없이 좋아하는 모습들.

과연 내 또래의 후예들이 맞긴 한지 의심이 될 정도로 어리숙하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씨익―

“마현 님이 웃으셨다!”

입꼬리가 제멋대로 올라가는 것이다!

‘제길. 감정은 전염된다더니, 이런 거였나.’

기뻐하는 저들을 보니 괜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 것.

새삼 사람이란 얼마나 휩쓸리기 쉬운 존재인지 알게 되는 시간이다.

물론 애 같은 건 후예들만이 아니었다.

내가 보기엔 단상 위의 원로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음, 왔군.”

“꽤 오래 걸렸구먼.”

“훗, 이 나를 기다리게 하다니. 제법이야.”

과연 관록이 붙은 원로들이라 그런지.

후예들과는 달리 체통을 지키는 모습.

하지만.

‘아주 속이 다 보이는군.’

볼이 붉게 물들고 가슴이 가파르게 오르내린다.

입으로는 담담한 척 말하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크, 크흐흠!”

점잖은 말과는 달리 하나같이 안달 난 모습인 것이다!

특히 눈빛만큼은 후예들보다 더하다.

밤하늘의 별을 방불케 할 정도니까.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마치 손주의 재롱을 지켜보는 듯이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바로…….

“클클클!”

마휼이었다!

‘할배.’

그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느새 20년은 회춘한 듯한 그 얼굴.

조금씩 하회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다들 나를 아주 기다린 모양인데.’

사신관의 모두가 오직 나만을 바라본다.

무척이나 반짝이는 눈으로.

“마현! 마현! 마현!”

내 이름을 연호하는 후예들.

자중하라는 듯이 헛기침하는 원로들.

저들이 이러는 이유를 나는 알고 있다.

얼마나 대단한 성좌와 계약했을지를 기대하는 것.

강한 후예는 강한 성좌와 계약한다.

그 당연한 논리를 토대로 기대하는 것이다.

정확히는.

[성좌 ‘숭고한 달의 여인’이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 [당신을 향한 반응이 무척이나 뜨겁다고 합니다!]

내 성좌의 정체가 얼마나 격이 높고 대단한지를 말이다.

이 반응을 보면, 어쩌면 다들 대성좌급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현! 마현! 마현!”

식을 줄을 모르는 열기.

곧 ‘화신 증명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때 내 성좌의 정체가 공개될 것이다.

조금은 혼란스러워지겠군.

그 누구도 내가 최하급 성좌와 계약했으리라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벌써부터 싸늘해질 것 같은 분위기.

어리둥절해할 반응들이 선명하다.

그래서일까.

씨익.

‘멋대로 기대한 건 너희들이야.’

왠지 커다란 엿을 준비한 것 같은 이 기분에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함부로 기대하면 안 되지.

기대가 클수록.

실망이 클 수밖에 없거든!

이런 마현의 속내를 모르는 후예들이 짙어지는 마현의 미소에 그 이름을 더욱 크게 외쳤다.

“마현! 마현! 마현!”

다음 순간 사신관주가 마현을 향해 명했다.

“마현은 지금부터 화신임을 증명하라!”

화신 증명식.

별자리 연회에서 어엿한 화신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것.

마현을 연호하던 후예들의 목소리가 일제히 잦아들었다.

사신관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그 침묵 속에 뜨거운 기대감만이 끓어올랐다.

스르륵―

모든 시선의 중심에 선 마현이 차분히 눈을 감았다.

그 몸에서 마력이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기운이 몸을 타고 올랐다.

“보여 드리겠습니다.”

마침내 마현이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두 눈은 어두운 빛으로 타올랐다.

“이분이 저의 성좌님입니다.”

모두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손바닥 위로 모여든 마력.

그것이 힘껏 압축되었다.

다음 순간.

파아앙―

터지듯 공기 중에 흩뿌려지는 마력의 입자.

물방울에 반사된 빛이 무지개를 만들듯,

마력에 반사된 어둠이 신비로운 달의 모습을 그려 냈다.

숭고한 달의 여인의 상징체.

칠흑빛의 달이 떠올랐다.

“와아아아!”

기다렸다는 듯이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아아아…… 아?”

그 함성은 점차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매가리가 없어져 갔다.

무언가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끝없이 타올라야 할 사신관의 열기가 혼란스럽게 휘청거리는 것이다.

박수를 치는 후예들의 미간이 좁혀졌다.

“내가 지금 제대로 보고 있는 건가?”

“상징체의 크기가 조금 작지 않아?”

“저 정도면 설마……?”

알아차린 것이다.

마현이 계약한 성좌가.

결코, 대성좌가 아니라는 사실을!

“응? 어라?”

“에엣?!”

“서, 설마 최하급?!”

후예들은 바보가 되어 버린 듯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자 혼란에 빠진 것이다.

원로들도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무, 무, 무어냐?”

그 뛰어난 마현이 최하급 성좌와 계약이라니!

별자리 연회장에서 사기라도 당한 게 아니고서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아, 아무래도 저 아이가 혼자 자라서 잘 몰랐던 게 아니오?”

“어쩌면 몹쓸 성좌일 수도 있소만…….”

“이, 이건…… 사고다.”

순식간에 어수선해진 단상 위.

자연스럽게 원로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어쩌면 이 모든 순간을 누구보다 기대하고 있었을…….

‘흠…….’

가주에게로 말이다.

마휼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솔직히, 그 역시도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원로들처럼 별자리 연회장에서 사고라도 났는가 싶었다.

분명 이 상황은 일반적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클클클, 고얀 놈!

‘한두 번도 아니고. 이 내가 속을 것 같더냐!’

더 이상 좌중의 반응 따위에 흔들릴 자신이 아니다!

마현이 그동안 보여 준 행적을 떠올려 봐라.

저 고얀 놈은 천살동에서도 그렇고, 망자 성채와 마인 토벌에서도 그랬다.

늘 어딘가 사람을 불안하게 해 놓고.

‘결국, 멋지게 해내 보였지.’

즉, 더 이상 마현을 의심하는 것은,

학습이 안 되는 멍청이인 셈이다!

하물며 보아라.

마현의 저 일말의 후회조차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을!

어딘가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는 여유로운 미소와 확신에 찬 눈빛을 말이다!

멍청한 원로 중 쓸 만한 녀석이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설마, 저 아이…… 알고 있는 게 아닐까요?”

“뭐가 말이오?”

“성좌의 격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요.”

훗, 쓸 만한 녀석이 있었군.

성좌와 계약해 본 자들은 알고 있다.

격이 높은 성좌는 대체로 옳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마현, 네 녀석은 잘 알고 있었나 보구나.’

물론 이는, 알고 있다 하더라도 실천하기 어렵다.

한 치 앞도 알기 어려운 세상이니.

먼 훗날을 도모하기보단, 당장의 막대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이를 포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크나큰 용기와.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필요했다.

마현과 눈을 마주친 것은 그때였다.

녀석은 자신을 바라보며 씩 웃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이 성좌가 확실하다는 듯이 말이다.

다른 놈이 이랬다면 객기라고 여겼겠지만.

씨익.

‘이 녀석, 장난이 아니군.’

아주 고얀 놈이 따로 없는 것이다.

‘아무튼, 이즈음에서 정리를 해 줘야겠군.’

사신관은 여전히 소란스럽다.

멍청한 후예들과 원로들이 수군거리며 혼란을 부추겼다.

마현이 만들어 낸 파장이 도통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나서기로 했다.

파앙―

가주석으로부터 압도적인 기운이 터져 나왔다.

순간 숨이 멎을 정도로 강렬한 기압.

일족들의 혼란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정숙을 되찾자 마휼이 입을 열었다.

이곳의 모두를 대표해 마현에게 묻는 것이다.

“그 선택이 놀랍군. 분명 대성좌들도 너를 원했을 텐데 말이다.”

낮게 울리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그 말에 수많은 일족이 수긍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성좌가 그 누구보다 낫기에 선택한 거겠지?”

마휼의 물음은 일족들의 의문과 마현의 의도를 교묘히 아우르고 있었다.

이제 마현이 어떻게 답하든 이 혼란은 곧 잠잠해질 터였다.

이에 마현이 웃었다.

할아버지의 뜻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제 그만 모든 혼란을 불식시키고,

일족들에게 자신을 인정시키려는 걸 말이다.

기회를 주셨으니 이를 잘 살리는 것은 나의 몫이겠군.

다음 순간 마현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네, 맞습니다.”

마현의 목소리가 사신관에 울려 퍼졌다.

그 결연한 어조는 모두의 귀를 기울이게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이어진 마현의 말은.

모두의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 어떤 성좌도 저를 담을 수 없었습니다.”

내로라하는 성좌도, 성운의 운명에 관여한다는 대성좌도.

그 어떤 성좌도 나를 감당할 수 없다.

오직.

“이 성좌만이 저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숭달여만이 가능하다.

이것이 회귀를 한 나의 답이다.

“헙……!”

듣고 있던 이들이 순간 숨을 들이켰다.

누군가는 입이 떡 벌어졌고, 다른 이는 꿀꺽 침을 삼켰고, 숭달여는 딸꾹질을 했다.

경악스럽다.

한낱 필멸자를 성좌가 감당한다니!

주객이 전도된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분명 그럴 터인데…….

눈살이 찌푸려지고도 남을 말일 터인데…….

“미, 미친놈이다.”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전율.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묘한 흥분이 전신을 휘감는 것이다.

오만한 말 속에 깃든 깊은 확신과 결의가.

마현의 말을 그 무엇보다 확실한 진실처럼 들리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

“허, 허허…….”

이 상황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마현 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야……!”

“으, 응……!”

“그런 것 같아.”

마현의 선택을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이 어찌 된 자신감인지……!”

“하하하! 왠지 보기만 해도 젊어지는 것 같지 않소?”

“참, 이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만.”

“어떻게 이런 아이가 나왔는지 궁금하구먼.”

“흐흐, 그러게 말일세.”

말에 힘이 실릴 정도의 자신감에 원로들이 감탄했다.

도대체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는.

‘클클클! 나도 마찬가지다!’

마휼도 마찬가지!

마현이 궁금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빨리 이 지긋지긋한 시험을 끝내고 싶구나!’

마현에 대해 알고 싶거든, 마현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인지상정.

그러기 위해서는 이 시험을 빨리 끝내야 했다.

이제 남은 일정은 후계자 임명식뿐이지.

그리고 후계자 임명 권한은 가주인 자신에게 있다.

즉, 더 이상 가릴 것 없는 것이다!

지금 바로 마현을 후계자로 임명하고 끝내면 그만이니까!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후예 하나가 아직 연회장에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

‘굼벵이 같은 놈.’

마기헌.

하여간 마광익을 닮아 방해만 되는 놈이로다.

하지만 자신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몸이다.

이제 와 사소한 것에 연연하기엔 나이를 많이 먹었다.

즉.

“지금부터 후계자를 임명하겠다.”

마기헌은 생략한다!

후계자 임명이 시작됐다.

이에 누군가 반문할 법도 했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도 마기헌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는 이는 없었다.

마휼이 말을 이었다.

그것은 후계자가 될 아이가 지금까지 걸어온 행적이었다.

“그 아이는 순혈이 아니었다.”

첫 마디에 모두가 누구를 지목하는지 알아챘다.

사실, 누가 후계자가 될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어린 나이에 어미를 여의었다.”

마하윤. 마현 이전 역대 최고의 기재로 불리던 그녀가 마현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어느 날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마가의 그 어떤 아이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럼에도 그 아이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사신관 시험에서 그 누구보다 뛰어난 활약을 해냈다.”

그렇게 마침내 사신관의 인정을 받아 냈다.

“따라서.”

마휼의 시선이 움직이자, 모든 이들의 눈길이 함께 이동했다. 그 시선들은 한 곳에 멈췄다.

마현에게로.

“후계자가 될 아이의 이름은…… 마현이다.”

마현이 후계자로 지목되었다.

존재 자체가 가문의 정통성을 흐트러뜨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마현의 존재를 못마땅해하던 이들도.

이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마현이 후계자가 되지 못한다면.

앞으로 그 누구도 후계자가 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터벅터벅.

아무래도 후계자 임명식이 길어질 모양이었다.

“아직입니다!”

당찬 목소리가 사신관에 울려 퍼진 것은 그때였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마기헌.

그가 막 게이트로부터 넘어왔다.

“저에게도 후계자 자격이 있습니다!”

비뚤어진 입매로 자신감이 가득해 보이는 마기헌이었다.

* * *

마기헌이 막 사신관에 도착했을 때.

조금은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한 듯이.

후계자 임명식이 멋대로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자신 역시도 후계자를 목표하고 있던바.

“후계자가 될 아이의 이름은…… 마현이다.”

가만히만 있을 수 없었다.

“아직입니다! 저에게도 후계자 자격이 있습니다!”

사신관에 울려 퍼진 외침.

그제야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멍청한 놈들이 감히 나를 잊어?’

까먹을 게 따로 있지.

어떻게 이 나를 잊어먹느냔 말이다!

이래서 천한 놈들은 믿을 수가 없다.

다음 순간, 사신관주가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후계 자격을 논한 자신에게 의문을 표했다.

“마기헌, 함부로 후계 자격을 논하지 마라. 너는 천살동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사신관 첫 번째 시험 천살동 인내 시험.

마기헌은 통과하지 못했다.

“확실히, 저는 천살동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인정하지.

그 이유는 역겨운 마현의 술수 때문이지만.

이제 와 이를 논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니까.

그런데도 마기헌은 일절 물러서지 않았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 하여도 그것이 곧 후계자격의 박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하지만 저는 역대 후계자들의 평균을 놓고 봤을 때, 그 수준은 분명 상위권에 속합니다.”

재능.

애당초 사신관 시험의 본질은, 뛰어난 재능을 지닌 후예를 판별하기 위한 것.

그리고 자신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시험에서 충분히 입증해 냈다.

“특히, 망자 성채와 마인 토벌 시험 기록은 역대 후계자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이를 것입니다.”

그 말에 잊었던 자신의 활약이 떠오르기라도 했는지.

조금은 수긍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위기가 뒤집히지는 않았다.

마기헌의 시선이 마휼을 향했다.

자신을 불쾌한 벌레 마냥 보고 있는 눈빛.

이래서는 후계 자격을 얻기 힘들 게 분명했다.

‘이럴 때, 할아버지가 계셨다면 많이 나았겠지.’

분노에 찬 모습으로 사신관을 떠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선명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자신이 실망시킨 거니까.

물론, 이제는 신경 쓰지 않는다.

머잖아 할아버지는 다시 자신을 바라봐 주시게 될 테니까.

마기헌은 체내를 질주하는 마력을 느꼈다.

성좌 ‘몰살의 황태자’의 힘이 깃든 마력.

이 힘으로 모든 것을 바로 세울 거다.

그리고.

나를 무시한 모든 것들에 파멸을 선사할 테다.

마기헌의 눈빛이 붉게 타올랐다.

“물론, 사신관 시험에서 보여 드린 제 모습으로는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저 마현에 비하면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일 테니까요.”

하지만.

씨익―

마기헌이 마현을 향해 비웃듯 미소 지었다.

“단 한 가지. 제가 마현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것이 있습니다.”

어딘가 도발적인 그 말에 듣고 있던 이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마현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점이 있다고?

적어도 사신관 시험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보지 못했었다.

마기헌은 그런 일족들의 모습에 작게 혀를 찼다.

이런 옹이 눈깔들에 평가를 받으려 했던 자신이 바보 같았으니까.

물론, 이제는 아무렴 상관없다.

“보여 드리죠.”

멍청이라도 알 수 있도록.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몸소 보여 주면 되니까.

우웅―

그 순간, 마기헌의 몸에서 마력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의 눈에서 핏빛 마력이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마기헌은 ‘화신의 증명’을 보이려 하고 있었다.

마침내, 핏빛의 불길한 마력이 마기헌의 손바닥에 응축되었을 때.

마기헌이 입을 열었다.

“이분이 저의 성좌님이십니다.”

다음 순간, 마기헌의 뒤로 성좌의 상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어!”

“저, 저건……!”

“설마!”

원로들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상징체였다.

잔혹한 기운을 잔뜩 품고 있는 개의 형상.

송곳니를 드러낸 채 으르렁거리는 그 개는 살육의 욕망으로 가득 찬 듯했다.

눈에서는 광기 어린 붉은 빛이 번뜩였고, 온몸의 털은 피에 젖은 듯 검붉게 빛났다.

그 상징체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사신관 전체가 무거운 압박감에 짓눌렸다.

마치 피비린내 나는 안개가 공간을 가득 메운 듯, 숨쉬기조차 버거워졌다.

성좌의 이름은 ‘몰살의 황태자’.

지옥의 대성좌다.

“대, 대성좌다!”

“마기헌 님이…… 대성좌의 화신이 되었어!”

[성좌 ‘몰살의 황태자’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마치 영역을 선포하듯, 핏빛으로 반짝이는 상징체에서 강렬한 휘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순식간에 사신관의 모든 것을 붉게 물들였다.

누구라도 성좌의 격을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다.

“마, 말도 안 돼.”

“역시 암익파라는 건가……!”

“아, 아무리 마현 님이라 해도, 대성좌라면…….”

기대하지도 않던 대성좌의 출현.

사신관의 분위기가 어수선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크크, 어떠냐 마현.’

마기헌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마현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강렬한 휘광의 빛이 마현의 존재를 지워 내려는 듯 그 모습이 흐릿했다.

하지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당황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조금 놀랐을 거야 마현.

너로 인해 지옥 끝까지 떨어져야 했던 내가.

결국, 이렇게 살아 돌아왔으니까.

마기헌의 눈빛이 광기로 번뜩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말이지.

이게 끝이 아니야.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지.

나는 너를…….

마기헌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지옥 그 아래까지 찍어 누를 테니까!’

사신관의 분위기가 자신의 쪽으로 기울었다.

대성좌급의 화신이 된 이상, 후계자가 되는 것에 문제는 없다.

하지만 복수를 원하는 이상 다른 방식으로 후계자가 될 셈이었다.

마기헌이 단상 위의 원로들을 향해 말했다.

“물론, 저는 사신관에서 저의 역량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후계 대전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그 발언에 원로들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후계 대전.

그것은 한 번의 실수로 인재를 묻어 두지 않기 위한 제도.

모두가 사신관 시험에서 완벽할 수는 없다.

후계자로서의 역량이 출중함에도, 평소보다 못한 상태로 시험에 임해 제 실력을 보여 주지 못한 후예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후예들을 위해 후계 대전이 존재한다.

그들은 후계자와 직접 겨루어 자신의 진가를 증명하고,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즉, 자신은 마현과 대결을 하게 되는 것이다!

씨익.

마기헌의 입가가 비틀렸다.

“마현, 설마 이제 와서 겁나는 건 아니겠지?”

그 목소리가 능글맞게 울려 퍼졌다.

마치, 도망치면 패배자라 매도할 것 같은 말투였다.

마휼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런 마광익 같은 놈!’

늦은 것도 모자라 훼방을 놓는다.

하물며 후계 대전을 요청하다니.

지극히 그 더러운 속내가 훤히 보였다.

대성좌와 계약한 직후의 화신은 최하급 성좌와 달리 엄청난 특혜와 함께 시작한다.

특히, 이제 막 화신이 된 지금이라면 그 격차가 확실히 벌어진 상황이다.

즉, 빈틈을 노린 것이다.

상대적으로 마현이 약한 이때를!

그때였다.

사아아―

[성좌 ‘숭고한 달의 여인’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핏빛으로 물들었던 대기에 검은 잉크가 번지듯 어둠이 퍼져 나갔다.

칠흑빛의 달이 떠오르자.

그 아래에 한 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났구나, 마기헌.”

씨익.

“똥개의 선택을 받아서 말이야.”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있는 마현이!

“뭐라?! 이 새끼가 지금 대성좌님께 뭐라는 거냐!”

마기헌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 모습에 마휼이 헛웃음을 지었다.

‘고얀 놈, 원하고 있군.’

저 눈빛을 보고 있으면 알 수 있다.

마현이 이 후계 대전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여간, 마하윤…….

‘아주 제 자식을 똑 닮게 키워 냈어.’

어떻게, 하고 싶은 건 반드시 하고야 마는 그 성미까지도 닮을 수 있는 건가.

속 썩이는 방식도 참 여러 가지다.

물론, 그런 점이 더욱 마음에 드는 마휼이었다.

마휼이 눈짓하자 사신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신관주가 마현에게 말했다.

후계 대전은 후계자가 대결의 일시를 정할 수 있다.

사신관 시험에서 쌓인 피로와 상처를 회복하고 온전한 몸 상태로 싸울 수 있게 말이다.

“정해라, 마현! 너는 언제 후계 대전을 원하지?”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마현에 집중되었다.

과연 얼마나 늦출 것인가.

최대한 늦출 수 있는 기간은 일주일.

그 안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다.

“아무래도 일주일이 낫지 않을까?”

“내 생각에도 그래.”

“상대는 마기헌 님이니까…….”

후예들은 최대한 늦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대는 무려 대성좌와 계약한 마기헌이다.

만전의 상태로 임했을 때 승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물며, 화신이 되면 근원을 각성한다고 한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근원의 힘을 성장시키는 것도 좋아 보였다.

“아니, 언제를 선택해도 어려워.”

마기헌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두 분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어쩌면 대성좌를 등에 업은 마기헌의 성장이 더 빠를 수도 있었다.

지켜보는 후예들의 생각이 복잡하게 얽혀들어 가는 이때.

마현이 입을 열었다.

“제가 원하는 시간은.”

그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번졌다.

“지금 당장입니다.”

사신관주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지금 당장.

후계 대전에서 그 말이 뜻하는 바는 분명했다.

마현이…….

마기헌을 상대로 오래 끌 필요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실제로 마현의 생각도 그러했다.

아니, 정확히는.

‘첫 하수인으로 마기헌이라…….’

마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머릿속에 마기헌이 하수인이 된 미래가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이다.

― 이런 빌어먹을 새끼가, 감히!

마광익이 절망하고, 마지영이 절규하며.

― 너를 죽이겠다!

격노하는 마재헌의 미래가!

아아, 이거 참.

‘상상만 해도 못 참겠는데!’

마현의 눈에 위험한 빛이 어렸다.

46화. 네크로맨서 vs 디아볼리스트

후계 대전의 서막이 오르자 사신관의 기관진식이 작동했다.

어느새 정사각형의 거대한 대련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쿠웅―

사신관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계 대전에 임할 두 후예는 앞으로 나오라!”

마현과 마기헌이 대련장 위로 올라섰다.

사신관주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사아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누구 하나 물러섬 없었고.

양립할 수 없는 두 기세가 서로를 물어뜯을 것처럼 타올랐다.

날카로운 시선이 허공에서 충돌하자,

마치 강철끼리 부딪치듯 보이지 않는 불꽃을 튀겼다.

얼핏 비등해 보이는 승부의 행방.

하지만 마기헌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히죽.

‘비등하다고? 어떤 멍청이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무려 대성좌님을 등에 업었고.

모든 능력치가 10이나 올랐다.

그뿐인가?

디아볼로스로 각성한 후에는 대성좌님께서 친히 악마를 주선해 주셨고 스킬들도 하사하셨다.

최하급 성좌와는 차원이 다른 출발선이다.

져주고 싶어도 질 수가 없다.

이랬는데 진다고?

‘그렇다면 죽어야지!’

마현과의 격차가 줄어드는 것도 모자라.

압도적인 근원의 힘과 성좌님의 지원을 받았다.

그런데도 진다는 건 죽어도 싸다는 것이다!

장담할 수 있다.

더이상 놈에게 허무하게 패배하는 일은 없고.

오직, 승리만이 남았음을!

“으흐흐!”

모든 것을 바로잡을 일만 남은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새어 나올 때였다.

마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마기헌, 웃지 마라.”

마현, 이 미친놈이…….

“못생겼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선을 넘는 것이다!

‘하아, 이 쓰레기가 진짜…….’

물론, 이제 와 마현의 입방정 따위는 내게 통하지 않았다.

곧 죽을 놈의 말 따위 신경 쓸 필요 없으니까.

오히려 불쌍할 지경이다.

“쯧, 마현, 넌 정말 불쌍한 놈이다.”

일주일의 시간이 있었다.

하물며 놈은 내가 대성좌님과 계약했단 사실도 알 수 있었지.

최하급 성좌와 계약한 녀석은 나와의 격차를 조금이라도 좁히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했다.

그럼에도 급하게 대련 일정을 잡은 건 모두.

“멍청한 주변의 기대에 떠밀려 급하게 덤벼들다니.”

가문의 기대에 떠밀렸기 때문이니까.

하, 그놈의 객기를 왜 부리는 건지.

평생 못 받아 본 관심을 받고 싶었던 건가?

뭐가 됐든.

“그게 너를 죽게 만든 거다. 멍청한 놈.”

마현은 이제 끝이다.

바보 같은 선택으로 건너선 안 될 강을 건넜다.

하지만.

피식.

마현은 오히려 한심하다는 듯이 헛웃음 지었다.

“마기헌, 몰살의 황태자가 그렇게 좋은가 본데.”

그 말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몰살의 황태자 님의 격은 대성좌 급이다.

격이 높은 성좌의 선택을 받았는데 누가 싫어할 수가 있지?

헌데, 놈의 말은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숨겨진 내막이 있는 것처럼 들렸다.

“또, 무슨 쓰잘데기 없는 말을…….”

“그 녀석이 너에게 어떤 조건을 제시했지?”

“조건…….?”

몰살의 황태자와의 계약 조건.

사실 입 밖으로 내뱉기 애매한 수준이었다.

대성좌와의 계약이라기엔 ‘아직은’ 그 조건이 열악했으니까.

“하! 네깟놈이 신경 쓸 건 없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는 법.

이대로 마현의 말을 묵살하려 했다.

그런데 오히려 놈의 입꼬리가 얄밉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 별건 아니야. 그저…….”

씨익.

“그 녀석이 나에게 먼저 계약을 제안했었거든.”

“뭐, 뭐라?!”

나 이전에 마현에게 계약을 제안했었다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뇌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그것은 진언을 개방하면서까지 분노한 성좌를 향해.

― 격 떨어지니까.

마현이 일침을 받는 순간이었다!

‘그, 그렇다면 진언을 개방한 성좌가 몰살의 황태자님이셨단 말인가?!’

어쩐지 마현에게 깊게 분노한 것 같더라니, 당사자였어!

비로소 대성좌님께서 계약에 응해준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마현에게 대차게 까였던 것이다.

조금 찜찜하긴 했지만 애써 무시하려 했다.

이제 와서 그런 사소한 과거 따위 중요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마현의 말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가벼웠지만.

그 파급력은 생각 이상으로 커졌다.

“그니까, 마현 님께 거절당한 대성좌님이 몰살의 황태자님이시고…….”

“그러고 나서 계약한 화신이 마기헌 님이라는 건…….”

“삼각관계라고?!”

“헐, 뭐야, 뭐야?”

별자리 연회장의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바보 같은 후예들이 멋대로 떠들어 대기 시작한 것이다.

‘멍청한 놈들이 지금 뭐라는 거냐! 왜 나의 대성좌님을 저 쓰레기랑 엮으려는 거야!’

무척이나 화가 치미는 상황.

그 속에서 마현이 말했다.

“그때 아주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더라고. 간이고 쓸개고 다 줄 것처럼 말이야.”

“놈! 더 이상 내 성좌님을 무시했다간……!”

더는 좌시할 수 없었다.

놈이 나의 성좌를 모욕하는 모습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어진 마현의 말은…….

“전체 능력치 30.”

절로 눈이 동그랗게 떠질 정도였다.

저, 전체 능력치 30……?

30만큼 줄 수 있던 거였어?

……나에겐 10만큼만 줬는데?!

“고유 무기랑 고유 스킬도 준다고 했지. 그것 말고도…….”

고, 고유 무기…… 고유 스킬?!

말이 계속될수록 왠지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자신의 계약과는 그 격이 다른 조건들이다.

그야말로 최상급 대우.

괜히 치가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알고 있다. 나는 사신관 시험에서 제대로 자격을 증명하지 못했었으니까.

그러니 계약 조건이 낮을 수 있음을 인지하고 받아들였다.

‘아는데…… 알고 있는데……!’

가슴이 할퀴어진 느낌이다.

특히, 다른 누구도 아닌 마현에게 그랬던 정황은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끝이 아니야. 마기헌.”

“뭐, 뭐라고?”

‘이 이상 더 줄 수가 있다니?’

성좌로서 줄 수 있는 건 다 줬잖아?!

마현이 얼빠진 내 모습을 보며 히죽 웃었다.

그 얄미운 표정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어진 마현의 말은…….

“대표 화신. 그 자리를 약속했다.”

그야말로 간이고 쓸개고 다 주려고 했던 거니까!

‘저, 정말입니까? 몰살의 황태자님!’

아니길 바랐다.

나에게 야박한 성좌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놈에게 그토록 간절했다니!

부디, 거짓말이길 바랬다.

하지만.

[성좌 ‘몰살의 황태자’가 으르렁거립니다.]

[이미 다 지난 이야기라고 합니다!]

다 지난 이야기!

그렇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

‘제엔장!’

가슴에 못 박힌 것만 같은 충격이었다.

“내가 버린 성좌랑 잘해 봐라.”

“이 쓰레기 새끼가!”

“동작 그만!”

당장이라도 전투가 벌어질 것 같은 이때 사신관주가 중재했다.

“앙금은 대결이 시작되면 그때 풀면 된다! 후계 대전의 절차를 무시하지 마라!”

지금 이 순간 역시 사신관 시험의 일부다.

수천의 성좌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절차를 무시할 수 없었다.

“예를 갖추어 인사하라.”

사신관주의 명에 날카로운 두 후예의 눈빛이 교차했고.

더욱 맹렬해진 두 기세가 거칠게 마찰했다.

“죽여 주마!”

“할 수 있다면.”

다음 순간, 둘은 각각 대련장 양 끝의 가장자리로 향했다.

‘후…….’

마현의 얼굴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 성좌님의 말씀이 맞다.

이미 지난 이야기야.

그리고 어찌 보면 마현의 덕이기도 하지.

그놈이 멍청한 선택을 한 덕분에.

자신이 몰살의 황태자님과 연결될 수 있었으니까.

물론, 놈과 엮이는 건 참을 수 없는 바.

이 개같은 기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뿐이다.

‘놈을 죽이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

그래야 후계자격과 몰살의 황태자님의 관심이 나의 것이 될 테니까.

즉, 당초 계획에서 변한 것은 없다.

이 대련을 승리하는 데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스킬 ‘후간파(嗅看破)’를 사용합니다.]

[대상의 근원을 분석합니다.]

승부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 스킬은 몰살의 황태자님께서 주신 스킬 중 하나.

가까운 대상의 근원을 분석할 수 있다.

지피지기는 백전불태라 하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어떤 상황에서든 위태롭지 않을 수 있다.

분석이 완료된 것은 그때였다.

띵.

[분석 완료.]

[대상의 근원은 ‘네크로맨서’입니다.]

‘어? 네크로맨서라고?’

조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놈이 이렇게까지 나와의 싸움에 물러섬이 없는 이유에는.

그럴 만한 근원을 각성했기 때문이라 생각했으니까.

‘네크로맨서라…….’

그 근원은 분명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강력한 근원이다.

적의 시체를 일으켜 세운다는 건.

능력치가 오르는 것과는 비교과 안 되는 성장이니까.

하지만.

피식.

‘바보 같은 놈! 객기를 부렸구나!’

절로 조소가 나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네크로맨서는.

디아볼로스와는 정반대로 각성 직후일 때 가장 무력한 근원이니까!

특히, 이제 막 각성을 마친 시점이다.

마현은 강력한 하수인은커녕 그 어떠한 하수인도 없는 상태일 터!

하수인을 다루는 힘인데.

하수인이 없다고?

크흐흐.

‘그럼 죽어야지!’

후계 대전을 일주일이라도 미뤄서라도 하수인을 구해 와야 했다.

그야말로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인 것이다.

물론, 어떤 바보 같은 놈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마현이 나의 사역마를 죽여 하수인으로 삼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네크로맨서란 시체를 일으켜 세우는 근원이니까.

‘음음, 정말로 무식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야.’

결론을 말하자면.

네크로맨서는 소환수를 하수인으로 삼을 수 없다.

그야 그럴 수밖에.

네크로맨서는 ‘시체’가 있어야 하수인으로 삼을 수 있지만.

소환수는 기본적으로 시체를 남기지 않으니까.

소환의 메커니즘은.

술자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육신에 소환수가 빙의 및 강림하는 것.

마치, 성좌의 상징체처럼 분신에 현현하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따라서 소환수는 죽어도 시체를 남기지 않으며.

죽인다고 해서 실제로 죽는 것도 아닌 것이다!

‘마현, 네놈은 여전히 모르겠지.’

너의 목숨은 이미 내 손아귀에 잡혀 있단 사실을 말이야.

마현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도 긴장하지 않은 그 모습은 얼핏 자신을 얕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시건방진 얼굴은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오히려 좋았다.

곧 이어질 이 대결에서 처참하게 망가질 테니까.

아니.

‘망가뜨릴 테니까.’

내가 겪어야 했던 이 비통함과 시련의 무게를 백배로 돌려줘야 한다.

결코, 고통 없이 죽게 두지 않겠다.

반드시 모두의 앞에서 놈이 목숨을 구걸할 때까지 몰아붙이다가.

그 끝에 고통스럽게 죽여야 한다.

그리고.

내겐 그럴 만한 힘이 있지.

마기헌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현을 바라보는 그 눈빛이 서늘하게 반짝였다.

* * *

마현은 마기헌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 못 봐주겠군.’

마기헌의 비릿한 미소에 음흉한 눈빛까지.

정말 눈 뜨고 못 봐줄 정도다.

물론, 저 녀석이 이런 표정을 짓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건 아무래도 나의 근원을 알아차렸기 때문이겠지.’

그럴 것이다.

몰살의 황태자라면 마기헌에게 수많은 스킬을 전수했을 테고.

거기엔 타인의 근원을 알아내는 스킬이 있을 테니까.

하여간 음흉한 놈들끼리 모였구만.

다행히 나는 마기헌과 관련된 정보는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

놈의 근원이 디아볼로스라는 사실이나.

놈이 자주 쓰는 전술.

몰살의 황태자의 성미까지도.

그렇기에 알고 있다.

네크로맨서는 디아볼로스와 상성이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상관없어.’

소환수를 하수인으로 부릴 수 없다는 진리.

그런 것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에 아쉬워하는 것만큼 미련한 건 없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관심 없었다.

‘그보다는 말이지…….’

나의 관심은 다른 데에 있었다.

소환술의 메커니즘.

거기에 꽂혔다.

소환수는 술자가 마력으로 빚어 낸 육신에 빙의하지.

빙의란 본체를 두고, 새로운 그릇에 영혼을 옮기는 행위.

요컨대 집을 떠나 잠시 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죽인다고 해서 실제로 죽는 것은 없다.

영혼은 다시 원래의 집으로 돌아갈 뿐이니까.

그렇기에 네크로맨서의 근원은 소환 계통 근원과 상성에서 밀린다.

그런데.

‘여기서 구천마제 신공이 나서면 어떻게 될까?’

구천마제 신공의 섭혼법.

타인의 혼을 갈취하는 무공.

그것이 발휘된다면……?

“큭큭.”

정말로 궁금하구만!

과연, 영혼이…….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을지 말이야!

다가올 이 대련이 무척이나 기대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온전히 대련에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따로 있었다.

[당신의 근원이 흔들립니다.]

‘근원이 흔들린다니?’

살면서 처음 듣는 부류의 시스템 알림.

근원과 관련된 알림은 각성 직후를 제하면 들어 볼 일이 없었다.

전생에도 이와 관련해 따로 알려진 사실은 없었다.

그만큼 특이한 상황.

[숭고한 달의 여인이 ‘근원백과사전’을 살펴봅니다!]

성좌인 그녀도 생소하긴 마찬가지.

[당신의 근원이 흔들립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건지 알 수 없다.

전생과 다른 상황.

하지만.

씨익.

왠지 설레는 느낌이다.

그 순간.

“지금부터 후계 대전을 개전한다!”

사신관주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수천의 성좌들과 사신관의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승부의 향방을 알 수 없는 후계 대전의 막이 올랐다.

속히 마력을 끌어올리는 마기헌.

마현은 그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 승부에서.

여러모로 많은 걸 얻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47화. 동귀어진

“지금부터 후계 대전을 개전한다!”

사신관주의 외침이 울려 퍼진 직후였다.

마기헌이 근원의 힘을 일깨웠다.

사역마를 소환하는 것이다.

“내 부름에 응하라. 1호!”

대련장 상공에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검붉은 구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살덩어리 같았다.

표면을 뒤덮은 실핏줄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꿈틀거렸다.

꾸드드득!

구체는 점점 부풀어 올라 이내 마기헌의 키를 훌쩍 넘어섰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태아의 발버둥처럼 거칠게 요동쳤다.

마치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듯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다음 순간.

촤악!

거친 파육음과 함께 구체가 터졌다.

진득한 점액질로 뒤덮인 무언가가 대련장에 발을 디뎠다.

그 육체는 곳곳에 새하얀 뼈가 드러난 불완전한 상태였는데.

그러기도 잠시.

삽시간에 새빨간 살점이 돋아나 뼈를 감쌌고, 검은 칼날의 털가죽이 그 위를 덮었다.

그르르―

마침내 완성된 육체.

날카로운 송곳니 사이로 군침이 뚝뚝 떨어졌다.

새빨갛게 번뜩이는 눈빛에 짙은 살육의 욕구가 비쳤다.

단순히 내뿜는 기운만으로, 약자는 온몸의 피가 얼어붙을 것 같은 그것.

지옥의 사냥개.

흑마견이었다.

사신관의 모두가 신화 속 마수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덩치에 숨을 들이켰고,

마기헌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 저건……!”

“사역마야!”

“그럼 마기헌 님의 근원이 설마 디아볼로스라고?!”

디아볼로스.

마가 일족이 각성할 수 있는 근원 중에서도 특히 강력한 힘.

역량에 따라 마왕 또한 소환할 수 있다고 알려진 그 힘의 등장에 사신관은 충격에 물들었다.

어쩌면 이 대련, 마현이 불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물결치듯 퍼져나갔다.

물론 마현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흑마견인가.”

1호라 불리는 사역마.

마현은 눈앞에 나타난 그것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지. 그 끈덕진 충성심은 질릴 정도였으니까.’

흑마견.

지옥의 수많은 악마종 중에서 유독 충성심이 강한 악마.

과연, 그 특유의 충성심은 거짓이 아닌지.

한평생 마기헌의 곁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수십 번의 죽음을 감내하면서까지 나를 방해했다.

아우우―!

울부짖는 1호.

다음 순간, 1호의 앞으로 일곱 개의 작은 구체들이 나타났다.

마기헌이 그랬던 것처럼 1호 역시 자신의 부하들을 소환했다.

그르르― 컹!컹!

일곱 마리의 작은 흑마견들이 현현했다.

살기 가득한 눈빛들이 오직 나만을 응시했다.

마치, 물어뜯을 곳을 정한 듯이 그 시선들이 날카롭게 베어 왔다.

“훗, 마현. 이제 좀 정신이 들려나?”

마기헌이 비웃듯 말했다.

이미 승리를 장담한 듯이 오만한 표정으로.

“하지만 후회해도 늦었다.”

대련은 이미 시작되었다.

전투의 끝에, 누가 이 대련장의 위에 서 있을지.

누가 지옥 심연으로 처박힐지는 정해졌다.

“내가 네놈을 쳐부숴 줄 테니까!”

마기헌이 손을 뻗으며 외쳤다.

“가라! 나를 위해, 저 쓰레기를 처단하라!”

크르릉!

순식간에 사역마들의 눈동자가 광기 어린 핏빛으로 번뜩였다.

컹.

1호의 낮고 굵직한 울음.

작은 흑마견들이 검은 칼날의 털을 곤두세운 채, 폭풍처럼 달려들었다.

쐐에엑―

눈으로 좇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

흑마견들의 신형이 그림자처럼 길게 늘어진다.

일곱 갈래로 나뉜 검은 바람이 허공을 가르며 마현에게로 향했다.

“무섭구만.”

무섭다는 말과는 달리 마현은 차분하기 그지없다.

이제 와서 흑마견 따위에 공포를 느끼기엔 전생에 너무 많은 일을 겪었던 바.

애늙은이가 된 자신에겐 두려움은 거리가 먼 감정이었다.

그보다는 역시…….

히죽.

‘이제 곧 알 수 있겠지.’

한계가 어디까지 일지 말이야.

설레기 시작하는 마음.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을 줄은 몰랐다.

물론, 방심은 절대 금물.

하물며, 흑마견들은 결코 얕볼 수 없는 사역마.

‘빠르고 많아.’

마인 토벌 시험 때에 비하면 상대하는 수는 적지만.

흑마견의 힘을 마인들과 비교하는 건 실례다.

놈들은 강력하기로 유명한 악마종이고,

그중에서도 ‘협동’과 ‘사냥’에 특화된 개체니까.

흑마견의 털은 칼날과도 같다.

스치기만 해도 살덩이가 떨어져 나갈 수 있다.

그렇기에 놈들이 휘두르는 꼬리도 조심해야 한다.

그건 그 자체로 칼이니까.

즉, 놈들은 단순한 개 따위가 아닌, 온몸을 무기로 쓰는 암살자다.

이대로 싸우면 승패는 둘째 치고.

몸이 성할 수 없는 바.

어쩔 수 없군…….

“나와라.”

나도 수를 맞출 수밖에.

사아아―

다음 순간, 발밑의 그림자가 확장되었고.

[스킬 ‘적령 소환’을 사용합니다.]

그림자 속에서 화려한 무복에 도를 갖춘 망자가 나타났다.

마인 토벌 시험에서 등을 맡길 수 있었던 나의 하수인.

화화도객 가휘다.

가휘는 심상찮은 기운을 느꼈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검은 바람이 되어 달려들고 있는 흑마견들이 결코 평범한 들개 따위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어때, 가휘. 이번에도 할 수 있겠어?”

나의 물음에 고개를 돌렸던 가휘가 다시 흑마견들을 바라보았다.

생각도 잠시.

피식.

녀석이 가볍게 웃으며 한발 앞서 나갔다.

마치, 그런 건 따질 필요도 없다는 듯이!

‘하, 이 녀석…….’

씨익.

“마음에 드는데!”

백 마디 말보다 확실한 표현.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가 보다.

괜히 입꼬리가 올라가니까.

아르르! 컹!

어느새 지척에 다다른 흑마견들.

날카로운 송곳니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검은 바람이 들이닥친다.

“자, 그럼…….”

키이잉―

동시에 검을 뽑는 마현과 가휘.

서슬 퍼런 금속성의 마찰음에 정신이 날카롭게 벼려졌다.

“싸워 볼까!”

마현의 두 눈이 번뜩인 다음 순간.

검은 바람과 강철의 검이 격돌했다.

쐐액!

번개 같은 속도로 마현의 검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암기처럼 몸을 날린 흑마견의 옆구리를 정확히 가르며 지나갔다.

카앙!

마치 단단한 강철끼리 부딪친 듯한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과연 악마종이랄까.

튕겨 나간 흑마견의 몸에는 얕은 상처가 남았지만, 그마저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몸을 일으켰다.

살육을 갈망하는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흑마견은 다시 한번 마현을 향해 돌진했다.

‘죽이기 위해서는 전력으로 찔러야 한다.’

흑마견이 튼튼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어떻게 해야 죽일 수 있는지, 그 약점은 어딘지도 알고 있다.

다만.

카강!

‘바쁘군.’

마인들을 쓸어 잡던 가휘 역시 그 칼날이 제대로 박히지 않았다.

그 정도로 어딘가 체계적으로 훈련된 듯한 움직임들.

일곱 마리의 흑마견은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모든 것이 계산된 듯이 숨 쉴 틈을 주지 않는 연계를 이루었다.

마치, 거칠게 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에 있는 기분.

조금이라도 중심이 흐트러지는 순간…….

카가강!

스핏―

모든 걸 갈가리 찢어 버릴 것 같은 게 말이다.

피를 닦아낼 틈은 없다.

내가 섣불리 움직이는 순간이.

놈들에겐 기회가 될 테니까.

아르르! 컹!

물론, 방법은 있다.

그건…….

“가휘!”

마현이 가휘를 부른 순간.

쩡―

청아한 검명이 일대에 울려 퍼졌고.

투명한 파장이 터져 나갔다.

영혼을 뒤흔드는 힘.

찰나에 흑마견들의 움직임에 제약이 생겼다.

하지만 이미 몸을 날린 세 마리의 흑마견은 관성에 몸을 맡긴 채 쇄도했다.

정면에 한 마리.

후면에 두 마리.

찰나에 생긴 빈틈.

해치울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목표는…….

‘너다.’

마현의 눈이 투명하게 빛났다.

활시위처럼 극한까지 당겨진 어깨가 순간 폭발하듯 펴졌다.

반동으로 번개처럼 쏘아지는 팔 그리고 검.

온몸의 힘이 한 점으로 모여들었다.

나의 의지, 기세, 그리고 검이 완벽한 일직선을 이루는 그 찰나―

【구천마검 일 초식 균천】

칼끝이 흑마견의 머리를 관통했다.

퍼엉!

육신의 한계를 넘어선 일격.

흑마견이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컹!

하지만 큰 힘에는 반동이 따르는 법.

마현의 자세가 순간 경직되었다.

뒤를 노리던 두 흑마견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목표는 마현의 목덜미.

놈들의 아귀가 찢어질 듯 크게 벌어졌다.

승리를 확신한 듯, 흑마견들의 눈에 광기가 서렸다.

목덜미를 물어뜯을 수 있다는 확신에 찬 순간.

턱을 악물었다.

카앙!

!

입 안에 든 것이 강철처럼 단단하다.

“좋았어.”

흑마견들이 깨문 것은 마현의 강철같은 목덜미가 아니었다.

도(刀).

가휘가 도를 내질러 마현을 지킨 것이다.

이것이 지금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

내가 놈을 죽이기 위해 순간 틈을 보일 때.

가휘가 나를 지키는 것이다.

부작용이라면 가휘가 흑마견들을 뿌리치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었다는 점인데.

“괜찮아?”

끄덕.

가휘는 언데드다.

신경 쓰는 게 이상하지.

자 그럼.

“남은 건, 여섯 마리인가.”

으르르르―

동료가 한순간에 죽어버리자 경계하기 시작한 흑마견들.

마현은 검을 고쳐 쥐며 말했다.

“흑마견은 사냥을 잘한다더니.”

크르르!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였군.”

컹컹!!

눈깔이 뒤집힌 흑마견들.

본때를 보여 주기 위해 다시 한번 덤벼들었다.

전력을 다하려는 듯이 그 눈동자에 핏발이 가득했다.

그런 흑마견들을 바라보는 마현의 입가가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마치,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참아 내고 있는 것처럼…….

* * *

여섯 마리가 된 흑마견의 공격은 전과 달랐다.

그 기세는 살을 에는 바람처럼 광폭했고.

움직임은 칼날을 머금은 회오리바람 같았다.

우렁찬 포효는 폭풍 속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일곱 마리에서 줄어든 이상.

전보다 연계는 매끄럽지 못했다.

그렇기에.

퍼엉!

또 한 마리의 흑마견이 육신을 잃고 사라졌다.

흔들리기 시작하는 승부의 균형.

마현과 가휘의 검무에 점차 힘이 실리기 시작했고.

막강했던 흑마견들의 합공이 흔들려 갔다.

그때.

커엉!

일차원적인 움직임.

흑마견 하나가 대놓고 뻔한 궤적으로 몸을 던졌다.

이를 놓칠 가휘가 아니었고.

푸욱!

도가 일말의 주저 없이 흑마견을 꿰뚫었다.

머잖아 그 육신이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을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가휘의 미간이 좁혀졌다.

아그작!

고통을 참아낸 흑마견이 꿰뚫린 채 가휘의 팔을 깨문 것.

놈이 안간힘을 써서 가휘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그러자 이때를 노렸다는 듯이 다른 흑마견들이 가휘를 향해 날아들었다.

크르릉―

가휘를 물어뜯는 흑마견의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모든 건 오직 이 순간을 위함!

사역마는 어차피 죽지 않는다.

잠깐의 고통은 있겠지만, 확실한 승리를 취할 수 있다면.

무리를 위해 제 한 몸 희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는 동귀어진의 수.

이제 가휘가 죽고 승부의 균형이 기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개수작이군.”

마현은 훤히 알고 있는 수법이었다.

【균천】.

가휘를 향해 덤벼든 동포의 육신이 터졌다.

그리고.

촤악!

가휘의 허점을 노린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퍼엉!

이제 남은 건 네 마리.

승부의 향방은 마현의 쪽으로 기울었다.

흑마견들로부터 더 이상 전과 같은 기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마현의 몸 상태는 상처로 가득했고.

가휘는 거의 넝마가 되었다.

거기에.

그르르―

얌전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1호와 마기헌.

아직 본 게임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게 마현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마기헌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아, 디아볼로스의 힘에 취할 것만 같군.”

생각 이상으로 사역마의 힘이 막강하다.

뒤에서 버프만 넣어 주고 있을 뿐인데,

그 천박하고 쓰레기 같은 마현이 꼼짝도 못 하고 있다니!

“크하하!”

이거, 살맛이 나는데!

통쾌하기 그지없잖아!

‘과연, 성좌님께서 주선해 준 악마인가.’

마기헌은 자신의 바로 옆에 자리한 1호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몰살의 황태자님께서 말씀하셨지.

이 녀석은 자신이 다스리는 군대에서 분대장급 마수라고.

분대장급이란 그만한 격과 힘을 인정받은 악마라는 것.

원래라면 지금 내가 계약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순전히 성좌님께서 계약을 주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에 무척 아끼는 녀석이라고 하셨지.’

성좌가 아낄 정도의 악마.

그 이유는 1호의 특별한 능력에 있었다.

[스킬 ‘무리 집결’]

최초에 디아볼로스가 계약할 수 있는 사역마는 하나뿐.

하지만 나는 1호의 스킬 덕분에 7마리의 사역마를 추가로 소환한 셈이 됐다.

모든 악마가 부하를 다스리고 소환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날 때부터 군주의 자질을 지닌 녀석 중에서 타고나는 것이다.

그리고 1호는 그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녀석의 혈통은 무려.

성좌 ‘지옥의 수문장’의 직계니까.

‘나를 닮아 뛰어난 혈통을 지녔기 때문이라…….’

녀석, 정말 마음에 드는군.

이처럼 타고나기를 나처럼 강력한 잠재력을 지닌 녀석이다.

앞으로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내게 큰 힘이 되어 줄 테지.

그르릉―

시선을 의식한 듯 1호가 몸을 낮추었다.

얌전히 나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후후, 내게 순종적인 점도 좋아.”

차분히 쓰다듬을 받아들이는 1호.

하지만 그 잔혹한 눈빛은 오로지 마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든 죽이라는 명령을 받들기 위해서.

아아, 이렇게 완벽한 사역마가 또 있을까?

새삼, 몰살의 황태자님께 잠깐이나마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역시, 이건 기회야.’

어떻게든 몰살의 황태자님께 잘 보이고 싶다.

그분이라면 반드시 내가 더 강해질수록, 더 강한 악마와 연결시켜 줄 분이니까.

그러려면 나와의 계약을 만족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어려울 건 없다.

상좌님께서 먼저 마음에 들어 했던 마현을 없애 버리면 되니까.

‘전혀 아쉬움과 미련이 남지 않도록 말이야.’

그때였다.

깽―

마침내 마현이 모든 흑마견들을 해치운 것.

피로 떡칠한 놈의 꼬락서니를 보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 멍청한 꼴이 무척이나 어울렸다.

“이제야 천박한 놈답게 되었군.”

진즉, 이렇게 돼야 했었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을 수 있어 다행인 바.

한데, 녀석은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모양이었다.

“마기헌, 이게 끝이냐?”

흐르는 피를 닦는 마현이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난 아직 팔팔한데.”

마기헌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어처구니가 없군.

이 상황이 되어서도 강한 척을 하고 있다니.

허세도 정도껏 해야 하지 않은가.

아무래도 본때를 보여 줄 때가 된 모양이다.

“아아, 물론, 끝이 아니지.”

네놈이 언제까지 여유로운 척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제부터 시작이거든.”

본 게임은 지금부터라는 거다.

1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전신에서 살육의 의지가 불꽃처럼 솟구치자,

바람이 분 것처럼 검은 털이 사납게 휘날렸다.

진홍빛으로 물든 눈동자가 오직 마현을 직시했다.

[스킬 ‘야수의 본능’을 사용합니다.]

[스킬 ‘주인의 명령’을 사용합니다.]

마기헌의 버프가 더해지자.

1호의 흉악한 기운이 사신관을 가득 채웠다.

이제 끝이다.

“가라, 1호! 저 머저리를 물어뜯어라!”

그 말과 함께 1호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보폭은 점점 넓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두두두두!

1호는 검은 돌풍이 되어 질주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칼 한 자루가 던져진 것처럼.

꿀꺽!

“마, 마현 님……?”

지켜보던 사신관 후예들이 숨을 죽였다.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만큼 1호의 기세가 어떤 후예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고.

이에 힘이 다 빠진 마현이 1호를 이겨 내는 모습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하물며.

“어째서, 근원의 힘을 사용하지 않는 거야?!”

마현이 상처투성이가 될 때까지도 근원을 다루지 않았다.

마치,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설마…… 마현 님이 진다고?”

물결처럼 퍼져 나가는 불안한 기류.

수면 위로 떠 오른 패배의 예감.

불길함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하지만 중요한 건 더 이상 승패에 있지 않았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죽음!

저런 미친 사역마에 맞서 싸워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까!

그때였다.

저벅저벅.

누군가 앞으로 나섰다.

넝마가 된 마현의 하수인, 가휘.

처음과 달리 화려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초라해진 그가 달려드는 1호를 향해 마주 섰다.

그리고.

대뜸 1호를 향해 마주 달리기 시작했다.

그르릉! 커엉!

일차원적인 움직임이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대놓고 1호의 목에 칼을 겨눈 채 달려드는 모습은 바보 같아 보일 정도였다.

“허, 제 주인을 닮아 멍청하기 짝이 없군.”

마기헌은 코웃음 쳤다.

놈 혼자서 1호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물론, 저 적령이 제법 실력이 뛰어난 건 알고 있지만.

저런 성치 못한 상태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과연, 예상대로였다.

놈은 힘을 다했는지, 가볍게 휘두른 발길질에 맥없이 쓰러졌고.

1호의 한 입 거리가 되었으니까.

콰직!

잘려 나간 하수인의 하체가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남은 건 이제 마현의 차례.

1호의 그림자가 마현의 위를 드리울 때까지 녀석은 그저 보고만 있었다.

하수인이 맥없이 쓰러진 것이 충격이었던가?

검을 쥔 녀석의 손에는 힘이 풀려있었다.

마치, 싸울 의지가 없는 것처럼.

‘뭐지? 이럴 새끼가 아닌데?’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런데.

마기헌은 왠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두근.

저놈이 상식 밖의 행동을 할 때면 늘 무언가 일어났었다.

혹은 내가 모르는 일이 일어난 후였다.

“하! 뭐 하는 거냐, 마현, 설마 지금 무서워서 굳어 버린 거냐?”

하지만 지금은 승리를 목전에 둔 상황이다.

이 불길함은 그저 착각에 불과할 게 분명했다.

마현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생각해 보니까, 너 이 녀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지?

1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냐니.

당연히 알고 있는 건 얼마 없다.

그저 신상 정보일 뿐.

실제로 만난 건 지금뿐이니까.

그런데.

이상하다.

두근.

어째서 마현이 나보다 1호에 대해 더 잘 아는 듯한 말투인 거 같지?

“이 녀석은 기질적으로 식탐이 많아서, 아주 못된 버릇이 하나 있지.”

마현이 1호에게 다가갔다.

사정거리 안.

하지만 어째선지 1호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자기가 쓰러트린 대상을 먹어 치우는 버릇이야.”

쓰러트린 대상을 먹어 치운다고?

짐승들은 원래 사냥감을 먹어 치우는 법이다.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마기헌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녀석이 의미심장한 투로 뭘 말하나 했더니, 뻔하디뻔한 말이었으니까.

오히려 이딴 걸로 아는 체하는 마현이 역겨울 정도다.

‘왜 뜬금없이 지랄인 거냐.’

하지만 그래서다.

왜인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솟구쳤고.

심장이 거칠게 요동쳤다.

두근!두근!

마치, 자신이 무언갈 놓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건 분명…….

“……설마.”

1호가 놈의 하수인을 먹어 치운 것일 터였다.

그제야 마기헌은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 그르륵.

살짝 벌어진 입에서 침을 흘리며, 눈동자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는 1호를!

마기헌의 고개가 돌아갔다.

시선이 향한 곳은 1호가 마현의 하수인을 죽인 곳.

그곳에 여전히 하수인의 하반신이 남아 있었다.

“…….”

분명, 적령 소환으로 나타난 하수인이었다.

요컨대 ‘소환’이다.

죽으면 그 육신이 먼지가 되어 사라져야 했다. 마현이 해치웠던 사역마들처럼.

그런데.

“시발…….”

어째서 하반신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거냐!

“크크, 마기헌 너는 잘 모르나 본데.”

마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원래 땅에 떨어진 건 함부로 먹으면 안 되는 법이다.”

왜냐하면.

씨익.

“탈이 나 버릴 테니까!”

그 말과 동시였다.

푸확!

날카로운 무언가 1호의 뱃가죽을 뚫고 튀어나왔다.

가휘의 도(刀)다.

그리고 그것은…….

촤아악!

1호의 배를 거칠게 갈라 버렸다.

터져 나온 피 분수가 사방을 붉게 물들였다.

지켜보던 사신관 후예들은 충격에 빠졌고.

허무하게 쓰러지는 1호의 모습에 마기헌의 입이 벌어졌다.

크롸아아!

절규하는 1호.

임무를 마친 가휘는 그제야 천천히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잘했다. 가휘.’

흑마견들이 그랬던 것처럼.

가휘 역시도 동귀어진의 수를 노렸다.

죽지 않는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헥헥―

남은 건 숨을 헐떡이며 눈을 감는 1호.

마현은 그런 1호를 향해.

【균천】

더는 고통스럽지 않도록 숨을 끊어 주었다.

파스스―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1호.

대련장 위에 남은 것은 침묵과 두 사람이었다.

물론, 그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현이 그렇게 두지 않았다.

“마기헌, 더 없는 거냐?”

히죽.

“그럼, 이제 우리뿐인 거군.”

48화. 진각성

푸화악!

요란한 피분수가 사방을 붉게 물들였다.

힘없이 쓰러지는 거대한 흑마견의 몸.

쿠웅―

“…….”

생각지도 못한 결말.

후예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분명 저 거대한 흑마견의 기세는 놀랍도록 사나웠고.

한눈에 봐도 상처투성이인 마현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친…….”

싸우지 않고 이기다니.

이거 완전…….

개쩔잖아!

“찢었다!”

“역시, 마현 님이야!”

“크으읏!”

사신관에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 장면을 본 이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강력한 근원의 힘을 다루는 마기헌을 상대로.

마현은 맨몸으로 맞서 싸웠으니까.

마치, 이 정도 힘이면 충분하다는 듯이!

“대체 얼마나 강한 거지?”

“단신의 무력만으로도 이 정도인데…….”

“근원마저 다루면 어떻게 되는 거야?!”

후예들은 궁금하다.

마현이 어떤 근원을 각성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강해졌을지가.

“크흠, 이건 뭐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 밖에는…….”

“자네도 놀랐는가?”

“나 원 참. 살다 보니 이런 광경도 보게 되는군.”

단상 위의 원로들도 놀라긴 매한가지다.

그들도 이런 식으로 마기헌의 근원이 제압될 줄은 몰랐다.

물론, 다른 순간들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흑마견들이 한 방에 터지다니.”

“그건 스킬이 아니었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정교한 찌르기였어.”

통상적으로 후예들이 작은 흑마견 한 마리를 상대하기 위해선 두 명은 필요하다.

한 마리를 상대하는 데에 두 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마현은 일곱 마리를 상대로 제 하수인과 싸워 이겼다.

찌르기 한 번에 한 마리씩 죽여가면서.

그러니…….

“수상하군 수상해…….”

“저 아이…… 정말 마가 일족이 맞는 겁니까?”

혈통이 의심스러운 것이다!

“반은 맞긴 할 텐데, 나머지 반이 좀…….”

적령 소환이 가능한 시점에서 마가의 혈통은 맞다.

문제는 저 수상할 정도로 강력한 검술!

마가에도 수많은 무공이 존재하지만, 저런 무공은 없다.

최소한 검술 명가의 후예들이나 보여 줄 법한 실력인 것이다.

“아니, 아닐세. 그 정도가 아니야.”

검술 명가 후예들도 이 정도는 아니다.

마현의 실력은 그 이상.

어디서 십수 년 구르고 구른 검객에 버금갔다.

아무튼 이 나이에 이 정도라니.

이건 하늘이 내려 준 재능이다.

그러니 이런 재능을 물려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아무래도. 그렇겠죠?”

“음, 그럴 수밖에.”

마현의 반쪽이.

검술 명가의 혈통이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커흐흠.”

이런 생각은 조용히 맴돌다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클클클.”

가주인 마휼을 거슬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

“뭐, 아무튼.”

“마기헌은 어쩔 수 없구만.”

“아무리 대성좌의 마음을 얻었다 해도 역시…….”

‘저 뛰어난 재능 앞에선 무력하군.’

방금의 전투에서 보인 것은.

대성좌의 지원과 강력한 근원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마현의 뛰어남뿐인 것이다.

‘이, 무슨…….’

마기헌은 넋이 나갔다.

확실한 승리를 예상했었다.

적어도 1호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은 예상 못 했다.

“마현! 마현! 마현!”

뜨거워진 사신관의 열기.

마현의 이름을 연호하는 후예들.

크읏.

치욕스러움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현을 향한 함성이 왠지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들렸다.

‘벌레 같은 놈들이 지금 누굴 응원하는 거냐!’

역겨울 정도로 멍청하다.

장차 마가의 미래는 암익파가 좌지우지할 터인데.

그런데 감히 내가 아니라 마현을 응원해?

가까운 미래조차 예상 못 하는 저 바보 같은 후예들의 모습에 치가 떨렸다.

하물며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나의 진정한 힘은 아직 다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도…… 이놈이고 저놈이고 하나같이……!

빠드득!

‘반드시, 네놈들도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마현을 부수고 후계자가 되어,

저 기뻐하는 표정들을 처참하게 해 주겠노라 다짐했다.

마현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마기헌, 더 없는 거냐?”

더러운 비웃음과 함께.

“그럼 이제 우리뿐인 거군.”

저 기고만장한 얼굴.

마치 한 방 먹인 듯한 통쾌한 표정.

속이 뒤집힐 것 같았지만 마기헌은 웃어넘길 수 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 될 테니까.

“과연, 네놈은 빌어먹게도 강한 모양이다.”

그 강한 흑마견들을 상대로 살아남다니.

인정한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그런데 있잖아.

마기헌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설마, 고작 사역마 몇 마리 잡아냈다고, 다 이겼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정말 그런 생각이라면 실망이다 마현.

그야, 사역마는…….

씨익.

“다시 소환하면 그만이니까!!”

마기헌의 입가에 진득한 미소가 피었다.

사신관이 다시 한번 술렁였다.

사역마가 다시 소환되면, 이번에는 정말 어떻게 될지 몰랐다.

설령 버텨 낸다 하더라도, 그다음이 있었다.

계속될수록 이 대련은 마현이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헛수고하느라 고생했다 마현.”

크흐흐. 그러게, 생각이라는 걸 좀 하지 그랬냐.

멍청한 녀석.

비릿한 웃음을 짓는 마기헌.

그가 손을 뻗으며 외쳤다.

“나와라 1호! 마현을 물어뜯어라!”

다음 순간, 마기헌의 마력이 들끓었다.

피에 내제된 근원의 힘이 고개를 들자.

[스킬 ‘사역마 소환’을 사용합니다.]

사역마 소환 스킬이 발동되었다.

이제 또 한 번 사신관을 공포에 물들였던 사역마 1호가 나타난다.

그런데.

휘잉―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싸늘하다.

숨 막힐 것 같은 정적이 맴돌았다.

“나와라 1호!”

다시 한번 마기헌의 마력이 들끓었고.

피에 내제된 근원의 힘이 고개를 들었다.

[스킬 ‘사역마 소환’을 사용합니다.]

그러자.

휘이잉―

소름 끼칠 정도의 침묵.

오한이 들 정도의 싸늘함.

놀라울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이상함을 느낀 후예들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원로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거대한 물음표가 사신관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뭐, 뭐지?”

의문이 가득한 것은 마기헌도 마찬가지.

지금 상황은 상식적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두근! 두근!

심장이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늘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은…….

마현이 있을 때마다 일어났으니까!

‘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다고.

절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절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씨익.

그놈이었다.

마현이…….

더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다!

‘설마…….’

시스템 알림이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띵!

[소환 가능한 사역마가 없습니다.]

소환 가능한 사역마가…… 없다고?

‘어……째서?’

이상하잖아.

그럴 리가 없잖아.

사역마라고.

죽어도 죽지 않는 사역마라고!

‘그, 그래! 성좌님이라면 방법을 알고 계실 거야!’

분명 그분이라면 해결해 주시겠지!

마기헌은 떨리는 마음으로 몰살의 황태자를 찾았다.

지금 상황은 그라면 해결해 줄 수 있을 테니까!

‘몰살의 황태자님! 도와주십쇼! 여기, 있어선 안 될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기헌이 몰살의 황태자를 찾을 무렵.

그 역시 마기헌의 시각을 공유한 채 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니 알 수 있었다.

‘뭐지?’

자신도 잘 모르는 일이 존재했다는 걸!

몰살의 황태자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소환 가능한 사역마가 없다니.

이는 계약이 해지되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아이가 반기를 들 리가 없거늘.”

지금은 1호라 불리는 그 아이는 한 번도 자신의 명에 거역한 적 없는 충직한 놈이다.

마현을 찢어발기기 위해 자신이 직접 엄선한 아이였으니까.

“일단 이유를 물어야겠군.”

분명 사정이 있으리라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몰살의 황태자는 1호를 소환했다.

파아앗―

붉은 마력의 빛이 번쩍이자.

점차 1호의 형상이 선명해졌다.

마침내 소환된 1호.

그런데.

풀썩.

“……1호?”

몰살의 황태자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왜냐하면…….

1호가 숨을 쉬지 않았으니까!

“죽었다고?”

확실하다.

지금 눈앞의 1호는 빈껍데기에 불과했다.

“이 무슨……!”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물론, 전혀 없는 일은 아니다.

사역마로 현현했을 때도 고통은 그대로 느낀다.

그러니 과도한 충격으로 인한 죽음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1호에게 일어날 일은 아니었다!

크르릉!

“놈이다. 놈이 원흉이야!”

분노한 몰살의 황태자는 본능적으로 마현을 찾았다.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다. 녀석이 범인이 맞다.

왜냐하면 마현이…….

“마기헌, 내가 말했잖아.”

씨익.

“이제 우리 둘뿐이라고!”

자신들을 우롱하고 있었으니까!

과연, 마현의 생각대로였다.

죽게 된 사역마의 영혼은 원래의 육신으로 회귀하려 했다.

하지만.

섭혼법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지.

즉!

끼이잉―

낑낑.

구천의 문 앞에 여덟 마리의 개가 서성이는 것이다!

그때였다.

분노한 몰살의 황태자가 알림을 보내 왔다.

무척이나 거칠고 사나운 목소리로.

[성좌 ‘몰살의 황태자’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고 묻습니다!]

“무슨 짓이라니…….”

그런 거.

히죽.

“말해줄 리가 없잖아!”

마현의 비웃음에 난폭한 성좌 메시지가 연달아 쇄도했다.

[성좌 ‘몰살의 황태자’가 당신을 협박합니다!]

└ [반드시 천벌을 내리겠노라 약속합니다.]

└ [자신의 전력으로 고통스럽게…….]

└ [후회로 범벅된 삶을…….]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구나.”

[성좌 ‘몰살의 황태자’의 성좌 메시지를 차단합니다.]

마현은 마침내 고요를 되찾았다.

웅성웅성―

사신관은 지금 혼란스럽다.

어째선지 마기헌의 사역마가 나타나지 않았고.

왠지 그 이유에는 마현의 술수가 있는 듯했으니까.

하지만 보이는 것과 달리.

마현도 썩 여유롭지는 않았다.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할 정도로.

[당신의 근원이 흔들립니다.]

[당신의 근원이 흔들립니다.]

[당신의 근원이 흔들립니다.]

.

.

.

격렬하게 흔들리는 근원.

처음부터 이렇게 거칠게 흔들리지 않았다.

다만, 영혼을 뽑을수록 그 빈도가 늘어갔고.

마지막으로 1호의 영혼을 흡수한 순간 지금처럼 되었다.

[당신의 근원이 흔들립니다.]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순간.

심장이 살면서 경험한 적 없는 강도로 터질 듯이 뛰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거냐.’

하지만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이 빈틈을 보여 줄 수는 없으니까.

그때였다.

[성좌 ‘숭고한 달의 여인’이 책을 집어 던집니다.]

[대충 알 것 같다고 합니다!]

화신백과사전을 읽던 그녀가 부리나케 메시지를 보냈다.

[이건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합니다!]

‘역사적이라고?’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당신의 근원이 곧 진정한 모습으로 각성할 것이라고 합니다!]

마현은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듣도보도 못한 말이었으니까.

‘진정한 모습?’

그때였다.

지끈!

두개골이 울릴 정도의 두통.

심장 박동에 맞춰 함께 뇌가 두근거렸다.

거기에.

[당신의 근원이 격렬하게 흔들립니다!]

때가 다가온 듯 격렬하게 떨리는 근원.

다음 순간.

난생처음 보는 시스템 알림이 떠올랐다.

[진(眞)각성이 시작됩니다.]

‘진각성이라니?’

마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야, 듣기만 해도 설레는 말이었으니까!

[당신의 근원이 진정한 모습을 되찾습니다.]

심장에 깃들었던 근원의 힘이 완전히 눈을 떴다.

뜨겁게 끓어오르는 피, 더욱 깊어지는 마력.

그리고.

공명하는 상단전.

구천의 문이 근원의 힘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두 힘이……?’

사실 그 이유는 명백했다.

구천마제 신공과 네크로맨서는 모두 죽음의 힘을 다루는 능력이니까.

같은 기운을 다스리는 두 힘은 서로 이끌렸고.

마침내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근원 ‘네크로맨서’가 변화를 맞이합니다.]

더 이상 심장은 두근거리지 않았다.

머리를 깨뜨릴 것 같았던 두통도 없었다.

[당신을 옭아매던 한계를 깨부숩니다.]

[거짓된 틀에서 벗어나 진실한 가치를 지닙니다.]

[당신의 근원은 죽음과 하나 된 자.]

오직 껍데기를 깨고 나온 듯한 상쾌함뿐이었다.

[‘진(眞)네크로맨서’입니다.]

진(眞)네크로맨서.

그것은 더 이상 허울뿐인 시체 따위에 의존하는 힘이 아니다.

진정한 죽음을 다루는 그것은 ‘영혼’을 다스린다.

즉.

[흡수한 영혼의 수: 244]

[소환 가능한 암령의 수: 10.]

내가 흡수했던 모든 영혼을 소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체에 의존해야 했던 때에는 많은 제약이 뒤따랐다.

손상된 시체는 그 자체로 암령의 전투력과 직결되었고.

시체를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놈들은 아무리 강력해도 거둘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사역마 같은 놈들이랄까.’

그런데 이제 그런 한계가 없다니.

뭐야 그거…….

‘완전 개쩔잖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두 힘의 연계!

지긋지긋한 죽음의 운명이 이토록 짜릿한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죽일수록 강해지는 검귀.

죽은 자를 다스리는 네크로맨서.

씨익.

궁합이 좋군.

이미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이번 인생엔 모든 것이 달라질 모양이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드득!

이성을 되찾은 마기헌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무척이나 분노한 표정이었다.

“이 더러운 새끼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뭘 했기에 대성좌님께서 이토록 분노하는 거냐고!”

마기헌은 여전히 성좌님께 답을 돌려받지 못했다.

어째서 1호가 실종된 것인지.

지금 일어난 이 기현상은 무엇 때문인지.

아무것도 설명 듣지 못했다.

“마기헌, 원래라면 알려 주지 않을 테지만.”

마현이 가볍게 웃었다.

“그간 봐 온 정이 있으니 보여 주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마기헌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보여 준다고?’

뭔가 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인데?

그 예상대로였다.

“나와라.”

사아아―

검은 잉크가 번지듯 퍼져가는 마현의 그림자.

깊고 짙어지는 어둠.

그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저 녀석 설마…… 하수인을 소환하고 있는 건가?!’

시체가 없다면 네크로맨서는 하수인을 만들 수 없는데?

도대체 어느 틈에 하수인을 구한 거지?!

하지만 놀라움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 순간,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하수인.

흐릿했던 그 형상은 점차 선명해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형태가 완성되었을 때.

마기헌의 두 눈이 격렬하게 떨렸다.

왜냐하면 그 하수인의 정체가…….

“1호?!”

네가 왜 거기서 나오는 거냐!

1호였으니까!

“이 더러운 새끼가! 내 1호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분노한 마기헌의 목에 핏줄이 가득 섰다.

한순간에 이성이 망가질 만큼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으니까!

“1호? 아~ 이 녀석 말이야?”

마현은 대수롭지 않은 듯이 1호에 다가가 그 몸을 쓰다듬었다.

아주 귀여운 개를 대하듯이.

크크, 1호라 정말 개 같은 이름이군.

하여간 마기헌, 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놈다운 명명이다.

마음에 들지 않아.

“마기헌, 이 녀석은 1호가 아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라고 했지만, 저 하수인은 누가 봐도 1호였다.

하지만 마현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수인의 이름을 수정합니다.]

더 이상 1호가 아니게 되었으니까!

‘내 취향으로 가득 물들여 주지!’

마현은 이름을 정했다.

“이 녀석의 이름은 ‘녹턴’이다.”

흑마견의 어두운 털에서 본뜬 이름이다.

솔직히 작명에 재능은 없지만.

적어도 1호 같은 것보단 낫겠지.

“지랄하지 마라! 나의 1호란 말이다!”

마기헌은 울부짖듯이 외쳤다.

마현이 실시간으로 자신의 것을 빼앗고 있으니 미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마기헌의 눈이 거칠게 떨렸다.

왜냐하면.

왕왕!

1호가 마음에 든다는 듯이 배를 보이며 드러누웠으니까!

그것도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표정으로!

“1, 1호……?!”

“어쩌지, 우리 녹터니가 마음에 들어 한다는데?”

진득한 우월감이 묻어나오는 마현의 표정.

자신이 애타게 부르는 순간에도 1호는 오직 마현만을 바라보았다.

할짝.

“하하, 녀석! 그렇게 좋으냐!”

빼앗긴 것이다.

완전히!

“끄아아아! 마혀언!”

배신과 좌절 그리고 상실.

마기헌의 속이 까맣게 썩어 갔다.

숯덩이가 된 그의 마음은 이제.

분노로 타오를 뿐이었다.

“감히, 감히! 내 인생을 망치는 것도 모자라. 나의 것을 빼앗다니……!”

마기헌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나왔다.

흉신악살과도 같은 그 모습에 어둡고 탁한 마력이 아지랑이 쳤다.

“죽인다!”

[스킬 ‘악마화’를 사용합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마기헌의 몸집이 커졌고.

그 외형이 잔혹한 살육의 악마처럼 변했다.

“죽인다니, 정말 무섭군.”

하지만 마현은 두렵지 않다.

더 이상 나는.

혼자가 아니니까!

“가라 녹턴! 저 쓰레기를 물어뜯어라!”

마현의 명령.

녹턴의 두 눈이 붉게 타올랐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쇄도했다.

크롸아!

전 주인에게로.

49화. 내 맘대로 하겠다

생각지도 못했던 1호의 배신.

그런 녀석을 쓰다듬는 마현.

그 손길을 행복하게 받아들이는 1호.

마현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

그 눈빛에 담긴 우월감.

이 모든 것이.

마기헌의 심장을 찢어발겼다.

“으아아아!”

증오와 분노로 얼룩진 마력이 소용돌이친다.

[스킬 ‘악마화’를 사용합니다.]

마기헌은 악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마혀언!”

마현!

그가 마기헌을 그렇게 만들었다!

쿵쿵쿵쿵!

악마가 된 마기헌이 마현에게 돌진했다.

새빨간 증오의 마력으로 빛나는 눈빛이 마현을 직시했다.

감히,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박살 낸 것도 모자라.

내가 얻은 힘을 빼앗다니!

“반드시 죽일 테다!”

마기헌의 눈에는 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

오직 마현뿐이다.

그런 그의 앞을 가로막는 존재가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그건 바로.

크롸아!

거칠게 울부짖는 1호!

아니, 이제는 녹턴이라 불리는 개자식이었다!

“감히 사역마 주제에 나를 배신해!”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녀석.

그 표정에는 오직 살육의 감정뿐.

행복한 표정과 상반되는 그 얼굴에는.

전 주인에 대한 예우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크르릉!

“애초에 짐승 따윌 믿는 게 아니었다.”

충직하기는 개뿔!

주인을 등지고 튄 것도 모자라.

감히 이빨을 드러내다니!

쾅!

마기헌이 진각을 밟았다.

다음 순간.

[스킬 ‘지옥불 참수’를 사용합니다.]

거미줄처럼 갈라지는 대련장 바닥.

그 틈새로 터져 나오는 새빨간 지옥불들.

화르륵!

지옥불은 마기헌이 치켜세운 손끝에 맞춰 움직였다.

하늘로 뻗은 그의 손을 따라 지옥불이 모여 기둥을 이루었고.

기둥은 곧 거대한 화염검이 되었다.

‘악마화’로 강해진 능력치와 녹턴만큼 커진 덩치.

‘지옥불 참수'로 빚어낸 화염검.

지금 이 순간 마기헌의 힘은 각성 전보다 두 배 이상 강해졌다.

“가증스러운 놈! 네놈부터 지옥으로 보내주마!”

난폭한 지옥의 악마가 된 마기헌이 녹턴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사역마 시절의 1호라면 몰라도,

더러운 하수인이 된 녹턴은 지금의 자신이라면 쉽게 죽일 수 있다.

하수인이란 본래 이미 한 번 죽고 난 후 재활용된 놈들.

덜떨어진 좀비처럼, 생전에 비해 그 힘이 약하고 지능이 떨어진다.

그렇기에 1호.

아니, 녹턴은 그저 시간 벌기에 불과한 것이다.

콰앙!

검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대련장이 모래성처럼 부서지고 유리처럼 깨져나갔다.

불길이 치솟았고 공기가 뜨겁게 끓었다.

전투가 계속될수록 일대는 난장판이 되어갔다.

녹턴은 그저 피하는 데 급급했다.

쾅! 콰지직!

‘이것이 몰살의 황태자님께서 주신 스킬인가!’

눈앞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강력함!

증오에 사로잡혔음에도 이 압도적인 힘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악마화’와 ‘지옥불 참수’는 성좌님께서 주신 스킬.

과연, 지금 이 순간은 무엇이 와도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콰과광!

하지만. 그래서일까?

마기헌은 서서히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분명 자신은 무지막지한 힘을 다루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으니까!

콰광!

‘뭐지…….’

왜 안 끝나는 거냐!

크르릉!

녹턴은 그저 시간 벌기에 불과할 터였다.

자신은 그런 놈을 찰나에 죽일 수 있을 거라 의심치 않았다.

그야, 놈은 네크로맨서의 하수인.

생전의 강함을 잃었을 테니까.

마기헌의 눈이 번쩍 떠진 것은 그때였다.

쐐액!

피할 수 없는 각도로 휘둘러진 화염검.

그 맹렬한 가로 베기는 분명 녹턴을 단번에 반으로 가를 터였다.

그런데.

휘리릭!

녹턴이 공중제비를 돌아 피한 것이다!

‘뭐냐, 그 움직임은!’

하수인 따위가 보여 줄 수 있는 동작이 아니잖아!

아니, 이제 보니 이상한 건 그뿐이 아니야.

하수인은 시체를 매개로 하는 힘인 만큼.

그 형상은 부패된 육체에 마력이 들끓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 쌩쌩해 보이는데?!’

가까이서 본 놈의 모습은.

생전의 모습과 차이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말끔한 것이다!

‘뭐지. 또 내 상식이……!’

상식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상황이 급급했다.

카앙!

휘둘러진 녹턴의 꼬리를 검으로 막았다.

자칫 손목이 꺾일 뻔한 공격.

하수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이다.

‘크윽! 뭐냐…… 도대체!’

맞댄 검이 파르르 떨린다.

이것이 의미하는 분명했다.

녹턴의 힘이 전력을 다하는 자신과 비등하다는 것.

그르릉!

낮게 우는 녹턴.

그 눈빛이 흉흉하다.

마기헌은 식은땀이 흘렀다.

꿀꺽.

순간, 기시감이 들었다.

천살동과 망자 성채 그리고 마인 토벌.

사신관에서 일어났던 비상식적인 일들.

그때마다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다.

‘설마…….’

학습된 감정이 퍼져 나가고.

심장이 불안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불길한 미래를 예감한 것처럼.

한편, 마현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진네크로맨서의 힘…….”

다르다. 확연히 달라.

근원을 각성하면서 그 차이를 자연스레 알게 됐지만.

두 눈으로 본 녹턴의 움직임은 마현의 생각을 뛰어넘었다.

‘생전의 움직임을 거의 그대로 재현하고 있어.’

그뿐인가.

하수인이란 생기를 잃고 꼭두각시가 된 존재들.

그저 네크로맨서의 명령을 맹목적으로 따를 뿐인 인형이다.

그런데 녹턴은…….

마현이 자신의 볼을 매만졌다.

축축하게 젖어 있는 피부.

녹턴이 행복한 표정으로 핥았던 자리다.

‘감정 반응을 보였어.’

생전의 움직임과 감정 반응.

이것이 의미하는 분명하다.

하수인이 되어서도 기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차이가 어떻게 발현될지는 앞으로 잘 알 수 있겠지.

특별한 점은 더 있었다.

서걱―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녹턴의 꼬리가 잘려 나갔다.

신체 결손.

이전과 같았다면 회복되지 않았을 상처.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스르륵.

‘회복된다.’

마력을 소모하면 그 육신을 완벽히 복원했다.

앞으로는 하수인의 소모를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된 셈이다!

생각할수록 강력한 진네크로맨서의 힘.

“하아…… 이건 뭐.”

마현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검귀의 힘으로 빠르게 강해지고 있던 자신이다.

그런데 여기서 진네크로맨서의 힘까지 각성했다.

두 강력한 힘을 다룰 수 있게 된 지금.

“두렵구만.”

심히 두려워졌다.

왜냐하면.

더 이상 가늠할 수 없게 됐으니까.

씨익.

‘내 한계가 어디까지일지가!’

아아! 세상은 역시 이래야지.

이래야 사는 맛이 나는 거지!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빨리 이 힘으로 더더욱 강해지고 싶다고.

이제 막 강력한 힘을 얻었건만.

벌써부터 전력으로 휘둘러 보고 싶어진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이거 참.

‘나를 두고 한 말이었던가!’

물론, 누구든 나 같으면 그럴 것이다.

그야, 궁금할 테니까.

이 힘으로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을지 말이야!

네크로맨서가 강해지는 법은 간단하다.

강한 하수인을 만드는 것.

‘전생에는 하수인으로 만들 수 있는 것들도 한정되어 있었지.’

조금 강하거나, 조금 특별한 녀석들은 왠지 시체를 남기지 않았고.

갖가지 수법으로 하수인이 되는 걸 피하곤 했다.

하물며 소환수처럼 남의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무엇이든 내가 원한다면 지배할 수 있다.

녹턴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신관이 끝나면 바로 괜찮은 놈들을 찾아봐야겠군.’

가능하면 전생에는 거둘 수 없었던 특별한 녀석들로 해 봐야겠어.

과연, 이번 생에는 어떤 하수인을 거둘 수 있으려나.

왠지, 새로운 취미가 생긴 것 같은 기분.

벌써 기대되기 시작했다.

마현의 즐거운 상상이 깨진 것은 그때였다.

“크아악! 이 비겁한 새끼! 나와 맞서 싸워라! 마현!”

마기헌이 분노로 일갈했다.

이미 녹턴은 몇 번 죽고도 남았을 터였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하수인 따위가 계속 회복을 거듭했고.

카앙!

자신을 계속해서 막아서는 것이다!

‘맞서 싸우라니. 웃기는군.’

마현은 코웃음 쳤다.

이 이상 내가 먼저 나서는 일은 없다.

그야 맞서 싸우다니.

그런거.

씨익

‘네크로맨서답지 않거든!’

전장의 지휘관이라 여겨지는 네크로맨서다.

그리고 지휘관은 직접 싸우지 않는 법이지.

“그나저나 아직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남아도나 보군.”

다음 순간, 마현의 그림자가 확장되었고.

그 위로 일곱 마리의 암령이 나타났다.

작은 흑마견들이었다.

컹컹!

아르르!

“가라.”

작은 흑마견들이 마현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검은 바람이 되어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기헌에게로.

“크아악! 맞서 싸우란 말이다!”

마기헌은 경기를 일으켰다.

강력한 힘을 휘두르는 녹턴.

숨 쉴 틈 없이 압박하는 작은 흑마견들.

마기헌은 더 이상 전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게 됐다.

그저 막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승부의 균형이 완전히 기울었다.

남은 건, 이 대련이 언제 끝나는가.

이는 마기헌이 얼마나 버티는가에 달렸다.

‘이걸로 움직여 준다면 좋겠는데 말이야.’

사실, 마기헌쯤은 언제든 끝낼 수 있다.

아직 하수인 두 마리는 더 소환할 수 있고.

직접 나설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오늘이 지나면, 마기헌은 물론이고.

몰살의 황태자는 보기 힘들어진다.

그러니.

이 대련은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할 거다.

승패는 물론이고.

어떤 식으로 마무리할지도 말이다.

‘슬슬, 움직여야지. 몰살의 황태자.’

그렇기에 나는 기다리는 것이다.

마기헌의 눈으로 이 전투를 지켜보고 있는 그 녀석.

몰살의 황태자가 움직일 순간을.

* * *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

방금까지만 해도 마기헌이 마현을 쥐락펴락하고 있었는데.

그 찰나의 순간에 형세가 역전되다니.

후예들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마현 님의 근원이 네크로맨서였다니.”

“나는 이 순간을 보려고 사신관을 준비했던 거였어…….”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미쳤다.’

느껴 버린 것이다.

마현의 수준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그리고 성좌의 급이 모든 것을 결정지을 수 없다는 것까지도 말이다.

“허허…….”

원로들도 마현의 근원을 알아봤을 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하윤과 똑같은 근원이었으니까.

“참, 안 닮은 구석을 찾기가 어렵군.”

“반쪽이 아니라…… 뭐, 사 분의 삼 쪽인 게 아니오?”

다만, 놀라는 마음보다 의문이 더 컸다.

원로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환수는 하수인으로 삼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 불변의 진리가 눈앞에서 깨지자 수많은 말이 오가기 시작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금시초문이다만, 마현이 무슨 수를 쓴 게 아니겠나?”

“성좌의 힘이지 않겠습니까?”

“뭐가 됐든, 이건 한번 조사를 해 보는 게…….”

평범한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아이템이나 성좌의 힘이 있었다면 납득이 됐겠지만.

들어 본 적도 없었으며, 아이템은 금지 사항이었다.

상식 밖의 일에 원로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마현에 대한 논란이 점차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때.

사아아―

단상 위에 강력한 기운이 덮쳤다.

온몸을 지그시 누르는 무형의 힘.

그 숨통을 조이는 힘에 원로들은 하나둘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힘의 주인이…….

“조용히 하라.”

마휼이었으니까.

엄격한 마휼의 말은 어딘가 가시가 돋아 있었다.

마치, 조금은 화가 난 듯한 느낌.

그 날 선 반응에 아무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쯧, 이제야 조용해졌군. 한심한 녀석들.’

실제로 조금 짜증이 난 마휼이었다.

그야, 그렇지 않겠나?

지금 눈앞에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현’이의 대련이 펼쳐지고 있거늘.

어디서 집중 안 되게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느냔 말이다!

생애 첫 손주의 대련.

아주 각별한 순간이다.

미운 놈들 때문에 이 특별한 시간을 망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마휼 역시 사역마가 하수인이 된 것에 적잖게 놀라긴 했다.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지?’

사소한 진리가 깨진 게 대수인가?

그저 우리 현이의 그릇이 인간의 이해를 넘어섰을 뿐이잖나.

고작 이 정도도 생각하지 못하는 놈들이 원로라니…….

말세가 따로 없군.

마휼은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말했다.

“잠자코 봐라. 마가를 이끌어갈 후계자의 탄생을.”

억누르던 기운이 사라지자.

원로들은 그제야 얌전히 대련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비로소 차분해진 분위기.

‘드디어 조용해졌군.’

마휼은 근처에 몸을 숨기고 있는 비서장에게 전음을 보냈다.

― 동영상은 잘 찍고 있겠지?

사실, 마휼이 강압적으로 나선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동영상에 잡음이 섞이면 개같으니까!

― 물론입니다! 4k 화질로 보실 수 있습니다!

― 마현의 모습을 조금도 놓치지 마라.

― 예!

물론, 원래 사신관 내에서의 일은 세간에 노출되면 안 되기에 문서 기록을 제하고는 금지됐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사소한 것에 연연할 마휼이 아니었다.

‘내가 하겠다는데 누가 막을 수 있지?’

불만이야 있겠지만.

씹으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안 들키면 그만이지 않은가!

히죽.

‘잘 싸우는구나. 고얀 놈.’

마현을 지켜보는 마휼이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많은 것이 변해 버린 자신을 느끼면서.

* * *

까드득!

지옥의 어느 차원.

옥좌에 앉은 몰살의 황태자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콰앙!

분노에 찬 주먹이 팔걸이를 강타했다.

체크메이트.

사실상 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기헌은 스킬 ‘암흑 방패’로 몸을 지킬 뿐.

둘러싼 흑마견들을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니까.

“도대체 어떻게 이 몸의 병사들이 하수인이 된 거냐!”

치솟는 분노를 어찌할 수가 없다.

적이 자신의 군사를 빼돌렸다는 건.

그 자체로 살면서 겪어 본 적 없는 능욕이었으니까.

하물며 상대가 마현이다.

자신을 매몰차게 거절하며.

그 끝에 최하급 성좌와 계약한 어리석은 놈.

그런 주제 파악 못 하는 놈을 단죄하는 시간이 되어야 했건만.

오히려 제 화신이 박살 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가장 화가 나는 건 따로 있다는 것.

그건 바로.

1호라 불렸던 녹턴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암흑 방패를 두들기는 것이다!

쾅쾅!

― 크아아! 그만둬라!

쾅쾅쾅!

마치, 탭댄스를 추듯이 암흑 방패의 위에 올라서서 마구잡이로 방패를 깨부수려는 녹턴.

그 꼴을 보고 있자니 몰살의 황태자는 부아가 치밀었다.

“이런 은혜도 모르는 짐승 새끼가!”

1호가 시체가 되어 소환되고.

이후 하수인이 되어 나타났을 때까지만 해도.

몰살의 황태자는 모종의 수로 인해 빼앗긴 거로 알았다.

그렇기에 되찾으려고 했는데.

어떻게든 구해 주려고 했는데…….

녹턴이 보여 준 것이다.

할짝―

마현을 핥는 모습을!

그것도 한평생 본 적 없는 행복한 표정으로!

지금도 마찬가지다.

쾅쾅쾅!

무척 기분 좋은 표정인 것이다!

“크으윽!”

이가 갈린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저 배신자도 문제지만.

암흑 방패는 한계에 다다랐다.

깨지는 순간 마기헌은 죽게 될지도 몰랐다.

마현 놈의 패망을 지켜보지도 못한 지금.

여기서 화신을 잃을 수는 없다.

크르릉!

“어쩔 수 없군.”

몰살의 황태자는 성좌 메시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그 시각, 마기헌.

쾅쾅쾅! 콰직―

금이 가기 시작하는 암흑 방패.

마기헌은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든 이 상황에선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우우!

녹턴이 암흑 방패 위에 올라서서 탭댄스를 추고.

일곱 마리의 작은 흑마견들이 암흑 방패 주위를 강강술래 돌고 있으니.

누구든 미치지 않을 수가 없을 터였다.

‘나, 나는 이대로 끝나는 건가.’

놈에게 당하기만 하고 이렇게 쓰러지는 건가!

결국, 모든 것을 바로 잡겠다던 것은 꿈에 불과했다.

강력한 힘과 대성좌님을 등에 업었음에도.

체념할 수밖에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성좌 메시지가 날아온 것은 그때였다.

[성좌 ‘몰살의 황태자’가 당신이 약속을 못 지킬 것 같다고 합니다.]

약속.

그것은 마현을 죽이기로 한 것.

계약 당시 마현을 죽인다면 계약을 갱신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꿈이었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계약 해지’가 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마기헌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서, 설마…….”

계약이 해지된다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게 된다.

가장 최악의 형태로 끝난 거니까.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제, 제발 계약 해지만은 봐주십쇼! 제가, 어떻게든 놈을……!”

마기헌은 마치 살려 달라는 듯이 빌었다.

이대로 대성좌를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다행히 그럴 수 있었다.

[그건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는 조금 더 오랜 시간을 보낼 거라고 합니다.]

“서, 성좌님!”

마기헌은 울컥했다.

마치, 낭떠러지에서 구해진 기분이었으니까.

애초에 몰살의 황태자는 계약을 해지할 생각이 없었다.

마현에 가려져 있을 때는 몰랐지만.

화신으로 삼아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마기헌의 재능은 충분히 뛰어나다.

그저 마현이 너무나도 압도적일 뿐이다.

지금 이 당혹스러운 상황 역시.

마기헌이 못나서가 아니라.

마현이 미친놈이라서 일어난 일이다.

즉, 마기헌 자체에 문제는 없는 것이다.

거기에 자신과 가장 잘 맞는 근원인 ‘디아볼로스’를 타고났으니.

키우면 제법 뛰어난 화신이 될 터였다.

‘하지만 마현을 따라잡을 수 없을 테지.’

놈은 인정하기 싫지만, 상식을 벗어난 녀석.

마기헌은 지금이 아니면 마현을 영영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그 기강을 바로잡는다.’

아직 새싹에 불과할 이때 확실하게 짓밟는다.

그래야.

마기헌이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을 테니까!

“격이 좀 떨어지겠지만, 미래를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겠지.”

몰살의 황태자가 결정을 내렸을 때였다.

콰지지직!

암흑 방패가 완전한 한계에 이른 것.

곧 승부가 판가름 난다.

“으, 으아아아!”

마기헌의 두 눈이 거칠게 떨려 왔다.

대성좌님은 잡아냈지만.

그렇다고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건 아니었으니까.

몰살의 황태자가 메시지를 날린 건 그때였다.

[성좌 ‘몰살의 황태자’가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고 합니다.]

“서, 성좌님께서 말입니까?!”

몰살의 황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번뜩이는 눈빛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저 천인공노할 녀석에게 ‘저주’를 새겨 주겠다고 합니다.]

* * *

“슬슬, 때가 되었군.”

마현은 한계에 치달은 암흑 방패를 보았다.

이제 곧 마기헌은 끝난다.

깨지기 시작한 암흑 방패는 곧 무너져 내릴 터였고.

그 순간이 오면 마기헌은 무력하게 패배하게 될 것이다.

그전에.

‘몰살의 황태자가 나서겠지.’

아, 물론, 확실하진 않다.

그저 놈의 성미가 드러운 점을 잘 알고 있으니 그렇게 예상할 뿐이다.

전생과 달리 지금의 녀석은 마기헌과 이제 막 연결된 참이니 나서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서 주면 좋겠다.

그래야만.

이 대련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끝날 테니까.

그리고.

과연 그 기대대로 흘러갔다.

파칭―

박살 나 버린 암흑 방패.

몰려드는 흑마견들.

하지만.

틈을 뚫고 나오는 마기헌.

“크아아!”

놈이 포효하며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그 예상대로의 모습에 입가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 네놈의 성미라면 응당 그래야지.’

너 같은 놈이 내가 멀쩡히 돌아가는 꼴은 못 볼 테니까!

마현은 검에 손을 올렸다.

그 찰나에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그것은 마기헌과 몰살의 황태자가 할아버지에게 저주를 새겨넣던 기억.

힘이 없어 무력하게 숨어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나.

지금은 오직 나만이 기억하고 있는 그 순간을…….

씨익.

‘나는 늘 다시 쓰고 싶었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날의 기억은 전혀 다르게 새겨질 것이다.

왜냐하면.

키이잉―

‘내 맘대로 할 테니까.’

마현의 검이 서늘하게 빛났다.

50화. 사신관 보상